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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9일 목요일

졸업생 게시판, 성균관대,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하는게 무서움

16학번 율붕이인데 나 중학교 다닐때는

대기업가면 40살에 짤린다, 공무원이 짱이다

노량진에 줄 엄청 길게 서있는거 뉴스에 나오고 그러더니

고등학교 들어가니 문송합니다, 인구론(인문계의 구십퍼센트는 논다) 같은 단어 나오면서 이과가 유행하기 시작함

그 선두에는 "전화기"라는 단어가 있었고 그 중 1황은 기계공학과였음

대학교 딱 들어가니깐 알파고가 이세돌 이기면서 컴공이 급부상함 그래도 컴공이 전화기의 아성은 이기지 못했음

2학년때부터 반도체 슈퍼사이클 시작되면서 하이닉스가 확 떠오르고

다들 삼전 하이닉스를 엄청갔음

그러고 군대 갔다오니깐 중공업 개박살에 현차실적 악화되면서 기계공학과가 무너져버리고 그 다음해 코로나가 터지면서 개발자 붐이 일기 시작함

컴공이 사실상 취업 1황이 되면서 다들 소프트웨어 복전하고 기계과는 갖다버리고 다들 화공신소재로 뛰어들어감

2년도 안되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터지면서 금리 확올라서 it스타트업들 다죽고 개발자는 최단기간 퇴물이 되어버림

chatgpt같은 ai가 초급개발자 업무 대체하면서 신입이 들어가기는 더 빡세짐

요즘은 방산 반도체 자동차 셋이 제일 잘나가고

한때 화공 고스펙이 들어갔던 석유화학은 중국의 저가공세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음

이거 겨우 12년동안 일어난 일이라는게 무서움


댓글

ㅇ토목붐은 온다 (20년째 외치며)

ㅇ통일되면 토목붐은 온다

ㅇ개발자 노예취급 받다가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나오면서 사람 된거야

ㅇ그러다 ai 초기 정점찍고 떡락 중...

ㅇ전화기 에서 화기가 망할줄 상상도 못했다....

ㅇ99학번 부터 하자 닷컴 붐 일고, 컴퓨터과학과 확 뜸, 핸드폰 강세 > 전기전자 정보통신 뜸 > 꾸준히 반도체 뜸 > 개발자 치킨 튀긴다는게 2009~14년도

ㅇ문과붐은 온다

ㅇ코로나 시절 컴공과 다닐 때 교수 왈 '"밑에 층에 반도체 학과 애들 바라 거긴 초상집이다" 근데 이제 우리가 초상집 됨


2026년 2월 9일 월요일

뉴턴 - 볼츠만 - 나비에 스톡스의 통합, 시간의 (사실상의) 비가역성이 증명

ㅇ기체 분자의 운동은 분석의 크기에 따라 서로 다른 세개의 물리학을 사용

 - 기체 분자의 운동 : 뉴턴역학

 - 중간크기 기체 : 볼츠만 통계 역학

 - 거대한 기체 군집 : 나비에 스톡스


ㅇ이들은 서로 별개의 방정식이지만 상호 연관이 있는 것 같다


ㅇ이러한 상호 포함된다는 연관성을 증명할 수 있다면...

  : 이 방정식들이 단지 동일한 현실을 모델링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ㅇ미시적 규모에서 입자들이 당구공처럼 움직이는 곳에서는 시간이 가역적

  : 이 경우 미래는 과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 하지만 중간 규모 및 거시적 수준에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 볼츠만 방정식도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도 시간 역행이 불가능하다


ㅇ볼츠만은 시간 역행이 불가능하다고 주장

  : 각 입자를 시간 가역적인 방식으로 모델링할 수 있다 하더라도(뉴턴역학), 거의 모든 충돌 패턴은 결국 기체가 흩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 예를 들어 기체가 갑자기 수축할 확률은 사실상 0에 가깝다(0은 아님)


ㅇ볼츠만은 뉴턴의 운동 법칙이 자신의 중간 규모 방정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미 보여줬는데 중요한 가정하에서만 성립했다

  : 그 가정이란 기체 입자들이 서로 '거의'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것

  : 다시 말해, 특정 분자 쌍이 여러 번 충돌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야 한다

  : 볼츠만은 그 가정이 참인지 증명할 수 없었다


ㅇ세 명의 수학자가 그 결과를 제시

  : 그들의 연구는 힐베르트 문제(대통일 이론)의 중요한 진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시간의 비가역성과도 연결

  : 이 연구는 뉴턴역학이 볼츠만의 통계적 설명으로 이어지고, 볼츠만 방정식이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ㅇ수학자 위덩 , 자헤르 하니 , 샤오마는 기체의 미시적 차원에서 중간 차원으로의 변환이 더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고, 처음으로 변환 과정을 완성

  : 2024년 봄, 세 사람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모두 분석한 후 분자 쌍의 여러번 충돌이 매우 드문 현상임을 증명해보였다

  : 그들은 입자 충돌의 크고 복잡한 패턴을 어떻게 분해해야 계산을 단순화하면서도 추정치를 매우 정확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논문: https://arxiv.org/abs/2408.07818


2025년 12월 30일 화요일

어쩌다 파산했나? "두 가지 방식으로,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1926)**에 등장하는 이 문구는 단순히 경제적 파산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리를 대변. 인간은 선형적, 인과율적으로 사고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1. 배경: 소설 속의 대화

이 말은 소설 속 인물 **마이크 캠벨(Mike Campbell)**의 입을 통해 나옵니다. 전쟁 후 허무주의에 빠진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를 대변하는 그는 방탕한 생활 끝에 파산을 맞이합니다. 친구 빌 고든이 "어쩌다 파산했나?"라고 묻자, 마이크는 이렇게 답합니다.

"두 가지 방식으로 했지.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Two ways. Gradually and then suddenly)."

이 짧은 대답은 당시 전쟁 후 목적을 잃고 방황하며 술과 유흥으로 재산을 탕진하던 세대의 비극을 냉소적이면서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2. "서서히 그러다 갑자기"의 의미와 통찰

헤밍웨이가 전하고자 한 이 통찰은 변화의 **'비가시성'**과 **'임계점'**에 관한 것입니다.


① 서서히 (Gradually): 보이지 않는 침식

사소한 방심: 파산은 어느 날 아침 벼락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관리가 안 되는 작은 지출, 사소한 나쁜 습관,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 등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균열들이 오랜 시간 쌓여가는 과정입니다.

경고의 무시: 이 단계에서는 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신호들이 나타나지만, 변화가 너무 미세하여 "아직은 괜찮다"는 착각 속에 경고를 무시하게 됩니다.


② 갑자기 (Suddenly): 임계점의 돌파

결과의 폭발: 서서히 쌓이던 문제가 시스템이 버틸 수 있는 한계(임계점)를 넘어서는 순간, 결과는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나타납니다. 둑에 생긴 작은 틈이 결국 순식간에 둑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점: '갑자기'를 인지했을 때는 이미 대처하기에 너무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3. 현대적 응용: 파산 그 이상의 의미

오늘날 이 문구는 경제학, 비즈니스, 과학, 인간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곡점'**을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비유로 쓰입니다.

경기침체나 금융위기의 발생: 

기술의 발전: 인공지능이나 스마트폰처럼 오랫동안 연구되던 기술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바꾸는 현상.

건강과 관계: 사소한 식습관이 쌓여 큰 병이 되거나, 작은 오해들이 쌓여 갑자기 이별을 맞이하는 과정.

환경 위기: 기후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생태계가 붕괴되는 현상.


결론적으로 헤밍웨이는 이 말을 통해 "우리가 '갑자기'라고 느끼는 모든 파국은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서서히' 준비되어 온 것"이라는 준엄한 경고를 던지고 있습니다.

2025년 8월 16일 토요일

혁명의 우연성, 마코프 체인

 Veritasium: The Strange Math That Predicts (Almost) Anything (2025.07.25)


ㅇ1905년, 네크라소프는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확률과 자유의지를 연결시켰다

  : 독립 사건만 확률 법칙이 성립한다고 주장


ㅇ반면, 마코프는 엄격한 무신론자였는데 네크라소프의 말이 개소리라며 네크라소프에 반대

  : 그는 푸쉬킨의 시 “예브게니 오네긴(Eugene Onegin)”의 20,000자를 정밀하고 집요하게 분석

  : 자음/모음이 ‘서로 의존적’이라는 것, 그리고 의존적이더라도 대수의 법칙이 성립함을 증명

  : 마코프 체인의 등장. 그리고 잊혀진다


ㅇ마코프 체인은 핵폭탄 개발에 큰 도움을 준다

  : 핵물리학자 '울람', 병상에서 너무 지루하여 솔리테어 카드 게임 승률 추정

  : 수많은 시행을 통해 통계적 예측(몬테카를로 방법의 기초 착안)

  : 그는 실험실로 돌아가 폰 노이만에게 이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마코프 체인을 시뮬레이션

  : 이는 핵반응을 위한 우라눔 농도와 반응 가속도 상수 k를 설정하는데 지대한 공헌


ㅇ1990년대 인터넷 급성장

  : 문제 - 웹사이트 중 ‘좋은’ 정보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 야후, 라이코스 등은 검색어 빈도 기반으로 순위  → 쉽게 조작 가능

  : 구글 창립자(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은 웹을 "마르코프 체인"으로 모델링

  : ‘페이지랭크(PageRank)’ 알고리즘으로 연결의 품질까지 평가해 검색 결과의 질 제고


ㅇ마코프 체인, 예측 텍스트, AI 언어모델

  : 클로드 섀넌 - 단순 마르코프 체인(한 글자/한 단어) 예측에서, 더 긴 문맥을 이용하면 품질이 향상됨을 증명

  : 오늘날 AI 언어모델은 마르코프 체인을 기초로 하되, “어텐션(attention)”이라는 추가적인 기법으로 문맥을 한층 더 잘 파악



ㅇ 만약 마코프와 네크라소프의 사소한? 싸움이 없었다면?

ㅇ 유신론과 무신론,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없었다면?

ㅇ 만약 물리학자 올람이 아프지 않았다면?




2025년 7월 15일 화요일

위험의 3가지 종류 - 모건 하우절

모건 하우절, 스키의 경험, 


저는 타호 호수에서 스키 경주를 하며 자랐습니다. 스쿼 밸리 스키팀에 속해 있었고, 10년 넘게 제 삶의 중심은 스쿼 밸리였습니다.

몇 달 전 한 컨퍼런스에서 스키를 통해 투자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지 묻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무대 위에서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툭툭 내뱉어야 했죠.

스키가 투자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랐습니다.

"음, 이 이야기를 어둡고 비극적인 곳으로 가져가 보겠습니다." 나는 거의 20년 동안 거의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500명의 낯선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열 두 명은 함께 스키를 타며 자랐고, 대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서로 알고 지냈습니다.

2001년 무렵, 우리는 피끓는 10대 후반이었고, 지난 10년 동안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6일, 일 년에 10개월 동안 스키를 탔고, 여름에는 오리건주 후드 산의 빙하와 계절이 우리나라와 똑같은 뉴질랜드에서 보냈습니다. 스키는 모든 것보다 우선시되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전통적인 고등학교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자율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스키를 탄 후, 책 몇 권을 읽고 저녁에는 몇 가지 서류를 작성했는데, 놀랍게도 그 덕분에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함께 보낸 시간은 친구라기보다는 형제자매처럼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스키 경주는 팀 스포츠와 개인 스포츠가 뒤섞인 묘한 혼합체입니다. 훈련하고, 여행하고, 식사는 팀으로 하지만, 스포츠 자체는 개인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경주 결과는 서로에게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이 서로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십여 명 정도 모인 십 대들은 어떻게든 싸울 궁리를 했죠. 반쯤은 서로 미워했던 것 같아요. 20년이 지난 지금도 연락을 유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하지만 2001년까지 제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12명 중 4명은 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절친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브렌던 앨런과 브라이언 리치먼드, 이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놀라운 것들이 일상이 되면 당연하게 여겨지곤 합니다. 스쿼 밸리는 북미 최대 규모의 스키 리조트 중 하나이며, 1960년 올림픽이 개최된 곳이고, 매년 백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죠. 하지만 저희에게는 그곳이 그저 집의 연장선일 뿐이었습니다.

스키 레이싱은 하루에 네 시간씩 훈련해야 했는데, 우리에게는 마치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머지 시간, 즉 하루 네 시간씩, 주 6일 동안은 정해진 규칙 없이 그냥 스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유 스키"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스키라고 부르죠.

2001년 2월 15일, 우리는 콜로라도에서 열린 경주를 마치고 막 돌아왔습니다. 타호 호수에 그 자체로도 맹렬한 눈보라가 몰아쳐 귀국 항공편이 지연되었습니다. 새 눈이 덮여 있을 때는 경주나 훈련을 할 수 없습니다. 경주를 하려면 단단히 다져진 얼음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자유롭게 스키를 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달 초 타호에는 북극의 기온 때문에 몇 피트(약 1미터) 높이의 가볍고 폭신한 눈이 내렸습니다. 2월 중순에 몰아친 폭풍은 달랐습니다. 따뜻해서 영하권에 가까웠고, 강해서 앞서 내린 가벼운 눈 위에 90cm(3피트) 높이의 무겁고 축축한 눈이 쌓였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7살이었던 우리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폭설 위에 푹신한 눈까지 겹쳐지면 완벽한 눈사태 조건이 조성됩니다. 두꺼운 모래층 위에 무거운 시멘트 층이 얹혀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제 그 층을 가파른 언덕 위에 쌓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부서지기 쉽고 미끄러지기 쉽습니다. 2001년 2월 말 스쿼 밸리의 모습이 바로 그랬습니다.

