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4일 일요일
한국의 애널리스트는 전반적으로 쓰레기?
https://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2943146
2017년 4월에 발표된 논문인데 충격적이다. 한국 애널리스트의 기업 수익 예측력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신흥국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낮다. 게다가 엄청나게 낙관편향되어 있다. 대체 왜? 이 분석의 방법론에 문제가 없다면 한국 애널리스트에게 쓰레기 소리를 했을 때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다.
가설
ㅇ한국 기업들의 재무재표에 문제가 있다
다른 신흥국은 재무재표에 더 문제가 있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ㅇ업무를 위한 인맥유지를 위해서는 기업에 낙관적으로 추정해야 한다
이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ㅇ다른 나라에서는 기업이 미리 실적 가이던스를 주기도 하고 실적은 슬쩍 흘리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실적 흘리기는 국내에서도 크게 문제된 적이 있었고 실적을 먼저 받아다가 매니저에게 알려주면서 애널리스트 순위를 잘 찍어달라는 영업도 많이 했었다. 특히 선진국의 주가는 실적발표일에 급등락하는데 이건 실적에 대한 보안이 잘 지켜진다는 의미다. 오히려 보안이 잘 유지되는 선진국 기업의 실적이 더 맞추기 어려울 수도 있다.
ㅇ애널과 영업(IB부서, 법인 브로커)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신흥국과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업계에 있는 내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다. MifidII 규제가 이러한 유착을 근절시키기 위한 노력임을 고려하면 전세계에 만연한 문제점이다.
ㅇ예측이 애널리스트 개인의 영역이고 시스템화되지 않았다
개발도상국은 더더욱 시스템화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이유를 잘 모르겠다. 어쩌다 이리되었는가...
2017년 11월 6일 월요일
20세기 엘리트 예술
20세기 엘리트 예술이나 비평의 이론들은 인간 본성을 강하게 부정하면서 출발했다
그로 인한 첫번째 유산은 추하고 혼란스럽고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예술이고 두번째 유산은 위선적이고 난해한 학문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수준높은 예술에 다가오지 않는다고 놀라워한다.
스티븐 핑커 - 빈 서판 -
내 생각에 예술은 일반 인간들의 공통적인 속성이다. 엘리트 예술은 이러한 공통적인 속성을 부정하고 자신의 신분을 범인(凡人)들과 차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난해하게 만들어놓은 것인 듯 하다.
사람들이 현대 엘리트 예술을 거부하는 것은 사람들이 천박하게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 엘리트 예술이 인간 본성에 호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첫번째 유산은 추하고 혼란스럽고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예술이고 두번째 유산은 위선적이고 난해한 학문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수준높은 예술에 다가오지 않는다고 놀라워한다.
스티븐 핑커 - 빈 서판 -
내 생각에 예술은 일반 인간들의 공통적인 속성이다. 엘리트 예술은 이러한 공통적인 속성을 부정하고 자신의 신분을 범인(凡人)들과 차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난해하게 만들어놓은 것인 듯 하다.
사람들이 현대 엘리트 예술을 거부하는 것은 사람들이 천박하게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 엘리트 예술이 인간 본성에 호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7년 10월 15일 일요일
나를 모르는 이유
나를 모르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으면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한다.
가령, 나랑 비슷한 사람이 어느정도 사람과 결혼했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 어느정도 직장에 다닌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 연애를 한다. 나랑 비슷한 사람들 애들은 이정도 공부를 한다. 나랑 비슷한 사람들은 일년에 몇번 해외여행을 가더라 등등....
이들은 늘 자기 친구나 지인이 이렇게 말을 했다. 그게 정답이라고 했다. 하는 말들을 듣는다. 그리고는 이런 말들을 끊임없이 듣다가 결국 거기에 자기 자신을 때려 맞춘다.
특히 정서적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가령 우리 엄마, 내 여자친구와 같이 자기와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말은 이치가 맞는지, 윤리적으로 옳은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진리라고 여긴다. 그러면 결국 자신의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고 타인의 인식과 행동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결국 자기 자신을 모르게 된다.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게 된다.
- 미친연애
자존감이 낮으면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한다.
가령, 나랑 비슷한 사람이 어느정도 사람과 결혼했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 어느정도 직장에 다닌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 연애를 한다. 나랑 비슷한 사람들 애들은 이정도 공부를 한다. 나랑 비슷한 사람들은 일년에 몇번 해외여행을 가더라 등등....
이들은 늘 자기 친구나 지인이 이렇게 말을 했다. 그게 정답이라고 했다. 하는 말들을 듣는다. 그리고는 이런 말들을 끊임없이 듣다가 결국 거기에 자기 자신을 때려 맞춘다.
특히 정서적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가령 우리 엄마, 내 여자친구와 같이 자기와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말은 이치가 맞는지, 윤리적으로 옳은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진리라고 여긴다. 그러면 결국 자신의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고 타인의 인식과 행동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결국 자기 자신을 모르게 된다.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게 된다.
- 미친연애
2017년 10월 9일 월요일
붓다, "신은 있습니까?"
어느날 부처가 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유신론자에게는 '없다'고 답변했으며 무신론자에게는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구도자에게는 침묵으로 답했다. 이를 지켜본 제자 아난다가 혼란스러워 미칠 지경이라며 그 이유를 물었다.
붓다는 이렇게 답한다.
유신론자는 신의 존재를 믿고 이미 주어진 대답을 가지고 왔으며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옳다. 붓다도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려 나의 협조를 청하러 왔을 뿐이다. 나는 그의 믿음을 깨트리기 위해서 신이 없다고 말해야만 했다. 믿음은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신론자 역시 ‘신은 없다’는 주어진 대답을 들고 왔고, 내가 그의 불신을 강화시켜주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신은 존재한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두 경우 모두 의도는 같았다. 유신론자에겐 선입견적인 믿음을 깨트려주었고, 무신론자에겐 선입견적인 불신도 깨뜨려주었다. 신앙은 긍정이고 불신은 부정적이지만 양쪽 다 같다. 둘 다 아는 자도 아니고, 둘 다 경험한 구도자도 아니다. 그들은 이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선입견이 없는 구도자는 ‘믿는 사람들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자신은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지 못합니다. 도와주십시오’ 라고 물었던 것이고 나는 침묵했다. 이에 구도자는 “선생님의 자비는 한량없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대답해 주셨습니다”라며 감사해 했다. 나는 그에게 말이 필요 없었다. 그는 분명히 지성적이고 열려 있는 민감한 사람이었다. 내가 침묵 속으로 들어가자 구도자는 나의 침묵과 현존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침묵 속으로 각성 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17년 9월 23일 토요일
2017년 7월 30일 일요일
사이다는 목이 금방 마른다. 고구마는 배가 든든하다
사이다는 목이 금방 마른다. 고구마는 배가 든든하다
- 문재인 -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당내 경쟁자였던 이재명 성남시장이 시원시원한 발언으로 사이다란 별명을 얻었지만 문재인은 느리고 답답하단 의미로 고구마란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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