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6일 월요일

후기 조선왕조는 국제정치의 주류를 역행

- 한 국가는 혼자서 존재하지 않고 타국과의 관계속에서 존재한다

-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 교과서에서 조선의 대외관계에 대한 서술은 매우 빈약


- 특히 역사 교과서는 개항기말 1876~1945년의 반일, 민중 활동에 대해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 역사 교과서의 1/4이 해당되


- 조선초기 명나라와 16세기에 걸쳐 청나라와의 관계 이해가 중요


- 명나라의 적나라한 조선화의 음. 병자호와 삼위일체 故오랑캐로 운신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 깊숙이 깊숙이 파고드는 명망이 깊다 


- 18세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 19세기부터 미국 상선이 조선에 ​​알리기를 요청했습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제후국이 1832년에 이르러 중국의 외교를 요청했습니다.


- 19세기 청의 조공국(위구르, 미얀마, 대만 등)들은 잇따른 열강(영국, 프랑스, 일본 등)의 침입을 받고 청은 상당한 국가혼란을 겪음


- 청은 위기감 속에서 조선이 흔들릴까 우려해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 내외정을 직접 장악하고 조선의 속방규정을 공식화


- 당시 일본은 메이이유신(1868년)이후 1875년까지 5차례에 걸쳐 일본의 왕정복고(천황제)를 알리는 문서를 조선에 보냈으나 조선은 이를 거부

- 청의 속국으로서 조선은 일본의 천황의 지위를 조선에 알리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음. 이는 당시 동아시아의 청 중심의 질서를 훼손한다고 생각


- 당시 일본과 영국은 국제적 이해관계가 일치했는데 이는 러시아 제국의 남하(부동항 확보)를 저지해야 한다는 것

- 이미 러시아는 18세기 초부터 캄차카 반도 등을 통해 일본을 위협했던 사례가 있었고 중간에 위치한 조선을 러시아가 접수할 경우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었음


- 1884년까지 일본의 극동아시아 전략은 '동문동조(同文同祖)'와 '순치보거(脣齒輔車)', 같은 아시아인끼리 동등하게 연합하자는 의미


- 1876년 한일 수교(강화도 조약), 한국사 교과서는 이를 불평등 조약이며 조선침략의 의도를 숨긴 것으로 간주함

- 그러나 이는 사후적 해석일 가능성 높아, 조문을 하나하나 뜯어봐도 불평등한 내용은 없으며 당시 조선도 이를 불평등하다고 인식하지 않았음

- 오히려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후 내정안정에 힘쓸 때에서 대외 정책은 다소 나이브한 낭만적 관점으로 접근


- 1885년 이후 일본은 이 전략을 전면적으로 바꾼다, 이는 서양과의 전쟁에서 보여준 청나라의 무능, 조선의 후진성(갑신정변 실패 등)에 기인 

- 일본은 탈아시아론으로 정책을 바꾸고 대규모 군비 증강, 특히 조선에 대해 절대 '서양 제국 열강'에게 양보할 수 없는 '이익선'으로 규정


- 당시 영국은 현재의 미국 국무부처럼 전세계 외교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뒤에서 조정하고 있었음

- 영국은 당시 조선은 거리도 멀고 무역할 재화가 전무해 점유가치가 없다고 판단. 단, 러시아 남하를 저지할 수 있는 일본이 조선을 점유하는 것을 지지

- 미국도 이러한 영국의 전략에 동조


- 1883년 영국은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을 맺음. 동 조약에 따라 조선이 러시아와 수교(1884년)하자 거문도를 점령하여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한 포석을 마련

- 이후 러시아는 영국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후퇴 대신 시베리아 철도부설에 착수

- 시베리아 철도는 극동아시아 정세에 있어서 영국과 일본에 상당한 위협이었음


- 러시아의 수교에는 배경이 있었음

- 당시 고종이 조선 단독의 국가 체제로는 열강의 침입을 막을 수 없으므로 러시아를 끌어들여 세력균형을 이루려 했던 것

- 고종과 민비는 러시아에 접근했고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이 발생, 고종의 확제즉위와 대한제국 선포 등은 고종의 친러정책의 산물

- 이에는 조선의 뿌리깊은 반일, 혹은 일본을 무시하는 정서가 작용했다는 설이 있음

- 고종 입장에서 친러정책은 나름의 방책을 강구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영국의 심기를 건드려 악수가 되었음


- 의화단 사건이 발발하며 서양 연합군은 청나라와 동양의 야만성과 후진성에 경악하고 이를 빌미로 청에 군대를 주둔시킴

- 러시아가 의화단 사건 이후 대련항을 점령하자 조선에서 철수한 후 요동지방을 공략하고 만주를 점령, 이는 영국과 일본의 동맹을 가져왔으며 후 러일전쟁의 배경이 됨

- 미국의 미국의 조선이 일본에 복속을 요청하고 있다.


- 머리말이론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WDgwd-L8f0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