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2일 토요일

고양이는 어떻게 평생을 집안에서 사는가?

인간의 시간 인식을 관장하는 신피질

인간은 두뇌의 바깥을 이루는 신피질이 발달하며 이성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게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개념이 생긴 것인데, 이는 삶의 유한성을 깨닫게 해줌과 동시에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의 계획, 원대한 꿈을 추구하는 인간만의 특성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신피질은 불행의 원인이기도 하다. 과거란 대부분 후회이며 미래는 걱정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과거와 미래에 집착할 경우 몸은 분명 현재를 살고 있지만 영혼은 과거와 미래로 찢어져 일종의 유체이탈 상태가 되기에 삶의 존재감이 옅어진다. 우울증은 지금 같은 현재가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도 계속 지속된다는 추측에서 비롯된 타임라인적 절망감이다. 인간은 시간 개념을 통해 역사를 기억하고 앞날을 대비하며 거대한 문명을 이뤘지만, 현재라는 ‘육체와 영혼의 합일의 순간’을 잃었다.

이를 강제적으로 막는 방법이 바로 술을 마시는 것이다. 취해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모든 걱정거리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이는 알콜에 의해 신피질이 마비되며 과거와 미래의 폴더가 잠깐 닫히고, 비로소 현재만 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고 싶어지는 이유는 술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바로 그 ‘현재에만 존재하는 쾌감’ 때문인 것이다.

술에 취하면 다시 어린아이처럼 되고, 광기에 휩싸이고, 자신감이 높아지는 것은 이처럼 잠시 과거의 자학이 사라지고, 미래의 걱정, 장차 듣게 될 평판 따윈 중요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의 이러한 신피질 마취를 통한 현존(現存) 놀음에 육체와 간은 망가져 가고 결국은 알콜의존이 되어 버린다. 사람 구실이 힘들어지고 점점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간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는 몇년 째 집안에서만 살고 있다. 어찌 보면 감옥살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지루함을 거의 모른다. 녀석은 다행히도(?) 신피질이 없기에 과거와 미래의 개념 또한 없다.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아주 열심히 매일 털을 닦고, 똑같은 사료를 꼬박꼬박 먹고, 시원하게 똥을 눈다. 기분이 좋으면 혼자 뛰어다니며 날렵한 몸을 느낀다. 앞으로 평생을 이 좁은 집구석에서 보내겠지 우울해하며 결코 자살충동을 느끼지도 않는다. 가끔 어쩌면 녀석이 나보다 행복하게 일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집에서 감옥살이하는 짐승은 되려 나인지도 모른다.

지옥같은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한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에서 현재의 절망을 잊으려고 과거의 향수에 사로잡혀 지냈던 사람들과 미래에 너무 강한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이 오히려 아우슈비츠에서 많이 죽어갔다고 증언했다. 고통스럽지만 지금의 현재를 부여잡은 채 어떤 의미와 감정을 느끼고, 유머를 잃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생존에 더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과거나 미래로 도피하지 않고 현재에 버티고 존재했던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은 셈이다.

까마득한 옛날, 그렇게 현재만을 살았던 인류의 조상은 선악과를 따먹고 낙원에서 쫓겨나는 대신 신피질을 얻었지만, 그 지혜가 알려준 죽음의 공포는 영혼을 잠식하고 말았다.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시간축을 가로지르는 운명의 시계에 사로잡혀 사는 한 불안감은 증폭되고, 존재감은 엷어지며 삶은 공허해진다. 아무리 돈이 많고 성공했어도 현재에 있어야할 영혼이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혔다면 아우슈비츠에 갇혀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살은 결코 현재의 고통 때문에 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상태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란 좌절 때문이다. 감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예측이 희망을 꺾고, 삶을 못버티게 하는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것은 과거에서 미래로 급속히 진행되는 발전의 초고속도로가 현재를 갈아엎었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의 영혼이 가속도에 튕겨나가 유체이탈 상태이고, 전국이 몸뚱아리만 갇혀있는 수용소인 것이다.

이제 탈옥의 시간이다. 진화의 대가로 얻은 신피질이 만든 시간 감옥에서 철조망을 뚫고 현재로 돌아와야 한다. 그곳엔 깃털 같은 찰나가, 잃어버린 영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어린 시절 당신이 고양이처럼 원래 가졌던 그 가벼움 말이다.

더 이상 신피질이 만들어낸 타임라인의 노예가 되어 우울함에 시달리거나, 술을 퍼마실 필요도, 일 중독에 빠져 불안을 애써 잊으려 할 필요도 없다. 그저 눈을 감고 떠올려보라.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을. 내가 바로 이 순간 지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몰아치는 시간의 풍랑 때문에 그것들을 바다에 죄다 던져버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버려야할 것은 과거에 할 수 있었던 것, 미래에 하려는 것이 가득 담긴 무거운 짐짝들이다.

