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5일 화요일

집단지성의 실패: 왜 대중혁명은 과대평가되는가

원문: The Unwisdom of Crowds

: Why people-powered revolutions are overrated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 있었던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잔해와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들은 남아있다. 하나의 국가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전설, 감정, 그리고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함께.

광장에서 투쟁한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고 반복되어 읊어질 것이지만, 이것이 시위자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정반대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곧 ‘피플파워’의 열광이 환영에 불과함을 곧 배울 것이다. 언제가 되었든, 환영은 곧 벗겨지기 마련이다.

대규모 시위가 갖고 있는 감정적인 힘을 부정할 수는 없다. 락 콘서트라든지 대규모 운동경기에 참가하면 함성을 지르는 군중의 일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 수 있다. 18세기부터 철학자들은 대중운동의 환각적인 힘을 묘사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

그러나 여느 혁명과 마찬가지로, 거리의 혁명이 성공했다고 하여 그 이후에 맞이할 것들도 성공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68혁명 이후로 우리는 거리의 혁명을 진보와 동일시하곤 했지만 거리의 혁명이 결코 언제나 진보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은 아니며 심지어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리비아와 같은 몇몇 경우에는 부패한 독재를 몰아냈더니 폭력과 정치적 진공상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의 2004~2005년의 오렌지 혁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혁명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지도자들 또한 그 전임자들처럼 무능하다는 것이 나중에 드러났다. 1979년의 이란의 경우를 보면, 시민혁명은 심지어 극단분자들에게 권력을 주기도 한다.

거리의 혁명은 멋진 사진들을 만들어 내고, 그럴싸한 헤드라인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피플파워’를 민주주의 그 자체로 혼동하곤 한다. 그러나 법원 등의 사법 시스템, 민주주의적 구조, 권리장전 등과 같은 민주주의적 제도를 만드는 것은 길고 지루한 과정이라 외신기자들의 흥미를 전혀 끌지 못한다.

올해 초 튀니지가 새로운 헌법을 비준한 일은 일련의 ‘아랍의 봄’ 사건들 중 가장 중요한 성취였지만, 이를 성취하기 위해 거쳐야 했던 지난한 협상들은 외부자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웠으며 화면빨이 잘 받는 장면들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피플파워’가 실제 선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매우 위험한 실수이다. 태국과 터키에서, 교육을 잘 받은 중산층들은 민주주의적으로 선출되었지만 점차 부패하고 독재적이 되어가고 있는 지도자들에 대항하여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이 지도자들은 선거를 하면 바로 내일이라도 다시 재선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시위가 몇몇 국가들에게 변화를 가져다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변화가 합법적이고 항구적이 될 수 있으려면 결국 유권자들이 이를 지지해야 할 것이다.

혁명 이후의 작업은 혁명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혁명이 끝나면, 광장에 모인 군중의 응축된 감정은 이제 합법적인 제도로 빠르고 즉각적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집트 혁명이 끝날 때쯤, 시위자들은 타히르 광장을 떠나지를 못했다. 한 시위자는 “이 나라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그가 해야 했던 일은 고향으로 돌아가 이집트 국민들에게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진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풀뿌리 정당을 구성하는 것이었으리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 위치한 무역연합빌딩의 타고 남은 잔해 by Amakuha (CC BY-SA)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 위치한 무역연합빌딩의 타고 남은 잔해 by Amakuha (CC BY-SA)

지난주(이 글은 3월 20일에 발행되었음을 참고) 키에프에서 벌어진 가장 긍정적인 사건은 시위장이 아닌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회의실에서 있었다. 경제학자, 은행가, 국회의원들이 모여 우크라이나와 유사한 극적인 혁명을 겪었던 다른 나라의 정치인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자리였다.

조지아의 전 경제부 장관은 부패와 싸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법을 어긴 사람들을 가둘 ‘감옥’이라고 말했다. 슬로베니아의 정치가는 우크라이나의 새 정부에게 근본적인 개혁을 준비하고 엄청난 인기의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장을 차려입은, 전혀 혁명적으로 보이지 않는 회의장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종류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무슨 법이 필요한가? 어떠한 규칙을 정해야 하나? 이 변화를 이번에는 진짜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러한 대화는 사진기자들의 흥미를 끌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항구적인 뭔가에 대한 약속을 담고 있다.

혁명 이후의 우크라이나가 성공하느냐의 여부에 러시아의 행동이 미칠 영향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얼마나 빨리 혁명의 로맨스를 잊고, 자발성 대신 엄격함을, 감정 대신 분석을 선택하느냐에 달렸다. 군중이 주도하던 시기는 이제 지나갔다.

2014년 3월 22일 토요일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머리속이 혼란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리처드 파인만(Richard FIneman)

벤치마킹

경쟁적으로 벤치마킹하고 모방을 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기업들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미 뛰어난 누군가를 모방해서는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식당이나 대기업뿐 아니라 한 개인의 커리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성공의 길을 찾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관찰하면서 성공한 사람이나 기업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찾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Four Seasons와 Motel 6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Neiman-Marcus와 월마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한 달 마다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노키아와 14년 동안 계속해서 똑같은 게임보이를 팔고 있는 닌텐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하지만 이렇게 공통점을 찾는 방법은 백미러를 보고 운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들 기업의 유일한 공통점은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른 기업과 전혀 다릅니다. 산업의 주류와도 크게 다릅니다. 아주 빠르거나 아주 느리고, 독점적으로 제품을 공급하거나 매우 싼 값에 제품을 팔죠. 엄청나게 크거나 아주 작죠. 리더를 모방하는 것이 힘든 것은 바로 그 리더가 뭔가 훌륭한 것을 했기 때문에 리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훌륭한 것은 이제 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방해서는 결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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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피터스(Tom Peters)

숲의 메아리가 대답해줄거야

목동:숲의 메아리가 대답해줄거야, 메아리님 물어봐도 될까요?(Shall I try?)
메아리:해보럼(Try).

목동:우리의 정열을 나타내려면(to express) 무얼해야 하죠?
메아리:껴안으렴(Press).

목동:결코 날 사랑하지 않던(never loved before) 그녀를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요?
메아리:뱃머리가 되렴(Be fore).

목동:우리가 여자에게 구애할 때(address) 여자를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메아리:옷한벌(A dress)을 사주렴.

목동:내가 사랑하는(adore) 그녀를 순결하게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메아리:그녀를 지킬 수 있는 문(A door)을 만들어 달렴.

목동:음악이 바위를 무르게 한다면, 사랑은 리라(lyre)를 울려주겠죠?
메아리:거짓말이야(Liar)

목동:그럼 가르쳐주세요. 메아리님, 어떻게 하면 제가 그녀를 얻을 수 있을까요(come by her)?
메아리:그녀를 사렴(Buy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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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스위프트, `여자에 관한 부드러운 메아리`

예술이란

예술이란 우리로 하여금 진실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거짓말이다.

- 피카소

More is different

"More is different"

P.W.Anderson

며칠을 계산에서 제외하면

S&P500 지수는 1996년에서 2005년까지 10년간 연평균 9.1%의 수익률을 올렸다. 10년 중 일간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10일을 계산에서 제외하면 연평균 수익률은 4.1%로 떨어지며, 30일을 제외하면 연평균 수익률은 -3.1%로 떨어진다.

- 찰스 슈왑(Charles Schwab)

원금 손실 경험을 했다

미래에셋 디스커버리 펀드는 2001년 7월에 설정된 이후 2007년말까지 약 68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래에셋이 고객의 수익률 조사를 수행한 결과 수만 명의 디스커버리 펀드 투자자들 중에서 30명만이 6년간 계속 투자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 고객들은 몇 십% 수익률을 달성하면 환매한다고 한다.

피터 린치는 머젤란 펀드를 운용하면서 13년간 2700% 수익률을 달성시키고 은퇴했다. 그가 은퇴하는 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펀드에 투자한 고객의 절반이 원금 손실 경험을 했다`

모죽(毛竹)

한,중,일에 서식하는 모죽(毛竹)이라는 대나무가 있다. 이 대나무는 아무리 주변 환경이 좋아도 심은지 5년이 지나도록 눈에 띄는 변화가 없고 죽순도 올라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5년이 지나면 모죽은 여기저기서 뿌~ 하는 소리를 내며 죽순을 엄청난 속도로 올린다. 그 속도가 하루에 70~80cm에 이르러 몇주만에 30m까지 뻗어자란다.

모죽이 뿌리내린 땅을 파보면 대나무 뿌리가 땅속 깊숙히 십리가 넘도록 퍼져있다. 긴 시간동안 뿌리만을 내리다가 기회를 만나면 성장한다고 한다.

인생이란

인생이란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다.

