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즈에 올라온 Seth Stephens-Davidowitz의 글을 전문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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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가 혼동스러운가? 나는 확실히 혼동스럽다.
섹스가 혼동스러운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는 우리에게 믿을만한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친구, 애인, 의사, 설문조사원, 때로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3년 전 경제학부를 졸업했을 때, 나는 새로운 데이터, 그 중에서도 구글 검색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신선한 통찰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섹스에 대해서 써보라고 요청했다.
나는 신중했다. 왜냐하면 좀 더 많은 조사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젠 마침내 섹스에 대해 쓸 준비가 됐다. 당신이 섹스에 대해서 언제나 알고자 했지만, 질문하기에는 데이터가 없었던 모든 것이라고 이 글을 칭하겠다.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보자. 우리는 얼마나 섹스를 자주 할까? 전통적인 설문조사는 이 질문에 좋은 답을 주지 못했다.
나는 전통적인 소스인 General Social Survey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18세 이상의 이성애자 남성은 1년에 63번 섹스를 한다고 말했고, 그 중 23 퍼센트에서 콘돔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는 연간 16억 개 이상의 콘돔이 이성 간의 섹스에서 사용된다는걸 뜻한다.
이성애자 여성은 1년에 55번의 섹스를 하고, 그 중 16 퍼센트에서 콘돔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는 연간 11억개의 콘돔이 이성 간의 섹스에서 사용된다는걸 뜻한다.
남자와 여자 둘 중에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걸까?
둘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Nielsen에 따르면, 매년 6억 개보다 적은 수의 콘돔이 팔린다.
또한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자주 안전하지 않은 섹스를 하는지도 과장한다. 15세에서 44세 사이의 여성 중 약 11 퍼센트는 현재 임신을 하지 않고, 피임을 하지도 않으면서 성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얼마나 많이 섹스를 하는지에 대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가정을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매달 10퍼센트 정도는 임신을 한다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미 미국의 총 임신 수보다도 큰 숫자다 (출산 가능한 여성 113명중 하나꼴).
미혼 남성들은 1년에 평균 29개의 콘돔을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미국 내에서 결혼한 사람과 싱글인 사람들 모두에게 팔린 콘돔의 숫자보다도 더 많은 수를 사용한다는 얘기와 같다.
결혼한 사람들도 그들이 얼마나 자주 섹스를 하는지 과장한다. 65세 이하의 결혼한 남성은 설문조사에서 평균적으로 1주일에 한번 섹스를 한다고 대답한다. 오직 1 퍼센트만이 지난 한 해 간 섹스를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결혼한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적게 섹스를 한다고 대답하지만, 차이는 별로 크지 않다.
Chart1
구글 검색은 결혼 생활 동안의 섹스에 대해서 덜 활기찬 그림을 보여준다.
구글을 통해 보면, 결혼 생활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이다. “섹스리스 결혼”은 “불행한 결혼”보다 3.5배 더 많이 검색됐고, “사랑 없는 결혼”보다도 8배 더 많이 검색됐다. 배우자가 대화를 하려하지 않는다는 불평보다도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는 불평이 16배나 더 많았다.
결혼하지 않은 커플조차도 섹스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자주 불평한다. “섹스리스 관계”는 “폭력적인 관계” 바로 다음으로 많이 검색된다. (폭력적인 관계는 분명히 매우 중요한 주제다. 언젠가 다시 언급할 것이다.)
구글에선 미혼의 파트너가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불평이 결혼하지 않은 파트너가 답문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불평보다 5.5배나 더 많다. “여자친구”가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불평보다 남자친구가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불평이 더 많다. 반면 “남편”과 “아내” 대한 불평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한 가지 빠르게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나는 “내 여자친구”, 혹은 “내 아내”라는 검색의 대다수를 남자가 한 것이라고 가정했다. 나는 이전에 쓴 글에서 조사에서 나온 수치보다 더 많은 남성이 게이일 것이라고 얘기했고, 그래서 클로짓 게이들이 남몰래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고 있을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95 퍼센트의 남성이 이성애자라는 것 또한 알아냈다.)
이 모든걸 통틀어 얘기하면, 데이터는 미국인들이 1년에 30번 정도 섹스를 한다는 것 – 혹은 12일에 한번 – 을 보여준다.
섹스는 실로 재밌을 수 있다. 왜 이렇게 적게 하는 것일까?
구글 검색은 한가지 주된 이유를 보여준다: 엄청난 걱정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걱정들 중 많은 것들이 잘못 짚은 걱정들이다.
남자의 노이로제부터 시작해보자. 남자들이 자신의 성기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걱정의 정도는 다소 뿌리 깊은 수준이다. 우리는 구글 검색 하나만 놓고 봤을 땐 사용자의 성별을 알 수가 없었지만, “내 페니스는 ____다” 같이 성과 신체 부위에 대한 검색어를 통해 [사용자의 성별에 대해] 꽤 괜찮은 추측을 해낼 수 있었다.
남자들은 신체의 그 어떤 부위보다도 성기에 대해 더 많이 구글링한다: 폐, 간, 발, 귀, 코, 목구멍, 뇌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이 검색한다.
남자들은 어떻게 기타를 튜닝하는지, 어떻게 오믈렛을 만드는지, 어떻게 타이어를 바꾸는지 보다도 어떻게 페니스를 더 크게 만들 수 있을지를 많이 검색한다. 스테로이드에 대해서 가장 많이 검색된 남자들의 걱정은 스테로이드를 먹는게 페니스를 작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몸이나 마음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 남자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것은, 페니스가 작아지지는 않을까라는 질문이다.
사족: 구글에서 페니스에 대한 좀 더 일반적인 질문 중 하나는 “내 페니스가 얼마나 크지?”라는 질문이다. 남자들이 자로 직접 재보기보다는 구글에서 검색을 한다는 것은, 내 생각엔, 디지털 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도 페니스의 사이즈에 대해서 신경을 쓸까? 구글 검색에 따르면 거의 그렇지 않다. 여성들이 파트너의 성기에 대해서 검색을 한 번 할 때마다, 남자들은 자신의 성기에 대해서 170번의 검색을 한다.
실제로 여성들이 파트너의 성기에 대해서 걱정을 표하는 흔치 않은 경우엔, 대개 페니스의 사이즈에 대한 것이지만, 그게 페니스가 작아서는 아니다. 파트너의 성기 사이즈에 대해 불평하는 경우 중 40 퍼센트는 페니스가 너무 커서다. “고통”은 “섹스 하는 동안 ___ (___ during sex)” 이라는 문구에서 가장 많은 구글링된 단어다. (“출혈”, “소변”, “울음”, “방귀”가 상위 5개의 단어다.)
페니스의 사이즈를 바꾸고자 하는 검색의 1 퍼센트는 어떻게 페니스를 작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이다.
또다른 주된 성적인 고민은 너무 빨리 절정에 달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두번째로 가장 흔하게 하는 섹스에 대한 질문은 섹스를 어떻게 해야 더 오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한번 더, 남자들의 불안감은 여자들의 걱정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여자들은 어떻게 남자친구의 절정을 더 느리게 오게 할지를 어떻게 남자친구의 절정을 더 빠르게 오게 할지와 비슷한 빈도로 검색한다. 사실, 남자친구의 오르가즘과 관련해서 여자들이 하는 가장 흔한 고민은 그게 언제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왜 오르가즘을 느끼지 않느냐이다.
우리는 남성 신체의 불안감에 대해 자주 얘기하지 않는다. 개인의 외모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여성들에게 편향되어 있는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고정 관념만큼이나 기울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한 구글 애드워즈 분석에 따르면 (이 또한 익명의 집단적인 웹 활동을 기반으로 한다), 아름다움과 몸매에 대한 관심은 42 퍼센트가 남자였다.
체중 감량은 33 퍼센트가 남자였고, 성형 수술은 39 퍼센트가 남자였다. 가슴과 관련한 “어떻게 해야(how to)”에 대한 모든 검색어 중엔 20 퍼센트가 어떻게 해야 남자의 가슴을 없애버릴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새로운 데이터가 여성의 불안감에 대해서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가? 매년 미국에선 7백만 회 이상 가슴 수술에 대한 검색이 이루어진다. 공식적인 통계는 약 300,000명의 여성이 매년 가슴 수술을 받는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또한 상당한 수준으로 엉덩이에 대한 불안감도 보여준다. 비록 많은 여성들이 최근들어 그런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2004년, 미국의 일부에서 엉덩이에 변화를 주는 것과 관련해서 가장 흔하게 이루어진 검색은 어떻게 해야 엉덩이를 더 작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엉덩이를 더 크게 만드는 욕망은 압도적으로 흑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2010년이 시작되면서 커다란 엉덩이에 대한 욕망은 미국의 나머지 지역에서도 커져가기 시작했다. 큰 엉덩이에 대한 관심은 지난 4년간 3배나 커졌다. 2014년엔 모든 주에서 엉덩이를 작게 만드는 것에 대한 것보다 크게 만드는 것에 대한 검색이 더 많아졌다. 오늘날 미국에선 가슴 수술에 대한 검색이 5번 이루어지는 동안, 엉덩이 수술에 대한 검색이 한 번 이루어진다.
Chart 2
큰 엉덩이에 대한 여성들의 커져가는 선호가 남성의 취향과 잘 맞을까? 흥미롭게도 그렇다. “큰 엉덩이 야동”이라는 검색어 또한 흑인 사회에서 집중적이었던 것이 최근들어선 미국 전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외에 남성이 여성의 몸에서 원하는 건 뭐가 있을까? 그다지 놀랍지도 않지만, 남자들은 큰 가슴을 선호한다. 구체적인 야동 검색어의 12 퍼센트는 큰 가슴을 찾는 것이었다. 이는 작은 가슴 야동을 찾는 검색량에 비해서 거의 20배나 많은 수치였다.
하지만 이 얘기가 남성들이 여자가 가슴 수술을 받길 원한다는 것을 뜻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큰 가슴 야동 검색의 약 3 퍼센트만이 명시적으로 선천적인 가슴을 보길 원한다고 했다.
아내와 가슴 수술에 대한 구글 검색은 어떻게 아내에게 수술을 받으라고 설득할지에 대한 것과 왜 아내가 가슴 수술을 원하는지 당혹스럽다는 얘기가 거의 비슷하게 이루어졌다.
여자친구의 가슴에 대해 가장 자주 검색된 문장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나는 내 여자친구의 가슴을 사랑해”라는 검색어다. 남자들이 이 검색어를 구글에 입력해서 뭘 얻고자 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여성들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성기에 대해 질문한다. 사실 여성들도 남성들이 자신의 페니스에 대해 검색하는 것만큼이나 거의 비슷하게 자신들의 질(vagina)에 대해서 검색한다. 자신들의 질에 대한 여성들의 걱정은 대개 건강과 관련된 것들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검색들의 30 퍼센트는 건강 이외의 걱정들이 차지하고 있다. 여성들은 어떻게 면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조이는지, 어떻게 더 나은 맛을 내게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 중 눈에 띄는 공통된 고민은 어떻게 냄새를 나아지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질에서 생선 냄새가 나는 것에 대해 가장 자주 걱정한다. 그 다음엔 식초, 양파, 암모니아, 마늘, 치즈, 체취(body odor), 오줌, 빵, 표백제, 똥, 땀, 금속, 발, 쓰레기, 썩은 고기 순으로 냄새가 나지 않을지 걱정한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애인의 성기와 관련된 것은 많이 검색하지 않는다. 여자들이 남자친구의 성기에 대해 검색하는 것과 남자들이 여자친구의 성기에 대해 검색하는 것은 거의 같은 횟수다.
남자들이 애인의 성기에 대해 검색할 때는, 여성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것과 똑같은 것에 대해 불평하기 위해서다: 냄새 말이다. 대부분 남자들은 여자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어떻게 나쁜 냄새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을지 알고자 한다. 하지만 때때로 냄새에 대한 남자들의 질문은 스스로의 불안감을 폭로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종종 애인이 바람피우는지 알기 위한 단서로 냄새를 사용한다 – 예를 들면, 콘돔 냄새가 나진 않는지, 혹은 다른 남자의 정액 냄새가 나진 않는지 말이다.
나는 내가 구글 검색어와 다른 새로운 데이터들에 사로잡혀 있다는걸 안다. 나는 늘 스스로에게 너무 멀리 간게 아닐까 자문한다. 모든 연구자들은 얼마나 데이터에 근거를 두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이 데이터들은 모두 공개된 것이다. 틀림없이 다른 연구자들이 스스로의 해석을 덧붙이고 새로운 질문을 던질 것이다.
듀크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Dan Ariely는 이 데이터들을 해석하는데 주의해야할 이유를 알려줬다. 대부분의 데이터 소스들이 성적인 생각들을 과소평가하는 것과 달리, 그는 구글이 그것들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고 의심했다.
Ariely 교수는 “구글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과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한 것에 대한 반영입니다.”라고 말했다. 만약 오믈렛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자한다면, 친척들에게 물을 것이다. 아마 친척들에게 페니스가 커지는 것에 대해 물어볼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빅 데이터”에 대한 또다른 놀라운 점은 그게 종종 얼마나 작은가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구글 검색어가 수백만번 검색 됐을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들이 다양한 문구의 총 월별 검색량을 보여주는 그래픽을 보면 “이게 다야?”라고 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구글에 타이핑하지 않는다. 구글 데이터는 모두의 생각과 걱정에 대한 작은 샘플일 뿐이다. 시사하는 바는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나는 섹스에 대한 전문가라고 하긴 힘들다. 직업적으로 나는 심리학자도 아니고, 섹스 치료사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는 이렇다.
내가 구글 검색을 기반으로 한 거의 모든 연구는 세상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인종차별주의자이고 성차별주의자였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신고되지 않은 폭력에 고통받고 있었다. 하지만 섹스에 대한 새로운 데이터를 연구하고 나선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 데이터들은 날 덜 외롭게 만들어 줬다. 나는 구글 데이터를 이용한 이전의 연구에서 대개 사람들이 숨기는 잔인함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번엔 우리의 감춰진 불안감을 봤다. 남자와 여자는 이 불안감과 혼란 속에서 하나가 된다.
구글은 또한 우리에게 우리가 우려하는 것보다 덜 걱정해도 된다는 괜찮은 이유를 준다. 섹스의 파트너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우리의 깊숙한 공포들 상당수는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홀로 컴퓨터 앞에서 거짓말을 할 인센티브 없이, 파트너는 피상적이지 않고 너그러운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사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몸을 평가하는데 너무 바빠서 다른 사람의 몸을 평가할 에너지가 너무 적게 남아있는 셈이다.
아마도 섹스에 대해서 덜 걱정하게 된다면, 좀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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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5일 일요일
실수는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남이, <최종병기 활>에서
여러분들이 실수에 대해 갖는 느낌은 어떻습니까? 어떻게든 피해야 하고 알려지면 망신이다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좋은 학습의 기회가 될 수 있다에 가깝습니까? 여러분의 조직 문화는 어느쪽에 가까우리라 생각하십니까?
미국 산림청의 산불 정책이 10년도 전에 바뀐 것 아십니까? 예전에는 산불 예방을 강조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산불 예방 때문에 더 심각한 산불이 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불(불 대신 화재라고 재앙을 암시하게 쓰면 안됨) 생태학에서는 불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면 오히려 그 지역에 가연성 물질이 과도하게 축적되게 해서 결과적으로 한번 불이 나면(어떻게든 불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엄청난 규모의 불이 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자연상태에서는 적절한 시기에 작은 규모의 불이 나서 이런 큰 규모의 불이 잘 나지 않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론 와키모토는 불 공개 정책 관련하여 미의회에서 일부러 불을 질러야 할 수도 있음을 증언했죠. 그래서 산불 구호도 좀 바뀌었고, 이제는 불 예방에서 불 관리 쪽으로 초점이 바뀌었습니다.