전력을 다해, 오로지 현재에 할 수 있는 것만 떠올리고 몰입한다면 우리의 누추한 일상은 그리 비관적이지도 무의미하지도 않다. 현미경 속에 담긴 무한한 우주처럼 뜻밖의 아름다움과 흥미를 발견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가 잘려나가면 필요한 것과 돈도, 욕망도 오히려 적어진다. 하루에 할 수 있는 건 제한되어 있기에 욕심 낼 이유가 없다. 오늘 통장 잔고가 제로가 되거나 냉장고가 텅 비진 않는다. 백화점에서 사고 싶은 신상이 오늘 모두 팔리진 않는다. 오늘 밤 저녁을 먹다가 암선고를 받을 일도 없다. 내일의 태양은 반드시 뜨기에 못한 일은 내일 또 하면 된다.

현재에 할 수 있는 것만 집중하면서 고양이처럼 열심히 닦고 먹고 싸고 놀며 살아가면, 그럼 시간은 알아서 우리를 미래로 태워다 줄 것이고, 운이 좋으면 좀 더 나아진 현재라는 선물을 또 받을 것이다.

과거에서 미래로 밀려오는 거대한 시간의 파도는 운명의 몫이지만, 파도의 끝자락을 타는 서퍼의 쾌감은 바로 나 자신의 것이다. 오로지 현재에 집중하며 중심을 잡으면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지만,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파도를 보게 되면 무서워 물속에 빠지게 된다. 잊지말자, 삶은 적분이 아니라 미분이라는 것을. 죽음의 순간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 것은 오로지 현재뿐이다.

Yesterday is history, tommorow is a mistery and today is a gift. That’s why we call it the present.


ㅍㅍㅅㅅ http://ppss.kr/archives/63540

2015년 11월 10일 화요일

중독의 반대는 제정신이 아닌 소통입니다 - Johann Hari

제 어릴 적에 제 친척분이 늘 자고 있어서 깨우려 했지만 안일어나시더라구요. 나이가 들면서 그분이 마약중독자였다는 사실을 알게됬습니다

최근에 그 분에 관해 많이 생각했는데 미국과 영국에서 처음 마약이 금지되고 중독자를 처벌한 지 올해로 정확히 100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마약을 그만둘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아시다시피 중독은 여전합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마약중독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도울 방법을 찾으려 했어요. 엄청난 자료를 찾고 또 찾았지만 기초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조차도 찾지 못했습니다. 중독은 왜 일어날까요? 효과도 없는 처벌 방식을 왜 계속하고 있는가? 시도해 볼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있는가?

그래서 중독을 경험하고 연구한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해보고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어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브룩클린의 브라운스빌에 있는 성전환 마약 밀매자부터 흰쥐에 마약을 먹여서 실험하는 과학자들까지. 참고로 흰쥐는 마약을 좋아하지만 아주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그렇습니다. 모든 마약을 합법화한 유일한 나라인 포르투갈에서 밝혀졌죠. 제가 정말 놀란 것은 우리가 중독에 대해 알고 있던 거의 모든 것이 틀렸다는 점이고 마약에 관한 정책을 많이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가앉아계신 분들 모두가 지금부터 20일동안 하루에 세 번 헤로인을 사용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헤로인에 화학적인 유인이 있어서 한동안 복용하면, 그 유인에 의존하게 되고, 몸이 필요로 하게 되고, 20일이 끝날 무렵에는 헤로인 중독자가 될 거 겠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만약 제가 오늘 TED 강연을 마치고 나가다 교통사고가 난다면 저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상당량의 몰핀을 맞을 것입니다. 헤로인이죠. 거리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고순도에 고품질이에요. 게다가 꽤 오래 투여받게 됩니다. 여기 계신분들도 모르는 사이에 상당량의 헤로인을 맞으셨어요. 그렇다면 화학적 유인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모두 중독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죠.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밴쿠버 대학의 심리학 교수 브루스 알렉산더는 실험을 했습니다. 우리에 쥐 한 마리를 넣고, 물병 두 개를 줍니다. 한 병은 그냥 물이고 다른 병은 헤로인이나 코카인이 든 물이죠. 쥐들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마약이 든 물을 선택하고 빠른 속도로 죽어갑니다. 1970년대에 알렉산더 교수는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다가 무언가를 깨닫습니다. "아! 지금껏 빈 우리에 쥐를 넣었는데 마약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좀 다르게 실험해보자." 알렉산더 교수는 쥐들에게 천국같은 장소를 만들어 줬어요. 충분한 양의 치즈와 가지고 놀만한 색색깔의 공들과 수많은 터널들이 있어요. 결정적으로 많은 친구들이 있어서 짝짓기를 많이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역시 두 종류의 물병이 주어집니다. 일반 물과 마약이 든 물. 그런데 여기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쥐 공원'에서는 쥐들이 마약이 든 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의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충동적으로 복용하는 쥐는 한마리도 없었습니다. 남용하는 쥐도 없었습니다. 혼자 고립되어 있을 때는 거의 100%의 남용률을 보였다가 행복하고 교류하는 삶을 살 때는 0%로 떨어진 것입니다.