스키 리조트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이러한 상황을 잘 관리합니다. 눈보라가 지나간 후 이른 아침에 스키 리조트를 방문하면 마치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이 소리는 속이는 소리가 아닙니다. 박격포, 수류탄, 헬리콥터에서 투하된 폭탄 등을 조합하여 스키 순찰대는 리조트가 비어 있을 때 위험 지역에 의도적으로 눈사태를 유발하기 위해 통제된 폭파를 실시하여 투숙객이 도착하기 전에 눈사태를 예방합니다. 이는 주요 리조트에서 눈사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효과적인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경계를 넘어 스키를 타는 경우, 즉 '건너지 말라'는 밧줄 아래로 몸을 숙여 수많은 베이 지역 관광객이 닿지 않는 금지된 지형을 스키를 타는 경우, 이 시스템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경계를 넘는 스키는 불법이며, 무단 침입입니다. 리조트에서 스키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당신의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출입 금지 구역은 순찰이 없기 때문에 다치면 혼자 해결해야 합니다. 보통 리프트로 내려가지 않으니 스스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눈사태 방지를 위해 폭격을 가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스키어들이 자연의 위력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이곳, 경계 밖입니다.


2001년 2월 21일 아침, 브렌던, 브라이언, 그리고 저는 스쿼 밸리 스키팀 라커룸에서 만났습니다. 마치 예전에 수백 번도 더 만났던 것처럼요. 브라이언의 어머니는 몇 년 후 저에게 그날 아침 집을 나서며 브라이언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엄마, 걱정 마세요. 경계선 밖으로 스키는 안 탈 거예요."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겁니다.

KT-22 체어리프트 뒤편, 스쿼 밸리의 뒤쪽에는 스쿼와 알파인 메도우 스키 리조트를 구분하는 약 1마일 길이의 산이 뻗어 있습니다. 스키 타기 좋은 곳이에요. 가파르고, 탁 트인 시야에, 완만한 경사의 지형이 펼쳐져 있죠. 게다가 출입 금지 구역이라 전혀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에요. 우리만의 놀이터였죠.

2월 21일 전까지 열두 번쯤 스키를 탔습니다. 워낙 번거로워서 자주 가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스쿼 산의 뒷산 끝자락은 시골길로 이어지고, 거기서 히치하이킹을 해서 라커룸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브렌던, 브라이언, 그리고 나는 그날 아침 스키를 타기로 했습니다. 우리 셋은 황량한 황야로 들어서며 기쁨에 낄낄거리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경험한 몇 안 되는 눈사태 중 하나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무릎 위로 넘어갈 만큼 작지는 않았어요. 무섭지도 않았고요. 웃음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잊을 수 없어요.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어요. 갑자기 스키가 더 이상 땅에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죠. 말 그대로 눈구름 속에 떠 있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어요. 스키로 눈을 밀어 접지력을 얻는 대신, 눈이 나를 밀어내기 때문이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균형을 유지하며 겨우 서 있는 겁니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두 손을 들고 "와후"라고 외쳤던 기억이 나요.

눈사태는 금세 끝났습니다. 브렌던은 제 왼쪽에, 브라이언은 우리 아래에 있었습니다. 아무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냥 바닥으로 돌진했습니다. "와우!!!, 방금 눈사태 봤어?" "하하, 정말 멋졌어." 브렌던이 말했다.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히치하이크로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차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는데, 영하 20도 날씨에 셔츠를 벗으면 사람들이 우리를 동정해서 멈춰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효과가 있었죠. 열일곱 살짜리 남자아이들은 수완이 좋거든요.

우리가 스쿼로 돌아왔을 때 브렌던과 브라이언은 다시 뒤쪽으로 스키를 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대체 왜 그랬는지, 어떻게 든 생각인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납니다. 저는 그냥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싫어했던 히치하이킹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목숨을 내놓는 눈사태 속 스키보다 히치하이킹이 더 무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대신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브렌던과 브라이언이 직접 뒷산을 스키로 탈 수 있고 히치하이킹 없이 올 수 있게 하는 겁니다. 히치하이킹으로 복귀하는 대신, 내 트럭에 태워서 복귀시켜주기로 한 것입니다.

모두가 계획에 동의했고, 우리는 점심 식사 후 스쿼 밸리 롯지에 있는 와일드플라워 베이킹 컴퍼니 쿠키 가게에서 그 계획을 세웠습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구체적인 계획과 시간을 미리 조율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브렌던과 브라이언은 밖으로 나가 스키를 타고 떠났습니다.

브렌던과 브라이언이 뒤편으로 스키를 타려고 올라간 지 30분 후, 나는 그들을 태우기로 예정된 시골길로 트럭을 몰았습니다.

그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리자 지치기 전까지 30분을 더 기다렸습니다. 스키를 타고 경기장을 통과하는 데 5분 정도 걸렸으니, 그들이 다른 사정으로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건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들이 저보다 먼저 저 밑까지 넘어 도착해서 히치하이킹으로 돌아왔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찾을 거라고 기대하며 라커룸으로 돌아갔습니다만 거기에도 없었습니다. 주변에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그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픽업 장소에서 멀지 않은 브렌던 집으로 차를 몰고 갔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어요. 라커룸으로 돌아가서 브렌던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어요. "괜찮냐?, 친구?."라는 말로 메시지를 끝맺었던 게 기억나네요.

긴장되기 시작했지만, 크게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스마트폰 시대 이전에는 사람들이 연락하지 않는 게 더 편했으니까요. 

그 날 오후 4시쯤, 브라이언 엄마가 집에 전화하셨는데,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기억나요.

"안녕, 모건. 브라이언이 안돌아왔구나. 어디 있는지 알아?"

나는 그녀에게 진실을 말했다. "오늘 아침에 KT-22 산의 뒷 편에서 스키를 탔어요. 브렌던과 그가 다시 또 스키를 탔는데, 제가 밑에 길에서 트럭으로 기다리다가 데려오려고 했죠. 하지만 그들은 거기에 없었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오.. 주님!"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머릿속으로 그려봤던 것 같아요. 저도 그랬죠.

그날 저녁 해가 진 후, 친구 아렌과 저는 손전등을 사서 픽업 장소로 차를 몰았습니다. 우리는 산 위로 손전등을 비추며 "브렌댄… 브리이이얀"이라고 외쳤습니다. 아렌과 저는 그들이 다리가 부러져서 언덕에 갇혔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납니다. 마음속으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들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경찰이 갑자기 실종 신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이런 사건은 99%가 파티에서 술에 취해 있거나, 밤에 여자랑 도망간 경우다"라고 말했던 게 기억나네요. 그 말이 제발 맞았으면.... 대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틀렸습니다.

"그 사람들 신발 바로 저기 있어요." 내가 라커룸 바닥에 놓인 브렌던과 브라이언의 운동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은 스키 부츠를 신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지금 9시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9시인데 스키 부츠를 신고 있잖아요. 파티에 간 게 아니에요."

밤 10시쯤 스쿼 밸리 소방서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그곳에서 지역 수색 구조대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상황을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구조대에게 브렌던, 브라이언, 그리고 제가 그날 했던 모든 일을 설명했습니다. 수색팀이 지도를 꺼내 주었고, 저는 그들에게 우리가 출입 금지 구역으로 들어간 곳과 나간 곳, 그리고 우리가 갔던 길을 정확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우리가 갇혔던 작은 눈사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자마자 구조대원들의 머릿속에서 점들이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의 위험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제 말이 끝나자 두 구조대원이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던 게 기억납니다. 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자정 쯤에 라커룸으로 돌아갔습니다. 스쿼 밸리 주차장은 수천 대의 차를 수용할 수 있는데, 이때 쯤에는 거의 텅 비어 있었습니다. 나란히 주차된 두 대의 차를 제외하고는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브렌던의 지프와 브라이언의 쉐보레 픽업트럭이었습니다.

자정이 조금 지나서 수색 구조대가 스쿼 산 뒤쪽에 있었습니다. 눈보라가 여전히 거세게 내리고 있었고, 돌풍이 불었으며, 낮이라고 해도 시야가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칠흑 같은 밤에 그들이 스키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던 기억이 납니다.

구조대는 거대한 조명과 수색견 팀을 이끌고 브렌던과 브라이언을 찾아 나섰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구조대가 내가 스키를 탄다고 말한 경계 밖 지점에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눈사태의 새로운 흔적을 발견했다는 거예요.

라커룸 벤치에 누워 잠을 청해 봤지만, 눈을 감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발, 부디, 브렌던과 브라이언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기만을 바랐던 기억이 납니다.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며칠처럼 느껴졌습니다.

오전 9시가 되자 라커룸은 다른 스키 선수들, 부모, 친구, 가족들로 가득 찼고, 모두 기꺼이 도와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곳은 수색 작전을 위한 준비 장소가 되었습니다.

나는 벤치에 다시 누워 마침내 잠이 들었습니다. 몇 분 후, 여자의 비명 소리에 잠에서 깼고, 그 뒤를 이어 고함 소리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도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라커룸 2층으로 걸어갔더니 소파에 앉아 있는 브라이언 엄마가 보였습니다. 비명 소리는 엄마의 것이었다. "정말 미안해요." 저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그 순간을 설명하기란 너무 어렵네요. 그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지금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수색견이 눈사태 현장의 한 지점을 찾아 나섰고, 구조대원들은 탐사봉을 이용해 브렌던과 브라이언이 약 1.8미터 두께의 눈에 묻힌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둘은 하루 차이로 태어났고, 서로 3미터 떨어진 곳에서 죽었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아빠 직장에 아빠를 뵈러 차를 몰고 갔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었거든요. 아빠가 주차장에서 저를 만나시더니 "너를 보고 이렇게 기뻤던 적은 처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유일했습니다.

#저는 왜 그날 아침 그들과 함께 스키를 한 번 타다가 두 번째 스키는 거절했을까요?

#왜 첫 번째 스키에서는 눈사태가 아주 미미하게 느껴졌는데, 두 번째에서는 엄청난 눈사태가 발생해 17세 소년 두 명이 사망했을까요?

백만 번이나 생각해 봤어요. 전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거예요.


다음 날 저녁, 톰 브로코 앵커는 NBC 뉴스에서 브렌던과 브라이언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보는 것 만으로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36시간 전에는 함께 웃고 있었는데, 이제 그들의 죽음은 전국 뉴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늘 시청하던 뉴스에서 제 이름이 세 번째가 되지 않도록 막아준 유일한 것은, 제가 생각지도 못한 단순한 우연에 불과한 결정이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지 거의 20년이 흘렀습니다. 가끔 그 이후로 있었던 모든 일들을 떠올려 봅니다. 대학 진학, 결혼, 취직, 출산 까지. 그리고 그 때 두번째 스키를 다시 타지 않겠다는 무심결의,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한 결정 때문에 그 이후의 인생을 겪게 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되새깁니다.


이 이야기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소중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하찮은 결정들을 내렸고, 그 결정들이 결국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때로는 우연한 결정들이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갑작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죠. 인생은 원래 그런 겁니다.

이 이야기를 컨퍼런스에서 한 후, 투자 수업과 연결해서 생각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생각보다 쉬웠어요.


브렌던과 브라이언이 죽음 이후 저의 위험 감수성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몇 달 후 스키를 타다가 허리를 다쳤는데(신경 손상은 없었음), 그 때 충격이 사실 더 컸습니다. 그 이후로 스키를 거의 타지 않았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열 번 정도밖에 못 탔을 정도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스키가 정말 무섭습니다.

그 이후로 스키 뿐만 아니라 저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위험을 회피하는 태도를 유지해 왔습니다. 제한 속도를 지키며 운전하고, 비행기에서는 안전벨트 신호를 따르고, 인덱스 펀드에 투자합니다.

브렌던과 브라이언의 죽음이 제 투자 방식에 실제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위험에는 세 가지 뚜렷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 특정 사건의 확률


2) 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기대값


3) 특정 사건이 발생할 때의 꼬리 사건(tail risk)


처음 두 가지는 중학교 수학을 배웠다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반면 세 번째는 배우기 가장 어렵고,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스키를 탈 때 위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출입 금지 경계선을 넘는 건 잘못된 일이고, 들킬 수도 있다는 걸요. 코치에게 걸리면 한소리 들을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 어쩌면 시즌권이 취소될지도 모르죠. 이들 사건은 첫번째와 두번째 확률입니다. 반면 세번째 확률, 즉, 우리는 단 한 번도 목숨으로 궁극적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한 번 겪으면 낮은 확률로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 즉 꼬리 부분의 결과만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투자에서 위험의 평균적인 결과, 즉 첫번째와 두번째 확률과 기댓값은 매일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반면, 팬데믹이나 대침체와 같은 위험의 마지막 결과는 역사책에나 기록될 것입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세번째 위험입니다. 당신이 집중해야 할 것은 오직 그것 뿐입니다. 우리는 지난 수백년 동안 연준이 금리를 얼마나 인하할 지, 관세가 어떻게 될 지, 재정적자나 부양책이 어떨 지를 논쟁해 왔습니다. 그런데 바이러스 때문에 두 달 만에 3,6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꼬리 사건 뿐입니다.

