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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1일 토요일

자유권을 열렬히 스스로 포기하는 사회

 Any society that would give up a little liberty to gain a little security will deserve neither and lose both.

(약간의 안전을 얻기 위해 약간의 자유를 포기하는 사회는, 자유도 안전도 가질 자격이 없으며 둘 다 잃을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한 모토

2021년 10월 11일 월요일

자아(=뇌와 신경계)는 움직임을 위한 예측 프로세스

식물이 신경계가 없는 이유(갖고 있다가 없어진 놈들도 있음)는 운동성이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성게는 어린 개체일때는 올챙이처럼 생겨서 신경이 존재하지만 암벽에 붙어서 움직일 필요가 없어진 다음부터는 신경계가 사라진다

즉, 신경은 운동에 필수 요소다

세포마다 신경이 분포(심장처럼 자율로)할 수도 있지만 다세포 생물로 진화할수록 신경들도 모여서 신경계로 뭉친다. 신경을 한곳에 모아 신경계로 관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다양한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극한에 모인 것이 동물의 뇌이다.

신경계는 외부 세계의 변화를 인지하면서 다양한 요소를 계산한다. 이는 마치 트리구조와 비슷하다. 수없이 많은 경험을 통해 신경계는 외부 환경 입력 -> 운동 출력의 디시전 트리를 만들고 학습한다. 이는 급작스런 반응을 패턴화하므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이때 예측이 필요하고 이를 전담하는 기능이 신경계 내에서 발달한다. 예측이란 이런 것이다. 가령 운전중에 앞에 어린아이가 뛰어든다고 하자. 눈으로 감지한 공간의 입력이 자동적으로 발을 브레이크로 가져가게 한다. 누구도 "어 아이가 있네? 발을 옮겨서 브레이크를 눌러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삶을 통해 뇌와 신경계는 다양한 변수를 미리 '예측'하고 몸의 운동기관 등이 자동으로 반응하도록 패턴을 만들어왔다. 

다양한 감각에 따른 다이나믹한 운동은 예측능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예측은 결과적으로 '의식'을 만들어 낸다. 손끝에 감각과 눈에 감각 후각적 감각 등 수많은 전기화학적 신호가 뇌에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뇌는 그것들을 모두 처리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대강의 큰 줄기는 자동으로 프로세스화하고 세부적인 차이가 있을 때 이를 약간식 신경써서 수정하는 것이다. 후자의 신경써서 수정하는 프로세서가 바로 '의식'이다. 의식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간단하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서 몸 어딘가를 재관조하면 분명 다리를 떤다든지 피부를 긁는 다던지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이 있고 다시 재관조하는 행동이 있다. 재관조는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이를 의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은 무엇일까?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뇌는 무언가를 계속한다. 여기서 FAP(fixed action pattern 고정된 행동방식 혹은 일반적 표현으로 습관 같은 것)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FAP은 뇌의 아주 중요한 요소가 나타나는 것이다. 뇌는 기존 방식을 패턴으로 저장해두었다가 향후 비슷한 입력이 있을 시 그에 맞게 적절히 행동한다. 

의식은 뇌의 일부이며 뇌의 입출력 신호를 어느정도 조정하게 해주는 조정자도 된다. 손에 들고 있던 귤을 놓치고 그것을 인지하여 다시 땅에 닿기전에 잡는다고 생각해보자. 이는 아주 순간적인 판단으로 가능하다. 기존에 학습한 FAP가 있어서 의식전에도 몸은 기존방식대로 움직인다. FAP는 대략적인 움직임을 하지만 미세한 오차를 수정하려면 의식이 필요하다. 뇌의 입출력을 수정하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감각을 받아들여 해석하고 내 몸의 팔, 손의 위치를 해석하여 어느정도 수정해서 움직여야하는지를 계산한다. 

즉, 의식은 FAP등을 하는 기계적 뇌에 추가로 미세조정가능한 기계적 뇌를 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일종의 다중 연산 프로세서다.

