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5일 목요일

슈뢰딩거 고양이 사고실험 오류와 상호작용

사고 실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외부에서 절대 확인할 수 없는 상자 - 추후 기술하지만 이것이 오류의 핵심이다 - 안에 고양이와 청산가리가 담긴 병이 들어있다. 청산가리가 담긴 병 위에는 망치가 있고 망치는 가이거 계수기와 연결되어있다. 방사선이 감지되면 망치가 내리쳐져 청산가리 병이 깨지는 구조고 결국 그 병이 깨지면 고양이는 중독되어 죽고 만다. 가이거 계수기 위에는 1시간에 50%의 확률로 핵붕괴해 알파선을 방사하는 우라늄 입자가 놓여있다.

이럴 경우 1시간이 지났을 때 고양이는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가? 실험자는 외부에 있기 때문에 관찰이나 간섭을 절대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대답을 해야 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1시간 후에 절반의 확률로 상자 안의 고양이가 죽는다. 정확히는 절반의 확률은 방사선이 뿜어질 확률이므로 수정하면 '절반의 확률로 병이 깨지고 병이 깨지면 고양이가 확실히 죽는다.'가 더 정확하다. 하지만 야옹이가 우라늄을 먹는다면 어떨까? 역시 죽는다. 당신은 그 상황을 전혀 볼 수 없다. 1시간 후 상자 속의 고양이는 어떻게 되어있을까?"라는 것이다.

물론 상식적인 답은 죽었거나 살아있거나 둘 중 하나가 나와야 하지만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내리는 답변은 그런 '이거 아니면 저거'같은 답변이 아니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다.

코펜하겐 해석은 죽음과 살아있음이 중첩된 상태, 즉, '죽음 or 삶'이 아니라 '죽음 and 삶'의 상태에 놓여 있다가, 관측에 의해 죽음과 살아있음이 확정된다는 답을 내놓는다.

슈뢰딩거는 특히 코펜하겐 해석에 있어서 무엇보다 과학적 사실이 관측과 무관한 결정론적인 것이 아닌 관측에 의해 확률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아인슈타인도 학을 뗀 양자역학의 이 기묘한 성질은 '달을 관측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달이 존재하지 않는 거냐?', '당신은 저 달이...당신이 보고있을 때에만 존재한다면 믿을 수 있겠소?'라는 비유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점을 까기 위해 이러한 사고실험을 내놓게 된 것.

물론 이런 반론은 양자역학 내부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 이를 대표하는 것이 양자역학의 준입자(Quasi-particle)이다. 자동차가 사막을 고속으로 달릴 때, 자동차 뒷편으로 흙무리가 발생할 것이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물리계 전체의 운동현상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자체의 상태도 알아야 하지만, 뒤에 따라 붙는 무수한 흙무리 속 흙입자들의 정보 또한 알아야 한다. 하지만 해당 계산은 무수히 많은 계산을 하는 어려움을 동반하므로, 물리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흙무리 덩어리를 싸 잡아 엄청나게 무거우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흙입자 한개로 보자.' 이렇게 근본적인 물질 성질은 입자가 아닌데도 입자로 볼때 해당 입자를 준입자라 부른다. 다른말로 하자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해당 물리량의 정보가 측정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입자가 아닌 다른 형태들로 나타날 것이며, 준입자들로 표현된 정보들을 끌어모으면 관측하지 않은 실존하는 입자의 정보를 직접 보지 않고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철학적으로도 상당한 쟁점이 되는 주제이다. 양자역학 자체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도대체 '양자적 중첩' 같은 것이 뭐냐?"라는 철학적/물리학적 문제는 꾸준하게 제기되었다.

이상의 내용은 '관측'이라는 용어의 애매함 때문에 오해가 많았는데, 아래의 내용들을 더 읽어보도록 하자.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삶과 죽음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언어로 완벽하게 표현을 할 수도 없고, 일반적인 상식 안에서 이해되지도 않는다. 간단한 실험을 통한 예시로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해보도록 하자.

우선 이중슬릿 실험에서 전자빔발사기에서 전자다발들이 전자를 한 번에 하나씩 발사해 보도록 하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감광판엔 간섭 무늬가 남는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전자다발들 혹은 연속적인 전자들의 흐름만이 파동이 아니라, 애초에 각각의 전자 하나 하나가 그 자체로 (입자이면서 동시에)파동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는가? 감광판에 간섭 무늬가 남기 위해선 A슬릿을 통과한 파동과 B슬릿을 통과한 파동(여기선 전자)이 서로 간섭을 일으켜야 하고, 서로 간섭을 일으키기 위해선 최소한 한 번에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전자가 발사되어 각각의 슬릿을 최소한 하나 씩의 전자가 동시에 통과해야 한다. 한 번에 하나씩 발사해서는 결코 이 전자는 감광판에 간섭 무늬를 남겨서는 안 된다. 하나의 전자가 두 개로 쪼개져서 각각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한 것일까? 물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전자는 기본입자로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 그럼 기기의 오작동으로 한번에 두 개 이상의 전자가 발생된 것일까? 아니다. 실험은 완벽하게 제어되어 있었다.