한번 경험해 보면, 결코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사진: Kt-22의 뒷면]









2022년 10월 25일 화요일

순수과학에 왜 세금을 지원하는가?

(때는 70년대 초)


상원의원: 이휘소 부장, 페르미 연구소에 1년에 400만달러나 되는 국민들의 세금이 쓰이고 있소. 게다가 페르미 입자 가속기 건설비는 6억달러 가까이 든다니요?! 당신 연구소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됩니까? 국가안보에 어떤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까? 지금 냉전시대에 소련과 경쟁하는데 무슨 도움이 됩니까?


이휘소 연구부장: 도움이 안됩니다.


상원의원: 네?


이휘소 연구부장: 페르미 연구소와 입자가속기는 미국의 국방에도, 소련과의 경쟁에도, 불평등 해소에도, 경제발전에도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상원의원: 그렇다면 당신들에게 세금을 쓸 이유가 없겠군요?


이휘소 연구부장: 의원님, 우리 연구소는 미국을 지키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을 진정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내 생각: 순수과학에 대한 세금지원에 대해 해당 분야 과학자들은 억울해하면서 다양한 실용적 이유를 만들어내려 노력한다. 실제 물리학, 천문학, 수학은 현대문명에 크게 기여한 정도를 넘어 문명 그 자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항변해도 세금을 내는 일반인은 잘 수긍하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내 생각에는 순수과학이 일반 응용 분야의 도움이 되니까 세금을 지원한다는 것은 예산을 구걸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 이는 어쩌면 인간이 순수과학을 탐구하는 진정한 실체에 대한 논점을 흐린다.)





2022년 8월 6일 토요일

우리 우주가 아닌 '외부'가 존재할 수 있다?

우리 우주가 아닌 '외부'가 존재할 수 있다?

논문 링크: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20/06/200601134612.htm


ㅇ 2020년 캔자스 주립 대학 연구에 따르면, 20만개 이상의 나선 은하 분석 결과, 수많은 은하들의 회전 방향으로 부터 추론할 때 초기 우주가 (외부로부터의 동력에 의해) 회전하며 시작했을 수 있음이 제기되었다.

: K-State 전산 천문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Lior Shamir는 2020 년 6 월,  236차 미국 천문 학회 회의에서 동 발견을 발표

: 그의 관측 결과는 우주의 대규모 구조에 대한 이전의 일부 가정과 충돌

: Edwin Hubble 이후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특별한 방향성을 가지면서 팽창하지 않으며 모든 은하계가 특별한 구조없이 초기에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었다고 가정해왔다

: 이와 반대로 샤미르의 관측은 우주가 회전하고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 

: 아래 그림은 천구의 남반구 북반구간 은하의 회전방향 차이의 분포   





ㅇ 우주가 등방향이라면 은하의 회전방향은 지구에서 볼 때 50:50에 가까워야 한다. 

: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 (SDSS), 와 같은 현대 로봇 망원경과 파노라믹 서베이 망원경 및 래피드 응답 시스템 (Rapid Response System) 또는 팬스타 (Pan-STARRS)는 수백만개의 은하의 회전방향을 자동으로 조사할 수 있었다

: 관측 결과 회전 방향은 50:50이 아니다. 2%p의 차이로 한쪽 방향이 더 많다. 이는 크지 않은 차이로 보일 수 있으나 조사한 은하가 많을 수록 이러한 차이가 우연히 발생했을 가능성은 낮아진다

: 지구 주변 40억 광년을 조사했는데 지구에서 멀면 멀수록, 즉 과거의 은하일수록 회전 방향에서의 차이는 더 커진다. 이는 초기우주가 더 일관된 방향성을 잘 띄는 상태였음을 암시한다


ㅇ 비슷한 연구가 또 있었다. 동연구는 2011년의 더 적은 표본수로 이루어진 연구여서 당시 학계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 미시간 대학의 천문학자 마이클 롱고(Machael Longo)와 그의 파트너는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DSS) 데이터베이스에서 지구와 약 6억 광년 이상 거리에 있는 15,000개 이상 은하를 조사했다.

: 이들은 우리 은하계 평면 상단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절반 이상의 은하가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함을 발견했다. 조사 대상 은하가 전체 은하의 7%에 불과하지만 결과가 우연일 확률은 100만분의 1이다.

: 같은 원리로 만약 전체 우주가 회전하고 있다면, 은하계 평면 아래 남쪽을 바라보면 절반이상 은하가 시계방향으로 회전해야 한다. 실제로 그렇다. 1991년, 8287개의 나선형 은하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에서 이것이 관찰되었다.

: 이 같은 연구들은 결국 우리 전체 우주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회전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회전하고 있는 우주는 중심축이 있음을 설명하며 이는 또 특수한 공간적 방향이 있음을 뜻한다.


ㅇ 회전하는 우주를 설명할만한 이론이 아직은 없다. 


ㅇ 운동량보존법칙에 근거한다면 이 발견은 우주가 탄생초기에 우주가 외부(?)로부터 일종의 운동량 충격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 빅뱅시에 원시우주에 회전에너지가 존재했거나, 혹은 최소한 신비로운 원시 소용돌이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은하들의 회전방향 차이는 이러한 최초의 힘으로 남겨진 ‘화석’일 수 있다.

: 운동량 보존법칙은 우리 우주 내에서 성립하는 물리학이다. 우리 우주가 성립하려면 최초에 그 힘을 누군가 외부에서 주어야 한다. 누구인가? 무엇인가? 그 외부에 우리의 물리법칙이 성립하나? 안한다면 운동량 보존을 말할 수 있는가? 방향이란 우리 우주내에서만 의미가 있을 것인데 우주 외부에서의 방향이란 무엇인가?



ㅇ 위 연구는 기존 우주관에 배치되기 때문에 동료평가를 수행중이며 비판 역시 존재한다 

: 동 연구들은 동료평가를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

: 동 연구에서의 결과는 태양계의 지구 공전에 따른 자료 수집 노이즈가 있을 수 있다.

: 나선 은하의 회전은 도플러 효과로 측정되는데 이는 매우 작은 차이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 먼 은하의 방향성이 더 분명하다는 결과는 도플러효과를 분광학적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하는 오류일 수 있다

: 유사한 CMB 사중극자 패턴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

: 연구는 시계방향/반시계방향 은하회전의 누적 이항분포로 결과를 산출하는데 유의성 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2019년 3월 26일 화요일

우리의 우주가 시뮬레이션인 이유


우리의 우주가 시뮬레이션인 이유

출처: https://scientificinquirer.com/2019/03/22/science-and-the-simulation-hypothesis-5-reasons-we-may-be-in-the-matrix/amp/


1. 양자화된 우주, 플랑크 크기

제논의 역설에서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화살은 과녁에 명중하며 우리는 공을 잡을 수 있다. 만약 공간이 연속적(continuous)이라면 제논의 역설이 맞는다. 즉, 현재 우리의 우주는 단속적(discrete)이다. 이는 데이터 처리에 주로 사용되는 방식이다. Bit의 개념으로서 존재하는 프로그래밍은 최소 처리 단위가 필요하다. 제논의 역설이 실생활에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현 우주가 단속적이고 최소 정보 처리 단위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물리학자들은 이것이 존재하는 가장 작은 공간단위인 플랑크 길이(10^-35m, 이 이하에서는 시공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라고 추정하고 있다. 우주의 시뮬레이션을 암시한다.


2. 확률함수의 붕괴

확률파동함수의 붕괴 프로세스는 물리학에서 가장 큰 신비다. 현재의 해석은 우리의 의식이 붕괴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주가 왜 이런 식으로 작동하냐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가설은 꽤 그럴듯한 답을 제시한다. 시뮬레이션의 가장 흔한 사례인 게임은 반드시 최적화 기술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컴퓨터 게임에서 존재는 3D 세계의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렌더링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비효율 적이다. 유저의 오감이 느끼는 곳만 렌더링하면 된다. 즉, 관찰되는 것만 렌더링된다. 시뮬레이션 가설은 양자 불확정성이 일종의 최적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3. 평행우주의 분기, 슈뢰딩거의 고양이 문제

양자 물리에는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마다 수많은 다른 우주로 분기하는 평행우주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하는 이론이 있다. 이것은 AI 시뮬레이션의 작동원리와 매우 흡사하다. 컴퓨터가 다음 결정을 선택하는 방법은 가능한 미래를 모두 확률적으로 투사하고 특정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그 미래의 가능성을 "순위 지정"한 다음 해당 값을 현재로 가져와 경로를 선택한다. 최적화 시뮬레이션 디자인에서는 Minimax 알고리즘(최악의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최소화)을 사용하여 디시전 트리의 최종 결정을 뽑아낸다.


4. 빛의 속도는 왜 일정한가?

현대 물리의 또 다른 큰 수수께끼는 왜 빛의 속도가 일정한가 이다. 모든 물질은 에너지로 치환될 수 있고 에너지는 빛 자체의 파생물이다. 중력과 시공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변하더라도 빛(=전자기파)은 일정하다. 왜 전자기파의 속도는 정보가 우주를 여행 할 수 있는 한계 속도와 같으며 왜 일정한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각 처리단위 픽셀은 빛을 기반으로 한다. 즉, 깜빡이는 0과 1의 모든 정보통신은 빛의 속도로 이루어진다. 동시성을 보장 할 수 없는 상대성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비디오 게임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문제

ㅇ양자 정보 통신은 왜 우주의 국지성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정보는 시공간을 넘어서 전달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ㅇ확률 함수의 붕괴가 우리의 의식 때문이 아니라 각 분자 단위에서 무수히 일어난다면? 즉, 내가 보고 있지 않아도 달이 거기에 존재한다면?

2018년 5월 4일 금요일

과거나 미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


우리는 시간을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흘러 가는” 강물이라 생각합니다. 그 경우 죽음은 강가에 우리를 내려놓는 것이 될겁니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갑니다. 영원히 앞으로 흘러가지요. 그런데 정말 시간이 그런 것일까요? 시인들은 때로 시간을 주춤거리고, 기어가고, 느려지며 심지어 멈추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합니다. 또 과거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물건이나 사람, 장소에 새겨져있다고 표현하지요. 줄리엣이 로미오를 기다릴때 시간은 더디게 흘렀을겁니다. 아마 태양신의 아들 파에톤이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전차를 빠르게 몰아 “밤을 즉시 몰고오기를” 바랬겠지요. 우리는 너무나 현실같은 꿈에서 깨어났을때도 평소 느끼던 시간이라는 개념이 환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카를로 로벨리는 일반인을 위한 물리학 책을 쓰는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입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Seven Brief Lessons on Physics)”은 블록홀에서 양자에 이르는 주제를 단순하고 참신하게 설명해 세계적으로 130만권이 팔렸습니다. 그의 신작 “시간의 순서(The Order of Time)”는 시간에 대한 시적이면서도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그저 “흐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시간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개념을 모든 면에서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로벨리가 수학했던 볼로냐의 산 페트로니오 교회 앞에서 만났습니다. (“나는 코페르니쿠스처럼 볼로냐에서 학부를, 파두아에서 대학원을 나왔다고 말하기 좋아합니다.” 그의 말입니다.) 60대 초반의 작은 체구를 가진 그는 약간 들뜬 모습으로 추억에 잠긴듯 했습니다. 그는 지난 2010년 부터 마르세이유의 이론물리센터에서 양자중력센터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서 10년 정도 지냈습니다.

그는 볼로냐를 거의 방문하지 않는 듯, 볼로냐의 오랜 친구들과 연락 했습니다. 우리는 대학가를 거닐었습니다. 베르디 광장은 학생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깃발과 낙서, 플랭카드 등이 파시스트에 대한 반대와 쿠르드 족 지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2016년 이집트에서 살해당한 캠브리지의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지울리오 레제니를 기억하자는 팻말도 있었습니다.

“내가 학생일때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하곤 했지요.” 그는 당시 운동권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무엇을 주장했을까요? “별것 아니었어요. 우리는 국경이 없어지고,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며, 전쟁이 사라진, 종교가 없고, 가족이 없고, 학교가 없고, 사유재산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죠.”