-라 브뤼메르

결혼이란

결혼이란 겁쟁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모험이다


-볼테르-

철이 든다는 것은

철이 든다는 것은 호기심을 잃는다는 것이다.

통화를 지배하는 자

식량을 지배하는 자는 한 나라를 지배하고, 석유를 지배하는 자는 한 대륙을 지배하고, 통화를 지배하는 자는 세계를 지배한다.

-헨리 키신저-

20분의 연설

목사님 설교가 20분을 넘기면 죄인도 구원받기를 포기한다

- 마크 트웨인

한 시간의 연설에는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다. 20분 정도의 연설에는 두 시간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5분간의 연설에는 하룻밤의 준비도 부족하다.

- 명연설가 미국 28대 대통령 윌슨

2014년 3월 21일 금요일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질투는 나의 힘’중에서(기형도, 1989)

2014년 3월 20일 목요일

펀드매니저에게 있어 3년은

펀드매니저에게 있어 3년은 '평생(lifetime)'이며 5년은 '영원(eternity)'이다

정부 부채가 너무 많으면 경제 성장에 짐이 될까?


정부 부채가 너무 많으면 경제 성장에 짐이 될까요?
2010년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인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와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는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90% 선을 넘게 되면 경제 성장이 급격히 둔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이들이 이 주장을 제시했을 당시 모두가 이 주장에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2013년에는 메사추세츠 대학-엠허스트의 세 경제학자가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논문에서 엑셀 실수가 있었고 이것이 라인하트와 로고프 논문의 결론을 유도했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소속 경제학자들이 발표한 논문은 라인하트와 로고프 명제에 다시 의문을 제기합니다. 1821년부터 2012년까지의 정부 부채와 경제 성장률에 관한 데이터를 사용한 이 논문의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냅니다. 즉, 각 국가들의 경제 성장을 연간 단위로 나눠서 보면 (*아래 그래프에서 왼쪽 그래프) GDP 대비 정부 부채의 비율이 90%가 넘는 국가의 경제 성장이 느려지는 경향이 있지만, 경제 성장이 느려진 것은 부채 비율과 관련이 없는 다른 요인들의 영향이 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채 비율이 GDP의 135% 이상이었던 국가의 경제 성장 속도가 매우 낮은 이유는 2차 세계대전에서 패했을 당시인 1945년의 일본과 독일 데이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경제 성장을 연간 단위로 보지 않고 15년 단위로 본다면 (*아래 그래프에서 오른쪽 그래프) GDP 대비 부채 비율이 80% 이상인 국가에서 경제 성장 속도가 더뎌진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전쟁 직후 부채 비율이 200%에 달했던 전후 영국의 경우에도 확고한 성장세를 지속했습니다.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과 경제 성장률. 왼쪽 그래프는 연간 단위로 관계를 본 것이고 오른쪽 그래프는 15년 단위로 관계를 측정한 것. 밝은 파랑색 그래프는 부채 비율이 감소 추세에 있는 국가를 나타내고 짙은 남색선은 부채 비율이 증가 추세에 있는 국가를 나타냄.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과 경제 성장률. 왼쪽 그래프는 연간 단위로 관계를 본 것이고 오른쪽 그래프는 15년 단위로 관계를 측정한 것. 밝은 파랑색 그래프는 부채 비율이 감소 추세에 있는 국가를 나타내고 짙은 남색선은 부채 비율이 증가 추세에 있는 국가를 나타냄.

또 부채의 비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채의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인지, 아니면 감소하는 추세인지와 같은 궤적(trajectory)이었습니다. 부채의 수준과 관련 없이 부채 비율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국가의 경우는 하락하고 있는 국가에 비해 낮은 경제 성장을 보였습니다. 최근의 연구들은 민간 부채의 증가 역시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경제학자는 1870년부터 2008년 사이에 급격히 증가하는 신용 대출이 경제 위기를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지난 한 해 정부 부채와 민간 부채가 증가세를 보이지 않고 안정세로 돌아선 유로존 지역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합니다. 반면, 중국의 경우 2007년 이후 GDP 대비 민간 부채 비율이 95%나 증가했습니다. (Economist)


출처: newspeppermint.com/2014/03/05/debtandgrowth/

2014년 3월 16일 일요일

남편 일하는 시간 길수록 아내 건강

2014.03.07 08:52

20년 추적 연구결과

남편이 일하는 시간이 길수록 아내의 건강이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아내가 일을 할 경우에는 그 반대라는 점이 흥미롭다.

미국 텍사스대학의 연구팀이 1979년부터 2004년까지 연구 시작 시점에 14~22세인 3800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2004년까지 20여년에 걸쳐 추적 관찰한 결과다. 연구팀은 이들의 근로 행태와 함께 배우자의 건강을 전반적으로 종합해 12단계의 등급으로 매겼다.

이때 직장에서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는 것을 기준으로 그보다 긴 시간 일하는 것을 장시간 근로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그 결과, 남편이 직장에서 초과근무를 하는 등 근로시간이 길수록 그 여성 배우자의 건강은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이 5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 그 배우자는 40시간 일하는 남편의 아내보다 건강상태가 더 좋았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아내가 40~49시간 일하는 경우에는 40시간 이하 일하는 아내들에 비해 그 남편의 건강이 오히려 더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를 수행한 시빌 클라이너 연구원은 “남편의 장시간 근로는 대개 더 많은 수입을 의미하며 이는 배우자로 하여금 운동할 여유를 주는 등 건강을 증진시키지만 아내의 장시간 근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소셜 포시스(Social Forces)’저널에 실렸으며 헬스데이뉴스가 6일 보도했다.


스웨덴 모델, ‘高조세-高복지’의 진실


출처: m.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0940 (참세상)

요즘 세계적으로 북유럽 복지모델에 대한 관심이 무척이나 뜨겁다. 그 이유는 2008년 금융위기로 부터 한발 비껴있던 이들이 남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혼란과 달리 매년 견조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전히 높은 수준의 복지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안정적인 공공부채(GDP대비 37%)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고무된 여러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은 좌파 우파를 떠나 북유럽 모델을 적극 배워야 한다며 앞다퉈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를 강조하는 좌파적 입장의 논객들은 높은 복지와 안정적인 국가재정이 양립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면서 우파들의 ‘고복지-재정파탄’ 이데올로기를 논파하는데 스웨덴 복지모델을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다른 한편 조선일보에서는 북유럽 모델에 대해서 “수퍼모델 북유럽...비결은 실용주의”(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2월 2일자)는 올해 초 북유럽 모델을 “넥스트 수퍼모델”이라 치켜세웠다)라고 분석한다. 이들의 핵심주장은 북유럽 국가들이 좌파적 이념에 사로잡힌 과거 복지모델을 과감하게 수정하고, ‘국가 통제하의 개인주의’와 실용주의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발전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북유럽 4개국 중 가장 경제규모가 큰 스웨덴의 외곽지역 허스비에서 4일간 엄청난 폭동사태가 일어났다. (참세상 기사 참조: 스웨덴 빈민지역 폭동, “우리에겐 복지가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스웨덴의 세련된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이다. 경제적 사회적 결핍과 구조적 인종주의에 대한 이주민들의 분노가 경찰에 의한 69세 남성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이 지역은 높은 실업률, 치솟는 임대료,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 조건 때문에 스웨덴에서는 이미 “사회적 화약고”로 평가되어 왔었다.(영화로도 개봉돼 국내에 잘 알려진 <밀레니엄>의 배경에서도 스웨덴의 소외계층들이 사회 주변주에서 얼마나 많은 삶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과연 스웨덴 복지모델의 진실은 무엇인가? 낮은 수준의 복지만을 경험했던 우리들에게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모델은 말 그대로 이상이었다. 그러나 우파들의 스웨덴 배우기 열풍과 스웨덴 이주민들의 폭동사태를 보고 있으면, ‘사민주의’, ‘복지국가’ 라는 말로 표현되는 스웨덴에 대해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번 주례토론회에서는 스웨덴 복지 정치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한다.

스웨덴 고조세정책의 특징 : 받은 만큼 내야한다

스웨덴 복지모델을 이해하려면 이들의 조세정책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스웨덴의 조세수입은 GDP 대비 50%가 넘는 수준이다.(한국 27%) 놀라운 점은 노동관련 세금이 자본관련 세금보다 절대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2001년 기준으로 노동관련 세금은 전체 세금의 64.1%를 차지한다. 노동관련 세금이 많다는 건 사회의 복지 시스템을 자본이 아니라 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 부담한다는 뜻이다. 스웨덴에서는 학생들 아르바이트 등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세금 면제 혜택이 거의 없다. 그만큼 자본의 부담이 줄어든다.