라마누잔의 연구에서는 의학계의 실수(미국에서 의료사고로 죽는 사람 숫자가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많습니다)에 대해 이런 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미 중서부의 유명한 병원인데, 2006년 신생아실의 아이들에게 헤파린(혈액 항응고제)을 기준치의 1000배 투여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1주일에 걸쳐 5명의 간호사가 총 6명의 아이들에게 그렇게 투여를 했고, 그 아이 중 3명이 죽고 나머지 3명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그 병원에 2001년 헤파린 과다 투여로 비슷한 사고가 있었고(그 때는 환자가 사망하지는 않고 적절한 후속 조치가 되었음), 이 사고를 계기로 안전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그런 면에서 훌륭한 병원으로 인정되고 있었다는 점이죠. 특히 헤파린에 대해서는 실수를 예방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조사에 따르면 이 병원의 안전 프로세스가 너무 신뢰할 만(reliable)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약사가 헤파린을 준비할 때 새로운 SOP에 의해 실수할 여지가 없어졌다고 믿은 간호사들은 더 이상 약 투여시의 확인을 신경쓰지 않게 되었죠(실제로 그 방법이 효과적이기도 했고요, 그 사건 전까지는).
실수관리
마이클 프레제(Michael Frese)는 회사에서의 실수 문화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실수 문화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실수 예방과 실수 관리. 실수 예방은 행동에서 실수로 가는 경로를 차단하려고 합니다. 즉,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근데, 사실 이것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전문가도 1시간에 평균 3-5개의 실수를 저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 세상은 그렇게 엉망이 아닐까요? 그것은 전문가들이 실수를 조기에 발견하고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기(early detection & quick recovery) 때문입니다. 이렇게 실수는 어떻게든 할 수 밖에 없다. 대신 그 실수(예컨대 코딩하다가 == 대신 =를 쳤다든지)가 나쁜 결과(서버가 도미노 현상을 내며 죽는다든가, 그걸로 수술 기계가 오동작을 해서 사람이 다치거나)로 되기 전에 일찍 발견하고 빨리 고치면 된다는 겁니다. 이 태도를 실수 관리라고 합니다. 사실 하나의 경로가 더 있는데, 이미 결과가 난 실수에 대해서는 학습을 통해 다음 행동할 때 이렇게 하자는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이를 2차적 실수 예방이라고 함).
실수 예방 문화에서는 실수를 한 사람을 비난하고, 처벌하고, 따라서 실수를 감추고 그에 대해 논의하기 꺼리며 문제가 생겼을 때 협력도 덜하게 됩니다. 반대로 실수 관리 문화에서는 실수가 나쁜 결과를 내기 전에 도와서 빨리 회복하는 것을 돕고, 실수를 공개하고, 실수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거기에서 배우는 분위기가 생깁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실수 연구의 역사를 보면, 초기에는 기술적인 부분만 보다가 그 다음에는 인간적인 부분(결국 80%가 사람 실수라든지)을 보다가(특히 1979년 쓰리마일섬의 사고가 계기가 되었음), 이제는 문화적인 부분(컬럼비아호 사고가 계기가 되었음)을 이야기 합니다. 소위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라고 하는 것이 이 문화의 일부입니다. 항공 분야에서도 이것이 중요해서 CRM(Crew Resource Management) 등에서 이런 부분의 개선을 가져올 수 있었죠.
그런데, 이런 실수 관리 문화가 회사에 정말 도움이 될까(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비용이 많이 들텐데 비용 대비 효과가 어떤가) 하는 의문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연구가 있습니다. 우선 회사 문화가 실수 예방보다 관리에 가까울수록 그 기업의 혁신 정도가 더 높습니다. 그리고 실수 관리 문화일수록 회사의 수익성(총자산이익률로 계산)이 더 높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수가 없으면 학습하지 못합니다(고로 직원들에게 실수하지 말라고 하는 조직은 학습하지 말라고 하는 지시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학습이론의 기본입니다. 즉, 실수 관리를 하는 문화일수록 학습을 더 잘합니다.
자 그러면 이걸 조직과 개인 차원에서 활용하는 간단한 방법을 몇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직 차원의 이야기는 회사의 정책을 바꾸고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고 경영자나 임원의 의사소통방식을 바꾸고 하는 등의 좀 더 굵직굵직한(그리고 중요한) 것들이 있지만, 문화적으로 작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실수 축제
첫번째는 “실수 축제”라는 걸 하는 것인데 이 행사의 구조를 응용하면 여러 곳에 활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1. 업무 중(혹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점심시간) 대략 한 두 시간 내외(인원수에 따라 바뀌어야 함)의 시간을 잡습니다.
2. 될 수 있으면 다양한 업무 분야(혹은 다양한 프로젝트 관련) 사람들이 모이게 합니다.
3. 먹을 것, 마실 것을 준비해 두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4. 행사의 취지(집단적 학습)를 설명합니다.
5. 각자 “실수 기억하기” 양식(A4 한장)을 받고 거기에 글을 채웁니다. 시간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한 사람당 한 장만 쓰게 합니다.
6. 양식은 다음을 참고로 합니다.
· 제목 : 이 실수에 기억하기 좋은 이름을 붙입니다.
· 관련인 : 해당 실수에 관련있는(결과에 영향을 주거나 받거나) 사람들을 적습니다
· 타임라인 : 가로로 수평선을 그리고 어느 시점에 실수가 발생했고, 언제 최초 감지 되었고, 언제 최초 회복 작업을 시작했는지 표시합니다. 그 외에 중요한 사건들이 있으면 역시 표시합니다.
· 실수 시점 분석: 실수 시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입니다. 구체적으로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원래는 뭘 했어야, 혹은 안했어야 했는지를 적고, 왜 그런 실수가 일어났는지 적습니다.
· 감지(detect) : 무엇을 보거나 듣고 처음 실수를 감지했는지. 그리고 당시에 어떤 (부정적) 미래가 펼쳐지리라 추측했는지.
· 회복(recover) : 회복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당시 다른 옵션은 무엇이 있었는지. 왜 그 옵션을 선택했는지.
· 결과 : 그 후에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나.
· 교훈 : 다음번에 비슷한 실수를 어떻게 더 빨리 감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을지, 혹은 실수 발생 전 시점의 행동 자체를 어떻게 교정하면 좋을지.
7. 3-5명 정도가 한 그룹이 되도록 나눕니다. 처음 그룹은 되도록 같은 프로젝트, 같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게 합니다.
8. 한 사람씩 자신의 실수를 소개합니다. 자신이 채운 양식(특히 “타임라인”)을 보여주며 설명을 합니다.
9. 같은 그룹에서 듣는 사람들은 아래 세 가지의 질문 혹은 의견을 말합니다(이 때 아래 목록에 없는 비난, 질책이 나오지 않게 진행자가 주의할 것):
· 해당 사건, 실수의 순수 팩트를 묻는 질문 (왜보다는 누가, 무엇이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같은 질문이 좋음)
· “나도 실은…” 종류의, 자신도 비슷한 (혹은 “그 정도는 장난이야” 같은 더 심한) 실수를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 너무 길지 않도록 주의.
· 감지와 회복 면에서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혹은 다음에는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떤가 같은 제안.
10. 한 사람의 실수로 대략 10-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면 적당합니다.
11. 동일 그룹 내에서 한 명 더 실수를 공유합니다. (시간이 부족하면 스킵 가능)
12. 이번에는 아까 같은 그룹이었던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서 새롭게 그룹을 형성하게 합니다. 여기에서 다시 실수 공유하기를 반복합니다(위 7번부터).
13. 전체 인원수에 따라, 그리고 시간 제약에 따라 몇 번을 반복하고 난 뒤,
14. 이번 달(혹은 올해) 최고의 실수 투표를 합니다. 기준은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실수”라고 설명을 해줍니다.
15. 최고 득표를 한 실수에 대해 시상을 합니다(비싸지 않지만 내 돈 주고 살 것 같지 않은 재미난 상품, 혹은 근처 카페의 음료권 등이면 충분합니다). 수상자 소감을 합니다.
16. 맨 처음 만들었던 그룹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그룹 내에서 소감을 나눕니다.
17. 그룹별 소감을 돌아가며 발표하고 마칩니다.
위 실수 축제에는 사실 많은 이론과 연구 내용이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전체가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사용하시는 것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참가자들이 정말 재미있어하고 몰입해서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이 행사에서 꼭 지켜야하는 부분은 심리적 안정감을 해치지 않고, 더 높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간식 같은 걸 곁들여서 비공식적 행사인 듯 느끼게 만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놓치면 몇 시간을 해도 행사가 비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신뢰가 이미 심각하게 깨어진 조직이라면 이 행사를 하는 걸 좀 더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셔야 할 겁니다.
이번에는 개인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세 가지인데, 역시 응용하면 조직 차원에서도 효과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실수 노트
개인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첫 번째는 실수 노트 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중고등학교 때 많이들 쓰는 오답 노트 같은 겁니다. 본인이 뭔가 중대한 실수를 한 게 있다 싶으면 그날 실수가 일단락 되고 난 후에 노트에 기록을 합니다. 외부적 사건의 순서 같은 것 외에도 인지적인 부분을 많이 써야 합니다. 위 실수 축제의 양식을 참고하면 좋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중대한 의사결정(이 결정 때문에 그 이후의 행로가 다르게 펼쳐졌다고 할 수 있는)을 내린 시점이나, 상황판단(situation awareness, 아 이 산이 아닌갑다 같은)이 바뀐 지점 중심으로 정리해 보면 좋습니다. 저는 삽질 노트라고 하는데, 제가 30분 이상 삽질한 것이 있다 싶으면 꼭 이 노트(개인 위키)에 적습니다. 적기 시작한지 10년 이상 된 것 같습니다(오늘도 낮에 한 편 썼네요 ^^;).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실수 분석에서 끝나지 않고 그래서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 실수 축제를 참고하세요.
하마터면 사건과 외삽법
두 번째는 외삽법(extrapolation)이라고 부르는 기법입니다. 말이 좀 어렵습니다. 선분이 있을 때 그걸따라 더 연장하는 걸 말합니다. 이 기법은 전문성 연구에서 나왔습니다. 전문가가 빨리 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소위 니어 미스(near miss)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저는 “하마터면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실수가 있어서 하마터면 사건(위 실수 모형에서 “결과”에 해당)가 날 뻔 했는데 다행히 큰 일이 없었던 사건들을 일컫습니다. 이 니어 미스를 공유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심리적 안정감을 갖기가 비교적 쉽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누가 비난하거나 할 확률이 낮겠죠. 두 번째 큰 장점은 빈도수가 많다는 겁니다. 전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여러번 일어나야 합니다. 학습의 기본은 반복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건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학습은 요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대한 사건들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습이 없어 더 위험한 겁니다. 그러나 하마터면 사건은 자주 있습니다. 찾아보면 아주 많습니다. 이걸 활용하면 학습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미연방항공청의 ASRS(Aviation Safety Reporting System)가 좋은 예가 될 겁니다. 거기에는 하마터면 사건이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저장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보고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되며, 밝히더라도 그 신분은 보호되며, 심지어는 그 실수가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해도 당사자는 보호받습니다(의도적이지 않았고, 범죄가 아니었다면). 이 ASRS를 통해 항공산업은 안전성 면에서 많은 발전을 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겁니다. 이런 부분은 다른 산업에서 본받을만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때 오늘의 하마터면 사건을 생각해 봅니다. 만약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면 뭔가 잘못된 겁니다. 하루 8시간 이상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하마터면 사건이 몇 개는 있습니다. 내가 만약 그 때 이걸 대신 이렇게 했더라면, 혹은 운이 안좋아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다면 개고생 했을텐데 하는 거를 찾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1. 그 때 운이 좋았는데 뭐 하나가 잘못되었더라면 엄청난 개고생을 했을까?
2. 그 개고생은 어떤 식으로 펼쳐졌을까? 어떤 도미노 현상을 일으켰을까?
3. 만약 그 개고생이 펼쳐졌더라면 내가 어떻게 빨리 알아챌 수 있었을까?
4. 만약 그 개고생이 펼쳐졌더라면 내가 어떻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을까?
5. 내가 평소 일을 하는 방식을 수정하거나, 혹은 실수를 저지른 후 감지, 회복하는 과정에서 교정할 것이 있을까?
6. 역시 앞에서 이야기한 실수 축제나 실수 노트의 내용을 여기에 접목해서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 인터뷰와 회복력의 네 가지 요소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입니다. 우선 회복력 이야기를 합시다. 공학 분야에서도 이 실수 관리 문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공학에서는 이걸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죠. 이 분야의 권위자 중 한 명인 에릭 홀네이겔(Erik Hollnagel)은 회복력이 네 가지의 능력으로 구성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모니터링 – 대응하기 – 배우기 – 예상하기
모니터링은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약한 신호(weak signal)를 감지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대응하기는 그걸 감지했을 때, 혹은 사고가 터졌을 때 위급 상황 하에서 빨리 거기에 맞게 대응해서 회복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배우기는 과거의 성공 혹은 실패 사례에서 배워서(그리고 남과 공유해서) 앞으로의 행동을 조율하는 겁니다. 예상하기는 앞으로 어떤 일(성공이건 실패건)이 벌어질 잠재성이 있다는 걸 예상해서(과거에서 배우기를 토대로 하여) 그에 맞춰 행동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자기 분야의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서 이 사람의 실수 관리 능력에 대해 인터뷰를 합니다. 이 때 이 네 가지 능력 모형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전문가의 능력을 배우려면 그 사람이 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그 사람의 전문성의 핵심은 그 사람이 모르는 상황을 접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여기에서 확 벌어집니다. 전문가가 실수를 어떻게 찾고 어떻게 대처하는가, 차후에 행동을 어떻게 조정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여기에서 특히 감지하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난생 처음 먹는 종류의 고기를 먹으러 갔습니다. 종업원이 고기 몇 점을 불판에 올려주고 갑니다. 근데, 언제 먹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돌아오는 답이 “익으면 드세요“라면 어떻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언제 익었는지 판단할 전문성이 없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부분을 간과해서 교육이 실전에서 비효과적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문제가 터졌을 때 뭘 할지를 배우는 걸 넘어서 문제를 감지하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인터뷰를 할 때에는 앞서 이야기한 실수 축제, 실수 노트, 하마터면 사건과 외삽법 모두의 내용을 총동원하셔야 할 겁니다.
이상 여러가지 방법을 편의상 조직 차원, 개인 차원으로 나눠 이야기하긴 했으나 사실 그런 차원 구분 없이 응용 가능합니다. 이 방법들을 잘 활용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긴 한데,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연습하면 더 많은 도움을 얻을 겁니다.
물론 이 방법 외에도 많습니다. 교육을 하는 분이라면 고려해볼만한 방법으로는 실수 훈련이 있습니다. 보통 교육에서는 학생들의 실수를 최소화하도록 설계합니다. 교육 중에 실수를 적게 해야 실전에서 실수가 적을 거 아니겠냐는 논리죠. 하지만 연구결과는 반대입니다. 교육 중에 실수를 더 유도해야 오히려 응용력이 더 높아지고(교육학에서는 전이transfer라고 함) 실수가 줄어듭니다. 다양한 실수를 경험하는 걸 격려하고, 실수 사례를 배우고, 실수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가르치는 교육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전문가에게 실수 대처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요.
마지막으로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어 봤을 실수 예방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모 팀에서는 개발자별로 서버를 수십대씩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서버 하나가 죽었나 봅니다. 아침에 부장이 화가 나서 팀장을 자기 방으로 불렀습니다. 욕을 좀 먹었겠죠. 팀장이 그 방을 나오자 마자 했던 행동이 저한테는 좀 충격이었습니다. “XXX 누구 담당인가요?”
그 때부터 개발자들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키보드에 머리를 조아리고 내 서버인지 아닌지 확인하기에 바빴거든요. 시간이 조금 흐르자 한 두 명씩 밝은 얼굴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변의 (역시 밝은 얼굴의) 동료에게 커피 한 잔 하러 가자고 권합니다. 사람이 한 명 두 명 줄어듭니다. 마지막에 한 명이 손가락에 땀나도록 키보드를 치고 있더군요.
나중에 그 팀장은 팀 퍼포먼스 문제로 팀원으로 좌천당했습니다.
춢처: 애자일 이야기
여러분들이 실수에 대해 갖는 느낌은 어떻습니까? 어떻게든 피해야 하고 알려지면 망신이다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좋은 학습의 기회가 될 수 있다에 가깝습니까? 여러분의 조직 문화는 어느쪽에 가까우리라 생각하십니까?
