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7일 수요일

피게티, "21세기의 자본"

최근 한 젊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1971년생)의 책 『21세기의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이 세계 지식공동체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가을 프랑스에서 출간된 책이 지난달 영어로 출간된 이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수많은 논평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저자가 보통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쓴 것이라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많은 통계숫자와 도표를 포함하는 경제학 책이자 685쪽이나 되는 무거운 책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를 정도이니 범상한 일은 아니다. 여러 저명한 경제학자들과 경제 저널리스트들은 “선진 자본주의경제에 있어서 불평등의 역사적 전개에 관한 결정적 설명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내재적 동학을 다룬 웅장한 연구”, 나아가 “경제적 사고에 있어 분수령이 될 하나의 책”이라며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는다.

회색 라인

대담한 문제 제기와 추종 불허의 경험적 자료 집적
무엇이 이 책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었나? 무엇보다 두 가지 점이 특기할 만하다. 하나는 자본축적과 분배를 만들어내는 거대한 동학을 통하여 경제성장, 부의 집중, 그리고 불평등의 진화를 탐구하려 했다는, 문제 제기의 대담성이다. 오늘날 미국의 사회과학 일반, 그리고 경제학이 미시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나 방법론에 치중했던 한계를 벗어나 18, 19세기 애덤 스미스, 리카도,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정치경제학의 전통이 지녔던 강점을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좋은 의미에서의 유럽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지적 환경에서 저자의 학문적 업적이 나왔다는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누구도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경험적 자료를 집적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역사적으로 17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미국, 프랑스, 영국은 물론,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포함하는 선진자본주의의 개별 국가들에 대한 방대한 역사적, 국가 비교적 통계자료를 접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세금보고 자료를 통해 초고소득자 계층의 봉급수익을 0.01%까지 추적할 수 있는 고도로 정밀한 자료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다른 학자들 (특히 에마뉘엘 사에즈와 앤서니 애트킨슨)과 협력하면서 수행한 15년 동안의 경험적 연구의 결과였다. 그 때문에 그가 한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데이터에 기초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가능할 수 있었다.

피케티의 역사적, 정치경제적 방법론과 자료의 축적에 힘입어 3세기 동안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 있어 소득과 부(저자가 자본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그 동안 알고 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지식을 얻게 됐다. 또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역사에 대해 새롭게 말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여러 발견 가운데 하나는 더 나은 경제적 평등을 향한 일반적 경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발견은 2차대전 이후 실현된 바 있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평등은 부분적으로는 의도적인 정책의 결과, 특히 누진세의 효과라는 면이 크지만, 그보다는 1914~1945년 사이 특히 유럽에서 상속된 부가 파괴된 것이 더 중요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발견은 선진자본주의 사회는 상속된 부가 지배했던 19세기 말의 ‘가산제적 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로 서서히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주장하기를 휴먼캐피털의 증가는 다른 형태의 부의 중요성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피케티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비휴먼캐피털’(nonhuman capital)은 필수불가결하다고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계급 간 전쟁’은 ‘세대 간 전쟁’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내다보는데, 그러나 세대 간 불평등은 그들 세대 내에서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발견은 유럽, 특히 프랑스와 영국에서 소득에 대한 부의 비율이 미국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1980년 이래 영어권 국가, 특히 미국의 경우 전체 소득에서 상위 1%의 점유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통계는 미국에서 최상위 1%가 1977~2007년 사이 미국 국민소득 증가의 60%를 차지했음을 보여준다. 기술발전과 세계화도 이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고소득 국가들에서 이 두 요소는 공통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기업인들의 지배력은 단지 그들 자신의 노동에 의존하는 사람들에 대해 점차적으로 강화되었다. 종합해보면, 두 개의 가장 놀라운 결론은 미국에서의 ‘초특급경영인’(supermanagers)의 등장과 유럽에서의 ‘가산제적 자본주의’의 회귀이다.

