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3일 금요일

데이비드 하비: 피케티의 자본에 관한 뒷생각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꽤 소동을 일으킨 <21세기의 자본>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피케티는 그가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라고 부르는 것에 따른 세습적 자본주의 창출을 향한 추세에 대항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서 누진 과세와 세계적 차원의 부유세를 주장한다. 또한 그는 지난 200년 동안 부와 소득 둘 다의 사회적 불평등이 진전된 세부 상황을 반박하기 위해 증거 자료를 제시한다. 그는 자본주의가 부를 전세계로 확산시키고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거대한 보루라는 견해를 뒤집는다. 국가에 의한 재분배 개입이 없는 상황에서 자본주의는 반민주적 과두지배체제를 만들어낸다고 피케티는 보여준다. 이런 증명은 진보주의적 격분을 조장하였고 월스트리트 저널을 뇌졸중으로 몰아간다.

이 책은 흔히 19세기 마르크스에 대한 21세기 대체물이다. 피케티는 이를 부인한다. 그 책은 2008년의 경제 붕괴가 일어난 까닭과 매우 많은 사람들이 장기간의 실업과 수백 만 채의 주택 압류라는 이중 부담에서 빠져나오는 데 매우 긴 시간이 걸리고 있는 까닭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 책은 중국과는 대조적으로 현재 미국에서 성장이 매우 부진한 까닭과 유럽이 긴축의 정치와 침체의 경제에 갇혀 있는 까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케티가 통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역사 전체에 걸쳐서 자본은 불평등의 수준을 항상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게다가, 그것은 바로 마르크스의 <자본> 1권에서 제시된 이론적 결론이다.

피케티는 논증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종합하여 정리한다. 소득과 부 사이의 차이점들에 대한 그의 설명은 설득력 있고 유익하다. 그리고 그는 부와 권력의 집중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상속세, 누진세 그리고 세계적 차원의 부유세를 옹호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큰 불평등은 왜 일어나는가? 자료로부터 그는 무엇이 일어나는지 설명하는 수학적 법칙을 도출하는데, 자본 수익률(r)이 소득 증가률(g)보다 항상 더 크다는 단순할 사실이다. 이것이 자본의 핵심모순이며 항상 그랬다고 피케티는 말한다.

그런 모순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힘들은 무엇인가? 피케티는 답을 주지 않는다. 법칙은 법칙이고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 원인을 자본과 노동 사이의 권력 불균형에 귀속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설명은 상식에 맞다. 1970년대 이래로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몫의 지속적인 감소는 기술발달, 실업증가, 역외 조달 그리고 대처나 레이건 같은 반노동 정치꾼의 선동에서 비롯되었다. 대처의 경제 고문이었던 앨런 버드(Alan Budd)는 고백하기를, 1980년대의 반인플레이션 정책들은 실업을 증가시키는 매우 좋은 방법인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그리고 실업 증가는 노동자 계급의 힘을 약화시키는 대단히 바람직한 방법이었다. 1970년에 일반 노동자들과 최고경영자들 사이의 보수 격차는 약 30:1이었다. 현재는 300:1을 넘어서며 맥도날드의 경우에는 약 1200:1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자본> 2권에서 마르크스는 임금을 하락시키는 자본권력의 경향이 어떤 시점을 넘어서면 자본의 생산물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령 노동자의 소득 감소가 경제침체를 가져와 결국 자본가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헨리 포드는 말하기를, 소비자 수요를 부양하기 위해 자사 노동자들에게 하루 여덟 시간 5달러의 저임금을 부여했을 때 그는 이 딜레마를 인식했다. 많은 사람들이 유효 수요의 부족이 1930년대의 대공황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2차대전 이후의 케인즈주의적 확대 정책들을 고무했고, 그래서 강한 수요 주도의 성장 와중에서 소득 불등평이 얼마간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런 해결책은 노동의 상대적인 권력 강화와 누진 과세로 재정을 조달하는 '사회적 국가'의 건설에 기초를 두었다. 1932-1980년 기간 동안, 미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평균 81퍼센트였다. 그리고 이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성장을 침체시키지는 않았다.

