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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6일 화요일

AI를 쓰면 바보가 된다


소크라테스  "문자가 사람으로부터 기억을 빼앗는다"

케플러  "망원경이 육안으로 보는 지성을 빼앗는다"

게스너  "활판 인쇄가 인류 최초의 조직적 정보 장애가 된다"

아드리앵 바예(=알리톤 바이예)  "서적으로 인해 지식의 정리가 불가능해져 야만에 빠진다"

니체  "타자기가 사상을 얕게 만든다"

닐 포스트먼  "텔레비전이 공공 토론의 장을 부식시킨다"

니콜라스 G. 카  "인터넷 검색이 사람들을 얕은 정보 처리 기계로 만든다"

지금 사람들  "AI를 사용하면 바보가 된다"

2025년 12월 30일 화요일

투자자들에게 다음날 뉴스를 24시간 전에 미리 알려주면 1년 내에 대부분 파산할 것이다

 투자자들에게 다음날 뉴스를 24시간 전에 미리 알려주면 1년 내에 대부분 파산할 것이다

- 나심 탈레브 -

2025년 12월 27일 토요일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 실존주의 철학

ㅇ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 (Sein-zum-Tode)'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가장 본래적(Authentic)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반드시 죽을 존재임을 직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화 속 푸스: 9개의 목숨이 있을 때 푸스는 '비본래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죽음을 잊고 허세와 유희에만 몰두했죠.

실존주의적 전환: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나의 목숨(죽음)을 직시하게 되면서, 푸스는 비로소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삶을 비로소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죠.


ㅇ '기투(Project)'와 스스로 선택하는 삶

실존주의는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본질은 없으며, 매 순간의 선택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만들어간다고 봅니다.

영화 속 푸스: 푸스는 '전설적인 영웅'이라는 타인의 시선과 기대(본질)에 갇혀 살았습니다.

실존주의적 전환: 하지만 마지막 소원의 별 앞에서 자신의 소원을 포기하고 동료들을 선택하는 장면은,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 의지로 가치를 창조하는 실존주의적 결단(Choice)을 보여줍니다.


ㅇ '불안(Angst)'을 통한 성숙

실존주의에서 '불안'은 부정적인 감정만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신의 유한함과 자유를 깨달을 때 느끼는 근원적인 감정이죠.

영화 속 푸스: 울프(죽음)를 마주할 때마다 푸스가 느끼는 극심한 공포와 공황 발작은 단순히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실존적 불안입니다.

실존주의적 전환: 푸스는 이 불안을 도망쳐서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 불안을 안고 '죽음'과 마주 섰습니다. 불안을 수용함으로써 허상뿐인 영웅에서 진정한 실존적 주체로 거듭난 것입니다.


ㅇ '부조리'의 자각: 죽음이라는 거대한 장벽

까뮈가 말하는 부조리란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과 '침묵하는 세계(죽음)'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합니다.

영화 속 상황: 푸스는 영원히 전설로 남고 싶어 하지만, '죽음(울프)'은 아무런 자비 없이, 때로는 허망하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막강한 공포로 냉혹하게 다가옵니다. 푸스가 자신의 유한함을 깨닫고 공포에 떠는 순간이 바로 까뮈가 말하는 **'부조리를 마주한 순간'**입니다.


ㅇ 희망이라는 이름의 '철학적 자살(영화속 마법)' 거부

까뮈는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나 내세, 혹은 허황된 희망에 매달리는 것을 '철학적 자살'이라 부르며 경계했습니다.

영화 속 푸스: 처음에는 '소원의 별'이라는 외부적인 마법(희망)을 통해 잃어버린 목숨을 되찾으려 합니다. 이는 부조리(단 하나의 목숨)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초자연적인 힘으로 회피하려는 태도입니다.

까뮈적 선택: 하지만 결국 푸스는 소원을 비는 대신 지도(소원권)를 찢어버립니다. 외부의 구원이 아니라, 결함투성이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죠.


ㅇ 반항(Revolt):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힘

까뮈 철학의 정수는 **"삶이 무의미하고 죽음이 필연적일지라도, 그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가는 것 자체가 가장 위대한 반항"**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시지프의 바위: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처럼, 푸스 역시 언젠가 죽을 운명입니다. 울프도 마지막에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야"라고 말하죠.

푸스의 반항: 푸스는 죽음을 이길 수 없음을 알지만, 더 이상 도망치지 않습니다. 대신 **"나는 이 목숨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합니다. 죽음이라는 결말은 바뀌지 않지만, 그 과정을 자신의 의지로 채우겠다는 이 태도가 바로 까뮈가 찬양한 **'반항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ㅇ 페로(Perrito)와 '행복한 시지프'

까뮈는 그의 에세이 마지막에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고난 속에서도 그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찾는 태도입니다.

영화 속 캐릭터 **'페로'**는 까뮈적 긍정의 극치입니다. 끔찍한 과거와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현재의 간지러움, 친구와의 동행에서 행복을 찾아냅니다.

푸스가 결국 도달한 지점도 바로 이곳입니다. '전설'이라는 거창한 미래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항해하는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죠.





말할 수 있는 권리, 볼테르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싸워주겠다.


- 역사학자 이블린 홀, 1906년 <볼테르의 친구들> -

2025년 7월 16일 수요일

람보 1편, First Blood


영화 람보(1편)에서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던 람보는 상이 군인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채 자신을 괴롭히는 마을 경찰과 홀로 전쟁을 벌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군 시절 상관이었던 트라우트만 대령이 투입돼 람보를 설득한다



트라우트만: 다 끝났어, 조니... 다 끝났다고!

It's over, Johnny. It's over!


람보: 끝난 게 뭐가 있습니까?! 뭐가 끝났는데?! 말 돌리지 마십시오!

Nothing is over! Nothing! You just don't turn it off!


이 사태는 내가 일으킨 전쟁이 아니에요. 저 새끼들이 먼저 일으킨 거지, 나는 원하지도 않았어!

It wasn't my war. You asked me, I didn't ask you!


승리 하나만 보고 베트남에서 그 짓거리를 했는데, 근데 이기긴 지랄, 대체 누가 전쟁을 이긴겁니까?

And I did what I had to do to win, but someone wouldn't let us win.


전쟁에서 돌아온 공항에서 그 개 같은, 씹벌레 같은 놈들이 왔어요. 나한테 항의하고, 침 뱉고! 어린이 살인범이라며 욕을 지껄이던 새끼들!

And I come back to the world, and I see all those maggots at the airport, protestin' me, spittin'. Callin' me baby killer and all kinds of vile crap!


지들이 뭔데 나한테 지랄을 해? 어? 대체 지들이 뭔데!!??

Who are they to protest me, huh? Who are they?


씨발놈들이 내 사정이 돼 봤어? 거기 있어봤어? 지들이 무슨 소리를 쳐해대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Unless they've been me and been there, and know what the hell they're yellin' about?




트라우트만: 존,, 모두에게 끔찍한 시간이었다, 람보. 이젠... 다 지나간 일들이야.

It was a bad time for everyone, Rambo. It's all in the past now.




람보: 대령님이나 그렇겠죠! 민간인으로 사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전장에서는 명예가 있었습니다. 전우는 전우를 지킨다!! 그런데 이 꼴이 뭡니까? 돌아오니 쥐뿔은 켜녕 씨발!

For you! For me, civilian life is nothing! In the field, we had a code of honor. You watch my back, I watch yours. Back here, there's nothing!





트라우트만: 자네는 정예 부대의 마지막 생존자다, 부디 이렇게 끝내버리지 마라...

You're the last of an elite group... don't end it like this.




람보: 전장에서는 헬기도, 전차도 몰아봤습니다! 내게 수백만 달러짜리 장비를 맡겼단 말야! 그런데 여기서는 좆같은 주차 관리 직원 자리조차도 얻을 수가 없어!

Back there I could fly a gunship, I could drive a tank! I was in charge of a million dollar equipment! Back here, I can't even hold a job parking cars!