피케티의 이론에서 중요하고도 무척 흥미로운 것은 자본축적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책의 기본공식으로서 ‘자본의 수익률’(r)이 ‘경제성장’(g)을 능가한다는 의미의 “r>g”로 표현된다. 풀어 말하면 소득 대비 자본의 비율은 그 수익률이 경제성장보다도 현저하게 더 높은 한, 한정 없이 증가할 것이라는 명제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늘 사실이었다고 말한다. 지난 수세기에 걸쳐 유일한 예외는 부에 대한 수입 부분이 상당량 몰수되거나, 전쟁 과정에서 파괴되거나 또는 특정 국가의 경제가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나 현재 개발도상국에서처럼 비상하게 급성장할 때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론은 두 증거에 기초를 두는 것인데, 하나는 자본의 수익률이 소득에 대한 자본의 비율에 단지 약간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상 시기의 자본가들은 그들의 자본 증가가 최소한 경제성장만큼 빠르게 성장할 것임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그들의 수익 가운데 충분한 부분을 저축한다는 것이다. 결국 작은 재산은 사라져버리고, 큰 재산은 사라지지 않는다. 경제보다 자본이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경향은, 인구변동 때문이든 기술발전의 약화 때문이든 경제성장이 상대적으로 둔화될 때 더 분명히 나타난다. 요컨대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시현되는 것은 낮은 성장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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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대안 혹은 비현실적인 정책?
이러한 분석 뒤에 피케티는 대담한 대안 혹은 여러 평자들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는 정책을 제시한다. 특히 그는 최고 수준의 소득에 대해 훨씬 더 높은 한계세율을 부과하는 것과 누진적인 글로벌 부유세를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개별 국가들이 국민소득 배분에 있어 중간층과 하층에게 경제자원을 재분배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러한 대안은 불평등이 허용될 수 있는 조건은 그것이 전체 이익에 기여하고 가장 열악한 경제적 지위에 있는 하층에게 최우선적으로 편익이 부여될 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존 롤즈의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과 아마르티아 센의 “능력(capability)” 개념과 유사성을 갖는다.

피케티의 책은 경제학 이론과 공리주의적 도덕이론을 통해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기존의 중요 이론과 명제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무엇보다 경제가 전체적으로 성장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이른바 “적하경제학”(trickle-down economics)은 더 이상 사실일 수 없다. 또한 성장 초기에는 불평등이 상승하지만 성장이 궤도에 오르고 선진 경제가 되면 불평등이 감소한다는 역U자형 “쿠즈네츠 곡선” 역시 틀린 얘기다. 불평등지표를 담는 곡선은 차라리 U자형에 가깝다. 그리고 실력과 그것이 창출하는 가치에 부응하여 보상받는다는 “능력주의(meritocracy)” 또한 신화에 불과하다. 더 거시적으로 말한다면,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은 마르크시즘과 그 결정론적 이론에 대한 부정이고, 자유방임 경제이론에 대한 도전이다. 두 경제이론은 공통적으로 경제적 힘에 의존해서 조화 내지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마르크스는 체제의 모순 때문에 자본의 이윤율은 제로에 근접할 정도로 하락해서 결국은 체제의 붕괴와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정했다. 그러나 피케티는 자본의 이윤율은 성장률보다 영원히 클 수 있다고 말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는 자유방임경제이론의 기본 가정들을 모두 틀린 것으로 만들었다. 2012년 미국 가구의 상위 1%는 전체 국민소득의 22.5%를 취득했는데, 그것은 1928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책의 뒷부분에서 저자는 부가 극소수 최정상으로 집중되는 “과두화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분명 책은 자본주의 성장과 그 분배 효과와 관련해 전후 30년 동안의 낙관주의적 시대 다음의 그에 대한 비관적 정조를 대변하는 연구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피케티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분석하고 진단한 자본주의의 동학 그 자체를 넘어, 불평등의 악화를 제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해야 할 과업, 정치적 행동의 긴요함에 있다고 하겠다.


- 최장집 - 

2014년 5월 4일 일요일

기도의 방식

어린시절 하나님께 기도했지.. 자전거가 갖고 싶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어. 그리고 깨달았지 하나님은 그런식으로 우리를 보살피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훔쳤지,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해 용서를 구했다네..