미국 산림청의 산불 정책이 10년도 전에 바뀐 것 아십니까? 예전에는 산불 예방을 강조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산불 예방 때문에 더 심각한 산불이 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불(불 대신 화재라고 재앙을 암시하게 쓰면 안됨) 생태학에서는 불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면 오히려 그 지역에 가연성 물질이 과도하게 축적되게 해서 결과적으로 한번 불이 나면(어떻게든 불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엄청난 규모의 불이 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자연상태에서는 적절한 시기에 작은 규모의 불이 나서 이런 큰 규모의 불이 잘 나지 않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론 와키모토는 불 공개 정책 관련하여 미의회에서 일부러 불을 질러야 할 수도 있음을 증언했죠. 그래서 산불 구호도 좀 바뀌었고, 이제는 불 예방에서 불 관리 쪽으로 초점이 바뀌었습니다.
라마누잔의 연구에서는 의학계의 실수(미국에서 의료사고로 죽는 사람 숫자가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많습니다)에 대해 이런 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미 중서부의 유명한 병원인데, 2006년 신생아실의 아이들에게 헤파린(혈액 항응고제)을 기준치의 1000배 투여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1주일에 걸쳐 5명의 간호사가 총 6명의 아이들에게 그렇게 투여를 했고, 그 아이 중 3명이 죽고 나머지 3명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그 병원에 2001년 헤파린 과다 투여로 비슷한 사고가 있었고(그 때는 환자가 사망하지는 않고 적절한 후속 조치가 되었음), 이 사고를 계기로 안전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그런 면에서 훌륭한 병원으로 인정되고 있었다는 점이죠. 특히 헤파린에 대해서는 실수를 예방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조사에 따르면 이 병원의 안전 프로세스가 너무 신뢰할 만(reliable)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약사가 헤파린을 준비할 때 새로운 SOP에 의해 실수할 여지가 없어졌다고 믿은 간호사들은 더 이상 약 투여시의 확인을 신경쓰지 않게 되었죠(실제로 그 방법이 효과적이기도 했고요, 그 사건 전까지는).
실수관리
마이클 프레제(Michael Frese)는 회사에서의 실수 문화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실수 문화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실수 예방과 실수 관리. 실수 예방은 행동에서 실수로 가는 경로를 차단하려고 합니다. 즉,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근데, 사실 이것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전문가도 1시간에 평균 3-5개의 실수를 저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 세상은 그렇게 엉망이 아닐까요? 그것은 전문가들이 실수를 조기에 발견하고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기(early detection & quick recovery) 때문입니다. 이렇게 실수는 어떻게든 할 수 밖에 없다. 대신 그 실수(예컨대 코딩하다가 == 대신 =를 쳤다든지)가 나쁜 결과(서버가 도미노 현상을 내며 죽는다든가, 그걸로 수술 기계가 오동작을 해서 사람이 다치거나)로 되기 전에 일찍 발견하고 빨리 고치면 된다는 겁니다. 이 태도를 실수 관리라고 합니다. 사실 하나의 경로가 더 있는데, 이미 결과가 난 실수에 대해서는 학습을 통해 다음 행동할 때 이렇게 하자는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이를 2차적 실수 예방이라고 함).
실수 예방 문화에서는 실수를 한 사람을 비난하고, 처벌하고, 따라서 실수를 감추고 그에 대해 논의하기 꺼리며 문제가 생겼을 때 협력도 덜하게 됩니다. 반대로 실수 관리 문화에서는 실수가 나쁜 결과를 내기 전에 도와서 빨리 회복하는 것을 돕고, 실수를 공개하고, 실수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거기에서 배우는 분위기가 생깁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실수 연구의 역사를 보면, 초기에는 기술적인 부분만 보다가 그 다음에는 인간적인 부분(결국 80%가 사람 실수라든지)을 보다가(특히 1979년 쓰리마일섬의 사고가 계기가 되었음), 이제는 문화적인 부분(컬럼비아호 사고가 계기가 되었음)을 이야기 합니다. 소위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라고 하는 것이 이 문화의 일부입니다. 항공 분야에서도 이것이 중요해서 CRM(Crew Resource Management) 등에서 이런 부분의 개선을 가져올 수 있었죠.
그런데, 이런 실수 관리 문화가 회사에 정말 도움이 될까(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비용이 많이 들텐데 비용 대비 효과가 어떤가) 하는 의문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연구가 있습니다. 우선 회사 문화가 실수 예방보다 관리에 가까울수록 그 기업의 혁신 정도가 더 높습니다. 그리고 실수 관리 문화일수록 회사의 수익성(총자산이익률로 계산)이 더 높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수가 없으면 학습하지 못합니다(고로 직원들에게 실수하지 말라고 하는 조직은 학습하지 말라고 하는 지시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학습이론의 기본입니다. 즉, 실수 관리를 하는 문화일수록 학습을 더 잘합니다.
자 그러면 이걸 조직과 개인 차원에서 활용하는 간단한 방법을 몇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직 차원의 이야기는 회사의 정책을 바꾸고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고 경영자나 임원의 의사소통방식을 바꾸고 하는 등의 좀 더 굵직굵직한(그리고 중요한) 것들이 있지만, 문화적으로 작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실수 축제
첫번째는 “실수 축제”라는 걸 하는 것인데 이 행사의 구조를 응용하면 여러 곳에 활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1. 업무 중(혹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점심시간) 대략 한 두 시간 내외(인원수에 따라 바뀌어야 함)의 시간을 잡습니다.
2. 될 수 있으면 다양한 업무 분야(혹은 다양한 프로젝트 관련) 사람들이 모이게 합니다.
3. 먹을 것, 마실 것을 준비해 두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4. 행사의 취지(집단적 학습)를 설명합니다.
5. 각자 “실수 기억하기” 양식(A4 한장)을 받고 거기에 글을 채웁니다. 시간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한 사람당 한 장만 쓰게 합니다.
6. 양식은 다음을 참고로 합니다.
· 제목 : 이 실수에 기억하기 좋은 이름을 붙입니다.
· 관련인 : 해당 실수에 관련있는(결과에 영향을 주거나 받거나) 사람들을 적습니다
· 타임라인 : 가로로 수평선을 그리고 어느 시점에 실수가 발생했고, 언제 최초 감지 되었고, 언제 최초 회복 작업을 시작했는지 표시합니다. 그 외에 중요한 사건들이 있으면 역시 표시합니다.
· 실수 시점 분석: 실수 시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입니다. 구체적으로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원래는 뭘 했어야, 혹은 안했어야 했는지를 적고, 왜 그런 실수가 일어났는지 적습니다.
· 감지(detect) : 무엇을 보거나 듣고 처음 실수를 감지했는지. 그리고 당시에 어떤 (부정적) 미래가 펼쳐지리라 추측했는지.
· 회복(recover) : 회복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당시 다른 옵션은 무엇이 있었는지. 왜 그 옵션을 선택했는지.
· 결과 : 그 후에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나.
· 교훈 : 다음번에 비슷한 실수를 어떻게 더 빨리 감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을지, 혹은 실수 발생 전 시점의 행동 자체를 어떻게 교정하면 좋을지.
7. 3-5명 정도가 한 그룹이 되도록 나눕니다. 처음 그룹은 되도록 같은 프로젝트, 같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게 합니다.
8. 한 사람씩 자신의 실수를 소개합니다. 자신이 채운 양식(특히 “타임라인”)을 보여주며 설명을 합니다.
9. 같은 그룹에서 듣는 사람들은 아래 세 가지의 질문 혹은 의견을 말합니다(이 때 아래 목록에 없는 비난, 질책이 나오지 않게 진행자가 주의할 것):
· 해당 사건, 실수의 순수 팩트를 묻는 질문 (왜보다는 누가, 무엇이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같은 질문이 좋음)
· “나도 실은…” 종류의, 자신도 비슷한 (혹은 “그 정도는 장난이야” 같은 더 심한) 실수를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 너무 길지 않도록 주의.
· 감지와 회복 면에서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혹은 다음에는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떤가 같은 제안.
10. 한 사람의 실수로 대략 10-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면 적당합니다.
11. 동일 그룹 내에서 한 명 더 실수를 공유합니다. (시간이 부족하면 스킵 가능)
12. 이번에는 아까 같은 그룹이었던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서 새롭게 그룹을 형성하게 합니다. 여기에서 다시 실수 공유하기를 반복합니다(위 7번부터).
13. 전체 인원수에 따라, 그리고 시간 제약에 따라 몇 번을 반복하고 난 뒤,
14. 이번 달(혹은 올해) 최고의 실수 투표를 합니다. 기준은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실수”라고 설명을 해줍니다.
15. 최고 득표를 한 실수에 대해 시상을 합니다(비싸지 않지만 내 돈 주고 살 것 같지 않은 재미난 상품, 혹은 근처 카페의 음료권 등이면 충분합니다). 수상자 소감을 합니다.
16. 맨 처음 만들었던 그룹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그룹 내에서 소감을 나눕니다.
17. 그룹별 소감을 돌아가며 발표하고 마칩니다.
위 실수 축제에는 사실 많은 이론과 연구 내용이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전체가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사용하시는 것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참가자들이 정말 재미있어하고 몰입해서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이 행사에서 꼭 지켜야하는 부분은 심리적 안정감을 해치지 않고, 더 높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간식 같은 걸 곁들여서 비공식적 행사인 듯 느끼게 만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놓치면 몇 시간을 해도 행사가 비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신뢰가 이미 심각하게 깨어진 조직이라면 이 행사를 하는 걸 좀 더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셔야 할 겁니다.
이번에는 개인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세 가지인데, 역시 응용하면 조직 차원에서도 효과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실수 노트
개인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첫 번째는 실수 노트 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중고등학교 때 많이들 쓰는 오답 노트 같은 겁니다. 본인이 뭔가 중대한 실수를 한 게 있다 싶으면 그날 실수가 일단락 되고 난 후에 노트에 기록을 합니다. 외부적 사건의 순서 같은 것 외에도 인지적인 부분을 많이 써야 합니다. 위 실수 축제의 양식을 참고하면 좋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중대한 의사결정(이 결정 때문에 그 이후의 행로가 다르게 펼쳐졌다고 할 수 있는)을 내린 시점이나, 상황판단(situation awareness, 아 이 산이 아닌갑다 같은)이 바뀐 지점 중심으로 정리해 보면 좋습니다. 저는 삽질 노트라고 하는데, 제가 30분 이상 삽질한 것이 있다 싶으면 꼭 이 노트(개인 위키)에 적습니다. 적기 시작한지 10년 이상 된 것 같습니다(오늘도 낮에 한 편 썼네요 ^^;).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실수 분석에서 끝나지 않고 그래서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 실수 축제를 참고하세요.
하마터면 사건과 외삽법
두 번째는 외삽법(extrapolation)이라고 부르는 기법입니다. 말이 좀 어렵습니다. 선분이 있을 때 그걸따라 더 연장하는 걸 말합니다. 이 기법은 전문성 연구에서 나왔습니다. 전문가가 빨리 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소위 니어 미스(near miss)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저는 “하마터면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실수가 있어서 하마터면 사건(위 실수 모형에서 “결과”에 해당)가 날 뻔 했는데 다행히 큰 일이 없었던 사건들을 일컫습니다. 이 니어 미스를 공유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심리적 안정감을 갖기가 비교적 쉽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누가 비난하거나 할 확률이 낮겠죠. 두 번째 큰 장점은 빈도수가 많다는 겁니다. 전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여러번 일어나야 합니다. 학습의 기본은 반복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건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학습은 요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대한 사건들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습이 없어 더 위험한 겁니다. 그러나 하마터면 사건은 자주 있습니다. 찾아보면 아주 많습니다. 이걸 활용하면 학습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미연방항공청의 ASRS(Aviation Safety Reporting System)가 좋은 예가 될 겁니다. 거기에는 하마터면 사건이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저장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보고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되며, 밝히더라도 그 신분은 보호되며, 심지어는 그 실수가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해도 당사자는 보호받습니다(의도적이지 않았고, 범죄가 아니었다면). 이 ASRS를 통해 항공산업은 안전성 면에서 많은 발전을 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겁니다. 이런 부분은 다른 산업에서 본받을만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때 오늘의 하마터면 사건을 생각해 봅니다. 만약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면 뭔가 잘못된 겁니다. 하루 8시간 이상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하마터면 사건이 몇 개는 있습니다. 내가 만약 그 때 이걸 대신 이렇게 했더라면, 혹은 운이 안좋아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다면 개고생 했을텐데 하는 거를 찾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1. 그 때 운이 좋았는데 뭐 하나가 잘못되었더라면 엄청난 개고생을 했을까?
2. 그 개고생은 어떤 식으로 펼쳐졌을까? 어떤 도미노 현상을 일으켰을까?
3. 만약 그 개고생이 펼쳐졌더라면 내가 어떻게 빨리 알아챌 수 있었을까?
4. 만약 그 개고생이 펼쳐졌더라면 내가 어떻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을까?
5. 내가 평소 일을 하는 방식을 수정하거나, 혹은 실수를 저지른 후 감지, 회복하는 과정에서 교정할 것이 있을까?
6. 역시 앞에서 이야기한 실수 축제나 실수 노트의 내용을 여기에 접목해서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 인터뷰와 회복력의 네 가지 요소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입니다. 우선 회복력 이야기를 합시다. 공학 분야에서도 이 실수 관리 문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공학에서는 이걸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죠. 이 분야의 권위자 중 한 명인 에릭 홀네이겔(Erik Hollnagel)은 회복력이 네 가지의 능력으로 구성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모니터링 – 대응하기 – 배우기 – 예상하기
모니터링은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약한 신호(weak signal)를 감지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대응하기는 그걸 감지했을 때, 혹은 사고가 터졌을 때 위급 상황 하에서 빨리 거기에 맞게 대응해서 회복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배우기는 과거의 성공 혹은 실패 사례에서 배워서(그리고 남과 공유해서) 앞으로의 행동을 조율하는 겁니다. 예상하기는 앞으로 어떤 일(성공이건 실패건)이 벌어질 잠재성이 있다는 걸 예상해서(과거에서 배우기를 토대로 하여) 그에 맞춰 행동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자기 분야의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서 이 사람의 실수 관리 능력에 대해 인터뷰를 합니다. 이 때 이 네 가지 능력 모형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전문가의 능력을 배우려면 그 사람이 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그 사람의 전문성의 핵심은 그 사람이 모르는 상황을 접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여기에서 확 벌어집니다. 전문가가 실수를 어떻게 찾고 어떻게 대처하는가, 차후에 행동을 어떻게 조정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여기에서 특히 감지하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난생 처음 먹는 종류의 고기를 먹으러 갔습니다. 종업원이 고기 몇 점을 불판에 올려주고 갑니다. 근데, 언제 먹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돌아오는 답이 “익으면 드세요“라면 어떻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언제 익었는지 판단할 전문성이 없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부분을 간과해서 교육이 실전에서 비효과적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문제가 터졌을 때 뭘 할지를 배우는 걸 넘어서 문제를 감지하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인터뷰를 할 때에는 앞서 이야기한 실수 축제, 실수 노트, 하마터면 사건과 외삽법 모두의 내용을 총동원하셔야 할 겁니다.
이상 여러가지 방법을 편의상 조직 차원, 개인 차원으로 나눠 이야기하긴 했으나 사실 그런 차원 구분 없이 응용 가능합니다. 이 방법들을 잘 활용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긴 한데,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연습하면 더 많은 도움을 얻을 겁니다.
물론 이 방법 외에도 많습니다. 교육을 하는 분이라면 고려해볼만한 방법으로는 실수 훈련이 있습니다. 보통 교육에서는 학생들의 실수를 최소화하도록 설계합니다. 교육 중에 실수를 적게 해야 실전에서 실수가 적을 거 아니겠냐는 논리죠. 하지만 연구결과는 반대입니다. 교육 중에 실수를 더 유도해야 오히려 응용력이 더 높아지고(교육학에서는 전이transfer라고 함) 실수가 줄어듭니다. 다양한 실수를 경험하는 걸 격려하고, 실수 사례를 배우고, 실수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가르치는 교육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전문가에게 실수 대처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요.
