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9일 목요일

킹덤 오브 헤븐 : 예루살렘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살라딘의 병사들이 협상을 상징하는 천막을 치고, 발리앙은 협상 제안에 응해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밖으로 나간다.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넘기면 발리앙의 인민들의 목숨을 보장하고 기독교 땅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발리앙: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을 함락했을 때 도시의 모든 이슬람교도를 학살했소"
살라딘: "나는 그들과 다르네 나는 살라흐 앗 딘이야. 살라흐 앗 딘(정의와 신념)

협상이 타결되자, 살라딘과 발리앙은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눈다.

발리앙은 돌아서다 말고 살라딘에게 묻는다.

발리앙: "예루살렘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What is Jerusalem worth?)

살라딘: Nothing.

하지만 살라딘은 이내 다시 돌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한다.

살라딘: ...... Everything!


- 영화 킹덤 오브 헤븐 -
https://www.youtube.com/watch?v=ThBOw3ja6hU


발리앙의 질문은 가톨릭, 무슬림에게 있어 예루살렘의 가치를 묻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아내를 잃은 허무함을 달래는 한편 신을 찾고자 이곳으로 온 발리앙의 고뇌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2019년 3월 26일 화요일

우리의 우주가 시뮬레이션인 이유


우리의 우주가 시뮬레이션인 이유

출처: https://scientificinquirer.com/2019/03/22/science-and-the-simulation-hypothesis-5-reasons-we-may-be-in-the-matrix/amp/


1. 양자화된 우주, 플랑크 크기

제논의 역설에서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화살은 과녁에 명중하며 우리는 공을 잡을 수 있다. 만약 공간이 연속적(continuous)이라면 제논의 역설이 맞는다. , 현재 우리의 우주는 단속적(discrete)이다. 이는 데이터 처리에 주로 사용되는 방식이다. Bit의 개념으로서 존재하는 프로그래밍은 최소 처리 단위가 필요하다. 제논의 역설이 실생활에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현 우주가 단속적이고 최소 정보 처리 단위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물리학자들은 이것이 존재하는 가장 작은 공간단위인 플랑크 길이(10^-35m, 이 이하에서는 시공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라고 추정하고 있다. 우주의 시뮬레이션을 암시한다.


2. 확률함수의 붕괴

확률파동함수의 붕괴 프로세스는 물리학에서 가장 큰 신비다. 현재의 해석은 우리의 의식이 붕괴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주가 왜 이런 식으로 작동하냐는 것이다시뮬레이션 가설은 꽤 그럴듯한 답을 제시한다. 시뮬레이션의 가장 흔한 사례인 게임은 반드시 최적화 기술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컴퓨터 게임에서 존재는 3D 세계의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렌더링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비효율 적이다. 유저의 오감이 느끼는 곳만 렌더링하면 된다. , 관찰되는 것만 렌더링된다. 시뮬레이션 가설은 양자 불확정성이 일종의 최적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3. 평행우주의 분기, 슈뢰딩거의 고양이 문제

양자 물리에는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마다 수많은 다른 우주로 분기하는 평행우주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하는 이론이 있다이것은 AI 시뮬레이션의 작동원리와 매우 흡사하다. 컴퓨터가 다음 결정을 선택하는 방법은 가능한 미래를 모두 확률적으로 투사하고 특정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그 미래의 가능성을 "순위 지정"한 다음 해당 값을 현재로 가져와 경로를 선택한다. 최적화 시뮬레이션 디자인에서는 Minimax 알고리즘(최악의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최소화)을 사용하여 디시전 트리의 최종 결정을 뽑아낸다.


4. 빛의 속도는 왜 일정한가?

현대 물리의 또 다른 큰 수수께끼는 왜 빛의 속도가 일정한가 이다. 모든 물질은 에너지로 치환될 수 있고 에너지는 빛 자체의 파생물이다. 중력과 시공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변하더라도 빛(=전자기파)은 일정하다. 왜 전자기파의 속도는 정보가 우주를 여행 할 수 있는 한계 속도와 같으며 왜 일정한가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각 처리단위 픽셀은 빛을 기반으로 한다. , 깜빡이는 0 1의 모든 정보통신은 빛의 속도로 이루어진다. 동시성을 보장 할 수 없는 상대성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비디오 게임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문제

ㅇ양자 정보 통신은 왜 우주의 국지성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정보는 시공간을 넘어서 전달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ㅇ확률 함수의 붕괴가 우리의 의식 때문이 아니라 각 분자 단위에서 무수히 일어난다면? , 내가 보고 있지 않아도 달이 거기에 존재한다면?

