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7일 토요일

한국인에게 내재된 르상티망

르상티망(Ressentiment)은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제시한 핵심 개념으로, 단순한 원한이나 질투를 넘어서는 복합적 감정 구조를 지칭한다. 사전적으로는 '강자에 대한 약자의 원한, 분노, 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이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정의하면 약자가 강자를 '진정한 선이나 삶의 가치를 모르는 불쌍한 인간'으로 격하하는 **가치 전도(Umwertung der Werte)**의 심리적 기제이다.

니체에 따르면 르상티망의 핵심 메커니즘은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째, 즉각적 반응이 패배를 불러올 것이라는 성찰에 기인한 감정 경험의 '만성적' 특성이다. 둘째, 이를 처리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셋째, 남의 불행에 대해 기뻐하는 행재요화(Schadenfreude)에서 발원하는 악의와 비난의 능력이다. 물리적으로 패배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약자의 자기정당화가 르상티망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막스 셸러(Max Scheler)는 이 개념을 더욱 정교화하여, 르상티망이 '가치의식과 노력'의 관계 내부에서 발생하며 특정한 가치에 대한 주체의 무력감에 뿌리박고 있는 가치의식의 '착오'와 '도착'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셸러가 주목한 것은 평등과 사회적 유동성, 능력주의의 문화와 이데올로기가 현실의 불평등과 결합할 때 르상티망이 번식한다는 구조적 조건이다. 이 통찰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분석틀을 제공한다.


한국적 르상티망의 역사적 형성 과정

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와 평등의식의 맹아

한국에서 르상티망의 구조적 토양은 조선 후기 신분제의 동요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양란(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납속책, 공명첩 발행 등을 통한 신분 변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면서, 양반의 분화로 인한 지위 하락과 상민·노비의 신분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북학파 실학자들은 만민개로(萬民皆勞) 사상에 입각하여 양반 특권 폐지와 능력에 따른 인재 선발을 주장했고,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민중 차원에서 평등의식을 확산시켰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법적으로 폐지되었으나, 이는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기에 실질적 평등과 형식적 평등 사이의 간극이 처음부터 존재했다. 이 간극 자체가 셸러가 지적한 '평등 이데올로기와 현실 불평등의 결합'이라는 르상티망의 번식 조건을 한국 사회에 내장시킨 것이다.

식민지 경험과 '식민지 콤플렉스'

일제 35년간(1910-1945)의 식민 지배는 한국인의 집단적 르상티망을 형성한 가장 강력한 역사적 경험이다. 한국의 반일 감정은 임진왜란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적 형태의 반일 정서는 대체로 일제강점기에서 비롯된다. 이 시기의 경험은 전형적인 르상티망의 구조를 보여준다: 물리적으로 지배당하면서도 문화적·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정신적 자기정당화가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패턴이 이미 병자호란(1636) 이후 조선의 '숭명배청(崇明排淸)' 이데올로기에서 선행된다는 점이다. 청에 항복한 현실을 부정하고 멸망한 명을 흠모하면서, 조선이 중화의 정통을 계승한 '소중화(小中華)'라는 가치 전도를 수행한 것은 니체적 의미의 르상티망 그 자체이다. 이 책에서 지적하듯이 "식민지 콤플렉스와 르상티망"이 결합한 구조가 현대 한국의 반일감정의 심층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과 '헝그리 사회'의 청산

한국전쟁(1950-1953)은 민족사의 재앙이었지만, 동시에 봉건적 계급사회의 잔재를 물리적으로 일소함으로써 시민들에게 동일한 출발점에서의 무한 경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쟁으로 기존의 토지 귀족과 부유층이 몰락하고, 모두가 폐허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조성되면서, 한반도의 오랜 유산인 '헝그리 사회'를 한 세대 만에 넘어선 한국 산업혁명의 동력이 확보되었다.

​이 과정에서 르상티망은 양면적으로 작용했다. 긍정적으로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평등의식이 경제적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부정적으로는 질투와 원망이 만연한 '앵그리 사회(angry society)'가 고착되는 결과를 낳았다.

압축적 근대화와 출세주의의 구조화

1960년대 이후의 압축적 근대화는 르상티망의 구조적 조건을 극대화했다.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국가는 경제 발전의 주체로 기능했고, 개인은 국가 발전을 위한 도구로 여겨졌다. 한정된 자원과 기회를 놓고 벌어지는 무한 경쟁 속에서 학벌, 재산, 지위와 같은 세속적 성공이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다.