마지막으로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어 봤을 실수 예방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모 팀에서는 개발자별로 서버를 수십대씩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서버 하나가 죽었나 봅니다. 아침에 부장이 화가 나서 팀장을 자기 방으로 불렀습니다. 욕을 좀 먹었겠죠. 팀장이 그 방을 나오자 마자 했던 행동이 저한테는 좀 충격이었습니다. “XXX 누구 담당인가요?”
그 때부터 개발자들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키보드에 머리를 조아리고 내 서버인지 아닌지 확인하기에 바빴거든요. 시간이 조금 흐르자 한 두 명씩 밝은 얼굴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변의 (역시 밝은 얼굴의) 동료에게 커피 한 잔 하러 가자고 권합니다. 사람이 한 명 두 명 줄어듭니다. 마지막에 한 명이 손가락에 땀나도록 키보드를 치고 있더군요.
나중에 그 팀장은 팀 퍼포먼스 문제로 팀원으로 좌천당했습니다.
춢처: 애자일 이야기
2015년 1월 2일 금요일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The Price of Admission)
퓰리처상 수상 기자 대니얼 골든 저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The Price of Admission)'
-미국 명문대들은 기부입학, 동문 자녀, 교수 자녀, 체육특기생 등의 특례입학을 통하여 백인 특권층 자제 다수에게 특혜를 주고 있음. 그리고 정치인, 고위법조인들 본인 및 그 자제들의 상당수가 동문 특혜 등의 수혜자. 미 국회의사당은 아이비리그의 동문 클럽.
-한 조사에 따르면 한 아이비리그 대학의 경우 어떤 특혜도 없이 지원하는 학생들은 정원의 40%만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
-좋은 예로 스탠퍼드대 재단 이사인 로버트 배스라는 석유재벌의 딸 마가렛과 한국계 헨리 박은 같은 고교 급우. 헨리 박은 마가렛보다 SAT 점수가 무려 340점이나 높았는데도 스탠퍼드에 낙방, 마가렛은 합격.
-하버드의 고액기부자 모임인 하버드대 자원위원회(최소 100만불 이상 기부) 위원 중 대학입학연령 자녀가 있는 회원수는 340명. 하버드에 진학한 회원 자녀수는 336명. 평균 합격선보다 SAT 점수가 200점이나 부족한 경우 등도 대기자 명단(Z명단)에 올렸다가 뒤늦게 입학시키는 등의 옆문 제공. 대표적인 자격미달 특례입학자는 앨 고어 3세.
-입학사정관제는 상류층 자녀를 위한 VIP 초대장으로 기능하고 있음
-동문 자녀 특혜는 20세기 전반부에 유대인 수재의 입학 급증을 억제하여 백인 부유층 자녀를 보호하기 위하여 시작. 다트머스대는 1922년 입학지침을 발표하여 학업가능성 뿐 아니라 성격, 운동실력, 지리적 안배(유대인이 뉴욕시에 몰려 살기 때문), 동문 자
녀 여부를 입학 근거로 추가.
-체육특기생 제도는 농구 등 흑인, 소수인종에게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는 스쿼시, 요트, 스키, 조정, 수구, 펜싱, 종합마술, 심지어 폴로 등의 귀족스포츠 특기생을 대거 합격시킴으로써 특권층 자제 입학 경로 제공
-대학 스포츠 특기생 수에 양성평등을 촉구하는 법적 규제가 생기자 명문대들은 육상, 레슬링 등 서민층 남성 스포츠팀을 없애고 승마, 조정 등 부잣집 딸 특례 입학자로 구성된 팀을 신설하여 성비만 맞추고 계층간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음
-교수 및 고위 행정직 자녀들 특례도 막대. 자격미달 자녀들을 입학시킬 뿐 아니라 등록금까지 감면.
-이제 유대인 차별은 사라졌고, 한국, 중국 등 아시아계 차별이 극심. 같은 고교 출신 중 한 한국계 학생은 SAT 1530점 이상(1600점 만점이던 시기임), 학년 14등인데 최상위 6개 학교에 모두 불합격. 유사 사례 비일비재. 어려운 환경에서 고생하며 공부한 점을 부각해도, 그런 배려는 흑인, 히스패닉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고려됨(SAT 1,110점대 흑인 동급생은 컬럼비아대 합격. UCLA 경우 같은 어려운 환경의 학생인데 한국계는 불합격, 그보다 SAT 점수가 무려 560점이나 낮은 히스패닉계 학생은 합격한 사례 있음). 아시아계는 백인 부유층이 받는 특혜, 흑인 등이 받는 소수인종 우대 사이에 끼어 불이익.
-예일대 통계에 따르면 아시아계 신입생의 SAT 평균 점수는 1,500점에 육박하여 백인 평균보다 40점 높고, 흑인 및 남미계 평균보다 140점~165점 높음
-하버드대 입학사정관들에 대한 조사 결과 아시아계에 대해 '조용함/수줍음, 수학/과학 지향, 성실, 의사가 되고 싶어함' 등의 공통점이 너무 심하여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며 낮은 점수를 준다고 함
-수학, 과학 만점받도록 부모에 의해 조종되는 로봇 이미지 고정관념 심각
-실제로도 부모들의 노력 결과 유사점 너무 많은게 현실. 수학 잘하고, 악기 하나씩은 다 하고, 자원봉사는 병원에서 하고, 주말에는 모국어 학교에 다니는 등 비슷한 스펙 관리로 제살 깎아먹기.
-예외적인 명문대 모델,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철저히 과학 재능 및 열정만으로 탁월한 인재만 선발. 위에 언급한 거의 모든 특혜 철저히 배제. 입학위원회 위원인 교수 자제도 불합격하고 MIT로 진학한 사례. 2003년 신입생 SAT 평균 점수 1,505점. 수학 평균은 만점에서 25점 모자란 775점. 전체 학생 85%가 공립고교 출신. 아이비리그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학교지만 동문 및 교수진에서 노벨상 수상자 30명 배출. 1999년 U.S. 뉴스&월드 리포트 발표 전미 대학 순위 1위로 선정됨(이후 타 명문대의 공격에 선정 기준이 바뀌어 순위 하락)
-가혹한 정도의 교과과정. 뛰어난 두뇌 없이는 졸업 불능.
-입학위원회에 학생 대표가 교수 대표와 동수로 참여.
-칼텍 출신인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는 2001년 당시 사상 최고액인 6억 달러를 모교에 기부. 그러나 그의 두 아들은 칼택에 못가고 새너제이 주립대학, 산타클라라대 진학. 칼텍은 6억 불 기부자에게 다른 방식으로 감사를 표함. 학교 과학팀이 발견한 소행성에 고든 무어의 이름을 붙여 헌정.
-미국 명문대들은 기부입학, 동문 자녀, 교수 자녀, 체육특기생 등의 특례입학을 통하여 백인 특권층 자제 다수에게 특혜를 주고 있음. 그리고 정치인, 고위법조인들 본인 및 그 자제들의 상당수가 동문 특혜 등의 수혜자. 미 국회의사당은 아이비리그의 동문 클럽.
-한 조사에 따르면 한 아이비리그 대학의 경우 어떤 특혜도 없이 지원하는 학생들은 정원의 40%만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
-좋은 예로 스탠퍼드대 재단 이사인 로버트 배스라는 석유재벌의 딸 마가렛과 한국계 헨리 박은 같은 고교 급우. 헨리 박은 마가렛보다 SAT 점수가 무려 340점이나 높았는데도 스탠퍼드에 낙방, 마가렛은 합격.
-하버드의 고액기부자 모임인 하버드대 자원위원회(최소 100만불 이상 기부) 위원 중 대학입학연령 자녀가 있는 회원수는 340명. 하버드에 진학한 회원 자녀수는 336명. 평균 합격선보다 SAT 점수가 200점이나 부족한 경우 등도 대기자 명단(Z명단)에 올렸다가 뒤늦게 입학시키는 등의 옆문 제공. 대표적인 자격미달 특례입학자는 앨 고어 3세.
-입학사정관제는 상류층 자녀를 위한 VIP 초대장으로 기능하고 있음
-동문 자녀 특혜는 20세기 전반부에 유대인 수재의 입학 급증을 억제하여 백인 부유층 자녀를 보호하기 위하여 시작. 다트머스대는 1922년 입학지침을 발표하여 학업가능성 뿐 아니라 성격, 운동실력, 지리적 안배(유대인이 뉴욕시에 몰려 살기 때문), 동문 자
녀 여부를 입학 근거로 추가.
-체육특기생 제도는 농구 등 흑인, 소수인종에게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는 스쿼시, 요트, 스키, 조정, 수구, 펜싱, 종합마술, 심지어 폴로 등의 귀족스포츠 특기생을 대거 합격시킴으로써 특권층 자제 입학 경로 제공
-대학 스포츠 특기생 수에 양성평등을 촉구하는 법적 규제가 생기자 명문대들은 육상, 레슬링 등 서민층 남성 스포츠팀을 없애고 승마, 조정 등 부잣집 딸 특례 입학자로 구성된 팀을 신설하여 성비만 맞추고 계층간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음
-교수 및 고위 행정직 자녀들 특례도 막대. 자격미달 자녀들을 입학시킬 뿐 아니라 등록금까지 감면.
-이제 유대인 차별은 사라졌고, 한국, 중국 등 아시아계 차별이 극심. 같은 고교 출신 중 한 한국계 학생은 SAT 1530점 이상(1600점 만점이던 시기임), 학년 14등인데 최상위 6개 학교에 모두 불합격. 유사 사례 비일비재. 어려운 환경에서 고생하며 공부한 점을 부각해도, 그런 배려는 흑인, 히스패닉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고려됨(SAT 1,110점대 흑인 동급생은 컬럼비아대 합격. UCLA 경우 같은 어려운 환경의 학생인데 한국계는 불합격, 그보다 SAT 점수가 무려 560점이나 낮은 히스패닉계 학생은 합격한 사례 있음). 아시아계는 백인 부유층이 받는 특혜, 흑인 등이 받는 소수인종 우대 사이에 끼어 불이익.
-예일대 통계에 따르면 아시아계 신입생의 SAT 평균 점수는 1,500점에 육박하여 백인 평균보다 40점 높고, 흑인 및 남미계 평균보다 140점~165점 높음
-하버드대 입학사정관들에 대한 조사 결과 아시아계에 대해 '조용함/수줍음, 수학/과학 지향, 성실, 의사가 되고 싶어함' 등의 공통점이 너무 심하여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며 낮은 점수를 준다고 함
-수학, 과학 만점받도록 부모에 의해 조종되는 로봇 이미지 고정관념 심각
-실제로도 부모들의 노력 결과 유사점 너무 많은게 현실. 수학 잘하고, 악기 하나씩은 다 하고, 자원봉사는 병원에서 하고, 주말에는 모국어 학교에 다니는 등 비슷한 스펙 관리로 제살 깎아먹기.
-예외적인 명문대 모델,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철저히 과학 재능 및 열정만으로 탁월한 인재만 선발. 위에 언급한 거의 모든 특혜 철저히 배제. 입학위원회 위원인 교수 자제도 불합격하고 MIT로 진학한 사례. 2003년 신입생 SAT 평균 점수 1,505점. 수학 평균은 만점에서 25점 모자란 775점. 전체 학생 85%가 공립고교 출신. 아이비리그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학교지만 동문 및 교수진에서 노벨상 수상자 30명 배출. 1999년 U.S. 뉴스&월드 리포트 발표 전미 대학 순위 1위로 선정됨(이후 타 명문대의 공격에 선정 기준이 바뀌어 순위 하락)
-가혹한 정도의 교과과정. 뛰어난 두뇌 없이는 졸업 불능.
-입학위원회에 학생 대표가 교수 대표와 동수로 참여.
-칼텍 출신인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는 2001년 당시 사상 최고액인 6억 달러를 모교에 기부. 그러나 그의 두 아들은 칼택에 못가고 새너제이 주립대학, 산타클라라대 진학. 칼텍은 6억 불 기부자에게 다른 방식으로 감사를 표함. 학교 과학팀이 발견한 소행성에 고든 무어의 이름을 붙여 헌정.
2014년 11월 1일 토요일
(충격연구) 잘생기고 예쁘면 덜 아프다
미국 신시내티대 연구팀에 따르면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특정 질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고 한다. 24-35세 성인 1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매력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우울증, 이명증, 천식, 고혈압 등에 걸릴 확률이 낮다고 한다.
-ㅍㅍㅅㅅ-
http://ppss.kr/archives/32886
-ㅍㅍㅅㅅ-
http://ppss.kr/archives/32886
2014년 10월 21일 화요일
스웨덴 모델의 전개 과정, 매커니즘, 성공 요인, 그리고 실행 시 고려 사항
출처: 이조훈
m.blog.naver.com/pretty119/220141533748
I. 들어가며
지난 번에 스웨덴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 몇 자 적어본 바 있다. 이에 관련하여 스웨덴 모델의 바탕이 된 렌-마이드너 모델에 대해 모 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선배가 언급하여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더니, 참으로 재미있는 모델이었다. 그래서 책을 몇 권 사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그 후로 한 두 권 읽었습니다.) 국가의 운영 뿐만 아니라 잘 수정하면 기업 경영에서도 참고할 부분이 있다.
2. 렌-마이드너 모델(스웨덴 복지 모델)
2.1. 렌-마이드너 모델의 개요
당시 스웨덴은 현재 한국과 유사한 수출 중심의 경제였으며, 수출경쟁력을 가진 대기업 중심의 경제였다. 그런데, 이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른 산업과 평준화하여 평등 사회로 나아갔다.....
라면 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스웨덴은 높은 인플레이션율과 산업경쟁력 약화로 인하여 실업률이 늘어나고 있었다. Philips Curve(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역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고용이 증가하면 인플레가 발생하고, 인플레이션을 잡으면 실업율이 늘어난다.)에 따라 양자를 모두 추구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 Long Term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민주노총에 해당하는 단일노조(LO)가 노동자의 임금을 평준화하고 이를 우리 나라 전경련에 해당하는 기업 대표(SAF)와 합의한다. 즉, 노동자의 임금이 수출 대기업은 100이고, 내수 중소기업은 60인데 이를 평준화하여 모든 노동자가 80의 임금을 받는 협약을 체결한다. 우리 나라로 이야기하자면 GS칼텍스, 포스코,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임금을 깍고, 삼각김밥 공장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서 서로 임금이 비슷해졌다.
그 결과 대기업, 수출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져 빨리 성장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현대자동차는 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저 더 빨리 성장하고, 높은 임금을 감당할 수 없는 내수 기업, 중소기업은 파산하게 만든다. 기업 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모든 산업에서 다른 국가에 비해 경쟁력이 높은 곳은 낮은 임금으로 혜택을 보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은 임금 상승으로 인하여 퇴출된다. 한마디로 수출 중심, 대기업 중심으로 산업과 기업을 구조 조정 한다. 그리고 임금 대비 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에서는 마구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다. (종신 고용은 없다.)
이렇게 낮은 임금을 바탕으로 경쟁력이 더욱 향상된 수출 대기업이 충분히 성장하여 다른 산업에서 퇴출된 노동자들을 흡수한다. 그래서, 독점 자본에 온갖 혜택을 제공해서 성장을 드라이브한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1. 전 산업의 노동자의 임금 평준화 -> 2. 물가/임금 안정 -> 3. 대기업/수출 기업 경쟁력 향상, 한계 산업 퇴출, 한계 기업 파산 -> 4. 노동자의 고용 보장 폐지,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하도록 노동 유연성 보장 -> 5. 급격히 성장한 수출 대기업에 의한 퇴출 산업 노동자의 고용 흡수 -> 6. 동일 임금으로 폭넓은 담세층 확보 및 세금 부과 -> 7. 재원을 바탕으로 사회 안전망의 확보 -> 8. 폭넓은 사회 복지 제도로 해고로 인한 사회 문제가 적어 자유로운 해고와 이직으로 노동 유연성 가속
이제부터 렌-마이드너 모델의 특이한 점이 도드라지는데, 이렇게 해고된 노동자는 국가로부터 실업수당과 재교육을 받아서 경쟁력이 향상된 수출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다. 구조 조정의 결과로 대기업/수출기업이 충분히 성장해야 퇴출된 인력들을 흡수 할 수 잇다.