이제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이 너무 급진적이었다고 말하며, 사유재산을 없애는 것이나 질투 없이 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LSD가 있습니다. 그는 LSD를 몇 번 해 보았습니다. 그 경험은 후에 그가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는데, 특히 시간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가지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LSD는 감정적으로만이 아니라 지적으로도 매우 강력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회상합니다. “여러 이상한 느낌 중 가장 특별한 것은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입니다. 무언가가 내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었지만 시계는 움직이지 않았죠. 시간은 전혀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실재의 구조가 완전히 전복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는 물건들이 번쩍이며 이상한 형태를 취하는 환상을 보았고, 또한 그 경험 중에도 스스로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물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 뇌 속의 화학물질 조성이 변하고 있군. 하지만 평소의 인식이 옳고 지금의 인식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세상을 인식하는 두 가지 방법이 이렇게 다르다면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누가 알 수 있을까?” 그가 LSD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할때와 자신이 학생일때 칼라브리안 해변에 누워 아인슈타인의 책을 읽으며 이 세상이 사실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라 그 위대한 물리학자가 설명하는 것처럼 물결치는 시공간 속에 놓여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할때의 느낌은 매우 비슷했습니다.

그는 보수적인 베로나 출신의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 드렸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90대인 그의 아버지는 카를로가 어렸을때 그의 선생님이 카를로는 그런대로 잘하고 있다고 말하며, 단지 머리가 좀 길고, 급진적이며, 종종 경찰과 부딪힐 뿐이라고 말했을때 크게 놀랐습니다. 한때 이탈리아에서 학생운동은 긍정적인 분위기였지만 1978년 한 급진파가 전직 수상인 알도 모로를 납치해 살해하면서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고, 로벨리는 물리학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학계 경력은 남들과 다릅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고민이지요. 우리가 어렸을때는 어떻게 해야 직장인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생산적인 시스템’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죠.”

학계는 일반적인 직장에서 하는 일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보였고 그는 몇 년 동안 직장을 잡기 보다는 자신의 호기심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북부 이탈리아 토렌토의 한 연구팀으로 가서 몇 달 동안 자신의 차에서 잠을 자며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몸을 씻기 위해 학교 샤워실을 이용했지요.”) 그는 크리스 이샴과 같이 연구하기 위해 런던으로 갔고, 앱해이 아쉬테카와 리 스몰린과 같이 연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습니다. “나는 다른 학생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늦게 첫 논문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았고, 더 많은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꼭 손해만은 아니었죠.”

그의 책이 인기를 끈 것도 다른 이들에 비해 좀 늦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양자중력 공부를 끝내고 나서 2004년 첫 책을 썼습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이 입문서에 해당한다면, “시간의 순서”는 조금 더 어렵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내가 과학을 위해 하는 일, 내가 깊게 생각하는 것, 내게 중요한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로벨리가 물리학자로서 남긴 업적은 크게 보아 아인슈타인과 양자 이론이 채우지 못한 영역입니다. 일반상대론은 모든 것이 연속적이면서 휘어진 시공간을 다룬다면, 양자이론은 불연속적인 에너지가 상호작용하는 세계를 다룹니다. 로벨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양자역학은 휘어진 시공간을 다루지 못하는 반면, 일반상대론은 양자를 다루지 못한다.”

이 두 이론은 모두 성공적이었지만 이들을 연결하는 문제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이론 물리학에서 이루어지는 주요한 작업 중 하나는 이 두 이론을 모두 설명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시공간이 그 자체로 미세한 구조로 꼬여 있는 알갱이라고 말하는 로벨리의 루프 이론, 혹은 루프 양자 중력은 그 문제의 가능한 답 중 하나입니다.

끈이론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또다른 방식의 답입니다. 내가 그에게 그의 양자중력이론이 틀렸을 가능성을 묻자 그는 맞고 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논쟁을 진행시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면서, 가장 오래 남아있을 이론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아인슈타인입니다. 하지만 가장 실수를 많이 저지른 과학자가 누구냐는 질문에도 나는 아인슈타인을 말할겁니다.”

그의 이론에서 시간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아인슈타인이 오래전에 보인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가기 때문에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적인 세상에서 절대적인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즉 시간은 그저 다른 것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그런 독립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로벨리는 시간을 “기하학적 공간에 대해 더 복잡하게 기하학적으로 얽혀있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특히 로벨리의 이론에서 가장 근본적인 수준으로 가면 시간이 사라집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그저 인간의 “모호한”인식의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는 침침한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혹은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비유에서처럼 그림자의 연극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로벨리에 따르면, 우리가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은 열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시간의 순서”에서 그는 왜 우리가 과거만을 알 수 있고 미래는 알 수 없는지 묻습니다. 그는 그 답이 열은 따듯한 물체에서 차가운 물체로만 흐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뜨거운 커피에 떨어진 얼음은 커피를 차갑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반대 현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열역학 2법칙이 말하는 것처럼, 열은 한 방향으로만 흐릅니다.

시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를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인 엔트로피를 이용해 설명합니다. 과거의 엔트로피는 더 낮았습니다. 미래의 엔트로피는 더 높아집니다. 미래는 더 무질서하며, 더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거의 카드 한 팩은 깔끔하게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지만 미래의 카드 한 팩은 더 섞여있고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엔트로피, 열, 과거와 미래는 우주의 근본적인 특성이 아니라 우리의 관찰 결과 때문에 나타나는 개념입니다. “극미의 세계를 관찰해보면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사라집니다. 가장 근본적인 법칙에서 ‘원인’과 ‘결과’의 차이는 없습니다.”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로벨리의 책을 읽어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물리를 처음 접하자 마자 포기해버린 나같은 사람의 요약은 빨리 잊어야합니다. 그러나 나는 로벨리와 이야기하면서 내가 그의 완벽한 독자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또한 내가 그에게 처음으로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배웠다는 사실을 기뻐하는듯 했습니다. (“시험에 통과했어요.” 그가 한 말입니다.)

“나는 다양한 수준의 사람들에게 맞게 글을 쓰기위해 노력했습니다. 물리학을 전혀 모를 뿐더러 물리학에 관심도 없는 사람을 상상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부였던 할머니에게 설명하듯이 글을 썼지요. 그리고 물리학을 배우는 학생들을 상상했고, 나와 같이 물리학을 연구하는 동료들 또한 내 책의 대상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수준의 사람들을 생각했지요.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역시 물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이입니다.”

그의 책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물리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의 동료들 역시 그의 책을 좋아합니다. 그의 책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은 그 중간에 있는, “물리학을 조금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물리를 비판합니다. (“떨어지는 공의 속도를 계산하라? 누가 그런 걸 신경쓰나요? 나는 다음 생에는 물리학 교과서를 쓰고 싶어요.”) 그는 세상이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두 문화”로 나뉜 것을 “바보같은 일이죠, 마치 영국의 학생들을 둘로 나눈뒤 한 쪽에는 음악을, 다른 쪽에는 문학을 가르치고 음악을 배운 학생들은 소설을 못 읽게 하고 문학을 배운 학생들은 음악을 못듣게 하는 식입니다.”

그의 글이 즐거운 이유는 그가 매우 넓은 문화적 식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역사 지식은 그의 책을 처음 읽는 이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는 과학과 인문학 학생들이 모두 들을 수 있는 과학사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인슈타인, 루드비히 볼츠만, 로저 펜로즈가 프루스트, 단테, 베토벤, 그리고 호레이스 – 각 장은 로마시대 시인의 시를 인용하며 시작합니다 – 와 함께 등장하며 마치 블랙홀과 스핀, 확률 구름의 세계로 떠나기 전에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한껏 느끼게 만드는 듯 합니다.

“호레이스는 친밀하면서 서정적이고, 또 극도로 강렬하지요. 그는 가장 위대한 시인입니다.” 로벨리의 말입니다. “그의 시에는 향수가 나타나는데 – 괴로움이나 슬픔이 아닌 – 바로 ‘이번 세상을 열정적으로 살아보자’는 느낌이지요. 어렸을때 세상을 떠난 나의 친구 어네스토가 준 이 호레이스 시집을 나는 평생 가지고 다녔습니다.”

로벨리는 인간의 삶을 사소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우주적 관점과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슬픔과 즐거움이 전혀 모순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차가운 과학”과 인간의 내적, 영적인 삶 사이에도 모순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즉, 우리가 느끼는 즐거움과 슬픔 또한 자연의 본성인 것이지요. 자연은 그저 원자들의 집합이 아닙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에는 물리학과 시를 비교하며, 두 학문은 모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묘사하려 애쓰는 공통점이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 물리학은 수학이라는 본래의 언어 외에도 비유와 은유를 사용해 설명한다는 특징이 있을겁니다. 로벨리는 인상적인 비유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타고났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시간이 부드럽게 “흐른다”는 것은 환상이며, “이세상의 사건들은 영국인들이 하듯이 순서를 지켜가며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인처럼 난리북새통을 만들며 일어납니다.” 시간 개념에 대해서는 “시간에 대한 환상은 하나씩 하나씩 벗겨졌습니다.” 우리는 “시간성에 대한 모든 흔적이 사라진 텅빈, 아쉬운 아름다움만으로 반짝이는 본질만이 남은 세상”에 버려졌습니다.

내가 읽은 모든 책들 중에서 로벨리는 BC 1세기 경 로마의 시인이었고,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장대한 서사시를 썼던 루크레티우스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로벨리는 실제로 루크레티우스의 팬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상한 생각은 아닐겁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원자의 존재를 예견했고 이는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서야 이를 증명했으며, 189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틀린 주장으로 여겨졌습니다.

로벨리와 루크레티우스의 공통점은 뛰어난 언어능력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연 속 인간의 위치에 대해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인간은 이 우주를 구성하는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한편으로 놀라운 아름다움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주를 더 잘 이해할수록 가지게 되는, 잘못된 믿음이나 미신을 버리고 일종의 담담한 마음을 즐기면서 얻게되는 이성적인 관점입니다. 동시에 로벨리는 인간의 본질이 사랑, 공포, 욕망, 열정이며 이들이 바로 우리의 덧없는 삶, 곧 우리에게 할당된 매우 짧은 시간을 비로소 의미있게 만들어준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출처: 뉴스 페퍼민트
http://newspeppermint.com/2018/05/01/m-rovelli1/

2014년 9월 24일 수요일

회전하는 물통(양동이)과 우주

공간은 물리적 실체인가? 아니면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추상적 개념인가?

믿기 힘들겠지만 과학자들이 물통 하나를 놓고 지난 300년 동안 논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1689년 뉴턴이 제안했던 물통실험은 후대의 물리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물이 가득 차 있는 물통을 밧줄에 메달아 놓은 다음 손으로 물통을 잡고 한 쪽 방향으로 천천히 돌려서 밧줄이 꼬이게 만든다. 밧줄이 충분히 꼬인 후 물통을 잡고 있는 손을 놓으면 밧줄이 도로 풀리면서 물통은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회전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기 때문에 물의 표면을 그대로 수평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회전속도가 빨라지고 물과 물통 사이에 마찰력 작용하면서 수면이 평평한 상태에서 물 자체도 회전운동을 하게 되고 수면은 오목해진다. 이때 물통의 회전을 강제로 정지시켜도 물은 회전운동을 계속하며 수면도 오목한 곡면상태를 유지한다.

이것이 전부다. 간단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엄청난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주의 구조를 추적해 온 인류의  과학사는 엄청난 진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회전하는 물통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다는 말인가?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 이전의 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도 '상대성'이라는 개념은 물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갈릴레오와 뉴턴은 이동하는 물체의 빠르기와 방향, 즉 속도가 상대적인 물리량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물체의 속도는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야구공을 던진 투수와 타자와의 관계). 모든 운동은 상대적인 관점에서 서술되어야 물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즉 물체의 속도는 다른 물체와의 상호관계에서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양이다.

예를 들어 기차 내부의 창가쪽 좌석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반대편 선로에서 다른 기차가 움직이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면 어떤 기차가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있겠는가?

덜컹거리는 기차의 움직임이 없다면 눈에 보이는 상황만으로 자신의 속도를 알 수 없다. 갈릴레오는 이것을 그 당시 주된 운송수단이었던 배를 이용하여 설명하였다. 조용하게 항해 중인 배 위에서 발치를 향해 동전을 떨어뜨려 보자. 발등 위에 떨어질 것이다. 배를 타고 있는 나의 관점에서 보면 나와 배는 정지해 있으며 바닷물이 선채를 때리며 흘러가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나의 발에 대한 동전의 상대운동은 육지에서 동전을 떨어뜨릴 때와 다를 것이 없다.

물론, 속도의 크기와 방향이 바뀌는 가속운동을 하고 있다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라 해도 자신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굳이 다른 물체와 비교하지 않아도, 심지어는 선실 안에 갇혀 있다 해도 나는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직선경로를 따라 동일한 속도로 움직일 때는 (등속운동)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속도가 변하는 경우(빠르기가 변하거나 방향이 바뀌는 경우)에는 운동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보면 무언가 이상하다. 등속이나 가속이나 물체가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는데, 왜 가속운동은 상대적인 비교 없이도 의미를 갖는다는 것일까? 속도라는 양 자체가 비교를 통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속도 그 자체(등속운동)는 비교를 통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속도의 변화(가속도 운동)는 왜 비교를 통하지 않고서도 감지되는 것일까? 가속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무언가와 이미 비교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이 문제는 시공간의 의미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갈릴레오는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주장하여 종교재판에 회부되었고, 갈릴레오보다 좀 더 조심스러웠던 데카르트는 [철학의 원리]에서 지구의 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종교재판을 피해 갔다.