​1960년대 급속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부모의 신분 대신 개인의 성공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식이 확산되었고, 1980년대 이후 폭발한 교육 열풍은 계층 상승의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능력주의 담론은 '개인주의적 외피 속에서 세습을 통한 부의 세대간 계승을 교묘하게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했다. 이는 정확히 셸러가 경고한 르상티망의 구조적 번식 조건—평등의 약속과 불평등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한국 사회에 심층적으로 각인시켰다.

한(恨)과 르상티망: 유사성과 차이

한국 고유의 정서로 거론되는 '한(恨)'은 르상티망과 구조적 유사성을 공유한다. 한은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으로 정의되며, 외침에 시달려온 역사, 민초들의 가난과 핍박이 축적되어 응결된 정서로 해석되어 왔다.

​르상티망과 한의 공통점은 무력감에 기반한 억압된 감정의 내면화라는 점이다. 르상티망은 '복수심 어린 원한 감정'이되 적극적으로 복수하지 못하고 내면에 머무르는 상태이며, 한 역시 풀리지 않는 원망이 내면에 응어리진 상태를 지칭한다.

한국 사회의 현대적 갈등 양상을 분석할 때, 한보다는 르상티망이 더 정확한 분석 도구로 기능한다. 한이 수동적 체념과 승화의 측면을 포함하는 반면, 현대 한국 사회에서 관찰되는 감정 구조는 적극적인 가치 전도, 피해자 담론의 경쟁, 혐오의 정치적 동원 등 르상티망의 메커니즘에 더 부합하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르상티망의 발현 양상

갑질과 을의 르상티망

한국 사회의 '갑질' 문화는 르상티망의 전형적 발현이다. 갑질은 사회적 지위에서 기인한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일컫는 말로, 2004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주목할 것은 갑질이 일부 특권층의 문제가 아니라 만인의, 만인에 의한, 만인에 대한 갑질이라는 점이다. 누군가의 갑질에 분노하던 을이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병(丙)이나 정(丁)에게 상대적 갑질을 하는 모순이 일상적으로 관찰된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갑질이 '모든 계층에 만연해 있다'는 응답은 77%에 달했고, 대다수 한국인은 자신을 갑보다 을로 규정한다. 이는 르상티망의 핵심 구조—자신의 약자 지위에 대한 인식과 강자에 대한 원한—가 사회 전반에 내면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을의 위치에서 갑의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 갑질을 재생산한다는 분석은, 르상티망이 해소되지 않고 권력관계의 연쇄를 따라 전이되는 메커니즘을 정확히 포착한다.

국제신문의 분석은 이를 명쾌하게 요약한다: "강자들의 갑질이 사회파괴적이라면, 을의 르상티망은 사회해체적이다."

학벌주의: 현대판 신분제로서의 르상티망

학벌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르상티망을 구조적으로 재생산하는 핵심 기제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학벌이 "계급은 아니지만 일종의 신분제처럼 작동하는 '학벌의식'은 현대판 한국식 신분제도"로 고착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03년 조사에서 성공과 출세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학벌(61%)이 꼽혔으며, 70.6%가 학벌주의로 심리적 박탈감을, 57.4%가 열등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학벌주의가 르상티망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이유는 셸러의 분석틀에서 명확해진다. 학벌은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는 일종의 후천적 신분으로서, 개인의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없다는 무력감의 원천이 된다. 능력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학벌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노력하면 된다'는 이데올로기와 '노력해도 안 된다'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르상티망을 배양한다.

​정유라의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발언이나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부정입학 논란이 사회적 폭발력을 가진 것은, 능력주의 신화 이면에 감춰진 세습적 불평등이 폭로되는 순간 축적된 르상티망이 분출되기 때문이다.

MZ세대의 공정성 담론과 르상티망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의 공정성 담론은 르상티망의 현대적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2021년 조사에서 MZ세대 3명 중 2명(67.9%)이 "한국 사회가 노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61.9%는 40~50대가 20~30대였던 시기에 비해 현재 청년세대의 사회·경제적 기회가 더 적다고 인식했다.