물론 쥐만 그럴수도 있겠죠. 하지만 운좋게도 같은 시기에 정확히 같은 방법으로 우연한 생체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입니다. 베트남전중 미군 약 20%가 헤로인을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뉴스는 이들의 본토 복귀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수십만의 약물중독자들이 미국의 거리에 넘쳐날 것이다!" 합리적인 생각입니다. 헤로인을 많이 사용하던 군인들을 집으로 따라갔습니다. <일반정신과학 기록>에서 정말 정밀한 연구를 했는데 어떤 결론이 나왔을까요? 그들은 재활 시설에 가지 않았습니다. 금단 증상도 겪지 않았어요. 95%의 사람들은 마약을 그냥 끊었습니다. 화학적 유인에 대한 이야기를 믿고 있다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알렉산더 교수는 이렇게 생각했죠. 중독에 다른 측면이 있지 않을까? 그는 "만약 중독이 화학적 유인과 무관하다면 어떨까? 중독이 당신의 생활환경과 연관되어 있다면? 중독이 환경에 대한 적응 기전이라면?"

이것을 바라본 네덜란드의 피터 코헨 교수는 이를 중독이라 불러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소통이나 교류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죠. 사람들에게는 교류하려는 타고난 자연스런 욕구가 있고 우리는 행복하고 건강할 때, 서로 결속하고 관계를 맺습니다. 하지만 정신적 충격을 받거나, 고립되거나, 삶의 무게에 억눌려 교류를 할 수 없을 때 당신은 안도감을 찾기 위한 어떤 것을 갈구하게 됩니다. 도박, 포르노,  코카인, 대마초가 될 수 도 있습니다. 그외에 신앙, 섹스, 흡연, 폭식, SNS, 쇼핑 등등 모두 마찬가지 입니다. 그게 우리의 본능이기 때문에 뭔가와 결속하고 교류합니다. 그게 사람으로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죠.

여기에는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마약과의 투쟁을 위한 너무나도 분명한 의미가 있어요. 아리조나에서 저는 "약물 중독자"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은 한 무리의 여성들과 사람들의 질시를 받으며 무덤을 옮기는 강제노역에 동참했습니다. 이들이 형을 마치고 나오면 그들은 범죄 기록이 남아 합법적 일자리에서는 평생 일하지 못하게 됩니다.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의 경우에 대한 아주 극단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중독자들을 그런 수준으로 대합니다. 그들을 징벌하고 멸시하고 그들에게 범죄 기록을 남깁니다. 사회에서 갱생할 수 없게 장벽을 칩니다

