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회랑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ㅇ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에는 세 가지가 있다. 부재(무정부 상태), 독재(강한 국가), 통제(족쇄찬 리바이어던)
: 부재 - 레바논, 티브족, 콩고,
: 독재 - 중국, 프로이센, 대전 이전 독일, 러시아
: 통제 - 아테네, 대영제국, 미국, 스위스,
ㅇ 국가를 발전시키는 리바이어던은 세번째인 족쇄찬 상태이다
: 국가라는 괴물에게 족쇄를 채우기 위해 붉은 여왕 식의 사회와 국가간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 국가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 사회는 협력하고 집단을 조직하고 정치 참여에 경주한다
ㅇ 무정부 상태의 국가는 불안해지고 실패한다. 이는 개인의 자유를 높일 것 같지만 오해다.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를 억제한다
: 강력한 지배자의 등장은 오히려 무정부상태를 부른다
: 원시 부족, 티브족, 하와이 왕국, 무함마드 시대 등 모두 강한 지도자가 있었다
: 지도자가 권력을 추구하므로 이들이 죽거나 반란이 성공하면 권력이 해제되고 국가는 실패한다
ㅇ 독재의 리바이어던은 초반의 빠른 경제 발전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이는 고도화될 수록 번영의 속도가 줄어들고 제한되며 결국 강한 불평등으로 귀착된다
: 독재는 반란을 억압하고 자원배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독차지하려는 유혹으로 빠진다
: 자유의지는 꺾이고 민간 사회의 자생적, 독립적인 경제 활동 및 기술발전 욕구는 좌절된다
ㅇ 족쇄찬 리바이어던의 국가는 경제적 유인과 기회를 만들고 높은 수준의 실험과 모험을 가능하게 한다. 동시에 사회적 이동성을 높인다. 결과적으로 이는 국가의 발전으로 귀결된다.
ㅇ 로마 멸망 당시 남진한 게르만은 로마의 문화와 융합했다. 게르만족은 상향식이고 참여형의 다소 무정부적인 부족중심의 국가였다. 반면 로마는 중앙집권적인 관료화된 법적 전통을 가졌다. 둘은 융합하면서 족쇄찬 리바이어던의 형태를 만들었다
ㅇ 왜 서유럽, 북유럽만이 족쇄찬 리바이어던이 가능했나? 모른다
: 이들 지역은 시작도 느리고 문명 개화시기도 타 지역에 비해 밀린다. 토지도 척박하다
: 두 가지 결정적 사건은 있다
: 첫째, 5세기경 민주적 부족사회가 유럽을 장악한 점
: 둘째, 서로마 멸망후 국가와 교회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 점
: 영국은 정복자 윌리엄 이후 성공의 기미가 있었으며 대헌장은 역사적 시발점이 되었다
ㅇ 중국은 서유럽과 역사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18세기 이후 실패했다
: 중국은 일찍부터 통일왕조 및 중앙집권적 관료제가 강하게 자리잡았다
: 관료가 우선시되어 과거 제도가 실시되었고 그마저도 매관매직,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결집과 민중으로부터의 정치 참여 가능성을 제거했다
: 중국은 독재적 리바이어던의 경로를 따랐다. 법가와 유학의 가르침이 공산주의로 대체되었을 뿐
: 덩샤오핑식의 개혁개방도 하향식 지도원리 하에 있어 국가주의면에서는 중국이 변한 것은 없다
: 향후에도 중국은 족쇄찬 리바이어던으로 발전해나갈 수 없을 것이다
ㅇ 인도는 중국과 달리 민중의 참여와 국가의 책임성을 보여주는 오랜 역사를 가진다 그런데 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인도의 자유는 뿌리내리지 못했다
: 그 원인은 신분제
: 전통사회의 신분제는 자유를 억제할 뿐 아니라 사회가 국가와 권력을 다투지 못하게 만들었다
ㅇ 같은 유럽 내에서도 어느 나라는 좁은 회랑(족쇄찬 리바이어던)을 이뤘고 어떤 나라는 실패했는가?
: 국가마다 구조적 요인이 있는데 명확한 결론은 내리기 어렵다
: 왜 스위스는 족쇄찬 리바이어던을 이룬 반면 프로이센과 러시아는 독재국가가 되었는가?
ㅇ 결국 미국, 태생적으로 미국은 족쇄찬 리바이어던이다
: 건국의 아버지들은 최초로 왕정이 아닌 민주국가를 만들고 연방주의 전통을 따랐다
: 미국이 사유재산 보호와 국가의 권력간의 타협으로 이루어진 좋은 사례임은 분명
: 남북전쟁은 국가주의와 개인의 자유와의 관계를 정립하는 중요한 사건
: 남북 전쟁 이후 연방제는 약해지고 국가는 강해졌다. 길항작용이 균형을 맞춰가는 상황
: 미국 연방은 주의회를 무시할 수 없고 동시에 사법부와 선거의 통제를 받는다
ㅇ 종이 리바이어던 - 개발도상국의 독재국가, 역량은 부족하나 독재를 지향하여 발전이 없다
: 시민 의식 증가에 따른 사회혼란을 받아들일 역량이 없고 두려워한다
ㅇ 20세기 초 독일의 교훈
: 18~19세기 독일은 훌륭한 시스템을 가졌고 좁은 회랑을 나아가는 중이었다
: 국가 전체적으로 바이마르 공화정에 반대했다
: 비스마르크가 가장 대표적, 그는 국가를 프로이센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군사 조직으로 봤다
: 사회와 국가의 타협, 경쟁, 균형이 아닌 억압, 탄압의 역학과 전통이 만들어졌다
: 이러한 역사가 1차 대전을 만들고 그 패배의 굴욕이 다시 전통과 융합하며 나치가 탄생한다
: 원인은 프로이센 지주들이 민주적 개혁과 근대화를 두려워했던 데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내 생각: 각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정치적 접근은 도덕적 당위론에 빠지기 쉬워서 이 책을 볼 때 처음에는 우려스러웠다. 개인의 자유가 최고다 는 식상하고 정의로워 보이는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본 저는 대분기의 저서가 가리키는 경제적, 수치적 접근보다는 문화와 제도적 접근방법을 택했고 국가 대 민간사화의 견제와 균형이 중요함을 가리켰다. 수치적 증명보다는 통찰과 직관에 의거한 면에서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한 점은 생각해 볼 만하다
내 생각: 각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정치적 접근은 도덕적 당위론에 빠지기 쉬워서 이 책을 볼 때 처음에는 우려스러웠다. 개인의 자유가 최고다 는 식상하고 정의로워 보이는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본 저는 대분기의 저서가 가리키는 경제적, 수치적 접근보다는 문화와 제도적 접근방법을 택했고 국가 대 민간사화의 견제와 균형이 중요함을 가리켰다. 수치적 증명보다는 통찰과 직관에 의거한 면에서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한 점은 생각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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