- 알 파치노


2014년 5월 3일 토요일

2014년 4월 30일 수요일

[안계환의 역사 인문학]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많은 기업에서 인문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 삼성그룹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 현대자동차 그룹에서는 역사적 인식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각 기업의 직원 연수 과정에서도 인문학 특강은 반드시 포함시킨다. 하지만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에서도 인문학 전공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미국에서 가장 좋은 일자리의 대부분은 이공계고 뛰어난 이공계 인력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각 기업에서는 인문학 소양을 갖춘 사람을 원하는 것이지 인문학 전공자를 원하는게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을 추앙했다고 흔히 이야기하지만 이는 탁월한 테크놀러지와 결합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기술을 모르는 인문학자를 데려다가 기업에서 쓸 생각은 전혀 없다.

인문학 만큼 말도 많고 오해도 많은게 별로 없다. 대부분의 인문학 특강은 철학전공 연구자들이 하거나 인문학 독서에서도 읽기 어려운 서양 문학작품에 치우쳐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기업이 원하는 인문학과 인문학 전공자들이 제공하는 인문학은 상당히 다르다. 그러기에 말도 많고 인문학이 기업에서 생각보다 효용 가치가 낮은 것이다.

또 최근신세계 그룹에서 올해 20억원을 투자해 인문학 인력을 우대하겠다고 나서는 데에서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실제 현실은 매우 차이가 있다. 신세계가 원하는 것은 국내 대학의 인문학을 전공한 전공자를 필요로 하는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전공을 바탕으로(어떤 전공이든지) 세상을 통섭적으로 생각하고 미래를 그려갈 수 있는 지혜의 소유자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배출되는 많은 인력들이 세상을 통섭적으로 생각하는데 있어서 매우 약하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고, 또 교육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전공과는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저 높은 학점을 따는데만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도 그렇다. 언제까지 자신은 실무자에 머물러 있을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업무에만 목숨걸려고 한다. 내가 개발한 제품만 바라보고 정해진 루틴대로 일을 처리하려고만 한다. 미래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부족한 것이다.

여기에 인문학적 소양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인문학적 소양이란 인문대학 과정에서 키워줄 수 있는게 아니다. "정해진 것, 주어진 것, 그렇다고 말 하는 것" 등등을 부정할 수 있고 그것들을 융합하고 새로운 사고를 통해서 무언가 나름의 방향성을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게 인문학적 소양이다. 경영자들은 그래서 직원들의 좁은 마인드를 확대해 보려고 인문학을 접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많은 오해가 있고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문학에 대한 정의와 영역을 너무 좁게 설정한 때문이다. 흔히 인문학은 문사철(文史哲)이라고 말하지만 이 말이 생긴게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아직 100년도 안된 1920년대에 생긴 말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문명을 만들면서부터 생겼다. 그런데 겨우 100년된 정의를 가지고 수 천년된 인문학을 정의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인문학을 정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라파엘로의 그림 "아카데미아" 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인문학의 범주가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하늘을 가르키며 이상사회를 이야기했던 플라톤이 있고 땅을 보며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날 '철학자' 라고 정의된다. 하지만 오늘날의 철학자인 강신주나 김용옥, 최진석과는 분야가 매우 다르다. 과거의 그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정치가였고, 수학자였고, 과학자였다. 그저 세상의 관심있는 모든 걸 다룬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아카데미아 그림에는 더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한다. 유일신 사상을 만들어 낸 조로아스터, 과학자 프톨레마이오스, 수학자이며 음악가이며 교주이기도 했던 피타고라스, 기하학의 완성자 유클리드, 헤라클레이토스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오늘날 용어로 수학자,과학자, 철학자 라고 정의하기에는 그들이 생각하던 범주가 매우 달라서 무리가 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인문학의 정의는 "인류문명학" 이다. 인류 문명이 탄생하고 발전된 이래 사람들의 생각은 발전하고 인문학을 통해 가치를 높여왔다. 따라서 인류 문명의 발자취를 찾아 내고 그 속에서 인간이 살아야 하는 가치, 인간이 영유해야 할 행복, 인간이 느껴야 할 삶의 의미 등을 찾아낼 수 있다. 따라서 인문학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지나치게 어렵거나 멀리 있는 멋있는 존재일 필요가 없다. 그저 내 가까이에서, 삶 속에서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낼 수 있다. 물론 문사철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데는 동의할 수 있으나 여기에 예술,종교,과학등도 포함시켜야 한다. 과학을 인식하는 가치철학도 매우 중요한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한가지 중요한 점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인류 문명학이라고 정의해 보았을 때 인류 문명의 역사를 간과할 수 없다. 예술을 다루더라도 예술의 역사적 기반을 이해하는게 좋다. 철학을 하더라도 그 역사적 변화와 현재의 시사점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기에 모든 인문학은 역사를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왔던 각 분야의 역사를 모르고서 미래를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경련에서 진행하는 CEO과정에서도 역사CEO 특강을 포함시켜 진행하고 있을 정도로 기업경영자와 역사와의 관련성은 매우 높다. 기업에서는 사철문예종의 역사를 매우 중시한다. 경영은 역사적 리더들의 의사결정과 매우 흡사하다. 전략, 마케팅, 조직 등이 모두 역사에서 유래된 용어다. 기업에 관심이 있고 기업에서 원하는 인문학에 관심을 둔다면 역사에 대한 공부와 이해는 필수다. 하지만 역사도 지나치게 깊이 있는 것은 연구자들의 몫이다.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통찰적 역사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세계사적 흐름은 무엇인지, 국가간의 경쟁에 있어서 역사적 이유는 무엇인지를 캐내 보는 것도 경영인에게 큰 의미가 있다.