정반대의 방식을 채택한 곳이 있습니다. 2000년도에 포르투갈은 국민의 1%가 헤로인 중독자였습니다. 해마다 미국식 처벌 방법을 점점 더 강하게 시도했습니다. 사람들을 징벌하고, 낙인하고, 더욱 부끄럽게 했죠. 하지만 매년 문제는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국무 총리와 야당 대표가 회동해서 점점 헤로인 중독자가 늘어나는 국가를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과학자들과 의사로 된 패널을 소집해서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대책을 찾아보자. 훌륭한 João Goulão 박사의 지휘아래 소집된 패널은 이러한 새로운 증거를 살핀 뒤 돌아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마초부터 마약까지 모든 마약을 합법화하세요, 다만" 바로 이 다음 단계가 핵심 단계입니다. "중독자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차단하기 위해 사용된 모든 예산을 사회와 재결합시키는데 사용하세요." 그리고 이건 미국이나 영국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자가 재활을 활성화했으며 심리치료를 병행했고 이는 상당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가장 엄청난 일은 지금의 방식과 정반대의 것이었습니다. 중독자를 위한 대규모 취업 알선과 소규모 창업을 위한 소자본 대출 사업. 예를 들어 정비공이었다면 준비가 되었을 때 정비소에 데려가서 이렇게 말하죠. 이 사람을 1년 동안 고용하면 국가가 임금의 반을 부담한다고. 이 사업의 목표는 포르투갈의 모든 중독자들이 아침에 일어나 할 일이 있게 해주는 것이었죠. 제가 포르투갈에서 중독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삶의 목적을 되찾았으며 더 넓은 사회와 결속을 되찾고 관계를 재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실험이 시작한지 15년이 흘렀고 이제 결과가 나왔습니다. <영국범죄학회지>에 따르면 포르투갈에서는 주입식 마약 사용이 절반으로 감소했습니다. 절반이요! 마약 남용과 중독자들 간의 HIV도 급감했습니다. 모든 연구에서 중독이 현저히 감소했음을 보여줍니다. 시스템이 잘 돌아간다는 반증은 포르투갈에서 아무도 과거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정치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 모든 연구 결과들의 기저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중독에 취약한 문화권에 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부터 시작해서 쇼핑, 음식까지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낄테고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소통의 단절이 중독의 주된 요인이라고 말했는데 단절이 늘어나고 있어요. 역사적으로 어느 때보다도 잘 연결된 사회에서살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의 소통은 인간 교류의 흉내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위기에 처하면 알아차릴거에요. 트위터 팔로워가 여러분을 보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페이스북 친구가 위기를 극복하게 돕지는 않겠죠. 가까이 하는 친구들, 깊게 교류하고 미묘한 차이를 알고 얼굴을 맞대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환경 저술가인 빌 맥케빈의 연구결과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그는 평범한 미국인들이 위기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구의 수를 기록하도록 했습니다. 1950년대부터 수가 천천히 감소했습니다. 집에서 개인이 갖는 공간의 규모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문화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공간과 친구를 맞바꾸고, 물질과 교류를 맞바꾸고, 그 결과 우리는 어느때보다도 외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쥐 공원' 실험을 했던 알렉산더 교수는 우리들이 늘 중독으로부터 개인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말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지만 사회적 회복을 더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회를 '쥐 공원'에 가깝기 보다는 고립된 우리에 가깝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처음에 이 분야에 뛰어들었을 땐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마주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 긴 여정을 마치고 이 모든 것들을 배운 뒤 제 삶에서 마주한 중독자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솔직히 중독자를 사랑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방에 계신 많은 분들이 알 겁니다. 제 얘기를 들으면서 화가 나셨을지도 몰라요. 이 논쟁이 너무나도 뜨거운 이유중 하나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와닿기 때문일거에요. 그렇죠? 우리 모두는 중독자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하죠. 누군가 그를 좀 말리면 좋겠다. 우리가 살면서 중독자들을 마주할 때 정형화된 대응방식이 있어요. TV쇼 "인터벤션"을 보시면, 아주 단순한 전제가 있어요. 중독자를 발견하면 모조리 데려다 모아놓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직시하게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킨다고 위협하죠. 그들이 하는 일은 중독자들을 위협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중독자들이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죠. 저는 이러한 접근방식이 왜 효과가 없는지 깨닫기 시작했고 우리 사생활 안으로 약물에 대한 투쟁논리를 가져오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어떻게 포루트갈처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제가 지금 노력하는 것은 삶 속의 중독자들에게 그들과 더 소통하고 싶다고 말하고, 당신이 약물을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어떤 상태에 있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필요하다면, 내가 가서 함께 하겠다고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외롭다거나 혼자라고 느끼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말의 핵심인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린 당신을 사랑해요"는 중독자들을 대하는 사회적, 정치적, 개인적인 모든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0년동안 우리는 중독자들에게 투쟁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는 우리가 그들에게 사랑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중독의 반대는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독의 반대는 관계입니다.

감사합니다.

 Johann Hari,  TED 강연

2015년 7월 19일 일요일

워커홀릭의 효율

"일주일에 50~60시간씩 일하는 사람들과 일주일에 90~100시간씩 일하는 사람들을 비교해볼까요? 얼마나 성과차이가 날까요?”

“얼핏 생각하면 1.5~2배 가량 차이가 나죠. 하지만 제 경험에 따르면 최소 5배 이상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반복학습에 따른 숙련도 상승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집중도 상승입니다. “밥 먹을 때도 ‘일’, 씻을 때도 ‘일’, 화장실 갈 때도 ‘일’이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하게 되고 자연스레 훨씬 좋은 성과가 나타납니다”
“여기에 기술, 정보, 인력활용이 붙으면 훨씬 더 가파른 상승효과를 내는 듯 해”

“그러면 엘론머스크처럼 실제 성공한 사람들은 워크홀릭이에요?”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대개 그렇지. 이와 관련해 많은 일화가 있어”

사례1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젊은 시절 일을 하느라 결혼식에 늦게 도착해 행사가 무산됐을 정도였습니다

사례2
워렌버핏은 신혼여행에도 벤자민 그레이엄의 저서 <증권분석>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사례3
스티브잡스는 스스로도 일중독자이기도 했지만 매킨토시 개발 때는 직원들에게 주당 90시간 근무를 강요했습니다.

사례4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얼마나 개인휴가를 쓰지 않았던지 어쩌다 한번 썼을 때 퇴사설이 돌았습니다.

사례5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은 주당 50~60시간에 불과하지만 세상을 연결시키는 데 몰두하는 시간은 인생 전체와 같다고 답을 했습니다.

사례6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임원 중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합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벨류(가치)라는 게 노동량이거든. 벨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노동량은 많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

“와.. 무슨 전생에 소도 아니고. 전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아요. 일과 삶의 조화가 있을 수는 없나요?”