결국 스웨덴 모델은 개별 기업이 종신 고용을 통해 구체적인 개별 직장의 고용 안정성(Job Security)를 보장하는 게 아니다. 자유로운 이동을 통하여 전체적인 고용 유지 상태(Employment Security)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고용주인 기업에게 노동유연성(Flexibility)을 극단적으로 보장하고, 노동자들의 이동성(mobility)을 높이기 위하여 국가가 직업 교육으로 지원한다.
그리고, 수출대기업이 성장하여 퇴출된 산업과 기업의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수출대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모든 규제를 철폐한다. 스웨덴은 대기업이 잘 되어야 하므로 우리나라에서 문제시 되는 순환 출자가 허용되고, 법인세는 매우 낮고, 독점 자본이 금융자본과 결탁하는 걸 막기 위한 금산 분리도 없다.
대신, 고용 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짐에 따라 사회안전망을 폭넓게 제공해야 하는데, 평준화된 임금을 받는 폭 넓은 노동 계층에 집중적으로 세금을 부과하여 재원을 마련하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
2.2. 렌-마이드너 모델의 흥미로운 점이 모델의 흥미로운 점은
첫째, 사회주의 or 사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시장친화적인 아이디어를 적극 도입한다 . 대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성장을 이끌고, 그 과정에서 철저히 시장 친화적인 방법(한계 기업의 퇴출, 해고를 폭 넓게 인정하여 노동유연성의 확보, 대기업의 성장을 가로 막는 규제의 철폐, 낮은 수준의 법인세, 정부의 긴축 재정을 통한 물가 안정)으로 접근한다.
둘째, 이와 같은 산업의 구조조정 방안이 기업이 아닌 LO(노동자 연합)의 제안으로 관철되었다는 점이다.(렌과 마이드너 모두 LO에 소속된 economist였다.) 노동자가 구조 조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기업과 산업의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실제로 마이드너는 시장의 힘에 의해 구조 조정을 당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자율 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이해 관계가 엇갈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었다는 점이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깍고,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고,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중소 기업과 내수 기업이 망하여 중소기업 노동자가 퇴출된다는 것을 어떻게 합의해 내었을까? 노조조직율이 80%여서 LO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기업은 발렌베리 가문이 스웨덴의 민간 경제의 대다수를 지배하여 합의의 당사자가 간결했다고 하더라도, 놀라울 따름이다. 이 모델은 화이트칼러 노조와 블루컬러 노조가 동일 임금에 합의해야 하고, 기술 혁신으로 등장한 새로운 직업 예를 들어, IT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도 동일 임금에 합의하도록 해야 하는데, 나중에 언급할 균열 지점이 여기에도 있다.
2.3. 렌-마이드너 모델의 지향점
렌-마이드너 모델은 궁극적으로 대기업의 초과 이윤에 대한 견제를 위해, 이윤의 20%에 해당하는 신주를 발행하게 하고, 이 신주를 임금 노동자가 조성한 펀드에서 매집하도록 하여 노조가 대주주가 되도록 구상되었다. 하지만 이부분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노조에 의한 기업 지배를 펀드 조성과 신주 인수를 통한 증자 참여라는 지극히 시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것도 흥미롭다.
2.4. 소결
렌-마이드너 모델은 스웨덴을 일컫는 [독점 자본과 복지 사회]의 공존이라고 요약된다.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경쟁력 없는 기업과 산업을 퇴출시키고, 그 혜택으로 충분히 성장하여 퇴출된 기업의 노동자들을 흡수한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의 담세 계층을 폭넓게 하여 재정적 안정을 가져오고, 이러한 재정적 안정은 사회보장제도를 강화시켜 더욱 노동 유연성을 강화하고 수출대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선순환을 가져온다.
3. 렌-마이드너 모델이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과 Key Success Factor
위의 내용들은 몇 권의 책과 웹서핑을 통해서 내가 이해한 바를 정리한 것이고, 이제 이 모델이 어려운 이유와 균열 지점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3.1. 대규모 소비 시장
수출 대기업이 한계 산업에서 퇴출된 노동자들을 모두 흡수해주고 실업 상태에 있는 산업예비군(K. Marx의 표현이다.)까지 고용을 하려면, 자국의 소비 시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IKEA와 중소 가구업체까지 모두 같은 임금을 적용하거나 IKEA와 김밥천국까지 같은 임금을 적용한다고 해보자. 일부 프리미엄 브랜드를 제외하고 대중적인 제품을 만드는 중소 가구업체들에서 퇴출된 인원이 100명이라고 할 때, 같은 수의 가구를 만들기 위해 IKEA에서는 70명만 필요로 한다면 이 모델은 작동하지 않는다. IKEA가 120명을 추가로 고용해주어야 하는데, 자국에서 사람들이 집에 식탁을 하나 가지고 있다가 2개를 보유하겠다고 하나 더 살리는 없지 않은가. 이 문제는 결국 IKEA의 개선된 경쟁력이 퇴출된 기업이 감당하던 수요보다 더 큰 수요를 창출하는 시장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스웨덴은 바로 지근 거리에 그런 시장을 가지고 있는데, 그곳은 바로 미국이나 EU의 다른 국가들이다. 결국 100명이 퇴출되고 그 가운데 80명은 기존 중소 업체에서 감당하던 수요를 충족하는데 고용되고, 20명 + 알파는 그렇게 낮아진 임금을 바탕으로 원가 경쟁력이 개선되어 이를테면 미국 가구 시장에서 늘어난 수요/판매에 대응하는데 고용된다.
3.2. 소국으로 작은 경제 규모와 제한적 산업 보유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모델은 동일 임금에 의한 대규모의 기업과 산업의 구조 조정을 바탕으로 한다. 인구가 몇 백만 수준이어서 대부분의 산업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도시 국가라면 이런 식의 구조 조정이나 산업의 퇴출과 이동이 기민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한 나라의 인구가 1억쯤 되어서 다양한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일본을 가정해보자. 일본은 없는 산업이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산업을 다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서 세계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없으나 자국 시장에서 근근히 먹고 사는 사양 산업들을 구조 조정하는 게 가능할까? 구조 조정의 규모를 감당하기도 힘들고, 사회적 혼란도 커서 아비규환이 될 것이다. 하나의 국가와 경제 체제를 가지고 실험을 하다가 실패하면 생지옥이 열릴 것이다.
(참고: 우리가 생지옥으로 기억하는 IMF때 우리나라는 수십년 사이에 처음으로 -5%성장을 했다. 즉, 경제 성장율이 -5%면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고 수많은 가정이 파괴된다. 자연과학처럼 좋은 아이디어인데 한 번 호기심 해소 차원에서 실험해보자고 하지 말자.) FTA를 통해 농업을 퇴출 시키고 핸드폰이나 자동차 좀 더 팔아보겠다는 정도도 합의가 불가능한게 현실인데, 전체 산업들을 구조 조정한다는 건 그냥 학자들의 탁상 공론일 뿐 현실화되기 어렵다.
자영업이나 내수 산업의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는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몰락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기업의 피고용인이 된다는 건 마치 [자본론]에서 K.Marx가 쁘띠 부르조아의 몰락으로 자본의 축적이 가속화되는 것을 묘사하는 걸 연상시키지 않나.
3.3. 합의를 위한 채널 간소화
위에서 언급한 산업이 다양하지 않은 소국이어야 한다는 조건과 비슷한 얘기다. 스웨덴에서는 저 합의가 우리나라의 민주 노총에 해당하는 LO와 전경련에 해당하는 SAF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노조조직률이 80%에 달해서 LO가 대표성을 띄고 있었고, 사용자 측인 SAF 역시 스웨덴의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발렌베리 가문이 주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찾아보기 귀찮은데 발렌베리 가문이 스웨덴 전체 민간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삼성의 비중이 비할 바가 아니다.-
과연 다른 나라에서 수많은 이해 관계자와 contact point들을 간소화하여 각자 하나의 대표에게 활동권한이 위임될 수 있을까. 노사정위원회는 좋은 시도였다. 하지만, 노사정위원회에서 대표들이 가지는 대표성은 얼마나 강한 것일까. 민주노총의 조직률이 얼마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전체 근로자 가운데 20%나 될까? 전경련에서 삼성이 총대를 매고 합의하면 경쟁력의 요소가 전혀 다른 현대자동차가 따를 수 있을까.(자본집약적인 삼성과 하청업체를 포함하여 노동집약적인 현대차 그룹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지는 않을까)
3.4. 변화 관리 - 세계화의 위협에 대한 방어, 동일 임금에 대한 합의 유지
이 모델의 균열 지점 중에 하나는 세계화이다. 누군가 자기만 잘 살겠다고 더 높은 임금을 찾아서 해외로 이주하면 자국에는 경쟁력이 없는 인적 자원만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본인만 더 잘 살겠다고, 렌-마이드너 모델에서 이탈하면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세금을 내줄 담세 계층은 허약해진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도 고임금 노동자(금속노조)가 중심이 되어 렌-마이드너 모델에서 탈퇴했었다.
너무 진지하게 써서, 말도 안되는 농담을 하나 해본다. 프랑스 PSG에서 100억이 넘는 연봉을 받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라는 스웨덴 선수가 있다. 만약 바르셀로나에게 메시가 없어진다면 언제 즐라탄에게 손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축구 클럽의 선수들은 LO에 가입되어 있지도 않고 동일 임금도 적용되지 않겠지만, 어떤 기업이나 산업 분야에도 즐라탄 같은 사람이 있다. 수학자, 의학, 컴퓨터 프로그래밍처럼 local 의존성이 적은 인적 자본들에게 더 좋은 보수와 대우를 제시하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즉,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노동과 자본의 이동에 대한 방어막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렌-마이드너 모델과 이를 넘어선 스웨덴 모델의 enabler가 등장한다고 생각한다. 더 높은 임금이나 더 좋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성공이 아니며 행복은 청빈한 삶과 자유에서 비롯된다는 정서를 보편화시켜야 한다. 또 이를 끊임 없이 변화 관리해야 한다. 경제적 보상 외에 다른 추상적 가치... 이를테면 세금을 통해 사회의 수호자가 되고 있다는 존경과 명예 같은 것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북유럽에 관한 글들을 읽다보면 종종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매우 속된 것이고, 그것을 추구하거나 언급하는 것은 속물스러운 것으로 폄하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반면, 미국의 모델에서 -비록 최근에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적어도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시절을 보면 - 부는 긍정적 가치를 추구한 결과로서 그것은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젼화 관리 되어왔다.
3.5. 수출 지향적 경제 구조로 인한 취약성과 재정 건전성의 확보
대기업, 수출 기업 중심으로 산업이 구조조정되면서, 스웨덴 모델은 커다란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높은 대외의존도는 경제의 변동성을 증가시킨다. 이를테면,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한 미국의 수요 침체가 발생하는 경우에 이에 연동되기 쉽다. 따라서, 높은 세율을 바탕으로 한 국가의 재정 지출(GDP 중 40~50%를 조세로 가져가서 재정 지출을 함)이 이러한 대외 경제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은 쉽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 정책을 사용하기 위한 재정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세입 대비 더 많은 지출로 재정 적자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이 위기에 불을 끌 재정이 바닥나기 때문에 엄격한 재정 준칙으로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재원이 뒷받침된 복지 정책을 펼친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경제 위기에서 불을 끄는 건 물이 아니라 돈이다.- 그래서, 스웨덴은 지방정부가 적자 재정을 편성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중앙 정부도 명목 지출의 상한선을 설정해 놓고 이를 넘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스웨덴 정부는 포퓰리즘이 득세한 남미와 달리 넓은 복지 제도에도 불구하고 98년 이후로 계속 흑자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3.6. 지속적 혁신과 재교육
렌-마이드너 모델은 기업의 성장과 경쟁력 향상이라는 시장주의적인 사고와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사민주의의 결합이다. [독점 자본과 복지의 결합]이라는 쉽게 붙지 않는 것을 강제로 억지로 붙인 것이 아니라, 서로를 자극하고 선순환하도록 설계하였다. 그렇다면, 기업의 경쟁력 향상... 즉, 지속적으로 미국이라는 거대 소비시장에 어떻게 더 많이 팔아먹을까에 관한 방법이 필요하다. 성장을 통한 복지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성장이라는 하나의 바퀴가 멈추면 자전거는 넘어지고 복지라는 나머지 바퀴도 덩달아 멈춰 버린다.
그래서, 스웨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기업의 '혁신'이다. (혁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얼마전에 간략히 다룬바 있다) 그리고, 국가는 산업의 변동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훌륭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노동자들을 일종의 고급 인적 자본-다기능공-으로 만든다. 성장하는 산업에 인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운전하다가 든 생각 중에 하나는 도요타처럼 하나의 기업이 종신 고용을 해서 먹고는 살게 해주면서 대신 극한까지 지속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게 혁신을 국가 단위로 확장한 것은 아닌가라는 잡생각도 들었다.)
4. 결론
지난 번 글이 받은 비판에 대해 몇 마디 변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지난 번 글 [왜 모든 나라가 스웨덴 모델을 택하지 않는가]는 작년 이때 쯤 회사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다가 떠오른 생각을 웹서핑하고 OECD 자료를 찾아서 몇 시간만에 대충 휘갈긴 글이다. 스웨덴에 대해 가본 적도 없고, 관련된 책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현상을 기술한 글이다. 스웨덴을 횡단면 분석(현 시점의 몇몇 지표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 상태를 묘사하는데 대부분을 할애하였다.
그리고, 내가 economist도 아니고, 무슨 연구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대학 시절 경제학 수업도 거의 안 들었고,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없는 그냥 공장 다니면서 자료 보고 문제 해결을 하는 걸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현재 눈에 보이는 현상이 이러한 원인 때문은 아닐까라며 하나의 지적인 유희로 가설을 세워본 것이었다.
이번 글은 어떻게 스웨덴은 그것을 해냈을까라는 의문에서 올해 초에 좀 더 웹서핑도 해보고, 책도 한 두 권 읽어보고 나서 쓴 글이다. 물론 가장 긴 내용을 할애한 3번은 역시 그냥 내가 생각한 감이고 가설에 불과하다.
이제, 결론을 내보도록 한다. 스웨덴 모델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연구해 볼 가치가 있으며, 사회 구성원의 전체적인 후생을 증가시키며 롤스 식의 정의의 관념에도 부합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말 하기 힘들고 어려워서 "모두가 마음을 선하게 먹으면.." 또는 "누구를 바꾸면..."이라는 식으로 바라보지 말고 어떻게 이 난관을 뚫고 해낼까에 좀 더 매진했으면 한다.
변명 1. 국제경제 상의 환율과 수지에 대한 문제, 국제 금융의 발달로 인한 자본의 이동으로 인한 문제도 다루지 않는다. -한마디로 헷지 펀드의 환율 공격 같은 문제-
변명 2. 원래 내일 써서 후배인 김희준에게 검수를 좀 받으려고 했으나, 사랑하는 딸이 일찍 잠드는 바람에 일필휘지로 휘갈김. 퇴고도 하기 싫어서 비문이 난무할 겁니다. 예전에 김훈씨를 통해서 바라본 [글쓰기의 원칙]을 써놓고 정작 하나도 안 지킴.
변명 3. fact가 잘못 되었을 수도 있고, 각종 숫자와 지표로 뒷받침 되지 않는 말 뿐인 '소설'에 불과하지만, 돈 받고 쓰는 것도 아니고 이 분야에 문외한인데 각종 통계를 찾아보며 source를 달고 정량적으로 뒷받침 하는 건 귀찮아서 못하겠습니다.
m.blog.naver.com/pretty119/220141533748
I. 들어가며
지난 번에 스웨덴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 몇 자 적어본 바 있다. 이에 관련하여 스웨덴 모델의 바탕이 된 렌-마이드너 모델에 대해 모 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선배가 언급하여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더니, 참으로 재미있는 모델이었다. 그래서 책을 몇 권 사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그 후로 한 두 권 읽었습니다.) 국가의 운영 뿐만 아니라 잘 수정하면 기업 경영에서도 참고할 부분이 있다.
2. 렌-마이드너 모델(스웨덴 복지 모델)
2.1. 렌-마이드너 모델의 개요
당시 스웨덴은 현재 한국과 유사한 수출 중심의 경제였으며, 수출경쟁력을 가진 대기업 중심의 경제였다. 그런데, 이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른 산업과 평준화하여 평등 사회로 나아갔다.....