2014년 1월 25일 토요일

최면과 `지켜준다`

인간의 잠재의식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을 지킨다`이다. 잠재의식을 내 편으로 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지켜준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는 테크닉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상대가 아무리 깊은 최면상태에 빠졌다고 해도 `절벽에서 뛰어내려`라던가 `칼로 자살해`라는 명령을 실행시킬 수 없다. `목숨이 위험하다`고 느끼면 즉각 최면에서 깨어난다. 최면으로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라고 암시를 주면 확실히 보이지 않지만, 장애물이 있으면 정확히 피해서 걷는다. 이것이 잠재의식의 `자신을 지키는 힘`이다.

잠재의식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무엇이던지 한다. 심지어 병에도 걸린다. 아니, 어쩌면 잠재의식으로 인한 질병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병과 자신을 지키는 것이 상반되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병에 걸리면 주위 사람들이 신경써주고 강제적인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게으름도 피울 수 있다.

애인이 바람을 피우거나 명절이 다가오면 아픈 여성들이 많은데 이는 남자의 주의를 자신에게 돌리거나 책임을 면하고자하는 잠재의식 때문이다. 동생이 생기면 갑자기 아프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부모의 사랑을 원하는 것이다.

DEPENDENT PD(DPPD) 의존성 인격장애

- 돌보아 주기를 바라는 과도한 요구와 그로 인한 굴복하고 매달리는 행동이나 이별에 대한 공포 등이 특징으로 하며, 자기자신의 필요성보다 다른이의 요구를 더 중요시하며, 자신의 삶에 있어서 책임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며, 자신감이 부족하며, 혼자 남겨졌을 때 상당한 불편감을 가진다.


1. 임상 양상

1)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업무에 대해 인내하는 것은 어려워하나 남을 위한 과업을 수행하는 것은 쉽게 한다. 또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불쾌한 감정들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참고, 밀착감이 너무 심하거나 혹은 너무 오래 괴롭히지 않는 한 학대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배우자도 잘 참고 견딘다.

2) 특징
   (1) 타인의 감정적 지지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2)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
   (3) 혼자 있을 때에는 무력해진다(helpless). - 혼자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4) 매우 순종적으로(submissively) 행동한다.
   (5)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고픈 욕구(subordinate Needs to others)가 있다.
   (6) 다른 사람들의 부당한 대우(mistreatment)를 잘 참는다.
   (7) 받아들여지기 위해서(acceptance) 자신을 비하한다(demean oneself).
   (8) 독단적 혹은 주도적 행동(assertive or dominant behavior)이 요구되는 상황에선 적절하게 기능하지 못한다.


3) interview시 협조적이며, 치료자의 지시(guidance)를 원한다.


2. 역학
1) 여>남(3:1), 인격장애의 2.5%를 차지한다. 막내 출신이 많다.
2) 어렸을 때 만성신체 질환을 앓은 사람에서 발병가능성이 높다.


3. 경과 및 예후

1) 보호감독 없이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없으므로, 직업 수행에 장애가 있다
2) 우울증의 위험이 높고, 의존대상 상실시 특히 위험이 높아진다.
3) 치료에 대한 반응이 좋은 편이다.
4) 자기 주장(assertiveness)이 없으므로, 학대를 받으며 살 수 있다.

해리 정체성 장애

소위 `다중인격`으로 알려진 이 증상은 원래 고유한 성격과 변화된 성격 사이에는 기억상실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현재 그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알려진 것은 떨쳐버리고 싶은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한 `해리욕구`다. 즉, 너무나도 괴로워서 도피하고 싶을 때 그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분리되게 되고 분리된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인격을 형성해서 불규칙하게 발현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편히하고 보호한다는 입장에서 해리적 성격은 진화적으로 쓸모를 가지고 있다. 해리정체성 장애 환자의 상당수가 어린시절 폭행, 학대를 당하거나 심한 트라우마적 상황에 처한적이 있는 사람이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일본 치바현의 다나카 요코씨는 지금까지 257개의 인격이 발현된 바 있으며 그중 가장 자주 발현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마코: 말이 많고 적극적이나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감정기복이 심하다.
유키: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며 말이없다.
사사키: 굉장히 무섭다. 폭력적이고 잔인하다. 이 인격이 나타나면 요코씨 얼굴이 무서워진다.
유리: 3세유아의 성격, 밝고 천진난만하다.