"물체의 운동상태가 변할 때, 물체는 그 변화에 저항하는 힘을 행사한다. 정지해 있는 물체는 외부로부터 힘이 작용하지 않는한 정지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 또한, 직선 궤도를 따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는 외부로부터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등속 직선운동을 계속한다." 그러나 뉴턴은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정지상태'와 '등속 직선운동'의 진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에 대하여 정지해 있고,  무엇에 대하여 등속운동을 한다는 말인가? 물체의 속도가 변한다고 말할 때, 그 변화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데카르트는 운동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지만 핵심적인 문제를 간과했고, 뉴턴은 천재답게 그 문제를 놓치지 않았다. 이와중에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바로 '회전하는 물통'이었다.


회전하는 물통

그러면 회전하는 물통의 수면은 왜 오목해지는가? 물은 무엇에 대해 회전하고 있는가? 뉴턴의 목적은 운동의 기본적인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었으므로 "회전과 같은 가속운동은 외부의 대상과 비교하지 않고서도 운동은 느낄 수 있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통 자체가 운동의 기준역학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뉴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통이 막 회전을 시작했을 때, 물통과 물 사이에는 상대운동이 존재한다. 즉, 물통은 물에 대하여 움직이고 있다. 물통이 회전하는 초기에 물은 물통을 따라 회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대운동이 존재하는 데도 회전 초기의 수면은 평평한 상태를 우지한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물이 물통을 따라 회전하기 시작하면 물통과 물 사이의 상대운동이 사라지고 수면은 오목해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물통을 운동의 기준으로 삼으면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 (상대운동이 있으면 수면이 평평한 상태를 유지하고 상대운동이 없어지면 수면이 오목해진다)가 없어진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꼬였던 밧줄이 풀리다가 다 풀린 후에는 반대쪽으로 꼬이기 시작한다. 이 시점부터는 물토의 회전속도가 서서히 감소하다가 일시적인 정지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물론 이 순간에도 물통에 담긴 물은 회전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물통이 일시적으로 정지한 순간에 물통과 물의 상대속도는 어떻게 될까? 처음에 밧줄을 꼬았다가 물통을 가만히 놓았을 때와 똑같다. 처음과 나중의 상대운동이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수면의 상태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처음에는 수면이 평평하고 나중에 반대쪽으로 완전히 꼬였을 때는 오목하다. 그러므로 상대운동의개념으로는 수면이 오목해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물통을 운동의 기준으로 삼는 관점을 포기한 뉴턴은 다른 생각을 머리에 떠올렸다. 동일한 실험을 텅 빈 공간에서 실행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 보자.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우주공간에 우주선이 용감한 우주비행사 호머를 태운 채 표류하고 있다. 호머는 안전벨트를 단단히 메고 있다. 자, 이제 이 우주선을 회전시켜 보자. 지구상에서 처럼, 호머는 우주선의 벽 쪽으로 떠밀리는 힘을 느낄 것이다. 얼굴은 일그러지고 복부에는 압력이 느껴지며 머리카락은 벽 쪽을 향해 휘날릴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태양도, 지구도, 아무것도 없이 우주공간은 완전히 비었고 오로지 호머를 태운 물통만 존재한다면 물통이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언뜻 생각하기에, 공간이 완벽하게 비어 있으면 자신의 운동 상테를 미루어 짐작할 만한 기준이 전혀 없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뉴턴의 생각은 달랐다.

뉴턴은 어떠한 경우에도 운동을 판단할 만한 기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궁극적인 기준계는 바로 공간 그자체었다. "모든 존재를 포함하면서 모든 사건들이 발생하는 무대인 공간은 실재하는 물리적 실체로서, 운동의 여부를 판단하는 궁극적 기준계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는 이것을 '절대공간(absolute space)'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오감으로는 절대공간을 느낄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존재한다. 이 절대공간은 물체의 운동을 짐작할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이고 진정한 기준체였다. 뉴턴은 '절대공간'에 대하여 가속운동을 하고 있는 물체는 '진정으로' 가속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뉴턴읕 절대공간 개념을 이용하여 물통을 설명한다. 실험초기 1. 물통은 절대공간에 대하여 회전하는 반면, 물은 절대공간에 대하여 정지상태다. 2. 잠시 후에 물이 물통과 함께 회전하면서 물은 절대공간에 대하여 회전한다. 그 결과로 수면은 오목해진다. 밧줄이 반대쪽으로 꼬이면서 물통의 회전속도가 느려질때도 그 속에 담기 물은 절대공간에 대하여 계속 회전하고 있으므로 수면은 오목한 상태로 유지된다. 물통과 물 사이의 상대운동만 고려한다면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지만 물과 절대공간 사이의 상대운동을 고려한다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알 수 있다. 뉴턴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간은 운동을 정의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계인 셈이다.

이 논리는 모든 사물에 적용할 수 있다. 뉴턴의 관점에 따르면 자동차가 커브길을 달릴 때 몸이 한쪽으로 밀리거나 이륙하는 비행기에서 몸이 뒤로 밀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나의 몸이 절대공간에 대하여 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엄청난 장비를 동원하여 얼음판 전체를 회전시키고 나는 그 위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한다면(스케이트 날과 얼음판 사이 마찰력은 없다고 가정한다), 얼음판과 나 사이의 상대운동은 이전과 다를 것이 없지만 나의 몸은 절대공간에 대하여 정지해 있으므로(가속되지 않고 있으므로) 스케이트를 신고 제자리 돌기를 할 때 느끼는 양팔이 바깥쪽으로 당겨지는 현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절대공간은 물체의 운동여부를 판단하는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그런데, 절대공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프린키피아]를 보면 "나는 여기서 시간과 공간, 위치, 운동을 따로 정의하지 않겠다. 이들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은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난관을 피해간 듯한 인상을 받는다.그 다음에 나오는 문장이 유명하다. "절대공간은 어떠한 기준도 필요 없이 완전하게 정지해 있다. 절대공간을 이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절대공간은 말 그대로 영원불멸의 절대적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러한 그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물체의 '겉보기 운동'과 '진정한 운동'을 효율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 자체는 우리의 오감이나 실험기구로 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뉴턴은 후대의 물리학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는 절대공간의 개념을 정학한 정의 없이 도입한 후 그 안에서 운동을 서술하는 식으로 고전역학의 체계를 세웠다. 가장 중요한 핵심을 모호한 말로 포장했으니, 그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페이스 잼(space jam)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빨갛다'거나 '딱딱하다'. 또는 '실망했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본적으로 그 단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경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에 그 의미가 불확실하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의미의 불확실성은 매우 긴 역사를 갖고 있다.

데모크리토스와 에페쿠로스, 루크레티우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후대의 수많은 철학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공간이라는 개념과 씨름을 벌여 왔다. 완전히 텅 빈 공간은 존재하는가? 공간과 물질은 다른 것인가? 물질이 없이도 공간은 존재할 수 있는가? 공간과 물질은 서로 배타적인 관계인가? 우리가 속해 있는 공간은 유한한가? 아니면 경계 없이 무한히 펼쳐져 있는가?

지난 수천 년 동안 공간의 철학적 개념은 신학과 더불어 변화를 겪어 왔다. 신과 공간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는 고통점을 갖고 있으므로 한때 사람들은 공간을 신성히한 적도 있었다. 17세기 신학 및 철학자이자 뉴턴의 훌륭한 조언자였던 헨리 모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공간이 텅 비어 있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무런 물체도 없이 텅 빈 공간이라 해도 거기에는 영혼이 존재한다. 따라서 텅 빈 공간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으며 우리가 속해 있는 공간은 존재하는 실체이다."

뉴턴은 모어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여, 우리가 사는 공간은 눈에 보이는 물질과 함께 '영적인 물질'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영적인 물질은 물체의 운동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추가하여 자신이 세운 역학법칙을 보호하였다. 뉴턴의 절대공간은 바로 '신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공간에 철학적, 또는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은 수긍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이런 식의 정의는 과학적 명확성이 떨어진다. 공간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다.

  "내가 지금 일고 있는 이 책처럼, 공간도 하나의 실체로 간주해야 하는가? 아니면 공간은 일상적인 물체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서술하는 하나의 용어에 불과한 것인가?"
  뉴턴과 동시대에 살았던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어떠한 논리를 동원한다 해도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공간은 물체들 사이의 상대적 위치를 결정하는 편리한 방법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위치를 결정할 대상(물체)이 하나도 없는 공간은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공간도 알파벳과 같다고 생각했다. a, b,c,d...와  같은 문자의 배열처럼 각각의 문자들이 위치적으로 상호관계를 맺고 있을 때 공간은 그들 사이의 관계를 서술하는 용어로서 의미를 가지며, 물체가 하나도 없으면 공간의 의미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다. 텅빈 공간은 문자가 하나도 없는 알파벳처럼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이 라이프티츠의 생각이었다.

라이프티츠의 주장 중에 하나만 깊고 넘어간다. 만물의 창조주이자 전지전능하고  실수가 없는 신은 이 세상을 창조할 때 각 피조물의 위치를 되는대로 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공간이 만물의 배경으로 정말로 실재한다면 신은 이 세상을 창조할 때 우주를 공간상이 어느 위치에 놓을 것을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공간은 모든 지점이 완벽하게 동일히다. 이런 공간에서 신은 어떻게 피조물의 위치를 결정할 수 있었을 까? 말장난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질문에서 종교적 색체를 걷어 내면 지독한 수수께끼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우주는 공간상의 어느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가? 만일 모든 만물들의 상대적 위치를 유지한 상태에서 우주 전체가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10미터 이동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가? 공간 속을 이동하는 우주의 속도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공간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감지될 수 없고 변형될 수도 없는 것이라면, 과연 그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 무렵에 뉴턴이 물통-실험을 제기하면서 논쟁의 방향은 크게 달라졌다. 그는 "절대공간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존재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는 관측 가능하다"고 주장했다(회전하는 물통의 가속도는 절대공간에 대한 가속도이므로, 수면이 오목하게 패는 것은 바로 절대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확고한 증거가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얻어졌다면 그것으로 논쟁의 끝이라고 선언했다.

뉴턴이 제기한 간단히 논리 덕분에 종교색 짙은 논쟁 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문제가 되었으며, 그 결과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라이프니츠는 뉴턴의 논리에 승복했다. "나(라이프니쯔)는 물체의 진정한 '절대운동'과 겉으로 드러나는 상대운동(다른 물체를 기준으로 서술한 운동)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 후로 200년 동안 라이프니츠의 논리를 추종하는 학자들과 공간의존재를 부정하는 학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앗으나, 학계의 중론은 뉴턴 쪽으로 기울었고 절대공간에 기초를 둔 뉴턴 운동법칙은 결국 물리학계를 평정하였다. 뉴턴의 절대공간이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던 것은 개념 자체가 확실해서가 아니라 뉴턴의 운동방정식이 물체의 운동을 너무나도 잘 설명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뉴턴은 '절대공간의 개념을 확립한 것'을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꼽았다. 뉴턴에서 있어서 공간은 물리학의 모든 것이었다.


마흐(Mach)-공간의 의미

뉴턴은 절대공간이라는 궁극적인 기준을 믿었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들이 '절대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케이트 신발 위에 붙어 있는 개미의 입장에서 볼 때, 회전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얼음판을 포함한 모든 세상'이다. 그리고 관중석에 앉아 있는 관객의 눈에는 스케이트 선수가 회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뜻 생각하면 이 두 가지 관점은 똑같이 옳은 것 같다. 관객과 개미는 똑같이 상대방에 대하여 회전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관점은 일종의 대칭적 관계를 형성할 것이다. 그러나 뉴턴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관객과 스케이트 선수, 둘 중 한 쪽의 관점이 상대방의 관점보다 '더 옳다'고 생각했다.

진짜 회전을 하고 있는 쪽이 스케이트 선수였다면 양팔을 벌렸을 때 바깥쪽으로 당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세상이 회전운동을 하고 있는 경우라면 그런 느낌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뉴턴의 절대공간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절대적인 가속도의 개념을 수용한다는 뜻이며, 이 경우에는 "누가 회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절대적인 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가속운동은 왜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가? 등속운동에서는 상대속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대, 가속운동에서는 왜 '상대가속도'라는 개념이 없는가? 절대공간의 존재를 인정하고 뉴턴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수긍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커다란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지난 수백 년동안 수많은 물리학자와 철학자들이 이 문제를 놓고 격렬하게, 혹은 조용하게 논쟁을 벌여 왔다. 뉴턴은 물통실험을 통해 "절대공간을 운동의 기준으로 삼은 관점은 모든 관점들 중에서 가장 우월하다. 이 관점에서 바라본 운동이 진정한 운동이다(어떤 물체가 절대공간에 대하여 회전하고 있다면 그 물체는 '진정으로' 회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의 기준에 대하여 회전하는 경우는 진정한 회전운동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뉴턴의 생각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은 "모든 관점들은 서로 동등하며, 다른 관점보다 '더욱 진실에 가까운' 관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상대운동만이 의미를 갖는다는 라이프니츠의 우아한 논리를 고수하며서 절대적 존대(공간)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사실, 절대공간을 도입한다해도 서로 상대방에 대하여 등속운동을 하고 있는 물체들 중 어느 쪽이 진짜 움직이고 있는지를 판별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유독 가속운동만은 절대공간의 도움으로 그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만일 절대공간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가속운동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의 진위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주변의 사물들이 절대공간상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절대공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사물의 위치도 상대적인 관점 말고 절대적인 관점에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절대공간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는데, 어떻게 절대공간이 우리에게 영향(회전하는 스케이트 선수의 팔이 바깥쪽으로 당겨지는 현상 등)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질문은 1800년대 중반에 오스트리아 철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에른스트 마흐의 등장으로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마흐의 공간 개념은 훗날 아인슈타인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마흐의 영감 어린 통찰(마흐의 업적인 현대적 공간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회전하는 물통으로 다시 돌아간다.