“개인의 역량이 초인에 가깝다면 모르겠으나 상당히 어렵지”

“가족에게 소홀할 수 밖에 없고요?”

“안타깝게도 성공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더라고. 일하느라 가족에 신경쓸 여력이 없던거야”

“물론 업무 외 남는 시간을 쪼개 어떻게든 가족과 함께 할 수는 있겠지. 대신 친구와 나에게 쓰는 시간은 사라지겠지 시간은 유한하니까”

“어떻게 해야 되요?”

“선택의 문제야”

“야망이 있고 성공에 대한 갈망이 크고 내 업에 대해서 최고가 되고 싶다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 일은 삶의 일부에 불과하고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가족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겠지”

“다만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직업을 잘 골라야겠지”

“연봉이 낮더라도 고용 안정성 높은 곳, 산업적인 변동성이 크지 않은 곳, 영리회사보다는 공무원이나 공기관, 창업이나 예체능은 절대로 근처에도 가지 말고”

“내 개인적인 생각은 독일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말처럼 젊을 때는 성공을 원하든 원치 않든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는 게 맞다고 봐. 나이가 들어 여유를 추구하더라도. TV나 영화보면 일만 하고 살던 사람이 늙어서 가족이 더 소중했어요 이런 말 많이 하자? 젊었을 때 열심히 일했으니까 그런 깨달음이 있는 거야. 평생 일과 가정 균형을 맞춰 살아온 사람이 그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저는요. 성공도 하고 싶고요. 연봉도 많이 받고 싶고요. 고용 안정성도 보장받고 싶고요. 나와 가족을 위한 시간도 필요해요. 그런 직업은 없나요?”

“없다”

2015년 7월 8일 수요일

다이소 창업자 야노 히로타케 사장 어록






다이소 창업자 야노 히로타케 사장의 발언록


1.상품 가격을 100엔으로 통일한 이유는 귀찮아서다. 다이소의 창업은 트럭 이동판매였다. 당시에는 야노 히로타케사장밖에 없어서, 아이들을 보육소에 등하교시키는 것도 힘들었기에 가격을 100엔으로 통일했다.

2.「6년쯤 전까지는 『다이소는 망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3.「저는 답안나오는 평범한 아저씨입니다.」

4.닛케이 비지니스의 취재에서 기자로부터「브랜드 재팬 2012에서 다이소가 처음으로 10위에 들었네요」라는 말에「브렌드가 뭔가요? 모카나 킬리만자로 같은거?」라고 대답, 기자: 「그건 블렌드고요」

5.「저 자신은 최근, 정말로 시대에 뒤쳐짐이 심각합니다」

6.「컴퓨터 잘 몰러. 분석은 안혀」

7.「다이소 따위 얄팍한 장사라서요. 머지않아 망할게 뻔해요.」

8.「점포 레이아웃은 직원들이 멋대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못하거든요」

9.「제가 하려는 건 사사건건 직원들에게 부정당합니다. 시대가 바뀐건지도 모르겠네요」

10.「저의 결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11.「저는 불운한 인생을 보내고 있습니다.」빚, 야반도주, 이동판매에 쓰던 트럭의 화재 등 다수의 불운을 경험했습니다」

12.「나는 구닥다리야. 이제 틀렸어」

13.기자가 붙인 별명은「불행이라는 옷이 몸에 들러붙은 억만장자」

14.「손님은 잘 모르겠구먼」편의점이 등장했을 때 보물찾기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던 다이소가 잘못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15.장사했을 때 이동판매트럭 화재는 경찰에서 자작극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하지만 보험에 들지 않았기에 혐의가 풀렸다. 화재로 모든 것을 잃은 야노 사장은 충격을 받아 한 달동안 드러누웠다고 한다.

16.이토요카도(※주. 일본의 대형마트체인)의 이토 마사토시 회장에게 혼난 적이 있다. 사업계획을 보여주러 갔는데 수첩을 넣어둔 봉투가 너무 허름해서 「포장도 상품의 일부다! 장난하냐 등신아!」라고 욕을 처먹었다.

17.다이소 투자자인 미즈호 은행의 니시보리 사토루 사장에게 다이소는 곧 망할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알려준 적 있다.

18.「경영계획서요? 없는데요?」 앞을 꿰뚫어보는 능력에 자신이 없기에, 계획은 세우지 않고. 전략도 생각하지 않는다.

19.점포가 늘어나는게 무서워서 직원들에게 「내지마~ 출점 하지마~」라고 말해왔다. 전국, 해외를 제패해 버리면 목표를 달성한 듯 탈진증후군이 되어버리는것 아닌가 하는 불안이 있다고.

20.상품개혁은 아오노 케이코 전무가 해줬다



2015년 5월 23일 토요일

우월감과 열등감

타인에 대해 우월하게 행동하는 이의 배후에는 열등감이 숨겨져 있다

- A. Adler -

2015년 5월 13일 수요일

페르미 역설

1. 개요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제기한 역설.

