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5일 화요일

부동산 역사는 반복된다

 출처: https://blog.naver.com/kedkorea/222629391270


삼토시 부동산

안녕하세요 삼토시입니다.


오늘은 조금 색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부동산에서 주기설을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작금의 상황이 과거 상승장과 비슷한 내용이 많아 한번 알아봤습니다.


제가 2023년 전후를 중장기 고점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을 여러 매체를 통해 밝힌 바 있어 현 상승장이 2023년에 마무리된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셔도 될거 같습니다 ^^

서울 부동산의 과거 상승장(1999~2008년)과 현재 상승장(2014~23년)의 흐름을 


시계열별로 비교해보았습니다. 



① 상승장 6년차에 맞이한 조정 (2004년, 2019년)


1999년부터 상승한 서울 부동산은 상승 6년차인 2004년 조정장을 겪었고 2014년부터 상승한 서울 부동산은 상승 6년차인 2019년 상반기 조정장을 겪었습니다.

2004년과 2019년의 공통점은 5년 연속 상승으로 피로감이 누적된 상황에서 5만호가 넘는 입주 물량이 몰린 영향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2018년 12월 31일 입주를 개시한 헬리오시티를 2019년 입주 물량으로 간주)



② 폭등의 도화선이 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2005년, 2017년)

2005년 8.31 대책을 통해 2006년부터 2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시행하였고 서울 아파트 시장은 곧바로 +24% 폭등으로 반응하였습니다.

2017년 8.2 대책을 통해 2018년 4월부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시행하였고 서울 아파트 시장은 곧바로 +14% 폭등으로 반응하였습니다.

(참고로 2003년부터 2020년까지 2006년과 2018년이 각각 상승률 1위와 2위를 기록하였습니다.)



③ 상승 동력을 제공한 토지보상금 지급 (2006년, 2021년)

수년간의 상승장으로 피로감이 계속 누적되던 터에 2006년 광교신도시 토지보상금 지급은 다시 한번 서울 부동산에 상승 동력을 제공하며 시장을 폭등시켰습니다.

수년간의 상승장으로 피로감이 계속 누적되던 터에 2021년 3기 신도시 토지보상금 지급은 다시 한번 서울 부동산에 상승 동력을 제공하며 시장을 폭등시켰습니다.

(2003년 이래 2006년이 상승률 1위이며, 2021년은 2018년을 제치고 상승률 2위를 기록하였습니다.)


④ 주택구입부담지수 최대치 갱신 (2008년, 2023년?)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제가 자주 인용하는 지표인데 간단히 말하면 해당 지역의 중위소득 가구가 중위가격 주택을 구입할 때 소득 대비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을 계량화한 것입니다.

2008년 2분기는 서울 중위소득 가구가 서울 중위가격 주택을 구입할 때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에 소득의 41%를 사용하면서 당시 상승장의 최고점이었습니다.

2021년 3분기는 서울 중위소득 가구가 서울 중위가격 주택을 구입할 때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에 소득의 50%를 사용하면서 현 상승장에서 현재까지 최고점입니다.

이 지수는 제가 중장기 고점으로 전망하는 2023년 전후까지 상승하지 않을까 보고 있습니다. 


⑤ 다시 만난 입주 물량 확대 (2008년, 2023년)

상승장 10년차인 2008년 서울 아파트는 잠실을 중심으로 입주 물량이 급증하며 상승장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상승장 10년차인 2023년 서울 아파트는 둔촌과 개포를 중심으로 입주 물량이 급증하며 상승장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⑥ 물량 부담을 가중시키는 신도시 입주 (2009년 2기 신도시, 2026년 3기 신도시)

2008년 입주 물량 확대로 주춤거린 서울 부동산은 2009년 판교, 2011년 광교 등 2기 신도시 입주로 물량 부담이 커져 하락장의 길을 걷게 됩니다.

2023년 입주 물량 확대와 맞닥뜨리는 서울 부동산은 2026년부터 3기 신도시 입주로 물량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판교, 광교, 위례가 토지보상금이 지급되고 5년후부터 입주를 시작하였는데 3기 신도시가 2021년부터 토지보상금이 지급되기 시작했으므로 5년후인 2026년부터 입주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과거 상승장과 현재 상승장이 생각보다 시계열별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어 상당히 흥미로움을 느끼며 조사를 했습니다. 

다만 과거 상승장과 현재 상승장의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전세가율" 입니다.

제가 글 제목에



서도 2006년과 2021년이 유사하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이유는 상승장 8년차라는 단순한 공통점 뿐만이 아니라 장기간 상승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신도시 토지보상금이라는 신규 유동성이 유입되면서 다시 상승 동력에 불이 붙은 해이기도 하고 입주 물량이 다시 늘어나는 해(2008년, 2023년)를 2년 앞두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는데요, 대신 전세가율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2006년 12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44%였으며 2021년 11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4%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세가를 "주택 사용 가치", 매매가를 "주택 사용 가치 + 주택 투자 가치"로 보는데 그만큼 매매가와 전세가의 괴리가 클수록 전세가(사용 가치) 대비 매매가(투자 가치)에 거품이 크게 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세가율은 2006년보다 2021년이 상당히 높습니다. 2021년 매매가의 거품이 2006년보다 적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2021년 전세가율이 높은 이유가 있죠.

과거 상승장보다 현재 상승장의 전세 대출이 훨씬 활성화되어있다는 점. 2020년 시행한 임대차3법이 전세가를 펀더멘탈 이상으로 밀어올린 점.

어찌 되었든 2021년 전세가율이 2006년보다 높은 것은 팩트입니다. 이러한 높은 전세가율은 2023년 전후에 중장기 고점이 오더라도 매매가를 하방에서 지탱시켜 조정폭이 커질 수 있는 여지를 당분간 낮춰주는 부분으로, 3기 신도시 입주가 시작되어야 의미있는 수준의 하락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2006년 ≒ 2021년? 서울 부동산, 그 신박한 평행 이론|작성자 삼토시

2022년 1월 11일 화요일

욕심은 사기꾼에게 최고의 돈 줄, (무심한 목석, 부처의 마음으로)

출처:https://blog.naver.com/mynameisdj/222619220114 


ㅇ 돈나무라 칭송되던 캐시우드, 최악의 실적으로 고통받는 중

ㅇ 헤지펀드 최고 연봉 체이스 콜먼, 2021년 부진한 실적

ㅇ 퀀트투자 AQR펀드, 조롱거리가 됬으나 2021년에 높은 성과

ㅇ 빌 밀러(2008년 이전 스타매니저, 2008년 큰 손실), 그 이후 시장보다 높은 성과

ㅇ 스티브 아이스만(영화 빅쇼트의 스타 매니저), 금융위기 이후 실적부진으로 회사 청산

ㅇ 존 폴슨, 금융위기에 부동산 쇼트로 대박, 그 이후 성과 부진으로 펀드 해산

ㅇ 브릿지워터 퓨어알파 펀드, 2008년 고수익 달성했으나 그 이후 꾸준히 시장 하회 

ㅇ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2008년 이후 시장 수익과 비슷한 정도

 

2022년 1월 10일 월요일

(상식과는 다르게) 한국의 정책은 유능한 관료와 전문가의 추진방향이 여론에 우선해왔다

출처: https://sovidence.tistory.com/1185


ㅇ 외부에서 바라볼 때 한국사회의 특이한 점이 두가지인데 1. 한국의 객관적 데이터와 사람들의 주관적 인식의 불일치, 2. 여론이나 사람들의 의견과는 달리 진행되어온 변화 


ㅇ1번에 대해서: "개천룡" 현상인 한국의 사회이동이 줄었다는 증거는 없다. 상위 10%가 세습한다는 인식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한국의 불평등 변화는 상층이 아니라 하층에 의해서 특징지워진다. 상층에서의 불평등은 지난 40년간 달라지지 않았다.


ㅇ2번에 대해서 한국은 여론과 객관적 데이터가 충돌할 때, 여론과 상관없이 데이터에 기반하여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사람들의 주관적 인식은 무시되었다. 그 원인은 불명이나 한국이 타 국가에 비해 빠르게 발전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


ㅇ불평등 변화가 대표적 사례. 한국인들은 불공정은 못참지만, 불평등은 감내한다. 한국인의 불평등 감내정도는 지난 20여년간 더 강화되었다


ㅇ불평등을 이렇게나 감내하는데, 왜 지난 10년간 '느낌이 아닌 데이터상으로' 소득재분배가 빠르게 진행되고, 불평등은 줄었나? 이명박 정부서부터 불평등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ㅇ데이터상 한국의 불평등 문제는 빈곤의 문제이고, 특히 노인 빈곤의 문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탄생 때를 제외하고는 노인 빈곤 정책이 지지를 받은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빈곤을 상당히 줄였는데, 노인빈곤 정책은 조용하지만 꾸준히 진행되었다. 이명박 정부서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재분배는 꾸준히 개선되었고, 불평등은 꾸준히 줄었다. 


ㅇ주거 정책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재개발, 임대주택 등으로 상당히 급진적으로 슬럼을 해결하였다. 사유재산권은 침해되었지만. 소셜믹스가 사회계층 완화에 낫다는 전문가들의 지배적 입장은 상당히 오랫동안 관철되었다.  (내생각, 임대주택은 집주인은 당연히 싫어하는데 대중여론으로도 지지를 못받는지는 확인 필요)


ㅇ교육 정책도 그렇다. 수많은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큰 방향은 계층 격차를 약화시키고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쪽이었다. 적어도 대학 진학 측면에서 다양성이 감소했다고 볼 근거는 적다. 여론으로는 다수가 수능 점수에만 기반해 대학 선발을 원했지만, 실제 정책은 반대였다. (앞으로 어떨지...) 

ㅇ또 다른 예로 지역 발전이 있다. 정권의 지역기반별 지역 발전 변화를 보면, 대통령 출신 지역이 해당 정권 동안 득을 보기보다는 오히려 손실을 겪었다(https://sovidence.tistory.com/772)


ㅇ결과적으로 전문가와 관료의 정책이 우선시된다. 다만 여론이 우호적일 때는 공개적으로 빠르게, 우호적이지 않을 때는 조용히 천천히 추진했다는 차이 정도. 이는 상식과는 꽤 다른 양상이다.