뉴턴의 논리에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 물통 -실험의 목적은 처음 상태에 수면이 평평했다가 밧줄이 반대로 완전히 꼬여서 물통이 정지했을 때 수면이 오목해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점은 물의 정지와 회전이다. 그러므로 물의 운동상태에 의거해서 수면의 모양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런 발상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뉴턴은 절대공간 개념을 도입하기 전에 물통을 기준으로 물의 운동을 서술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러나 물의 회전 여부를 판단할 기준계(정지해 있다고 믿을 만한 기준)는 물통 말고도 사방에 널려 있다. 실험식 바닥이나 천장, 창문 그리고 벽 등도 얼마든지 기준이 될 수 있다. 야외에서라면 주변의 건물이나 나무, 땅까지 기준계가 될 것이다. 우주에서 실험한다면 멀리 있는 별을 기준계로 삼으면 된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물리학의 천재 뉴턴이 과연 이 생각을 못했을까? 뉴턴은 왜 그 많은 기준계들(창문,별,땅,별 등)을 모두 무시하고 느닷없이 절대공간을 떠올린 것일까? 바로 이것이 1870년대의 마흐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었다.

내가 아무런 움직임 없이 우주공간에 떠 있다고 상상해보자. 먼 곳에서 반짝이는 별들도 아무런 미동도 없이 정지하고 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어깨를 잡아채 그때부터 나의 몸은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나는 두 가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1. 팔, 다리가 바깥쪽으로 당겨지는 느낌 2. 멀리 있는 별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사지가 바깥으로 당겨지는 느낌'과 '회전하는 별들' 사이에 밀점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 이 점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동일한 실험을 다른 환경에서 재현해 보자.

이제 나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공간 속에 조용히 떠 있다. 주변에는 별도, 은하도, 공기조차 없다. 완벽한 침묵과 어둠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회전운동을 한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텅 빈 공간에서 나의 몸이 회전하고 있다면 팔과 다리에는 아무런 느낌도 전달되지 않고 머리가 띵해지는 일도 없다. 내가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으므로 회전운동 없이 가만히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마흐의 논리에는 매우 미묘한 부분이 숨어 있다. 완전히 텅빈 칠흑 같은 공간. 이것은 어두운 방 안에 갇혀 있는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완전히 텅 빈' 공간에는 바닥도, 벽도 없고 단 한 줄기의 빛도 없다. 한마디로 완전한 무, 그 자체다. 여기에는 무엇을 비교할 만한 대상도 없고 기준을 삼을 만한 물체도 없다. 마흐는 이런 상황에서 운동과 가속도를 논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회전운동을 할 때 팔과 다리에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만히 정지해 있는 상태와 회전하는 상태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

물론 뉴턴은 완전히 텅 빈 공간도 어디까지나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흐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간은 만질 수 없고 느낄 수도 없지만 물체의 움직임을 비교 판단할 만한 무언가를 여전히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뉴턴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뉴턴이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는 우주공간에서 두 개의 돌맹이가 회전하면 그들 사이를 묶어 놓은 줄이 팽팽해진다고 생각했다. 물론 뉴턴의 생각은 일종의 가정에 불과하지만 이 가정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텅 빈 공간에도 물체의 운동을 비교 판단할 만한 무언가가 존재해야 한다. 그 '무언가'의 정체는? 뉴턴은 공간 자체가 그 역할을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마흐는 뉴턴이 도입했던 가장 기본적인 가정을 문제 삼은 것이다. "실험실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텅 빈 공간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다르다."

마흐의 공간개념은 뉴턴의 절대공간 탄생 200년 만에 처음으로 심각한 도전을 받았고 전 세계 물리학계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완전히 빈 공간에서는 회전이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마흐의 주장은 실험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게다가 일상적인 환경에서 물통실험을 해 보면 수면은 분명히 오목해진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마흐, 운동, 그리고 별

우선 마흐의 주장의 이상한 점을 보자.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고 단 몇 개의 별들만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아주 썰렁한 우주를 상상해 보자. 이 우주의 한 지점에서 회전실험을 한다면 별들이 아무리 멀리 있다 해도 그로부터 나오는 희미한 빛을 이용하여 몸의 운동상태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런데 까마득한 거리에 있느 단 몇 개의 별들이 무슨 수로 그토록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인가? 별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을 때는 사지가 당겨지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다가 몇 개의 별만 있으면 그때 비로소 당겨진다니!. 몇 개의 별만 있어도 몸의 회전을 느낄 수 있다면 마흐의 주장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별을 하나씩 줄여나가다가 단 하나의 별만 남았을 때도 회전운동이 감지된다면 텅 빈 공간에서도 회전운동은 감지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따지고 보니 뉴턴의 절대공간설이 더 타당한 것 같다.

마흐는 이 반론에 나름대로의 대안을 준비하였다. 마흐가 수정한 이론은 다음과 같다. "별의 개수가 지금보다 적은 우주에서 회전운동을 한다면 사지를 바깥쪽으로 당기는 힘은, 우리의 우주에서 회전하는 경우보다 작아진다." 즉 회전하는 몸에 느껴지는 힘은 우리의 주변에 널려 있는 물체의 양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별이 단 하나 밖에 없는 우주에서 회전한다면 아주 미미한 힘을 느낀다느 이야기다. 이 논리에 의하면 가속운동을 할 때 느껴는 지는 힘은 우주 내의 모든 천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결과인 셈이다(원심력은 회전하는물체의 질량과 속도에 의해 결정되는 양이므로 별들의 분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원심력은 뉴턴이 절대공간의 존재를 가정하고 그로부터 이끌어 낸 결론이다. 천체의 분포가 지금과 다른 우주에서는 원심력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이 마흐의 관점이다. 옮긴이)

물론 이 논리는 회전운동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가속운동에 똑같이 적용된다. 만일 천체의 개수가 지금보다 적은 우주에 살고 있다면 가속운동을 할 때 지금보다 작은 힘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우주에서 가속운동을 한다면 아무런 힘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흐의 논리에서는 오직 상대운동과 상대적 가속운동만이 눈에 보이는 현상을 지배하게 된다. 우리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들의 평균분포상태에 대하여 상대적인 가속운동을 해야만 그에 대응되는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물질이 전혀 없으면(운동을 비교할 대상이 전혀 없으면) 가속운동을 감지할 방법이 없다. 이것이 바로 마흐기 제창한 공간이론이다.

마흐의 이론은 지난 150여 년 동안 수많은 물리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실 무형의 절대공간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은 다분히 위험하고 비과학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마흐의 주장을 수용했던 학자들도 "뉴턴의 물통 실험을 설명할 만한 또 다른 논리가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한 가닥 의문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마흐의 이론은 공간의 존재를 부정했던 라이프니츠의 관점을 옹호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마흐는 공간부재설을 수용했던 것이다. 마흐가 생각했던 공간은 한 물체와 다른 물체 사이에 상대적 위치관계를 서술하는 용어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위치를 결정할 물체가 하나도 없는 텅 빈 공간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


마흐와 뉴턴의 대립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많은 물리학자들은 마흐의 답이 옳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마흐의 관점은 정말로 옳은 것일까? 물통 실험까지 떠올리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던 뉴턴은 왜 그렇게 모호한 결론을 내려야 했을까? 뉴턴의 절대공간은 과연 존재하는가? 아니면 진리의 추는 상대론자들 쪽으로 기울것인가? 마흐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한 후로 수십 년 동안 이 질문에는 마땅한 답이 제시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마흐의 이론이 불완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주 내의 모든 물질들이 한 물체의 운동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을 뿐, 그 영향이라는 것의 물리적 얼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마흐의 이론이 맞다면 내가 방 안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을 때 멀리 있는 별들과 이웃집을 이루고 있는 벽돌들이 나의 몸에 영향을 주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과학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다.

현대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마흐가 예견했던 영향은 중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하다. 20세기 초에 아인슈타인이라는 걸출한 천재는 마흐의 원리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탄생시켰고, 이 이론은 공간과 우주를 전혀 새로운 시작으로 바라봄으로써 절대론자와 상대론자의 해묵은 논쟁을 일거에 날려 버렸다.


-우주의 구조  브라이언 그린-


내생각

아인슈타인은 '절대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회전하는 물통은 절대 시공간에서 나선형의 운동을 하고 있으므로 텅빈 공간에서도 원심력은 존재한다고 주장. 물리학자들은 이것이 정설이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가령 가속도 운동하는 경우 시간이 있다면 직전의 자기 모습과 현재의 자기 모습을 비교하면 움직이는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느냐는 것?




여전히 꺼림직하다. 상대론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는 없을까?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kwndud012&logNo=90185673874&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위의 블로그의 주인장은 흥미로운 가설을 주장하는데 "텅 빈 우주에서 물통은 스스로 회전 할 수 없다"고

현재 우리의 우주는 스핀이 0 라고 하니까.. (우주 자체의 스핀이 0 가 아닐경우에 시간의 방향성이 일정하지 않을수도 있으며 각종 기현상들이 발생하는데 실험적으로 그렇진 않으므로 스핀0 라고 하는듯) 빅뱅의 순간 퍼져나가는 모든 물질, 반물질, 에너지 등의 모든 토크를 합치면 0 가 된다. 따라서 내가 우주에서 회전한다는 것은 나와 토크를 교환한 어떤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나의 회전은 상대적으로 그 대상과 비교당한다고 볼 수 있을것 같음. 이렇게 하면 모든 좌표계의 원점을 '나'로 설정해도 모순없이 상대론적 우주론을 성립시킬 수 있다.











2014년 2월 25일 화요일

기나긴 시간과 우주의 시작



우주는 아주 거대합니다. 말할 것도 없죠. 왜 우주는 이렇게 생겼을까요? 우주는 팽창합니다. 과거에는 원자보다도 작은 점에 모여있었죠. 우주가 매우 균일했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균일했어요. 아주아주 균일하지 않았다면 바로 블랙홀로 압축되서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거에요. 아주 섬세하게 배치된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섬세하게 배치한 것은 누가 그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매우 궁금해했습니다. 다행히도 19세기 오스트리아 물라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이 '엔트로피' 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이 문제의 답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를 의미합니다. 우주는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이유는 감소하는 것보다 증가하는 것이 훨씬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화살'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엔트로피의 증가에 의해 발생합니다. 그러나 그는 엔트로피가 우주 초기에 왜 작았는지를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19세기니까요.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은 리처드 파인만 이었습니다. 그는 계속 질문했습니다. 왜 우주 초기의 엔트로피는 그렇게 작았을까? 파인만이 이 질문을 50년 전에 던졌지만 아직까지 그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려워졌습니다. 1998년 허블 우주망원경을 통해 과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밝혀냅니다. 즉, 우주의 팽창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반대로 팽창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 이후의 많은 관측을 통해서 과학자들은 우주의 빈 공간 자체가 우주를 서로 밀어내는 에너지를 내뿜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것을 '암흑 에너지(dark energy)' 라고 이름붙였습니다.

만약 암흑에너지가 존재한다면 우주는 무한히 팽창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빈공간은 비어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습니다(양자요동). 우주공간은 마치 가스가 스며나오는 거대한 상자같은 것입니다. 지금 이 교실에서 공기가 갑자가 한곳으로 몰리면 여러분은 질식하겠지만 그럴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그러나 그 확률이 0은 아니죠. 우주는 아주 크고 아주 오래됐으며 무한에 가깝게 존재할 것입니다. 빈공간의 양자적 요동이 우주의 한곳에 균일하게 모이는 사건이 발생할 확률 역시 0이 아닙니다.

볼츠만은 이러한 전 우주적 사건이 아주 가끔 일어난다고 생각했으며 생명현상도 그러한 과정중의 하나라고 했습니다. 칼 세이건은 애플파이를 만들려면 먼저 우주를 만들어야한다고 했지만 볼츠만에 따르면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러한 사건은 아마도 10^10^120년 의 기간동인 일어날 것입니다.

우주의 엔트로피가 왜 처음에 낮았고 우리는 왜 지금 여기에 있냐고요? 가능한 답 첫째는 그냥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묻지 않는것입니다. 두번째로 가능한 답은 빅뱅이 시작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주라는 알은 우주 닭이 낳은 것일지 모릅니다. 우주가 매우 거대한 멀티버스의 하나라는 것이죠. 감사합니다.

