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오랫동안 인류는 의식(consciousness)을 갖지 않은 채 살아왔다. 의식이란 인류 역사의 특정 시점에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오랫동안 심리학을 가르쳤던 줄리언 제인스 교수가 인간의 의식의 기원을 파헤치고 과학 연구에 내재한 종교적 특질을 분석한 책 '의식의 기원'(한길사)이 번역돼 나왔다.
그는 책에서 의식에 대한 기존의 견해, 즉 의식이 물질의 속성을 지녔다거나 경험, 학습, 추론, 판단의 다른 이름이라는 견해는 물론, 의식을 인과적 영향력이 없는 단순한 부수현상으로 보는 견해를 모두 부정한다.
대신 그는 인간의 옛 정신체계는 양원적(bicameral.兩院的)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의식은 인류 역사의 한 특정 기점이었던 정신의 양원적 구조의 소멸시기와 연계돼 있다는 주장을 편다.
여기서 독특한 것이 바로 '양원성'이라는 저자 특유의 개념. "태초부터 인간은 언어를 관장하는 좌뇌와 신(神)과의 소통을 관장하는 우뇌를 통합적으로 사용해왔으나 어느 순간부터 우뇌의 기능이 퇴화됐다"는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양원 시대의 인류는 중요한 순간마다 들려오는 신의 소리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했다. 고대 그리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전사들이 그렇게 했고 히브리 성서에 나오는 선지자들이 그렇게 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우뇌의 기능이 급속히 상실되기 시작했다. 퇴화된 신과의 소통능력을 대체한 것이 바로 '의식'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살아있는 한 언제나 의식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역사적으로 장구한 세월에 옛 인류는 의식을 갖지 않은 채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했고 의식은 후천적이며 발명된 것이라는 주장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제인스는 의식없이 살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문헌적으로 고증하기 위해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분석하고, 호메로스가 행동을 급박히 결정하기 위해 수많은 판단을 했을 전사들을 묘사할 때 '의식'에 해당하는 단어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문학적 문헌 뿐 아니라 저자는 '양원적 인류'가 살던 고대 문명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돌기둥에 새겨진 글ㆍ그림을 살피고 온갖 신상(神像)을 조사하며 허물어진 사원을 탐방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양원 시대의 인간들 어떤 사적인 야심이나 탐욕, 갈등이나 포악성도 없었다는 것. 그는 인간들의 정치ㆍ윤리적 삶이 잔악해진 것은 "양원성이 파괴되고 신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는 나아가 종교 유산이야말로 이전의 정신체계에서 물려받은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대의 종교현상은 양원 정신 체계의 명백한 증거라는 것.
그런데 제인스가 종교에 각별한 관심을 둔 더 중요한 이유는 과학적 행위가 근본적으로 종교와 관련돼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즉 과학혁명의 배후에는 신성(神性)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려는 동기가 있었다는 것. 제인스는 이를 '노스탤지어'라 표현했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나 마르크스의 '원시공산사회' 역시 같은 맥락이다.
양원적 구조의 소멸과 '의식'의 탄생이라는 그의 주장도 그렇지만, 결론에 이르는 지적 여정에서 심리학ㆍ문학ㆍ철학ㆍ인류학 등을 온갖 지적 유산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점이 흥미롭다. 이 책은 1978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줄리언 제인스의 저작이 국내에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제 '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
김득룡ㆍ박주용 옮김. 552쪽.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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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줄리언 제인스, 심리학 · 문학 · 인류학 · 철학 등을 넘나드는 통찰력 돋보여
일찍이 헤라클레스는 의식을 가리켜 “아무리 길을 걸어도 경계를 발견할 수 없는 광대한 공간과 같다”고 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는 “셀 수 없이 많은 창고로 놀랍게 치장되어 있고 광활한 방들이 겹겹으로 들어차 있는 후미진 곳”이라 했다. 밀, 분트, 티치너는 “의식은 실험실에서 감각과 감정의 정확한 요소들로 분석될 수 있는 복합구조”라 했으며, 증기기관차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때 “잠재의식은 긴장을 유발하는 에너지의 발생기관인 보일러”라고 했다. 이처럼 의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의식을 의식하게 된다.