1950년 여름 로스앨러모스, 점심 식사를 하던 네 명의 세계적인 과학자들(엔리코 페르미, 에드워드 텔러, 허버트 요크, 에밀 코노핀스키)은 “우주의 크기와 나이를 고려했을 때, 고등 외계 문명의 존재는 당연하다”는 의견일치에 도달했다. 그때, 페르미가 난데없이 질문을 던졌다.

"(외계생명체 가설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어디에 있는데?(Where are they?)"

다시 말해, 우주의 나이, 그리고 우주에 있는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별의 수, 그리고 그 중에 지구와 같은 천체 구성을 갖춘 별이 있을 확률을 생각하면 우리 문명과는 다른 지적 외계 문명의 존재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고, 정말 그들이 존재한다면 그 중 먼저 생겨나 발전한 문명도 있을 것이고 또한 그 중 일부 문명의 외계인들은 이미 지구에 와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 외계 문명은 모두 어디 있는가? 그들은 어디 있는가? - 이것이 바로 페르미 역설이다.

이후 이 역설은 외계 문명을 둘러싼 논의에서 일종의 지적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해왔으며, 새로운 학문적 성과에 따라 새로운 버전의 풀이들을 이어왔다. 과학자와 SF 작가는 물론 철학자, 역사학자, 심지어 종교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페르미 역설을 풀기 위해 뛰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갖가지 시나리오와 이론들이 만들어졌다. 페르미 역설은 외계 문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통과점’이 되었다.

한국에 출간된 책 중 이 역설을 중대하게 다룬 책으로는 영국 물리학 교수 스티븐 웹이 쓴 <모두 어디 있지?>가 있다. 이 책의 결론은 첫번째와 두번째는 현재까지의 인류사로서 보기에 희박하며, 결국 우리 은하 내에는 가장 번성한 문명이래봤자 우리 밖에 없다라는 식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인간원리 항목 참조

......현재로선, 앞으로 깨질지 안 깨질지조차도 알 수 없는, 神떡밥과 우열을 다투는 묵직한 떡밥.

현재까지 이에 대해 나온 수많은 의견들을 큰 갈래로 나누어 보면 세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1.1. 외계인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이 쪽은 '외계인 지구 문명설'과 이어지기도 한다. 일견 흥미롭지만, 옛날 유럽인들이 비유럽계 문명을 폄하할 때 썼던 '백인 문명설'과 같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란 것이다. 즉, "우리 인간이 자체적으로 이러한 문명을 일궈냈을 리 없다"라는 것이 되어버린다. 더구나 인류의 초기 문명들이 모두 비유럽 문명이었다는 것을 상기하자.[1]

그러나 이런 오리엔탈리즘적 태도 말고 동물원 가설이라는 그럴듯한 가설이 있다. 이미 고도의 외계 문명이 오래 전에 전 우주(혹은 적어도 이 주변의 넓은 구역)를 정복했고 그들이 우주의 한 구역(우리 은하일 수도 있고 그보다 크거나 작은 범위일수도 있다)에 자연보호구역 혹은 동물원을 설치했는데 그 안에 지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구역 내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못하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서 개발되지 않은 우주를 (아마도 연구, 관광 목적으로) 보존하려 한다는 것. 이 가설에 따르면 외계인 관리자가 우리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문명 발달 수준이나 개체수 등을 체크하고 있을수도 있다.[2]


1.2. 외계인이 존재는 하지만 아직 우리와 의사 소통이 안 된다.

전파의 전달 속도가 광속을 넘을 수 없다는 한계에서 비롯된 설이다. 태양계 밖 어딘가에 있기는 하나, 아직은 수단이 없어서 서로 모르거나 알더라도 연락할만한 기술이 없다는 것. 동서양이 점차 만나게 되어 현재에 이른 것의 우주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주덕후 분들만이라면 알 법한 천문대에서는 오늘도 우주의 외계인(혹은 문명)을 향해 메시지가 담긴 전파를 쏘아올리고 있다. 또한 우주의 전파를 수집해서 분석하는 SETI 프로그램도 가동중. 그런데 통신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뜬금없지만 미스테리 서클도 이 가설의 증거로 사용되고 있다.

혹은 이미 외계인들이 고도로 발달해서 인류가 지금 쓰고 있는 전파 통신과 같은 미개한 방식은 쓰지 않는다는 가설도 있다. 외계인들이 어떤 쪽으로 고도로 발달했다고 해서 꼭 전파 통신 기술을 발명했으리라는 법도 없다.[3] 다만 전파통신을 미개한것으로 치부할만한 오버 테크놀로지를 지닌 우주인이라 할지라도, 그 오버 테크놀로지가 '무제한'의 속도일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가령 광속의 수백, 수천배에 해당하는 속도로 정보전달이 가능한 매체가 있다고 가정할지라도, 그 매체조차도 지구에 전혀 닿지 않을 거리에 있을수도 있다. 더군다나 그러한 전파가 아닌 매체의 경우엔 설사 우리에게 닿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해석 못한 나머지 그냥 흘려보냈을 가능성 역시 있다.