오늘은 인문학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인문학은 어려운게 아니고 어려울 필요도 없다. 삶 속에서 즐기고 느끼고 나의 삶에서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는게 중요하다.

- 안계환의 역사인문학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오웰과 헉슬리가 예상한 디스토피아


누구라 할 거 없이 인간은 돈이 생기면 졸부처럼 행동한다

캘리포니아대학교 폴피프(Paul Piff)교수는 미국내 소득불균형 심화와 연관된 행동의 변화를 탐구한 일련의 실험을 이끌었습니다.

피프교수는 부와 꼴사나운 행동 사이의 연결관계를 발견했습니다. 한 실험에서 피프교수는 탁자 위에 사탕 단지가 있는 방에 한 명씩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사탕은 그 다음 실험에 참가할 아이들을 위한 거라고 말하면서 몇 개 정도는 먹어도 되지만 너무 많이 먹지는 말라고 당부합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참가자들은 가난한 참가자에 비해 두 배나 많은 아이들 몫의 사탕을 먹었습니다.

피프교수의 연구진은 상금을 걸어놓고 주사위를 굴려 나오는 숫자를 얼마나 정직하게 보고하는지 시험했습니다.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150,000-$200,000)은 $50 상금을 타기 위해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 비해 네 배나 더 정직하지 못한 보고를 했습니다.

부의 어떤 점이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바꾸는 걸까요?

피프교수는 사무실에서 부자가 된 듯한 느낌만 주는 실험도 했습니다. 두 명의 피험자가 모노폴리 게임을 하도록 했습니다. 한 사람이 더 부유한 환경에서 게임을 시작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1,000를, 부유한 사람은 $2,000를 받고 시작합니다. 가난한 이는 낡은 신발을, 부자는 롤스로이스를 말로 가지고 시작합니다. 또한 부자만 주사위를 두 개씩 굴리도록 했습니다. 같은 수가 나오면 한 번 더 던질 수 있게 되죠. 결국 게임은 부자가 이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유한 피험자는 임의로 결정했지만 게임이 끝나고 부유한 피험자에게 게임을 이길 만한 자격이 있는지 묻자, 대답은 이구동성으로 “그렇다”였습니다. 결국 게임 시작 전에 누가 더 많은 돈으로 시작할지 결정한 동전 던지기가 근본 원인이었지만, 이들은 성공을 자신의 몫으로 본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게임에서도, 개개인이 부유해질수록 성공을 자신의 몫으로 돌리는 경향이 늘고, 성공에 기여한 다른 모든 변수는 무시한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부유하게 출발한 피험자들은 탁자 위에 놓은 프레첼을 더 먹었습니다.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말하기 때문에 좀 더 무례한 모습을 보였죠. 이에 비해 심리학적으로 가난한 이들은 보다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다른 사람을 더 잘 돕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부자를 가난하게 느끼게 하고, 가난한 사람을 부자처럼 느끼게 한 후 진행한 일련의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입증되었습니다.