2022년 1월 9일 일요일

보스니아 전쟁 생존자의 위기시 생존 전략

전쟁 생존자가 말하는 "진짜 생존주의"

어느날, 레딧의 생존주의 판에 자신을 보스니아 전쟁 생존자라 하는 Selco라는 사람이 글을 썼다. 전쟁 생존자라면 한국에도 있지만 피난민일 뿐이고 고립되었던 사람들은 그때의 기억을 극도로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생존주의 게시판에 글을 썼다.

[이하 게시글 내용]

이제 내가 겪었던 경험담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영어를 잘 못하니 이해부탁한다.

나는 발칸 지역에 살고, 92-95년 그곳은 지옥이었는데, 나는 그 시기 인구 5~6만 정도 되는 어느 도시에서 1년간 전기, 연료, 상하수도, 식량 보급망, 그리고 기타 거의 모든 것을 입수할 수 없는 무정부 상태에서 살았다. 도시는 1년간 포위돼 있었으며 사실상 지옥이었다.

조직적인 군대나 경찰 같은 것은 없었고, 그저 총을 가지고 자기 집과 가족을 지키는 방어자들의 작은 그룹들로 흩어져 있었다. 우리 중 일부는 좀 더 나은 준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사태가 시작할 당시 대부분의 가정에는 며칠 분량의 식량과, 일부가 권총을 갖고 있었고, 소수만이 소총을 가졌다.

한두달이 지난 시점에서 강도가 나타났고, 병원은 도살장 같았으며, 경찰은 사라졌고, 병원 직원의 80%는 도망쳤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우리 가족은 당시 꽤 큰 편이었고 (큰 집 한채에 15명의 가족이 있었고, 대여섯 자루의 권총에, 세자루의 AK 소총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들 대부분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포위된 도시를 돕기 위해 미군 공군이 10일마다 MRE(전투식량)를 투하해주었지만 (미국의 도움에 신의 가호를) 충분치는 않았다. 일부 가옥에는 작은 텃밭에 소량의 채소를 길렀지만, 대부분은 그마저도 없었다.

석달 후 아사자와 동사자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버려진 집에서 모든 문, 창문틀을 벗겨서 태웠다. 나는 내 가구를 전부 난방에 소모했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죽었는데, 대부분 오염된 물 때문이었고 (내 가족 중 두 명이 그렇게 죽었다), 우리는 빗물을 받아 마셨으며, 비둘기를 여러번 잡아 먹었고, 한번은 쥐도 먹었다.

당연히 돈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다.

도시내 암시장이 가동하면서 우리는 여러가지를 교환했는데, 예로 들자면, 콘비프 캔 하나는 여자를 몇 시간 살 수 있는 가치가 있었다 (안타깝겠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그런 여자 대부분은 필사적인 엄마들이었다. 양초, 라이터, 항생제, 연료, 배터리, 총탄과 음식 등등이 거래됐으며 우리는 그런 것을 얻기 위해 짐승처럼 싸웠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사람들은 괴물로 변했다. 끔찍했다. 명심해라 무력은 남자의 머리수다. 집 안에 혼자 있으면, 제 아무리 무장을 잘 했다 할지라도 강도 당하고 살해당할 것이다.

전쟁에서 어느 편이 이겼는지는 중요치 않다. 거의 20년 전 일이지만, 내게 있어서는 어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며, 나는 그에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나와 내 가족은 이제 잘 준비되었으며, 잘 무장했고, 많이 비축했으며, 많이 배웠다. 지진, 전쟁, 해일, 외계인이든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는 중요치 않고, 진짜 중요한 건 무언가는 일어난다는 것이다.

경험상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다시 강조한다 무력은 남자의 숫자에서 나온다. 가족과 가까이 지내고, 함께 준비하며, 친구를 현명하게 선택하고 함께 준비해라.


[아래는 질문과 답변들]

Q.어째서 땔깜이 문제가 되었나?

A:발칸 반도 지도를 보면 많은 숲이 있지만, 내가 살던 도시는 국경 근처 남부였다. 그 도시의 이름을 거론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도를 잘 살피면 국경 부근 지역은 바위 투성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도시 내, 공원 등지에 나무가 있지만, 도시의 대부분은 콘크리트 건물이며, 요리와 난방에 전기를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도시 내의 모든 나무는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그게 다 소모되면 남은 것은 가구, 문, 나무 바닥 순서다. (에너지는 생명이다.)


Q: 강도가 차를 타고 돌아 다녔는가?

우리 동네 내에서는 움직일 수 있는 차는 없었다. 대부분의 도로는 폐허와 잔해, 버려진 차량, 무너진 집 등으로 막힌 상태였고, 연료는 금처럼 귀했기 때문이다.

어딘가 가려면 항상 밤에 여럿이서 이동했다. 큰 집단을 이루는 일 또한 없었다 (2~3사람이 보통). 항상 잘 무장하고, 빠르게, 그림자에 숨어서, 폐허 사이로, 도로의 개활지는 최소한으로, 항상 숨어다녀야 했다.

우리 지역에는 교외 지역이라든지 농장이라든지는 없었다. 교외 지역은 항상 적군에 의해 점령돼 있고, 도시 내에서는 누가 적 편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그 사태 속에 10~15명 가량, 종종 50명 가량까지 뭉친 강도 집단이 있었다. 당신과 나, 아버지들, 할아버지들, 여자들 같은 죽고 강도 강간 당하는 사람 또한 있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같은 구분은 무의미하다. 우리들 대부분은 회색지대에서,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우리는 가진 것을 총동원해야 했는데, 머릿수가 많고 총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시 잘 준비되지도 않았고, 준비할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고로 당신 또한 우리가 일종의 석기 시대,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이 그 상태로 돌아가야 했음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가능한 무엇이든 사용해야 했다. 

한가지 예를 들면, 나는 큼직한 프로판 가스통(부탄이었는지 종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음)을 갖고 있었는데, 난 이것을 요리나 난방에 쓰지 않았다. 명심해라 에너지는 금이다.  

난 내 친구의 도움을 받아 그 가스통을 개조해서 가스통 호스를 일종의 작은 마개에 연결했다. 이를 통해서 나는 1회용 가스 라이터를 재충전할 수 있었고 (당신이 방법만 알면 1회용 가스 라이터는 더이상 1회용이 아니다.) 그런 라이터는 장래에 작은 도움이 되어주었다.

누군가 내게 빈 라이터를 가지고 오면 나는 그 라이터를 충전해주었는데, 그런 1회 충전 당 식량 캔 하나 또는 양초 하나 혹은 상대가 제시 가능한 뭔가로 바꿔먹을수 있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나는 훈련받은 정식 간호사였고, 당시 나의 지식 역시 거래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훈련받고 교육 받아두어라. 그런 상황이 닥치는 경우 뭔가를 고치는 방법만 알면, 모든 물건이 다 소모되는 날이 오더라도, 그 특별한 지식을 음식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한 고치는 방법이란 신발이나 사람, 또는 다른 뭔가를 수리하는 것을 말한다.

내 이웃은 오일 램프에 쓰기 위한 일종의 기름을 만드는 법을 알았는데 (잔에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꽃아 쓰는 그런 것) 그는 굶주리는 법이 없었다. 그는 내게 어떻게 기름을 만드는지 절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내 생각에 그의 집 뒤에 있는 나무와 소량의 디젤유를 이용한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요점은, 뭔가 배워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고쳐줄 사람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은 영화가 아니다. 그저 끔찍할 뿐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필요한 일을 했다. 승자 따윈 없다. 그저 우리는 무수한 악몽과 함께 살아남았을 뿐이다.

나의 집단에는 우리 가족, 내 혈연 관계인 친지(삼촌이나 할머니 등)으로만 구성돼 있었다. 우리 동네와 마을에는 가까운 친구도 몇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친구는 가족이었다. 나는 우리 그룹에 외지인은 절대 끼워주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발칸 지역에 산다. 단지 다른 동네로 옮겼으며, 좀 더 나이 들었고, 더 잘 준비되었을 뿐이다.


Q:혹시 이웃 사람의 기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는가?

A:노란색이었고, 가끔 갈색이며, 나로서는 그가 어떻게 기름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몇가지를 섞은게 아닌가 싶은데, 그는 비법을 철저하게 숨겼다. 그 등불은 병 안에 기름을 담고 병 뚜껑(아마 알루미늄)으로 10cm 길이의 신발끈을 통과시켜 꽂아둔 원시적인 것으로, 신발끈은 병뚜껑 위로 2~3cm 올라오고, 나머지는 전부 기름에 잠겨있다.

냄새가 끔찍했고, 검은 연기도 많이 났지만, 어쨌든 불빛이 난다.

물론 요리할 때도 이 기름을 쓸 수 있지만, 항상 쓰기에는 너무 값진 것이었다.


Q: 그 색깔이라면 내 추측과 맞아떨어진다. 만약 소나무에서 나온 기름이라면, 테레빈유라고 생각한다. 테레빈유를 디젤과 섞은 것은 테레빈유의 냄새를 감추기 위한 것인듯 하다. 그러면 무슨 기름을 쓰는지 알 수 없게 될테니까. 그리고 양이 부족하다면 혼합해서 불릴 수도 있고.

기본적으로 소나무가 필요하다. (테레빈유를 뽑을 수 있는 나무는 여러가지 있지만 소나무가 가장 흔하다.) 작은 손가락 절반 굵기의 구멍을 나무껍질로부터 1~2센티미터 정도 뚫는다. 거기에 세로로 비스듬히 깎은 파이프를 박는다. 파이프 아래 놓여있는 박스에 수액을 담는다. 수액을 증류기에 증류한다. 약 100~160도로 증류한다. 일년 내내 얻을 수 있지만 보통 늦겨울에서 이른 봄에 가장 많은 수액을 얻을 수 있다. 테레빈은 살균제로도 쓸 수 있다. 왁스에 섞어주면 광택제로도 쓸 수 있다.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A:정말 고맙다. 나는 그걸 아주 여러 번 쓰고도 그 정체를 몰랐는데.