라면 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스웨덴은 높은 인플레이션율과 산업경쟁력 약화로 인하여 실업률이 늘어나고 있었다. Philips Curve(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역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고용이 증가하면 인플레가 발생하고, 인플레이션을 잡으면 실업율이 늘어난다.)에 따라 양자를 모두 추구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 Long Term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민주노총에 해당하는 단일노조(LO)가 노동자의 임금을 평준화하고 이를 우리 나라 전경련에 해당하는 기업 대표(SAF)와 합의한다. 즉, 노동자의 임금이 수출 대기업은 100이고, 내수 중소기업은 60인데 이를 평준화하여 모든 노동자가 80의 임금을 받는 협약을 체결한다. 우리 나라로 이야기하자면 GS칼텍스, 포스코,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임금을 깍고, 삼각김밥 공장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서 서로 임금이 비슷해졌다.
그 결과 대기업, 수출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져 빨리 성장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현대자동차는 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저 더 빨리 성장하고, 높은 임금을 감당할 수 없는 내수 기업, 중소기업은 파산하게 만든다. 기업 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모든 산업에서 다른 국가에 비해 경쟁력이 높은 곳은 낮은 임금으로 혜택을 보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은 임금 상승으로 인하여 퇴출된다. 한마디로 수출 중심, 대기업 중심으로 산업과 기업을 구조 조정 한다. 그리고 임금 대비 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에서는 마구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다. (종신 고용은 없다.)
이렇게 낮은 임금을 바탕으로 경쟁력이 더욱 향상된 수출 대기업이 충분히 성장하여 다른 산업에서 퇴출된 노동자들을 흡수한다. 그래서, 독점 자본에 온갖 혜택을 제공해서 성장을 드라이브한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1. 전 산업의 노동자의 임금 평준화 -> 2. 물가/임금 안정 -> 3. 대기업/수출 기업 경쟁력 향상, 한계 산업 퇴출, 한계 기업 파산 -> 4. 노동자의 고용 보장 폐지,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하도록 노동 유연성 보장 -> 5. 급격히 성장한 수출 대기업에 의한 퇴출 산업 노동자의 고용 흡수 -> 6. 동일 임금으로 폭넓은 담세층 확보 및 세금 부과 -> 7. 재원을 바탕으로 사회 안전망의 확보 -> 8. 폭넓은 사회 복지 제도로 해고로 인한 사회 문제가 적어 자유로운 해고와 이직으로 노동 유연성 가속
이제부터 렌-마이드너 모델의 특이한 점이 도드라지는데, 이렇게 해고된 노동자는 국가로부터 실업수당과 재교육을 받아서 경쟁력이 향상된 수출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다. 구조 조정의 결과로 대기업/수출기업이 충분히 성장해야 퇴출된 인력들을 흡수 할 수 잇다.
결국 스웨덴 모델은 개별 기업이 종신 고용을 통해 구체적인 개별 직장의 고용 안정성(Job Security)를 보장하는 게 아니다. 자유로운 이동을 통하여 전체적인 고용 유지 상태(Employment Security)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고용주인 기업에게 노동유연성(Flexibility)을 극단적으로 보장하고, 노동자들의 이동성(mobility)을 높이기 위하여 국가가 직업 교육으로 지원한다.
그리고, 수출대기업이 성장하여 퇴출된 산업과 기업의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수출대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모든 규제를 철폐한다. 스웨덴은 대기업이 잘 되어야 하므로 우리나라에서 문제시 되는 순환 출자가 허용되고, 법인세는 매우 낮고, 독점 자본이 금융자본과 결탁하는 걸 막기 위한 금산 분리도 없다.
대신, 고용 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짐에 따라 사회안전망을 폭넓게 제공해야 하는데, 평준화된 임금을 받는 폭 넓은 노동 계층에 집중적으로 세금을 부과하여 재원을 마련하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
2.2. 렌-마이드너 모델의 흥미로운 점이 모델의 흥미로운 점은
첫째, 사회주의 or 사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시장친화적인 아이디어를 적극 도입한다 . 대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성장을 이끌고, 그 과정에서 철저히 시장 친화적인 방법(한계 기업의 퇴출, 해고를 폭 넓게 인정하여 노동유연성의 확보, 대기업의 성장을 가로 막는 규제의 철폐, 낮은 수준의 법인세, 정부의 긴축 재정을 통한 물가 안정)으로 접근한다.
둘째, 이와 같은 산업의 구조조정 방안이 기업이 아닌 LO(노동자 연합)의 제안으로 관철되었다는 점이다.(렌과 마이드너 모두 LO에 소속된 economist였다.) 노동자가 구조 조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기업과 산업의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실제로 마이드너는 시장의 힘에 의해 구조 조정을 당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자율 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이해 관계가 엇갈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었다는 점이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깍고,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고,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중소 기업과 내수 기업이 망하여 중소기업 노동자가 퇴출된다는 것을 어떻게 합의해 내었을까? 노조조직율이 80%여서 LO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기업은 발렌베리 가문이 스웨덴의 민간 경제의 대다수를 지배하여 합의의 당사자가 간결했다고 하더라도, 놀라울 따름이다. 이 모델은 화이트칼러 노조와 블루컬러 노조가 동일 임금에 합의해야 하고, 기술 혁신으로 등장한 새로운 직업 예를 들어, IT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도 동일 임금에 합의하도록 해야 하는데, 나중에 언급할 균열 지점이 여기에도 있다.
2.3. 렌-마이드너 모델의 지향점
렌-마이드너 모델은 궁극적으로 대기업의 초과 이윤에 대한 견제를 위해, 이윤의 20%에 해당하는 신주를 발행하게 하고, 이 신주를 임금 노동자가 조성한 펀드에서 매집하도록 하여 노조가 대주주가 되도록 구상되었다. 하지만 이부분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노조에 의한 기업 지배를 펀드 조성과 신주 인수를 통한 증자 참여라는 지극히 시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것도 흥미롭다.
2.4. 소결
렌-마이드너 모델은 스웨덴을 일컫는 [독점 자본과 복지 사회]의 공존이라고 요약된다.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경쟁력 없는 기업과 산업을 퇴출시키고, 그 혜택으로 충분히 성장하여 퇴출된 기업의 노동자들을 흡수한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의 담세 계층을 폭넓게 하여 재정적 안정을 가져오고, 이러한 재정적 안정은 사회보장제도를 강화시켜 더욱 노동 유연성을 강화하고 수출대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선순환을 가져온다.
3. 렌-마이드너 모델이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과 Key Success Factor
위의 내용들은 몇 권의 책과 웹서핑을 통해서 내가 이해한 바를 정리한 것이고, 이제 이 모델이 어려운 이유와 균열 지점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3.1. 대규모 소비 시장
수출 대기업이 한계 산업에서 퇴출된 노동자들을 모두 흡수해주고 실업 상태에 있는 산업예비군(K. Marx의 표현이다.)까지 고용을 하려면, 자국의 소비 시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IKEA와 중소 가구업체까지 모두 같은 임금을 적용하거나 IKEA와 김밥천국까지 같은 임금을 적용한다고 해보자. 일부 프리미엄 브랜드를 제외하고 대중적인 제품을 만드는 중소 가구업체들에서 퇴출된 인원이 100명이라고 할 때, 같은 수의 가구를 만들기 위해 IKEA에서는 70명만 필요로 한다면 이 모델은 작동하지 않는다. IKEA가 120명을 추가로 고용해주어야 하는데, 자국에서 사람들이 집에 식탁을 하나 가지고 있다가 2개를 보유하겠다고 하나 더 살리는 없지 않은가. 이 문제는 결국 IKEA의 개선된 경쟁력이 퇴출된 기업이 감당하던 수요보다 더 큰 수요를 창출하는 시장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스웨덴은 바로 지근 거리에 그런 시장을 가지고 있는데, 그곳은 바로 미국이나 EU의 다른 국가들이다. 결국 100명이 퇴출되고 그 가운데 80명은 기존 중소 업체에서 감당하던 수요를 충족하는데 고용되고, 20명 + 알파는 그렇게 낮아진 임금을 바탕으로 원가 경쟁력이 개선되어 이를테면 미국 가구 시장에서 늘어난 수요/판매에 대응하는데 고용된다.
3.2. 소국으로 작은 경제 규모와 제한적 산업 보유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모델은 동일 임금에 의한 대규모의 기업과 산업의 구조 조정을 바탕으로 한다. 인구가 몇 백만 수준이어서 대부분의 산업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도시 국가라면 이런 식의 구조 조정이나 산업의 퇴출과 이동이 기민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한 나라의 인구가 1억쯤 되어서 다양한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일본을 가정해보자. 일본은 없는 산업이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산업을 다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서 세계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없으나 자국 시장에서 근근히 먹고 사는 사양 산업들을 구조 조정하는 게 가능할까? 구조 조정의 규모를 감당하기도 힘들고, 사회적 혼란도 커서 아비규환이 될 것이다. 하나의 국가와 경제 체제를 가지고 실험을 하다가 실패하면 생지옥이 열릴 것이다.
(참고: 우리가 생지옥으로 기억하는 IMF때 우리나라는 수십년 사이에 처음으로 -5%성장을 했다. 즉, 경제 성장율이 -5%면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고 수많은 가정이 파괴된다. 자연과학처럼 좋은 아이디어인데 한 번 호기심 해소 차원에서 실험해보자고 하지 말자.) FTA를 통해 농업을 퇴출 시키고 핸드폰이나 자동차 좀 더 팔아보겠다는 정도도 합의가 불가능한게 현실인데, 전체 산업들을 구조 조정한다는 건 그냥 학자들의 탁상 공론일 뿐 현실화되기 어렵다.
자영업이나 내수 산업의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는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몰락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기업의 피고용인이 된다는 건 마치 [자본론]에서 K.Marx가 쁘띠 부르조아의 몰락으로 자본의 축적이 가속화되는 것을 묘사하는 걸 연상시키지 않나.
3.3. 합의를 위한 채널 간소화
위에서 언급한 산업이 다양하지 않은 소국이어야 한다는 조건과 비슷한 얘기다. 스웨덴에서는 저 합의가 우리나라의 민주 노총에 해당하는 LO와 전경련에 해당하는 SAF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노조조직률이 80%에 달해서 LO가 대표성을 띄고 있었고, 사용자 측인 SAF 역시 스웨덴의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발렌베리 가문이 주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찾아보기 귀찮은데 발렌베리 가문이 스웨덴 전체 민간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삼성의 비중이 비할 바가 아니다.-
과연 다른 나라에서 수많은 이해 관계자와 contact point들을 간소화하여 각자 하나의 대표에게 활동권한이 위임될 수 있을까. 노사정위원회는 좋은 시도였다. 하지만, 노사정위원회에서 대표들이 가지는 대표성은 얼마나 강한 것일까. 민주노총의 조직률이 얼마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전체 근로자 가운데 20%나 될까? 전경련에서 삼성이 총대를 매고 합의하면 경쟁력의 요소가 전혀 다른 현대자동차가 따를 수 있을까.(자본집약적인 삼성과 하청업체를 포함하여 노동집약적인 현대차 그룹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지는 않을까)
3.4. 변화 관리 - 세계화의 위협에 대한 방어, 동일 임금에 대한 합의 유지
이 모델의 균열 지점 중에 하나는 세계화이다. 누군가 자기만 잘 살겠다고 더 높은 임금을 찾아서 해외로 이주하면 자국에는 경쟁력이 없는 인적 자원만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본인만 더 잘 살겠다고, 렌-마이드너 모델에서 이탈하면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세금을 내줄 담세 계층은 허약해진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도 고임금 노동자(금속노조)가 중심이 되어 렌-마이드너 모델에서 탈퇴했었다.
너무 진지하게 써서, 말도 안되는 농담을 하나 해본다. 프랑스 PSG에서 100억이 넘는 연봉을 받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라는 스웨덴 선수가 있다. 만약 바르셀로나에게 메시가 없어진다면 언제 즐라탄에게 손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축구 클럽의 선수들은 LO에 가입되어 있지도 않고 동일 임금도 적용되지 않겠지만, 어떤 기업이나 산업 분야에도 즐라탄 같은 사람이 있다. 수학자, 의학, 컴퓨터 프로그래밍처럼 local 의존성이 적은 인적 자본들에게 더 좋은 보수와 대우를 제시하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즉,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노동과 자본의 이동에 대한 방어막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렌-마이드너 모델과 이를 넘어선 스웨덴 모델의 enabler가 등장한다고 생각한다. 더 높은 임금이나 더 좋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성공이 아니며 행복은 청빈한 삶과 자유에서 비롯된다는 정서를 보편화시켜야 한다. 또 이를 끊임 없이 변화 관리해야 한다. 경제적 보상 외에 다른 추상적 가치... 이를테면 세금을 통해 사회의 수호자가 되고 있다는 존경과 명예 같은 것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북유럽에 관한 글들을 읽다보면 종종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매우 속된 것이고, 그것을 추구하거나 언급하는 것은 속물스러운 것으로 폄하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반면, 미국의 모델에서 -비록 최근에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적어도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시절을 보면 - 부는 긍정적 가치를 추구한 결과로서 그것은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젼화 관리 되어왔다.
3.5. 수출 지향적 경제 구조로 인한 취약성과 재정 건전성의 확보
대기업, 수출 기업 중심으로 산업이 구조조정되면서, 스웨덴 모델은 커다란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높은 대외의존도는 경제의 변동성을 증가시킨다. 이를테면,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한 미국의 수요 침체가 발생하는 경우에 이에 연동되기 쉽다. 따라서, 높은 세율을 바탕으로 한 국가의 재정 지출(GDP 중 40~50%를 조세로 가져가서 재정 지출을 함)이 이러한 대외 경제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은 쉽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 정책을 사용하기 위한 재정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세입 대비 더 많은 지출로 재정 적자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이 위기에 불을 끌 재정이 바닥나기 때문에 엄격한 재정 준칙으로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재원이 뒷받침된 복지 정책을 펼친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경제 위기에서 불을 끄는 건 물이 아니라 돈이다.- 그래서, 스웨덴은 지방정부가 적자 재정을 편성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중앙 정부도 명목 지출의 상한선을 설정해 놓고 이를 넘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스웨덴 정부는 포퓰리즘이 득세한 남미와 달리 넓은 복지 제도에도 불구하고 98년 이후로 계속 흑자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3.6. 지속적 혁신과 재교육
렌-마이드너 모델은 기업의 성장과 경쟁력 향상이라는 시장주의적인 사고와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사민주의의 결합이다. [독점 자본과 복지의 결합]이라는 쉽게 붙지 않는 것을 강제로 억지로 붙인 것이 아니라, 서로를 자극하고 선순환하도록 설계하였다. 그렇다면, 기업의 경쟁력 향상... 즉, 지속적으로 미국이라는 거대 소비시장에 어떻게 더 많이 팔아먹을까에 관한 방법이 필요하다. 성장을 통한 복지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성장이라는 하나의 바퀴가 멈추면 자전거는 넘어지고 복지라는 나머지 바퀴도 덩달아 멈춰 버린다.
그래서, 스웨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기업의 '혁신'이다. (혁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얼마전에 간략히 다룬바 있다) 그리고, 국가는 산업의 변동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훌륭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노동자들을 일종의 고급 인적 자본-다기능공-으로 만든다. 성장하는 산업에 인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운전하다가 든 생각 중에 하나는 도요타처럼 하나의 기업이 종신 고용을 해서 먹고는 살게 해주면서 대신 극한까지 지속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게 혁신을 국가 단위로 확장한 것은 아닌가라는 잡생각도 들었다.)
4. 결론
지난 번 글이 받은 비판에 대해 몇 마디 변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지난 번 글 [왜 모든 나라가 스웨덴 모델을 택하지 않는가]는 작년 이때 쯤 회사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다가 떠오른 생각을 웹서핑하고 OECD 자료를 찾아서 몇 시간만에 대충 휘갈긴 글이다. 스웨덴에 대해 가본 적도 없고, 관련된 책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현상을 기술한 글이다. 스웨덴을 횡단면 분석(현 시점의 몇몇 지표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 상태를 묘사하는데 대부분을 할애하였다.
