만화 베르세르크는 단순한 다크 판타지를 넘어, 인간의 존재론적 투쟁을 깊이 있게 다룬 철학적인 작품입니다. 가츠와 그리피스의 대립은 서구 철학사의 거대한 줄기인 니체의 실존주의와 결정론적 허무주의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두 인물의 태도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1. 가츠: '초인(Übermensch)'과 운명애(Amor Fati)
가츠는 철저히 니체적 인물입니다. 그는 신이나 운명이라는 거대한 체계에 순응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의지로 고통을 정면 돌파합니다.
운명애(Amor Fati): 가츠는 자신에게 닥친 비극적인 낙인과 저주를 피하려 하기보다, 그 고통스러운 삶 자체를 긍정하며 싸워 나갑니다. 이는 "이것이 삶이었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이라고 외치는 니체의 태도와 일맥상통합니다.
자기 극복: 가츠는 매 순간 한계를 시험받지만, 외부의 구원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 '검은 검사'라는 정체성을 구축하며, 부조리한 세계에 균열을 내는 능동적 허무주의자입니다.
2. 그리피스: '최후의 인간' 혹은 '결정론의 노예'
그리피스는 표면적으로는 야망가이지만, 철학적으로는 운명의 굴레에 가장 깊게 속박된 인물입니다.
인과율(Determinism)의 굴레: 그리피스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동료를 제물로 바치는 '강림'을 선택합니다. 이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운명론적 정당화 뒤에 숨는 행위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 믿지만, 결국 신(심연의 하나님)이 설계한 거대한 인과율의 장기말이 됩니다.
르상티망(Ressentiment): 꿈이 꺾였을 때 느끼는 무력감과 질투, 원한은 그를 타락시킵니다.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방식은,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는 가츠의 태도와 정반대 지점에 있습니다.
3. 삶의 태도 비교: 실존 vs 본질
| 구분 | 가츠 (실존적 투쟁) | 그리피스 (본질적 야망) |
| 삶의 근거 | 현재의 투쟁과 동료와의 유대 | 예정된 승리와 개인의 성취 |
| 부조리에 대한 대응 | 저항과 인내 (시시포스적 모델) | 굴복과 거래 (파우스트적 모델) |
| 운명의 해석 | 개척해야 할 가시밭길 | 따라야 할 정해진 길 |
| 자유의 의미 | 고통 속에서도 선택하는 자유 |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자유 |
알베르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
가츠의 삶은 알베르 카뮈가 말한 **'시시포스'**와 닮아 있습니다.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가츠는 결말이 보이지 않는 사도들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카뮈는 이 부조리한 반복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지며, 그 투쟁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증명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그리피스는 부조리 앞에 절망하여 '초월적 힘'에 의탁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실존을 포기하고 '페무토'라는 신적인 존재(본질)가 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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