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3일 일요일

투자의 심리학 - 대략적으로 옳은 것이 정확하되 틀린 것보다는 낫다

대략적으로 맞는 것이 정확히 틀린 것보다 낫다.

- 존 메이너드 케인즈 -


ㅇ투자에서 정밀함은 초보 투자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실용적이지 않다


ㅇ정밀함이 없는 곳에서 정밀함을 추구하는 경향은 인간의 편향

  : 찰리 멍거 "물리학적 선망(Physics Envy)"


ㅇ멍거 2003년 학술 경제학 강연에서

"저는 경제학이 물리학적 선망에서 비롯되는 도달 불가능한 정밀함에 대한 갈망은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볼츠만 상수를 포함하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식은 경제학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학은 너무 복잡한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물리학적 정확성에 대한 갈망은 당신을 끔찍한 곤경에 빠뜨릴 뿐입니다. 경제학이 물리학과 유사한 공식에서 정확성을 추구하는 것은 경제학에서 거의 항상 틀립니다."


ㅇ우리의 마음은 모호함을 싫어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모호성 혐오(ambiguity aversion)"

  : 우리는 솔직하게 "모르겠다"라는 불편함보다 틀렸지만 정확한 숫자의 위안을 선호


ㅇ피터 카우프만 "Poor Charlie's Almanack(가난한 찰리의 연감)"에서

  : 찰리는 복잡한 상황을 기본적이고 감정적이지 않은 근본적인 요소로 축소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합리성과 단순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는 자신이 "물리적 선망"이라고 부르는, 엄청나게 복잡한 시스템(경제학 등)을 만능 뉴턴의 공식으로 축소하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갈망을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대신, 그는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이론은 가능한 한 단순해야 하지만, 그 이상으로 더 단순해서는 안 된다"라는 훈계를 충실히 따릅니다. 모든 것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고 있습니다."


ㅇ시장을 설명하는 깔끔한 방정식은 없다. 설사 있다고 해도 방정식을 찾는 순간, 참여자들은 행동을 바꾸고 공식은 무효화된다

ㅇ폴 그레이엄 "Hackers & Painters(번역서: 헤커와 화가)"에서

  : 과학계의 모든 사람들은 수학자들이 자신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수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최대한 수학적으로 보이도록 경쟁적으로 행동합니다.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분야에서는 이것이 큰 해가 되지는 않겠지만, 실험실 속 단순한 모델이 통하는 자연과학에서 멀어질수록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알 수 없는 방정식 한 페이지가 너무나 멋져 보이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중요한 문제가 아닌 형식적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를 다루고 싶은 유혹이 강합니다.


ㅇ물리학과 수학에서는 양적화가 일반적이지만, 투자에서는 위험하다

  : 투자에서 숫자를 볼 때, 그 숫자의 의미, 어떤 맥락에서 도출되었는지가 중요

  : DCF 모델은 성장 가정이 2%라도 어긋나면 전체 모델이 무너져, 이는 마치 밀리미터 단위의 눈금이 있는 자로 100마일로 던져지는 야구공을 측정하는 것과 같다. 정밀함은 환상일 뿐

  : 경제나 주식 시장과 같은 복잡한 시스템에 정밀도를 부여하려는 것은 심각한 오류의 원인


ㅇ워드보다 엑셀을 사용하여 더 많은 소설이 쓰여졌다

ㅇ벤저민 그레이엄 - 우리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가격과, 본질적으로 부정확한 추정치에 불과 한 가치를 비교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내재적 가치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도출하려고 애씁니다. 이는 실패를 부릅니다.


ㅇ극소수 최고의 투자자들읜 모호함을 받아들인다

  : 그들은 "마법의 숫자"에 집착하지 않고 넓은 범위, 확률, 안전마진을 활용한다

  : 이는 본성에 반하므로 심리학적 훈련이다. 불확실성 앞에서도 거짓된 명확성을 강요하기 보다는 겸손함을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ㅇ카너먼과 트버스키는 기준점 편향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면서도 강력한지를 보여주었다

  : 아무리 말도 안되는 숫자라도 일단 주어지면 사람들은 그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여긴다

  : 가령 목표 주가가 그런 것


ㅇ투자의 이러한 반직관적인 측면을 다루는 것은 본성에 어긋난다. 