역으로 과학, 기술은 구석기 수준이지만 프로이트 철학을 하며 초현실주의 미술을 하는 종족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 존재를 감지해 냈지만 다른 종족과의 소통에 아무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당신도 개미의 존재를 알지만 에드몽 웰즈가 아닌 이상 그들과 굳이 의사소통을 할 생각은 없지 않은가

외계생명체 자체는 존재할 가능성이 높지만 지적생명체까지는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무생물 → 단세포 생물 → 다세포 생물 →지적 생명체 의 과정에는 아주 넘기 힘든 세 개의 고비가 있다. 이 중 한두개는 어찌어찌 가능하더라도 세 개의 고비를 모두 넘은 종은 인류가 유일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멸망 안하게 잘하라고!!

1.3. 외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블랙홀과 같은 우주 환경의 극단성과 가혹성, 그리고 지구와 태양계의 특별함 등이 논거로 주장된다. 하버드 대학교 천체물리학자 하워드 스미스 교수는 지금까지 발견된 행성들 의 환경의 극단성을 예로 들며,우주에서 지구와 같은 행성이 유일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하나의 과학적 가설로 정립한 것이 바로 "희귀한 지구 가설" 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간원리 항목 참고.

1.4. 결론

우주의 방대함에 비해 아직까지 인류의 지식은 미약하다고 표현하기에도 한없이 모자랄 정도로 부족하니, 3가지 설 모두 가설일 뿐이라는 점에 주의하자.

다만 개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가설을 고르라면 2번이다.

우리 은하에만 수십억개의 지구형 행성이 존재할수 있으며, 우리가 관측 가능한 범주내에서 추산되는 은하의 숫자만 수천억개다. 경우의 수는 너무나도 많다. 덕분에 그 수많은 지구형 행성중에서 생물이 살만한 환경, 그중에서도 지적 생명체가 살 환경이 극도로 적다고 할지라도, 수천개 이상은 나올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 중에서 우리 인간이 이룩한 고등 문명을 이룩한 존재가 있을 가능성은 높다.

거기다 위의 역설의 개요에서도 알수 있다시피. 다만 우리가 걔들이 어디있는지 모르는것 뿐 역설을 제시한 엔리코 페르미마저 포함한 4명의 세계적인 과학자들은 고등 외계 문명의 존재가 당연하다는 점에 동의를 했다는 점을 떠올리자.

합리적으로 접근한다면 3번일 확률은 매우 낮다는것을 알수 있다. 1번의 경우엔 좀 더 가능성이 있지만, 1번 같은 발상을 하다보면 현실에 존재하는 각종 음모론이 사실이라고 의심하고 살아야한다.

그럼 왜 '아직도 의사 소통이 안되고 있냐?' 를 생각해봐야 하는데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외계인이 있다고 가정해야하는 이유랑 일맥 상통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왜냐면 우주가 답도 없을정도로 넓고 오래됬기 때문

위에서도 언급되어있다시피, 외계인들의 오버 테크놀로지라고 할지라도, 무한대의 속도를 지닐 가능성은 낮다. 산업혁명 이후 폭발적인 과학발전을 이룩한 인류지만, 20세기 후반부[4]의 물리학의 화두는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일 정도이다. 양자역학의 경우엔 정확하게는 '우리는 모를수밖에 없다' 라는 개념일 정도이다. 바꿔말하면 우리나 외계 고등생명체가 아무리 세상의 진리를 파고 들어도 알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있고, 전지전능의 영역에 도달할수 없다면 아무리 고등지성을 지닌 생명체가 긴 시간에 걸쳐서 발전했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상대성 이론. 상대성 이론이 맞다는 전제하에선 우리 광속 이상의 속도로 이동한다는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향후 미래에 상대성 이론이 깨진다 할지라도, 현재까지 상대성 이론이 잘 들어먹혔다는것을 감안한다면 일반적으론 맞지만 아주 특수한 매질같은 경우만 예외 케이스로 두고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 바꿔말하면 외계인의 오버테크놀로지 가지고도 광속이상의 속도로 우주선이 움직일수 없을 확률은 아주 높다. 우주인이 있더라도 아광속의 우주선가지고는 태양계랑 아주 가까이 붙어있지 않는 이상, 지구까지 오긴 매우 힘들다. SF에서는 워프나 텔레포트, 초공간도약 등이 나오고, 이러한 기술로 우주선을 이동시키는게 외계인의 오버테크놀로지로서 가능하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실질적으로 거시적인 레벨에서 가능한지조차 여전히 의문이라는 점을 감안하자. 가능한다 할지라도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먹을지 등의 실질적인 구현 문제들로 인해서 못만드는 것 조차 가능하고, 아예 거시적인 레벨에선 구현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구현이 가능한다 할지라도 제약이 없을 가능성은 만무하다.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가급적 가까운 곳에 이동하는게 더 비용이 저렴할 공산이 매우 높다.