2024년 11월 24일 일요일

바보들은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 한다 - 비스마르크

바보들은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 한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경험, 즉, 역사를 통해 배운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

2024년 8월 7일 수요일

2024년 5월 5일 일요일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오구라 기조



ㅇ 한국은 도덕 지향성 국가다. 한국인이 도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 돈에 관심 없다는 사람은 돈에 미친 사람이듯이 도덕에 미친 사람은 비도덕적이다


ㅇ 도덕지향성이란 인간의 모든 행위와 말을 도덕으로 환원해서 평가한다는 것(도덕 환원주의)


ㅇ 반대로 일본은 보다 현실주의적 경향이 강하다


ㅇ 한국 드라마에서 도덕지향성이 단적으로 나타난다(멜로물이 대부분인데)

   : 연인이 헤어질 때 도덕적 흠결이 주요 이유다

   : 연인은 서로에게 자신은 사랑은 ~~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일광장설을 늘어놓고서는

   : 상대방이 이 기준에 맞지 않으므로 틀렸다거나 잘 부합하니 사귄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한다


ㅇ 일본 드라마는 감각을 기반으로 한 논리전개 vs 한국 드라마는 논리로 무장된 감각의 격돌

   : 일본 드라마는 지루하지만 한국 드라마는 감정 소모가 크다


ㅇ 양국에서의 도덕

   : 일본 - 노인, 보수, 현실 순응, 봉건적

   : 한국 - 젊음, 혁신, 현실 개선, 신세대

   : 조선의 뒤틀린 도덕과 권력, 부의 개념

     - 양반 = 도덕+권력+부

     - 사대부 = 도덕+권력

     - 선비 = 도덕


ㅇ 한일간 도덕 인식이 차이난 이유, 역사

   : 한국은 600년간 주자학의 나라  

   : 일본은 지방분권이 강해 통일된 사상적 인식이 약하다


ㅇ 유교에 대한 오해, 형식주의가 아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 주자학 - 마음에 구비된 도덕성을 전 우주로 확장 => 강한 반항정신으로

   : 비뚤어진 것은 올곧은 것으로 맞서라, 올곧은 것에는 더 올곧은 것으로 맞선다

   : 한국인의 질서 지향성

   : 주자학의 질서 지향이 한국인을 만든 것이 아닌 반대

   : 한국인이 애초에 질서 지향적이고 주자학이 그 입맛에 맞는 것

   : 질서 지향의 이유는? 도덕 지향과 일치, 그 이유는 지리적 문제, 아래 참조

   

ㅇ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그것은 리(理)다

   : 理는 인간과 우주를 꿰뚫는 보편적 원리며 절대적 규범이다

   :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도덕논쟁, 왜?

   : 理와 氣로 논리오류 없이 논쟁에 이기는 자가 지지를 받고 정권을 차지하기 때문


ㅇ 그러한 도덕논쟁의 승리자가 왜 권력과 돈에 집착하고 암투하며 죽고 죽이는가?

   : 도덕을 입에 달고 사는데 왜 비도덕적인 삶을 사는가?

   : 현실은 도덕과 부, 권력은 무관하다. 따라서 부자와 권력자는 공격하기 쉽고 지칠줄 모르는 도덕 파상공세가 이루어진다

   :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 범죄자마저도 대중의 도덕시험을 통과하기 전에는 공격받는다 실력, 능력은 중요치 않다 


ㅇ 도덕 지향성의 이유중 하나, 지리적 위치

   : 강대국 사이에서 '힘'을 기르기보다는 '도덕'으로 무장하는 길을 선택

   : 힘이 없어서 도덕으로 무장한 것인가, 도덕으로 무장하기로 결정해서 힘을 기르지 않은 것인가?

   : 임진왜란, 병자호란, 명의 멸망으로 위기감이 커질 수록 도덕 무장 경향은 더 강해진다

   : 명의 멸망이후 오랑캐 국가인 청을 인정하지 않고서 조선은 스스로 소중화(小中化)라는 근원을 손에 넣는다

   :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꾸준히 理에 기반한 주체사상을 발전시켰다 

   : 북한은 도덕적 리를 극한으로 발달시킨 왕도정치향 주체철학 형성, 도덕의 화신


ㅇ 한(恨)이라는 독특한 한국인의 감정은 理를 향한 상승열망이다

   : 것-놈-나-님 으로 이어지는 상승 단계가 존재

   : 恨은 理와 합일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과 그것이 좌절됨을 느낄때의 절망과 한탄이다

   : 자신의 理, 즉, 우월함을 나타내는 것, 좋은 차, 좋은 집, 명패, 학벌, 간판, 패션, 시계.....

   : 역사적 외교 님=청,명,미국,  놈=오량캐,왜,일본,서양놈


ㅇ 理의 잣대를 가지고 사는 것은 심히 피곤하다

   : 24시간 365일 올바름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

   : 理가 탁월한 '님'에 대한 동경이 크듯이 理가 부족한 '놈(노비)'에 대한 압력도 지대하다

   : (제도와 무관하게)노골적인 신분제 사회

   : 理의 세게는 엄격하고 굳건한 질서다. 숨막힐듯 답답한

   : 이러한 理의 갑갑함을 해소하고자 氣의 세계가 발달했다. 춤, 술, 노래, 풍악, 여행, 정감


ㅇ 理의 잣대에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상스러운 것

   : 理의 앞에서는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맑고 깨끗해야 한다

   : 더럽고 박속한 것은 理의 철학에 의거해 없애라. 결국 욕망은 분출되지 못하고 음지로 숨어든다 


ㅇ 理를 중시하는 한국인들의 습관

   : 호구조사(나이, 지위, 학력, 거주지, 가문, 고향, 패션, 차, 등등)을 측정해 총계를 산출

   : 눈치를 본다 = 사람과 분위기를 고려해 理에 맞춘다


ㅇ 90년대 이후 '님' 인플레 시대

   : 경제 발전후 너도 나도 '님'화

   : '님' 안에서도 도덕 우월을 나누기 위한 치열한 공방

   : 상승열망, 추락공포, 헐뜯기, 죽을듯한 경쟁


2024년 2월 15일 목요일

메소드 연기



https://www.youtube.com/watch?v=MdvxdMQ_CGo


ㅇ러시아 극작가 스타니슬랍스키가 19세기에 현재의 메소드 연기와 비슷한 체계를 완성


ㅇ배우의 내면을 훈련시킬 수 있다는 가정

: 경험하기(페레지바니예)

: 메소드의 핵심은 경험


ㅇ당시 앙시앙 레짐 처럼 형성된 전통적인 서양의 연기 방식과는 다른 혁명적 방식


ㅇ다만 메소드라는 단어는 후에 미국에서 제안되었으며 현재의 메소드 연기 대부분의 상식은 미국식


ㅇ1930년대 러시아 예술극장 배우들이 미국으로 가서 보여준 메소드 연기는 관계자와 관객에서 큰 충격을 줌 


ㅇ이후 러시아의 연기 방식을 배운 미국인들이 연기 확원을 설립, 그룹 시어터, 액터스 스튜디오 등

: 이곳 출신 연기자와 배우들이 미국의 연극, 뮤지컬 시장을 휩쓸고 시간이 흘러 헐리우드도 장악


ㅇ1930년대 발성영화가 등장하면서 영화에서 연기의 중요성이 높아짐

: 이때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훈련받은 메소드 연기 배우자들이 헐리우드에 진출

: 당시 영화계는 메소드 연기자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음

: 존 가필드, 네명의 딸들에 등장하는 배우의 연기가 메소드 연기로서 독특, 가필드만 메소드 연기를 함

: 이후 몽고메리 클리프트 등이 레드리버, 빅리프트, 젊은이의 양지 등을 성공시키며 메소드 연기가 널리 알려짐


ㅇ메소드 배우로 일약 전세계 스타배우가 되었고 영화 사상 중요한 영향을 미친 배우가 등장, 말론 브랜도

: 비비안리는 평소 전통적인 연기를 보였는데 상대역 말론의 메소드 연기에 큰 충격을 받는다


ㅇ그렇다면 메소두 연기가 아닌 기존의 연기란 무엇인가?