Q:만약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석 달 더 준다면? 

A:당연히 바다 너머로 도망가야지. 농담이고, 이제 나는 상황이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 지를 잘 알기 때문에 음식, 위생, 에너지 등등의 보급품을 6개월치 보유하고 있다. 나는 약간 보안을 강화한 아파트에 살고 있고, 내 아파트에서 5마일 떨어진 어느 마을에 피난처가 있는 집을 갖고 있으며, 그 집에도 6개월 분량의 보급품이 있다. 그 마을은 작은 동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잘 아는 사이이고, 역시 (지난 전쟁의 경험 덕에) 대부분이 잘 준비된 사람들이다. 나는 네 종류의 화기에 각각 2천발의 탄약을 갖고 있다(법률 관계 상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나는 그 집에 큼직한 텃밭도 갖고 있으며 텃밭 가꾸기와 농경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배워뒀다.

내 생각에 이제 나는 상황이 발생할 때를 냄새맡는 지혜를 가진 것 같다. 알다시피 모든 사람이 다 괜찮다고 할때, 뭔가 잘못돼간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내가 스스로와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본다. 상황이 더러워지면, 당신도 분명 자식을 살리기 위해 뭔가 나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확신한다. 당신은 영웅이 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가족과 함께 살아남고 싶어할 것이다.

혼자서 살아남으려는 자는, (이는 물론 내 의견이지만) 아무리 잘 무장하고 잘 준비해도 절대 살아남을 수 없으며, 결국에는 죽는다. 난 이런 상황을 아주 많이 보아왔다. 가족 단위나 가까운 친구들이 많은 비축물자와 여러가지 다른 지식을 가지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


Q:한 사람이 혼자 살아남는데 가장 필요할 한 가지는?

A:어떤 사람이 생존을 위해 준비하는게 아니라 강도처럼 살려고 할때 단 한가지만 꼽는다면, 총과 아주 많은 탄약이다.


Q:뭔가 한가지를 더 비축할 수 있다면 뭐를 비축하겠고, 가장 좋은 거래용 물자는 무엇인가?

A:탄약과 소독약 같은 위생용품 그리고 에너지, 배터리 등이다. 그 외에 주머니칼, 라이터, 부싯돌 같은 거래가 용이한 작은 물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아주 많은 양의 술, 오래 보존이 가능한 위스키 같은, 사실 종류는 중요치 않고 어쨌든 가장 싼 것으로 많이 가지면 좋다. 술은 절망적인 시기에 가장 좋은 거래물품이었다.

또한 위생 물품의 부족함은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직접 눈으로 본 바이다. 그리고 기타 간단한 물건들도 많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량의 쓰레기 봉지와 덕트 테이프,박스 테이프 같은, 강조하지만 아주 아주 많은 분량이 필요하다. 용도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무기라면 간단하게 가는 것이 좋다. 나는 이제 45구경 글록을 항상 휴대하는데, 내가 그 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흔치 않은 구경이므로 나는 러시아제 TT(토카레프) 7.62mm 권총 두 자루 또한 숨겨다가 보관하고 있다. 이 동네에는 아주 흔하고 탄약도 많은 종류이기 때문이다.

나는 칼라시니코프(AK47의 개발자)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동네에는 세 가구마다 한 자루씩은 있으므로 역시...

전쟁 동안 나는 물은 대개 천장에서 빗물을 받아다 네개의 큰 드럼통 류에 받아다가, 정수를 위해 끓였다. 마을 안에 강이 있긴 하지만, 상당히 오염된 상태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어쩔수 없이...

난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포럼, 서바이벌리스트보드에 배우러 온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얼마나 나아가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뭔가 추한 행동을 하기 위해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Q:그 일로 인해 삶의 관점이 바뀌었는가?

A:물론, 이제 나는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더욱 중요한 점으로,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나는 더이상 정부와 공권력을 전혀, 전혀,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이 모든 것이 괜찮다고 장담하는 경우, 당신은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말해주는대로 믿지만 말고, 열심히 연구하라.


Q: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A:포럼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대량의 알콜을 비축하고 있다.

전쟁 초기에, 우리 집에서 가까운 가까운 작은 양조장의 벽에 유탄이 떨어졌다. 덕분에 우리는 라키아(보스니아산 위스키 종류, 포도로 만들고 아주 도수가 셈)를 500리터 가까이를 얻을 수 있었다.

거래 물자로 아주 훌륭한 물건이었으며, 절망적인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소비했고, 또한 소독용으로도 잘 써먹었다. 위생에 관해, 컵과 쟁반, 종이와 플라스틱 등이 아주 많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거의 구할 수 없었다.

내 생각에는 식량보다는 위생이 더욱 중요한데, 비둘기를 쉽게 쏘아 잡을 수 있으며, 집안에 할머니가 계시다면 뒷산에서 먹을 수 있는 야생초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위생용품은 총으로도 얻을 수 없다.

물 소독용 정제, 세척제, 소독제, 비누, 표백제, 장갑, 마스크, 모든 일회용품류를 갖추고, 응급치료법 훈련을 받고, 작은 창상, 화상, 특히 총상을 처치하는 법을 알아둬라. 전쟁터에는 병원이 없고, 설령 의사를 찾더라도 의약품이 없거나, 의사에게 지불할 물건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생제를 쓰는 방법을 알아두고 아주 많이 비축해라.

의료 지식과 의약품을 충분히 비축하면 당신은 부자나 다름없다.

금과 은에 관해서, 나는 당시 가진 금붙이를 탄약과 바꿔먹었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다지 값어치는 없었다.

반려동물에 관해서, 나는 반려동물이 없고, 당시에도 반려동물은 거의 보지 못했다. 누군가 잡아먹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가능성이 있다.


Q:혼자서 혹은 소가족으로 생존하는 것이 좋은가?

A: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다. 대개 작은 가족들이 서로 힘을 함쳐서 큰 집에 함께 거주하는게 보통. 내 경우이지만 인척관계인 것이 좋다.

소가족이나 혼자서는, 도심 생존에는 적절치 못하다. 야생에서는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방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당신이 집안에 조용히 숨어있고 많은 비축 물자가 있더라도, 빠르든 늦든 약탈자가 올 터이고, 총 한두자루로는 어림도 없다. 잘 숨어서 저시인성으로 지내는 것에는 일단 동의한다. 타인을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절대로 있는 티를 내지마라 어리섞은 짓이다. 일단 적이 나타난 상황에서는 머리 숫자가 필요하고, 총과 총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며, 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바로 당신의 가족이다.


Q:도시 안은 어떻게 이동하는가?

A:앞서 말했듯이 항상 밤 시간에, 절대 혼자는 안되고 2~3명 단위로, 빠르게, 주변에 주의를 끌지 않게, 어두운 옷을 입고, 다른 모든 사람과 비슷해 보이는게 좋다. 

다른 사람들이 지치고 가난하고 더러워보인다면, 당신도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많은 식량, 탄약, 깨끗한 옷가지를 갖고 있다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은 어리섞은 짓이다. 그런 것은 집에 보관해라. 다른 사람과 똑같이 보이게 주의해라.

누군가 당신이나 가족을 공격한다면, 그때가서 당신이 얼마나 잘 준비된 사람인지 보여주면 된다. 난 큰 집단에 속해서 다녀본 적이 없다. 큰 집단이란 강도떼밖에 없다.

내 경험담은 이정도다. 당시 나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 당신들처럼 여기 배우고 공유하러 온 것이다. 예컨데 나는 야외 생존술에 대해서는 별로 모르기 때문에 여기서 배웠으면 한다.


Q:사망한 사람의 장례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A:장례식 같은거는 안했다. 사람들은 빈 땅이라면 단 한치라도 사용했으며, 집 가까운 곳에 묻거나, 가끔은 정원에도 묻곤 했다. 도시 내의 공원 두세개는 공동묘지로 변했고, 전쟁 후에야 다시 파내서 정식으로 매장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시체를 태운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던 것

불에 관해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 어떤 사람들은 장작을 구하기 위해 밤마다 몇 마일씩 떨어진 곳까지 가서 나무를 해다가 집까지 가져와서 조리와 난방에 쓰곤 했다. 라이터와 성냥은 정말 값진 물건이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불을 피울 만큼의 장작조차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상 뭔가를 찾아다녀야 했다. 불, 장작, 음식, 탄약...

소금이 값진 것이였냐고 묻는다면 그러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커피나 담배가 훨씬 값이 나갔다. 다만 이는 내 마을에서의 경험담일 뿐이고, 같은 처지에 처한 다른 마을에서는 소금을 훨씬 비싸게 쳐주었다고 한다.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암시장 관련 문제이거나, 도시 내의 창고 비축분 때문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니, 되도록 다 비축하는게 좋겠다.

앞서 알콜에 대해 많이 언급했는데, 내 경우 알콜을 거래하는 것에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 사실 평상시보다 술의 소비가 10배 쯤은 됐기 때문이다. 소독용이나 의료용을 빼고서도 말이다. 만약 당신에게 돈과 시간과 공간이 허락된다면, 담배나 양초와 배터리, 또는 식량을 거래용으로 갖는 것이 좋겠다.

당시 나는 프레퍼(위기 대비해서 각종 물자를 비축하고 준비하는 사람)가 아니었고,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이런 미친 상황이 일어나기 며칠 전 정치가들은 TV에서 아무 문제 없다고 떠들어 댔었다. 그리고 하늘이 무너졌고, 우리는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조리에 관해, 전쟁 이전에 우리 집은 전기로 난방, 조리 등등을 해결했기 때문에, 내가 처음 거래하기 시작한 것은 낡은 장작 스토브였다. 그것을 주방에 걸고 배기 파이프를 벽에 난 구멍으로 기워넣어서 조리와 난방에 충당했다.

여름 동안에는 집 뒤뜰에서 조리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벽돌담이 쳐져있어서 그나마 한전했기 때문이다.