위의 의문을 정리해 보자. 감광판에 간섭 무늬가 남기 위해선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전자가 A와 B 각각의 슬릿을 따로 그리고 동시에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전자는 분명 한번에 하나씩만 발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광판엔 선명하게 간섭 무늬가 남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전자가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모두 통과했다! 사실 이 표현은 어폐가 있다. 이는 이 단락이 전체적으로 양자역학의 전반적인 설명 보다는 "삶과 죽음의 중첩"이라는 말이 가진 정확한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할애된 것으로, 이를 위해 코펜하겐 해석의 핵심적인 부분인 상보성의 원리에 대한 설명이 의도적으로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첩"의 물리적인 의미를 이해하는데는 훨씬 편할 것이다. 코펜하겐 해석 자체부터 이미 1920년대에 나온 것으로 과학 기술과 지식의 발달에 힘입어 양자역학적 해석도 점점 발전해 오고 있으며, 현대적인 해석 중 하나로 파인만의 역사총합(sum of histories) 또는 경로적분(Path integral formulation) 설명이 좀 더 엄밀하다. (즉, 경로 적분은 이를테면 코펜하겐 해석의 신버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표현도 상보성의 원리와 배치되는 표현임에 주의하자. 참고적으로 이중 슬릿 실험 자체는 상보성의 원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전자의 경로를 직접 보지 못하고 간섭 무늬를 통해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상보성 때문이다.

하나의 전자가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했다는 것은 물론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한다는 뜻을 포함하며, 결론적으로 하나의 전자는 확률적으로 위치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파동함수를 따르는 한) 있을 수 있는 모든 상태로 동시에 존재하며,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더 나아가서 양자역학은 확률론과 인식론과는 하등 관련이 없으며, 대중매체 속에 등장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거의 100% 잘못 인용되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즉, 일반적인 확률의 개념과 양자역학에서의 확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2.2. 현실세계로 나올 수 없는 상상 속의 고양이

고양이가 삶과 죽음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 사실이라고 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에 대한 정답은 이미 밝혀놓았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은 실제로 재현할 수 없다. 즉, 현실 속의 고양이는 삶과 죽음이 확정된 상태에 있으며, 우리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직접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즉,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고전적 확률을 따르게 된다. 그 전에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깨지는 소리를 듣는 것도 관측이다. 관측을 하지 않으려면 완벽하게 방음이 되는 상자에서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 전자의 뒷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건 잠시 멈추고, 처음으로 돌아가 슈뢰딩거가 고양이를 이용한 사고 실험을 제안하게 된 이유를 다시 돌이켜보자.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시세계에서도 똑같이 일어나야 한다. 내가 만든 방정식이 확률을 뜻한다는 당신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거시세계에서도 똑같은 현상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슈뢰딩거의 방정식을 따르는 한) 상자속의 고양이는 삶과 죽음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해야 하는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거시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미시세계에서도 일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만든 방정식이 확률을 뜻한다는 당신들의 주장은 틀렸다."

바로 이 얘기를 하기 위해 고양이를 이용한 사고 실험을 제안한 것이다. 슈뢰딩거의 주장에 논리상 허점은 최소한 그가 주장하던 당시에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하나의 전자가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하는 것을 목격했다. 미시 세계에선 이런 해괴한 일이 분명히 벌어지고 있다. 비단 실험실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주위 곳곳에서 지금 당장도 셀 수도 없을 만큼 일어나고 있다.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태양은 빛을 발하지 않으며, 그 어떤 생명체도 지구에서 존재할 수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세상 만물이 붕괴해버리고 만다. 이론상 가능하다거나 수학적으로 계산된다는 문제가 아니라, 실존할 뿐만 아니라 세상 만물을 지탱하는 강력한 원천임을 잊지 말도록 하자.