1960년대 말에 과도한 노동 권력에 대해 대처해야한다고  자본가들은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적 국가를 해체하고 노동 세력들을 규율하기 위해 케인즈를 훌륭한 경제학자들의 만신전에서 추방했고,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공급 중시 사상으로 변환하였으며, 과세를 줄이지는 않더라도 안정화시키는 운동을 벌였다. 1980년 이후 미국에서 최고 세율은 낮아졌고 자본이득은 훨씬 더 낮은 세율로 과세되었는데, 이것은 상위 1%의 부자에게 흘러가는 부를 엄청나게 늘렸다. 그러나 막상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는 점을 피케티는 보여준다. 그래서 부유층에서 나머지 계층들로의 적하효과(trickle down)는 작동하지 않는다.

1990년대는 주택담보 융자를 서브프라임 시장으로 확대하는 것을 비롯한 방대한 신용 팽창으로 그 문제를 넘어갔다. 그런데 그 결과 발생한 자산 거품은 터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2008년에 리만 브라더스와 신용 체계를 붕괴시켰다. 그렇지만 수익률과 사유 재산의 추가 집중은 2009년 이후에 매우 빠르게 회복된 반면, 다른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은 나빠졌다. 현재 미국에서 기업들의 수익률은 항상 그랬듯이 높다. 시장 조건이 튼튼하지 않기 때문에 산더미같이 많은 현금 위에 앉아 있는 기업들은 M&A이외의 투자를 거부한다.

피케티는 문제의 원인을 밝히지 않고 경험칙에 따른 수학적 법칙만을 강조함으로써 근저에 놓인 계급 정치에 대한 것을 은폐한다. 워렌 버핏)이 언급했듯이, '확실히 계급 전쟁이 존재하며, 그것을 벌이고 있는 것은 내 계급(부자)들이고 우리는 이기고 있다.' 그들의 승리의 한 가지 핵심 척도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한 최상위 1%의 부와 소득의 격차 증대이다.

피케티의 논증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중요한 난점이 있다. 그것은 자본에 대한 잘못된 정의다. 자본은 과정이지 사물이 아니다. 자본은 노동력의 착취를 통해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이 사용되는 순환 과정이다. 피케티는 자본을 자산이 사용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사적 개인, 법인 그리고 정부들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산의 저량(stock)으로 정의한다. 이것에는 토지, 부동산 그리고 지적 재산권뿐 아니라 예술 및 보석 수집품도 포함된다. 이 모든 것들의 가치를 측정하고 그 성장률을 구하는 것은 아직 답이 없는 어려운 기술적 문제다. 유의미한 수익률(r)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애초 자본의 가치를 평가하는 어떤 방식이 있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방법은 없다. 자본은 그것의 생산에 투입된 것(저량)이 아니라 그것이 생산하는 것(부가가치)에 의해 가치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본의 수익률은 성장률에 의존한다. 그 가치는 투기에 영향을 받고, 그래서 그린스펀이 지적한바 있는 '비이성적인 버블(irrational exuberance)'로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다. 자본의 정의에서 주택과 부동산을 제외하면, 과거와 현재의 불평등 상태에 대한 서술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지만 부와 소득의 격차 증가에 대한 피케티의 설명은 그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생산에 사용되지 않는 돈, 토지, 부동산, 공장, 설비를 피케티는 자본의 저량(stock)으로 채용했지만 실제 이들은 자본이 아니다. 사용되고 있는 자본의 수익률이 높다면, 이것은 자본의 일부가 순환에서 벗어나서 사실상 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즉, 사용되고 있는 자본이 작으면 작을 수록 그 자본의 수익률은 높아진다. 새로운 투자에 대한 자본 공급을 금지하는 것이 순환하고 있는 자본의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 일종의 독점처럼. 그런 인위적인 희소성의 창출은 석유 회사들이 높은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행하는 것일 뿐 아니라, 기회가 주어지면 모든 자본이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의 수익률이 항상 소득의 성장률을 넘어서는 경향의 기반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한 결과가 나머지 사람들에게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그것이 자본이 자체 재생산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피케티의 자료 집합에는 가치 있는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불평등과 과두지배 경향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그의 설명은 심각한 결함이 있다. 불평등의 처방책에 대한 그의 제안은 유토피아적이지는 않지만 소박하다. 그리고 확실히 그는 21세기의 자본에 대한 작동 모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 데이비드 하비 - ㅍㅍㅅㅅ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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