음식의 냄새 문제는, 흠, 이 상황을 생각해보자. 전기 없고, 흐르는 물도 없고, 하수구는 몇달 동안 막혔으며, 죽은 시체가 무너진 집에 굴러다니는, 악취가 넘쳐나는 암울하고 엉망인 상황. 뭔가 좋은 냄새를 맡는 것은 아주 힘들 것이다. 영화 속처럼 깔끔한 일은 절대 없다. 항상 추하고, 더럽고, 냄새난다.

물론 나도 조리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이 약간 있지만, 아주 약간일 뿐이며, 앞서 말했듯이 충분한 인원과 충실한 무장과 방어가 있다면 그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야생에서는 좀 상황이 다를 것이다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근처에서 채집한 풀쪼가리를 넣은 팬케이크 비슷한 것을 먹었다. 기름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장작도 많이 필요없는 것이기 때문. 또한 입수하고 거래 가능한 모든 것을 먹었는데, 특히 쌀이 먹기도 좋고 조리에 장작도 많이 필요치 않았다.

운이 좋아서 비둘기 같은 웃기는 것을 먹어야 했던 상황은 적은 편이다. 내겐 항상 거래할 뭔가가 있었기 때문에 덕분에 내가 살아남은 것 같다. 물론 총 덕분이기도 하고.


Q:왜 낮보다 밤이 안전한가? 밤이 숨기 좋다는 것 외에, 혹시 낮에 강도가 더 출몰한다든지 하는 이유가 있는가? 왜 2~3인 작은 그룹으로만 이동해야 하는가? 대집단으로 이동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A. 적군 저격수 때문이다. 전선이 매우 가까워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밤에만 나가야 했다. 거래라든지 장작을 찾는다든지(장작이 얼마나 중요하고, 구하기 힘든지 말도 못할 지경이다), 뭔가를 찾으러 간다든지, 누군가를 만난다든지, 뉴스를 들으러 간다든지(아주 아주 중요한 점. 많은 사람이 무슨 일이 일어나나 싶어서 나갔다가 죽곤 했다.) 기억하라, 새 소식을 전해들을 수 없을때, 라디오나 TV나 뭐든지 아무 것도 없을때, 사람들 사이에 유언비어가 설친다.


Q. 당신이 밤에 나가야 했던 이유는? 목적지와, 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부탁한다.

A. 앞서 이야기했듯이, 집 안에서 추위와 굶주림, 또는 작은 상처의 감염 따위로 죽던가 아니면 위험을 떠안고 나가서 살 길을 찾아보는 수 밖에 없다. 나는 뭔가 유용한 것을 거래하러 나갔다. 


Q. 당신이나 가족에게 떼강도가 들이닥쳤을때 상황을 해결한 방법은?

A. 나로서는 우리 집 상황 밖에 알 수 없다. 또한 그리 상세하게 해설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우리에겐 화력이 있고, 튼튼한 돌벽이 있으니까. 또한 우리는 감시를 두고 있어서, 우리 동네 사람들은 잘 단결했고, 강도가 나타나면 많이 쏴댔다.


Q. 탄약 등등을 거래한다고 언급했는데. 당시 당신이 얼마나 많이 쐈고, 얼마나 탄약을 갖고 있었으며, 얼마나 필요로 했는가? 

A. 동네 안에서 사격전이 벌어지는 일은 흔했다. 처음에는 나는 충분한 무기를 갖지 못했다. 소총 한정과 권총 한 정(2차대전 물건), 약 100여발의 탄환 뿐이었다. 나중에 나는 소총과 탄약을 위해 물건을 거래했으며, 자동차 밧데리로 총 2자루를 얻었다. 탄약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아아주 많이, 가질 수 있는 한 최대로.


Q. 적과 아군인지 구분한 방법은?

A. 대부분의 경우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법은 없다. 내 가족과 일부 진짜 친구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사람이 적이다. 당신의 친구가 자식의 죽음과 당신의 죽음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를 놓고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Q. 다른 사람과 거래할 물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아내고 어떻게 거래했는지?

A. 대부분은 소문을 통해 했다. 누군가 몇 블록 너머에 사는 노인이 식량 몇 캔으로 탄약을 원한다든지 하는 소문을 알려주면, 당신은 거기로 가는 것이다. 앞했듯이 항상 뭔가를 필요로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약간의 물건을 가지고 우리 동네에 거래꾼으로 찾아오곤 했다.

밤마다 일종의 장터 비슷한 것이 열리곤 했는데, 사실 스포츠 센터의 폐허 자리였는데, 당신은 거기 가서 뭔가를 찾거나 거래를 제시할 수 있지만 거기는 누가 통제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장소였다.


Q:당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어떤 보강책을 썼고 보초는 어떻게 섰는가?

A:상당히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집을 둘러싼 벽돌벽이 있고, 출입구에는 모래주머니를 쌓았으며, 그 모래주머니 너머에는 구할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커다란 철판이나, 바위 등등을 놓았다. 집 안 창문 역시 총안구 약간을 뚫어놓는 것을 제외하면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틀어막았다. 가족 중 다섯명은 항상 싸울 준비를 했고, 한 명은 항상 집 밖 거리의 숨은 공간에서 대기했다. 거의 석기시대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Q:저격수를 회피한 방법은? 사람들이 어떻게 경고해주거나 했는지? 

A:낮에는 피할 수 없다. 야간에 저격수는 드물었지만, 밤에도 거리의 개활지는 최대한 피하고, 지름길을 사용하고, 폐허에 숨어서, 조용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아울러 도로는 멈춘 차와 폐허로 막혀있어서 은폐하기 쉽다.

다시 강조하지만 위생에 관련된 모든 것이 크게 값어치가 있다. 휴지 역시 아주 많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강도보다는 위생 문제로 훨씬 많이 죽었다 


Q: 화장실은 어떻게 했는지? 밖에 나가서 해결했는가? 무엇으로 닦았는지? 

A:집 근처의 땅이라면 어디든지 삽과 함께 사용했다. 좀 더럽게 들리지만, 사실 정말로 더럽지만, 빗물 받아놓은 것으로 씻었고, 가끔은 강으로 나가기도 했다 (대부분의 경우 너무 위험했다.) 대개 우리에겐 휴지가 없었고, 있다 해도 거래에서 바꿔먹곤 했다. 정말 나쁜 상황이었다.

내가 조언을 주자면, 가장 먼저 준비할 것은 무기와 탄약이고, 그 다음으로 다른 모든 것이다. 모든 것, 당신이 돈과 공간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 최대한. 뭔가 부족하거나 잊어버리더라도 당신이 거래할 물건을 갖고 있는 한 문제 없다. 하지만 총과 탄약이 없다면 당신은 거래할 장소에 들어갈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대가족이나 큰 집단 그리고 아주 친한(정말로 아주 친한) 친구를 식구라거나 먹여 살려야 할 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더 많은 총과 무력으로 생각했다. 이 사실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적응했다.

또한 상식적이고 간단한 문제지만, 나약한 사람들은 이른 시기에 사라지게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싸운다. 

작은 물건을 챙겨라. 라이터, 양초, 부싯돌 등. 발전기가 있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지만, 내가 보기에 1천개의 일회용 라이터를 갖는 것이 더 유리하다. 발전기는 정말 좋지만 전쟁통에서 발전기는 강도떼나 심지어는 군대를 불러들일 수 있다. 반면 1천개의 일회용 라이터는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싸고, 거래에도 유용하다. 


Q. 무기를 미리 등록해서 얻어두면 전시에 압수당한다, 차라리 그때 가서 구하는게 낫지 않겠느냐, 당신은 전쟁통에 어떻게 무기를 구했냐는 의견에 대해

A. 당신 말이 맞다. 전쟁이 시작되면 모든 집은 전쟁터에서 흘러나온 무기를 입수하게 되며, 경찰 역시 불법 무기 단속을 한다. 내가 아는 바로, 많은 사람들이 무기를 어딘가 숨겨놓는 것 같다.

나 또한 무기 등록을 하고 있으며, 우리 동네의 공권력 또한 "일시적 압류" 따위를 한다. 이 말은, 비정상적인 상황(폭동 등)에 정부는 모든 합법적 무기를 압류한다는 뜻이다. 고로 나는 항상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의 행동을 할 것을 염두에 둔다.

알다시피 어떤 사람들은 일상의 휴대를 위해 합법적 무기를 갖고 다니지만(나는 45구경 글록과 38구경 타우루스를 소유했다) 어떤 사람은 그런 합법적 무기와 더불어  "일시적 압류"에 대비한 불법적 무기 또한 숨겨두고 있다.

전쟁 상황에서 당신이 거래할 물자를 갖고만 있다면 무기를 입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다른 중요한 점으로, 전쟁의 첫 날은 혼돈과 난리가 가장 극심한 날이며, 이때 당신은 총을 입수할 시간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 혼란 속에서 비무장으로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내가 겪었던 상황에서 아는 어떤 남자가 무전기에 쓸 배터리가 필요했고, 그 남자는 여분의 소총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맞바꿨었다.

흔한 부상은 당연히 총상에 의한 것이고, 전문가와 물자가 없는 상황에서 의사를 찾아야 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면 그가 살 확률은 잘해야 30% 정도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총상으로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상처의 감염에 의해 죽었다. 나는 3~4회 정도 처방할 항생제가 있었는데, 가족을 위해서 아껴두었다.

정말 사소한 것이 사람을 죽인다. 설사도 의료와 물 섭취가 없으면 며칠 내로 죽는다. 특히 작은 아이들이 심하다. 피부 진균 감염, 그리고 식중독으로도 많이 죽었다. 우리는 손 쓸 방법이 별로 없었다. 기본적으로 상처는 동네에서 구할 수 있는 허브만을 처방할 수 있었으며, 상처를 입으면 라키아(독주)로 상처를 소독하고 어디서든지 항생제를 구하려 애쓰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응급 상황에서 상처를 치료하는데는 능숙하지만, 진행이 오래 걸리면 예후가 나빠진다.

내가 배운 교훈은, 위생 철저, 많은 약품, 특히 항생제. 당신은 많이 배워두는게 좋다. 온라인에서든, 훈련이든, EMT라든지, 응급처치 등등.