​주목할 것은 같은 MZ세대 내에서도 계층에 따라 인식이 크게 갈린다는 점이다. 자신을 경제적 '하층'으로 여기는 청년의 74.5%가 '공정한 대가가 없다'고 답한 반면, '상층' 청년은 56.1%에 그쳤다. 계층 상승 가능성에 대해서도 상층 청년의 79.4%가 '가능하다'고 답한 반면 하층 청년은 37.7%에 불과했다. 이는 르상티망이 추상적 감정이 아니라 구조적 위치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되는 사회적 감정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인은 '공정성'과 '불평등'이라는 두 가치를 동시에 지향하는데, 이는 모순이 아니다. 공정한 경쟁에 기인한 불평등을 인정한다는 사유를 의미한다. 단, 능력에 따른 차등 보상은 정당하지만 그 '능력'의 기반 자체가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인식이 르상티망의 감정적 기반을 형성한다.

젠더갈등과 피해자 담론의 경쟁

한국 사회의 젠더갈등은 르상티망이 '피해자 담론'의 형태로 발현되는 대표적 사례이다. 2025년 조사에서 18~29세 남녀의 39%와 35%가 각각 젠더갈등을 '매우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특징적인 것은 남녀 모두 자신의 성별이 더 피해를 보고 있다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18~29세 여성의 54%는 '여성이 더 피해를 본다'고 답하고, 동년배 남성은 '남성이 더 피해를 본다'는 인식이 강화되는 추세이다.

​이는 르상티망의 전형적 구조—자신을 피해자로 위치시키고, 상대를 가해자(혹은 부당한 특권의 수혜자)로 규정함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는 심리—가 성별을 축으로 경쟁적으로 발현되는 양상이다. 르상티망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보다 희생과 피해를 강조하는 윤리적 체계'가 형성되며, "피해를 경험한 사람들이 오히려 도덕적 우위를 점하게 되는 '피해자 담론'의 확산"이 나타난다.

정치적 진영갈등과 원한의 정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 조사에서 국민의 92.3%가 진보와 보수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으며, 이는 모든 사회갈등 유형 중 가장 높은 수치이다. 이어 정규직-비정규직 갈등(82.2%), 노사갈등(79.1%), 빈부갈등(78.0%), 지역갈등(71.5%) 순이었다.

​정치적 진영갈등에서 르상티망은 특히 선명하게 작동한다. '선거에서 현실적으로 지고도 내심 인정하지 않는 르상티망의 정치적 변주는 상대에 대한 음해와 흑색선전'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이념적 차이보다 지역적 소속감이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정 지역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고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도 깊다. 이는 단순한 정책 차이가 아니라 르상티망에 기반한 정체성 정치의 양상을 띤다.

에바 일루즈의 분석을 빌리면, "원한의 정치는 경제적 착취, 정치적 소외, 정당한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시민적 분노를 이웃과 동료 시민"으로 향하게 하여 "민주주의의 정의 실현 능력을 약화시킨다". 포퓰리즘 정치가 대중의 피해자 의식과 모욕감을 동원하는 방식은 르상티망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메커니즘이다.


혐오의 확산과 르상티망의 사회적 전이

한국 사회에서 만연해진 혐오 감정은 르상티망의 가장 파괴적인 발현 형태이다. 상대에 대한 격려와 위로보다 미움과 비방, 악감정, 인신공격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혐오 감정은 또 다른 갈등과 원한을 생산해내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르상티망이 강한 사회에서는 집단적 정체성이 '적대적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특정 집단이 타 집단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자기 정체성을 강화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경제 불황 시 특정 계층(이민자, 대기업, 정부)을 희생양으로 삼아 불만을 해소하려는 정치적 선동이 그 전형적 사례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원한의 감정을 해소하는 방식은 "근대화의 부정적 요소들, 즉 지나친 경쟁의식과 승자독식의 세계관과 결합되었고, 이는 개인과 사회를 철저하게 타자와 분리하면서 배제시키는 무서운 폭력성으로 드러났다".


르상티망의 구조적 조건: 왜 한국인가

한국 사회가 르상티망의 특히 비옥한 토양이 되는 이유는 셸러의 분석틀로 명확히 설명된다. 르상티망이 번식하는 조건은 평등과 사회적 유동성, 능력주의의 문화와 이데올로기가 현실의 불평등과 결합하는 사회이다. 한국 사회는 이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충족한다.

르상티망의 구조적 조건 (셸러)한국 사회의 대응 양상
평등 이데올로기의 확산신분제 폐지(1894), 전쟁 후 평등의식, 민주화 운동
능력주의 문화학벌주의, 입시경쟁, '공정한 경쟁' 담론
사회적 유동성에 대한 기대압축성장기의 계층상승 경험, '개천에서 용 난다' 신화
실제적 불평등의 지속자산 양극화, 학벌 세습, 비정규직 확대, 주거 불안정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가 한국 사회를 "르상티망의 사회"로 정의한 것은 이러한 구조적 분석에 기반한다. 동아일보의 분석도 같은 맥락에서 "시기심이 한 인격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르상티망의 사회적 만연은 한 나라의 국격(國格)의 실체를 폭로한다"고 지적한다.