저자 제인스(1920~97)는 하버드 대학을 거쳐 맥길 대학을 졸업했으며, 예일 대학에서 심리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66년부터 1990년까지 프린스턴 대학 심리학과에서 강의했다. 그의 저작들은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는데, 초기에는 동물심리학에 초점을 두었으나 나중에는 인간의 의식문제에 집중하여 '의식의 기원'(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 )을 집필하기에 이른다. 일생 동안 심혈을 기울인 이 책으로 1978년 그는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이 책에서는 의식에 대한 기존의 여러 견해, 즉 의식이 물질의 속성이라거나 원형질의 속성이라거나, 혹은 경험 · 학습 · 추론 · 판단의 다른 이름이라는 견해는 물론, 의식을 인과적 영향력이 없는 단순한 부수현상으로 보는 견해가 모두 기각된다. 그 대신 인간의 옛 정신체계는 양원적(兩院的, Bicamaral)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의식은 인류 역사의 한 특정 기점이었던 정신의 양원적 구조의 소멸 시기와 연계되어 있다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편다. 그는 심리학 · 문학 · 인류학 · 철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끌어낸 논거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제시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근본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그 영향력은 프로이트에 비견되며 20세기가 산출한 가장 의미 있는 학문적 성과로 꼽힌다. 고대 문헌을 분석하고, 고고학적 성과물을 분석하며 이상심리학적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써 옛 인류의 양원적 정신 역량은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대목에 이르면, 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을 넘어 세인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옛 인류는 의식을 갖지 않았지만 성공적인 삶을 누렸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정신(마음)을 다루는 제1권은 “의식은 ~이 아니다”라는 도전적인 접근으로 시작한다. 살아 있는 한, 언제나 ‘의식’이 있는 것이라고 믿는 우리에게 그는 그것이 의식이 아닐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장구한 세월 동안 역사 초기의 옛 인류는 의식을 갖지 않은 채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정신적 기능에 의거해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의식과 지각, 반응성, 인지 등을 구별하는 저자는, 의식보다는 반응성이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는 모든 자극들을 관장하는 정신기능이며, 이에 비해 의식은 훨씬 더 국소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가 반응하고 있는 것들을 단지 이따금씩만 의식할 뿐이라는 것이다. “당신을 보고 있는 나는 지금 당신을 의식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묻는 반론자에게 그는 “당신이 지금 의식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의 논증일 것이다”라고 답한다. 이로써 그는 “적어도 나에 대해서 말하는 한, 당신은 의식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때 당신의 정신기능은 ‘의식’이 아니라 ‘지각’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는 의식 없이 살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문헌적으로 고증하기 위해 ??일리아스??를 분석한다. 행동을 급박하게 결정내리기 위해 수많은 판단을 해야 했을 일리아스 전사들을 묘사할 때 의식에 상당하는 단어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의식은 모두 언어는 아니지만 언어로 생성되고 언어로 접근된다
제인스에 따르면 의식은 언어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의 은유기능이다. 예를 들어 “그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 경험이 독특한 것이어서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때 “그것은 ~같은 거야”라고 답하게 된다. 바로 그 순간에 새로운 어휘가 생성되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서로 잘 알고 있는 머리, 손, 가슴 등 자신들의 신체를 은유체로 사용하며 이러한 작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작업은 신체감각으로 관찰될 수 없는 추상적 개념으로 확장된다.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려면 일단 인간의 마음속에서 ‘볼’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의 ‘눈’으로 이들을 ‘보는’ 것 자체가 은유일 수밖에 없다. 의식은 바로 이러한 언어발달 과정에서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증을 위해 그는 실제 나의 유추인 유사 ‘나’(analogue ‘I’), 그리고 그 유사 ‘나’가 수행하는 ‘이야기 엮기’(narratization) 등과 같은 중요한 개념을 소개한다.
