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9일 일요일

왜 인간과 범고래만 폐경이 있을까?

동물 세계에서 대부분의 암컷은 죽을 때까지 연이어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전체 수명의 3분의 2 시점에서 생식능력을 잃는 폐경(閉經) 현상은 사람과 범고래(killer whale), 들쇠고래(pilot whale) 등 3종에서만 발견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도 폐경이 없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생물의 기본 목적이 가능한 대로 많이 자손을 퍼뜨리는 일인데 왜 사람과 고래만 유독 섭리에서 벗어난 것일까.


◇폐경을 하는 동물들

인도의 람지트 라그하브(102)는 94살과 96살에 자식을 얻어 ‘가장 나이 많은 아빠’로 꼽힌다. 남성은 늙어서도 정자를 생산하지만, 여성은 50∼51살이면 난소 기능이 쇠퇴해 월경이 중지되는 폐경이 나타난다. 산업화와 현대 의료 혜택을 입지 않은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여성도 현대인과 비슷한 폐경을 거치고 수십 년을 더 산다.

영장류는 사람과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한 동물이지만 폐경은 하지 않는다. 야생에서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은 30대말에 마지막 출산을 하고 곧 죽는다. 사람이 45살 이전에 출산을 마치고 약 20년 더 사는 것과 딴판이다. 야생 영장류학자인 김산하 박사(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는 27일 “침팬지가 인간보다 수명은 짧지만, 마지막 자식을 낳는 시기는 비슷하다. 수명 차이를 고려하면 침팬지는 아주 늙어서까지 새끼를 낳는 셈이고, 인간은 자식을 낳을 수 있는데도 갑자기 중단하는 특별한 행태를 보인다”라고 말했다.

영장류와 달리 고래 가운데 범고래, 들쇠고래, 흑범고래 등 3종이 폐경 이후 오래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범고래는 12∼40살 동안 번식하지만 수명은 90살이 넘는다. 폐경 이후의 삶이 수명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60살 넘게 사는 들쇠고래도 35살이면 번식을 멈춘다. 북극고래가 100살 이상 살지만 죽기 직전까지 새끼를 낳는 것과 대조적이다. 아프리카코끼리와 아시아코끼리도 각각 수명인 60대와 70대까지 출산을 이어간다. 김현우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박사는 “범고래, 들쇠고래, 흑범고래는 모두 대양에 사는 대형 돌고래로 고도의 사회적 행동을 하는 공통점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새끼를 적게 낳고 오래 기르며 안정된 모계 집단 속에서 어미와 자식의 유대가 굳건하다.

흑범고래의 폐경은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이들은 남아공에 좌초하거나 일본이 포경한 흑범고래를 통계적·형태학적으로 분석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 과학저널 ‘동물학 최전선’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흑범고래의 폐경 후 수명이 범고래나 들쇠고래보다는 아시아코끼리와 비슷했다”며 향고래, 큰머리돌고래, 들고양이고래 등 다른 대형 사회적 돌고래에도 폐경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식물에 벌레혹을 형성하는 일본의 진딧물 한 종도 폐경을 한다는 사실이 2010년 일본 연구자에 의해 밝혀졌다. 이 사회성 진딧물은 번식기를 마친 뒤 새끼를 보호하는 ‘제2의 삶’을 산다. 생식기관이 점액 분비기관으로 바뀐 이 늙은 진딧물은 새끼가 든 벌레혹을 지키다 포식자가 오면 왁스질 분비물로 자신과 포식자를 함께 굳혀 죽이는 행동을 한다.


◇범고래 폐경은 마마보이 기질 때문

범고래는 몸길이 5~7m에 몸무게가 4~5t이나 된다.  어미를 중심으로 아들·딸들이 함께 사는 모계사회를 이루며 바다사자, 심지어 다른 고래 새끼도 사냥한다.  범고래 암컷은 90세까지 살지만 보통 30~40대 젊은 나이에 생식을 멈춘다.

영국 엑시터대의 다렌 크로프트(Croft) 교수 연구진은 1974년부터 2010년까지 36년 동안 미국과 캐나다 동부해안에 사는 범고래 589마리를 관찰했다. 연구진은 폐경 원인을 찾는 연구에서 의외를 결과를 얻었다.

무시무시한 영어 이름과 달리 범고래 수컷은 어미 없이는 살 수 없는 ‘마마보이’(mommy's boy)였던 것.  범고래는 등지느러미를 보면 나이와 성별을 알 수 있다. 일종의 지문인 셈이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보험회사가 생명보험료를 계산할 때 쓰는 알고리즘을 적용해 만약 어미가 없다면 범고래의 생존율이 어떻게 되는지 계산했다.  그 결과 어미가 죽은 다음 해에 30세 이상 수컷의 사망률이 14배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나이 암컷 사망률은 3배 증가에 그쳤다.