2019년 3월 21일 목요일

“도덕의 역설”로 본 인간의 가축화

원문: http://newspeppermint.com/2019/03/18/goodness2/
영문원문: https://www.newyorker.com/books/under-review/did-capital-punishment-create-morality


인간의 공격성외에도 도덕의 역설을 알려주는 또 다른 요소에는 인간의 진화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지는 가축화(domestication)가 있습니다. 가축화를 위해서는 이를 이끄는 주인이 필요하며, 따라서 인간이 과연 가축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심지어 다윈 조차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인간이 다른 존재에 의해 가축화된 것은 당연히 아니지요.

하지만 자연 선택은 외부 요인 없이도 같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만약 공격성에 반하는 선택압이 존재한다면 해당 종은 스스로 가축화될 수 있습니다. 지난 50여년 동안, 인간이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를 가축화했음을 말해주는 다양한 증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가축화의 가장 중요한 증거인 유순함 외에도 인간은 가축화 증후군의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체구와 뇌의 크기가 작아졌고, 뼈가 가늘어졌으며, 얼굴이 납작해지고 수컷과 암컷의 신체적 차이가 줄었습니다. 이러한 해부학적 특징 외에 공포 반응, 놀이 습성, 학습 속도, 성적 행동, 호르몬 생산 등의 행동적 생리적 특징 또한 인간의 가축화 가설을 지지합니다.

이들 특성의 공통점은 바로 유형보유(pedomorphism, 곧 아이의 특징)라는 것입니다. 개, 여우, 기니피그 등 가축화된 많은 동물들은 그들의 조상에 비해 그들이 더 어린 개체일때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십 만 년 전 인간의 조상 화석은 인간이 그들에 비해 유형보유의 특징을 띠게 되었는지를 확인할 만큼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네안데르탈 인의 화석은 충분히 많고, 현생 인류가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 조상들보다 더 아동화 되었다는, 곧 가축화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어떻게 인간은 스스로를 가축화시켰을까요? 진화생물학자에게 이 질문은 그러한 적응이 인간에게 어떤 이득을 주었는지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의 답은 예상과 다릅니다. 바로,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 소련의 두 유전학자가 시베리아에서 수십 년 동안 여우를 가축화했던 실험은 뇌의 크기가 줄어들고, 뼈가 가늘어지는 등의 여러 가축화의 증거들이 사실 다른 본질적인 적응의 우연한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바로 그 적응은 반응적 공격성의 감소입니다. 공격성 감소의 선택압은 배아에서 태아에 이르는 시기의 발달을 관장하는 신경능선세포를 지연시켜 더 작은 몸집과 작은 뇌를 만들고 호르몬 변화를 유도합니다.

이런 내용은 이미 여러 연구들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반면, 인간이 왜 스스로의 반응적 공격성을 감소시켰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랭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집단 생활은 최소한의 안정성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반응적 공격성은 분노와 괴롭힘, 폭력 등 타인을 지배하고 복종하게 만든 뒤 식량과 여성을 독점하려는 행동으로 이어지며, 이는 집단의 안정성을 해치는 행동입니다. 이 행동들은 알파 메일의 전형적인 행동으로, 사실 알파 메일은 반응적 공격성의 화신입니다. 집단은 이런 해충을 견디거나 아니면 제거해야 합니다. 인간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자, 이들에 대한 견제 또한 시작되었습니다. (언어의 발생은 30만 년 전에서 50만 년 전 사이로 좁혀집니다. 하지만 공감 혹은 “의도의 공유”는 언어와 무관하게 가능했을 수 있습니다.) 랭엄은 집단이 알파 메일을 처단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가축화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문명은 살인, 혹은 인류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협력 기반 주도적 공격성(coalitionary proactive aggression)”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알파 메일을 처단한 것은 주로 짝이 있는 성인 수컷에 의해서였을 것입니다. (알파 메일의 가장 큰 적은 자신의 짝을 빼앗긴 수컷입니다.) 알파 메일이 계속 죽임을 당하고, 반응적 공격성 유전자가 집단에서 점점 줄어들면서 협력에 의한 처단은 제도화되었습니다. 이들의 힘은 집단에서 절대적이 되었고, 이는 막스 베버가 국가를 “물리적 강제력을 독점”하는 주체로 정의한 것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이들은 사형이나 추방과 같은 처벌을 내렸고 이들과 같은 편에 서는 것은 생사를 가르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집단은 어떤 행동이 위험한 행동인지를 정해주는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자선은 좋은 평판으로 이어졌고, 반사회적 행동은 죄로 규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이 가진 도덕성의 가장 근본적인 두 가지 특성이 만들어졌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븐능과 이타주의, 협력, 공정성 등 다른 영장류에 비해 훨씬 더 발달한 친사회성(prosociality)입니다.