상대성 이론을 부정하는 전파의 수백배 이상의 속도를 자랑하는 오버 테크놀로지의 정보 전달매체를 사용하는 외계인이라 할지라도[5], 그 속도로조차도 통신이 불가능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있으면 우리랑은 통신이 안 될수밖에 없다. 설령 통신 매체가 지구에 닿았다 할지라도 만능의 범용성을 자랑하지 않을수도 있다. 전파가 아닌 통신수단이라면, 우리가 그 통신을 방수할 능력이 없을수도 있다는것.

즉, 우리보다 고등한 문명을 지닌 외계인이 있을 가능성은 높다고 볼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많이 발전한 문명이라 한다 할지라도 과연 지구까지 신경을 쓸만큼 먼치킨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는 보장은 없는것. 더군다나 개중에 가장 발전한 문명들은 이러한 시도가 가능하다고 가정 할지라도, 그 문명은 주변에 있는 더 가까운 또 다른 외계생명체랑 의사소통을 시도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령 우리도 가까운 우주에 있는 외계생명체 수십개쯤 찾아내고 난뒤엔 관심도 시들해질테고 의사소통 이상의 직접으로 접근해서 교류할 셈이라면 비교적 가까운곳에 있는 것 먼저 골라갈테니까.

분명 일반적인 행성에 지적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아주아주 낮지만, 그래도 있다고 가정할만한 이유는 그만큼 아주아주아주아주 답없을정도로 엄청나게 행성이 많기 때문이다. 생명체라면 행성에 살텐데, 항성을 맴도는 행성의 특성과 항성간의 거리를 감안해보자.[6] 태양계 주변에 있는 항성을 맴도는 행성들 중에서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 있을 가능성과, 그 확률 내에서 생명체가 지적생명체일 가능성과, 그 지적생명체가 인류 이상의 문명, 그것도 우리보다도 아주 월등한 문명을 지녔을 가능성등으로 넘어가면, 주변 행성 하나를 두고 그럴 확률을 생각해본다면 아주아주 낮은 확률이란것을 알수 있다. 즉, 한 행성에 그런 생명체가 살고 있을 확률은 아주 드문 관계로 우주 전체로 본다면 있을 가능성은 아주 높지만, 태양계에서 아주아주아주 멀리 있을 확률이 높다.

여기에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는데, 우주가 100억살이나 될만큼 나이가 많은 만큼 지구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의 고등문명을 지닌 외계인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이미 그 외계인이 멸망했을 가능성 역시 높다는 것이다. 행성이 맴돌던 항성이 수명이 다해서 터져버렸을 가능성도 있고, 인류가 각종 문제를 만들어내듯, 자멸했을수도 있다. 인류랑 비슷한 특성을 지녔다고 가정하고, 인류 이상의 문명과 오래된 역사를 지녔을 경우 특히 자원을 소진해서 멸망한 외계인들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7]

그 외계인들이 멸망하기 전에 열심히 쏘아낸 전파, 혹은 다른 정보매체가 지구에 이미 닿았다 한들, 우리가 그 시절에 이미 존재하지도 않았을정도로 옛날이었거나 동굴에서 부싯돌로 불피우던 시절의 옛날 옛적본격 스타워즈에나 닿았다가 지나가버렸다면 의미가 없는것이다. 더군다나, 이 문제는 큰 데, 우주 나이가 오래되었으니 오래된 문명이 많이 발전했을것이라고 가정하는것이 틀렸다면, 우주 최고 수준의 문명은 생각보다 별 것(...) 아닐수도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100억년이 넘는 우주의 나이중에서 우리가 외계의 전파를 찾아낼려는 시도를 한 시기인 50년 남짓에 불과한 시기 내에 외계생명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딱히 이상하지 않다.

물론 이렇게 떠들어도 증명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는것은 사실이다. 다만 위의 역설을 가장 일반적이고 현실적인 견해로 접근한뒤 통계와 확률로서 가설을 세운다면 2번이 정답이라고 봐야할것이다.

영화 콘텍트에서는 이 넓은 우주의 생명체가 우리 뿐이라면, 얼마나 큰 공간낭비겠니 하는 말로 정리했다.

아서 C.클라크는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관하여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우리말고 더 있거나, 우리뿐이거나. 그 두 가능성이 모두 끔찍하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 사람 성격이고 성향인거지 진실한 사랑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희생하고 참아주고 인내하는 것이 사랑의 큰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건 그 사람 성격이고 성향인거지 진실한 사랑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상대방으로부터 그게 정말 나 자신이라는 걸 서로가 인정해주고 있을 때야말로 누군가와 진실되게 만나고 사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최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