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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밀은 건조한 지역, 쌀은 고온 습윤한 기후에서 자린다. 이것이 역사의 지리적 차이를 만들어
: 밀은 배수가 잘되고 서늘하고 건조한 구릉지를 선호
: 벼는 고온의 물이 많은 평평한 습지대를 선호
: 홍수에 밀은 썩지만 쌀 수확량은 3배까지 증가
ㅇ 쌀은 단위 면적당 칼리로기 밀의 2배, 이는 인구밀도도 2배로, 이모작이면 4배
: 인당 하루 2,000kcal 소비, 5인 가족은 3,000m² = 1/3헥타르가 필요, 2모작이면 절반의 땅만 필요
ㅇ 그러나 벼는 밀보다 두 배 이상의 노동이 필요
: 논을 준비, 모종 배양, 모내기, 물관리, 치수, 관개, 잡초제거, 수확, 탈곡, 등등
: 특히 진흙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기계화가 어렵다
ㅇ 밀과 쌀은 지역별로 정치, 문화, 경제 면에서 차이
ㅇ 밀이 만드는 정치적 차이
: 밀은 비만 오면 되고 강물, 관개 등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 중세 유럽은 관개 인프라 투자가 불필요, 각 가구가 자신만의 농지를 관리
: 분권화된 국가의 출현
ㅇ 쌀이 만드는 정치적 차이
: 통제된 관개와 홍수 관리가 필요
: 관개용 운하, 제방, 저수지 등 공동의 노력이 필요
: 강줄기의 상류와 하류의 충돌 조율, 반드시 통일된 중앙집권 필요
: 마을 전체가 파종과 홍수 일정을 동시에 조정
: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집단체제, 대규모 협력 필요
ㅇ 문화적 차이
: 서양인은 동아시아인들보다 더 개인주의적
: 서양 기독교는 모든 생명과 영혼의 가치를 강조, 개개인의 권리는 소중하고 보호해야
: 한편, 중국 유교는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고 사회의 이익을 최우선시
: 동양은 주변으로부터의 체면에 더 민감한 사회
ㅇ 실험 - 중국 - 민족적으로 동일하나 북부는 밀, 남부는 쌀을 더 많이 재배
: 심리 테스트 - 벼농사 지역 출신은 밀 사람들보다 문화적으로 더 상호의존적
: 밀농사 출신은 개별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춰 사고, 쌀을 먹는 사람들은 보다 전체론적으로 생각
: 벼농사 지역은 밀농사 지역보다 사회적 규범이 더 엄격
: 벼농사 지역에서는 사회 질서가 강화되고, 범죄가 줄고, 마약 남용이 감소
: 동시에 벼농사 지역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이민자 수용도가 낮고 배타적, 권위주의 정부를 지지
ㅇ 비슷한 사례
: 일본의 벼농사 마을 사람들은 어촌 마을 사람들보다 사회적 평판에 더 관심
: 벼농사를 짓는 사회는 관계의 유연성과 이동성이 떨어지는 경향
: 밀을 먹는 사람들은 쌀을 먹는 사람들보다 가족을 덜 중요하게 생각, 개인이 우선
: 밀을 먹는 사람들은 부모나 선쟁의 권위가 자동이 아니며 경쟁, 획득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
: 쌀을 먹는 사람들은 밀을 먹는 사람들보다 자신의 가족과 친구에게 더 친절하지만 낯선 사람에게 배타적
ㅇ 경제적 차이
: 수확과 파종 외에 밀 농부들은 비수기에 벼보다 더 많은 시간을 확보
: 이 자유 시간은 가축을 돌보는 일(밀 재배 지역에서는 건조 곡물과 목초지가 상호 보완적), 도구나 상품 제작, 비수기에 무역등에 상업에 참여
: 특히, 밀 재배는 산업 혁명을 가속화하고 오늘날 국가의 부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 산업혁명이 본격화되었을 때, 구세계의 가용 토지 대부분은 이미 경작 중, 그러나 신세계는 아니었다
: 밀 재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 아르헨티나, 호주에서 농업은 빠르게 확장
: 토지 제한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농업을 확대를 무제한적으로 하지만 노동력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자동화 요구가 커진다
: 이것이 미국의 혁신이 농장 노동 자동화에 크게 기여한 이유
: 필요한 작은 작업을 자동화하면 수천 평방 마일에 달하는 새로운 경작지가 생긴다
: 중국, 일본, 한국 등 쌀농사 지역은 이것이 불가능
: 노동력이 너무 많이 필요했고 관개시설이 필수적이었으므로 쌀 재배지 확대는 매우 느렸다
: 벼농사는 밀에 비해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필요한 자동화 수준이 과도하게 높았다
: 특히 기계가 벼가 자라는 진흙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자동화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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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 의견에 대한 생각할 점, 또는 반론
ㅇ이모작이 가능해진 것은 서기 1000년경 중국 송나라 때 참파쌀 품종이 도입된 이후. 인구와 경제가 폭발적 성장, 송나라는 지폐를 발명하여 경제 성장을 촉진
ㅇ벼농사시 홍수는 잡초를 줄이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해. 게다가 물속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ㅇ관개가 수리 사회를 의미하지는 않아. 이집트는 수리 사회였지만, 상류 메소포타미아는 그렇지 않았다. 이집트에서는 수확량을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과세하기가 쉬웠기 때문. 갠지스 강, 양쯔 강, 황하 강, 홍하 강, 이라와디 강, 메콩 강, 차오프라야 강 유역의 평평하고 강수량이 많은 지역에서는 생산량을 예측하기 쉬웠기 때문에 과세를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었고, 예측 가능성이 낮은 메소포타미아보다 수리 사회로의 전환이 더 일관되게 이루어졌을 것
ㅇ기장이 고대 중국에서 더 흔한 작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있음. 기장의 필요량과 재배 지역이 밀과 비슷하고, 중국 북부는 주로 밀과 빵을 생산하는 지역
ㅇ이 주장은 프랑스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의 저서 『생활의 구조(Les Structures du Quotidien)』(『물질문명, 경제, 자본주의』 1권)에서도 자세히 다뤄진다. 그는 대부분의 동일한 주장을 펼치며, 그 논리를 신세계의 옥수수에까지 확장. 전통적인 옥수수 작물 또한 헥타르당 상당한 칼로리를 생산하지만, 밀보다 노동량이 훨씬 적기 때문에, 잘 먹고 건강한 인구가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ㅇ감자가 판도를 바꾼 결정적인 요인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감자는 신대륙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훨씬 최근의 일이다. 감자는 역사적으로 다른 작물과 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재배. 예를 들어 1840년대 기근 이전 아일랜드에서는 융기된 모판 재배가 있었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1830년대에 전체 칼로리의 ⅔를 감자에서 섭취했고, 유럽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들 중 하나. 이러한 의존성 때문에 감자 기근이 그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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