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1일 목요일

인간이 약자를 남기는 진화론적 이유



흔한 오해는 자연이 약육강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호랑이는 토끼보다 강하지만 멸종위기종이다. 약육강식이 아니라 적자생존이다. 이를 약육강식이라고 잘못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또 ‘생존’의 개념은 유전자 수준에서의 생존이다. 유전자는 개체와 다르며 개체의 행복과 무관하게 생존에 관련한 의사결정만 한다. 종의 수준에서 이점을 기억해야 한다.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관점의 차이다. 관점은 무한히 많을 수 있다. 나무늘보다 심해생물처럼 대사율을 극단적으로 떨어트리는 예에서 보듯이 꼭 활발할 필요는 없다. 공룡처럼 거대할 필요도 없다. 다산, 소산, 대식, 소식, 빠른 것, 느린 것, 날으는 것, 뛰는 것, 모든 형태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적응이다.


인간의 적응 기제는 ‘사회성’이다. 고도로 기능적 사회를 만들고 상호작용으로 개체와 군체를 보호한다. 이 경우 집단 내에 개별적으로는 장기생존이 불가능한 개체(소위 약자)가 있는데 이들도 보호하면서 자손의 번영 가능성을 최대화한다. 약제를 제거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또한 앞서 언급했던 적자생존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다.  


우수한 유전자라는 것은 없다. 자연에 우열은 없다. 인간의 인식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있다고 한다면 ‘특정환경’에서 ‘유효할지도 모르는 유전자’다. 이는 흉년에 대비해 곡식을 쌓아두는 보험과 유사하다. 곡식을 쌓아두면 당장 먹을 양이 줄고 흉년이 안 올수도 있으며 보관중 썩어서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 흉년이 오면 일족이 멸종한다. 마찬가지로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형질, 요컨데 쓸모없어 보이고 약자처럼 여겨지는 형질이라도 없애지 않고 보관해두는 것이다. 이것은 종의 보전과 번영에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키가 작거나 근육이 부족한 형질이 어디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라는 물음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것이야 말로 자연의 속성이며 무수한 가능성의 가지가 뻗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환경이 아무존의 정글이라면 현대은 모두 약자가 될 것이다. 발톱도 없고 이빨도 약하다. 그 약자들이 모여서 가능한 약자를 살리고 데려가는 것이 호모사피엔스의 생존전략이다. 그런면에서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잔인한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가치관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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