전쟁에서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정맥 찾는 법, 언제 약물을 사용해야하는 지 등등.

파상풍 치료제, 총상 처치, 독사 혈청, 아드레날린 킷(알러지 관련, 서로 다른 종류로 구할 것), 진드기 처리(진드기 관련 질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

간단한 산소 실린더와 BVM 마스크 같은 응급환자용 소생 키트를 갖는 것도 좋다. 그런 물품 사용법은 별로 어렵지 않다. 물론 당신이 적절한 훈련이나 자격증이 없다면 일상 속에서 이 물건을 사용하는게 불법일 수 있다.

하지만 전쟁 상황에서는 아무도 자격증 안 따진다. 그냥 배워두고 당신의 구급약품 속에 넣어둬라.

항상 가난했기에, 나는 내가 가진 자원으로 돕고, 대신에 음식이나 뭔가를 받아왔다. 당시 나는 준비되지 않았지만, 이제 나는 필요로 하는 것을 잘 갖추고 있다.


Q. 미국이 MRE를 공수해줬다는 것에 대한 질문. 미국이 식량 외에 다른 것도 줬는지? 어떻게 취급했는가? 사람들이 그냥 떨어진 보급품에 막 달라붙었는가, 아니면 모아서 나눠썼는가?

A. 좋은 질문. 미국은 MRE 말고도 몇 가지를 더 주곤 했다. MRE는 개별적으로 떨어졌는데, 내 생각에 MRE가 든 큰 상자(한 300~500개 정도?)가 낙하산에 달려서 떨어지다가 일정 고도에서 상자가 열리면서 MRE가 비처럼 흩어져서 떨어지는 것 같다. 다른 종류로는 큰 팔레트 상자가 통채로 떨어지곤 했는데, 그 안에는 밀가루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가끔 쿠키나 비스켓이 작은 금속제 상자에 든 것이 들어있는 팔레트가 있던 것도 기억한다. 식량 외에 든 것은 집어본 적이 없다. 의류나 다른 뭔가가 담긴 것이 떨어졌다는 소문도 들어봤지만, 직접 본 적은 없다. 항상 헛소문이 만연했으니까.

이런 보급은 일정 스케쥴에 따라 오는 일은 없었다. 언제 올지, 어디에 올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먼저 온 사람이 먼저 가지고, 꼼꼼하게 뒤지면 더 얻고, 잘 무장하면 더더욱 얻는다.


Q. 현지 화폐가 가치가 있는가? 돈으로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살 수 있었는가?

A. 전혀 가치없다. 가끔 외국 화폐로 뭔가를 살 수 있지만(달러나 독일 마르크) 그게 가능한 드문 경우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저평가됐다. 예를 들어 콩 1캔은 30~40 달러나 했다(일반 가치는 0.5달러 정도). 내 생각에 누군가 외부와 연계된 사람이 있어서, 암시장 등지를 통해서 엄청 돈 벌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경우조차 매우 드물다. 거래는 대부분 물물교환 형태였다. 현지 화폐는 매우 빠르게 침몰했고, 몇 주나 몇 달 정도면 끝장이다.

이 상황은 내 개인적인 경험일 따름이고, 4년간의 전쟁 중 어느 한 마을에서, 외부와 모든 것이 1년간 단절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무엇이 일어날 지도 몰랐다.

내 경험 상, 당신이 마을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면, 벽을 잘 갖추고 문에 화려한 방탄판을 대거나 창문을 막는 등의 행동은 하지 마라. 반대로 벽은 무너트리고, 창문은 깨트리고, 낡은 옷을 입고 부서진 LCD TV라든지 그런 쓰레기를 마당에 내놓고, 죽은 개나 고양이 같은 것을 마당에다 늘어트려 놓아 악취를 풍겨라. 강도맞은 것처럼, 빈 것처럼, 전혀 관심가질게 없는 것처럼 위장해라. (우리들 대부분은 이미 벗겨진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특히 죽은 악취가 풍기는 곳에는 더더욱.)

물론 이런 모든 것을 행하기 전에 좋은 지하실을 장만해서 숨겨진 입구에 환기구도 장비하고 무기를 안에 장비한 다음 야간에만 생존을 위해 출입하는게 좋다. 그냥 내 제안일 뿐이므로, 너무 이것에만 의존하지 말 것. 당신이 가진 특정 기술을 친구나 가족에게 대주면서 거기서 함께 기거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앞서 독사 혈청을 이야기했는데, 뱀의 독은 너무 빨리 퍼지기 때문에 빨아낸다든지 하는건 어려울거라 생각한다. 뱀독에 효과적인 주사나 약물이 좋을 것 같고, 우리 동네에는 두 종류의 독성 뱀이 있는데, 그런 뱀에 대해 잘 알아두고 주변 환경을 파악해서 알맞은 약과 투여량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Q. 작은 아이나 유아에 대해서,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아이를 돌보았는가, 아이들을 위한 물건을 거래할 수 있었는가?

A. 대부분의 물건과 같았다. 당신이 거래에 제시할 물건이 있다면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기억으론 유아용 유동식이나 분유 따위는 매우 비싸게 거래됐다. 유아나 아동의 어려움은 위생 관련 질병에 훨씬 취약하다는 점이다. 깨끗한 물이 충분히 없다면 약한 애부터 먼저 아프기 시작하고, 의약품과 치료법을 모른다면 문제가 생긴다.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가장 빨리 죽는다.

사람들은 유아 물품의 물물교환도 하지만, 그것을 찾고, 거래하고, 집으로 가져오는 것은 항상 사투였다. 고로 더 많이 비축할수록 문제는 적어진다.


Q. 암시장에서 물물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는 질문. 거래용 물품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었는지? 특정한 방법으로 숨기거나 했는지?

A. 다시 강조하지만 아무런 정답은 없고, 앞서 말했듯 저시인성이 답이며, 우리는 모든 것을 숨겼다. 좋은 신발 한켤레가 있다면 나는 지저분하게 만들어서 숨겼다. 아무도 깔끔해보이지 않고, 아무도 깔끔해보이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아무것도 조직적이지 않았으므로, 거래는 거리에서 수소문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내가 MRE를 원한다면, 어두워질때까지 기다려서, 소총, 권총, 나이프, 검은 색 재킷과 신발과 충분히 많은 량의 탄약을 챙겨서, 하지만 달리는데 몸을 무겁게 만들지 않을 정도로만 해서, 내 형도 같은 형태로 하고, 우리 거리에서 첫번째 바리케이드(자동차 폐허)로 간다. 거기에는 우리 동네의 두 남자가 항상 있을법한 문제를 감시하고 있는데, 나는 그들에게 근처에 MRE 거래할만한 것이 있다는 소식 들어봤냐고 물어본다. 가끔은 있다고 하고, 가끔은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겠다고 판단하면, 나는 거래에 나선다. 다른 동네에 가서, 그 동네에서 감시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과, 혹은 그들 동네 사람 중 MRE를 가진 사람과 거래한다.

어떤 사람들은 거래하기에 "믿을만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동네의 어떤 지역은 더 위험하고, 어디는 그렇지 않다. 정해진 것은 없다. 종종 거래의 환율이 짧은 시간 내 급격히 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가 MRE를 이번 주에 두 번 떨어트렸다면 식량은 더 싸지는 식이다. 

모든 것이 항상 위험이 있었다. 어떤 거래자가 다른 거래자를 죽이려 들지, 거래를 할지는 알 수 없다. 처음 몇분간 두 사람(거래자)는 30~40미터 너머의 바위 뒤에 숨어서 대화를 하다가, 상호에 대한 믿음을 가진 후에야 거래에 나선다.

우리는 거래에 쓸 것은 몇가지 정도만을 갖고 나갔다. 많이 가진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기를 숨기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목표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무장하고 있되 가난해보이는 사람이어야 했다. 만약 다수로 이루어진 집단을 본다면, 우리는 숨었다.


Q:치아나 구강 건강 문제는 어떠했는가?

A:물론 다른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앞서 말했듯이 석기 시대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고, 치과 의사가 없다는 것은 큰 어려움을 뜻한다. 몇 블럭 떨어진 곳에 사는 어느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플라이어로 이빨을 뽑아주었고, 입을 라키아(독주)로 헹구고, 근처에서 구한 허브로 처방한 다음, 물론 이후 즉시 항생제를 섭취해야 했다. 이에 대한 댓가는 담배 몇개 정도였다. 참고로 그는 수의사였다. 감염이 흔했음을 알아두라.


Q:우발적 화재는 흔했는가? 

A:내가 기억하는 한, 우발적 화재는 드물었으나 방화는 흔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목재 가옥을 짓지 않으며, 거의 항상 벽돌집을 짓는다. 나 역시 항상 버려진 건물에서 나무로 된 마룻바닥을 벗겨내는 일을 했는데, 그 목재는 너무 빨리 타버려서 굉장히 고된 일거리였다.


Q:가족 중 여자들은 총을 사용할 줄 아는지, 남자만 총을 다루었는지? 안전을 위해 야간 경비 등 여러가지 일을 해왔다고 당신이 언급했다. 그렇다면 당신네 가족은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낮 동안 뭔가 즐길 거리를 하지는 않았는가?

A:대부분 남자가 총을 사용하지만, 그건 대가족인 우리 가족의 경우이다. 다른 집과 다른 상황에서라면 얘기가 좀 다를 수 있다. 정해진 규칙은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식량이 충분하다면 우리는 평상시 낮에 집에서 하는 그런 일들을 하려 애썼다. 다만 그 시기엔 밤과 낮이 서로 바뀐 점이 다르다.


Q:총에 대해 자세히 알려달라.