: 고전적 연기, 양식적, 상징적 연기

: 좋은 연기란 무엇인가? 진실한? 사실적? 캐릭터에 심취? 이러한 관점은 모두 메소드 연기가 등장한 이후의 개념

: 고전 연기는 정확한 전달, 상황의 납득, 배역과 일정한 거리를 둔, 정확한 대사, 등을 표방

: 캐릭터에 너무 심취한 연기는 다소 격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다


ㅇ전통적 연기자들은 연극이나 영화에서 메소드 연기자를 싫어했다

: 통제 불가능성, 정확하지 않은 연기

: 배우의 기본 소양이 부족

: 부정확한 발음

: 복제 불가능, 특히 연극에서는 치명적


ㅇ메소드 연기의 비판과 악명

: 도그마의 강요, 좋은 연기란 무엇인가?

: 경험을 꺼내는 것이다 보니 않좋은 경험을 살릴 때 본인 및 상대 배우의 정서적, 물리적 학대


2024년 1월 1일 월요일

로봇의 침략: 전화교환원의 사례

 


ㅇ 전화교환원은 고소득 전문직이었다. 급여나 대우가 아주 좋았다


ㅇ 해외에서 한국으로 걸려오는 외국어 전화를 듣고 적정 지역으로 교환해주는 역할을 해야 했다


ㅇ 미국에서 집적회로(IC)가 개발되고 이것이 전화교환원의 일자리를 잠식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70년대에 있었다

: 교환원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 각 나라의 말을 알아듣고 수동으로 이루어지는 교환업무는 기계로 대체 불가능하다  


ㅇ 일본으로의 전화발신만 담당하는 교환원이 4조 3교대 80명이 돌아간다

: 이것도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 인력이 부족하다고 난리였다

: 작업이 복잡하고 통화를 알아듣고 연결하는 업무를 기계가 어떻게 하는가?


ㅇ 1969년대 한국의 전화교환원의 근무시간과 업무량은 다음과 같다

: 오전 9시반부터 오후 4시반까지 정도 근무

: 교환원 한명 당 하루에 200여명 정도의 고객을 응대

: 주요 업무는 전화를 건 고객이 몇 번과 연결시켜달라고 하면 해당 코드를 상대방의 전화와 연결시켜주는 것

: 장거리의 경우는 거쳐야 하는 교환대가 여럿 있었다

: 통신 장애로 인해 전화가 중간에 끊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고객들의 불평 처리 및 해결



 ㅇ 자동 교환기는 캔사스 주의 어느 장의사(알몬 스트로저)가 1920년대에 만들었다. 어느 순간 그의 장례식 일거리가 끊겼는데 알고 보니 경쟁 장의사의 부인이 지역 전화국에서 전화교환원이어서 모든 장례 신청을 그쪽으로 돌렸던 것. 전화국 사장도 장의사의 처남이라 항의해도 소용이 없었다. 매우 화가 났던 그는 교환원이 필요없이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다이얼로 돌리는 자동 전화(+교환기)를 발명한다. 이 전화는 처음 등장시 교환원 없이 번호를 돌려야 하는 사람들의 불편(!)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ㅇ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에 상당수의 일이 기계나 AI에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일은 예외라고 답했다

2023년 7월 23일 일요일

킬러문항이 문제가 아냐, 한국의 상황을 고려해서 입시제도를 만들어야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y--Is9c38Ok&list=WL&index=60



ㅇ 수능은 2012학년도부터 부쩍 쉬워진다

- 이주호 교육부 장관: 입학 사정관제 적극 지지, 궁극적으로 수능은 없어져야

- 이후 수능 전과목 만점자 다수 배출


ㅇ 전세계 대입 평가 중 상대평가 체제를 가진 것은 한국이 유일

- 수능은 상대적인 순위를 백분위, 석차 등급, 표준점수로 보여줌


ㅇ 정시는 문제 없다: 수능이 킬러문항 없고 변별력 떨어진다고 해도 상대평가제 하에서 문제는 안되


ㅇ 수능이 쉬워지면 수시에서 문제가 생겨: 실제적 문제는 아니지만 심리적 문제가 생김

- 실수로 한개 틀리는 것 때문에 당락이 결정(문제 한개로 등급이 바뀐다)

- 기술적 문제는 없으나 심리적인 억울함이 생긴다


ㅇ 수능이 어려워지고 킬러문항이 생겼던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있다(억울함 해소)


ㅇ 다시 수능이 쉬워진다면 다시 과거의 문제가 발생, 난이도 조절에 예술적인 숙련도 필요


ㅇ 사교육에는 2가지 원인이 있다

- 구조적 문제, 노동시장의 지위, 줄세우기 문화, 한국 사회 특유의 경쟁강도

- 기술적 요인, 복합성(너무 다양한 것을 준비해야 하는 문제, 입상 실적, 내신, 논술, 봉사활동 등등)과 난이도(킬러 문항)

- 예를 들어 수능 단일 제도로 가면 사교육이 줄어든다(이명박 정부 초기), 반면 입학사정관제(학종) 도입하면 사교육 늘어난다(이명박 후기)


ㅇ 학종, 입학사정관제는 오히려 다양성이 떨어지고 사교육과 고소득 층의 대입학이 더 용이해짐

- 가령 시골 학교의 학생이 뽑히기 위해서는 오히려 내신을 중시하면 됨

- 내신도 상대평가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

- 내신 상대 평가는 교육적으로는 최악이지만 정치적 이유로 도입, 지방학생에게 입학 기회 부여, 지역 균등 선발 효과가 발생

- 계층간 이동을 열어준다면 내신만 보는 것이 유리


ㅇ 왜 학종,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었나?

- 다양한 기준으로 줄을 세워서 학생의 잠재성을 보자(논란 여지 있음)

- 이렇게 다양한 유형으로 학생을 뽑는 것은 미국과 한국이 유이

- 김영상 정부 이후 30년간 교육의 기본 컨셉은 미국을 따라가자


ㅇ 대학은 MB정부 초기 입학사정관제에 반대했으나 2012년 이후 찬성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꿔

- 대학 성적이 수능보다는 입학사정관제로 들어온 학생들이 더 높아

- 박근혜 정부부터는 대학 스스로 입학사정관제를 경쟁적으로 늘려


ㅇ 진보, 보수,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 정치인들은 학종과 입학사정관제를 옹호

- 교육 엘리트들은 학종을 옹호

- 대중들은 비판, 사교육 부담이 커지고 반칙, 변칙이 횡횡(학생간 경쟁, 논문 대필, 인턴 해주기, 돈주고 경험 쌓기 등등)

- 대중의 강한 반발


ㅇ 다양한 전형과 학생의 잠재력을 보고 뽑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닌가? 이 언급에는 아주 중요한 '경쟁'이라는 컨셉이 빠져있다

- 경쟁은 자기장 같은 것이다 모든 공간에 작용한다

- 마찬가지로 학생의 다양한 능력과 속성을 보는 것은 바람직하나 한국 사회의 경쟁 체제를 놓치고 말하고 있다

- 자기장에 고무를 넣는 것과 구리를 넣는 것, 강철을 넣는 것은 전혀 다른 반응을 가져온다

- 그 때문에 학종은 엄청난 경쟁을 만들고 사교육을 부채질한다


ㅇ 한국의 경쟁강도는 구조적 요인이 7, 기술적 요인이 3이다. 

- 구조적 요소는 대처 불가능

- 기술적 요소가 앞서 언급한 복합성과 난이도


ㅇ 한국 정부와 정치권의 교육방향 자체가 학종이라면 적어도 학종 전형을 정원의 30%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 만약 학종이 대세가 되면 한국 교육 여건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사교육의 도가니로 빠져들 것


ㅇ 보다 근본적으로 노동시장 경직성이 대학서열화를 만들었을 수 있다

- 기업은 업무 성적으로 노동법때문에 저성과자를 속아낼 수 없다

- 이는 대학서열을 고착화시킨다. 대학이 취업기업과 인생을 결정한다

- 이것이 높은 학생 경쟁강도를 만든다

- 유연한 노동법 쉬운 편입 + 입학사정관제 = 미국의 특징이다. 한국은 다르다. 따라서 입시제도가 바뀌던지 노동법이 바뀌어야 한다

















2022년 12월 10일 토요일

아서의 마지막 일기

 세상에 후회 없이 행복하게 죽는 사람이 있을까....


