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부처가 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유신론자에게는 '없다'고 답변했으며 무신론자에게는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구도자에게는 침묵으로 답했다. 이를 지켜본 제자 아난다가 혼란스러워 미칠 지경이라며 그 이유를 물었다.
붓다는 이렇게 답한다.
유신론자는 신의 존재를 믿고 이미 주어진 대답을 가지고 왔으며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옳다. 붓다도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려 나의 협조를 청하러 왔을 뿐이다. 나는 그의 믿음을 깨트리기 위해서 신이 없다고 말해야만 했다. 믿음은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신론자 역시 ‘신은 없다’는 주어진 대답을 들고 왔고, 내가 그의 불신을 강화시켜주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신은 존재한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두 경우 모두 의도는 같았다. 유신론자에겐 선입견적인 믿음을 깨트려주었고, 무신론자에겐 선입견적인 불신도 깨뜨려주었다. 신앙은 긍정이고 불신은 부정적이지만 양쪽 다 같다. 둘 다 아는 자도 아니고, 둘 다 경험한 구도자도 아니다. 그들은 이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선입견이 없는 구도자는 ‘믿는 사람들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자신은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지 못합니다. 도와주십시오’ 라고 물었던 것이고 나는 침묵했다. 이에 구도자는 “선생님의 자비는 한량없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대답해 주셨습니다”라며 감사해 했다. 나는 그에게 말이 필요 없었다. 그는 분명히 지성적이고 열려 있는 민감한 사람이었다. 내가 침묵 속으로 들어가자 구도자는 나의 침묵과 현존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침묵 속으로 각성 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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