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그는 1907년 공황때 큰 부 -> 1915년 파산 -> 대공황 성공 -> 1934년 파산 -> 이후 회복 못하고 순부채 상태로 사망
ㅇ제리 리버모어의 재산 상태에 대한 편향되지 않은 객관적 추이
ㅇ리버모어의 성과나 실적, 재산에 대한 인터넷의 일반적 정보는 잘못되고 편향되어 있다
ㅇ당시 신문 기사, 파산 법원 제출 서류, 전기·연구서(예: Rubython, Forbes 기사, MeasuringWorth 분석 등 참조
ㅇ그는 20대까지 소소하게 나름 벌었던 트레이더
ㅇ1907년 공황 전후: 첫 ‘대형’ 자산 정점
: Bankers’ Panic’에 대규모 공매도로 하루에 100만 달러를 벌기도, 이후 3백만달러까지(순자산)
ㅇ1908~1915년: 대규모 손실과 파산
: 1907년 이후 원자재(특히 면화) 등에서 역베팅을 하다가 재산을 상당부분 잃어
: 1915년, 공식 파산 선고, 당시 순부채 200만 달러
ㅇ1915~1920년대 중반: 두 번째 부의 축적과 부채 상환
: 1917년경 파산 상태에서 벗어나 200만 달러의 채무를 전액 상환
: 정확한 자산 규모(예: 1919년, 1925년 순자산)는 불명
: 재상환 능력과 당시 생활수준(고급 주택·여행 등) 감안시 수백만 달러로 추정
ㅇ1929년 대공황: 세번째 축재, 최대 자산 달성
: 1929년 10월 블랙 화요일, 공매도로 1억 달러(현가 12~140억달러)를 벌었다
: 1929년 당시 피크 자산은 오늘날 가치로 약 15억 달러 수준으로 추정, 당시 세계 순위에 견줄만
ㅇ1930년대 초반~1934년: 1억 달러를 소진, 파산
: 1934년 그는 세 번째 파산을 선언
: 타임(Time), 파산 법원 인용, 부채 2,259,212 달러, 자산 184,900 달러(생명보험)
: 그의 변호사 “세 번이나 큰 재산을 만들었고, 매번 파산했으나 부채를 100%를 상환, 이번에도 그렇기를”
ㅇ1934~1940년 사망 시점: 말년에 거의 무일푼
: 1934년 파산 이후 다시 큰 부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
: 여러 출처, “SEC 설립후 규제 강화로 자유로운(불법?) 투자 어려워, 성과 악화 영향(가려들을 필요)
: 1940년 11월 뉴욕에서 자살
: 사망 당시, 부채가 자산을 상회하는 상태라고 명시됨
: 다만 사망 당시 순부채가 얼마인지는 불명
ㅇ앞서 '저성과' 원인으로 지목된 SEC의 규제 강화
: 광범위한 시세조작·공매도·레버리지 규제 체계
: 그는 규제 때문이라는 불평을 많이 했지만 어떤 규제인지는 불명
: 주로 공매도 규제를 언급한 듯
: 의문 (그런데 공매도 규제로 공매도를 못했으면 오히려 대공황 이후 시기에는 돈을 벌었어야 정상 아닌가?)
: 왜냐면 1934년부터 시장은 상승장, SEC등장은 1934년
: 리버모어는 스턴트 전략을 많이 썼는데 이는 SEC에 명백한 불법
: ※스턴트(시장 흔들기용 대형 포지션, 인위적 수급 조작)
: ※1938년 도입된 “업틱 룰(Short Sale Rule): 시가에 공매도 못하고 항상 1틱 높은 가격에 매도 주문만 가능”
: 리버모어의 상징적인 전략이 급락 국면에서 대규모 공매도로 시장 하락을 증폭시키는 것이었다
: 대공황 이후 SEC와 연방준비제도는 증권 마진 규정을 강화해, 투자자와 브로커의 고레버리지 투기를 억제
ㅇ다만 일부 연구·칼럼은, 그의 몰락 원인이 규제 때문만이 아니라고 주장
: 본인 규율 붕괴·심리 문제(감정기복, 우울증)·생활비 과다·잘못된 포지션 선택·사생활 문제(소송·가족 문제 등)와 결합된 결과라는 점을 강조
: 그는 수많은 투자 격언을 남겼지만 실제로는 반대로 행동. 이는 과거 그의 성공을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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