양원시대의 인류는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제목이 ‘역사의 증언’인 제2권에서 제인스는 놀랍게도 제1권과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양원성에 역사적 · 고고학적 · 문화적 접근을 시도하는 박학을 과시한다. 여기서 관심 주제는 양원성과 신이다. 양원시대의 인류는 신의 소리를 들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들려오는 그 소리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했다. 고대 그리스 민족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전사들이 그렇게 했고, 히브리 민족의 성서에 나오는 선지자들이 그렇게 했다. 앞에서 문학적 문헌으로 고증하던 제인스는 이번에는 양원적 인류가 살던 고대 문명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돌기둥에 적힌 양각 · 음각의 글줄과 그림을 살피고 온갖 종류의 신상을 조사하며 허물어진 사원을 탐방한다. 신의 영향력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제인스의 주장은 신의 부재(신의 등돌림)의 원인이 인간 자신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믿는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사뭇 다른 점인데, 그에 따르면 오히려 인간들의 정치적 · 윤리적 삶이 잔악해진 것은 양원성이 파괴되고 신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결과다. 그는 양원시대에는 어떤 사적인 야심이나 탐욕, 갈등이나 포악성도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양원적 인간은 사적으로 존재할 내적 ‘공간’도, 그런 공간에 있을 유사 ‘나’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보다도 평화스러웠고 친절한 인간족이었다고 주장한다.
환청을 듣는 것은 고대 양원적 인간과 오늘날의 정신분열증 환자가 비슷하다
현대세계에서의 양원정신의 흔적을 논하는 제3권에서는 현대인에게서 관찰되는 정신분열증, 최면 등과 같은 정신현상을 다룬다. 이들에 대한 수많은 이론이 이 현상을 근원적으로 설명해내는 데 적절하지 못하다면서 제인스는 자신의 양원적 정신체계 이론의 설명력이 훨씬 낫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제인스는 우선 환청을 듣는 것을 고대 양원적 인간과 오늘날의 정신분열증 환자가 비슷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에게 양원적 정신체계가 원래의 모습이었으리라는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하려 한다.
한편 제인스는 양원성과 종교적 신의 문제를 다룬 데 이어, 양원성과 정신병의 관련성을 논의한다. 그는 “정신병으로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신경계에 내재하는 태양숭배나 신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양자의 연관성을 부인한다. 양자 간에 때때로 환각이라는 공통 현상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그것은 교육과 종교적 역사에 대한 친숙함 때문이라고 본다.
과학적 행위는 근본적으로 종교와 관련이 있다
마지막으로 제인스는 현대의 종교현상을 양원정신 체계의 증거로 든다. 그는 종교 유산이야말로 이전의 정신체계에서 물려받은 것 가운데 가장 명백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인스가 종교에 각별한 관심을 둔 더 심각한 이유는 실은 이른바 과학적 행위가 근본적으로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과학혁명의 배후에는 신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려는 동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과학 탐구는 양원 정신이 와해된 직접적인 결과였다. 물리학 · 심리학과 생물학의 토대를 만든 사람들은 모두 17세기 말엽의 영국 프로테스탄트들로 이들은 경건했다. 그에 따르면 현대과학도 종교적인 형식이 있다. 예를 들어 그가 과학주의라 부르는 것 역시 이 시대에 과학과 종교와 분리되면서 남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급격히 신앙적 신조로 굳은 과학적 신화다. 따라서 현대과학 역시 그것이 대신하려는 종교가 했던 것과 똑같은 특징이 있다.
“크게 보면 근대과학도 종교적 형식을 갖고 있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합리적 우수성,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와 두드러져 비판받지 않는 지도자의 계승, 과학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경전 같은 일련의 틀, 특정한 사고방식과 해석, 그리고 완전한 헌신의 요구 등이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추종자들은 한때 종교가 제공했던 것을 그대로 받는다. 세계관, 중요성의 위계체계, 그가 무엇을 하고 생각할지를 알려줄 복점 치는 장소, 요컨대 인간에 대한 총체적 설명을 제공받는다.”
결국 과학 스스로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주장할지라도 근원에서는 의사 종교의 발흥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제인스는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포함하여 모든 과학행위를 이렇게 일갈하며 방대한 글을 끝맺는다. “양원적 정신구조의 폐허 속에서 행동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점치던 일이 이제는 사실이라는 신화들 속에서 완전한 확실성(an innocense of certainty)을 추구하는 일이 되었을 뿐이다.”
지은이 소개
줄리언 제인스
매사추세츠 주 웨스트 뉴턴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을 거쳐 맥길 대학을 졸업했으며, 예일 대학에서 심리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6년부터 1990년까지 프린스턴 대학에서 심리학을 강의했다. 그의 저작들은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는데, 초기에는 동물심리학에 초점을 두었으나 후에는 인간의 의식문제에 집중하여 [의식의 기원]을 집필하기에 이른다. 일생 동안 심혈을 기울인 책으로 19789년 전미도서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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