  : 인덱스 펀드 투자자 조차 이러한 본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사람들이 과거 실적에 기반해 미래를 추정한다. 과거에 좋으면 숨겨진 정밀함이 담겨 있다고 가정하고, 소수점까지 "최고" 수익률을 기록하는 펀드와 시장을 쫓는다


ㅇ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규율, 자산 배분, 시장 하락시의 대응과 행동이다. 이들은 무시된다


ㅇ물리학적 선망은 당신이 무엇에 투자하던 늘 따라다닌다

  : 어떤 자산인지, 인덱스 펀드인지, 개잡주인지 중요하지 않다


ㅇ투자의 진정한 이점은 엑셀에서 짜낸 완벽한 숫자를 쫓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깨를 으쓱하고 "모르겠네"라고 인정하는 데서 온다


자료 출처: Vishal Khandewal, "The Psychology of Investing #15: Better Roughly Right Than Precisely Wrong"

AI가 가장 먼저 바꾼 바둑계의 이야기, 책 - 먼저 온 미래 -

선요약

- AI의 등장은 인간 기사의 실력을 발전시켜 상향 평준화시켰다

- AI등장으로 기존의 기득권 우위의 시장이 무너지고 평등화되었다

- 부가가치를 가지던 독점적 암묵지가 모두에게 공개된다


이세돌에 이어 중국 커제와의 대국 이후,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고가 자기 자신인 알파고를 상대로 둔 대국 기보 50개를 웹사이트에 올렸다... 2017년 10월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고의 새 버전이자 가장 강력한 버전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알파고 제로'라고 불리는 이 새 버전은 이전 버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바둑을 독학으로 배운 것이다.

이세돌과 겨룬 버전(흔히 '알파고 리'라고 불린다)과 커제와 겨룬 '알파고 마스터' 버전은 인간 기사들이 둔 기보를 학습했다. 알파고 제로는 인간 기사들의 기보는 전혀 학습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바둑 규칙만 입력되어 있었다. 알파고 제로는 혼자 바둑을 둔 지 36시간 뒤에 알파고 리의 실력을 넘어섰다

여러 기업과 개발자가 구글 딥마인드에서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참고해 기존 바둑 프로그램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17년 말부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바둑 프로그램들이 나왔다. 개인 컴퓨터에 내려받을 수 있고, 무료로 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기존의 바둑 이론, 정석[흑백이 서로 최선이라고 인정되어 온 수], 포석[초반에 돌을 놓아 진영을 만드는 일]을 인공지능으로 각자 검증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여태까지 프로기사들이 옳다고 믿어왔던 이론, 정석, 포석의 상당수에 허점이 있음이 드러났다. 바둑 AI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새로운 포석을 프로 기사들은 'AI 포석'이라고 불렀다. 그 포석을 최대한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이 랭킹을 끌어올리는 지름길이었다.


기계가 이토록 창의적이고 인간을 앞서간다면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박병규 9단은 알파고의 바둑이 창의적이냐는 질문에 대해 “아주 많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라고 대답했다. 그는 심지어 알파고 수법이 퍼지면서 인간 프로기사가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줄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바둑계는 알파고 혁명 덕분에 변화가 출현한 것도 사실입니다. 즉 고인물 생태계가 무너졌죠."


신진서 9단은 인공지능으로 바둑 공부를 하는 시간을 물어보니 "조금 할 때는 하루에 2시간 정도, 많이 할 때는 7시간 정도"라고 했다.

"예전에는 매일 12시간씩, 바둑만 두는 바둑 기계처럼 공부했어요... 그런데 AI를 통해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AI로 실력을 연마하다 보면 반드시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믿어서 연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세계대회 전날도 인공지능으로 공부한다고 말했다. 신진서 9단은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학습 도구로서 AI가 대단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초반, 중반, 종반을 분리해서 연구 할 수 있고, 연구해야 할 내용이 끊이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그럼에도 신진서 9단은 "여전히 AI가 왜 이렇게 두는지 모르겠는 수는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왜 그렇게 두는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초반은 수백 가지 상황에서의 AI 추천수를 통째로 외 워버릴수 있다. 하지만 중반으로 들어가면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져서 암기로는 대응할 수 없다.