그리고, 내가 economist도 아니고, 무슨 연구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대학 시절 경제학 수업도 거의 안 들었고,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없는 그냥 공장 다니면서 자료 보고 문제 해결을 하는 걸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현재 눈에 보이는 현상이 이러한 원인 때문은 아닐까라며 하나의 지적인 유희로 가설을 세워본 것이었다.
이번 글은 어떻게 스웨덴은 그것을 해냈을까라는 의문에서 올해 초에 좀 더 웹서핑도 해보고, 책도 한 두 권 읽어보고 나서 쓴 글이다. 물론 가장 긴 내용을 할애한 3번은 역시 그냥 내가 생각한 감이고 가설에 불과하다.
이제, 결론을 내보도록 한다. 스웨덴 모델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연구해 볼 가치가 있으며, 사회 구성원의 전체적인 후생을 증가시키며 롤스 식의 정의의 관념에도 부합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말 하기 힘들고 어려워서 "모두가 마음을 선하게 먹으면.." 또는 "누구를 바꾸면..."이라는 식으로 바라보지 말고 어떻게 이 난관을 뚫고 해낼까에 좀 더 매진했으면 한다.
변명 1. 국제경제 상의 환율과 수지에 대한 문제, 국제 금융의 발달로 인한 자본의 이동으로 인한 문제도 다루지 않는다. -한마디로 헷지 펀드의 환율 공격 같은 문제-
변명 2. 원래 내일 써서 후배인 김희준에게 검수를 좀 받으려고 했으나, 사랑하는 딸이 일찍 잠드는 바람에 일필휘지로 휘갈김. 퇴고도 하기 싫어서 비문이 난무할 겁니다. 예전에 김훈씨를 통해서 바라본 [글쓰기의 원칙]을 써놓고 정작 하나도 안 지킴.
변명 3. fact가 잘못 되었을 수도 있고, 각종 숫자와 지표로 뒷받침 되지 않는 말 뿐인 '소설'에 불과하지만, 돈 받고 쓰는 것도 아니고 이 분야에 문외한인데 각종 통계를 찾아보며 source를 달고 정량적으로 뒷받침 하는 건 귀찮아서 못하겠습니다.
2014년 10월 17일 금요일
인류는 왜 공평, 정직 같은 미덕을 고취시켰을까? - 윌슨 교수
출처 : http://m.biz.chosun.com/svc/article.html?contid=2014021402148
'사회생물학 창시자' 윌슨 교수에게 듣는다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말하는 '인간의 본성' "인류는 왜 정직ㆍ공평 같은 美德을 고취시켰을까?… 그렇지 못한 집단은 도태됐기 때문" 진정한 이타성은 존재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타인을 돕는 행동은 개인을 위험에 빠뜨리지만 집단엔 유익 결국 그런 행동 일으킨 유전자 확산시켜 집단 위한 것만 선이고 개인은 악인가? 개체선택은 많은 죄악을 낳기도 하지만 생산성ㆍ리더십 등 가치 있는 성향의 원천 인간활동, 이기성과 이타성의 갈등서 비롯 철학엔 더 많은 자연과학이 필요 뇌가 갖고 있는 본능ㆍ욕망 같은 것이 진화 역사상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른다면 표피적인 상관관계 설명에 그칠 것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연구실은 하버드대 비교 동물 박물관 내에 자리 잡고 있었다. 1834년 찰스 다윈이 발견한 성게 화석을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2100만여 종의 동물 표본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마침 초등학생들이 박물관을 견학하고 있었다. 그들이 중학교에 올라가 생물학 시간이 되면 개미가 윌슨 교수가 발견한 페로몬이란 화학물질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을 배울 것이다. 그들이 나이가 들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민에 부딪히게 되면, 언젠가 진화론 책을 뒤적이게 될 것이고, 윌슨 교수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사회적 행동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쓴 '인간 본성에 대하여'나 '지구의 정복자'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함께 열독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과학자답지 않은 윌슨 교수의 유려한 글솜씨에 경탄하게 될 것이고, 위키피디아를 뒤적거려 그가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미로 같은 박물관을 헤치고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가니 윌슨 교수가 환한 웃음으로 반겨줬다. 그의 오른쪽 눈은 어린 시절 낚싯바늘에 찔린 사고로 실명해 반쯤 감겨 있었지만, 그의 웃음 띤 얼굴에선 별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남은 왼쪽 눈 하나로 평생 개미를 연구해 왔고, 개미에 대한 관심을 인간으로 확장시켜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봐 왔다.
그는 기자의 질문을 받기 전에 자신이 집필 중인 책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미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썼는데, 지금 세 권의 책을 새로 쓰고 있다고 했다. 집필 중인 책에 대한 그의 긴 설명이 끝난 뒤 기자는 준비해둔 질문을 꺼냈다.
해탈을 느껴보진 못했다. 점점 더 도전을 느꼈을 뿐
-세계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면 해탈의 감정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 혹시 교수님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했다는 생각과 함께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나?
"아니요, 나는 점점 더 도전을 느끼지 평화를 느끼지 않는걸(웃음). 훌륭한 과학자라면 다 그럴 것이다. 참고로 진화생물학은 아직도 약한 과학(weak science)이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도전하고 고민해야 하는 게 많고 평화를 얻기 어렵다는 의미). 물론 미래를 다루는 데 아주 중요한 과학이다. 왜냐하면 진화생물학이야말로 인간에 대해서, 그 역사와 인간이 인간이도록 추동하는 힘들에 대해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해탈을 느껴보지 못했다. 불교에 대해서 좀 읽어보려고 하긴 했었다. 완전한 평화에 대해서, 자아를 버리는 것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음… 그 평화를 찾은 이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진화론은 사람이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다고 설명한다. 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기계에 불과하다. 진화론을 접한 많은 이는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 같다. 이런 허무주의에 빠진 경험이 있는가? 이런 느낌을 극복할 조언이 없는가?
“그게 바로 내가 지금‘인간 존재의 의미’라는 책을 쓰는 이유다. 인간은 여러 층위로 볼 수 있는데, 종(種)이라는 차원에서, 사회라는 측면에서 각 단위에 대한 이해가 모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해는 인간을 어떤 식으로든 왜소하게 만들지 않는다. 최근 내 몇몇 연구를 놓고 꽤 논란이 많다. 수학자들과 함께 최근에 논문을 냈는데, 어떻게 이타성이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며, 고등 사회가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형성되는가가 주제이다. 그런데 우리가 점점 더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은, 자연선택(키워드 참고)에 의해 추동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를테면 경쟁심이나 집단에서 인정받으려는 욕망 같은 것―이 개인이라는 단위의 인간 본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200만~300만년 전 선사 인류가 모닥불을 피워 집단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비롯된 집단 사이 경쟁도 매우 중요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그룹 간의 경쟁이 이타성도 촉진했다는 것이다. 이건 새로운 생각이라고 할 수 있고, 점점 더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집단 간 경쟁은 ‘덕(德·virtue)’을 고취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도덕감을 증진하며, 애국심을 증진한다. 결국 정직, 공평과 같이 우리가 표피적으로만 ‘가져야만 한다’고 얘기하던 특징들을 우리가 왜 갖고 있는지 이제 생물학자들이 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 개개인이 단지 분자들의 상호 작용이나 이들의 집합이라는 식의 이해로부터 벗어나서 서서히 독립적으로 인간의 의미의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길고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설명은, 그가 최근에 주장하기 시작한 집단선택설의 핵심 개념을 담고 있다. 여기서 ‘최근에 주장하기 시작한’이라고 한 이유는 그가 예전에는 전혀 다른 학설을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진화생물학계에는 크게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혈연선택설(kin selection)과 집단선택설(group selection)이 그것이다. 혈연선택설은 이타성조차 이기성의 다른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집단선택설은 이기적 유전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타성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집단 차원의 경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혈연선택설은 학계의 다수설이자 정설로 굳어져 왔고, 윌슨 교수는 이 학설의 대부(代父)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9년 전 돌연 혈연선택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거의 이단으로 취급되던 집단선택설로 돌아서 학계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윌슨 교수의 주장이 정설이 되기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2010년에 그가 네이처지에 관련 논문을 발표한 뒤 학자 137명이 비판 서명을 했다.
―책 ‘지구의 정복자’에서 “개체 선택(혹은 혈연 선택)은 우리가 죄악이라고 부르는 것의 많은 부분을 빚어내지만 집단선택은 미덕의 많은 부분을 형성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면 집단은 곧 선이고, 개인은 악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내가 집단선택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조금 단순화한 면이 있다. 내 의도는 ‘죄와 덕’이라는 비유를 통해 집단선택의 개념을 빨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당연히 개체선택은 생산성, 성취, 리더십과 같이 고귀하고 가치 있는 많은 성향을 있게끔 한 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법 제도에서부터 예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활동은 개인선택과 집단선택, 이기성과 이타성 간의 내적 갈등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진정한 이타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교수님은 사회생물학의 핵심적인 과제는 이타성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교수님의 평생 연구로 이타성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설명한다면?
“진정한 이타성은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 있는 것을 포기하는 행위다. 즉, 사회에서 자신의 소유, 자신의 안전, 가족을 이룰 기회, 자기 부의 일부를, 집단의 다른 이들의 복리를 위해서, 대가 없이 포기하는 것이다. 이게 진정한 이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자기 자신이 불에 타는 것을 무릅쓰고 불난 차 안의 사람을 구해내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 이타적 행동은 호혜적인 인식, 사회 계약에 기반해 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나의 것을 포기하는 것은, 반드시 그게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예를 들어 그게 우리 사회의 전체 복리를 증가시킨다고 판단해서―이 아니라, 내가 사회라는 그물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이런 행동들을 통해 내 인맥을 만든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DC에서 평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 체제는 이렇게 주고받는다는 인식 위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이타성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는 규명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집단선택설은 이런 진정한 이타성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어떻게 설명한다는 것인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집단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그 집단이 다른 집단과 경쟁해 생존할 가능성을 높인다.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자주 목격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그렇게 집단이 강해지면, 그 집단에 속한 자기 자신도 강화된다. 내 개인의 존재에는 해가 가겠지만, (그런 이타적 행동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생존과 확산의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잘 살펴보면 사회는 그런 과정이 일어나도록 애쓴다.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도우면 사회는, 특히 그가 소속된 사회(사회의 하위 단위들·편집자 주)가 그 가족을 돌봐준다. 꽤 잘 돌아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수학적으로 잘 모델링해 설명할 수 있다.”
―교수님은 이타주의에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맹목적 이타주의와 목적적 이타주의(보답을 기대하는 이타주의)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했다. ‘강력한 이타적 충동이 대개 목적적이라는 것은 행운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맹목적이라면, 역사는 족벌주의와 인종차별이라는 극심한 음모의 기록이 될 것이며, 미래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황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목을 보면서 종교인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과 같은 딜레마를 잘 묘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교수님이 종교를 비판하는 것도 이런 이유인가?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잠시만, 내가 그런 말을….”
윌슨 교수는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대목은 기자가 읽은 그의 여러 책 중 하나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어느 책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윌슨 교수는 “지금 내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당신이 내 책을 인용하긴 했지만. 흠… 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예전에 내가 진정한 이타성, 그러니까 그 어떠한 호혜적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하는 행동들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맥락에서 옛날에 말한 것 같은데. 흠, 찾아봐야겠다. 뭔가 내가 실언한 걸 잡아낸 것 같구먼….”
―아무래도 교수님이 첫 번째 퓰리처상을 받은 책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에 나와 있던 내용 같다(나중에 확인 결과 그랬다).
“아, 그럼 이해가 간다. 그건 1978년에 쓴 책 아닌가. 참 세월이 많이 바뀌었다.”
이 해프닝을 통해 기자는 윌슨 교수가 집단선택설로 학문적 전향을 한 것이, 인간성의 좀 더 따뜻한 면을 찾고 싶은 그의 내밀한 본능의 소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테레사 수녀의 희생마저 이기적 유전자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면 인간의 삶은 너무 황량해지지 않겠는가? 윌슨 교수는 멀지 않은 죽음을 앞두고 사회와 화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과학은 투표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교수님은 그동안 쌓아 놓은 업적만으로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편한 길을 포기하고 가시밭길을 선택했나?(왜 혈연선택설을 포기하고 집단선택설로 전향했느냐는 의미)
“나는 언제나 가시밭길을 걸었다. 중요한 과학적 발견은 언제나 논란을 유발한다. 과학은 원래 그렇게 변하는 거다. 과학은 투표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내가 1970년대 처음으로 사회생물학을 제안했을 때도 엄청나게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많은 과학자가 말로는 ‘언제나 새로운 정보와 데이터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변화에 매우 인색하고 보수적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를 아시는가? 정치학과의.
“물론이다.”
―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에서만 100만부나 팔렸다.
“오, 대단하다.”
―교수님은 “정의란 태생적 선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공정함”이라는 윤리 철학자들의 말을 반박했는데, 그 이유는?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웃음). 난 평생 하버드에서 철학자들 틈바구니에 있었다. 존 롤스, 마이클 샌델과도 교류했다. 그리고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도덕성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을 표피적으로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만으로 철학을 세우고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 인간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들은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을 알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했던 것들에 대해 말이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신호처리기계(뇌)가 갖고 있는 본능, 욕망 같은 것이 인류 진화 역사상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지 않으면, 결국 표피적 설명에 머물 뿐이고, 그러면 단지 상관관계들을 바탕으로 상위 이론을 만들게 될 뿐이다. 내 생각에 새로운 철학은 훨씬 더 많이 자연과학을 그 밑바탕으로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이자 의미
―과학자는 시인처럼 생각하고, 사서처럼 연구하고, 저널리스트처럼 글을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시인처럼 생각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창조적 과정이란 비슷하다는 의미다. 모든 과학자는, 특히 뭔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할 때, 끊임없이 꿈을 꾼다. 사실 가설이라는 게 공상이다. 백일몽을 꾼다. 뭔가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지어낸다. 최종 결과물을 상상해 본다. 그런데 이건 바로 시인들이 하는 일 아닌가?”
그가 올가을 낼 예정으로 지금 교정을 보는 책 제목은 ‘인간 존재의 의미(The Meaning of Human existence)’이다. 윌슨 교수는 “이제 난 그런 얘기를 할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나쁜 서평을 받아도 별로 상관없다. 어차피 오래 살 것도 아니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지구의 정복자’에서 지금의 세계를 ‘석기 시대의 정서, 중세의 제도, 신과 같은 기술’이 공존하는 곳으로 묘사했다. 그는 신과 같은 기술에 힘입어 인류가 인간 게놈(유전 정보 전체)을 수정할 수 있는 시기의 문턱에 와있다고 내다봤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자연선택이 아니라 ‘의지선택’으로 진화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나은 인간 종―예를 들어 더 합리적이고, 불필요한 감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종―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윌슨 교수는 그러나 “그런 세상이 가능하더라도 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불완전하고, 엉성하고, 때로 위험하기까지 한 감정이야말로 인간을 수퍼컴퓨터와 구분하고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생물학 창시자' 윌슨 교수에게 듣는다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말하는 '인간의 본성' "인류는 왜 정직ㆍ공평 같은 美德을 고취시켰을까?… 그렇지 못한 집단은 도태됐기 때문" 진정한 이타성은 존재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타인을 돕는 행동은 개인을 위험에 빠뜨리지만 집단엔 유익 결국 그런 행동 일으킨 유전자 확산시켜 집단 위한 것만 선이고 개인은 악인가? 개체선택은 많은 죄악을 낳기도 하지만 생산성ㆍ리더십 등 가치 있는 성향의 원천 인간활동, 이기성과 이타성의 갈등서 비롯 철학엔 더 많은 자연과학이 필요 뇌가 갖고 있는 본능ㆍ욕망 같은 것이 진화 역사상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른다면 표피적인 상관관계 설명에 그칠 것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연구실은 하버드대 비교 동물 박물관 내에 자리 잡고 있었다. 1834년 찰스 다윈이 발견한 성게 화석을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2100만여 종의 동물 표본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마침 초등학생들이 박물관을 견학하고 있었다. 그들이 중학교에 올라가 생물학 시간이 되면 개미가 윌슨 교수가 발견한 페로몬이란 화학물질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을 배울 것이다. 그들이 나이가 들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민에 부딪히게 되면, 언젠가 진화론 책을 뒤적이게 될 것이고, 윌슨 교수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사회적 행동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쓴 '인간 본성에 대하여'나 '지구의 정복자'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함께 열독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과학자답지 않은 윌슨 교수의 유려한 글솜씨에 경탄하게 될 것이고, 위키피디아를 뒤적거려 그가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미로 같은 박물관을 헤치고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가니 윌슨 교수가 환한 웃음으로 반겨줬다. 그의 오른쪽 눈은 어린 시절 낚싯바늘에 찔린 사고로 실명해 반쯤 감겨 있었지만, 그의 웃음 띤 얼굴에선 별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남은 왼쪽 눈 하나로 평생 개미를 연구해 왔고, 개미에 대한 관심을 인간으로 확장시켜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봐 왔다.