노동관련 세금은 크게 소득세와 사회보장세로 나뉘는데 소득세(세율 19%~56%, 평균 34%)는 개인이 내고 사회보장세(임금의 32.8%)는 고용주인 기업이 낸다.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소득의 31.0%를 사회보장세로 내야 한다. 결국 스웨덴 사람들은 소득에 대해 적게는 50% 많게는 80% 이상을 세금으로 내고 있는 셈이다. 자본관련 세금은 소득세(자본이득 및 이윤, 세율 28~30%), 재산세(0.5~1%), 부유세(1.5%)로 나뉘는데, 전체 세금의 8.6%를 차지한다. 마지막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세(부가가치세)의 세율은 25%이다.(음식, 호텔, 숙박업 12%, 신문, 도서잡지, 문화, 스포츠 6%, 의료, 교육, 금융 서비스 면제) 이렇게 걷어지는 조세수입이 고복지 시스템을 운용하는 밑바탕이 된다.

스웨덴 모델 특징 : 임금하향과 노동력의 재생산 관리



(1) 노사정협의체는 1990년대 이전까지 스웨덴 모델의 정치적 기초였다. 이러한 제도적 토대는 오히려 자본 측에서 먼저 요구한 것으로서 당시 노동과 자본의 힘의 관계에서 노동계급으로 기울었던 상황을 안정적인 관리하려는 자본의 의도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제도적 토대는 이후 노동운동과 사민당이 복지제도를 발전을 주도하게 만들었다. 1932-1976년까지 사민당 집권은 이에 힘입어 유지된바가 크다. 그리고 50년대 후반 스웨덴의 중추적 공적 연금 제도인 일반보충연금(ATP) 개혁이 계기가 되어 노동계급과 화이트칼라의 공고한 복지동맹을 형성하게 한다. 높은 복지급여와 서비스의 보편주의가 계급연대를 촉진하게 되었다.

(2) 스웨덴 모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연대임금정책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땐,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면 불평등이 완화되어 좋을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상향평준화가 아닌 하향평준화인 경우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3) 스웨덴의 경우 (하향)평준화 된 연대임금 때문에 대기업 노동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회사의 이윤수준을 볼 때 임금을 더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교섭에 의한 가이드라인 때문에 더 받을 수 없어 결국 그만큼 사업주의 몫만 늘어났다. 이러한 평준화된 임금은 낮은 법인세(현재 세율은 20%대 수준으로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와 함께 고수익을 내는 수출대기업에겐 아주 유리한 제도로 기능했다.

(4) 또한 이런 연대임금은 저성장, 낙후부문을 정리시키는 상시구조조정 시스템의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기업의 이윤이 연대임금을 주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기업들을 자동적으로 도태시키기 때문이다. 일종의 反공황대책인 셈이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신자유주의적 기업구조조정 시스템과 같은 프로그램이 연대임금을 매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연대임금정책은 우리의 상식과 다르게 역설적으로 자본의 효율성을 아주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은 스웨덴 독점자본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몇몇 소수 거대 금융가문이 주요 기업들의 주식을 보유하거나 투자회사를 통해 소유와 지배력을 행사해왔다. 대표적으로 발렌베리 가문이 있다.)

(5) 구조조정에서 발생한 실직자들은 실업급여와 재교육을 지원받고 이후 고수익을 내는 다른 부문의 사업장으로 재취업을 하게 된다. 여기에 “적극적 노동시장”이라는 정책이 놓여 있는데, 목적은 말 그대로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실직한 상태에서 노동력을 관리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역할을 국가가 대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업 관리와 노동력 관리 덕에 실업률은 80년대 1.6%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주거, 교육, 의료와 같은 공공부문 서비스 영역을 늘려 공공부문으로 노동력을 흡수시켰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서비스의 분배를 국가 주도적으로 시행했다.

이로서 경제영역에서 성장주의와 복지영역에서의 평등주의가 이원적으로 양립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서로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족하는 관계이다. 그 연결고리가 바로 자본의 ‘고효율-고성장-고조세-고복지’로 이어지는 성장분배구조이다. 흔히 우리가 스웨덴 복지모델에 대해서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 실체는 바로 이것이라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로 경도된 스웨덴 모델

그러나 이렇게 운영되었던 스웨덴 모델은 1991년 경제위기(부동산거품)와 이후 북유럽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겪게 된다. 이미 70년대 후반부터 재정위기가 대두되면서 구조개혁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80년대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사고에 경도된 사민당 관료들은 스스로 제3의 길을 표방했다. 경제정책의 목적을 이전의 수요진작과 완전고용에서 인플레이션 억제로 바꾸었고, 금융기관을 민영화시키고 주식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80년대 말 부동산거품이 발생한 이유도 이러한 금융시장을 키워 민간주택대출시장의 거품을 방조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노선의 변경과정에서 사민당의 주도권은 약화되었고, 연대임금전략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심각하게 표출되면서 계급연대의 중심이었던 생산직노조(LO)의 헤게모니가 급속하게 약화되었다. 또한 산업별 고용 비율도 급속히 변하면서 노동조합의 중심이 이동하였다.(2008년 기준 제조업 15%, 서비스 분야 49%, 공공부문 34%)

그리하여 현재는 중앙집중적 연대임금정책은 이름만 남게 되었고 개별적인 임금협상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로서 직종에 따라 시장소득 불평등이 점차 증가했다. 시장소득 지니계수를 봐도 현재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스웨덴 0.53, 영국 0.52, 캐나다 0.51, 다만 공적이전소득에 의한 불평등완화 효과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이 감축된다.) 이것은 스웨덴 경제의 기본적 분배메커니즘이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달라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경제구조의 변화와 노동계급의 헤게모니 약화와 함께 계급타협구조에도 커다란 변화도 생겼다. 이렇게 약화된 사민당과 LO의 헤게모니 틈새를 보수세력이 타격하면서 들어왔다.(일명 90년대 보수의 물결(Blue Wave)) 스웨덴 사용자 연합(SAF)은 기존의 노사정합의 틀을 흔들면서 로비와 담론정치를 활용하였다. 그리고 복지정책의 수정과 연금개혁을 위해 기존의 코포라티즘적 합의기구를 입맛에 맞는 도구로 활용하였다. 그러면서도 자본을 위한 노동력 재생산과 안정적 관리를 사회서비스의 기본 틀은 유지하였다.

2013년 현재 스웨덴 우파연정은 두 번 연속 집권에 성공하면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의 탄력을 얻었다.(민간의료보험 허용, 약국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로 비정규직 10%->15% 증가, 적극적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재정 축소) 이런 와중에 좌파와 우파의 정책차이는 거의 없게 되었고, 누가 더 세련된 이미지인가를 두고 벌이는 선거로 전락했다.

스웨덴 모델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쟁점들

이렇게 신자유주의적 경제모델로 구조변형을 겪고 있는 스웨덴은 몇 가지 지표면에서 빨간불이 켜져 있다. 일단 가처분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75%으로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이다.(덴마크 250%, 영국 160%, 한국 150%) 스웨덴 중앙은행도 가계의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가 200%에 이르는 점을 우려한다. 더구나 2000년대 폭증한 가계부채의 대부분은 부동산대출이 대부분이어서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가계부실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될 것이다. 현재 높은 사회통합력과 안정적인 소득보전정책(실업급여, 아동수당)으로 부채관리를 지속하고 있지만, 유로존 채무위기사태가 장기화 되고 있는 점은 시장개방도가 매우 큰 스웨덴에겐 잠재적 위협요소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이민자 특히 이슬람 인에 대한 혐오감과 사회적 낙인(“기여하지 않는 사람”)이 증가하는 경향은 사회통합력이 주변부에서부터 깨져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스웨덴 폭동사태가 이를 방증한다. 90년대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 와중에서도 급격한 유연화를 지양하고 저임금 노동시장을 만들지 않았던 스웨덴이었지만, 최근 들어 구조적 실업에 노출된 이주민들이 영세한 자영업으로 몰리고 있다. 이는 기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선순환 되었던 노동력 관리 구조가 인종주의적 분할선에 막혀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몇 가지 눈에 띄는 문제가 있지만, 복지에 대한 제도적 관성과 사람들의 복지에 대한 인식의 높은 수준 그리고 우파정부의 유연함에 의해 현재까지 기본적 복지정책의 틀은 잘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국가권력에 의존하지 않는 시민사회 영역이 크고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파정부로서도 함부로 복지감축에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정치적 약화와 분열, 금융화에 경도된 연금제도, 부채-자산경제의 급격한 확대, 마지막으로 인종주의적 갈등의 심화는 앞으로 스웨덴 모델이 잘 순항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여전히 우려스러운 점을 드러내준다. 다행히도 여전히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높은 세금과 높은 복지를 유지하면서 사회분열과 갈등을 줄이는 동시에 저성장을 가져오지 않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이들에게 배울 제도적 지혜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래는 발제문 전문이다.