인터넷 시대가 오기 전에는 정상급 기사와 중하위권 기사 사이의 정보 격차가 훨씬 컸다. 이세돌 9단은 자서전에서 "내가 서울에 올라왔을 무렵, 기사들이 기보를 구하려면 한국기원 에 가서 복사해 와야 했다"라며 "기보를 복사해서 자기네 도장에 가지고 와서 도장 사람들 끼리 돌려본다. 그게 기보를 얻는 거의 유일한 경로였다"라고 썼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의 기사들은 이런 기보를 얻는 데 매우 불리했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기사들과 그 외 국가 기사들의 실력 격차에는 이런 요인도 작용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기보를 구하는 것 자체는 쉬워졌다. 그럼에도 최신 포석에 대한 엘리트 기사들의 공동연구 내용이 퍼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고, 그런 면에서 중 하위권 기사들은 불리했다. 각자 집에서 AI 포석을 혼자 연구하는 세상이 되자 그런 불리함이 사라졌다.

이를 통해 보다 '평등한 세상'이 만들어졌다.


인간 기사들이 속한 바둑계는 갑자기 평평해진 듯했다. 바둑계 인사들은 대체로 알파고의 등장 이후 인간 기사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됐다는 데 동의한다.

고레이팅이라는 웹사이트에서 발표하는 세계 랭킹과 프로기사들의 기력이 상당히 믿을 만한 데이터로 통용된다. 고레이팅은 엘로 레이팅이라는 이름으로 기사들의 기력을 수치화하는데, 2024년 6월 5일 기준 신진서 9단은 3870점으로 세계 1위, 박정환 9단은 3697점으로 세계 2위, 커제 9단은 3682점으로 3위다.

엘로 레이팅 시스템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수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그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최강자 그룹은 과거 최강자들과 비교해 고레이팅 점수가 훨씬 높다. 조치훈 9단 (1986년 3402점)과 조훈현 9단(1989년 3462점)의 최고 점수는 모두 3400점대였다. 이창호 9단은 1995년에 3569점을, 이세돌 9단은 2010년에 3583점이다. 알파고 제로는 5185점이다.


AI의 등장은 비밀리에 암묵적으로 전수되던 지혜 혹은 암묵지가 널리 공개된 셈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는 전문가의 실력이 암묵지를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저널리즘 이론을 오래 공부했다고 뛰어난 기자가 되는 게 아니고, 범죄수사론 교과서를 달달 외웠다고 뛰어난 형사가 되는 게 아니다. 뛰어난 임상의, 뛰어난 변호사, 뛰어난 경영인, 뛰어난 정치 컨설턴트도 마찬가지다. 프로기사와 소설가에게 바둑 이론이나 문학 이론의 효용은 크지 않다. 뛰어난 프로기사는 바둑 두는 법에 대해 뭔가를 깊이 알고 있고, 뛰어난 소설가도 소설 쓰는 법에 대해 뭔가를 이해하고 있는데, 그 지식은 언어로 잘 표현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분야에서 인간 전문가의 지식은 쉽게 복제되지 않고, 희소성이 있다. 뛰어난 변호사, 뛰어난 경영인이 높은 연봉을 받는 것, 뛰어난 임상의가 수술실에서 권위를 얻는 것은 그들이 지닌 암묵지 때문이다.

그런데 딥러닝 기법을 사용하는 인공지능은 인간 전문가들보다 더 풍성하고 정확한 암묵지를 지니게 될지 모른다. 의사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인간 의사 한 명이 체험할 수 있는 임상 사례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가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 역시 그러하다. 그런 통찰을 지닌 임상의는 인간이 평생 훑어보는 것조차 다 할 수 없을 수많은 임상 사례를 검토하고 거기에서 중요한 '특징'을 찾아낸 AI 의사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2025년 11월 10일 월요일

표현 이후의 자유

 There is freedom of speech, but I cannot guarantee freedom after speech.

표현의 자유는 보장한다. 그러나 표현 이후의 자유는 보장해줄 수 없다.