그는 기자의 질문을 받기 전에 자신이 집필 중인 책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미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썼는데, 지금 세 권의 책을 새로 쓰고 있다고 했다. 집필 중인 책에 대한 그의 긴 설명이 끝난 뒤 기자는 준비해둔 질문을 꺼냈다.
해탈을 느껴보진 못했다. 점점 더 도전을 느꼈을 뿐
-세계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면 해탈의 감정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 혹시 교수님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했다는 생각과 함께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나?
"아니요, 나는 점점 더 도전을 느끼지 평화를 느끼지 않는걸(웃음). 훌륭한 과학자라면 다 그럴 것이다. 참고로 진화생물학은 아직도 약한 과학(weak science)이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도전하고 고민해야 하는 게 많고 평화를 얻기 어렵다는 의미). 물론 미래를 다루는 데 아주 중요한 과학이다. 왜냐하면 진화생물학이야말로 인간에 대해서, 그 역사와 인간이 인간이도록 추동하는 힘들에 대해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해탈을 느껴보지 못했다. 불교에 대해서 좀 읽어보려고 하긴 했었다. 완전한 평화에 대해서, 자아를 버리는 것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음… 그 평화를 찾은 이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진화론은 사람이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다고 설명한다. 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기계에 불과하다. 진화론을 접한 많은 이는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 같다. 이런 허무주의에 빠진 경험이 있는가? 이런 느낌을 극복할 조언이 없는가?
“그게 바로 내가 지금‘인간 존재의 의미’라는 책을 쓰는 이유다. 인간은 여러 층위로 볼 수 있는데, 종(種)이라는 차원에서, 사회라는 측면에서 각 단위에 대한 이해가 모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해는 인간을 어떤 식으로든 왜소하게 만들지 않는다. 최근 내 몇몇 연구를 놓고 꽤 논란이 많다. 수학자들과 함께 최근에 논문을 냈는데, 어떻게 이타성이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며, 고등 사회가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형성되는가가 주제이다. 그런데 우리가 점점 더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은, 자연선택(키워드 참고)에 의해 추동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를테면 경쟁심이나 집단에서 인정받으려는 욕망 같은 것―이 개인이라는 단위의 인간 본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200만~300만년 전 선사 인류가 모닥불을 피워 집단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비롯된 집단 사이 경쟁도 매우 중요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그룹 간의 경쟁이 이타성도 촉진했다는 것이다. 이건 새로운 생각이라고 할 수 있고, 점점 더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집단 간 경쟁은 ‘덕(德·virtue)’을 고취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도덕감을 증진하며, 애국심을 증진한다. 결국 정직, 공평과 같이 우리가 표피적으로만 ‘가져야만 한다’고 얘기하던 특징들을 우리가 왜 갖고 있는지 이제 생물학자들이 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 개개인이 단지 분자들의 상호 작용이나 이들의 집합이라는 식의 이해로부터 벗어나서 서서히 독립적으로 인간의 의미의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길고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설명은, 그가 최근에 주장하기 시작한 집단선택설의 핵심 개념을 담고 있다. 여기서 ‘최근에 주장하기 시작한’이라고 한 이유는 그가 예전에는 전혀 다른 학설을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진화생물학계에는 크게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혈연선택설(kin selection)과 집단선택설(group selection)이 그것이다. 혈연선택설은 이타성조차 이기성의 다른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집단선택설은 이기적 유전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타성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집단 차원의 경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혈연선택설은 학계의 다수설이자 정설로 굳어져 왔고, 윌슨 교수는 이 학설의 대부(代父)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9년 전 돌연 혈연선택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거의 이단으로 취급되던 집단선택설로 돌아서 학계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윌슨 교수의 주장이 정설이 되기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2010년에 그가 네이처지에 관련 논문을 발표한 뒤 학자 137명이 비판 서명을 했다.
―책 ‘지구의 정복자’에서 “개체 선택(혹은 혈연 선택)은 우리가 죄악이라고 부르는 것의 많은 부분을 빚어내지만 집단선택은 미덕의 많은 부분을 형성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면 집단은 곧 선이고, 개인은 악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내가 집단선택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조금 단순화한 면이 있다. 내 의도는 ‘죄와 덕’이라는 비유를 통해 집단선택의 개념을 빨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당연히 개체선택은 생산성, 성취, 리더십과 같이 고귀하고 가치 있는 많은 성향을 있게끔 한 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법 제도에서부터 예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활동은 개인선택과 집단선택, 이기성과 이타성 간의 내적 갈등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진정한 이타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교수님은 사회생물학의 핵심적인 과제는 이타성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교수님의 평생 연구로 이타성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설명한다면?
“진정한 이타성은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 있는 것을 포기하는 행위다. 즉, 사회에서 자신의 소유, 자신의 안전, 가족을 이룰 기회, 자기 부의 일부를, 집단의 다른 이들의 복리를 위해서, 대가 없이 포기하는 것이다. 이게 진정한 이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자기 자신이 불에 타는 것을 무릅쓰고 불난 차 안의 사람을 구해내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 이타적 행동은 호혜적인 인식, 사회 계약에 기반해 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나의 것을 포기하는 것은, 반드시 그게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예를 들어 그게 우리 사회의 전체 복리를 증가시킨다고 판단해서―이 아니라, 내가 사회라는 그물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이런 행동들을 통해 내 인맥을 만든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DC에서 평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 체제는 이렇게 주고받는다는 인식 위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이타성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는 규명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집단선택설은 이런 진정한 이타성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어떻게 설명한다는 것인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집단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그 집단이 다른 집단과 경쟁해 생존할 가능성을 높인다.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자주 목격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그렇게 집단이 강해지면, 그 집단에 속한 자기 자신도 강화된다. 내 개인의 존재에는 해가 가겠지만, (그런 이타적 행동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생존과 확산의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잘 살펴보면 사회는 그런 과정이 일어나도록 애쓴다.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도우면 사회는, 특히 그가 소속된 사회(사회의 하위 단위들·편집자 주)가 그 가족을 돌봐준다. 꽤 잘 돌아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수학적으로 잘 모델링해 설명할 수 있다.”
―교수님은 이타주의에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맹목적 이타주의와 목적적 이타주의(보답을 기대하는 이타주의)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했다. ‘강력한 이타적 충동이 대개 목적적이라는 것은 행운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맹목적이라면, 역사는 족벌주의와 인종차별이라는 극심한 음모의 기록이 될 것이며, 미래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황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목을 보면서 종교인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과 같은 딜레마를 잘 묘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교수님이 종교를 비판하는 것도 이런 이유인가?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잠시만, 내가 그런 말을….”
윌슨 교수는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대목은 기자가 읽은 그의 여러 책 중 하나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어느 책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윌슨 교수는 “지금 내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당신이 내 책을 인용하긴 했지만. 흠… 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예전에 내가 진정한 이타성, 그러니까 그 어떠한 호혜적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하는 행동들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맥락에서 옛날에 말한 것 같은데. 흠, 찾아봐야겠다. 뭔가 내가 실언한 걸 잡아낸 것 같구먼….”
―아무래도 교수님이 첫 번째 퓰리처상을 받은 책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에 나와 있던 내용 같다(나중에 확인 결과 그랬다).
“아, 그럼 이해가 간다. 그건 1978년에 쓴 책 아닌가. 참 세월이 많이 바뀌었다.”
이 해프닝을 통해 기자는 윌슨 교수가 집단선택설로 학문적 전향을 한 것이, 인간성의 좀 더 따뜻한 면을 찾고 싶은 그의 내밀한 본능의 소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테레사 수녀의 희생마저 이기적 유전자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면 인간의 삶은 너무 황량해지지 않겠는가? 윌슨 교수는 멀지 않은 죽음을 앞두고 사회와 화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과학은 투표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교수님은 그동안 쌓아 놓은 업적만으로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편한 길을 포기하고 가시밭길을 선택했나?(왜 혈연선택설을 포기하고 집단선택설로 전향했느냐는 의미)
“나는 언제나 가시밭길을 걸었다. 중요한 과학적 발견은 언제나 논란을 유발한다. 과학은 원래 그렇게 변하는 거다. 과학은 투표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내가 1970년대 처음으로 사회생물학을 제안했을 때도 엄청나게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많은 과학자가 말로는 ‘언제나 새로운 정보와 데이터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변화에 매우 인색하고 보수적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를 아시는가? 정치학과의.
“물론이다.”
―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에서만 100만부나 팔렸다.
“오, 대단하다.”
―교수님은 “정의란 태생적 선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공정함”이라는 윤리 철학자들의 말을 반박했는데, 그 이유는?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웃음). 난 평생 하버드에서 철학자들 틈바구니에 있었다. 존 롤스, 마이클 샌델과도 교류했다. 그리고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도덕성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을 표피적으로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만으로 철학을 세우고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 인간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들은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을 알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했던 것들에 대해 말이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신호처리기계(뇌)가 갖고 있는 본능, 욕망 같은 것이 인류 진화 역사상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지 않으면, 결국 표피적 설명에 머물 뿐이고, 그러면 단지 상관관계들을 바탕으로 상위 이론을 만들게 될 뿐이다. 내 생각에 새로운 철학은 훨씬 더 많이 자연과학을 그 밑바탕으로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이자 의미
―과학자는 시인처럼 생각하고, 사서처럼 연구하고, 저널리스트처럼 글을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시인처럼 생각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창조적 과정이란 비슷하다는 의미다. 모든 과학자는, 특히 뭔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할 때, 끊임없이 꿈을 꾼다. 사실 가설이라는 게 공상이다. 백일몽을 꾼다. 뭔가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지어낸다. 최종 결과물을 상상해 본다. 그런데 이건 바로 시인들이 하는 일 아닌가?”
그가 올가을 낼 예정으로 지금 교정을 보는 책 제목은 ‘인간 존재의 의미(The Meaning of Human existence)’이다. 윌슨 교수는 “이제 난 그런 얘기를 할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나쁜 서평을 받아도 별로 상관없다. 어차피 오래 살 것도 아니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지구의 정복자’에서 지금의 세계를 ‘석기 시대의 정서, 중세의 제도, 신과 같은 기술’이 공존하는 곳으로 묘사했다. 그는 신과 같은 기술에 힘입어 인류가 인간 게놈(유전 정보 전체)을 수정할 수 있는 시기의 문턱에 와있다고 내다봤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자연선택이 아니라 ‘의지선택’으로 진화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나은 인간 종―예를 들어 더 합리적이고, 불필요한 감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종―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윌슨 교수는 그러나 “그런 세상이 가능하더라도 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불완전하고, 엉성하고, 때로 위험하기까지 한 감정이야말로 인간을 수퍼컴퓨터와 구분하고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포가 많은 덩치 큰 생물은 어떻게 암을 억제해왔는가
출처: http://newspeppermint.com/2014/10/06/mcancer/
약 40년 전, 리처드 페토는 세포 하나가 암으로 발전할 확률은 모두 같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리고 이 가설을 바탕으로, 세포를 더 많이 가진 더 큰 동물은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을 것이며, 더 오래 사는 동물 역시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추측은 현실과 맞지 않았습니다. 모든 포유류는 크기와 수명과 무관하게 거의 비슷한 확률로 암에 걸렸습니다.
이 문제는 “페토의 역설”로 불립니다. 이를 설명하는 여러가지 가설들이 제시되었습니다. 한가지 가설은 작은 동물들은 신진대사가 더 빠르기 때문에 암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자유기(free radical)를 더 많이 만든다는 것입니다. 또다른 가설은 진화의 영향으로 더 큰 동물들은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옥스포드의 진화생물학자 아리스 카츠라키스는 덩치 큰 동물이 암을 일으키는 특정 바이러스를 더 잘 억제하기 때문에 암에 덜 걸린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연구는 지난 7월 “PLOS 병원균(PLOS Pathogens)”에 실렸습니다.
암을 일으키는 점핑 바이러스는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engogenous retroviruses)” 로 알려져 있으며 숙주의 유전자에 자신의 유전자를 집어넣음으로써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포유류와 함께 수백만년을 진화해왔기 때문에 여러 척추동물 유전자의 5 – 10 %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유전자의 대부분은 활성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암의 발생에 있어 이 바이러스의 영향을 계산하기위해 카츠라키스는 지난 1천만년 동안 존재했던 38종의 포유류에 대해 이들의 크기와 이들의 유전자에 포함된 레트로바이러스의 수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더 큰 동물일수록 그들의 유전자에 이 레트로바이러스가 적게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쥐의 유전자에는 3,331개의 바이러스 흔적이 있었던 반면, 인간은 348개를 그리고 돌고래는 단 55개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더 크고 오래사는 동물들일수록 이들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능력을 키웠음을 말해줍니다. 카츠라키스와 그의 연구팀은 이런 과정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구체적으로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코끼리나 고래와 같은 동물들은 어쩌면 이들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유전자를 더 많이 가지고 있거나, 혹은 더 효율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몸집을 크게 진화시킨 동물들은 암에 대한 저항력 역시 키웠을 것입니다. 이번 발견은 매우 놀라운 것입니다.”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옥스포드의 전염병학자이자 올해 71세가 된 리처드 페토의 말입니다.
약 40년 전, 리처드 페토는 세포 하나가 암으로 발전할 확률은 모두 같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리고 이 가설을 바탕으로, 세포를 더 많이 가진 더 큰 동물은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을 것이며, 더 오래 사는 동물 역시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추측은 현실과 맞지 않았습니다. 모든 포유류는 크기와 수명과 무관하게 거의 비슷한 확률로 암에 걸렸습니다.
이 문제는 “페토의 역설”로 불립니다. 이를 설명하는 여러가지 가설들이 제시되었습니다. 한가지 가설은 작은 동물들은 신진대사가 더 빠르기 때문에 암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자유기(free radical)를 더 많이 만든다는 것입니다. 또다른 가설은 진화의 영향으로 더 큰 동물들은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옥스포드의 진화생물학자 아리스 카츠라키스는 덩치 큰 동물이 암을 일으키는 특정 바이러스를 더 잘 억제하기 때문에 암에 덜 걸린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연구는 지난 7월 “PLOS 병원균(PLOS Pathogens)”에 실렸습니다.
암을 일으키는 점핑 바이러스는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engogenous retroviruses)” 로 알려져 있으며 숙주의 유전자에 자신의 유전자를 집어넣음으로써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포유류와 함께 수백만년을 진화해왔기 때문에 여러 척추동물 유전자의 5 – 10 %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유전자의 대부분은 활성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암의 발생에 있어 이 바이러스의 영향을 계산하기위해 카츠라키스는 지난 1천만년 동안 존재했던 38종의 포유류에 대해 이들의 크기와 이들의 유전자에 포함된 레트로바이러스의 수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더 큰 동물일수록 그들의 유전자에 이 레트로바이러스가 적게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쥐의 유전자에는 3,331개의 바이러스 흔적이 있었던 반면, 인간은 348개를 그리고 돌고래는 단 55개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더 크고 오래사는 동물들일수록 이들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능력을 키웠음을 말해줍니다. 카츠라키스와 그의 연구팀은 이런 과정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구체적으로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코끼리나 고래와 같은 동물들은 어쩌면 이들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유전자를 더 많이 가지고 있거나, 혹은 더 효율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몸집을 크게 진화시킨 동물들은 암에 대한 저항력 역시 키웠을 것입니다. 이번 발견은 매우 놀라운 것입니다.”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옥스포드의 전염병학자이자 올해 71세가 된 리처드 페토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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