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일 월요일

맬서스, 산업혁명,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

- 산업혁명 이전 시기(=맬서스 시대, 1760~1800년이 산업혁명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에는 사망률이 늘어나고 인구가 적을 수록 인당 생활수준이 높았다. 대기근, 흑사병, 영아살해, 살인 등이 수시로 일어날 수록 개개인의 삶의 질은 높아졌다. 반면 일본이나 중국처럼 인구가 많고 농사가 잘 되던 곳의 인당 생활수준은 낮았다.

- (개개인의 생명의 위협은 별개로 하고)산업시대 이전까지는 수렵, 채집 시대와 중세, 1700년대 초까지의 1인당 생활수준에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수렵시대가 더 높았다. 영양의 섭취, 신체조건, 노동시간, 위생 수준 모든 면에서 그렇다.

- 맬서스 시대에는 인구증가를 제한하던지, 식량생산을 증가시켜야 한다. 물론 전자를 선택하는 인간은 없다. 결국 식량 생산 증가는 실패하고 이는 기아, 빈곤, 전쟁, 폭정으로 귀결되었다.

- 산업혁명의 혜택은 상식과는 다르게 비숙련 노동자가 가장 많이 얻어갔다. 자본의 생산성은 줄어들었고 토지의 지대도 낮아졌다. 토지보유자, 자본가들은 산업혁명의 과실을 아주 조금만 가져갔다. 특히 신기술 방명가들이 가져간 몫은 그들의 기여도에도 불구하고 아주 작았다.

-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상승해왔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두드러졌다. 자본의 비율도 꾸준히 상승했다. 농지의 비율이 감소하면서 나머지가 상승한 것이다. 다만 20세기 후반에 자본소득의 비율이 감소하고 노동소득의 비율이 증가한 것은 기존의 상식과 다르다(1980년 이후의 소득불평등 확대, 피케티의 이론과 대조해볼 필요가 있다. 고소득 노동자층의 등장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자본론 내용과 상충된다).

- 비숙련 노동자가 산업혁명의 가장 큰 과실을 가져갔으나 이는 한 국가 안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국가내 불평등은 완화되었지만 국가간의 불평등은 산업화 이후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 이 원인은 분명치 않다. 산업혁명 직후, 비산업화 국가들은 선진국의 기술과 인력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으며 인적 교류도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인건비가 매우 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러한 이점을 무엇하나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대분기의 시작이었다.

- 대분기의 원인을 제도적인 요인(정치와 법률 제도, 청빈주의, 특허권 보장, 저금리 등)에서 찾으려는 연구는 많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들의 이론은 과거에도 이러한 제도가 극도로 발달했던 지역(중국, 일본 등)에서 산업혁명이나 대분기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석탄과 식민지 소유(저서 '대분기'에서 지적한 대분기 원인)도 당시의 저비용의 국제무역 발달을 고려할 때 대분기를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 대분기의 유효한 설명중 하나는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엄청난 노동생산성 격차다. 이는 빈국의 낮은 임금, 기술 이전, 사회적 인프라 마련 등의 장점을 모두 상쇄할 정도로 컸다. 노동생산성 격차의 원인은 노동자 개개인의 역량의 차이는 아니고 관리자의 관리역량 부족때문으로 추정된다.

- 저임금 국가의 관리문제의 핵심은 노동자 개개인을 관리하는 시스템의 부족때문으로 보인다.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시성, 성실성, 엄격한 규율을 부재 등이다. 이는 엄청난 태업과 결근율로 나타났고 효율성은 저하되었다.

- 산업혁명 이후의 공정은 그 이전에 비해 매우 복잡하고 세분화되어 있어 특정 공정이 실패하면 전체 공정이 전혀 쓸모없게 된다. 모든 공정을 세부적으로 완벽하게 통제하는 노동자의 효율성과 관리 역량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국가간 빈부격차는 크게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질적 차이가 나타나는 신뢰할만한 연구결과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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