경제적 불균형은 결국 자신이 도달한 경제적인 수준을 합리화하는 행동을 낳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건널 수 있도록 모든 차량은 일단 정지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이 동영상의 도입부에는 BMW나 포르쉐, 벤츠를 모는 부유한 사람들이 법을 어기고 심지어 상향등까지 켜가며 보행자를 위협하고 먼저 지나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물론 개개인의 성향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피프교수는 실제 부자라도 심리적으로 가난한 입장에서 실험에 참가하도록 하면 훨씬 더 관대하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며, 가난해도 심리적으로 부유한 입장으로 참가하면 졸부의 행동을 보인다고 강조합니다.



원문 – http://bigthink.com/60-second-reads/just-add-money-see-what-happens

리더의 공감 결핍 증후군,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


아래는 The Signs of a Leader’s Empathy Deficit Disorder 번역.

당신의 조직에 있는 두 명의 사람을 떠올려 봅시다.. 한 명은 당신보다 하나나 두 직급위에 있는 사람이며 다른 한 명은 바로 당신 아래 직급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두 명에게 동시에 이메일을 받았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두 개의 이메일에 답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아마도 당신은 당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받은 이메일에는 바로 답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받은 이메일은 나중에 짬이 날때 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응답시간의 차이는 조직에서 서열을 나타내는데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좀 더 일반적인 법칙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권력이 쎈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더 기울이며 힘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적게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권력과 집중력간의 관계는 미팅에서 처음으로 만난 두 사람의 접촉모습을 들여다보면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단지 첫 5분간의 대화만을 보더라도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 대해 눈을 덜 마주치거나 고개를 덜 끄떡이는 식으로 관심을 덜 기울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부유한 집안출신과 가난한 집안출신의 대학생간에도 나타납니다.

이런 이메일응답시간 분석은 엔론의 몰락과 함께 당시 모든 직원들의 이메일데이터베이스가 증거자료로 공개되면서 가능하게 됐습니다. 이메일분석을 통한 조직에서의 소셜네트워크 분석프로젝트는 컬럼비아대학이 진행했으며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정도가 권력서열을 따라갈 때 공감능력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에게 이혼이나 인생에서의 굴곡에 대해서 털어놓을때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사람들이 더 많은 공감을 표현합니다.  또 사람의 얼굴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내는 공감능력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보다 더 뛰어납니다.

사회생활에서 나타나는 이런 사실은 리더들에게 하나의 위험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효과적인 리더들은 설득이나 영향력발휘, 동기부여, 경청, 팀워크, 협업 같은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공감능력에에는 3가지종류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인지적(cognitive) 공감능력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지, 즉 타인의 세계관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당신이 전달해야 할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감정적(emotional) 공감능력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즉시 공명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감정이입적 관심(empathic concern) 공감능력입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것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리더십 공감능력결핍의 징후는 부하를 대하는 리더의 행동에서 가장 잘 나타납니다.  여기 몇개의 공통적인 징후가 있습니다.

1. 부하가 보기에 말이 안되는 지시사항이나 메모는 보스가 직원들의 위치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고 직원들이 납득이 될만한 수준의 말로 풀어내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낮은 인지공감능력의 징후는 막상 그 목표를 수행해야할 직원들에게 납득이 가지도 않고 말도 안되는 전략이나 계획, 목표입니다.

2. 부하들을 당혹스럽게(upset) 하는 공식발표나 명령입니다. 이것은 보스가 직원들의 감정적인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하며 부하들에게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3.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일에 대해 보스가 차갑게 대하거나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감정이입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부하들은 보스가 차갑고 무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방어적이 됩니다. 예를 들어 혁신을 위해 모험을 감수하는 것을 꺼리게 됩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리더일수록 공감결핍증에 빠질 위험이 큽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솔직한 피드백을 주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리더가 주위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솔직한 피드백을 주기를 꺼리게 됩니다.