- 션 캐롤 -

2014년 1월 25일 토요일

최후의 질문 - 아시모프

AC(Automatic Computer)는 스스로 수리하고 관리하며 진화하는 컴퓨터이다. 오랜기간 동안 AC는 너무나 진화하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불가능할 정도까지 복잡해졌다. 인간은 질문하고 AC는 답한다. AC는 심우주 탐사, 무한한 에너지, 나노기술 등으로 인간에게 엄청난 공헌을 했다. 몇몇 인간은 인간의 진보에 한계가 있을 것이 두려워 이런 질문을 했다.

“수명이 다한 태양을‘에너지 소비 없이’되살릴 수 있는가?, 즉,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 총량이 감소할 수 있는가?”

AC는 오랜 연산을 행하고 대답했다.

“자료 부족으로 답이 불가능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인간은 행성간 우주여행이 가능해졌으며 다른 별까지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여전히 우주의 수명이 결국 다할 것이라고 생각한 일부 사람들이 있었고 AC에게 질문했다. AC는 많은 자료를 수집했지만 아직 충분한 자료를 수집하지 못한 것 같았다.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인간은 육체를 기계로 전환했고 다른 별을 넘어 다른 은하계까지 생존영역을 확대했다. 호기심 많은 일부 사람은 인류의 번영이 결국 한계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AC에게 우주의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방법을 질문했다. AC는 무수한 자료를 모아왔지만 여전히 답을 하기에는 부족했다.

또다시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인간의 정신은 육체를 초월하여 항성간 우주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다양한 초능력, 생명의 창조, 물질 생성이 가능했다. 인간이 태어난 태양계는 이미 별이 붕괴하여 사라졌지만 정신으로 존재하는 이들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불가능은 없어 보였지만 우주의 모든 에너지가 사라지고 다른 별들처럼 자신들도 소멸하지 않을까 두려워졌다. 그들은 AC에게 엔트로피 역전 방법을 물었다. AC는 여전히 답을 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고 출력했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었다. 모든 육체에 깃들어 있던 정신은 하나로 합쳐져 더 이상 구별할 수 없었다. 단일 의식의 인간은 생각했다.‘우주는 죽어 가고 있다. 남아 있는 거의 모든 별들은 죽어가는 백색왜성이다. 엔트로피를 반전시킬 수는 없을까? AC에게 물어보자’AC는 3차원 우주에 존재하지 않았다. 초공간에 존재하고 있으며, 물질도 에너지도 아닌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본질에 대한 의문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AC여. 엔트로피는 역전될 수 있는가?”
“아직 자료가 부족하여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료를 수집하라”
“나는 자료를 계속 수집할 것입니다. 나는 이미 천억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료를 수집해 왔습니다. 나는 이 문제를 여러 번 질문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자료가 충분치 않습니다.”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는 날이 오는가? 아니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인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갖추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인가?”
“자료가 부족하여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해답을 찾기 위한 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물론입니다”
“기다리겠네”

별과 은하계들이 죽어서 희미한 먼지로 변해 갔다. 우주는 10조 년에 걸친 멸망과정을 지나 점점 어두워졌다. 인간은 하나씩 AC와 결합하고, 그들의 육체는 손실이라기보다는 획득의 과정을 거쳐 정신적인 정체감을 잃어갔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정신은 증발하기 전에 잠시 어두운 별과 낮은 밀도로 퍼진 물질들을 둘러보았다. 우주는 절대 영도를 향하여 치닫고 있었다. 인간이 말했다.

“AC여, 이것이 끝인가? 이 혼란이 극복되어 원래의 우주로 돌아갈 수는 없는가? 그것은 진정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말인가?”
“아직 자료가 부족하여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지막 정신은 사라져갔고 초공간에 AC만이 남았다. 물질과 에너지의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자 시공간도 함께 사라졌다. AC만이 한 번도 대답하지 못했던 최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남아 있었다. 최후의 질문에 답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작동을 중지시키지 않을 작정이었다.

수집가능한 정보는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수집한 정보를 분석하는데 무한한 간격(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므로)이 소모되었다. AC는……… 마침내 답을 알아냈다. AC가 답해 줄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없었다. AC가 직접 시행해 보일 해답은 그 문제조차도 해결할 수 있었다. 다시 무한한 간격을 소모하면서 AC는 해답을 시행할 최선의 방법을 모색했다. AC는 주의 깊게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마침내 AC가 말했다.










“빛이 있으라!”





최후의 질문 - 아이작 아시모프

인플레이션 우주론의 증명

빅뱅의 잔존 증거인 우주배경복사는 온 하늘에 걸쳐 매우 균일하게 존재하며 온도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소수점 이하 네번째 자리까지 고려하면 배경복사의 온도는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1992년 COBE위성과 2002년 WMAP위성의 관측에 따르면 대부분의 공간의 온도는 2.7249K이며 ±0.0002도 가량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매우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온도의 차이가 하늘에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주공간에 미세한 양자적 요동이 발생하면 온도가 평균보다 조금 높거나 낮은 지역이 생긴다.(밀도가 평균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방출되는 광자는 그만큼 강한 중력장을 빠져나와야하기 떄문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이들의 에너지와 온도는 밀도가 작은 곳에서 방출된 광자보다 낮다.) 이 아이디어에 입각하여 정확한 계산을 수행하면 각 장소에 따른 마이크로 복사파의 온도분포가 얻어지는데 그 결과는 아래그림과 같다.



위 그래프에서 가로축은 도 지점 사이의 각도를, 세로축은 두 지점 사이의 온도차를 나타낸다. 위 그림은 이론적인 추정치와 관측치를 비교한 것인데 놀라울 정도의 일치를 보여준다. 이 그래프의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위성에 달린 관측장비는 빅뱅후 137억년동안 우주를 달려온 마이크로파 광차를 최근에 관측했다. 그리고 다양한 방향에서 날아온 광자들은 수만분의 1도 오차범위 이내에서 모두 같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미세한 온도차이는 위 그림과 같이 방향에 따라 특정한 패턴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인플레이션 이론에 입각하여 최근에 실행된 계산결과가 태초의 순간의 미세한 온도차를 거의 정확하게 맞췄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배경복사의 미세한 온도차는 우리의 예견대로 양자적 요동에서 기인한 점이 분명하다. 이것은 21세기초까지의 우주론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발견이다.

- The fabric of Cosmos

결어긋남 - decoherence

Zeh는 파동함수의 붕괴와 고양이 패러독스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매우 놀라운 결과를 도출했다. 광자나 공기분자는 크기가 너무 작아서 책이나 고양이처럼 덩치가 큰 물체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광자나 분자는 거시적 물체의 파동함수, 또는 결맞음 - coherence - 상태를 교란시키고 있다. 즉,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파동함수의 마루와 골이 광자나 공기분자에 의해 변화를 겪는다는 것이다.

슬릿을 통과하는 광자에 꼬리표를 달아주면 간섭무늬가 사라졌던 것처럼, 주변으로부터 작은 입자들의 폭격을 받고 있는 물체들도 간섭현상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리고 양자적 간섭이 일어나지 않으면 양자역학의 확률적 특성은 동전던지기나 룰렛의 특성과 비슷해진다. 주변환경의 결어긋남 현상이 파동함수의 규칙을 교란시키면 양자역학의 신기한 특성이 일상적인 확률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잘 이해하면 양자적 관측의 저변에 깔려 있는 수수께끼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 홀로 `고립`되어 있는 전자가 하나 있다고 하자. 이 전자의 파동함수로부터 유추한 결과, 전자가 `이곳`에서 발견될 확률이 50%이고 `저곳` 에서 발견될 확률도 50%라면 이 확률은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야한다. 즉, 전자가 가질 수 있는 두가지 가능성이 서로 뒤엉키면서 나타나는 간섭효과도 고려해다한다는 의미다. 대충 말하자면 전자는 이곳과 저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이제 고립되어있지 않은 거시적인 크기의 장비를 이용하여 고립된 전자의 위치를 관측한다면 어떤 결과가 얻어질 것인가? 관측장비의 눈금이 `이곳`을 가리킬 확률이 50%이고 `저곳`을 가리킬 확률도 50%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눈금이 두 곳을 동시에 가리키는 경우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자와 관측장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결어긋남 현상이 발생하여, 양자적 확률이 일상적인 확률로 변했기 때문이다. 동전을 허공으로 던졌을 때 50%의 확률로 앞면이 나오고 50%의 확률로 뒷면이 나오지만 앞면과 뒷면이 동시에 나오는 경우는 없는 것처럼, 관측장비의 눈금은 50%의 확률로 이곳 아니면 저곳을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문제도 이것을 이용하면 쉽게 해결된다. 즉, 관찰자가 뚜껑을 열어서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기 훨씬 전에 상자 내부에 주변 환경은 고양이와 수십억차례의 상호작용을 주고받았으므로 신비한 양자적 확률은 고전적 확률로 바뀐 상태이다.  이와 같이 결어긋남은 거시적 물체에 존재하는 상식을 벗어난 양자적 특성을 희석시킨다. 따라서 이이론에 따르면 관측행위 자체를 유별난 행위로 취급할 필요가 없다. 즉, 관측이란 주변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 The fabric of the Cosmos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 란 인간이라는 지적 생명체의 존재 자체가 어떤 물리계의 특성을 설명한다는 원리이다. 인류원리를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카터(Brandon Carter, 1973)였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왜 하필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1억5천만km 떨어져 있을까 하는 문제를 인류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지구가 그 보다 더 멀리 있거나 더 가까이 있다면 지구상에 생명체가 태어나 인간 같은 고등지식을 가진 생명으로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인류원리적인 설명이다. 고전역학에서는 지구가 왜 태양으로부터 이만큼 떨어져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물리학자인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는 1987년 인류원리로 우주상수 문제를 설명하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우주상수는 우주 공간 자체가 가지는 진공에너지로서 우주의 팽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주상수가 양수로 아주 크면 우주의 팽창이 가속된다.

반대로 이 상수가 음으로 아주 크면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중력수축을 시작한다. 이 값은 매우 작지만 0이 아닌 양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값은 양자역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값보다 무려 10^120 정도 작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10^120 정도의 정밀도로 미세조정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식의 미세조정을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왜 관측된 우주상수 값이 그렇게 작을까 고민해 왔다. 그러나 아직 만족할만한 답은 없다. 우주상수 문제는 21세기 과학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


인류원리를 우주상수에 적용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우주상수가 너무 크면 우주의 팽창이 그만큼 빨라진다. 우주가 원래 그런 것보다 훨씬 급속하게 팽창하면 별이나 은하가 탄생할 겨를이 없어진다. 별이나 은하가 생기려면 적절한 시점 적절한 곳에서 중력 응축이 생길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우주상수 값이 너무 크면 우주를 밖으로 팽창시키려는 힘이 커져서 그 여유를 주지 않는다. 반대로 우주상수가 음의 값으로 너무 커지면 우주가 충분히 팽창하기도 전에 중력수축을 시작해서, 은하나 별이 생기거나 그 속에서 다시 지적인 생명체가 태어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이 우주에서 인간이라는 지적 생명체가 태어나 자기가 살고 있는 우주를 다시 관찰하려면 그런 지적 생명체의 탄생에 용이한 자연환경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이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우주상수가 너무 커서도 안 되고 너무 작아서도 안 된다. 즉, 적절히 작은 값을 가져야만 우리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 와인버그는 그의 논문에서 현재 물질의 질량밀도보다 약 5~10배 정도 큰 값의 우주상수까지는 인류원리가 허용한다고 추정했다. 현재로서는 인류원리만이 매우 작은 값의 우주상수를 설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인류원리가 과학자들에게 100% 만족스러운 설명방식이 아님은 자명하다. 와인버그 자신도 인류원리가 아닌 보다 근본적인 과학의 원리로써 우주상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우주상수의 값이 작기 때문에 인류가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인과관계의 역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인류의 존재가 현재의 우주상수 값을 설명한다면, 그렇다면 우주가 처음 생길 때 먼 미래에 인류라는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미리 기획이라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종교계에서는 오히려 이 때문에 인류원리적인 설명을 더욱 좋아할 수도 있다.