그저 내가 세상을 흐림없이 볼 수 있게 된 후로 선한 일을 조금이라도 했기를 바랄 뿐이다.


눈을 뜨기까지 오래 걸린 건 내 잘못이 아니야....!


오, 메리! 행복하게 살아! 정말 행복해야 해!


틸리, 메리베스, 너무 늦기 전에 캐런을 구해 줘.


존, 아비게일과 잭을 잘 지켜줘.


레인즈 폴, 부족을 구하지 못한다면 아들이라도 반드시 구해야 해.


더치, 당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줘.




Red Dead Redemption, 아서의 마지막 일기

2019년 7월 20일 토요일

sns 신진사대부들의 병신외교

주인장 경고: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익명게시판 펌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출처는 확실치 않다. 본 글의 내용은 본 블로그의 생각이나 편집방향, 철학, 역사관 및 정치정 성향 등 일체의 방향성과 완전히 무관함을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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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4번_제보

sns 신진사대부들의 병신외교

과거 명청 교체기와 구한말에 조선의 외교가 절름발이로 전락한 이유는 바로 힘도 없으면서 명분만 따졌기 때문이다. 명을 도와 청을 물리치거나 대한제국을 유지할 힘이 있는지 자문해야 할 외교담당자들과 위정자 그리고 국내 여론은 열강들 사이에서 한줌 값어치도 안되는 명분에 집착하다 한심한 자충수만을 거듭했고 그 결과 민족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이렇게 현실을 외면하고 사대부들이 둘러앉아 명분만 논하는 병신 짓을 병신외교라는 고유명사로 부르기로 하자.

이 병신외교의 말로는 다 똑같았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오랑캐 무리들의 기세가 날카롭지만 그들을 덕으로 가르치고 교화한다면 결국 알아서 부끄러움을 깨닫고 물러날 것이라고 주장하며 뜬구름 잡는 신선놀음을 하다 저세상으로 떠나 진짜 신선을 만났다. 19세기에는 태국이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인도차이나 반도의 완충지대로 남아 독립을 유지한 데 비해 고종이 다스리던 조선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사이에 뜬금없이 제국선언을 했다가 강제로 합병당했다.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것이 청, 러시아, 일본이었고, 이 힘의 균형이 조선이 독립국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유일한 이유였는데 그 마당에 갑자기 황제선언이라니 희극 아닌가. 이 "대제국"은 수립 8년만에 외교권을 빼앗기고 13년만에 도로 왕으로 강등당한다. 남의 역사라면 크게 웃겠건만 우리의 이야기라 못 웃을 뿐이다.

그 후손인 우리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기계처럼 되뇌이면서도 그 말의 뜻을 곱씹어보지 않는 듯 하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외교노선은 병신외교에 가까우니까, 아니 그 자체니까. 한국인인 나는 일본이 매년 매번 천황 명의로 사죄하면서 총리가 새로 취임할 때마다 3.1절에 서울의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해 무릎꿇고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기를 바란다. 아니 아예 전 일본 국민들에게 3.1운동 서사시 백일장을 열어 매년 1등 작품들을 암송시키고 전범기업들의 재산을 몰수해서 위안부 피해자들과 강제징용 노동자들 후손들에게까지 나눠주고 싶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럴 힘이 있는가?

정상적인 국가의 정상적인 외교라면 하나, 우리가 뭘 원하는지를 자각하고 둘, 상대의 입장을 파악한 뒤 셋, 그 차이를 조율할 전략을 세운다. 하지만 병신 외교는 1번에서 멈춘다. 내가 뭘 원하는지 이게 왜 정당한 지 우리끼리 모여서 허구한 날 지지고 볶는게 외교의 전부라고 믿는다. 왜 우리가 명에 보은해야하는지, 그리고 왜 대한제국이 독립국으로 남아야하는지 한반도 유생들끼리 모여 백날 명분을 따지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청에게는 늙은 말 한필보다 값어치가 없고 일본제국에겐 대포 한방보다 못한 헛짓거리에 불과한데.

이는 미숙아의 방식이다. 신생아는 원하는게 생기면 그것이 충족될 때 까지 운다. 울고 울고 또 운다. 엄마가 혹은 아빠가 줄 때 까지 운다. 하지만 세상은 엄마나 아빠로만 이루어진 곳이 아니기에 성장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고 상대가 뭘 원하는지 파악한 뒤 전략을 세운다. 아무리 미숙한 어린아이도 완구점에 가서 "오등은 자에 이 변신로봇을 원하노라, 이 로봇을 만든 것은 나같은 어린아이에게 제공하기 위함이었으니 이 메가트론은 나에게 주어짐이 마땅하다"라며 명분을 논하지 않는다. 아군인 엄마 앞에서 울면서 무력을 투사하거나 명절에 받은 세벳돈을 주고 사거나 아니면 훔치기라도 한다. 하지만 과거 한국의 병신외교는 6세 아이만도 못한 행태를 반복했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병신외교로는 변신로봇조차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아니라고?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일본이 왜 사과를 해야하는지 명분을 논하지 어떻게 사죄를 받을지 방법론을 논하지 않는다. 아베가 잘못했고 일본이 치사하고 이런 도덕적 평가만 가득하고 희망과 전망을 범벅한 비정상적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이게 병신외교를 펼치던 조선 사대부들과 무엇이 다른가. 거기에 가방끈 긴 병신외교 옹호론자들이 국제법이네 보편적 인권이네 하며 명분을 강화시키고 있다. 중화사상의 핵심 교리가 성리학이었던 것 처럼 국제사회의 새 윤리는 인권이다. 하지만 그런 도덕은 힘을 가진 자들에게만 허락된 일종의 사치재이지 만국의 움직임을 제어할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힘도 없는 주제에 성리학을 들먹이며 청나라의 팔기군이 멈추기를 바랐던 것 처럼 sns에서 주로 활동하시는 한국의 21세기 신진사대부새끼들도 인권을 들먹이면 일본이 겁이 나 깨갱하며 사과할 줄 안다. 인조반정의 개국공신들이 대청 강경발언들을 늘어놓고 청의 경고를 무시하다 적의 반격이 국경을 넘자 헐레벌떡 대책회의를 열었던 것 처럼, 강제징용 판결 이후 8개월 간 우리는 일본 외교가의 소통채널을 무시하면서 심지어 외교부 장관 까지 나서서 "일본이 보복할 경우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다 수출제한조치가 나오자 그제서야 대책회의를 시작했다. 이래도 우리가 펼치는 것이 병신 외교가 아니라고?

현실을 돌아보자. 2차 세계대전의 도죠 히데키 내각은 황군을 천황의 아들들이라며 치켜세웠지만 보급을 무시해 총 250만 명의 전사자 중 100만 명 이상이 굶어서 죽었을 정도로 자국민 목숨을 소모품처럼 대한 인간백정 정권이었다. 그 역사를 긍정하는 일본인은 소수 극우들 뿐이고 그들도 내부에서는 한국의 박사모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평화헌법으로 태어난 현재 일본 정부는 헌법 이전 정부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 이번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그나마 조선인들이라 한국 법정으로 온 것이지 일본 국적의 타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모두 일본 내에서 같은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일본인들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국가가 저지른 일들로 인해 70년째 죄책감을 가지고 사는 것에 대해, 그리고 아무리 사과를 하고 배상을 해도 끝나지 않는 거듭되는 과거사 논쟁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의 멱살을 잡고 인간백정 정권을 지지한 이들의 후손이 어찌 그러냐고 일갈하고 싶지만 지금 우리는 그게 안되는 현실세계의 정치를 논하는 것이다.