1. 스웨덴 모델의 의미
- 협의: 사민당 장기집권을 통해 구축된 북유럽 모델, 주로 복지정책에 집중해서 논의됨.
- 광의: 수정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정치경제사회 모델 중 하나로서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사회주의적 지향 추구함. 현대에는 생산의 사회화보다는 자본주의의 인간화 추구
(핵심: 정치)

2. 특징
1) 자본주의와 ‘노동자계급 우위 민주주의 정치’ 결합
2) 점진주의: 민주주의를 통해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함으로써 국민들의 정치적 동의를 통해 사적 소유를 점진적으로 폐지해나감
3) 목표 수정, 완화: 유럽 사민당 ‘사회적 소유’ 강령에서 제거
4) 국가복지 강조: 새로운 사회를 위한 과도전략이었고, 초기에는 사민주의 정치전략의 일부였으나 이제는 다른 의미 지님.
-자본주의 사회 내 비자본주의적 요소로서 복지

3. 스웨덴 모델 형성의 정치
- 좌파정당과 노조의 권력자원 풍부함
노동계급의 힘 결집(높은 노조조직률), 사민당 집권 (1932-1976)
노조는 사민당과 협조적인 관계를 통해 정치력 재생산 (사민당이 LO 결성 주도)
결집된 힘을 제도화된 정치력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
노동운동과 사민당이 복지제도 발전을 주도함
- 노동계급과 화이트칼라 공고한 복지동맹 형성
50년대 후반 보충연금(ATP)개혁이 계기.
높은 복지급여와 서비스의 보편주의가 계급연대 촉진.
완전고용 유지(80년 실업률 1.6%)
- 코포라티즘
살츠쉐바덴 / 노동 책임영역 분리, 대등한 교섭
(시장)임금과 복지(사회적 임금)의 교환
- 사회통합적 복지정치: 사안별 좌우 연대 활발함
- 평등과 복지 지지도 여전히 높은 편
복지인식 점수: 스웨덴 (0.425), 프랑스(0.211), 미국(0), 한국(-0.199)
(자료: 백정미,주은선, 김은지(2008)- ISSP자료 이용한 잠재평균분석)
- 커다란 공적 영역 (vs. 시장) : 국가의 역할이 크며,
동시에 시민사회 매우 조직화 되어 있음. 수많은 결사체 존재함.
- Human Service에 대한 비교적 높은 가치부여
- 평등주의: 보편주의, 성평등
- 다문화 인정: 개방적 이민정책, 난민정책
그러나 성평등, 인종 평등에 여전히 한계 존재

* 모델의 핵심적 특징
1)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분리 모델
- 사민주의 세력이 정치를 장악하지만 시장에서 대자본의 경제권력 용인
2) 사민당과 노동우위의 권력 균형
3) 인간화된 자본주의 : 착취의 시간 짧고 삶과 자율의 시간 길다. 낮은 빈곤율, 낮은 불평등도, 높은 인권의식 등(연령, 성, 인종 차별 적음)
4) 효율의 확보: 낮은 법인세, 연대임금제(비효율적 자본에 대한 패널티), 높은 ALM 지출

4. 사민주의의 신자유주의적 변형

1) 사민당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방향 선택
- 1970년대 말 재정위기 이후 사민당 자체적 변화 (사민당의 중도정당화): 1980년대 제3의 길 추구, 관료 성향 변화, 관료 성향 변화

2) 1991년 경 경제위기의 압력
사례) 1980년대 사민당 주도 금융시장 자유화
저투자. 1991년 경엔 모든 외환통제, 국제적 자본이동 규제 사라짐.
1990년대 후반 금융기관 민영화, 주식시장 폭발적 성장
국가주도 금융제도-> 시장중심적 금융제도
사례) 1991년 예산발표에서 사민당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목적이 수요진작, 완전고용이 아닌 인플레이션 억제: 사회복지지출 여력 감소

4) 정치 지형(힘 관계)의 변화
- 사민당의 주도권 약화, 우파연합과 좌파연합의 미묘한 헤게모니 변화

5) 계급구조 변화와 노동운동 헤게모니 변화
- 내부 분열 심화, LO헤게모니 약화
: 2008년 기준 산업별 고용 비율은 농림업 2.2%, 제조업 15%, 서비스 분야 49%, 공공 부문 34%
- 사회적 의제 형성의 주도권 상실 , 대안제시 능력 소진

계기) 임노동자기금 논쟁
- 우파세력 결집의 계기이자 사민당 내 논쟁 격화, 좌파 약화의 계기
- 임노동자기금 불명예스러운 해소

* 1990년대 보수의 물결(Blue Wave)
- 스웨덴 사용자 연합(SAF): 조합주의, 정당정치를 넘나들며 정책 변화에 적극적인 영향력 행사. 코포라티즘의 폐기인가 자본주도의 코포라티즘으로의 변화인가?
- 로비와 담론정치의 중요성 커짐
- 정부의 선택적 이용. 복지개혁에 코포라티즘적 합의 활용
정치, 경제 부문 근본적인 변화
복지부문은 사회서비스의 기본틀은 유지
불평등도 증가. 탈상품화 . 그러나 다른 나라들과 여전히 차이 있음.
사회 전반의 우경화, 특히 세대간 인식 차 발견됨

* 사례: 연금개혁의 정치 (프리미엄 연금): 코포라티즘을 통한 합의의 활용

5. 스웨덴 모델의 정치적 특징이 갖는 함의

1) 노동계급 없는 민주주의로는 복지국가 달성 불가능, 정치적 기반에 대한 고민 없는 복지확대 주장은 공허함
- 시민사회 강화, 노동자 계급의 정치력 강화와 함께 시민사회와 제도정치의 연결고리 확보: 정당정치 변화, 사회적 협의

2) 노동시장 개혁의 과제
- 노자간 권력관계가 결정되는 핵심영역으로서 고용안정성 확보 중요함
- 노동시장에 대한 근본적 개혁 없는 복지확대는 사회의 질적 도약을 가져오지 않음. 사회의 추락을 막는 방어수단에 그치게 됨

3) 보편적 공공사회서비스 확대?
사민주의 모델 추구 핵심은 보편적 공공사회서비스
- 질 좋은 공공 사회서비스 공급은 정치적 지속가능한 전략으로 일컬어짐
- 복지 제도와 경험이 인식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서비스는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연대, 시민사회의 복지지지를 이끄는 핵심 기제. 국가복지는 기업복지, 시장복지보다 노동계급 내부 연대에도 유리함. 보편적 서비스는 한국사회에서 노동계급과 자영자가 동일한 이해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음.
- 그러나 복지개혁이 한국사회를 질적으로 바꿔낼 정치적 동력이 될지는 불분명함.

* 보편적 공공복지 확대전략은 현재 한국 복지정책 기조와 조화되는가?
- 사회서비스부문은 초기단계로 경로 형성 중. 초기 개입이 중요함: 한국 사회서비스는 (선별적), 시장화 전략 채택.
공공과 민간의 경쟁모델? 비영리 민간과 민간 차등적 지원?
- 바우처: 공공사회서비스가 아닌 서비스 시장 형성을 통한 양적 팽창 도모
선시장 후규제

6. 2013년 현재 스웨덴 정치와 신자유주의적 전환?

- 2013년 현재 우파연정이 두 번 연속 집권. 흥미로운 것은 사민당 중심의 좌파 연합과 부르주아 연합 모두 선거에서 복지의 급격한 삭감이나 정책 방향의 급격한 우경화를 내세우지도 않는 등 중도로 정책적 수렴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
- 그러나 우파정권이 두 번째 집권기에 민영화 좀 더 적극적으로 실시. 민간의료보험 적용 클리닉 허용, 약국민영화 등 의료의 공공성을 줄이는 추가적인 민영화 조치를 수행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의 공공성과 형평성이 유지될 수 있을지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음.
- 신정완(2011):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도입. 스웨덴에서는 1997년 발효된 고용법에 따라 해고 및 채용시에 선임자 우대원칙 약화.
- ALMP 약화: 2007년 GDP의 1.1%. 고실업 상황에서 ALMP의 효과성 떨어짐. 2005년 기준 기간제 고용 15% 수준.
- 2006년 말 이후 우파연정의 소위 노동노선(arbeitslinje). 이 노선에 따라 실업급여 수준은 낮아졌고, 노동유인을 높이기 위해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EITC(Earned Income Tax Credit)가 도입됨.
- 실업급여 수준의 조정: 2007년 이후 우파 정부는 대기기간을 기존 5일에서 7일로 늘렸고, 소득비례실업급여 수준을 실직 후 200일 동안 소득대체율 80%에서 70%로 감소시켰다. 1일 최대 지급가능 수당 상한선이 SEK 730에서 SEK 680으로 낮아졌고, 학생신분인 경우 더 이상 실업수당을 신청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2007년에 실업보험 보험료가 인상되고 동시에 수당이 축소되었다. 그러나 2008년 가을 경제위기 여파로 실업이 증가하면서 정부는 다시 보험료를 인하하고 실업급여 수급조건을 완화하였다. 이에 실업자와 학생의 실업보험 가입이 다시 가능해졌다.