그렇다면 거시세계에서도 한마리의 고양이가 두개의 슬릿을(물론 이 슬릿은 고양이가 통과하기에 충분히 커야 할 것이다) 동시에 통과하는 일이 벌어져야 마땅할텐데, 왜 우리는 그런 장면을 결코 목격할 수 없는가? 전술한 바와 같이 상보성 원리에 의해 전자가 됐든 고양이가 됐든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간섭무늬를 통해서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고양이는 결코 간섭무늬를 남기지 않는다. 물론 불쌍한 고양이를 괴롭히는 대신(...) 적당한 물체를 사용해서 여러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이제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의 경계를 들여다 보도록 하자. 다행히 이에 적당한 녀석이 존재한다. 풀러렌을 이용한 이중 슬릿 실험 결과를 살펴보자. 플러렌의 크기는 앞에서 실험한 전자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 원자핵과 전자의 크기 비가 100,000 : 1이고 탄소 원자들이 60개가 모여 입체적인 구 형태를 만든 풀러렌(C60)은 수소 원자보다 5만배는 더 크다. 미시적 세계에 속한다기에는 앞에 실험에 비해서는 무지막지하게 크고 거시적 세계에 속한다기에는 무지막지하게 작은 풀러렌으로 이중 슬릿 실험을 할 경우 간섭 무늬가 아닌 단지 2개의 띠를 만든다.

하지만 실험 환경을 진공에 가깝게 조성할수록 간섭무늬가 생긴다!! 공기는 기체이기에 분자 자체가 많지도 않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자의 크기가 분자의 크기에 비해 너무 작기 때문에 전자를 이용한 이중 슬릿 실험에서는 진공이 아니더라도 간섭 무늬를 만든다. 진공의 여부가 실험에 어떤 영향을 끼친걸까?

이번엔 풀러렌이 아닌 전자 실험으로 다시 넘어가 이번에는 A슬릿과 B슬릿에 관측 장비를 달아서 전자가 어떤 슬릿을 통과하는지 확인해보도록 하자. 정말 전자는 A슬릿과 B슬릿을 동시에 통과하는 걸까? 하지만 놀랍게도 이번 실험에서는 전자는 A슬릿과 B슬릿 중 하나만 통과하며 간섭 무늬가 아닌 이중 띠를 만든다.

공기 중에서의 풀러렌 실험과 관측 장비를 단 전자 실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공기 중에서의 풀러렌 실험에서는 공기와 풀러렌이 서로 상호작용을 했고 관측 장비를 단 전자 실험에서는 관측 장비의 광자와 전자가 서로 상호작용을 했다. 즉 풀러렌 분자와 전자와 같은 입자들은 다른 입자들과 상호작용을 하기 전까지는 여러 개의 중첩된 상태를 가지고 있다가, 다른 입자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순간 결어긋남 상태가 되어 더 이상 간섭을 일으킬 수 없으며, 파동성을 잃는 것과 같은 결과에 이른다.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파동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예컨대 최초의 실험에서 나온 손전등 불빛은 제대로 간섭무늬를 남기기 힘들지만(이에 대해선 각주 9에 간략히 암시돼 있다. 단, 간섭무늬를 아예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엄연한 파동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의 파동은 결국 간섭으로 귀결되므로, 간섭성을 잃는 것은 곧 파동성을 잃는 것과 같다.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자면 전자발사기에서 발사된 전자와 투수가 던진 야구공 모두 파동함수를 따르지만, 투수가 던진 야구공은 파동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풀러렌은 그 자체로 여러 개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1번이 2번을, 2번이 3번을... 이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관측(서로간의 상호작용을)하지 않나? 어째서 진공 속의 풀러렌을 서로가 서로를 관측하는데도 불구하고 진공 속에서 여러 개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을까? 그건 풀러렌은 서로가 서로를 관측하지만 그 정보를 자기네들끼리만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풀러렌 그 자체는 닫힌 계(고립계)로써 외부와는 상호 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진공 상태에서 풀러렌이 중첩된 상태를 갖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위의 풀러렌의 처지와 똑같다. 상자 안의 물체들이 각각 닫힌 계라면 외부 계는 그들의 상태를 관측할 수 없고 그들은 파동성을 잃지 않고 동시에 여러 상태를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자 안의 물체들이 각각 닫힌 계인가? 상자 안은 진공도 아니며 적외선과 같은 광자를 방출하고 있을 것이다. 즉 이중 슬릿 실험에서의 전자와 진공에서의 풀러렌과는 다르게 상자 안의 고양이, 청산가리가 든 병, 가이거 카운터는 서로 의미있는 상호작용을 하는데다가 상자 안과 밖을 상자 자체가 연결해주기에 상자 자체부터가 완전한 닫힌 계가 아니다. 즉 상자 밖과 안은 언제나 의미있는 상호작용을 하며 이는 언제나 상자 안이 관측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상자 속의 고양이는 상자를 열든 열지 않든 죽거나 살아있는 둘 중 하나의 분명한 상태를 가진다.

출처: https://namu.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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