게다가 함께 일본을 압박해주길 바라는 서구의 동맹국들은 다들 일본이 저지른 전과를 하나 이상씩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한국의 입장에 동의해 주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일본계 자국 시민권자들을 몇년 간이나 격리시키고 구금한 적이 있으며 흑인 노예, 인디언 원주민들에 대한 과거사 및 경제적 보상 논쟁을 마주하고 있다. 영국은 식민지 통치기에 끔찍한 범죄들을 저지른 전력이 있으며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뱅골에서 의도적으로 기아를 촉발해 수십만 명을 굶겨죽였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당연히 프랑스나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처럼 적극적으로 해외식민지를 운영한 나라들이나 독일 소련처럼 20세기 들어 적극적 팽창정책을 펼친 나라들, 심지어 폴란드 그리스 터키 처럼 우리가 희생자리고 생각했던 나라들 조차 누군가에겐 전쟁범죄의 가해자로 등재되어있다. 그들이 이런 범죄를 지우개로 쓱쓱 지우고 새로 써 낸 인권이라는 멋지고 폼나는 낱말 하나 만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백지수표나 국제사법재판소의 전권 위임장을 던저주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만약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열강들이 식민지를 평화롭게 나눠먹는 자리였던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해서 쫒겨난 고종 수준의 인식을 가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역사로 타인을 재단하니 서구의기준에서 이 문제를 보자. 나치 합병의 첫 희생자들은 체코나 폴란드가 아니라 바로 오스트리아다. 물론 당시 오스트리아와 도이칠란드의 합병 찬성 여론은 90%가 넘었고 나치 당원 비율도 오스트리아 높았다. 하지만 전후 오스트리아는 빠르게 피해자로 둔갑하고 중립국 선언을 했다. 그들의 눈엔 조선은 어떤가? 조선은 2차 세계대전은 물론 1차 세계대전도 훨씬 전인 1910년에 일본과 합병한 나라지 식민지가 아니었다.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자원병을 모집하자 지원자가 수백대 일에 달했고(출세길이 몇 없었으니까) 일부 조선인 출신 고급장교들은 연합군 포로를 학대한 죄로 전범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자 조선인들은 갑자기 스스로를 식민지로 낮추고 모든 전쟁범죄에서 피동적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분명 조선인의 전쟁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한 사회 지도층들이 무수히 존재했으며 그들 중 상당수가 해방 대한민국(및 북한)의 건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우리는 그들을 "친일파"로 구분짓고 나머지 한국인들과 분리했지만 그건 우리의 논리고 제 3자의 시각에서는 그냥 다 한국인들이다. 그들이 만약 극동군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조선인들 명단을 보여주며 "이들은 분명 조선인이고 이들의 전쟁참여를 독려한 한국인들도 건국에 참여했다. 그럼 대한민국 정부도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않은 것 아닌가" 라고 물으면 우리는 아마 "에이 그건 일부 친일파들의 비행이에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이 바로 현 일본 정부의 변명이다. "이는 일부 군국주의자들의 소행이었다"

우리의 미래가 과거와 다르길 바란다면 오늘의 전략이 달라야 한다. 위와 같은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정상적인 국가의 정상적인 외교를 해보자. 우리에겐 일본을 굴복시킬 힘이 없으며 서구열강들이 무상으로 우리를 도와 일본의 팔을 비틀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현재 전략은 수정되어야한다. 먼저 우리의 목적을 재정립해야 한다. 배상인가? 사과인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일본은 외환보유고의 약 40%가 넘는 금액의 용역과 물품을 제공했고 일본은 지난 70년간 최소 8번 이상의 사과를 했다. 따라서 사과와 배상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일본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들은 정상국가로 나아가고 또 경제력 만큼의 정치력을 인정받길 원한다. 특히 UN을 개편해서 상임이사국 중 하나가 되기를 꿈꾸고 있지만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바로 동맹국 한국이다. 그들은 우리 만큼이나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한국이 원할 때마다 배상을 하고 미안하다고 사죄하는 ATM이나 ARS가 될 생각은 없다. 지난 2015년 위안부 협상에서 일본 측의 요구로 "비가역적이고 항구적인 합의"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이 그 단적인 증거다. 그리고 이런 일본의 목표와 우리의 목표가 겹치는 부분을 찾아 협상에 나서는 것이 바로 정상국가의 외교이므로 우리는 한국의 전략적 목표 우선순위를 정립하고 일본의 우선순위를 파악한 후 협상에 나서야 한다. 물론 손익계산서를 작성해서 이득이 된다면 무력도 투사할 수 있도록 현실적 준비도 갖추어야 한다. 

우리의 역사에서 마지막 외교적 승리는 거의 천년도 전인 1차 여요전쟁이었다. 거란의 소손녕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자 겁에 질린 고려 지도부는 땅을 주더라도 휴전을 하자고 제의하지만 이에 반대한 서희는 혼자 적진으로 걸어들어가 담판을 짓고 강동 6주까지 얻어서 돌아온다. 병신외교술을 추종하는 sns사대부들은 서희가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하여 명분싸움에서 이겼다고 해석하지만 실제로는 거란의 진짜 침공 목적은 주적인 송과 고려의 연대를 끊는 것이지 땅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고 그 관계 재정립을 대가로 영토를 받아낸 것이다.

명분을 논하는 일은 편안하고 달달하다. 현실이 열악할 수록 더욱 그러하다. 내가 어떻게 하명 강남의 아파트를 살수 있는지 논하는 일 보가 내가 강남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논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쉬운 것과 같다. 하지만 이제 병신외교 매뉴얼은 휴지통에 넣고 영구히 삭제하자. 우리는 한국인의 시각 뿐 아니라 일본의 시각과 제 3자의 시각을 모두 가르쳐야 하며 그 시각을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해야한다. 현재 sns의 신진사대부 무리는 "이야 토착왜구 많네"라는 비아냥거림으로 우리의 눈이 국수주의에 머물기를 바라지만 나와 이해관계가 반대인 적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지능의 문제이지 나라사랑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소손녕이 우리의 역사인식 처럼 서희와의 담판 후 요의 황제에게 돌아가 "고려가 고구려 후예라는데요"라며 명분하나 때문에 땅 까지 주고 빈손으로 회군한 병신이었다면 목이 뎅겅 잘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 그는 공신의 칭호를 받고 이후로도 계속 중책을 맡았다. 실제로 그는 병력과 물자를 거의 소모하지 않고도 짧은 시간 안에 송과 고려의 동맹을 파기시키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한 명장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래에도 국제외교가 명분 만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병신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의 외교는 조선 사대부들이 아니라 고려의 서희에 가까워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신채호 선생님께서 기르시던 구관조마냥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짹짹거릴 것이 아니라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되새겨야 한다.

새대가리같은 신진사대부들은 저 주문을 읊으면 자동으로 괜찮은 미래가 올 거라고 믿겠지만.

2019년 5월 9일 목요일

킹덤 오브 헤븐 : 예루살렘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살라딘의 병사들이 협상을 상징하는 천막을 치고, 발리앙은 협상 제안에 응해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밖으로 나간다.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넘기면 발리앙의 인민들의 목숨을 보장하고 기독교 땅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발리앙: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을 함락했을 때 도시의 모든 이슬람교도를 학살했소"
살라딘: "나는 그들과 다르네 나는 살라흐 앗 딘이야. 살라흐 앗 딘(정의와 신념)

협상이 타결되자, 살라딘과 발리앙은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눈다.

발리앙은 돌아서다 말고 살라딘에게 묻는다.

발리앙: "예루살렘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What is Jerusalem worth?)

살라딘: Nothing.

하지만 살라딘은 이내 다시 돌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한다.

살라딘: ...... Everything!


- 영화 킹덤 오브 헤븐 -
https://www.youtube.com/watch?v=ThBOw3ja6hU


발리앙의 질문은 가톨릭, 무슬림에게 있어 예루살렘의 가치를 묻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아내를 잃은 허무함을 달래는 한편 신을 찾고자 이곳으로 온 발리앙의 고뇌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2018년 12월 22일 토요일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갈리아의 수탉

미네르바(Minerva)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으로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Athena)에 상응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로마신화에서 미네르바와 항상 함께 다니는 신조(神鳥)로서 지혜의 상징이다. 원래 미네르바의 신조는 까마귀였다. 오비디우스(Ovidius)의 <변신이야기>에 따르면 까마귀는 미네르바의 비밀을 누설한 죄를 짓고 신조의 자리를 부엉이에게 내주었다 한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Friedrich Hegel)은 그의 저서 <법철학> 서문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라는 경구를 남겼다. 철학은 앞날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뤄진 역사적 현상이 지나간 이후에야 그 뜻이 분명해진다는 의미이다. 헤겔의 경구는 인식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 인간의 욕망은 변화의 속도 만큼이나 빨리 움직이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인식하고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가능하다. 이와 같이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욕망과 인식의 속도 차이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가끔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그때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왜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했을까? 그때 왜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라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바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날이 저물어야 날개를 편다’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역시 인간의 지혜는 변화의 속도와 욕망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가 보다. 그런데 그때 알지 못했던 것이 후회로 남기는 했지만 그때 알지 못해 낭패를 보았던 경험 때문에 지금 알게 됐으니 그것만으로도 소득이 아닌가?