이들 인격들은 모두 각각의 사고방식과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간의 기억을 공유하지 않는다.
요코씨가 `유키`의 인격이 드러났을 때 그녀(유키)는 낙태당했던 기억을 말했다. 그 사건은 실제로 요코씨에게는 일어났으나 요코씨는 기억하지 못했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성폭행으로 인해 생긴 아이를 낙태했었고 강한 심인성 쇼크로 인해 요코씨는 그 기억을 분리시킨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기억은 연속적인 특성을 가지나 해리된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고 `유키`라는 인격으로 발현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각각의 인격은 나름대로의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성격과 말투, 걸음걸이는 물론 필체조차도 달랐다. 즉, 기억의 분리로 인해 전혀 다른 인격체가 생기는 것이었으며 인격을 형성한 본질은 바로 정보(기억)이다.

그런데 만약 해리성을 가진 각가의 인격을 `독립된 인격`이라고 명명한다면 결과적으로 개성적인 각 개별 인간의 특징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은 `기억`이란 말이 될 수도 있다.

모의인격


쿠사나기 : 나 같이 완전히 의체화(醫體化)한 사이보그라면 누구나 생각해. 어쩌면 자신은 훨씬 이전에 죽었고, 지금의 자신은 전뇌(電腦)와 의체(醫體)로 구성된 모의 인격이 아닐까 하고, 아니, 무릇 처음부터 나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하고

바트 : 그런소리마. 네 티타늄 두개골 안에는 뇌도 있고, 제대로 인간 취급도 받고 있잖아.

쿠사나기 : 자신의 뇌를 본 인간 따윈 없어. 결국은 주위의 상황으로 나 같은 게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뿐이야.

바트 : 자신의 고스트를 믿을 수 없는 거야?

쿠사나기 : 만약 전뇌(電腦) 그 자체가 고스트를 만들어 내고 혼을 깃들인다고 한다면 그 때는 뭘 근거로 자신을 믿어야 하지?


- Ghost in the shell

자기경계와 평가, 그리고 유행

의복이나 제복에도 화장과 마찬가지로 대인 관계를 조정하는 작용이 있다. 예를 들면 정신 분열증에 걸린 여성은 화려한 체크 무늬 옷을 입고서는 자신의 신체 경계를 확실히 하려는 행동을 한다고 한다. 또 자신의 신체 경계에 강한 불안을 느끼는 여성은 다른 사람의 눈길을 끄는 최신 유행 패션을 입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피셔(Fisher,W.F.)는 “사람이 자기 경계에 불안을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려는 복장을 한다. 즉 독특하다는 인상을 주어 자기의 경계를 강화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최신 유행의 의복만 입고 유행이 지난 옷은 던져 버리는 여성은 신체 경계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하겠다.(그마음이 알고싶다,213p)

같은 방식으로 미인들은 자기경계를 분명하게 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자기가 평균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은 주위에 비교할 여성이 많으므로 자기 평가가 안정되고 적용도도 높으나, 미인은 비교할 여성이 그렇게 많지 않으므로 자기 평가가 불안정한 것이다(그마음이,214p). 그렇기 때문에 미인들은 자신의 신체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최신 유행의 옷과 화려한 옷을 입는다(그마음이 알고싶다,213-214,편집).

자기혐오의 효용

자기혐오라고 하는 이상, 자기를 혐오하는 자기와 자기에 의해 혐오되는 자기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혐오되는 것은 항상 '현실적으로' 자기가 실행한 어떤 행위다.

그들의 행위를 고찰해 보면, 항상 자기의 어떤 욕구를 만족케 했든가 만족시킬 가능성이 있었던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을 상대로 뻔뻔스럽게 집적거린 것은 혹시 승낙을 얻어내면 단물을 켤 수 있기 때문이다. 비겁하고 미련스러운 짓을 저지르게 되는 것은, 어떤 이익 또는 쾌락을 얻을 정정당당한 수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체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가선 '천덕스럽다'느니, '얼토당토않다'고 판단할지언정, 그것을 입에 담거나 자랑하는 시점에서는 신나는 기분이었다.