- 우간다 독재자, 이디 아민 -

2025년 11월 9일 일요일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독일인이 경험한 문화 차이

아들이 두발로 걷기 시작한 무렵, 집 안에서 걷다가 의자에 부딪히자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놀란 아내가 아이에게 다가가 왜 우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의자를 가리켰고, 아내는 우는 아이를 품에 안아 달래며 의자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의자가 그랬어? 때찌! 때찌!"


두 사람을 지켜보던 나는 의아했다

"지금 왜 그러는 거야?"


아내는 한국에서는 이렇게들 한다고 했지만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실수는 의자가 아니라 아이가 한 것이니 우리는 그렇게 교육하지 말자고 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더라도 자기가 한 실수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자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가르침은 옳지 않다. 작은 실수라고 하더라도 남 탓을 하기 시작하면 그보다 더한 실수에서도 배우지 못한다.







20년 이상 한국에 살고 한국사를 공부하고 보니 나는 한국 사람들이 언제나 평화를 사랑한다는 말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역사적 이야기까지 꺼낸 것은 한국 사람들의 자기 인식, 국가 인식이 한국 사람들의 행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논의하기 위함이다. 평화를 사랑한다는 말의 이면에는 자신을 순수한 피해자, 스스로 문제를 개선할 수단이 없는 무기력한 희생자로 인식하려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실제와 다르게 포장하고 인식하면서 외면하는 것은 정녕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한국사를 이야기할 때 종종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늘 힘들었어요. 몽골, 그다음엔 중국, 현대에 와서는 일본 때문에 힘들게 살아야 했어요"


일상적인 문제에서도 비슷하게 말을 한다.


"그 사람때문에 피해를 봤어"


문제가 자기 때문이라는 고백은 별로 듣지 못했다. 헌데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이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데 나 자신이 빠져 있다면 과연 해결은 가능하겠나?





한(恨)이라는 감정은 억울하고 서글퍼서 응어리진 마음이다. 그 마음을 누군가를 향해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만들기 위한 긍정적인 에너지로 발현되어야 비로소 '승화'라는 말을 덧입힐 수 있다. 이것이 다른 나라, 민족과 구별되는 한국만의 '한의 미학'이 아닌가?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한국 사람들의 한은 자기 연민에 가깝다. 꼭 한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마음가짐이 당연한 것이 어느정도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지 걱정스럽다.


이같은 인식은 젊은 세대로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규정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제도의 피해자, 부모가 품은 욕망의 피해자, 가부장제의 피해자, 페미니즘의 피해자... 그들은 또 지금이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이전 세대가 좋았다고들 말한다. 경제적 양극화가 심하고, 기회가 없고, 일자리가 없어서 N포세대라고 자신들을 인식한다. '한'이라는 표현만 안썼지 새로운 이름들로 자신들의 피해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인식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회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우선 나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





매력적이고 가정적인 남성은 고환이 작다

 https://www.youtube.com/watch?v=RiOO8GmTTQw


ㅇ몸의 체적에 비해 인간의 고환의 무게는 고릴라의3배, 침팬지의 1/5


ㅇ영장류 고환의 크기를 결정하는 요소는 짝짓기 후 선택압

  : 짝짓기 전 선택압 - 수염, 원숭이의 몸 크기, 각 동물별 드러나는 수컷의 매력포인트

  : 짝짓기 후 선택압 - 정자의 질과 양


ㅇ연구에 따르면 겉으로 크게 드러나는 매력도가 높을 수록 고환이 작다

  : 다음의 경우 집단내 지위가 높고 반대로 고환이 작음, 정자수가 작다

  : 코주부 원숭이 수컷의 코가 클 경우

  : 만드릴 수컷의 가슴 색상이 붉을 경우

  : 오랑우탕 수컷 얼굴의 빰이 클 경우

  : 고함원숭이(Howler Monkey) 수컷의 소리가 저음이 클 경우

  : 인간 남성이 수염이 많을 경우(?)