르상티망: 파괴와 창조

르상티망의 심리가 창조적으로 전환될 때, 평등의식을 동반하면서 비교 의식과 극한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 한국의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은 모두 이러한 성질의 산물이다. '모두가 남들처럼 동등하게 대접받고 싶다'는 욕구가 경제적 성취 동기와 정치적 민주화 운동의 에너지로 전환된 것이다.

질투와 원망의 만연이 통제되거나 반대로 제어되지 않는 상황을 오가면서 전 국민이 항상 불만족 상태에 놓인 '앵그리 사회'가 고착된다. "질투심은 영웅을 죽이며 원망의 문화는 원한의 정치를 부른다. 헐뜯기와 원한이 판치는 풍토에서는 역사의 성과가 축적되지 않는다"는 경고는, 르상티망이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가장 근본적 기제임을 시사한다.

르상티망 완화를 위한 구조적 과제

르상티망의 감정 구조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서가 특정 세대와 집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고, 비판과 규제 중심적 대응보다는 안정적인 삶의 조건들을 만들기 위한 정책들을 통해 대중들의 불안과 불공정성의 감각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개인의 능력을 사회와 분리하고 절대화하는 능력주의 담론을 넘어, 부와 소득이 공동체의 기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의 르상티망은 개인의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평등의 약속과 불평등의 현실 사이의 구조적 간극이 만들어낸 사회적 감정이다. 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 르상티망의 파괴적 에너지를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유일한 경로일 것이다.

가츠와 그리피스, 까뮈의 amor fati

만화 베르세르크는 단순한 다크 판타지를 넘어, 인간의 존재론적 투쟁을 깊이 있게 다룬 철학적인 작품입니다. 가츠와 그리피스의 대립은 서구 철학사의 거대한 줄기인 니체의 실존주의결정론적 허무주의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두 인물의 태도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1. 가츠: '초인(Übermensch)'과 운명애(Amor Fati)

가츠는 철저히 니체적 인물입니다. 그는 신이나 운명이라는 거대한 체계에 순응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의지로 고통을 정면 돌파합니다.

  • 운명애(Amor Fati): 가츠는 자신에게 닥친 비극적인 낙인과 저주를 피하려 하기보다, 그 고통스러운 삶 자체를 긍정하며 싸워 나갑니다. 이는 "이것이 삶이었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이라고 외치는 니체의 태도와 일맥상통합니다.

  • 자기 극복: 가츠는 매 순간 한계를 시험받지만, 외부의 구원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 '검은 검사'라는 정체성을 구축하며, 부조리한 세계에 균열을 내는 능동적 허무주의자입니다.

2. 그리피스: '최후의 인간' 혹은 '결정론의 노예'

그리피스는 표면적으로는 야망가이지만, 철학적으로는 운명의 굴레에 가장 깊게 속박된 인물입니다.

  • 인과율(Determinism)의 굴레: 그리피스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동료를 제물로 바치는 '강림'을 선택합니다. 이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운명론적 정당화 뒤에 숨는 행위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 믿지만, 결국 신(심연의 하나님)이 설계한 거대한 인과율의 장기말이 됩니다.

  • 르상티망(Ressentiment): 꿈이 꺾였을 때 느끼는 무력감과 질투, 원한은 그를 타락시킵니다.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방식은,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는 가츠의 태도와 정반대 지점에 있습니다.


3. 삶의 태도 비교: 실존 vs 본질

구분가츠 (실존적 투쟁)그리피스 (본질적 야망)
삶의 근거현재의 투쟁과 동료와의 유대예정된 승리와 개인의 성취
부조리에 대한 대응저항과 인내 (시시포스적 모델)굴복과 거래 (파우스트적 모델)
운명의 해석개척해야 할 가시밭길따라야 할 정해진 길
자유의 의미고통 속에서도 선택하는 자유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자유

알베르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

가츠의 삶은 알베르 카뮈가 말한 **'시시포스'**와 닮아 있습니다.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가츠는 결말이 보이지 않는 사도들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카뮈는 이 부조리한 반복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지며, 그 투쟁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증명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그리피스는 부조리 앞에 절망하여 '초월적 힘'에 의탁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실존을 포기하고 '페무토'라는 신적인 존재(본질)가 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