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5일 일요일

월령효과1: 아이를 학교에 일찍 보내서는 안되는 이유


내 딸의 생일은 11월 5일이고 친한 친구의 아들은 생일이 1월 1일이다. 두 아이는 모두 같은 해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나이로 나누는 우리나라의 시스템으로 볼 때, 이 두 아이는 항상 함께 갈 것이다. 그런데 보통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4세 때 내 딸은 30개월이었지만 친구의 아들은 40개월이었다. 당시 10개월은 딸아이가 살아온 날들의 33%에 해당되었다. 같은 나이지만, 두 아이의 몸과 삶의 경험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였다. 당시 아버지로서 우리 딸이 상반기에 태어난 아이들과 잘 헤쳐나 갈 수 있을지 꽤 걱정되었다. 왜냐하면 ‘월령효과’ 때문이다.


어릴 때의 몇 개월은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

심리학자인 로저 반슬리(Roger Barnsley)는 아내와 친구인 톰슨과 함께 캐나다 프로 아이스하키팀의 명단을 검토하던 중에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 했다. 통계를 보니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 중에서 1월생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두 번째로 많은 달은 2월이었고 세 번째로 많은 달은 3월이었다.

반슬리는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살펴보았다. 마찬가지로 1월생이 11월생보다 5배나 많았다. 11세와 13세 올스 타팀, 그리고 내셔널 하키 리그의 선수들을 모두 조사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생일이 빠른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료를 종합해 보았더니 어떤 엘리트 아이스하키 선수팀을 선택하더 라도, 선수들의 40%는 1~3월생, 30%는 4~6월생, 20%는 7~9월생, 10% 는 10~12월생이었다. 조사를 마친 후 그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심리학계에 몸담아 왔지만 월령효과만큼 강력한 효과를 본 적이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한 학년에서 아이들끼리 생일의 최대 편차는 1년에 가깝다. 그런데 사춘기 이전,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이 1년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캐나다는 아이스하키가 최고의 인기 스포츠이기 때문에 9세부터 될성부른 아이들을 선발한다.

당연히 9세의 1월생 아이들은 같은 나이의 12월생 아이들보다 신체발달이 꽤 유리하기에 먼저 코치의 눈에 띌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렇게 해서 엘리트팀에 선발된다면 그들은 최고의 훈련과 대우를 받으며 훈련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신체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이 경쟁을 했을 때, 상반기에 태어난 아이들은 승리를 맛볼 기회가 많아지며 자신감이 높아지는 등 긍정적 시너지를 얻게 된다. 반면 하반기에 태어난 아이일수록 패배의 경험이 많아져 좌절감이나 패배감이라는 부정적 시너지를 얻게 될 확률이 크다.

이렇게 신체와 정신적 측면 모두 상반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하반기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유리하기 때문에 생일이 빠른 아이들은 ‘기대주’로 뽑히고 승승장구의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아이스하키만 그러할까? 앞에서 소개한 반슬리의 고백을 되새겨 보자. 월령효과는 매우 강력하다. 미국에서 야구 리그는 7월 31일을 기준으 로 선수의 연령을 구분하고 일찍부터 선수를 선별한다. 2005년 메이저리 그에 출전한 미국계 선수들을 조사한 결과, 8월생은 505명이었지만 7월 생은 고작 313명이었다. 무려 200명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이는 충격적 이기까지 하다.
그러면 축구선수들은 어떨까? 영국 축구선수의 나이 구분은 9월 1일이 기준이다. 1990년 프리미어리그에 출전한 선수들 중에서 9~11월생은 288명인 반면에 6~8월생은 고작 136명이다. 두 배가 넘는 수치이다.


월령효과는 스포츠뿐 아니라 공부와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데 월령효과는 스포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어린 나이에 1년 차는 신체뿐만 아니라 지능, 인식, 태도 등 정신영역에서도 차이가 나고 이는 바로 학업 성취도의 차이로 이어진다.
경제학자인 켈리 베다드(Kelly Bedard)와 엘리자베스 듀이(Elizabeth Dhuey)가 4학년의 TIMSS(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연구) 성적을 조사한 결과, 나이가 같더라도 생일이 빠른 학생들이 생일이 늦은 학생들보다 4~12점이나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는 생일이 빠른 학생들은 상위 18%에 속하지만 생일이 늦은 학생들은 상위 68%에 머문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향은 한 사람의 삶에서 언제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베다드와 듀이는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이며 월령효과가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4년제 대학교를 조사했다. 그런데 거기에서도 생일이 늦은 아이들의 성적이 약 11.6% 낮게 나온 것이다. 월령효과의 망령은 지독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의 홍후조 교수팀에 따르면 2006년 고등학교 1학년생의 OECD 학업성취도 국제비교(PISA) 성적과 월령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3월생이 다음해 2월생 보다 평균 20~25점이 높았다. 우리나라는 예전에는 빠른 생일이라고 하여 2월생까지는 1년 일찍 학교에 입학했다.

뿐만 아니라 국제고, 외고, 과학고 등의 엘리트 고등학교 재학생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월령효과는 강력했다. 1분기에 태어난 학생은 30.2%였지만 4분기에 태어난 학생은 18.5%에 불과했다.

종합해 보면 이렇다. 스포츠건 학업성적이건 1년 단위로 묶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하반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상반기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불리한 환경에 있다. 게다가 월령효과가 강하게 나타나고 매우 오래 지속되는 영역은 엘리트 중심의 시스템이 자리잡은 곳이다. 왜냐하면 엘리트 중심의 교육은 일찍부터 될성부른 아이들을 선별하는데 어릴수록 월령효과의 힘은 강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점은 시스템 설계를 잘못할수록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생일이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유리한 것이 통계적 사실이지만, 만약 잘못된 시스템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각 개인의 자질에 의해 차이가 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는 ‘자기 실현적 예언’이 된다.

‘자기실현적 예언’이란 시작 단계에서 잘못된 가정을 세웠을 때, 다음에 나타나는 새로운 행동이 최초의 잘못된 정의를 올바른 것이 되도록 하는 상황을 말한다. 실제로는 생일이 빨라서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 데, 원래 잘한다고 생각하여 엘리트로 선발하면 결국 그 아이는 잘 할 확률이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최초의 생각이 결국 옳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알렉스 맥킨지(Alex Mckenzie)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실패의 뿌리에는 잘못된 가정(假定)이 있다.”

사람을 평가할 때, 또는 어떠한 현상을 판단할 때에 평가대상에만 모든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된다. 내가 잘못된 가정을 가지고 평가하는지 점검하고, 평가대상이 어떠한 시스템에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덴마크는 월령효과를 잘 이해하고 있기에 교육적 차원에서 아이들의 능력에 대한 분류를 최대한 늦춘다고 한다. 최대한 월령효과가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래서 11월생 딸을 가진 아빠는 조금 걱정이 된다.

- ㅍㅍㅅㅅ, 그녀생각’s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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