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년대 이후부터 서부 개척, 산업 발전, 평등주의 부상 등의 사회 경제적 변화로 인해 미국 건국 초기 성직자와 법률가 중심의 지식인 기반 전통 질서가 해체되었다. 맨손으로 자수성가한 기업가들이 시대를 호령하고 비즈니스 논리가 거침없이 통용된 19세기의 도금 시대(Gilded Age)는 ‘나약한’ 지식인과 ‘쓸데 없는’ 학교 교육에 대한 경멸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다. 그러나 사회 복잡성이 증가하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전문가 집단이 정부 정책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때부터 대중들의 지식인에 대한 비웃음은 두려움과 분노로 전환된다. 또 이데올로그로서 지식인의 비판적, 진보적 특성 때문에 우익들은 전통적으로 지식인을 적대시했다.
하지만 동시에 20세기 이후 미국 반지성주의의 깊숙한 곳에는 모더니티 자체에 대한 반동이 숨어 있다. 1차대전 이후 미국에 몰아 닥친 변화에 대한 거부다. 즉, 세계시민주의와 다윈 진화론의 유입, 미국 고립주의의 종말, 대공황으로 전통 자본주의 붕괴와 중앙 집중화된 복지 국가로의 전환, 경찰국가로서, 그리고 냉전으로 인한 전쟁 부담 등이다. 이를 거부하고, 대륙으로 떨어져 고립된 채 촌락 사회가 온존하고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뒷받침하며 산업 자본주의가 제재 없이 활개 쳤던 19세기의 미국으로 회귀하려는 심리의 일환이 반지성주의로 나타났다.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은 반지성주의의 가장 강한 동력이었다. 초창기의 청교도 성직자들은 지식인 계층이었지만, 18세기 중반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면서 청교도 시대가 끝나고 복음주의 시대가 열린다. 이들은 세력확장을 위해 감성에 호소하면서 성령 대 부흥회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도입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요소는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고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파악하는 미국 우익 세계관의 기저를 이루게 된다. 복음주의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정신적 전통은, 학습된 인공적 이성보다도 신이 주신 직관적 “지혜”를 선호하는 원시주의(primitivism)다. 이는 애초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련되었지만 타락한’ 유럽 문명과 스스로를 구분하면서 세워졌다는 데서도 기인한다.
반지성주의가 미국인 의식의 전면으로 떠오른 것은 미국이 비즈니스 패권이 지배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개척지에서 맨손으로 사업을 일구는 과정에서 거칠고 공격적인 남성적 마인드와 과감한 의사결정, 기회를 놓치지 않는 순발력이 미덕이 되고, 지적이고 문화적인 것은 ‘유약하고 여성적’이라고 배척하는 풍토가 심화된 것이다. 이들 중 다수는 공식 교육 없이 맨손으로 자수성가하여 성공 신화를 양산한 장본인들이었는데, 이들의 이상을 잘 반영한 문헌이 19세기부터 출현한, 강한 종교색을 띤 자기계발(self-help) 서적들이다.
반지성주의적 신념이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겨진 분야가 바로 미국의 교육이다. 미국 학교 교육의 실패, 즉 교사의 저임금과 낮은 지위, 노후하고 게토화된 학교, 축구팀 주장이나 치어리더에 대한 과도한 숭배, 학업 성취도의 전반적 저하, 성적이 뛰어난 학생의 방치 내지는 따돌림은 대부분 여기에 기인한다. 특히 1870년대 이후 중등 의무 교육이 시행되고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의 자녀들까지 가세해 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공부에 관심 없는 대다수 평균 이하의 학생들에게 대학보다는 시민 의식 함양과 실용적 직업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는 신념이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 이 신념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된 예가 1940-1950년대에 시행된 ‘Life Adjustment’ 운동으로, 외국어나 수학, 고전 같은 학구적 과목이 대거 폐지되고 운전이나 가사처럼 학생들의 흥미와 필요에 부응하는 실용적인 과목이 개설되었다. 이 운동은 너그럽고 민주적이며 진보적인 이상을 추구했지만, 매스미디어가 부추기는 소비문화에 순응하는 수동적 인간을 길러냈다는 점에서 보수적이기도 했다. 존 듀이의 교육 철학은 이런 새로운 교육 운동을 떠받친 지적 기둥 중 하나였으나, 현장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듀이의 의도와 달리 단순화되고 왜곡되었다.
출처: http://lectrice.co.kr/?p=436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