헤겔의 말은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빨라 인간의 인식과 지식과 학문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에 따라 지식과 학문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뒷북만 치고 있다. 변화를 따라가기에도 숨이 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탉이 울면 새벽이 오고 얼마 안 있어 동이 트면서 태양이 떠오른다. 시계가 없었던 시절 수탉은 새벽의 전령사였다. 어둠의 공포에서 벗어나 밝은 낮으로 가는 길목에서 수탉은 항상 밝은 아침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신비한 존재였다. 동양의 옛날이야기에도 귀신이 쫓아오다가 닭 울음소리를 듣고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스토리가 제법 많이 있다. 새벽에 울음을 우는 수탉을 신성시하는 경우도 생겨난 것 같다.

서양인들은 갈리아지역(지금의 프랑스)이 닭의 원산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닭을 ‘갈리아의 새’라고도 불렀다. 갈리아인들은 고대부터 수탉을 새벽의 신으로 신성시했다. 수탉은 갈리아의 신으로 숭상되기도 하고 갈리아 군대의 기장(旗章)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 프랑스를 상징하는 동물은 수탉이다.

헤겔의 ‘미네르바의 부엉이’ 개념에 맞서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제기한 개념이 ‘갈리아의 수탉(Gallia Rooster)’이다. 마르크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수탉이 새벽에 울어 세상을 깨우듯이 철학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이 뒷북이나 치고 앉아 있다면 그건 죽은 학문이라는 것이다. 헤겔이 말한 것처럼 철학이 현실이 다 지나간 다음에야 겨우 이론을 정립하는 늙은이 학문이 아니라 현실이 오기 전에 그것들을 인식하고 설명하는 선도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이에르바하 테제>의 11번째 테제에서 마르크스는 말한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해석해 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헤겔의 ‘미네르바의 부엉이’ 논리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철학자의 사명은 시간이 지난 다음 뒤늦게 세상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 앞서 이론을 정립해 현실을 바꾸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성연 애터미 경제연구소장 nexteconomy@nexteconomy.co.kr

http://m.next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38

2017년 9월 23일 토요일

김광석이 유명한 이유

Q:가수 김광석이 유명한 이유가 뭔가요?


A:이 사람 노래가 내 마음을 읽습니다.



- 네이버 지식인 답변

2015년 4월 17일 금요일

직장을 빨리 그만둘 사람을 면접에서 가려내는 법

요즘 빅데이터가 화두다. 조직의 내·외부에서 쏟아져나오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 이른바 빅데이터(Big Data)를 잘 분석하면 기업의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는 유익한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데이터를 통해 통찰을 얻을 수 있지만, 그 자체로 답을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북스톤'에서 펴낸 소셜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송길영의 《상상하지 말라》라는 책에 좋은 사례가 실려 있어 아래에 그 내용을 요약해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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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산업공학과 조성준 교수는 '1년 이내에 그만둘 직원 찾기'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들이야말로 인사부서에서 가장 골머리 앓는 존재들이다. 고용하는 데 돈 들고, 직무교육을 하는 데 또 1년이라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게 투자해서 이제 좀 일할 만하면 그만두곤 하니, 기업으로서는 드러난 손실도 크지만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다. 다른 사람을 뽑았으면 지금쯤 일 잘하고 있을 텐데 엉뚱한 사람을 뽑아서 헛고생한 것이니, 소속 부서나 동기들의 사기 문제는 또 어쩔 것인가.

사정이 이러하니 기업은 빨리 그만둘 사람을 가려내고 싶어 한다. 입사한 다음에는 이미 늦으니 면접 때 몇 가지 질문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서 기업들의 내부 데이터를 분석해 '빨리 그만둔 직원들의 패턴'을 파악해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첫째, 멀리 사는 사람. 입사할 때 "집이 먼데 다닐 수 있나요?"라고 면접관이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 "네, 저는 얼리버드(early bird)입니다"라고 대답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 한국의 신입사원들은 일찍 퇴근할 수가 없다. 부장님 과장님 대리님 다 퇴근한 다음에 그들이 내준 과제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오밤중인데, 신입사원이라고 출근은 또 일찍 해야 한다. 안 그래도 힘든데 출퇴근에 4시간을 쓰고 나면 잠을 못 자니 체력이 달려서 오래 못 다닌다.

둘째, 집은 가깝더라도 통근수단이 애매한 사람들은 빨리 그만둔다.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 하면 관둔다는 것이다.

셋째, 조직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반대로 5개 이상의 소셜 네트워크에 가입한 사람들은 위험하다.

넷째, 질문이 많은 사람들은 빨리 그만두는 경향이 있다.

다섯째, 지나치게 감성적인 사람들은 충동적으로 그만둘 확률이 높다.


이 내용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마음이 불편하다. 마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넌 살인을 저지를 거야'라고 예언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인사관리 부서는 이런 사람들을 아예 뽑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집이 멀어도 열심히 다닐 수 있었던 사람들까지 처음부터 배제돼 버린다.

당신이 인사담당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후보자는 아예 뽑지 않겠는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는 없겠는가?

실제로 재미있는 점은, 이런 데이터를 인사과가 아니라 오너 경영자에게 보여주면 그는 기숙사를 짓거나 통근버스를 준비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사결정의 레벨이 다르다. 왜냐, 자기네 회사 근처에 사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면 좋은 직원이 몇 명 안 모인다. 이들만 뽑으면 그 회사는 망한다. 그러니 인재를 얻기 위해 좀 더 큰 지원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면 쉽게 그만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같은 결과를 두고도 판단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데이터는 힌트만 줄 뿐 답을 주는 게 아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통찰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선택은 사람의 몫이다.

- 곽숙철의 혁신 이야기

2015년 2월 15일 일요일

실수는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남이, <최종병기 활>에서


여러분들이 실수에 대해 갖는 느낌은 어떻습니까? 어떻게든 피해야 하고 알려지면 망신이다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좋은 학습의 기회가 될 수 있다에 가깝습니까? 여러분의 조직 문화는 어느쪽에 가까우리라 생각하십니까?

미국 산림청의 산불 정책이 10년도 전에 바뀐 것 아십니까? 예전에는 산불 예방을 강조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산불 예방 때문에 더 심각한 산불이 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불(불 대신 화재라고 재앙을 암시하게 쓰면 안됨) 생태학에서는 불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면 오히려 그 지역에 가연성 물질이 과도하게 축적되게 해서 결과적으로 한번 불이 나면(어떻게든 불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엄청난 규모의 불이 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자연상태에서는 적절한 시기에 작은 규모의 불이 나서 이런 큰 규모의 불이 잘 나지 않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론 와키모토는 불 공개 정책 관련하여 미의회에서 일부러 불을 질러야 할 수도 있음을 증언했죠. 그래서 산불 구호도 좀 바뀌었고, 이제는 불 예방에서 불 관리 쪽으로 초점이 바뀌었습니다.

라마누잔의 연구에서는 의학계의 실수(미국에서 의료사고로 죽는 사람 숫자가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많습니다)에 대해 이런 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미 중서부의 유명한 병원인데, 2006년 신생아실의 아이들에게 헤파린(혈액 항응고제)을 기준치의 1000배 투여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1주일에 걸쳐 5명의 간호사가 총 6명의 아이들에게 그렇게 투여를 했고, 그 아이 중 3명이 죽고 나머지 3명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그 병원에 2001년 헤파린 과다 투여로 비슷한 사고가 있었고(그 때는 환자가 사망하지는 않고 적절한 후속 조치가 되었음), 이 사고를 계기로 안전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그런 면에서 훌륭한 병원으로 인정되고 있었다는 점이죠. 특히 헤파린에 대해서는 실수를 예방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조사에 따르면 이 병원의 안전 프로세스가 너무 신뢰할 만(reliable)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약사가 헤파린을 준비할 때 새로운 SOP에 의해 실수할 여지가 없어졌다고 믿은 간호사들은 더 이상 약 투여시의 확인을 신경쓰지 않게 되었죠(실제로 그 방법이 효과적이기도 했고요, 그 사건 전까지는).