'혐오되는 자기'란 틀림없이 현실의 자기인 것이다. 그에 반해 '혐오하는 자기'에는 어디를 찾아보아도 현실적 기반이 발견되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후회하여 금주를 맹세하고도 또 술을 마셔대는 알코올 중독자와 같이, 자기혐오의 경우도 그토록 격렬하게 자기를 혐오하면서도 같은 상황이 되면 또 그같은 행위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본래 같으면, 혐오는 혐오 대상을 배제하거나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힘이 없다고 한다면, 자기혐오의 경우 혐오는 과연 진정한 혐오인가? 하고 의심스러워진다.

자기혐오란 필경 '가공의 자기'가 '현실의 자기'를 혐오하고 있는 상태다. '가공의 자기'란 요컨대는, 상스러운 허튼 소리를 지껄이지 않는 자기, 비겁하고 미련스런 짓을 저지르지 않는 자기다. 바꾸어 말하면, 남이 그렇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자기,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자기다.

즉, '가공의 자기'란 사회적 승인과 자존심으로 지탱되고 있다. '가공의 자기'같은 것은 없는 편이 '현실의 자기'의 욕구를 자유롭게 만족시킬 수 있어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랬다가는 사회적 승인을 잃고 자존심이 상처를 입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고찰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예컨대, 무능한 사람이 자기를 유능하다고 생각하고 싶을 때, 또는 비열한 놈이 자신을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경우, 그 낙차를 얼버무리는 데 뒷받침이 되는 것이 자기혐오다. 이에 자기혐오의 용도가 명백해진다.

아주 지겨운 욕망을 가졌을 때, 당사자는 양자 택일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 지겨운 짓은 안하겠다는 고급 수준의 사회적 승인과 자존심을 단념하고 욕망의 만족을 얻는 경우와, 그와 반대로 그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을 단념하고 고급수준의 사회적 승인과 자존심을 유지하는 경우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이 같은 양자택일에 직면하여 어느 쪽도 단념하고 싶지 않다. 이럴때 '뽕도 따고 임도 보고 싶다'는 욕심쟁이가 쓰는 속임수의 하나가 자기혐오다. 그는 현실의 차원에서 그 욕망을 만족시키고, 그 만족을 맛본 자기를 비자기화한다. 솔직, 자유롭지도 못한 주제에 자신이 숭고한척하면서 자기위안을 얻는다.

이는 일종의 면죄부다. 자기혐오는 혐오된 행위의 재발을 저지하기는 커녕 면죄부를 통해 촉진한다. 어떤 '결점' 또는 '나쁜 버릇' 등에 관해 당사자가 자기혐오를 가지고 있는 한, 그 결점 또는 나쁜 버릇은 낫지 않는다고 보아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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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혐오의 효용 중에서 -

`나`를 `나`로서 하는 것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드는가? 타인과 구별되는 얼굴, 목소리, 아침에 눈뜨면 응시하는 손, 어린시절의 기억...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인간이 외부 반응에 나와 완전히 동일하게 반응하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나`다.

나의 행동과 생각을 형성하는 핵심은 뇌속의 정보(기억)다. 비록 그것이 환상과 동의어라고 해도 우리는 기억에 의존해 살아간다. 기억이 조작되는 영화와 소설의 예에서 보듯이 그러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메멘토, 이터널 선샤인, 토탈리콜, 공각기동대 등 많은 영화는 기억의 변화에 따른 인간정체성 문제를 다뤄왔다.

누군가 내가 자고있는 동안에 내 기억을 바꾸면 나는 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는가? 아니면 기억만 다른 같은 사람인가?

인간 뇌를 모방한 컴퓨터에 지능이 깃들고 내 기억을 이식한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나인가?

내 뇌속의 양자구조를 정확히 복제해서 복제체를 만들고 기억도 복제된다면 그 복제인간은 나인가?

