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일 토요일

차현진 작가의 은행과 돈의 기원, 철학

- 서양은 민간에서 돈이 만들어졌고 동양은 국가주도로 만들어짐, 돈이란 서양은 민간의 계약발생론, 동양은 법정화폐로 처리


- 동양은 돈이 왕명으로 정해져 위조등을 엄벌, 따라서 돈의 품질에 신경을 안썼다(철조각에 돈이라고 왕명하면 신뢰성을 가짐)

- 반면 서양은 돈의 본질가치인 금과 은의 재질과 함량을 매우 엄밀하게 정했다. 대신 위조나 함량을 속이는데 대해 벌이 강하지는 않았다. 인플레이션으로 대응했다


- 어음(어-는 에누리, 살을 에는, 의 에에서 유래, 자르다는 의미)은 종이를 잘라서 서로 나눠가진대서 유래

: 동양은 어음은 차용증으로 교환소가 없었다

: 서양은 어음을 자주 교환해서 교환소가 있었고 이것이 은행의 기원이 됨


- 고대 영국은 어음을 쓸 때 나무조각으로 나눠서 채권자와 채무자가 나눠가짐 이를 Tally stick이라고 하는데 이중 채권자가 보유한 쪽을 'stock'이라고 불렀다

: 과거에는 채권을 stock이라고 불렀다. 최조의 주식회사는 채권과 유사한 성격이 있어서 stock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나중에 주식의 어원이 되었다


- 대부업과 환전은 유럽에서 천한 일이고 교회에서 금지했으므로 유태인만 종사했다. 이들은 기독교를 믿지 않으므로 대부업이 지옥으로 간다는 종교의 가르침으로부터 자유로웠지만(같은 유대인끼리는 대부업 금지) 천대는 매우 심했고 목숨도 위험했다. 따라서 늘 도피를 생각해야 했으므로 부동산 투자는 회피하고 금융자산으로만 부를 쌓았다.


- 종교전쟁과 왕실전쟁등을 겪으면서 왕은 사립은행에 대규모 부채를 졌는데 이에 대한 부담으로 은행가들을 조직적으로 죽였다


- 이후 절대 왕정과 식민지 경쟁 등을 겪으며 국가는 대규모 자본조달의 필요성을 절감. 국가차원에서 은행설립


: 1587년 베니스 은행(지급결제)

: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지급결제)

: 1688년 스웨덴릭스방크(발권)

: 1694년 영란은행(발권)

 

- 이로써 이전의 민간 은행이 대출(대부업)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후 은행은 지급결제와 발권으로 그 역할이 옮겨진다


- 여기서 문제가 발생, 은행의 역할은 커졌는데 한두개만 망해도 국가에 큰 문제를 일으켰음(이는 지금도 동일)


- 이 과정에서 민중과 정치인, 은행간 갈등이 발생, 남해 버블, 미시시피 버블 등의 대규모 금융사기 등이 겹치며 은행이 파산하거나 아예 정치적으로 은행을 없애기도 했음


- 그러나 은행은 정치적으로 매우 유용한 돈줄을 제공했고 경제발전에도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폐단을 막을 방법을 강구. 이 과정에서 최종 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이 설립

: 1925년 남미 버블(Poyais), 금융위기 발생(Panic of 1825) - 영국 젠킨스 수상 명령으로 영란은행 최종대부자 기능 발동

: 1866년 영국 금융위기 Overend, Gurney and Company파산 - 월터 베젓, 저서 '롬바르드 스트릿'에서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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