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형제보다 훨씬 이전에, 수많은 다른 기업가들이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시도했습니다.
다양한 모델을 실험하며 어떤 것이 작동할지 알아보려 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독일 발명가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이었습니다. 1896년 8월, 릴리엔탈의 글라이더가 50피트(약 15미터) 높이에서 날아가던 중 갑자기 돌처럼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의 목이 부러졌죠.
그는 다음 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반드시 희생은 필요하다."
가비 깅그라스(Gabby Gingras)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반면 촉각은 완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드문 유전적 질환 때문에 신체적 통증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녀의 삶은 끔찍했습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가비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유치가 나기 시작하자, 가비는 입 안을 찢었습니다. 통증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멈추라는 신호를 받지 못했고, 부모님은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비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애는 손가락을 피가 나도록 물거나, 혀를 껌처럼 씹었습니다. 혀가 너무 부어서 10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혀가 부어서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통증이 느끼지 못하는 가비는 눈을 심하게 긁어서 의사들이 일시적으로 눈을 꿰매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그녀는 어린 시절의 자해로 인해 법적 시력을 잃었습니다.
통증은 끔찍합니다. 하지만 통증 없는 삶은 재앙입니다.
포드의 오리지널 모델 T에는 100평방피트 이상의 목재가 사용되었습니다. 수백만 대의 자동차에 곱하면 엄청난 양의 목재와 목재 찌꺼기, 톱밥이 만들어졌죠.
헨리 포드(Henry Ford), 항상 기업가 정신이 강했던 그는 이 찌꺼기를 무엇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결국 숯으로 만들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킹스포드 챠콜(Kingsford Charcoal) 회사가 시작되었고, 오늘날 110년이 지난 지금도 바베큐 시장에서 8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블랙록의 CEO인 래리 핑크(Larry Fink)는 한 번 세계 최대 국부 펀드의 매니저와 저녁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펀드의 수익 성과 목표는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성과는 어떻게 측정하나요?"라고 핑크가 물었습니다
매니저는 "분기별로요.”라고 답했습니다.
이것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JFK와 재클린 케네디는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1955년, 결혼 후 2년 만에 JFK는 아버지에게 이혼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미쳤구나! 너는 언젠가 대통령이 될 텐데, 이혼은 모든 것을 망칠 거야! 안된다.”
JFK는 자신과 재키가 모두 행복하지 않다고 다시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어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모른는게냐? 사람들이 네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야!”
미국 도시에는 180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896년, 워싱턴 DC는 말의 생계가 위협받는다며 자동차를 금지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컬럼비아 특별구 위원들은 자동차로 인해 마부 직업 안정성이 훼손된 지금, 말이 자동차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의를 내렸다."
변화는 쉽지 않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휴전 조약의 일부 조항은 독일 군사력을 해체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수백만 톤에 달하는 전쟁 장비들이 파괴되거나 독일로부터 소유권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후,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군대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가장 빠른 탱크, 가장 강력한 공군과 포병, 가장 정교한 통신 장비, 그리고 최초의 미사일까지 개발하였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오히려 군축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군축 덕분에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미국 육군 참모총장인 조지 마샬(George Marshall)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모든 것을 독일로부터 빼앗았습니다. 그래서 독일이 재무장을 할 때에는 완전히 새로운 군수품 세트를 생산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세계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현대적인 무기를 갖춘 군대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는 전례 없는 상황입니다."
기존 자원으로부터 얻는 이점도 있지만,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서도 또 다른 강력한 이점이 존재합니다. 후자는 은밀하게도 매우 강력할 수 있습니다.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의 아내인 줄리아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아내인 메리를 싫어했습니다.
1865년 4월 15일, 링컨 대통령이 그랜트에게 포드 극장에 함께 가자고 요청했을 때, 그랜트는 농담으로 “아내의 명령에 따라 집에 머물러야 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링컨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물론이오, 장군. 오랫동안 전장에서 싸우느라 집을 비웠고, 제 요청 전에 그랜트 부인의 본능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민들은 오히려 장군을 보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날 밤, 링컨은 극장에서 암살당했였습니다.
역사학자 로니 셰르노는 이렇게 적습니다:
"그랜트는 오랫동안 자신이 포드 극장에 있었다면 암살을 막았을 지, 그리고 아내가 메리를 싫어한 것이 우연히 역사의 방향을 바꾼 것이었을 지 궁금해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랜트는 자신의 예리한 전쟁 감각으로 암살자의 발걸음을 감지했을까? 더 안전을 위해 경호원을 데리고 갔을까? 아니면 늘 함께하는 조수 벡위스가 밖에 앉아 그의 상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했을까?"
중요한 역사는 작은 우연의 차이로 결정될 수 있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2000년 1월 연두교서입니다:
"우리는 새천년을 시작하며 2천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30년 만에 가장 빠른 성장, 가장 낮은 실업률, 20년 만에 가장 낮은 빈곤율, 42년 만에 처음으로 연속 재정 흑자를 달성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미국이 역대 가장 긴 경제 성장 기간을 기록하게 될 것입니다."
연설 이후 2년간 주가는 40%하락하고 13년간 이전 고점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2010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의 연두교서입니다:
"미국인 10명 중 1명은 아직도 실직상태입니다. 수많은 기업이 파산했고 집값도 폭락했습니다. 소도시와 농촌이 특히 큰 타격을 입었고,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삶이 더 피폐해졌습니다"
그 직후 2025년까지 S&P500지수는 6배 이상 올랐습니다.
갤럽은 40년 넘게 미국인들에게 “지금 미국이 제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1969년 이후 "아니오"를 선택한 평균 답변률은 63%입니다.
갤럽은 이어서 묻습니다: “현재 자신의 삶이 제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아니오” 답변의 평균 비율은 15.8%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비관적입니다.
베네딕트 에반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터넷이 사람들을 새로운 관점에 노출시킬수록, 사람들은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더 화를 내게 된다.
자료 출처: Morgan Housel, "What A World (A few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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