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2일 토요일

고양이는 어떻게 평생을 집안에서 사는가?

인간의 시간 인식을 관장하는 신피질

인간은 두뇌의 바깥을 이루는 신피질이 발달하며 이성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게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개념이 생긴 것인데, 이는 삶의 유한성을 깨닫게 해줌과 동시에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의 계획, 원대한 꿈을 추구하는 인간만의 특성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신피질은 불행의 원인이기도 하다. 과거란 대부분 후회이며 미래는 걱정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과거와 미래에 집착할 경우 몸은 분명 현재를 살고 있지만 영혼은 과거와 미래로 찢어져 일종의 유체이탈 상태가 되기에 삶의 존재감이 옅어진다. 우울증은 지금 같은 현재가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도 계속 지속된다는 추측에서 비롯된 타임라인적 절망감이다. 인간은 시간 개념을 통해 역사를 기억하고 앞날을 대비하며 거대한 문명을 이뤘지만, 현재라는 ‘육체와 영혼의 합일의 순간’을 잃었다.

이를 강제적으로 막는 방법이 바로 술을 마시는 것이다. 취해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모든 걱정거리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이는 알콜에 의해 신피질이 마비되며 과거와 미래의 폴더가 잠깐 닫히고, 비로소 현재만 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고 싶어지는 이유는 술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바로 그 ‘현재에만 존재하는 쾌감’ 때문인 것이다.

술에 취하면 다시 어린아이처럼 되고, 광기에 휩싸이고, 자신감이 높아지는 것은 이처럼 잠시 과거의 자학이 사라지고, 미래의 걱정, 장차 듣게 될 평판 따윈 중요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의 이러한 신피질 마취를 통한 현존(現存) 놀음에 육체와 간은 망가져 가고 결국은 알콜의존이 되어 버린다. 사람 구실이 힘들어지고 점점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간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는 몇년 째 집안에서만 살고 있다. 어찌 보면 감옥살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지루함을 거의 모른다. 녀석은 다행히도(?) 신피질이 없기에 과거와 미래의 개념 또한 없다.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아주 열심히 매일 털을 닦고, 똑같은 사료를 꼬박꼬박 먹고, 시원하게 똥을 눈다. 기분이 좋으면 혼자 뛰어다니며 날렵한 몸을 느낀다. 앞으로 평생을 이 좁은 집구석에서 보내겠지 우울해하며 결코 자살충동을 느끼지도 않는다. 가끔 어쩌면 녀석이 나보다 행복하게 일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집에서 감옥살이하는 짐승은 되려 나인지도 모른다.

지옥같은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한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에서 현재의 절망을 잊으려고 과거의 향수에 사로잡혀 지냈던 사람들과 미래에 너무 강한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이 오히려 아우슈비츠에서 많이 죽어갔다고 증언했다. 고통스럽지만 지금의 현재를 부여잡은 채 어떤 의미와 감정을 느끼고, 유머를 잃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생존에 더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과거나 미래로 도피하지 않고 현재에 버티고 존재했던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은 셈이다.

까마득한 옛날, 그렇게 현재만을 살았던 인류의 조상은 선악과를 따먹고 낙원에서 쫓겨나는 대신 신피질을 얻었지만, 그 지혜가 알려준 죽음의 공포는 영혼을 잠식하고 말았다.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시간축을 가로지르는 운명의 시계에 사로잡혀 사는 한 불안감은 증폭되고, 존재감은 엷어지며 삶은 공허해진다. 아무리 돈이 많고 성공했어도 현재에 있어야할 영혼이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혔다면 아우슈비츠에 갇혀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살은 결코 현재의 고통 때문에 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상태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란 좌절 때문이다. 감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예측이 희망을 꺾고, 삶을 못버티게 하는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것은 과거에서 미래로 급속히 진행되는 발전의 초고속도로가 현재를 갈아엎었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의 영혼이 가속도에 튕겨나가 유체이탈 상태이고, 전국이 몸뚱아리만 갇혀있는 수용소인 것이다.

이제 탈옥의 시간이다. 진화의 대가로 얻은 신피질이 만든 시간 감옥에서 철조망을 뚫고 현재로 돌아와야 한다. 그곳엔 깃털 같은 찰나가, 잃어버린 영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어린 시절 당신이 고양이처럼 원래 가졌던 그 가벼움 말이다.

더 이상 신피질이 만들어낸 타임라인의 노예가 되어 우울함에 시달리거나, 술을 퍼마실 필요도, 일 중독에 빠져 불안을 애써 잊으려 할 필요도 없다. 그저 눈을 감고 떠올려보라.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을. 내가 바로 이 순간 지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몰아치는 시간의 풍랑 때문에 그것들을 바다에 죄다 던져버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버려야할 것은 과거에 할 수 있었던 것, 미래에 하려는 것이 가득 담긴 무거운 짐짝들이다.

전력을 다해, 오로지 현재에 할 수 있는 것만 떠올리고 몰입한다면 우리의 누추한 일상은 그리 비관적이지도 무의미하지도 않다. 현미경 속에 담긴 무한한 우주처럼 뜻밖의 아름다움과 흥미를 발견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가 잘려나가면 필요한 것과 돈도, 욕망도 오히려 적어진다. 하루에 할 수 있는 건 제한되어 있기에 욕심 낼 이유가 없다. 오늘 통장 잔고가 제로가 되거나 냉장고가 텅 비진 않는다. 백화점에서 사고 싶은 신상이 오늘 모두 팔리진 않는다. 오늘 밤 저녁을 먹다가 암선고를 받을 일도 없다. 내일의 태양은 반드시 뜨기에 못한 일은 내일 또 하면 된다.

현재에 할 수 있는 것만 집중하면서 고양이처럼 열심히 닦고 먹고 싸고 놀며 살아가면, 그럼 시간은 알아서 우리를 미래로 태워다 줄 것이고, 운이 좋으면 좀 더 나아진 현재라는 선물을 또 받을 것이다.

과거에서 미래로 밀려오는 거대한 시간의 파도는 운명의 몫이지만, 파도의 끝자락을 타는 서퍼의 쾌감은 바로 나 자신의 것이다. 오로지 현재에 집중하며 중심을 잡으면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지만,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파도를 보게 되면 무서워 물속에 빠지게 된다. 잊지말자, 삶은 적분이 아니라 미분이라는 것을. 죽음의 순간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 것은 오로지 현재뿐이다.

Yesterday is history, tommorow is a mistery and today is a gift. That’s why we call it the present.


ㅍㅍㅅㅅ http://ppss.kr/archives/63540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