7. 사민주의 모델 추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적극적 대안모델로서 가치가 있는가?

- 신자유주의적 정책 요소들 채택한 이후에도 스웨덴 모델은 지표상 다른 나라 모델과의 차별성 가짐. 정치경제적 지속가능성 역시 높음(?). 적극적인 대안 모델로서 의미 가짐. 그러나 근본적 문제는 관리형 탈규제적 자본주의가 노동의힘 우위, 자본의힘 억압 없이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임.
- 시장소득 불평등 증가. 스웨덴 시장소득의 지니계수는 1990년대 중반부터 계속 증가하여 다른 선진자본주의 국가보다 낮지 않다. 2000년대에도 지속되고 있는 이런 경향은 시장 소득분배 면에서 스웨덴이 다른 자본주의 국가와 차별성이 없어지고 있음을 의미함. 스웨덴 경제에서의 기본적 분배 메커니즘이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처분 소득 중 공적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기준 32.7%에 달하고, 공적이전소득의 불평등 완화 효과(지니계수 완화 효과)가 0.121로 다른 나라보다 월등함.



<그림> 스웨덴 시장소득 지니계수 변화 추이 (1980-2005)

- 19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의 경제성장 추이를 볼 때 고복지는 저성장을 가져오고 있지 않다. 즉, 최근 스웨덴 사례는 케인즈주의적 전환 없이도 고복지-고조세 전략을 경제체제에 결합시킬 수 있으며, 이것이 사회분열과 갈등을 줄이는 동시에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 몇몇 분야의 공공복지 지출, 즉 실업급여, 아동수당 등의 급여는 경제위기 직후 감소되었지만 경기회복과 함께 바로 복귀되어 빈곤완화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즉, 스웨덴의 복지는 일방향의 감소가 아니라 분야에 따라 경기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응을 하고 있어 상당한 빈곤 완화 효과를 거두고 있다.

- 물론 현 수준으로 약간 감소한 복지지출과 약간 높아진 빈곤률, 적정 경제성장의 결합이 계속 이어질지, 현 우파정권 하에서 복지부문의 추가적 방향전환이 이루어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 한국사회는 가족복지지출이 갖는 유의미한 사회적 성과, 특히 출산률과 여성고용률 증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 사회에서 가족복지 정책은 출산률, 여성 고용률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였다. 경기 요인뿐만 아니라 가족복지 정책의 내용과 지출은 출산률 변화의 선행 요인으로서 항상 밀접하게 함께 움직였다. 1970년대의 저출산 이후 가족복지정책의 내용 확충 및 지출 확대는 이후 스웨덴이 인구문제와 여성고용 문제를 해결하는데 국제적으로 높은 성과를 거두는 동력 중 하나였다. 양자는 지금도 스웨덴 경제의 건전성과 복지국가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전제이다.

- 한국의 낮은 고용률과 청년실업 문제는 스웨덴의 적극적노동시장정책만 따로 떼어 도입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거시경제정책 및 여타 노동정책의 뒷받침 없이 독자적으로 실업률을 낮추고 고용률을 높이는 효과를 갖기 어렵다. 고용률을 높이는 거시경제정책, 산업정책이 작동하는 가운데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이 인력배치의 효율성을 높일 때 제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일례로 1976년 경제위기 이후에는 저실업 상태가 유지되었으나, 1990년대 초 경제위기 이후 고실업 국면에서 공공서비스 일자리 공급과 코포라티즘이 약화되면서 적극적노동시장정책 지출의 실업률 저하 효과는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스웨덴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의 지출비율이 GDP의 1%대로 조정된 것의 배경일 것이다. 만성화된 고실업 문제에 대응하는 사회정책의 효과는 여러 관련 정책이 패키지로 작동할 때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적극적노동시장정책뿐만 아니라 가족복지정책, 공공고용정책, 산업정책 등을 포함한다.

- 이민자 증가로 인한 사회통합 문제 점점 중요하게 대두됨. 이민정책 강화.


2014년 3월 12일 수요일

If you can't convince the boss, then confuse him

If you can't convince the boss, then confuse him

- 김중수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나와 다른 사람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내가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들 중에 꼭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정치적, 성적 여러 가지 기준에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학교, 회사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심지어 나와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해 결혼한 배우자도 살아보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다 피하고 살면 가장 편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와 같은 선택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들과 어떻게 소통하며 살 수 있을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떻게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소통을 하려다 보면 화가 나는가?

먼저, 나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첫 번째 열쇠는 왜 소통이 안 되는 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소통이 안 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그 사람과 말을 섞다보면 점점 더 화가 나는 데 있다.

나는 분명히 나름의 논리와 팩트를 가지고 얘기를 했는데, 상대방은 알아듣지를 못하고, 많은 경우 억지를 피운다. 일이 그렇게 틀어지면, 이 사람이 바보거나 아니면 비양심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 이 세상엔 왜 이렇게 합리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양심에 하자가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당신이 화가 나게 만든 원인제공자도 똑같이 생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거짓말을 더 잘 한다.

도덕심리학을 연구하는 뉴욕대 스턴 경영대 교수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t) 교수의 2012년 저서 ‘The Righteous Mind’에 따르면, 문제의 원인은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그들의 a. 이성도 b. 양심도 아니다.

먼저 왜 이성이 문제가 아닌지 따져보자.

근대 프랑스의 이성주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현대의 심리학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도덕적 사고’(moral thinking)의 과정은 그렇게 이성 중심적이지 않다. 데카르트에 반대했던 영국의 경험주의적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강조했던 것처럼 ‘이성은 열정(혹은 감정)의 노예고, 노예일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주어지면, 그 문제에 대해서 일단 도덕적 본능에 따라 판단을 내리고, 그 후에 자신의 판단을 자신의 이성을 사용해 정당화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이든, 한국이든 선거 때마다 나오는 퍼즐 중 하나인 왜 일부 서민들이 보수 정당을, 그리고 왜 일부 부자가 진보 정당을(소위 ‘강남 좌파’) 지지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경제적 자기 이익(economic self-interest)만 생각하면, 이 퍼즐은 설명이 안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경제적 자기 이익 외에 도덕적 이익(moral interest)을 좇고, 도덕적 이익에 따라 본능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내린 후, 그 후 그 판단을 이성적으로 합리화시킨다고 가정하면, 이 선택이 설명이 된다. 그 서민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처지가 아닌 질서에 대한 존중을 택한 것이고, 그 부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가 아닌 변화에 대한 지지를 택한 것이다. 이성이란 코끼리는, 감정이란 조련사를 따른다.

쉽게 말하면 모든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거짓말을 더 잘한다. 팩트와 논리는 중요하지만(substance), 그것이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 소통에서 성공하려면, 충실한 팩트와 논리를 보여주는 것에 앞서,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도덕의 프레임(style)을 통해 이야기해야 한다. 먼저, 도덕적 공감을 얻어낼 수 있어야, 이성적 설득이 가능하다. 디자인이 스펙보다 더 중요하다.


진보와 보수의 뇌는 다르다.

감정이 이성에 우선한다는 걸 인정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과 도덕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단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 사회의 도덕의 기준이 다양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서, 서구식 자유주의적 교육을 대학까지 받은 사람들의 대다수는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무슨 짓을 하든 자유다’라는 원칙을 수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대학가 자취방에서 심야에 고성방가를 하는 건 민폐겠지만, 그 좁은 방 안에 숨어서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이 범죄가 아닌 이상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반대로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는데, 내 선택권을 제한하는 사람은 권위주의적이고, 무례하고, 비양심적이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그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는 철저히 내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70억 인구가, 그리고 같은 국가 내에서도 다 그와 같은 자율성(autonomy)의 기준만으로 도덕적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그 외에 기준인 공동체(community), 그리고 신성(divinity)에 따라 도덕적 문제를 판단한다. 단적인 예로, 유럽 국가에서는 이제 종교가 큰 이슈가 아닐 수 있으나,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심지어 같은 미국에서도 사정은 다르다.

자기들끼리만 소통하고, 자신들만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서 소통을 하는 것이면 모르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자 한다면, 따라서 우리가 도덕이란 문제를 바라보는 스펙트럼도 더 넓어져야 한다. 이건 도덕적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위해서는 전략적 관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X축에서 왼쪽으로 갈수록 진보, 오른쪽으로 갈수록 보수다. Y축에서 위로 갈수록 긍정, 아래로 갈수록 부정적이다. 출처: The Righteous Mind (2012).