처단은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를 생각하게 만들었고, 덕(virtue)이라는 관념을 탄생시켰습니다. 하지만 알파 메일의 제한적인 권력이 지배 무리의 무제한적 권력으로 대체되면서, “협력 기반 주도적 공격성은 사형, 전쟁, 학살, 노예제, 신고식, 희생양, 고문, 린치, 갱단 싸움, 정치적 숙청 등 권력의 남용을 탄생시켰다”고 랭엄은 말합니다. 바로 이 사실이 이 책이 말하는 도덕의 역설입니다. 계획적, 협력적 폭력은 사회 질서를 탄생시켰고, 사람들이 덕을 추구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질서에 의해 국가, 혹은 강력한 특정 집답이 다른 집단을 착취하고 압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랭엄은 인간이 “최선인 동시에 최악의 생명체”라 결론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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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엄은 자신을 오해하지 말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합니다. 이는 인간이 조금이라고 폭력적 경향을 타고났다고 말할 경우 전쟁 지지자들이 평화에의 요구를 자연에 반하는 것이라 무시할 것이며,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자연스러운” 것이라 주장하게 될 까 두려워하는 루소주의 사회과학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이는 또한 이들이 진화론을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곧, 그것이 진실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진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진화론에서 우리가 얻게될 지식의 정치적 의미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입니다. 아마 인간의 복잡한 행동에 대해 유전자와 문화가 정확히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는지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문화와 유전자 모두가 충분히 중요하다는 상식적 직관을 확인할 만큼은 밝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전자는 우리의 운명이 아닙니다.

랭엄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 이 복잡하고 야심찬 이론은 아마 부분적으로만 옳은 것으로 밝혀지겠지만 – 여섯 개의 대륙, 여남은 개의 학문 분야, 수십 종의 동물, 그리고 2백만 년의 시간에서 나온 증거들을 거르고, 저울질하고, 다듬어 정교하게 짜맞춘 이 책은 충분히 인상적이며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교훈까지 알려줍니다. 바로 인간의 성장에 있어 진화보다는 도덕적 상상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잠재력을 파악하기에 역사는 진화론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랭엄의 말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평화와 평등을 향해 나아가기에 불가능하다거나 아니면 필연적이라고 가정해서는 안됩니다.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그저 매우 어려운 일일 뿐입니다.

2019년 3월 16일 토요일

인간 수명에 영향을 주는 것들(그래픽)









출처:
https://informationisbeautiful.net/visualizations/what-could-really-increase-life-expectancy-lifespan-and-longevity/

2019년 2월 25일 월요일

다니엘 카네만: 사람들은 행복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복을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지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은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카네만은 행복(happiness)과 만족(satisfaction)을 구분합니다. 행복은 순간적인 경험이며 곧 사라지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만족은 긴 시간 동안 자신이 바라는 종류의 삶의 향해 노력하며 삶의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얻어지는 감정입니다. 지난 해 12월 19일,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타일러와의 대화(Conversation with Tyler)”에서 카네만은 두 감정 중 하나만을 추구하는 것은 다른 하나를 누리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상의 행복을 측정하는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기분이 좋은지를 물었고, 그 결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행복을 느끼는 매우 좋은 방법임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만족감을 느끼기 위한 장기적 목표를 추구하는 이들은 자신의 더 큰 목표를 위해 평소 친구들을 만나는데 시간을 많이 쓰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사실이 카네만으로 하여금, 사람들은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행복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습니다. “여러가지 사실로 볼 때,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행복이 아니라 만족감을 원합니다. 이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만듭니다.”

지난 10월 하레츠와 가진 인터뷰에서, 카네만은 만족은 대부분 남과의 비교에 기인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족감은 사회적 목표를 이루고,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과 같은 사회적 지표와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행복은 돈이 부족할때만 돈의 영향을 받지만, 만족감은 재산의 양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 다고 덧붙였습니다. 가난은 고통을 만들지만, 최소한의 필요를 채우는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에서는 행복이 더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프는 놀라울 정도로 평평합니다.”

이는 배고픔이나 의복, 집 등의 기본적인 욕구가 만족될 경우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만큼이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일시적인 행복감은 삶에 대한 만족감에 더해지지 않습니다. 과거 행복했던 시간을 충분히 많이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인생 전체에 대해 그만큼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두 감정과 기억의 관계가 한 가지 이유입니다. 만족감은 지속적인 효과를 가지는 반면, 행복감은 일시적으로만 존재합니다. 카네만은 자신의 연구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자신의 이야기가 그 순간의 행복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 순간의 행복보다는 그들이 가진 더 큰 목표가 더 중요했습니다. 기억은 오래 가지만, 느낌은 지나갈 뿐입니다. 우리가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들은 대부분 보존되지 않습니다. 사진도 이를 붙잡을 수 없으며, 그저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갈 뿐입니다.