실수관리

마이클 프레제(Michael Frese)는 회사에서의 실수 문화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실수 문화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실수 예방과 실수 관리. 실수 예방은 행동에서 실수로 가는 경로를 차단하려고 합니다. 즉,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근데, 사실 이것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전문가도 1시간에 평균 3-5개의 실수를 저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 세상은 그렇게 엉망이 아닐까요? 그것은 전문가들이 실수를 조기에 발견하고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기(early detection & quick recovery) 때문입니다. 이렇게 실수는 어떻게든 할 수 밖에 없다. 대신 그 실수(예컨대 코딩하다가 == 대신 =를 쳤다든지)가 나쁜 결과(서버가 도미노 현상을 내며 죽는다든가, 그걸로 수술 기계가 오동작을 해서 사람이 다치거나)로 되기 전에 일찍 발견하고 빨리 고치면 된다는 겁니다. 이 태도를 실수 관리라고 합니다. 사실 하나의 경로가 더 있는데, 이미 결과가 난 실수에 대해서는 학습을 통해 다음 행동할 때 이렇게 하자는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이를 2차적 실수 예방이라고 함).

실수 예방 문화에서는 실수를 한 사람을 비난하고, 처벌하고, 따라서 실수를 감추고 그에 대해 논의하기 꺼리며 문제가 생겼을 때 협력도 덜하게 됩니다. 반대로 실수 관리 문화에서는 실수가 나쁜 결과를 내기 전에 도와서 빨리 회복하는 것을 돕고, 실수를 공개하고, 실수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거기에서 배우는 분위기가 생깁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실수 연구의 역사를 보면, 초기에는 기술적인 부분만 보다가 그 다음에는 인간적인 부분(결국 80%가 사람 실수라든지)을 보다가(특히 1979년 쓰리마일섬의 사고가 계기가 되었음), 이제는 문화적인 부분(컬럼비아호 사고가 계기가 되었음)을 이야기 합니다. 소위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라고 하는 것이 이 문화의 일부입니다. 항공 분야에서도 이것이 중요해서 CRM(Crew Resource Management) 등에서 이런 부분의 개선을 가져올 수 있었죠.

그런데, 이런 실수 관리 문화가 회사에 정말 도움이 될까(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비용이 많이 들텐데 비용 대비 효과가 어떤가) 하는 의문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연구가 있습니다. 우선 회사 문화가 실수 예방보다 관리에 가까울수록 그 기업의 혁신 정도가 더 높습니다. 그리고 실수 관리 문화일수록 회사의 수익성(총자산이익률로 계산)이 더 높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수가 없으면 학습하지 못합니다(고로 직원들에게 실수하지 말라고 하는 조직은 학습하지 말라고 하는 지시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학습이론의 기본입니다. 즉, 실수 관리를 하는 문화일수록 학습을 더 잘합니다.

자 그러면 이걸 조직과 개인 차원에서 활용하는 간단한 방법을 몇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직 차원의 이야기는 회사의 정책을 바꾸고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고 경영자나 임원의 의사소통방식을 바꾸고 하는 등의 좀 더 굵직굵직한(그리고 중요한) 것들이 있지만, 문화적으로 작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실수 축제

첫번째는 “실수 축제”라는 걸 하는 것인데 이 행사의 구조를 응용하면 여러 곳에 활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1. 업무 중(혹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점심시간) 대략 한 두 시간 내외(인원수에 따라 바뀌어야 함)의 시간을 잡습니다.

2. 될 수 있으면 다양한 업무 분야(혹은 다양한 프로젝트 관련) 사람들이 모이게 합니다.

3. 먹을 것, 마실 것을 준비해 두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4. 행사의 취지(집단적 학습)를 설명합니다.

5. 각자 “실수 기억하기” 양식(A4 한장)을 받고 거기에 글을 채웁니다. 시간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한 사람당 한 장만 쓰게 합니다.

6. 양식은 다음을 참고로 합니다.

· 제목 : 이 실수에 기억하기 좋은 이름을 붙입니다.

· 관련인 : 해당 실수에 관련있는(결과에 영향을 주거나 받거나) 사람들을 적습니다

· 타임라인 : 가로로 수평선을 그리고 어느 시점에 실수가 발생했고, 언제 최초 감지 되었고, 언제 최초 회복 작업을 시작했는지 표시합니다. 그 외에 중요한 사건들이 있으면 역시 표시합니다.

· 실수 시점 분석: 실수 시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입니다. 구체적으로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원래는 뭘 했어야, 혹은 안했어야 했는지를 적고, 왜 그런 실수가 일어났는지 적습니다.

· 감지(detect) : 무엇을 보거나 듣고 처음 실수를 감지했는지. 그리고 당시에 어떤 (부정적) 미래가 펼쳐지리라 추측했는지.

· 회복(recover) : 회복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당시 다른 옵션은 무엇이 있었는지. 왜 그 옵션을 선택했는지.

· 결과 : 그 후에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나.

· 교훈 : 다음번에 비슷한 실수를 어떻게 더 빨리 감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을지, 혹은 실수 발생 전 시점의 행동 자체를 어떻게 교정하면 좋을지.

7. 3-5명 정도가 한 그룹이 되도록 나눕니다. 처음 그룹은 되도록 같은 프로젝트, 같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게 합니다.

8. 한 사람씩 자신의 실수를 소개합니다. 자신이 채운 양식(특히 “타임라인”)을 보여주며 설명을 합니다.

9. 같은 그룹에서 듣는 사람들은 아래 세 가지의 질문 혹은 의견을 말합니다(이 때 아래 목록에 없는 비난, 질책이 나오지 않게 진행자가 주의할 것):

· 해당 사건, 실수의 순수 팩트를 묻는 질문 (왜보다는 누가, 무엇이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같은 질문이 좋음)

· “나도 실은…” 종류의, 자신도 비슷한 (혹은 “그 정도는 장난이야” 같은 더 심한) 실수를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 너무 길지 않도록 주의.

· 감지와 회복 면에서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혹은 다음에는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떤가 같은 제안.

10. 한 사람의 실수로 대략 10-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면 적당합니다.

11. 동일 그룹 내에서 한 명 더 실수를 공유합니다. (시간이 부족하면 스킵 가능)

12. 이번에는 아까 같은 그룹이었던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서 새롭게 그룹을 형성하게 합니다. 여기에서 다시 실수 공유하기를 반복합니다(위 7번부터).

13. 전체 인원수에 따라, 그리고 시간 제약에 따라 몇 번을 반복하고 난 뒤,

14. 이번 달(혹은 올해) 최고의 실수 투표를 합니다. 기준은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실수”라고 설명을 해줍니다.

15. 최고 득표를 한 실수에 대해 시상을 합니다(비싸지 않지만 내 돈 주고 살 것 같지 않은 재미난 상품, 혹은 근처 카페의 음료권 등이면 충분합니다). 수상자 소감을 합니다.

16. 맨 처음 만들었던 그룹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그룹 내에서 소감을 나눕니다.

17. 그룹별 소감을 돌아가며 발표하고 마칩니다.

위 실수 축제에는 사실 많은 이론과 연구 내용이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전체가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사용하시는 것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참가자들이 정말 재미있어하고 몰입해서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이 행사에서 꼭 지켜야하는 부분은 심리적 안정감을 해치지 않고, 더 높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간식 같은 걸 곁들여서 비공식적 행사인 듯 느끼게 만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놓치면 몇 시간을 해도 행사가 비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신뢰가 이미 심각하게 깨어진 조직이라면 이 행사를 하는 걸 좀 더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셔야 할 겁니다.

