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하지메 교수는 저명한 불교 연구가이자 비교사상학의 시초, 기념비적 인물
: 1951년 출간된 '동양인의 사유방법' 출간
ㅇ한중일, 동양국가의 사유방법의 차이에 주목
: 그는 불교 연구가이므로 한중일에 공통 존재하는 불교로 인식의 차이점을 연구
: 중국인 다음과 같다
: 추상보다는 구체적 지각 중시, 눈으로 그릴 수 있어야, 현세주의적
: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관심이 변화와 과정에 대한 관심보다 우선
: 보수성 - 반드시 고전과 관계시켜 고찰
: 신분제, 위계성 중시, 동시에 개인과 가족의 이익 극대화 추구
: 절충 융합, 이단을 잘 받아들이는 개방성
: 그 원인은 한자 때문(글쎄, 반대 아님?)
ㅇ참고로 일본인의 사유방식에 대한 요약
: 현실 긍정적 사고방식
: 천황 절대숭배, 국가 지상주의(고대로부터 형성)
: 논리학의 미발달로 단순 상징만을 쫒는 사고
: 죄의식의 결여(현세중심적 경향, 쓸모 있다면 용서한다)
ㅇ일본의 국가주의가 왜 고대로부터 있었는가?
: 전국시대(戰國時代,1467-1600)는 오히려 국가 지상주의와 통일에 대한 열망이 발전, 통일을 위해 싸웠다
: 분열과 지방분권 상태가 중앙집권적 국가관을 약화시켰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
: 전국시대 이전까지 일본은 통일왕조였고 태양신을 숭배하여 천황이 신의 후손이라 믿었다
: 전국시대의 다이묘와 쇼군도 결국 천황을 대신한다는 명분을 사용, 입헌군주제와 유사
: 오다노부나가-도요도미히데요시-도쿠카와이에야스 로 이어지는 통일3자 하에서 중앙집권이 강화
: 그러나 동시에 지방 중심 봉건주의도 막강했다. 이러한 병립은 특이한 구조
ㅇ일본은 "유럽에 존재했던 분권적 봉건주의와 거의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는 중앙집권적 봉건 체제"를 달성
ㅇ그는 한국인의 사유방법에 대해서도 쓴 적이 있다. 이하 그 내용
: 나카무라는 한국의 승려 중 고려의 균여(均如, 923-973)를 특별히 주목(화엄 사상)
: 의상계 화엄사상은 성기사상(性起思想)에 기반, 본래성으로 현현하고 저절로 그러한 화엄 세계 그 자체를 드러내는 개념
: 이러한 해석은 중국의 기신론(起信論) 중심 화엄과는 구별되는 특징
ㅇ불교를 받아들일 때 일본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반면 한국인은 비교해서 받아들인다
ㅇ그는 일본인과 일본 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증오심에 놀라움을 느꼈다
ㅇ일본은 과거를 잊고 화해하는 문화성
: 산악 중심의 분지 지형이 각 지방의 '번'을 성립시키고 수없는 전쟁
: 그러나 결국 다시 화해하고 연대, 대립, 합의, 배신 등을 반복
: 현실적 감정도 중요하지만 실용을 위해 이를 내려놓을 수 있다
ㅇ한국은 원수를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하여 복수하는 문화성
: 도덕적 결함을 특히 용납하지 않아
: 과거의 일을 잊지 말자는 심리가 강하다(두고보자, 괘씸하다)
: 가령 대만은 일본 식민지였지만 사이가 좋은 정도를 넘어 감사하기도 한다. 왜?
ㅇ대만이 식민 시절에 덜 당했는가
: 한국은 독립 왕조, 대만은 분절된 사회+이미 다양한 식민 지배를 받아왔다
: 일본이 한반도와 대만에 사용한 정책은 달랐다
: 일본입장에서 한반도가 전략적으로 훨씬 중요(산업화, 지배 강화)
: 대만인들에게 1945년은 새로운 억압의 시작, 국민당(KMT)의 강한 억압책과 본성인 차별
: 반면 한국인에게 1945년 독립은 민족주의 국가 건설의 기회
ㅇ인간 본위의 현실·현세주의적 경향은 한국과 중국이 비슷하다
: 현세 부정 요소의 불교, 초월적 성격의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는 변한다
: 무교(巫敎)의 현세주의적 원리를 흡수, 기복신앙으로 변화
ㅇ한국은 감정 중심주의
: 지나친 감수성, 그 핵심은 정(情)
ㅇ한국의 혈연 중심문화는 일본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하다
: 부친의 성씨를 따른다. 일본은 성씨를 바꾸기도 하고 양자도 자주 받는다
: 창씨개명은 일본인에게는 실리적이면 수용가능하나 한반도에서는 천인공노할 행위
: 한국인은 족보를 중시하고 목숨을 건다
: 한국인이 조상, 선대에 목매다는 것은 아시아 중에서도 유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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