일례로 위의 설문 조사에 근거한 그래프를 통해 진보와 보수의 뇌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자. 먼저, 진보와 보수 모두 돌봄(care)과 공평성(fairness)에 대해서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이 진보적이면 진보적일수록, 돌봄과 공평성에 더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보수가 약자를 돌보지 않고, 공평성을 무시한다는 것은 맞지 않지만, 그들에게 이 두 가치가 진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가치인 것은 맞다.

반대로 사람이 보수적이면 보수적일수록 충성도(loyalty), 권위(authority), 그리고 고상함(sanctity)과 같은 가치가 더 중요해진다. 진보가 돌봄과 공평성을 무시하는 보수에 대해서 적대감을 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 보수에게는 충성도, 권위, 고상함 같은 가치는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하는 진보에게 분노를 품는 것을 정당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즉, 같은 팩트와 논리라도 이런 도덕적 감수성의 차이에 따라 어느 쪽으로 치우친 사람을 대상으로 소통을 하느냐에 따라 소통법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진보를 상대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것이나(보수의 진보 공략법), 반대로 보수를 상대로 권위에 대한 타파를 호소하는 것이나(진보의 보수 공략법) 무력하고 유해하긴 매한가지다. 거듭 강조하지만, 먼저 도덕적 공감을 얻어야 이성적 설득이 가능하다.


인간은 90% 침팬지, 10% 꿀벌

침팬지는 이 지구상에서 인간 다음으로 똑똑한 동물이다. 수화도 할 줄 알고, 속임수도 쓸 줄 안다. 그러나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자인 Michael Tomasello에 따르면 두 마리의 침팬지가 같이 통나무를 옮기는 건 상상하기도 어렵다. 간단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테스트해봐도 인간의 어린 아이는 74%를 해내는 데 비해, 침팬지는 35%밖에 되지 않는다.
즉, 인간을 다른 동물과 가장 구별짓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인간의 그렇게 집단을 이루고, 언어를 비롯한 공유된 협력의 방식을 만들고, 그래서 갈등을 줄이는 진화된 본능이며, 인간의 도덕적 본능(moral institution)도 이런 진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다.

일찍이 찰스 다윈이 말했던 것처럼 협력하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의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면, 인간의 역사가 사회 조직체를 발달시켜온 과정인 건 우연은 아닌 것이다. 왜 고대 사회부터 배신은 다른 그 어떤 죄악에 비해서 더 악독한 죄악으로 처벌을 받았는가? 그 이유는 간명하다. 배신자들이 늘어난다면, 신뢰가 붕괴된다면, 한 집단은 유지되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조나단 하이트 교수가 강조하는 것처럼 인간은 부족 간의 갈등을 통해 발전한다는 측면에서 90% 침팬지이고, 자신의 벌꿀집을 중심으로 협력한다는 측면에서 10% 꿀벌이다.

망치를 들고 있는 사람에겐,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 도덕적 본능의 스펙트럼 중에서 어떤 부분이 더 강하게 태어나는 지는, 그리고 그런 본능이 어떻게 사회적 학습을 통해 발현되고, 변화하는 지는 사람마다, 집단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뇌의 위협과 분노에 대한 반응 물질인 글루타민과 세로토닌이 더 잘 분비되도록 태어난 사람은 기존 질서가 흔들리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가능성이 더 많다. 반대로, 감각 추구와 다양한 경험에 대한 반응 물질인 도파민이 더 잘 분비되도록 태어난 사람은 오히려 답답한 현실에 갇혀사는 것을 더 싫어한다.

이런 사람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자신과 맞지 않는 가정 환경, 교육 환경에서 자라면 기존의 성향은 더 약화되기보다는 더 강화된다. 질서가 흔들리면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개방적 가정 환경, 비판적 교육 환경이 주어지면 이들의 태생적 공포감은 사회적으로 강화된다.

역으로, 그 반대측에 서 있는 사람에게 아주 엄격하고, 고지식한 가정 환경과 교육 환경을 제공하면, 그들은 저항아적 기질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더 심해진다. (흔히들, 목사 아들은 잘 되거나 삐뚤어진다고 말을 하는 데, 그 배경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서, 이성이 발달하면 할수록, 이렇게 자리잡힌 자신의 입장을 더 그럴듯하게 합리화시키니, 한 번 고정된 것이 뿌리뽑히긴 쉽지 않다. (그래서 나이가 먹으면 쉽게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못한다.)

마크 트웨인은 ‘망치를 들고 있는 사람에겐, 모든 것이 다 못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견해가 다 이성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일 수도 없다는 걸 인정해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해진다.

모든 사람이 다 나 같지도 않고, 나 같을 수도 없고, 나 같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팩트와 논리를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먼저 대화가 통하려면, 소통이 되려면,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감정을 얻지 않으면, 이성을 얻을 수도 없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이해하려면,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지를,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지를 깨달아야 한다.
나는 수 년동안 종교에 대해서 가르쳐왔고, 그렇게 가르치는 게 즐거웠다. 그러나 난 한 번도 신학에 대해서는 그렇게 빠져본 적이 없다. 나는 이 세상에는 3,500 종의 파리가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만약 신학자들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그 중에 어느 쪽이 지배하든], 이 세상엔 오직 한 종류의 파리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창조주는 다양성을 영화롭게 하셨다. 그리고 이 두 다리로 걷는 피조물보다 이 지구상에서 다양성을 더 잘 드러내는 존재는 없다.
-자신의 자서전 ‘방관자의 일생’ 서문에서, 피터 드러커.

덧1. ‘The Righteous Mind’ 한 번 번역해보고 싶은데, 판권이 어떻게 되는지 아시는 출판 업계 종사자분들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책 정말 괜찮으니,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세요.
덧2. 사실, 위의 내용은 비즈니스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에 기초해서 컨설팅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는 나중에 또 적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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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보수, 자유의지론자

경제학자 Arnold Kling에 따르면 대중의 공공정책에 관련된 선악에 대한 ‘프레임’은 진보, 보수, 자유의지론자에 따라 다음 크게 세 가지의 시각이 존재한다.

진보(progressive)의 프레임: 세상엔 억압하는 집단과 억압받는 집단 두 종류가 있다. 전자는 악하고, 후자는 선하다.

보수(conservative)의 프레임: 세상엔 문명화된 집단과 야만 집단이 존재한다. 문명은 기존 사회의 안전과 번영이 그 가치를 증명한 것이고, 야만은 이 문명에 도전하는 세력이다. 따라서 야만 집단은 악하고, 문명화된 집단은 선하다.

자유의지론자(libertarian)의 프레임: 세상은 ‘자유’와 ‘통제’의 갈등으로 본다. 자유는 대체로 개인의 선택에 관련된 것이고, 통제는 대체로 공권력에 관련된 것이다. 전자가 대체로 선하고, 후자가 대체로 악하다.

이런 세 가지 시각에 대한 분류가 현실적으로 아주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이념형(ideal type)으로서는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어떻게 특정 주장을 좀 더 수월하게 받아들이는 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철도 민영화’ 이슈가 있다고 치면, 진보측에서는 ‘탄압’하는 정부를 악, ‘저항’하는 노조를 선으로 볼 가능성이 크고, 보수측에서는 정부의 ‘질서’란 선에 도전하는 노조의 시위란 ‘혼란’을 악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 자유의지론자들은 경제적 자유에 대한 개인의 ‘선택’이 정부와 이익집단의 갈등 조율의 결과에 따라 얼마나 ‘통제’되는 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에 따라 선악 판단을 할 것이다.


- 김재연의 개인 블로그

2014년 3월 10일 월요일

흔들리는 파도를 봤을 뿐

흔들리는 파도를 봤을 뿐 바람을 보지 못했다.
조수간만의 차이를 봤을 뿐 달의 차고 기움을 보지 못했다.


2014년 3월 7일 금요일

부교감신경 긴장으로 인한 질병


진화한 면역시스템, 즉 부교감신경 긴장으로 인한 림프구 과잉은 알러지로 발생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흔히 알러지를 체질상의 이유로 치부하는데 부교감신경의 지나친 우위의 원인을 알아야한다. 원인은 지나치게 편한 생활이다. 어린이라면 과보호때문이고 성인은 운동부족과 과식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과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소화기관을 활성화시켜 부교감신경우위를 만들기 위한 신체의 자기 균형화 작용이다. 이런 상황에서 림프구가 과잉이 되어 아토피, 천식, 비염, 알러지 등이 발생힌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알러지 환자가 많아지는 것은 생활이 윤택(노동의 감소, 편리한 식생활)해져서 부교감신경우위의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자가면역질환에 대해 환자에게 들어보면 스트레스나 심한 감기 이후에 발병했다는 경우가 많다. 즉, 널리 알려진대로 면역이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심하게 파괴되어 면역억제 상태가 되었을 때 발병하는 것이다. 외부 항원에 대응하는 림프구(새로운 면역시스템)가 극단적으로 억제된 상태에서 발병한다.