연구진은 지난 14일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범고래 암컷이 생식을 멈추고 나서도 오랫동안 사는 이유는 다 큰 아들을 보살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범고래 어미는 왜 아들만 편애하는 것일까. 연구진은 범고래 가족의 특성에서 답을 찾았다.  범고래 수컷은 짝짓기 때가 되면 다른 집단으로 가서 짝을 찾는다. 새끼가 태어나면 잠시 머물다가 다시 어미에게 돌아온다.

반면 암컷은 원래 집단 안에 있다가 다른 집단에서 찾아온 수컷과 짝짓기한다.

범고래 어미로선 다른 집단에서 새끼를 낳는 아들을 돕는 편이 에너지를 덜 들이면서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는 길이 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 왜 생식 능력을 포기하나

폐경이 출현한 이유는 대개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번식능력을 포기하는 대신 자식이나 손주를 도와 결과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이득을 얻는다. 1957년 나온 ‘어머니 가설’과 1998년 나온 ‘할머니 가설’이 대표적인 예이다. ‘어머니 가설’은 자신의 생식을 중단하더라도 자식에 투자하면 노산의 위험을 피하는 등 결과적으로 적응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의료 혜택이 없는 수렵채취인도 출산 때 산모 사망률이 3% 미만으로 나타나 노산의 위험이 과장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유타대의 인류학자 크리스틴 호크스는 아프리카 하드자인을 연구해, 나이 든 여성은 출산을 포기하고 젖을 뗀 손주를 돕는 편이 진화적으로 득이라는 ‘할머니 가설’을 내놨다. 인간의 아이는 젖을 뗀 뒤에도 오랫동안 돌봐야 한다. 잇따라 출산을 하는 젊은 여성보다 나이 든 여성의 경험과 힘이 뿌리 식량을 채집하는 등 중요한 구실을 한다.

자신의 생식 기회를 버리고 자식과 손주 지원에 나서는 진화적 이점은 동물 연구에서도 밝혀졌다. 영국 엑시터대 진화생물학자 대런 크로프트 등은 2012년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실은 논문에서 36년 동안 북서태평양 범고래를 조사한 데이터를 분석했다. 놀랍게도 범고래의 어머니가 죽으면 30살 아들이 이듬해 죽을 확률은 14배로 뛰었다. 범고래 수컷은 커서도 ‘마마보이’였다. 할머니 범고래는 무리를 이끌며 먹이 찾기, 포식자 감지, 문제 해결, 이동, 집단 내 갈등 해소 등에 기여한다.

가장 최근의 학설은 ‘생식 갈등 가설’이다. 2008년 영국 엑시터대 진화생물학자 마이클 칸트 등은 생식을 둘러싼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의 갈등이 나이 든 세대의 생식 포기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할머니 가설은 자신의 유전자의 절반을 남기는 직접 출산에 견줘 4분의 1을 남기는 손주 지원의 이득이 충분치 않다는 이론적 약점이 있었다. 43년 동안 범고래를 장기조사한 연구에서 어미와 딸이 동시에 번식에 나서면 어미의 자식이 사망할 위험성이 딸의 자식보다 1.7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인간도 딸이 출산을 시작할 즈음 어머니의 출산이 멎는다. 생식 갈등 가설은 할머니 가설을 보완하는 이론으로 주목받는다.

비슷한 연구결과가 있다. 2008년 영국 엑시터대의 마이클 칸트(Cant) 박사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여성의 조기 폐경은 외부에서 온 며느리라는 새로운 젊은 여성과 생식 경쟁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동물은 짝짓기할 때가 되면 수컷이 집단을 떠난다. 

하지만 인간사회에서는 딸이 떠나고 대신 며느리가 가족으로 들어온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계속 아기를 낳으면 음식이나 보살필 시간과 같은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며느리로선 유전자가 다른 시어머니를 위해 희생할 이유가 없다.

결국 시어머니는 유전자를 나눈 아들이 며느리를 통해 자식을 낳을 수 있게 폐경으로 양보했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핀란드 투르쿠대의 미르카 라덴페라(Lahdenpera) 교수 연구진은 ‘고부 갈등설’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에콜로지 레터스(Ecology Letter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산업화 이전인 1702~1908년 사이 핀란드 루터교회에 보관된 출생·결혼·사망 기록을 분석했다.  여기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으면 시어머니의 늦둥이가 15세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50% 떨어지고, 며느리가 낳은 아기는 66%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시어머니가 계속 출산을 고집하면 후손을 퍼뜨릴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말이다.

이 연구도 한계가 있다.

산업화 이전 시대라고는 불과 200여년의 시간이 폐경의 진화를 설명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또 인간은 당시 핀란드와 같은 농경사회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오래전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할 때부터 가족을 이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은 한 가설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상황이다.

학계에서는 여성이 할머니와 시어머니의 역할을 동시에 하면서 자신을 희생해 인류를 발전시켰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17/2012091702359.html#csidx62bd5a36192a01dbbbb8564572396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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