A:무기는 상당히 단순한 편이었는데, 7.62mm와 7.65mm 빨간 깃발 권총(러시아제 권총의 복제품), AK-47(세르비아 버전, 당시는 괜찮은 총이었음)에 PAP 라이플(세르비아의 반자동 라이플, 고정식 총검에 나팔-또는 총류탄 옵션 선택 가능한 좋은 총) 그리고 무수한 사제총과 무기들. 예를 들면 수류탄 투척기가 있는데, 우리는 그걸 "취한 남자"라고 불렀는데 손으로 던지는 수류탄을 쏠 수 있는 큼직한 새총이었다. (안다, 아주 웃기게 들리겠지.) 물론 칼, 도끼 등도 많았고, 우리 동네의 어느 남자는 창도 한 자루 갖고 있었는데 그가 그걸 사용했는지는 모르겠다.


Q:알콜이 좋은 거래물품이었다고 하는데. 알콜 중독자가 뺏으려 덤벼드는 등 오히려 적을 불러들이는 위험성이 있어 안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에 관한 경험이 있는가? 문제가 된 적은?

A:알콜 문제. 둘 다 맞는 말이다. 어려운 시기 사람들은 평소보다 훨씬 알콜을 원하므로, 일종의 도박성이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거래에 아주 좋은 물건임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는 알콜 거래에 있어 다른 물건의 거래보다 딱히 위험했던 적은 없다.

그리고 나도 꼭 알콜만 원하지는 않고, 창고에 뭔가 부피를 덜 차지하지만 흥미로운 거래 물품, 예컨데 배터리나 항생제 등등을  채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당시 내가 공짜로 구했던 것이 알콜일 뿐, 나는 그걸 돈 주고 산 것도 아니다. 고로 알콜을 비축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하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여기 발칸 지역 사람들은 대주가이다. 나는 가끔씩 마시는 정도에다 보통 맥주만 마신다.

재난 상황을 대비해 알콜을 비축하는 문제는, 다시 말하지만 공간과 돈의 문제이다. 그리고 절망적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술을 더욱 마신다. 한가지 더, 재난 상황 속이라도 중독자는 계속 중독자고, 술꾼은 계속 술꾼이며, 흡연자는 계속 흡연하고 약쟁이는 약을 했다. 그들 중 일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쉽게 얻는 길을 발견할 뿐이다.

아, 담배에 관해 말하는걸 잊은것 같다. 가능한 한 비축해둬라. 당신이 우리네처럼 가난하다면, 가장 싼 것을 모아둬라. 예를 들어 나는 애연가이고, 그 시기에도 담배를 피웠으며, 상당히 저질 담배를 피워야 했지만, 그래도 나는 좋은 물건들을 그 저질 담배와 맞바꾸었다. 미친소리같지만 사실이다.

어떤 때는 담배가 제 2의 화폐처럼 쓰이기도 했다. 뭔가 값어치 나갈만한 것을 취급하고 싶다면, 우리 경우엔 총, 담배, 종종 외국돈이 된다. 당신이 담배를 피우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담배를 많이 비축해두어라. 특히 싼 것으로, 누구도 종류 갖고 불평할 시기는 못된다.

약물이나 알콜에 대한 당신의 관점에 동의한다. 나도 알콜과 약물이 사람들과 가족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잘 안다. 그리고 나 또한 한 가정의 아버지인 만큼 충분히 신경쓰고 있다. 장래에 있을지 모를 재난에 대해 한가지만 충고하자면, 당신이 예전에 믿고 있던 그 어떤 것도 확신하지 마라.

그 상황 속에서 종종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그런 결단을 거쳐왔으며, 좋고 나쁜 것이 서로 혼재돼있음을 납득해왔다.

물론 확실히 말해두지만, 나는 다른 사람을 강도질 한 적도, 식량 등을 뺏으려 살인한 적도 없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기도 하다. 나는 항상 그런 것을 찾으려 애써왔고, 항상 사람들이 나를 공격했던 대부분의 이유는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다고 생각해서였으며, 그들은 내가 뭘 갖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 못했다.

 


Q:많은 사람들이 탄약을 거래용으로 비축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표한다. 거래한 탄약으로 당신을 공격하지 않겠느냐는 것. 이런 문제의 경험은 없는가? 당신은 탄약 거래를 위해 비축하는걸 추천하겠는가?

A:탄약 거래에 관해, 당신이 탄약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때때로 난 탄약을 식량으로 거래했으며, 몇 주 동안엔 반대로 식량을 탄약으로 거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절대, 절대 내 집에서 거래하지 않았고, 절대 대량을 거래하지 않았으며, 내 집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핵심은 당신이 비축 가능하다면(돈과 공간의 한계 내에서) 뭐든지 최대한 해두라는 것이다. 나중에 사태 속에서 당신은 가장 흔한 것이 뭔지 알게 될 테니까. 탄약과 총을 비축하는건 내게 있어 항상 첫번째 우선순위지만, 두번째 거래 우선순위가 뭐가 될지, 예컨데 가스마스크와 필터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Q:당신의 방어 전략에 대해 듣고 싶다. 바위, 모래주머니 등을 쌓아올려 방어를 구축한다고 언급했는데. 다른 사람이 다른 축성 수단을 사용했는지에 대해,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어떤 것을 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도.

A:우리 방어는 매우 원시적이었는데,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고, 그저 가능한 것이라면 뭐든지 했을 뿐이다. 유리창은 깨지고, 지붕은 포탄에 거의 날아가고, 모든 창문은 모래주머니와 바위 등의 뭔가로 틀어막혀 있다. 매일밤 나는 우리 안마당으로의 입구를 거리에서 줏어온 잡석을 쌓아 막았으며, 낡은 알루미늄 사다리로 벽 위로 기어올라가야 했고, 돌아올 때는 집 안의 누군가를 불러 사다리를 내려달라 해야 들어올 수 있었다.

우리 동네의 누구는 그의 집이 사방이 완전히 엄폐되는 위치에 있다. 만약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그는 밤중에 어느 방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이웃집으로 가서, 거기서 비로소 (폐허가 되고 파괴된) 집을 나가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비밀 입구를 가지는 셈이다.

좀 이상해보이겠지만, 경비가 좋았던 집이 가장 먼저 박살났다. 물론 우리 이웃 중엔 담벼락, 개, 경보기, 창문틀의 쇠창살 등등을 가진 멋진 집에 살던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강도 떼거지들이 그 집을 제일 먼저 쳐들어갔다. 일부는 막아냈지만 일부는 그러지 못했는데, 총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그리고 집 안에 얼마나 비축했느냐에 결정된다.

고로 내 생각에 경비 체계는 좋은 점이지만, 저시인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경보기 따윈 잊어버려라. 도심에 살고 있고 재난 상황에 처하면 그냥 단순하고 특별해보이지 않는 안전한 집에, 많은 총과 탄약이 필요할 뿐이다. 쉽게 말해, 저시인성을 유지하고, 흥미를 끌지 마라.

지금 내 아파트 문에 안전을 이유로 철문이 달려 있으나, 이는 혼란 시기의 극초기 짧은 시간만 도움될 뿐이며, 그때만 버티면 나는 곧장 우리 동네의 무장한 사람들(친구와 친척)으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갈 것이다.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초기 혼란기를 지나면 문과 담을 모두 부숴버려라 


Q:이주 현상은 일어났는지? 지방에서 도시로 오는 사람을 봤거나, 혹은 도시를 버리고 지방으로 떠나는 일이 있었는가? 그런 현상이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지는 않았는지, 예컨데 어떤 때는 사람들이 한 장소로 움직이다가 나중에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든가?

A:내 경우에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상황이 아주 급박하게 벌어졌으며 다른 측 군대가 도시를 포위했기 때문이다. 군대가 오는걸 왜 보지 못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그 군대가 바로 우리편이었으며, 하룻밤 지나고 보니 걔들이 갑자기 적으로 변해서 사방을 포위한 것이다. 정치적 문제, 뭐 내전이니까.

하지만 듣기로 우리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는, 그리고 반대측 편의 시골 지역에 살던 내 친구는 듣기로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시골에는 밭도 있고, 옥수수, 밀, 과실수, 농장 등등으로 충분한 식량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나쁜 시기였지만, 도시보다는 훨씬 나았다더라.

도시를 빠져나가는 탈출구가 있었다면, 분명 우리는 사용했을 것이다. 단지 우리에게 그런 게 없었을 뿐이다.


Q:은행 계좌에 있던 사람들의 돈은 어떻게 되었는가?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돈을 되찾을 수 있었는가? 은행이 닫기 전에 출금할 기회는 있었는지? 집을 버리고 피난했다 되돌아온 사람이, 그들의 집을 되찾을 수는 있었는가? 만약 집주인이 죽고 전쟁통에 집을 차지하고 앉은 집단이 있는데, 전쟁 후에 계속 눌러앉아서 소유를 주장했는가 아니면 자기네 집으로 되돌아갔는지? 집세나 차량 등을 위해 은행 대출금이 있는 사람은 전후에 어떻게 됐는가? 신용 카드는 어땠는지?


A:은행, 대출, 신용카드 등등에 대해. 모든 화폐 경제는 약 1년 만에 완전히 붕괴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건 여러가지 면에서 좀 답하기 어려운 난제다. 가능하다면 장래에 쓸 포스트에서 아주 기나긴 설명을 해보려 노력하겠다. 현재 20년이 지난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유럽 사법 재판소에 은행을 고소하고 있는데, 은행에 저축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기 아주 여러가지 일이 일어났는데, 화폐를 바꾼다든지, 다시 말해 화폐의 이름을 두세번 변경했고, 초인플레이션도 일어났고, 저축, 대출에 대한 서류도 많이 잃어먹고 등등... 그 상황 속에서도 부자가 된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금도 여전히 부유하다. 나중에 따로 얘기해보겠다.

상황 후 사람들의 물건을 되찾아주는건 굉장히 어려웠다. 예를 들어, 내 아버지는 근사한 아파트를 한 채 갖고 있었으나 전쟁 때문에 거기를 떠나야 했으며, 전쟁 후 법원에 4년이나 불려다니면서 아파트 소유를 입증해야 했는데, 정권이 바뀐 데다가 소유를 입증할 서류도 부족해서였다. (도망칠 때 해당 서류를 챙기지 못했다. 당시 그는 챙겨야할 더 중요한 것들이 있었기에.) 반면에 재난 중에 사람들은 그냥 빈 집에 막 들어갔고, 그걸로 땡이었다.



