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7일 금요일

사도 마조히즘

사디즘적인 인간과 사디즘의 대상에 대한 관계에서 흔히 간과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사디즘적인 인간이 그 대상에 대한 의존성이다.

마조히즘적 인간의 의존은 뚜렷해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지만 사디즘적인 인간의 의존성에 대해사는 대부분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그러나 면밀히 분석해보면 이러한 관계가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사디스트에게는 지배할 인간이 아주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의 강자적인 의식은 그가 누군가를 지배한다는 사실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이 의존은 전적으로 무의식적이다.

가령 어떤 남자가 아내를 몹시 거칠게 대하며 폭력을 행사한다고 하자. 아내는 마땅히 나갈 곳도 없거니와 남편이 무서워서 쉽사리 집을 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아내가 용기를 내어 집을 나가면 남자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거나 오히려 더 큰 폭력과 위협을 가해 어떻게든 아내를 옆에 두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몇번이고 되풀이된다.

사디스트는 자신의 지배하에 놓인 인간을 극히, 명백하게 '사랑'한다(물론 '사랑'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논외로). 그는 대상인물이 자유롭게 독립되는 권리를 제외한 모든 것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태는 특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관계에서는 지배의 태도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사랑한다는 '자연스러운'배려의 감정으로 곧잘 은폐되어있다. 아이들은 황금 감옥 속에 넣어진다. 그리고 우리에서 나가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나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성장한 이들은 사랑에 대해 깊은 공포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자신이 추구하는 자유를 구속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디즘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중의 하나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반면, 마조히즘에 대해서는 의아하게 여긴다. 그러나 고뇌와 약함이 인간 노력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현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마조히즘적 도착'이다. 극히 의식적인 방법을 통해 괴로워하고 그 괴로움을 즐기려는 인간이 있다. 그는 고통이 가해질때 성적 흥분을 느낀다. 마조히즘적 도착에서 흔히 요구되는 것은 어린아이처럼 다루어지며, 꾸지람을 듣고, 모욕을 당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약화되는 것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마조히즘적 도착과 마조히즘적 성격, 그리고 사디즘적인 노력의 공통된 근원이 무엇이냐 이다. 그 근본적 원인은 견딜 수 없는 고립감과 무력감에서 도피코자 하는 개인의 탈출 욕구이다. 개인은 혼자 떨어져 있으며, 낯설고 적의에 찬 세계와 대립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타고난 자유라는 선물을 가능한 한 빨리 넘겨줄 수 있는 상대방을 찾고자 한다. 자유로부터 위협을 받은 인간은 자신을 특정 사람이나 사물에 결부시키고자 한다. 그 결과 미친 듯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이라는 무거운 짐을 제거해버림으로써 다시 안정감을 얻고자 한다.

마조히즘은 그 도달벙법중의 하나이다. 마조히즘적 노력의 목표는 개인적 자기로부터 벗어나는 일, 자기 자신을 상실하는 일, 다시 말해 자유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이 목표는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느끼는 인물이나, 힘, 종교에 복종하고자 하는 마조히즘적인 노력 속에 명백히 드러난다.

- 자유로부터의 도피 1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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