  : 인간 남성의 목소리가 중저음일 경우


ㅇ이는 진화적 에너지 효율성과 균형때문인 것으로 추정


ㅇ정자를 많이 생산하는 정자 전쟁을 하려면 고환이 커야 한다


ㅇ매력적인 수컷은 이미 짝짓기 경쟁에 우위가 있으므로 굳이 고환크기(정자전쟁)에 투자할 유인이 낮다


ㅇ고환이 큰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에 비해

  : 아이 돌보는 시간이 적고

  : 아기 기저기를 덜 갈게 되고

  : 가족을 위해 쓰는 시간이 적다


ㅇ이는 영장류에게서 증명되었다

  : 고릴라와 콜로보 원숭이 같은 안정적인 짝짓기 관계를 가지는 종은 고환이 작다

  : 만면 마가크 원숭이, 침팬지 처럼 난교 성향의 종은 고환이 크다

2025년 10월 18일 토요일

일제시대 3대 부자가 되었던 금광부자 최창학


ㅇ최창학은 1891년 평안도 구성도호부(現 북한 평안북도 구성시)에서 출생, 출생지는 광산으로 유명한 지역


ㅇ30대까지 별다른 부를 얻지 못하고 각지에 금광을 찾아다녀

  : 사숙(私塾)에서 한문을 배웠으며, 1906년부터 대동학교와 향산학교에서 수학하다 1912년 사립 진명학교를 졸업

  : 이후 10여 년간 탐광 활동을 한 뒤 1923년 평안북도 의주군의 삼성금광을 경영

  : 만 21세 이후부터 10여 년간 금을 찾아다니다가 32세부터 금광 경영자가 됐던 것


ㅇ당시 100여명의 동네 사람들을 이끌고 무작정 금 폐광을 까내리기 시작

  : 오랜기간 금맥이 안나와 대부분의 사람들을 뿔뿔히 흩어져

  : 마지막에 혼자 남아서 파던 금광에서 대박이 터진 것

  : 이것이 조선에 ‘황금광(狂)시대’ 열풍을 불게 만든 삼성(三成)금광

  : 당시 경성 괜찮은 주택한채에 천원 안팎이었는데 최창학은 몇 달만에 수백만원을 벌었다고


ㅇ삼성금광을 키워 일본 회사 미쓰이(三井)에 300만원(130만원이라는 기록도)이라는 거금을 받고 팔았고, 그 돈으로 평안북도 삭주 지역에 새로운 금광을 물색


ㅇ1차 대전 이후 각국이 전후 복구를 위해 금본위제를 탈퇴하고 중앙은행의 금 매입이 금감하자 1920년대 금값이 폭락

  : 이후 1920년대 중후반부터 각국이 과도한 인플레를 통제하기 위해 다시 금본위제로 복귀

  : 일본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30년에야 금본위제 복귀

  : 금본위제로 복귀하자 금 수요가 늘어나면서 금값이 급등하고 최창학은 돈방석에 앉게 된다


ㅇ그에게 큰 돈을 벌게 해준 것은 금채광보다는 광산 매매업

  : 금광은 금이 쌓여 있으면서도 공권력의 보호를 받기 힘든 지역이어서 무장독립단체의 강도질에 취약

  : 최창학은 1924년 한 해 동안에만 시국을 표방한 무장 독립단의 공격을 4차례, 그리고 단순 강도를 37차례나 당해

  : 1920년대에 금본위체 폐지와 무장독립군의 강도짓이 워낙 빈번해 삭주 일대의 금광, 광산주인들은 신변에 위협을 느껴

  : 이들이 매각한 광산을 최창학이 모두 사들이고 개발하여 다시 일본 대기업에 매각, 좋은 광산은 직접 경영, 나쁜 광산은 이름값을 이용해 고가에 임대

  : 금광이 많았던 조악동 부근의 치안은 1925년부터 급속히 안정, 무장독립단의 활동은 일본이 만주와 국내 양쪽에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섬에 따라 시들해져

  : 최창학은 치안이 안정되어 가격이 급등한 금광을 고가에 매도, 일부 잡법도 개인 무장용역을 통해 해결

  : 이후 신변의 안위가 걱정된 그도 마침내 금광을 매각해 큰 현금을 쥐게 됨 


ㅇ1923년부터 1929년까지 평안북도 구성군에 있는 삼성금광을 경영하면서 부를 축적


ㅇ1938년에 소유했던 광산을 니혼광업주식회사에 650만원에 팔아 일명 천만장자로 성장


ㅇ조선 3대 부자중에 그나마 평가가 좋은 편

  : 민비 일가 친일파 민영휘는 지배계급의 일원으로 권력을 이용하여 막대한 재산을 불려

  : 호남 대지주의 아들인 김성수는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 사회공헌 사업도 해, 보성전문학교 증축비에 1만원, 경성공업학교 광산과 신설비에 3만원, 오산고등보통학교에 5만원을 희사

