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시점은 한국 농업사에서 **'천지개벽'**이라 할 만큼 거대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
ㅇ전란(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황폐해진 국토를 복구, 경신대기근(1670~1671)과정에서 유민 대량 이동, 이것이 생존을 위한 기술 혁신이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어내
ㅇ모내기법(이앙법)의 전국적 확산(가장 결정적)
: 기족 직파법 대비 노동력 절감(특히 제초 인력)
: 이모작 가능(보리 수확으로 생산력 급증)
: 광작 출현(대규모 농사를 짓는 농민 출현)
ㅇ모내기는 관개시설이 필수적, 대규모 수리 시설 정비(저수지와 보)
: 강력한 중앙집권, 통제중심
: 신분제 공고화, 확고한 시스템 필요
ㅇ농업생산력 증대는 성리학, 여성의 지위, 조선의 보수화에 영향
: 빠른 경제 성장세가 나타나면서 잉여 산출품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불평등 강화
: 불평등, 차별 하에서 나타날 반란, 역심, 상승욕구 등을 사상적으로 억제할 필요
: 재산의 분산을 막고 가문의 배타성을 위한 지속성 유지에 노력(장자 상속, 여성 배제)
: 이를 위한 사상적 기반이 성리학, 주자학은 본디 이러한 속성에 잘 맞았다
ㅇ성리학의 변화
: 그 이전의 남녀가 비교적 균등한 역할과 위치를 부여받았으나
: 17세기 이후로는 남성 중심의 성리학, 남존여비 강화
: 성리학은 교조화, 체제이념화가 심화
: 전란 이후 복고주의 강화, 전통 성리학으로의 회귀, 주자학만을 정통으로 인정
: 명청 교체기, 국제 질서 변화 속에서 조선은 ‘소중화’ 의식을 내세워 명분·의리를 중시
: 장자 상속, 적서 차별, 남녀 차별, 노비제 유지 등 불평등 구조를 ‘천리’와 ‘예’의 원리로 정당화, 체계화
ㅇ가부장제의 심화
: 결혼제도, 남성의 처가살이 기간이 줄고 여성의 시집살이가 일반화
: 여성의 상속권, 재산권 축소
: 장자 상속 원칙이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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