이번에는 개인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세 가지인데, 역시 응용하면 조직 차원에서도 효과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실수 노트

개인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첫 번째는 실수 노트 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중고등학교 때 많이들 쓰는 오답 노트 같은 겁니다. 본인이 뭔가 중대한 실수를 한 게 있다 싶으면 그날 실수가 일단락 되고 난 후에 노트에 기록을 합니다. 외부적 사건의 순서 같은 것 외에도 인지적인 부분을 많이 써야 합니다. 위 실수 축제의 양식을 참고하면 좋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중대한 의사결정(이 결정 때문에 그 이후의 행로가 다르게 펼쳐졌다고 할 수 있는)을 내린 시점이나, 상황판단(situation awareness, 아 이 산이 아닌갑다 같은)이 바뀐 지점 중심으로 정리해 보면 좋습니다. 저는 삽질 노트라고 하는데, 제가 30분 이상 삽질한 것이 있다 싶으면 꼭 이 노트(개인 위키)에 적습니다. 적기 시작한지 10년 이상 된 것 같습니다(오늘도 낮에 한 편 썼네요 ^^;).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실수 분석에서 끝나지 않고 그래서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 실수 축제를 참고하세요.



하마터면 사건과 외삽법

두 번째는 외삽법(extrapolation)이라고 부르는 기법입니다. 말이 좀 어렵습니다. 선분이 있을 때 그걸따라 더 연장하는 걸 말합니다. 이 기법은 전문성 연구에서 나왔습니다. 전문가가 빨리 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소위 니어 미스(near miss)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저는 “하마터면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실수가 있어서 하마터면 사건(위 실수 모형에서 “결과”에 해당)가 날 뻔 했는데 다행히 큰 일이 없었던 사건들을 일컫습니다. 이 니어 미스를 공유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심리적 안정감을 갖기가 비교적 쉽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누가 비난하거나 할 확률이 낮겠죠. 두 번째 큰 장점은 빈도수가 많다는 겁니다. 전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여러번 일어나야 합니다. 학습의 기본은 반복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건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학습은 요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대한 사건들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습이 없어 더 위험한 겁니다. 그러나 하마터면 사건은 자주 있습니다. 찾아보면 아주 많습니다. 이걸 활용하면 학습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미연방항공청의 ASRS(Aviation Safety Reporting System)가 좋은 예가 될 겁니다. 거기에는 하마터면 사건이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저장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보고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되며, 밝히더라도 그 신분은 보호되며, 심지어는 그 실수가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해도 당사자는 보호받습니다(의도적이지 않았고, 범죄가 아니었다면). 이 ASRS를 통해 항공산업은 안전성 면에서 많은 발전을 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겁니다. 이런 부분은 다른 산업에서 본받을만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때 오늘의 하마터면 사건을 생각해 봅니다. 만약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면 뭔가 잘못된 겁니다. 하루 8시간 이상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하마터면 사건이 몇 개는 있습니다. 내가 만약 그 때 이걸 대신 이렇게 했더라면, 혹은 운이 안좋아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다면 개고생 했을텐데 하는 거를 찾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1. 그 때 운이 좋았는데 뭐 하나가 잘못되었더라면 엄청난 개고생을 했을까?

2. 그 개고생은 어떤 식으로 펼쳐졌을까? 어떤 도미노 현상을 일으켰을까?

3. 만약 그 개고생이 펼쳐졌더라면 내가 어떻게 빨리 알아챌 수 있었을까?

4. 만약 그 개고생이 펼쳐졌더라면 내가 어떻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을까?

5. 내가 평소 일을 하는 방식을 수정하거나, 혹은 실수를 저지른 후 감지, 회복하는 과정에서 교정할 것이 있을까?

6. 역시 앞에서 이야기한 실수 축제나 실수 노트의 내용을 여기에 접목해서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 인터뷰와 회복력의 네 가지 요소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입니다. 우선 회복력 이야기를 합시다. 공학 분야에서도 이 실수 관리 문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공학에서는 이걸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죠. 이 분야의 권위자 중 한 명인 에릭 홀네이겔(Erik Hollnagel)은 회복력이 네 가지의 능력으로 구성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모니터링 – 대응하기 – 배우기 – 예상하기

모니터링은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약한 신호(weak signal)를 감지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대응하기는 그걸 감지했을 때, 혹은 사고가 터졌을 때 위급 상황 하에서 빨리 거기에 맞게 대응해서 회복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배우기는 과거의 성공 혹은 실패 사례에서 배워서(그리고 남과 공유해서) 앞으로의 행동을 조율하는 겁니다. 예상하기는 앞으로 어떤 일(성공이건 실패건)이 벌어질 잠재성이 있다는 걸 예상해서(과거에서 배우기를 토대로 하여) 그에 맞춰 행동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자기 분야의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서 이 사람의 실수 관리 능력에 대해 인터뷰를 합니다. 이 때 이 네 가지 능력 모형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전문가의 능력을 배우려면 그 사람이 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그 사람의 전문성의 핵심은 그 사람이 모르는 상황을 접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여기에서 확 벌어집니다. 전문가가 실수를 어떻게 찾고 어떻게 대처하는가, 차후에 행동을 어떻게 조정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여기에서 특히 감지하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난생 처음 먹는 종류의 고기를 먹으러 갔습니다. 종업원이 고기 몇 점을 불판에 올려주고 갑니다. 근데, 언제 먹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돌아오는 답이 “익으면 드세요“라면 어떻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언제 익었는지 판단할 전문성이 없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부분을 간과해서 교육이 실전에서 비효과적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문제가 터졌을 때 뭘 할지를 배우는 걸 넘어서 문제를 감지하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인터뷰를 할 때에는 앞서 이야기한 실수 축제, 실수 노트, 하마터면 사건과 외삽법 모두의 내용을 총동원하셔야 할 겁니다.

이상 여러가지 방법을 편의상 조직 차원, 개인 차원으로 나눠 이야기하긴 했으나 사실 그런 차원 구분 없이 응용 가능합니다. 이 방법들을 잘 활용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긴 한데,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연습하면 더 많은 도움을 얻을 겁니다.

물론 이 방법 외에도 많습니다. 교육을 하는 분이라면 고려해볼만한 방법으로는 실수 훈련이 있습니다. 보통 교육에서는 학생들의 실수를 최소화하도록 설계합니다. 교육 중에 실수를 적게 해야 실전에서 실수가 적을 거 아니겠냐는 논리죠. 하지만 연구결과는 반대입니다. 교육 중에 실수를 더 유도해야 오히려 응용력이 더 높아지고(교육학에서는 전이transfer라고 함) 실수가 줄어듭니다. 다양한 실수를 경험하는 걸 격려하고, 실수 사례를 배우고, 실수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가르치는 교육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전문가에게 실수 대처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요.

마지막으로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어 봤을 실수 예방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모 팀에서는 개발자별로 서버를 수십대씩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서버 하나가 죽었나 봅니다. 아침에 부장이 화가 나서 팀장을 자기 방으로 불렀습니다. 욕을 좀 먹었겠죠. 팀장이 그 방을 나오자 마자 했던 행동이 저한테는 좀 충격이었습니다. “XXX 누구 담당인가요?”

그 때부터 개발자들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키보드에 머리를 조아리고 내 서버인지 아닌지 확인하기에 바빴거든요. 시간이 조금 흐르자 한 두 명씩 밝은 얼굴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변의 (역시 밝은 얼굴의) 동료에게 커피 한 잔 하러 가자고 권합니다. 사람이 한 명 두 명 줄어듭니다. 마지막에 한 명이 손가락에 땀나도록 키보드를 치고 있더군요.

나중에 그 팀장은 팀 퍼포먼스 문제로 팀원으로 좌천당했습니다.

춢처: 애자일 이야기

2014년 11월 1일 토요일

(충격연구) 잘생기고 예쁘면 덜 아프다

미국 신시내티대 연구팀에 따르면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특정 질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고 한다. 24-35세 성인 1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매력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우울증, 이명증, 천식, 고혈압 등에 걸릴 확률이 낮다고 한다.

-ㅍㅍㅅㅅ-
http://ppss.kr/archives/32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