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전세의 본질

전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금융이다. 

적은 자본을 가지고도 금융 수단을 통해 집을 거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면 정말 선진적인 시스템이다. 전세라는 금융을 통해 거래를 활성화하고, 시장을 키우고,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오히려 전세제도로 인해 걱정되는 것은 시스템적인 리스크다. 신용 경색에 따른 연쇄 파급효과가 걱정되는 것이다. 전세가 없어지면 거래 비용이 감소한다는 말은 정말 금융의 본질을 모르는 소리다.

집 구매자는 전세라는 높은 이자율의 사금융을 썼다. 만약 전세가 없어지면 제도권 금융이 전세라는 사금융을 완벽히 대체할까? 아니다. 그게 가능했으면 애초에 전세가 생기지도 않았다. 중소기업더러 저금리로 회사채 발행해서 살아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은행이 있는데 캐피털은 그냥 없애자는 소리와 다를게 없다

게다가 은행에는 DTI, LTV 등 여러가지 대출 규제들이 있다. 전세가 없어지면 집을 사는 것과 관련된 유용한 금융수단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전세가 높은 이자율의 사금융인 이유는 이것이 임대료의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석가는 전세가 사라지면 임대료가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중간에 위치할 것이란 막연한 낙관론을 펼친다. 이게 가능할까? 그럼 초저금리 국가인 일본의 임대료율은 왜 그리도 비싼가? 애초에 현실과 맞지 않는 소리를 하고 있다.

전세가 사라지는 이유는 그냥 높은 이자를 지불할 만큼 사금융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기초 자산이 예전보다 리스키해졌으니 사금융까지 끌어쓰면서 살 이유가 없어졌을 뿐이다. 

사금융의 전주로서 이익을 챙기던 세입자들은 이제 좋은 시절이 사라지는거다. 세입자들은 사회의 주요 소비 구성원이다.이들의 이익이 줄어드는데 GDP가 높아질까? 오히려 우리는 이들 중저소득 소비층들의 실소득이 악화되는데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한다. 정부의 월세 지원 대책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사금융이 사라지면 사회적 비용이 줄 것이다? 이런건 지극히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발상이다. 오히려 사금융을 억제하면 사회적 비용은 커진다. 전세가 월세로 대체되는 건 그게 좋은 방향이라서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세를 억지로 지키려고 한다거나, 아니면 전세를 아예 없애버리겠다고 정책을 만드는 건 양쪽 다 바보같은 짓이다. 사회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제도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놔두고, 그런 변화로 인한 충격에 대비하는 정책만 만들면 된다.

진화에는 계통이 있다. 사람 눈이 이렇게 복잡하게 된 것은 이 눈이 어류의 눈에서 부터 조금씩 고쳐져 왔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습이 다소 복잡하고 어지럽다고 해서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안된다.  이걸 제대로 설계하면 정말 깔끔한 구조와 뛰어난 기능을 가진 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가? 택도 없는 소리다. 그런 짓하다가는 눈의 주인이 먼저 죽는다. 진화에는 계통이 있고, 현재의 균형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러니 도덕적 규범, 진보의 논리 같은 것으로 색안경을 끼고 사회를 재단해선 안된다.


- 마왕의 서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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