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welry 어원, 부(富), 그리고 튤립
ㅇ 중세 유럽의 게토에 수용된 유대인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살해, 협박, 추방 등을 당했다
ㅇ 이러한 태도는 국가(왕정)로부터도 이어졌다
ㅇ 늘 피난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유대인 입장에서 부동산 소유는 위험, 동산으로 이동
ㅇ 동산 중 보석을 주로 활용, 당시 유대인 박해, 추방시 금, 은, 현금 등은 몰수되었기 때문
ㅇ 보석은 귀족을 제외한 당시 사람들에게 생소했고 부의 수단으로 잘 인식되지 않아서 피난시 보석을 활용
: 벨기에 앤트워프는 이 때 피난온 유대인이 다이아몬드의 장으로 활용
: jewelery의 어원이 유대인 'Jew'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과 다름
: 프랑스어 기쁨을 뜻하는 'joel'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유력
ㅇ 15세기 에스파냐 왕국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을 완전히 쫒아냄(레콩키스타)
: 동시에 유대인을 이단으로 선포하고 개종 or 추방령(알함브라 칙령, 1492년 3월)
: 개종하더라도 위장 개종으로 처벌당하는 경우가 많아 피난이 우세
: 유대인으로부터 빌린 전쟁자금 때문이라는 설
: 이슬람은 유대인에게 관용을 베풀어 이베리아반도에 유대인이 많았다
: 알함브라 칙령 당시 에스파냐 인구의 % 약 25만명의 유대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
ㅇ 유대인은 이슬람 땅으로 많이 이동, 포르투갈로 이동한 유대인도 많았는데 이후 자유로운 네덜란드로 이동
ㅇ 네덜란드는 유대인 유입 이후 해상세력의 강자로 등극
: 청어 사업으로 초기 자본 형성(금식일 청어 섭취, 암염이 아닌 천일염 사용)
: 발트해 해양운송시 플루트선(갑판이 작고 몸이 뚱뚱한 상선, 덴마크 해협 세금 때문)
: 타 왕국의 네덜란드 견제 이후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인도, 중국 무역에 집중
: 당시 중국의 은본위제로 은이 비쌌으므로 유럽과 재정거래 + 도자기
: 중국은 성공회 신부를 파견하는 영국보다는 무역만 하는 네덜란드를 선호
ㅇ 대량의 유동성이 네덜란드로 유입되면서 튤립 버블이 시작
: 1637년 2월 튤립 버블 붕괴
: 그러나 튤립버블은 매우 과장된 이야기, 남해회사나 미시시피 회사 버블이 진실인 것과는 사정이 달라
: 튤립 거래도 소수의 상공인들만 참여
: 원래 알뿌리 화훼는 가격이 급등락하는데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
: 많이들 보는 튤립차트에서 1636년 후반부 이후의 가격은 실제가 아님, 거래된 사례가 거의 없음(선물 거래 방식 때문)
: 무엇보다 17세기 전반의 네덜란드 경제가 견조했음. 튤립 버블에 따른 경제난은 존재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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