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일요일

생존, 그것이 모든 것, 편향에 주의하라

 

머스크는 2000년에 실리콘 밸리의 투자자 피터 틸, 공동 창업자 맥스 레브친, 이사진 이었던 리드 호프먼, COO 데이비드 색스가 기획한 쿠데타로 인해 페이팔 CEO자리에서 물러났다.

자신의 전자 결제 회사 X.com 을 페이팔의 모기업인 컨피니티와 합병한 후 페이팔에 합류한 머스크는 회사의 브랜드화와 전략을 놓고 이사진들과 정면으로 부딪혔으며, 머스크의 독재적이고 강력한 경영 스타일은 이사진에게 골칫거리였다.

머스크가 첫 번째 부인 저스틴과 오랜 신혼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 틸과 레브친은 호프만과 다른 이사진들의 지지를 얻어 그를 CEO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도록 기획했다. 나중에 호프만은 페이팔을 떠나 링크드인을 설립한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결혼한 것이 좋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페이팔에서 노예로 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 일론 머스크 - 


머스크는 잘렸지만, 계속 페이팔 지분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고, 2002년 이베이가 페이팔을 15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도움이 되었다. 이 거래로 머스크는 2.5억 달러를 벌었다. 그러나 이보다도 훨씬 머스크에게 중요했던 것은, 동료 페이팔 임원들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는 점이다.

머스크는 이베이 거래 몇 달 후 과거의 정적이었떤 레브친에게 "인생은 너무 짧다"라며 "앞으로만 생각하자"라고 말했다. 머스크는 또한 틸, 색스 그리고 다른 "쿠데타" 지도자들과도 화해했다. 이 화해는 머스크가 페이팔 주식을 현금화한 해에 스페이스X를 출범시킨 점에서 현명한 조치였다. 머스크는 톰 뮬러와 한스 쾨니히스만 같은 최고의 로켓 기술자과 그윈 쇼트웰 같은 노련한 임원을 영입하면서 스페이스X의 팀을 만들었다. 공급 업체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로켓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 회사 생존의 핵심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스페이스X는 상업 및 정부 기관 모두에게 팰컨 1 로켓을 궤도로 발사하고 보통 민감한 위성으로 구성되는 탑재물을 투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미군이 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마셜 아일랜드의 콰잘레인 태평양 환초에서 팰컨 1의 세 번의 테스트에 실패한 후, 현금이 바닥나고 있었다. 팰컨 1호 로켓은 궤도에 도달하기 전에 폭발했고, 스페이스X 엔지니어들은 설계도로 돌아가 기술적 결함을 수정해야 했다. 2008년 스페이스X는 파산 위기에 처했다. 그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펠콘 1의 4차 시험 발사가 반드시 성공해야 했지만, 머스크에게는 그 시험을 할 만한 돈이 없었다. 

좀 전에 일론이 페이팔 멤버들과 2002년에 화해한 것을 기억하는가? 이때 전 페이팔 이사진인 틸, 켄 하우리, 루크 노섹 등이 참여한 벤처 캐피털 펀드 파운더스 펀드가 2천만 달러를 투자해 구제에 나섰다.


"당시 제가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페이팔 사건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 피터 틸


"이 현금이 머스크가 4차 시험 발사에 자금을 댈 수 있게 해준 생명선이었다. 업보를 잘 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 일론 머스크


2008년 9월 28일, 스페이스X는 팰컨 1은 네번째 만에 실험에 성공한다. 머스크가 "네 번째만의 기적!"이라고 외치게 해주었다. 그 해 12월, 스페이스X는 나사로부터 16억 달러 상당의 계약을 따냈다. 회사는 국제 우주 정거장까지 12번 왕복하는 임무를 맡았다. 페이팔 동료들에게 쿠데타를 당한 이후, 머스크는 그들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면서 로켓 발사 회사를 위기에서 구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둔 것이다.

"시저가 상원에서 부르투스의 칼에 찔린 것처럼, 페이팔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암살당한 뒤에 저는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가 그렇게 했다면, 2008년 파운더스 펀드가 찾아오는 일은 없었을 테고, 스페이스X는 죽었을 것입니다. 점성술이나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업보는 진짜 있을 지도 모릅니다."

- 일론 머스크


자료 출처: New York Post, "How Peter Thiel, ‘PayPal Mafia’ ousted Elon Musk from CEO job — and saved Spac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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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사례 아마존

아마존은 닷컴 버블이 무너지기 직전 주가가 $110이었다. 그러나 2001년 버블 붕괴후 주가는 6달러까지 하락했다

2000년 아마존의 매출은 $2.7B였지만 적자가 $1.4B 였다. yoy 매출 성장은 68%지만 2001년부터는 매출 성장마저도 꺾였다. 2001년 성장은 13%였다.

회사의 현금은 바닥나가고 성장세는 꺾이고 주가 폭락은 당연한 수순이다. 2002년으로 돌아갔을 때 아마존을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마존은 이러한 지옥을 경험하기 직전인 2000년 2월에 $672M의 자금을 조달한다. 한두달만 늦었더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2001년 7월에는 AOL에 $100M의 주식을 매각했다.

당시 아마존은 닷컴기업답지 않게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영했다. 당시 CFO인 Warren Jenson의 판단이다.  

2001년 즈음에 주요 애널리스트 들이 아마존 파산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수없는 공매도가 이어졌고 자기실현적 예언이 됐을 수도 있다. 베조스 마저도 폭락전 주식 처분으로 조사받은 적도 있다.


출처: https://www.vox.com/new-money/2017/4/5/15190650/amazon-jeff-bezos-rich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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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례 소니의 베타맥스

(블로그에 있음) 소니의 베타 실패는 전략적 실패가 아닌 불확실성 때문, 마츠시다의 VHS 성공에는 운이 더 크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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