  : 훗날 1957년 2월 7일, 기부를 한 인연으로 오산고등보통학교(현 오산고등학교) 4대 이사장에 취임


ㅇ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인 최대의 광업자이며 천만장자로 불려,일제강점기 말기 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고 거액의 국방헌금을 헌납


ㅇ해방 후 김구에게 자신의 별장인 서대문구 죽첨장(현 경교장)을 사저로 무상 제공, 해당 저택에서 김구는 암살됨

  : 1945년 11월 23일 그의 별장을 찾아온 김구, 그는 임시정부 요인 1진과 함께 귀국해 죽첨장으로 찾아가

  : 김구 암살 후 유족들로부터 경교장을 돌려받고 유족들에게 밀린 임대료를 요구, 이후 주한 대만대사, 주한 남베트남 대사 등에게 대여

  : 김구 서거 1개월이 조금 지난 1949년  8월 1일, 그는 광업계 원로들을 이끌고 이승만을 만나러가고 그 쪽으로 지원


ㅇ1949년 8월 10일 자 <조선일보> 2면 하단 기사: 최창학을 “과거 조선 광산왕”으로 소개

  : 같은 달 30일 자 <조선일보> 2면 우상단 기사: 광업계의 원로급 지도자 다섯이 그달 1일 경무대로 가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금광 개발을 건의


ㅇ해방을 전후한 시점에 고리대금업에 좀 더 치중


ㅇ해방 이후 그는 재산을 크게 잃어 그가 쇠락의 길에 접어든 것은 친일파였기 때문은 아냐

  : 1949년에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입건되기는 했지만, 여타 친일파들처럼 그 역시 영향을 받지 않

  : 주요 정치인을 포섭해 빠져나갔을 거라는 후문


ㅇ1955년 강한 세무조사를 받고 인신구속

  : 명동에서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발생한 수익때문

  : 김구에게 경교장을 내준 일로 괘씸죄가 적용된 결과라는 해석도...

  : 1957년 무죄 판결


ㅇ그의 재산이 기울게 된 것은 고리대금업을 한창 하던 해방 직후에 인플레이션이 영향을 미쳤다는 설


ㅇ해방 10년 뒤에 발행된 1955년 11월 20일 자 <경향신문> 3면 하단 기사는 '왕년의 광산왕 최창학'라는 표현을 써, 이미 쇠락한지 꽤 된 상태


ㅇ당시 추정으로는 그는 구매력 기준 최고치의 자산에서 1/3정도의 자산만 남았다고


ㅇ전후인 1957년 학교법인 오산학원 이사장에 취임. 1959년 심장마비로 사망(향년 69세) 후 유족들은 경교장 건물을 삼성에 넘기면서 현재의 삼성강북병원이 됨

2025년 10월 16일 목요일

금광주식은 금보다 성과가 지속적으로 낮다(논문, 2025.7.23)

 


https://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5362671



ㅇ금광 기업들은 금에 대한 레버리지 투자와 더불어 주식 및 채굴 관련 위험에 대한 추가적인 노출을 제공


ㅇ금광 기업들은 특히 장기 투자 기간 동안 위기와 금 약세장에서 저조한 성과를 보이며, 금 강세장에서는 미미한 저조한 ​​성과를 보여


ㅇ저조한 ​​성과는 유한한 광산 수명(10y~11y)에 기인, 이는 금광 기업들이 현물 금의 수익률에 맞춰 채굴한 금을 새로운 매장량으로 지속적으로 대체해야 함을 의미


ㅇ일부 금광 기업들은 금보다 우수한 성과를 보이지만, 금광 기업 주식 포트폴리오는 개별 금광 기업들의 개별적인 상승세를 분산시켜 금괴를 직접 보유하는 것보다 투자 매력도가 떨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