Q:차량을 가진 사람은 움직이는 차량이 있는 것 때문에 목표가 되지는 않았는가?

A:당시에는 굴러다닐 수 있는 차량이 없었다. 움직이는 것은 탱크 한대가 최전방에 있었고, 한대에 문짝과 천장을 떼고 기관총(낡은 M53)이 있긴 했는데 거의 항상 폐허가 된 집 뒤에 숨어만 있었으며 사격 후에만 이동했다.

내가 이것을 "민간의 탈것"으로 부르는 까닭은 그 외엔 움직이는 차량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며, 거리는 사실상 돌무더기에 깔려있고 불안정했으며 연료는 너무도 비쌌다.


Q:큰 철문으로 막는다거나 쌔끈한 새 물건으로 주의를 끌지 말고 소지품을 더러워보이게 하라고 충고했었다. 그런 관점에서, 사람들에게 섞여 보이기 위해 근사한 "군사 장비"를 차려입는 대신 가난해보이게 입는게 생존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A:주의를 끌지 않는 것은 크게 중요하다. 의복 문제는, 진짜 군대 같은게 아니라 일종의 동네 자경단이었으므로 대개 사제 의류에 군복 일부를 섞어입고, 무기는 제각각인게 보통이다. 고로 딱히 정해진 규칙은 없다.

앞서 말했듯 잘 조직된 군대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군인과 비슷해 보이고, 비슷하게 행동해야 하긴 했으며, 우리 대부분 무기를 소유하고 적군과 강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 애썼다. 도시 안에서는 근사해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다른 누군가 당신을 쏘고 그 근사한 것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값비싼 총기도 좋지 않은데 흔치 않은 구경의 탄약은 구하기도 힘들고 또한 주의를 끌기 쉬워서다.

나라면 이렇게 행동하겠다. 만약 내일 재난이 일어난다면, 바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차려입고, 겁먹고, 자포자기하고, 혼란에 빠졌으며, 가끔 비명도 지르고, 특별한 물건 따윈 가지지 못한 사람처럼 보이련다. 쌔끈한 전투복을 잘 차려입고 나간다는 것은 "강도 양반 날 좀 보소! 날 죽이고 뺏아가시오!"라고 외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나는 저시인성을 유지한 채로 중무장하고 잘 준비한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며, 모든 장비를 걸치고 나가야 할지라도 밤에만 나갈 테고 절친이나 형제하고 항상 동행할 것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 경험상 이게 통했다. 조심하고 잘 준비하지만, 집 밖의 그 누구도 이를 알거나 보지 못하게 하라.

집을 아무리 잘 방비해도, 아무리 무기를 잘 준비해도, 사람들이 봤다면 재난 상황의 도시 안에서는 강도 당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저 시간과 총의 숫자가 문제일 뿐이다. 강도들이 관심을 가질 이유를 아예 주지 마라. 흥미를 끌지 마라. 이는 내 의견일 뿐이므로, 다른 상황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Q:재난 발생 후 주인이 없는 상점이나 주유소에서 물건을 훔쳐가는 약탈/도난이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가?

A:상점과 주유소는 엄청나게 빨리 털렸다. 총격전이 벌어지는 순간 모든 값어치있는 것은 동난다고 보면 된다. 일부 공권력이 이를 지키려고 하기도 했었지만 모든 것이 첫 주 정도에 무너져버렸다.


Q:며칠 전까지 정부가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는 소리를 했었는데.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루머가 돌아서 어떤 사람들이 물자를 비축했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을까? 그냥 모두들 멍하니 당했나?

A:좋은 질문이다. 물론 어떤 징조가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했거나, 보지 않으려 했다. 모든 사태가 발발하기 전에 일부 주요 인사들이 도시를 떠났고, 우리는 이를 목격했으며, 나도 봤지만, 그저 우리는 그런 일이 보통 사람에게 일어날 거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심리 기저에는 뭔가를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나는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는걸 봤지만, 그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뭐 어떻게든 해결하겠지"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런 일이 내게 또 일어난다면 이제 나는 좀 더 나은 대응을 하지 않을까. 가장 중요한 교훈은,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고 결국에는 일어나고야 만다는 팩트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물론 나는 주요 미디어 매체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됐으며, 온라인에서 그에 대해 조사 연구하여 거짓말에서 팩트를 분리해낸다.

내 나라의 현 상황을 보면 (그리고 주변의 국가들을 보면) 현재 범죄율이 증가하고 있고, 실직자 수가 미친듯이 늘어나고, 자포자기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며, 식량과 연료의 가격은 끊임없이 오르고 있다. 정치가들은 유래없이 타락하고, 마약, 조폭이 활개친다.

고로 내가 지금 "누군가 해결해 줄거야"라고 말한다면 그건 내가 바보라는 뜻이다. 내가 보기엔 모든 현상이 결국에 폭발해서 어떤 종류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Q:당신네 동네에서 전에 말했던 저격수를 잡은 사람이나 경험이 있는가?

A:사람들은 대개 세르비아 군용 AK-47인 M70을 썼는데, 거리에서 쓰기엔 접철식 개머리판이 더 나았고, 반자동 PAP 소총이 그 다음으로 흔하다(사람 맞추는데도 좋고, 개머리판, 튼튼한 총열, 잘 맞고, 총검도 좋고). 또한 총류탄을 쏘려면 AK보다는 PAP가 훨씬 안전했다.

물론 M48 소총도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대부분 녹슨 상태였으며, 나는 사람한테 쏴본 경험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총으로 엄청난 사격을 해내는 것을 본 바는 있다. 그리고 맞다. 그 대상 중에 저격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저격에는 반자동 CZ(체코 소총)을 썼는데, 매우 훌륭하고 사용도 편하고 가볍고 22구경이라는 소구경이며 거리에서도 적당하다. 탄약을 구할수 없을 때는 물물거래로 구했다.

나는 무기 전문가는 아니고, 그저 당시엔 얻을 수 있는 걸 썼으며, 지금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총을 쓰고 있다.

한 가지 빼먹은 것. 많은 사람들이 M48 개머리판과 총열을 잘라서 쓰곤 했다. 뭐랄까 매드 맥스에 나오는 총처럼 생겼는데, 50-60미터 이내에서나 쓸만했지만, 거리에서 쓰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므로.


Q:전쟁 중의 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추가 질문을 하고 싶다.

1) 당신네 그룹은 다른 사람 평균보다 잘 먹는 편이었는지

1a) 당신의 부인이 그룹을 위해 자주 요리해야 했다고 들은 것 같다.

2) 그 식사와 관련되어, 건강 상태는 어땠는가

3) 원래 체력을 회복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가?


A:나와 내 가족은 당시에는 "중류층" 쯤에 해당했다. 우리는 그다지 굶주리지 않았으며, 식량과 관련된 운 나쁜 날도 있었지만 그리 흔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끝 없이 식량(그리고 다른 뭔가)를 찾아헤멨다. 약간의 감자, 쌀 조금, 텃밭의 채소, 통조림과 분말 달걀(이 정도면 럭셔리한 때). 장작이 되는 한 조리해 먹었고, 일~이주는 남채만 뜯어 먹기도 했다 (정확한 풀의 이름은 모른다. 소가 먹는 그런 종류였던것 같다.) 나이 든 사람들이 그걸 찾아냈는데, 나한테는 그냥 잡초 같아 보였으며, 아무 맛도 안났다.

우리 가족 대부분은 같이 식사했으며, 모든 것을 나누었다. 우리는 한 가족이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건강은 안좋은 편이었다. 주요 이유는 추운 계절의 감기, 부실한 식량과 당연하게도 더러운 물 때문으로, 각각이 설사를 오래 앓은 경험이 있다.

그때 당시를 떠올릴때마다 내 기억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총이나 안전 문제가 아니라, 항상 춥고 냄새났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대략 65kg 정도 나갔다. 지금은 95kg이 나간다. 키는 185cm. 그 시기가 끝날 때까지 이를 15개 잃었다. 그 후에도 3년간 피부병을 앓았다. 정신적 문제는 괴로우니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건강하다.

어려운 길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이제 나는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결코 나쁜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당신이 그 상황에 처했을때 가족을 보호하고 먹여살리기 위해 무슨 짓까지 해야 할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저 모든 것을 준비하라.

이 문제를 너무 개인적으로 파고들지 말기 바란다. 당신의 주의주장이 정상적이고 고결한 것을 알고 있으며, 나 또한 공감한다. 전쟁에서 사상이란 의미없다. 선도 악도 없다. 그저 좋은 사람들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나쁜 일을 해야만 할 수도 있다는 점만 가슴에 담아둬라. 이것이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까? 글쎄, 어쩌면. 당시에 좋고 나쁨은 굉장히 혼재돼있었다. 말했듯이, 우리 모두는 선택해야만 했다.


Q:그 상황에서 부비 트랩이나 함정 류가 사용되었는가?

A:물론 사용되었다. 앞마당 문 위에 올려놓은 콘크리트 벽 조각 같은 "석기시대"적인 것들부터,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유리컵 안에 넣어두거나, 폭탄에 끈(인계철선)을 달아서 다리에 걸리면 발동하는 것, 낙엽이나 바위 밑에 숨겨놓은 작은 지뢰, 우리는 그것을 반죽 지뢰라고 불렀는데 그리 강하지 않지만 다리 한짝 날리는 건 일도 아니다. 뭔가 굉장히 정밀한 폭발물 같은 것은 없었다. 내 친구는 군 시절 지뢰매설반이었는데 MRUD(유고슬라비아제 지향성 지뢰) 2개를 마당에 심어놓았다. 나도 한번 봤는데 미국 크레모아 지뢰랑 비슷한 물건이다.

재밌게도, 그 친구는 요새 민간 지뢰 제거 업체에서 일한다. 어떤 사람들은 최전선에서 훔친 지뢰를 방어용으로 쓰기도 했다.