자가면역질환 환자에게 부교감 신경을 자극하는 치료를 하면 처음 1주일정도 염증으로 고통스럽지만 그 이후 질병에서 벗어난다. 지금까지는 자가면역질환 발생시 정반대로 면역을 억제시키는 치료를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스테로이드 제제다. 이것을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염증이 가라앉기 때문에 치료된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억누르고 있는 것일 뿐이다. 특히 스테로이드는 중독성이 있어서 약물을 끊으면 발열이나 심한 염증이 발생한다. 이것을 견디지 않으면 병도 완치할 수 없을 뿐더러 중독성을 피할 수 없다.

과도한 노동이나 운동으로 근육피로가 발생하면 근육에 피로물질이 쌓인다. 안정을 취하면 혈관 확장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이 작용하여 그 부분에 혈류가 증가하면서 서서히 회복을 유도한다. 이물질은 동시에 통증과 열을 수반하는데 이것은 자연치유반응으로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한다. 그런데 이때 파스를 붙이거나 소염진통제를 복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들은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산을 막아 혈관을 닫고 혈액순환을 방해한다. 따라서 통증은 일시적으로 멈추지만 조직수복자체가 멈추게되고 피로도 회복되지 않는다.

소염진통제는 동시에 몸전체에 영향을 미쳐서 혈관을 닫게되고 혈압을 올린다. 습관적으로 진통제를 사용하면 고혈압과 당뇨병을 유발시킨다. 장기간 복용하면 건강을 망치게되고 소화기관 활동이 멈추기 때문에 식욕이 나지 않아 바싹 야위게된다.

중앙은행 독립성은 지켜져야하는가?

많은 학자들은 중앙은행의 독립이 선진 금융시스템의 필수 요소이며 인플레이션을 제한하고 국내 통화의 흐름을 향상시킨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미국의 연준은 1907년 창립된 이후 처음 25년동안 1929년 대공황을 포함한 3번의 경제 대공황을 거쳤으며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인플레이션을 창조했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기반을 만들었던 밀턴 프리드만도 이렇게 말했다.

"연준이 창설된 이후 통화량과 물가와 생산량은 그 이전보다 안적적이지 못한 편이었다. 가장 불안정했던 때는 물론 1920~1921년, 1929~1933년, 1937~1938년의 통화 수축을 포함하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 기간이다. 미국 역사상 20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이렇게 3번이나 심한 통화 수축을 겪은 적은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1차 대전 중이나 그 직후 일어난 물가 상승의 최소한 1/3에 대해서 연준에 그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3번의 통화수축은 연준이 펼친 일련의 조치에 기인한 것이었다. 어떠한 제도에서건 소수의 특정 개인에게 막중한 권력을 주어서는 큰 재앙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이것이 중앙은행에게 독립된 주권을 줄 것이냐 아니냐하는 갑론을박 정치 노론의 가장 중요한 초점인 것이다."

삶의 목적은 삶 그자체여야한다

삶의 목적은 삶 그자체여야 한다. 도달해야할 목적지만 쳐다보고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가장 심각한 오류이다. 추상화된 '이상'을 위해서 살아 있는 인간의 육신을 희생해서는 안된다.


알렉산더 게르첸(Alexander Herzen, 1812~1870)

사도 마조히즘

사디즘적인 인간과 사디즘의 대상에 대한 관계에서 흔히 간과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사디즘적인 인간이 그 대상에 대한 의존성이다.

마조히즘적 인간의 의존은 뚜렷해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지만 사디즘적인 인간의 의존성에 대해사는 대부분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그러나 면밀히 분석해보면 이러한 관계가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사디스트에게는 지배할 인간이 아주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의 강자적인 의식은 그가 누군가를 지배한다는 사실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이 의존은 전적으로 무의식적이다.

가령 어떤 남자가 아내를 몹시 거칠게 대하며 폭력을 행사한다고 하자. 아내는 마땅히 나갈 곳도 없거니와 남편이 무서워서 쉽사리 집을 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아내가 용기를 내어 집을 나가면 남자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거나 오히려 더 큰 폭력과 위협을 가해 어떻게든 아내를 옆에 두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몇번이고 되풀이된다.

사디스트는 자신의 지배하에 놓인 인간을 극히, 명백하게 '사랑'한다(물론 '사랑'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논외로). 그는 대상인물이 자유롭게 독립되는 권리를 제외한 모든 것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태는 특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관계에서는 지배의 태도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사랑한다는 '자연스러운'배려의 감정으로 곧잘 은폐되어있다. 아이들은 황금 감옥 속에 넣어진다. 그리고 우리에서 나가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나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성장한 이들은 사랑에 대해 깊은 공포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자신이 추구하는 자유를 구속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디즘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중의 하나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반면, 마조히즘에 대해서는 의아하게 여긴다. 그러나 고뇌와 약함이 인간 노력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현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마조히즘적 도착'이다. 극히 의식적인 방법을 통해 괴로워하고 그 괴로움을 즐기려는 인간이 있다. 그는 고통이 가해질때 성적 흥분을 느낀다. 마조히즘적 도착에서 흔히 요구되는 것은 어린아이처럼 다루어지며, 꾸지람을 듣고, 모욕을 당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약화되는 것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마조히즘적 도착과 마조히즘적 성격, 그리고 사디즘적인 노력의 공통된 근원이 무엇이냐 이다. 그 근본적 원인은 견딜 수 없는 고립감과 무력감에서 도피코자 하는 개인의 탈출 욕구이다. 개인은 혼자 떨어져 있으며, 낯설고 적의에 찬 세계와 대립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타고난 자유라는 선물을 가능한 한 빨리 넘겨줄 수 있는 상대방을 찾고자 한다. 자유로부터 위협을 받은 인간은 자신을 특정 사람이나 사물에 결부시키고자 한다. 그 결과 미친 듯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이라는 무거운 짐을 제거해버림으로써 다시 안정감을 얻고자 한다.

마조히즘은 그 도달벙법중의 하나이다. 마조히즘적 노력의 목표는 개인적 자기로부터 벗어나는 일, 자기 자신을 상실하는 일, 다시 말해 자유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이 목표는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느끼는 인물이나, 힘, 종교에 복종하고자 하는 마조히즘적인 노력 속에 명백히 드러난다.

- 자유로부터의 도피 111p

근대 광고의 위험성

오래전 상인들의 세일즈는 철저히 제품의 장점을 나열하는 위주로 이루어졌다. 판매 효과를 올리기 위해 판매자는 더욱 합리적이고 사리에 맞는 이야기를 해야했다. 그러나 근대의 거대광고들은 이와는 달리 인간의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했다. 최면술의 암시처럼 그 상품에 대해 감정적인 인상을 펼쳐보인 다음 이성적으로 판단하라는 것처럼 설명한다.

이들 광고는 유명한 스포츠 선수, 연예인, 섹시한 여자의 성적인 매력 등으로 고객을 매혹시키는 동시에 비판력을 마비시킨다. 또 그 상품을 씀으로 해서 구매자의 삶 전체가 갑자기 변하리라는 백일몽을 자극한다. 이러한 방식은 소비자에게 꿈을 꾸도록 함으로써 일종의 만족감을 주는데 그와 동시에 개인의 하찮음과 무력감을 은연중에 부각시킨다.

개인의 비판적 사고를 둔화시키는 이런 방법은 민주주의에 대한 수많은 공공연한 공격보다 훨씬 더 위험하며, 불법 포르노보다 더 비도덕적이다.



이기주의와 자기애

루터나 칼뱅, 임마뉴엘 칸트, 프로이트 사상의 근저에 있는 가정은 이기심과 자기애(自己愛)를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즉, 타인에 대한 사랑은 미덕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죄악이어서 서로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랑’이란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 속성으로 어떤 ‘대상’을 긍정하려는 정렬적인 욕구이다. 즉, 그것은 어떤 사람이나 대상에게도 향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배타적인 사랑이란 그 자체가 하나의 모순인 것이다. 앞서 말한 이들의 사상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특정 대상으로의 방향성을 가진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단 한 사람에 대해서만 경험되는 사랑은 바로 그 사실로 말미암아 사랑이 아닌 사도마즈히즘적인 집착임이 드러난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원칙적으로 나 자신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유도된다. 한 개인이 자신의 삶, 행복, 성장, 자유를 긍정하는 일은 그 자신이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기본적인 능력과 자신감이 있다는 데 근거한다. 오직 다른 사람밖에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전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이기주의와 자기애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 정 반대인 것이다. 잘 관찰하면 이기적인 사람은 불안하며 두려움에 쫓기고 있다. 언제나 자기일만 생각하고 있고 성취도 뛰어나지만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특히 무의식적인 동력을 관찰해보면 이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자기애가 결여되어있는 것이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거나 스스로를 시인하지 않는 인간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으며, 자신에 대한 호의와 긍정의 기반위에 존재할 수 있는 내적인 안정을 지니지 못한다. 이들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므로 외적인 칭찬에 열을 올리게 되고 소위 자기도취적인 면면을 보인다. 표면적으로 이들은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이며 그들의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부족한 자기애를 보상받고자 하는 애처로운 시도이다.