예를 들어, 휴가를 생각해봅시다. 카네만은 만약 사람들이 휴가를 즐긴 뒤 그 기억이 모두 사라지고, 어떤 사진도 가져올 수 없다면 사람들은 그 여행을 가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즐거운 일을 하는 이유가 그 일을 만족스런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서임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사실 어떤 한 순간에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가설은 오늘날의 소셜 미디어 문화를 어느 정도 설명해줍니다. 우리는 어떤 순간을 즐기기보다 그 순간을 남들앞에 자랑하기 바쁩니다. 또 우리가 좋아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친구와 팔로워 수에 더 집착합니다. 이런 행동은 결국 우리를 더 비참하게 만듭니다.

카네만은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카네만도 영향을 미친 긍정심리학 운동은 일시적 행복이나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더 긴 관점에서 중요한, 카네만 자신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카네만은 자신이 “충분히 행복한” 운좋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좋아하는 동료들과 함께 보냈고, “흥미로운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면 자신이 혼자 글을 써야 했던 시간이 “끔찍”했으며, 그때는 “비참함”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충분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지만 자신의 존재가 의미있다고 생각치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는 감정을 경제적, 사회적 동력으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세상에 행복의 척도를 알린 사람이지만, 5년 전 이 분야를 떠나 지금은 다른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현명한 의사 결정을 방해하는 “노이즈”, 곧 랜덤한 데이터에 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행복, 곧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원하는지, 아니면 그저 우리 자신과 다른 이에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할 뿐 실제로 기쁨을 느끼는데는 관심이 없는지는 중요한 질문일 것입니다. 적어도 친구들과 함께 이 주제를 두고 이야기하는 동안은 아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쿼츠, Ephrat Livni)
번역문: http://newspeppermint.com/2019/02/20/m-happiness-2/

원문: https://qz.com/1503207/a-nobel-prize-winning-psychologist-defines-happiness-versus-satisfaction/


2019년 1월 6일 일요일

2019년 1월 3일 목요일

초격차(권오현)

인간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위해서는 도덕적 가치판단이나 정치적 편향, 이해관계를 버릴 필요가 있다. 쉽지 않은 일이고 그러다 보니 인간의 본성에 대해 왜곡된 접근법과 이론이 넘쳐난다. 그런 면에서 인간행동을 밑바닥부터 이해하는 가장 현실적인 프레임은 대기업 인사과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삼성은 그 분야의 가장 최첨단을 달리는 회사다. 이 책이 전부는 아닐 지라도 인간의 조직행동론에 대한 상당한 실무 통찰을 담았을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주요 내용

ㅇ새로운 시도나 도전을 할 때, 기존의 사람은 바뀌지 않고 방식도 바꾸지 않는다. 마음 독하게 먹고 모두 갈아치우지 않는다면 도전과 개혁은 불가능하다. 기존의 인력을 교육해서 혁신의 방향으로 내부 분위기를 전환시킨 사례는 거의 없다.

ㅇ사업을 할 때는 업의 본질을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내수 서비스업은 상대방보다 조금만 나으면 된다는 상대적 가치, 제조업은 세계 최고를 노리는 절대적 가치 개념으로 접근한다

ㅇ실력은 있지만 봉건 영주와 같이 왕국(사일로)을 건설하려는 직원은 부지불식간에 다른 영주와 교체하여 돌린다. 그들의 왕국을 파괴하라. 그러면 영주는 겸손해지고 왕국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진다.

ㅇ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때는 능력은 조금 부족해도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을 쓴다

ㅇ여유있게 건전한 가정에서 정상적으로 태어난 사람이 리더로 맞다. 그렇지 않으면 사리사욕을 포기할 줄 모르기에 리더에 부적합하다. 출생시 부모는 선택 불가능하므로 리더는 태어난다고 볼 수도 있다. 탁월한 리더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의 역사를 보고 얼마나 이기적인 선택을 자주 했는지에 주목하라. 그러한 선택을 하고도 책임지거나 비난받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왔다면 그는 최악의 리더가 된다.

ㅇ최고의 리더는 나중에 리더 자리를 떠나도 그 조직이 스스로도 잘 굴러갈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한다. 이는 결국 인재 양성의 문제다.

ㅇ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반드시 피해야 할 인재상부터 제거한다. 무례한 자, 부정적인 자, 뒷담화 하는 자

ㅇ긍정적 인재상 중 하나로 중요시하는 것은 호기심 많은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