Q:당신네 가족이나 동네가 화재나 구출(건물 붕괴, 화재 대응) 업무를 공동으로 하기로 협약을 맺는다든지 한 적은 있는가? 당신의 의료 기술을 가족 외에 제공한 적이 있는가, 같은 동네를 넘어선 범위에는 경험이 있는가? 지금 충분한 의료품을 비축했다고 들었는데, 다른 이를 도우려는 의도를 품어본 적은 없는지? 나는 전직 소방관이고 응급 의료에 대한 자격도 갖고 있다. 미 육군 소방관과 민간 소방관 두 곳에서 서로 다른 방식의 소방 경험을 쌓다보니, 민간 수준에서 전투 지역에서의 장기간에 걸친 고위험 화재 대응 방식에 대해 관심이 깊다.

A:우리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계속 포탄이 쏟아지고 모두가 그런 상황. 내 집도 두번 유탄에 맞은 적 있다(박격포로 추정한다). 거의 모든 가옥이 좋든 나쁘든 피해를 입었다. 대부분의 상황은 구출이었는데, 사람들이 대부분 파괴되거나 피해 입은 집 안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일종의 연대가 결성되어 있었다.

우리 마을의 화재-구출 소방기관은 일반 마을과 동일했으며,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급속히 붕괴했다. 말대로 나는 종종 타인에게 의료 기술을 대주곤 했다. 특별한 것은 없고, 대부분 "구멍을 메꾸는" 것이거나 약간의 조언 정도였으므로 고로 특별한 점은 없다. 충분한 장비나 보급품 없이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소방관으로서의 경력은 아마도 당신이 재난에 처했을때 대단한 기반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가능한 한 그것을 발전시키는게 좋겠다. (물론 당신은 이미 했겠지만) 특별한 구출 임무라든지 (험지 구출 작전), 대량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경우에 대응하는 훈련이라든지 등등.

내 생각에 소방서는 진짜 재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도 단기간에 대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법이든, 구급체계든, 다른 어떤 어떤 수준의 공권력도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통과 운송 체계가 정지하면 (이유는 중요치 않다, 전쟁이든, 테러든, 자연재해든...) 모든 것이 붕괴하는데, 빠르거나 느리거나는 당신네 국가와 마을의 부와 조직력에 달려있을 뿐이다. 내가 본 바가 그러하다. 삶의 모든 면을 다 신경쓰려면 시골 지역에 있는 보통 사람, 가족, 혹은 작은 집단에 의지하는게 나을 것 같다.  


Q:화장실 휴지를 거래했다는 점에 대한 질문. 자신의 경우를 살펴보니 화장실 휴지가 얼마 안되는데, 그걸 준비하는건 어떤가? 화장실 휴지를 다른 것으로 바꿀 생각이라면, 그냥 그 물건을 준비하는게 낫지 않겠느냐는 질문

A:비축에 대한 당신의 관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재난이 들이닥쳤을때 당신은 휴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냥 그 공간에 왜 총알이나 식량이나 아니면 라이터라든지 좀 더 좋은걸 많이 비축하지 않았을까라며 스스로에게 굉장히 화가 날 것이다. 물론 당신이 충분한 공간이 있다면 대량의 휴지를 포함해서 뭐든지 비축해도 괜찮겠지만.

하지만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 결국에는 공간과 돈을 좀 더 중요한 것을 쓰지 않은 것을 아까워하게 된다. 휴지는 예를 들어 다른 뭔가로 바꾼다면... 안다, 비위생적으로 들린다는거 나도 잘 안다. 물론 더럽다. 나도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짓이다. 하지만 믿어보라, 휴지는 다른 뭔가로 대체할 수 있지만, 총알과 통조림은 대체할 방법이 없다.

고로 내 의견을 묻는다면 당신이 무한대의 공간과 거금을 갖고 있지 않는 한, 물건의 중요도를 따져보는게 좋다는 거다. 휴지는 좋지만, 가장 중요한 물건은 아니다. 총알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그때 진짜 나는 그냥 총알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많이 필요했다.

내 재난 경험 동안 총알 생각이 얼마나 많이 났는지 모르겠다. 씨발 총알만 더 있었더라면, 씨발놈의 총알, 총알만 제발 신이시여...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Q:두려움, 불안, 스트레스 등에 어떻게 맞섰는지에 대해. 스스로 그런 상황에 처하면 두렵고 제대로 행동하지 못할 것 같다며 조언을 구함

A:사람들은 제각기 다르게 반응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했고, 충격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드, 살인 모드, 또는 생존 모드로 단계를 나누기 시작했다. 뭐 호칭은 당신이 좋을 대로 해도 되고 (전쟁 참전 경험자라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내가 어렸을때, 죽음과 공포에 대해 몰랐을때, 나는 내가 아주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메탈리카나 슬레이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좋아하는 그룹이다.) 그러니 상황이 터졌을때 어찌될지는 글쎄.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당신은 사람을 빠르게, 별로 고뇌하지 않고 죽일 수 있는가? 맨손이나 나이프로? 다시 한번 물어보겠다. 정말 할 수 있나? 내 생각에, 당신이 그 죽이거나 혹은 죽는 상황에 처하지 않는 한 당신은 정답을 알 수 없다. 

장전된 총을 가지고 공격자를 겨누었는데도 나이프를 든 공격자에게 찔려 죽을 때까지 뻣뻣이 굳어있던 어떤 남자를 본 적이 있다. 추측컨데 그는 쏠 용기가 없거나, 그 상황 내내 마비돼있었던 것 같다. 현재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첫 주가 가장 힘든 때였고, 곧 당신은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며, 그러는 편이 당신에게 좋다.

사태가 터지자 비명을 지르며 혼돈에 빠진 사람도 봤다. 벽을 빤히 노려보며, 그냥 상황을 인식하려 하지 않더라. 같은 시기 다른 남자들은 버려진 경찰서에서 무기를 훔치고 있더군. 어느 쪽이 생존에 적합한지는 두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총을 잘 쏘는 것과 사람에게 쏘는 것은 다르다.

한 가지 더, 당신에게 중요하진 않겠지만 내게는 중요했던 점: 재난을 납득하기 힘들다면, 그 모든 것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도 똑같이 힘들다는 점을 알아두어라.


Q:사람들이 뭔가 실패한 것에 대해서 예를 들어주지 않겠는가? 당신이 본 실수는 어떤 것이 있나? 방어, 의료, 교역(교역의 방법과 물건) 등등 무엇이든

A:먼저 어줍잖은 자선이나 동정심을 경계해라.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사람들, 음식을 조금 나눠주는 그런 사람들은 결국 죽거나, 그나마 나은 경우 두들겨맞고 모든 것을 빼앗겼다. 사람에게 친절을 보여주면 모든 것을 빼앗긴다.

도움은 좋다, 나 또한 도와준 경험이 있다, 그러나 당신이 돕는 대상을 잘 알고 얼마나 도울 지도 알아두어라.

도시에서 재난 상황이 터지면, 당신네 집단을 아주 빨리, 사태의 극초기에 가능한 빨리 (가족, 절친, 잘 아는 관계의 인물로) 꾸려서 단단하게 폐쇄하고, 뭉치고, 엄격하게 조직화해라. (식량, 탄약, 위생...) 집단에는 당연히 지도자가 있어야 하며, 민주주의식은 절대 안되고 그룹에 신참자가 들어오게 된다면 집단은 매우 적대적으로 응하게 된다(그들이 진짜 대단한 능력이 있지 않는 한.) 집단의 크기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는 자원과 기술에 달려 있는데, 서로에게 끈끈한 연대(다시 말해 가족이나 절친)가 없는 느슨하고 커다란 집단은 보통 강도 집단으로 바뀌게 된다.

한가지 중요한 것 더. 재난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뒤집힌다. 최악의 인간이 중요 인물로 부각되고, 그런 자들이 자원이 풍부해지고, 암시장을 소유하며, 강대한 화력도 지니게 된다. 훌륭하게 잘 조직된 집단이 필요한 또다른 이유다. 살인자의 유전자가 계속 남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내가 상황이 발생했을때 우리 집에는 도끼가 없었다. (곧 찾아냈지만.) 자기네 아파트나 자택에 도끼를 놔두는 보통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소총 한 자루를 그 도끼를 위해 감사히 교환했으며, 간단한 공구가 든 작은 상자를 갖게 되었다. 사태 초기에는 난방을 위해 목재를 벗겨내는 것도 굉장히 고된 일이었다.

난 TV 3대에 VCR(비디오카세트 레코더), 전기 난로를 갖고 있었다... 그 VCR은 금속 부품을 벗겨내서 왁스를 녹여 양초로 만드는 작업대를 만드는데 사용됐다.

전기 난로는 벽에 로켓탄 때문에 난 구멍을 메꾸는데 처박았다. 요새 내가 튼튼한 나일론 타프를 많이 비축한 이유다. 


Q:누군가 쳐들어오거나, 훔치려드는 사람을 잡았을때 당신은 어떻게 했는가? 상대가 당신에게 심각한 해를 입히려 했다면 당신 또한 상응하는 무력으로 되돌려주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그들을 포로로 붙잡아 두기에는 자원이 부족하지 않은가. 혼돈과 무법 상황에서 어떤 '통용'되는 적당한 수준의 처벌이라는게 있었는가, 아니면 그룹마다 달랐는지?

A:역시 딱히 정해진 바는 없다. 우리가 도둑질하려드는 무모한 남자 하나를 잡았다면 대개 보내주곤 했다. 하지만 누군가 당신네 집을 공격해서 모든 것을 빼앗으려 든다면, 당신과 가족을 공격하려 한다면, 자비란 없다. 죽여라. 자비를 보여주거나 뭔가 약속을 받고 풀어주는 어설픈 대응을 한다면 다음번엔 더 많은 숫자를 데려오기 때문이다.


Q:가족 구성원 중 아이를 가진 사람은 없었는가? 임산부에서 아이를 받는 것까지?

A:태아 사망률은 평상시보다 월등히 높았던 것으로 안다. 아이들은 당연히 이 분야의 전문가인 할머니(산파)가 받았다.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에 아이를 받는 것과 유사한데, 물을 끓이고, 손이 피로 젖고 뭐 그런. 대개의 경우 의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