좌우뇌가 분할되여 각 뇌에 두개의 자아가 생긴다면 원래 하나인 자아가 나뉜 것인가? 원래 나눠있던 자아가 각각으로 돌아간 것인가?

더 나아가 뇌를 각 자아(혹은 지능)가 존재하는 최소단위로 나눌 수 있을 것인가? 나눈다면 대체 몇개의 자아가 내속에 아비규환하고 있는 것인가?

내 몸을 체세포 복제하고 복제된 개체에 내 기억을 이식하면 나는 두명이 되는가? 원본을 죽인다면 복제된 내가 다시 살아가는 것인가? 이렇게 영원히 산다 해도 정말 내가 영원히 사는 것일까?

만약 아니라면, 뇌속의 뉴런이 물질대사를 하듯이 서서히 젊은 뉴런으로 바뀌어간다면 어떠한가? 젊은 뇌로 서서히 바뀌면서 살아간다면 그때는 정말 내가 영원이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과 나의 기억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가정하고 둘중에 하나를 죽여야만 한다면 내기억을 가진 타인을 선택할 것인가 타인의 기억을 가진 나를 선택할 것인가?

정말 `자아`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가? 뇌속의 기억들과 뉴런집합체의 정보교류속에서 그저 시뮬레이션 되고있는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내가 지금 잠들어 내일 아침에 일어나도 그게 정말 나라는 보장이 있을까? 자아라는 것이 있다면 기억이 영속적인 상황하에서 지금 이순간 여러자아가 마구 내 머리속에서 들락날락하더라도 나는 그걸 알아차릴 수나 있을까?

분할된 뇌, 분할된 의식, 분할된 자아

1960년대에 신경외과의사들이 간질치료를 위해 대뇌의 좌우를 연결하는 뇌량을 절단하는 수술을 했다. 이 전에 좌측 (혹은 지배적인dominant) 대뇌반구가 언어, 분석의 역할을 하고 우뇌에서는 읽고 이해하고 말하는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스페리가 분할뇌를 가진 환자를 시험하기 시작했을 때 그와 다른 과학자들은 매우 놀랐다.

분할뇌를 가진 환자는 모든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뇌가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단어를 전혀 못 듣거나, 못 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다. 비록 좌뇌처럼 언어기술이 발달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우뇌만 가지고도 복잡한 단어를 듣고 이해했고, 3자나 4자짜리 단어의 철자를 쓸수 있었다. 또한 다른 쪽이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는 것을 알지 못할 때에도 분할뇌환자에서 양쪽의 뇌는 명확히 의식이 있었다. 뇌의 양쪽이 연결되어서 함께 일할 때에도 양쪽의 뇌는 필요하다면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병렬처리).

좌뇌에는 지금의 내가 들어있고, 우뇌 속에는 어린애의 언어능력을 가진 또다른 '자아'가 존재한다. 나는 그 어린이의 존재를 전혀 모르지만, 그 어린이는 나보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이고, 예술적이고, 지도를 잘 본다. 인간의 마음 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운다는 상상이 완전히 비유가 아닌 셈이다.

현재까지도 내가 이 어린이와 언제 경쟁하고 언제 협동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우뇌에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좌뇌, 우뇌가 분할되어서 2명의 자아가 존재하게 된다면, 더 이상 분할되는 것은 불가능할까? 확실한 대답은 없으나, 다중인격장애라고 하는 현상이 정말 존재하는 것이라면 개연성은 존재한다. 좌뇌의 나, 우뇌의 어린이, 그 밑의 짐승. 증명할 수 없고 다만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스페리의 연구는 잠재의식, 다중인격, 다중지능, 이드, 슈퍼에고 같은 신경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최면술의 주제들이 두뇌의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뇌의 분리가 자아 또는 의식의 분리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스페리의 연구가 고전적인 정신-신체의 이분법을 배제하고, `뇌의 물질적인 작용이 정신활동임을 설명하는 증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현재의 뇌연구를 주도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 정신분석학 입문(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