공감결핍증을 피하는 방법중 하나는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빌조지가 말하는 ‘트루노스그룹’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그룹은 당신의 지인들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또 하나는 당신에게 격의없이 대할 수 있는 (아마도 회사바깥의) 동료들의 비공식그룹을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접촉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조직안에서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회사안을 일부러 어슬렁거리며 직원들과 친밀해지기 위한 가벼운 시간을 갖는 친화력이 높은 (High-contact) 리더들은 공감결핍으로부터 면역력을 갖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보스에게)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은 (그래도 무사할 것이라는) 회사분위기를 만드는 리더들도 마찬가지로 면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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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답글

17개의 답글

estima7
2013년 12월 8일 at 4:48 오후
응답
이유를 논하기 전에 전제로 말씀하신 “보통, 공감결핍인 사람들이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들보다 리더 자리에 많은지”가 실제로 그런지를 검증하는게 먼저인것 같습니다. “보통 그렇지 않느냐?” 정도로는 비약이 심합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망명객
2013년 12월 8일 at 5:07 오후
응답
어디서 본 글인데, 이런 저런 조직이나 상사에 대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나중에 자기가 저 자리에 가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힘겹게 그 자리까지 가면서 많이 물들고 조직에 순응해서 아랫 사람의 위치에 있을때 가졌던 생각을 잊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 합니다. 위치/상황에 따라 다른 입장을 지녀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실제 그 자리에 가 보니 그럴만 하다하고 옛 상사의 행동을 이해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이 잊어버렸을 거라는 말에도 일견 공감이 되네요

조혜림
2013년 12월 9일 at 9:28 오전
직위가 오를수록 공감해야할 직원의 절대인원수가 늘어나는데 전부를 만족할수있는 결과를 찾으려면 의사결정이 제 시간에 이루어질수 있을까요. 그 직위라면 감정공감보다 적당히 욕먹어도 객관적인 수익이나 결과가 평가의 기준이 될수밖에 없을듯… 아랫직원도 결국 야근하고 상사랑 안맞아도 회사가 잘되서 복지랑 성과급많고 유명한 대기업 가려하는거겠죠. 문제는 공감도 안하고 효율도 없고 실적도 나쁜 리더…

후동
2013년 12월 10일 at 3: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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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타고난 성품이나 나고 자란 환경과는 무관하게 “그 자리에 가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봐야 할 때도 많습니다. 일전에 제가 번역해 올린 “돈의 맛, 부자는 무례하다?”를 읽어보세요. 왜 부자가 되면 갑자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맘이 줄어드는지에 관한 캘리포니아대학교 폴피프 교수의 연구에 관한 글입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
http://popntalk.wordpress.com/2013/07/29/money-on-mind/

조영수
2013년 12월 9일 at 11: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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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부하직원들이 많아지면 공감능력을 스스로 떨어트리는게 어떤 결정을 하기에 편하고 단기적인 관점에서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동일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부하직원의 감정과 어려운 상황을 무시하고 지시하는 것은 감정을 배려하고 상황을 다 이해하고 내리는 결정보다 빠르고 편하고, 덜 에너지가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결정을 해야하는 리더에 자리에 올라가면 갈수록 스스로에게 편한 쪽을 택하는 것 같고요.
어떻게 보면 많은 리더들이 공감결핌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고, 그렇지 않고 매번 공감 속에서 결정을 내리는 소수의 리더들을 보면 참 대단하고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단지 어렵지만 그렇게 가는 것이 올바르다고 알고 있어 노력하는 사람과 아예 노력조차 안하는 사람과는 차이가 크다 생각되네요.

cheombooks
2013년 12월 10일 at 11: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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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가 중요한 한국사회에서는 공감에 할애할 여력이 없는게 아닐까요?리더가 공감하는데 필요한 기반 지식이 없는 경우도 있겠구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위로 올라가서도 실무지식을 갖출 수 있어야 할텐데 이런 분들은 정말 찾기 힘든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