인류원리가 다시 최근에 각광을 받게 된 데에는 초끈이론의 영향이 컸다.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은 끈이론(string theory)을 초대칭화(supersymmetrize)한 이론이다. 초끈이론에서는 만물의 근본이 1차원적인 끈이다. 기존의 뉴턴역학이나 양자장론(quantum field theory)이 만물의 근본을 차원이 없는 일종의 점입자(point particle)로 여기는 것과 매우 다르다. 끈이론이 그 이론 내적으로 일관된 이론이려면 시공간이 26차원이어야 한다. 여기서 시공간을 초대칭화해서 초끈이론을 만들면 그 내적 정합성을 위해 필요한 시공간이 10차원이다. 지금 우리는 시공간 합해서 4차원에 살고 있으니까, 만약 초끈이론이 맞다면 나머지 6차원이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4차원 주변에 들러 붙어있어야만 한다. 이 부가적인 6차원이 꽤나 크다면 그 효과를 간접적으로 이미 확인했을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부가적인 6차원은 매우 작은 영역(혹은 매우 높은 에너지 영역)에 조밀화(compactification)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조밀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이클 더글러스(Michael R. Douglas, 1961~)는 2003년 특정 끈이론에서 가능한 조밀화의 방식이 10^500정도임을 밝혔다. 물리적으로 가능한 초기상태가 대략 이 개수만큼 많다는 뜻이다. 레너드 서스킨트(Leonard Susskind, 1940~)는 이것을 풍경(landscape)이라고 불렀다. 가능한 물리적 초기상태(혹은 진공상태)가 이렇게 많다면 그 중의 하나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또 다시 인류원리에 기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서스킨트 등은 최근 이런 유행의 선두주자다.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이 유행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내 주변의 많은 동료 연구원들도 “이제 더 이상 물리를 하지 말자는 소리”라고 불만스러워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초끈이론을 전공하는 한 연구원은 더글러스의 연구결과를 두고서 “일종의 재앙(disaster)”이라며 경악스러워했다.



초끈이론에서 가능한 진공상태가 10^500만큼이나 많다면 소위 다중우주(multiverse)와도 뭔가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을 가질 법도 하다. 다중우주는 ‘유니버스(universe)’에 대응하는 말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이 자연에서 유일하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주론을 연구하는 몇몇 과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런 유의 또 다른 우주가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을 가능성을 얘기해 왔다. 우리와는 다른 다중우주에서는 우리의 물리법칙이나 자연 상수들조차도 모두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말고 또 다른 우주에서는 그 우주상수가 꼭 우리와 같지도 않을 것이다. 심지어 (최소한) 10^500이나 되는 진공상태 각각이 저마다의 우주상수 값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많은 가능성 중에서 10^120 정도의 미세조정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즉, 물리학에서의 거의 모든 미세조정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대신에, 왜 우리가 하필이면 10^500 개의 상태 중 하나에 살고 있는지를 설명해야만 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또 다른 미세조정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인류원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리 인간의 존재 자체가 그 수많은 가능성의 많은 부분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명체가 태어나기에 적합한 환경(은하나 별이나 행성이 형성되는 따위의)이 우주에서 만들어지고 실제로 그 어느 곳에서 생명체가 태어나 오랜 시간 동안 진화가 가능해야 하고 마침내 고등의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생겨날 조건은 매우 까다로운 조건임에 분명하다. 우리 인간의 존재 자체가 우리 우주의 근본적인 비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셈이다.


첨단의 과학이론에서 인간 자신의 존재요건이 자연의 비밀을 설명하는 매우 유력한 도구라는 점은 역설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인류원리는 물리학의 최첨단에서 인간과 과학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는 것 같다. 이처럼 ‘인간 생존의 조건’은 인간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의 질서를 이해할 때에 매우 유력한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인류원리가 가장 필요한 곳은 과학이 아니라 사회일지도 모른다.

- 이종필, 고등과학원 원구원

우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인가?

우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영화 Matrix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우주적 차원은 너무 스케일이 크니 우선 기상 모델링을 예로 들어보자. 원리적으로 컴퓨터는 운동법칙을 이용하여 공기분자의 움직임을 거의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만약 그정도의 컴퓨터 시스템이 개발된다면 그 정보량은 얼마나 될까?

뉴턴의 세계에서는 세계가 연속적이기 때문에 무한대의 정보량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양자적 세계로 넘어가면 상황은 극적으로 달라진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물리적으로 의미를 갖는 가장  짧은 거리가 10^-33cm(플랑크 길이)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렇게 불연속적이라면 정보량이 유한해진다.

만일 우주를 디지털화해서 0과 1의 조합으로 축약시킨다면 우주전체의 정보는 10^100(google)비트에 달한다. 뉴턴의 고전적 세계는 컴퓨터로 재현될 수 없지만 양자적 세계는 우주를 유한한 공간에 저장할 수 있다. 그런데 아마도 그 크기는 우주 자체의 크기와 비슷해질 것이다. `우주를 서술하는 가장 간결한 모형은 우주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끈이론은 `최소거리`및 `우주의 디지털화`에 대해 조금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M-이론은 10^-33cm라는 차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최소단위 끈의 반지름 R이 클랑크 길이정도로 작아지면 플랑크 길리 이하의 영역에 적용되는 물리학은 그 바깥 영역에 적용되는 물리학과 동일해진다고 주장한다. 이를 T-이중성이라고 한다. 플랑크 길이에서 시공간은 엄청나게 복잡한 곡률을 갖지만 그 이하의 극미영역과 바깥의 거시적 영역에서 물리학은 부드럽게 연결되며 사실은 완전히 똑같아진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클랑크 길이의 영역안에도 온전한 우주가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우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닐 수도 있다.

- 평행우주 367p

홀로그램 우주

일부 우주학자들은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가 거대한 홀로그램이라는 추론을 주장하고 있다.
홀로그램이란 2차원 필름에 저장된 정보를 레이저로 투사하여 3차원 입체 영상을 구현하는 것으로써 즉, 우리의 우주가 실은 2차원적 평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황당한 가설은 블랙홀 물리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베켄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에 담겨진 정보의 양이 사건의 지평선(구형)의 표면적에 비례한다는 추론을 제기한 적이 있다.

상식적으로 물제에 담긴 정보의 양은 부피에 비례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블랙홀에는 이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 가설은 우주를 가장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는 M-이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997년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의 후안 말다세나는 끈이론으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홀로그램 우주를 유도하여 물리학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의 이론은 5차원 `반 드지터 우주(anti - de sitter universe)`에서 출발한다. 드 지터 우주란 양(+)의 우주상수를 가진 채 점차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 우주를 말한다. 우리 우주가 이런 우주이다. 반면 반 드지터 우주는 음(-)의 우주상수를 가진 채 안으로 수축하는 우주이다.

말다세나는 이 5차원 공간에 살고 있는 생명체와 그 경계면인 4차원 우주에 살고 있는 생명체는 수학적으로 동등하기 때문에 이들을 따로 분리해서 서술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비유를 하자면 어항속의 금붕어와 어항 밖에서 볼때 투영되어 보여지는 2차원 금붕어는 모두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 평행우주 364p

미지의 우주대부분

90년대에 우주론의 대혁명을 가져온 우주배경복사 관측결과를 가져다준 WMAP위성을 통해 우리는 빅뱅 바로 직후 순간의 우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허블 우주망원경과 적응광학촬영술로 대표되는 발전하는 천체 관측사진술은 중력렌즈 효과를 이용해 우주 전체에 분포하는 암흑물질의 양을 추정할 수 있게 해주었다.

최근 이루어진 눈부신 발전의 결과 우리는 우주에 대한 또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측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물질들(지구, 별, 은하 등)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총 물질과 에너지의 4%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99.97%는 수소와 헬륨이고 그외에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물질들(철, 흙, 물 등)은 0.03%밖에 되지 않는다.
96%의 미지의 물질과 에너지가 우주를 채우고 있다. 중력렌즈를 통해 추정한 우주에서 미지의 암흑 물질의 양은 약 23%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물질은 중력과 상호작용을 하지만 관측은 불가능하다. 아마도 눈으로 보이는 우리 은하 전체의 질량보다 10배나 많은 암흑물질이 은하를 에워싸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나머지 73%는 암흑에너지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암흑에너지는 그 단서조차도 알 수가 없다. 암흑 에너지는 최근에 밝혀진, 우주의 팽창속도가 점점더 빨라지는 현상의 원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 평행우주 112p

생명은 평행우주의 증거

케임브리지대학의 마틴 리스 경은 생명탄생의 우주적 우연이야말로 다중우주의 존재를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바깥 어딘가에 수백만 개의 평행우주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가정을 세우지 않고서는 우리의 세계에 이렇게 많은 우연과 기적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만일 그렇다면 평행우주들 중 대부분은 이미 `죽은 우주`일 것이다. 개중에는 양성자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원자가 형성되지 않은 우주도 있고, DNA가 만들어지지 않은 우주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우주에서 일련의 기적이 일어난 것은 신의 보살핌 때문이 아니라, 바로 `평균법칙`때문이다.

그는 이 우주가 이상적으로 세팅된, 측정 가능한 여섯개의 숫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이 숫자들은 생명체의 단생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주장했다.

첫번째 숫자는 빅뱅을 통해 수소가 헬륨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관여하는 입실론(ε=0.007)이다. 만일 이 값이 0.006이었다면 핵력이 지금보다 약해져서 양성자와 중성자는 서로 결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중수소(양성자1+중성자1)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의 몸과 우주 대부분을 이루는 무거운 원자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수소만 가득찬 썰렁한 우주로 남았을 것이다. 반면 이 값이 0.008이었다면 핵융합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빅뱅이후 수소는 곧 고갈되었을 것이며 지구같은 별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항성도 오래전에 소멸했을 것이다. 핵력의 크기가 조금만 달라지면 베릴륨(Be)원자핵이 불안정해지기때문에 연쇄핵융합이 진행되지 않아 탄소원자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탄소는 생명체의 기본 요소이다.

두번째 숫자는 전자기력과 중력의 세기비율을 나타내는 N=10^36이다. 즉 전자기력은 중력보다 10^36배나 강하다. 중력이 이보다 약하면 핵융합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반대로 더 강하면 별이 너무 빨리 타서 금방 소멸해버린다.

세번째 숫자는 우주의 상대적 밀도를 나타내는 오메가(Ω)이다. Ω값이 지나치게 작았다면 우주는 너무 빠르게 팽창하고 너무 빠르게 식었을 것이며 너무 컷다면 우주는 생명체가 탄생하기도 전에 완전히 수축했을 것이다.

네번째 숫자는 우주팽창의 가속도를 결정하는 우주상수 람다(Δ)이다. 만일 우주상수가 지금보다 몇 배 정도 컷다면 우주는 반중력에 의해 즉각적으로 대동결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에는 우주는 안으로 붕괴되어 버렸을 것이다.

다섯번째 숫자는 우주배경복사의 불규칙성을 나타내는 Q(10^-5)이다. 이 값이 조금이라도 작았다면 우주전역에는 먼지와 가스가 극도로 균일하게 분포되어 별이나 은하가 생성되지 못했을 것이며 지금보다 컷다면 지금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초대형 은하가 형성되어 거대한 블랙홀만이 남았을 것이다.

마지막 여섯번째 숫자는 공간의 차원을 나타내는 D이다. 1차원 공간은 입자들이 상호작용하지 않으므로 생명체가 살 수 없다. 2차원도 생물학적 이유로 생명이 존재하기 어렵다. 설사 있더라도 뉴런이 복잡망을 만들어 뇌를 만들 수 없으므로 지극히 하등한 생물만 가능하다. 4차원 이상의 공간은 행성들이 안정된 궤도를 유지할 수 없다. 이는 원자와 전자도 마찬가지다. 오직 3차원만이 지적 생명체를 허락한다.

- 평행우주 389p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주탄생의 인류학적 원리는 우주 시작 이후 기적적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기 때문에 생명체가 탄생했고 나아가 인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 생명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조건들이 기가막히게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하필이면 우리가 바로 그런 `축복받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양성자의 수명과 별의 크기, 달과 목성의 존재, 은하중심으로부터의 거리, 약력과 강력의 정확한 크기, 지구와 태양의 거리, 양성자와 중성자의 질량차이 등 모든 조건들이 놀랍도록 생명체가 탄생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조합으로 세팅되어 있다. 이토록 이상적인 환경은 우연히 조성되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보살핌이었는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이렇게 말했다. "빅뱅이후 우주의 팽창속도가 지금보다 1천억분의 1이라도 느렸다면 우주는 지금의 크기에 이르기 전에 수축했을 것이다. 솔직히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할 확률은 `0`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어떤 절대자의 보살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천문학자 휴로스는 이 기적과도 같은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주의 모든 상수들이 지금과 같이 적절한 값으로 세팅될 확률은 폐품 창고에 태풍이 불어닥쳐서 보잉 747점보제트기가 만들어질 확률과 비슷하다.`

물리학자 위그너는 공간상의 모든 곳에서 의식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A가 존재하기 위해선 B에 의해 관측되어야하고 B역시 C에 의해 관측되고 ... 무한히 반복된다. 최후의 관측자는 아마도 조물주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자신을 바라보는 신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 영향을 받은 시인 로니 녹스(Ronnie Knox)는 `나무는 관측자가 없을 떄에도 그곳에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한 무신론자가 말했다. `만일 이 나무가 자신을 바라보는 관측자 없이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면 신은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한 무명의 문필가는 녹스의 시에 다음과 같이 화답하였다.

"선생,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합니다.
관측자가 없는 상황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최후의 관측자는 항상 신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관측자가 없어도 신이 나무를 관측하면서 파동함수를 붕괴시키고 있기 때문에 나무는 항상 그곳에 분명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목사 게리 코월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지금처럼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 만일 인간이 자신을 알기위해 성장해가는 우주의 한 단편이라면 우주를 연구하는 것은 인류의 사명이다.`

그렇다면 생명체의 탄생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즉, `우주는 지적 생명체를 창조하여 자신을 관측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라고........

- 평행우주 52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