- 자유로부터의 도피 112p

대수의 법칙

야코프 베리누이의 아포스테리오리 확률계산 명제는 `대수의 법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관점과는 달리 이 법칙으로 관찰된 사실에 대한 유효화 방법을 알 순 없다. 가령 대수의 법칙을 이용해서 동전던지기 결과의 평균이 50%에 접근한다는 사실은 알 수 없다. 또한 무한히 던지며 오차가 없을 것임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대수의 법칙으로 알 수 있는 전부는, '많이 던지는 횟수'의 평균이 '적게 던지는 횟수'의 평균보다 어떤 정해진 수치보다 더 적은 정도로 진짜 평균과 차이가 날 것 같다는 것뿐이다. 대수의 법칙은 평균의 법칙과도 다르다.


리스크 178p

사악한 삼총사(WB, IMF, WTO)

세계화 질서는 선진국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세계 GDP의 80%, 무역의 70%, 외국인 투자의 8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단순히 경제 규모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규칙을 만들고 지배하고자 하고 있다. `악의 삼총사`라고 불리우는 다자적 기구, 즉, IMF, 세계은행, WTO는 부자국가들의 꼭두각시로 이들에 의해 통제되고 나쁜 사마리아인 정책을 구상하며 실행에 옮긴다.

1944년에 부레튼 우즈에서 전후 경제질서를 위해 설립된 IMF는 브레튼 우즈 체제의 특성상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국제수지가 위기에 처한 국가들에게 차관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세계은행은 전후 유럽국가들의 재건 및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식민지 국가들의 경제발전을 돕기 위해 사회 기반시설에 대한 대출을 위해 설립되었다.

본디 긍정적 목적을 가지고 있던 이들 기구들의 역할은 제3세계 외채위기가 빈발하던 1982년에 접어들면서 크게 변하게 된다. 이들은 차관을 제공하는 대신 이른바 구조조정 프로그램(SAPs)이라는 합동작전을 통해 개도국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참견은 1990년대에는 더욱 노골적이 되어 민주주의, 정부의 분권화, 중앙은행의 독립은 물론 기업의 지배구조 같은 상식적으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영역에까지 간섭이 시작되었다.

경제성장의 실패는 특히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이 철저하게 시행되었던 남미(신자유주의 프로그램 실행후 성장률 1/2로 감소)와 아프리카 국가(구조조정 후 성장률이 (-)로 하락)들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아프리카의 피해는 특히 심각한데, 시장원리 도입에 따른 정부 보조금 폐지, 재정지출 축소, 사회 안전망 축소, 식량에 대한 보조금 폐지 등으로 국민들이 각종 질병, 식품가격 급등, 교육기회 박탈로 고통받았으며 이러한 모든 비극의 원흉에는 IMF와 세계은행이 자리잡고 있다.

1997년 한국이 IMF와 맺은 협정서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협정안의 몇가지 조항(무역장벽 축소 등)들은 그동안 미국과 일본이 한국에 강요해왔던 정책들이다. 외국인에 대한 자본시장 개방과 적대적 인수합병의 허용, 수입 개방등은 한국경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이 곤경에 처하자 이를 기회삼아 무리한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은 IMF의 권력 남용이다." 이 논평을 내놓은 사람은 다름아닌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경제자문으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하버드대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틴이다.

1995년 GATT의 우루과이 라운드에 따라 WTO가 창립되면서 사악한 삼총사는 완성되었다. WTO 또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시장에 파고들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만든 수단이다.

- 나쁜 사마리아인 60p

소득세의 기원



소득세는 애초에 정부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부채에 대한 이자를 갚기 위한 것이었다.

소득세가 인류역사에 소개된 것은 100년이 채 안된다. 그전에 대부분의 국가의 운영비용은 수입관세와 소비세로 충당되고 있었다. 1895년 미국 대법원에서는 소득세 관련 법안을 위헌 판정을 내린바 있었다. 또한 1909년에도 정부가 기업의 수익금에 과세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하여 법제정이 무산되었다.

연준제도 설립에 참여했던 올드리치는 1913년 세금관련된 헌법 개정에 돌입한다. 그리하여 1913년 10월 16번째 헌법 개정안에서 연방정부가 주정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소득세를 징수하는 내용을 날치기로 통과시킨다. 그리고 같은해 12월 23일 대부분의 의원이 휴가를 간 사이 하원에서 통과시키고 같은날 상원도 통과시킨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당시 의장이 휴회 선언을 하지 않아 법률상으로 의회가 아직 개정중인 것으로 유권해석이 내려졌고 로비를 통해 매수되었던 몇명의 상원의원, 그리고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서명으로 법안이 통과된다. 당시 36개 주정부중 단 2개만이 이에 대해 인준한 제 16차 헌법개정안으로 인하여 소득세법이 탄생하게 된다.

이에 관련되어서 1985년 어느사업가가 미국의 세법이 불법이라고 법원에 고소하여 승소한 일이 있었다. 당시 앨러바마주 헌츠빌의 로웰 비크래프트 변호사는 제 16차 헌법개정은 합법적으로 통과되지 않았다는 변론을 제시했다.

2014년 3월 2일 일요일

불온한 영화, 헝거게임, '캐칭 파이어'

경연의 목적은 우승자를 가리는 것이다. 최근 창궐하고 있는 리얼리티쇼나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러나 이 관행을 뒤집었다. 한회 한회 탈락자를 내는 서사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잔인한 드라마 전략이다. 참가자들을 우승의 집념이 아니라 탈락하지 않겠다는 절박감으로 몰아간다. 긴장을 거기서 추출해 내는 것이다. 이런 한편, 참가자들의 사연을 최대한 극화함으로써 감동을 연출해낸다. 탈락의 서사로 플롯의 무게 중심을 옮겨 가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개천에서 용난다'는 기만적 판타지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하게 경쟁이 일상이 된 신자유주의적 서사이기도 하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당신은 탈락한다, 즉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라는 공포를 끊임 없이 주입한다. 그리하여 체제의 불합리함에 대한 문제 의식을 마비시킨다. 사람들을 좁은 우리에 가둔 채 서로를 잡아먹어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쥐떼들로 만드는 것이다. 리얼리티 쇼는 그 정글 법칙을 사람들의 무의식에 아로새긴다.

할리우드 판타지 <헝거게임>이 탁월한 것은, 바로 이처럼 정치와 미디어가 합작한 기만의 시스템을 우화적으로나마 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리얼리티 쇼가 채택한 탈락의 서사를 극단화해 실제로 서로를 죽이게 만드는 서바이벌 게임장으로 변모시킨다. 헝거게임의 우승자 헤이미치(우디 해럴슨)는 주인공 캣니스(제니퍼 로렌스)에게 헝거게임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게임에는 승자가 없어. 단지 생존자만 있을 뿐이지."

우승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가 사람들에게 던져준 화두다. 모두들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자산을 아낌없이 퍼붓는다. 밤 11시쯤 학원가에 가보시라. 탈락의 공포에 찌들어 있는 청소년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헝거게임>은 그 안에서 꽃피우는 희미한 반역의 씨앗을 플롯의 구심점으로 삼는다. 하여, 이 영화는 한편으로 혁명 서사다. 캣니스는 1편 <판엠의 불꽃>에서 독재국가 펜암의 헝거게임에 강제 출전하지만, 누구도 죽이지 않고 우승자가 됐다. 아니, 생존자가 됐다. 그리고 이번 속편 <캣칭파이어>에서 그들은 '동맹'의 지혜를 본격화한다. 단 한 사람의 생존자만 존재해야 한다는 룰을 거역한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캣니스는 혁명 투사로 '각성'된다. 그가 혁명의 불꽃으로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는 두 편으로 나뉘어 선보이는 후속편 <모킹제이>에 담겨져 있을 것이다.

<헝거게임>은 대단히 흥미로운 문명 비판이다. 판타지의 틀을 차용했지만 상당히 직설적이고, 무엇보다 지금의 시대가 뿜어내는 공기를 외면하지 않는다. '보편'으로 숨거나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는 영화는, 언제나 그렇듯,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든다. 만약 이 영화가 불편하거나 지루하다면, 당신의 감수성은 탈락의 공포를 내면화한 정글 법칙에 단단히 중독돼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 영화기자 최광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