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7일 월요일

몬티 홀(Monty Hall) 문제

문제


ㅇ 닫힌 문 3개가 있는데 한개는 자동차, 두개는 염소가 있다. 당신이 문을 열면 상품을 얻는다.

ㅇ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자는 자동차가 어느 문 뒤에 있는지 알고 있다.

ㅇ 당신이 문을 선택하면 (그 문은 닫힌채로) 사회자는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두 문 중에 염소가 있는 문 (아무거나) 한 개를 열어 확인시켜준다. (사회자는 염소가 들어 있는 문을 알고 있고 임의로 선택한다)

ㅇ 그 후 사회자는 당신에게 방금 선택한 문을 다른 문으로 바꿀 것인가 기회를 준다.

ㅇ 바꾸겠는가?






정답: 바꾸는 것이 이익, 선택을 바꾸면 차를 선택할 확률이 1/2에서 2/3로 올라가기 때문



대부분이 사람은 직관적으로 중간에 선택을 바꾸던 말던 확률은 1/2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초의 선택 뒤에 염소가 있던 차가 있던, 염소가 있는 문은 한 개 또는 두 개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오류의 원인은 맨 처음 어떤 문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사회자가 공개하는 문이 달라진다는 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바꾼 문이 정답일 확률이 아니라 내가 처음에 고른 문이 오답일 확률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은 처음의 선택을 유지한다. 앞서 언급한 기대값은 물론 심리학적으로도 그런데 사람은 이득보다 손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전망이론). 괜히 바꿨다가 원래 선택한 문에 자동차가 있었으면 매우 억울하기 때문이다.


선택을 바꾸면 확률이 올라가는 이유는 이것이 베이즈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선택을 무조건 바꾼다고 가정하자. 만약 첫번째 선택이 실제로 염소였는데 바꾼다면 반드시 차를 얻는다. 반대로 첫번째 선택이 차였는데 바꾼다면 염소만 얻는다. 무조건 선택을 바꿀시 염소 확률이 1/2이다. 이는 처음에 염소를 선택할 확률 2/3보다 훨씬 낮은 것(차를 뽑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보다 직관적 설명은 이렇다. 맨 처음 내가 가짜를 고르는 순간(2/3확률) 사회자가 나머지 가짜를 골라줄 것이기에 다른 카드로 바꾸면 무조건 정답이므로 그대로 2/3확률. 나머지 확률은 계산할 필요도 없이 1/3확률. 말하자면 내가 처음 가짜를 고를 확률이 더 높기에 다른 나머지 문을 사회자가 가짜로 확인해준다면 역설적으로 제일 마지막에 남은 문이 진짜일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2021년 12월 26일 일요일

튤립 버블의 진실

https://mises.org/library/truth-about-tulipmania


ㅇ 브라운 대학 경제학자 피터 가버에 따르면 튤립버블은 광기라기보다는 유동성 효과때문


ㅇ 1630년대 네덜란드 화폐 공급의 급격한 증가가 버블의 원인


ㅇ 동로마 멸망후 기축통화 선정 과정에서 유럽각국의 화폐 신뢰성이 훼손

- 무역이 발전한 네덜란드는 이것이 큰 문제였고 해결하기 위해 암스테르담 은행이 설립(1609년)


ㅇ 이후 은행 이체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은행권에 대한 수요가 증가


ㅇ 암스테르담의 무역과 은행업이 자리잡으면서 신대륙과 일본의 은이 네덜란드로 유입

- 당시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은제련법이 발달해 은생산이 급증, 세계2위 생산국

- 당시 일본 수출품의 절반이 은


ㅇ 가격혁명(인플레)의 시기 도래


ㅇ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인디오를 수탈했다면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수탈한 셈


ㅇ 이에 따라 대량의 유동성이 네덜란드로 유입되었고 튤립버블의 단초가 됨

2021년 12월 18일 토요일

고배당주에 대한 미신(김단테)

 https://m.blog.naver.com/mynameisdj/222192090434


요약

: 고배당주는 특정 스타일 전략의 하나일 뿐, 딱히 우월하지 않아

: 세금에서 불리

: 똑같이 복제하면서도 세금은 덜낼 수 있어

MMT에서 재정과 민간의 부의 증가 회계처리(균형재정론은 틀렸다)

 




수메르,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의 이자율(금리) 흐름

 



스케일(Scale,책), 유용한 그림들

ㅇ생명체 구조는 에너지 효율성을 달성하도록 설계된다

생물학적 망은 최대한의 공간을 채우도록 낭비를 없애며 그 결과 이차원 유클리드가 아니라 삼차원 부피의 프랙탈 처럼 표현된다. 망성능을 최적화함으로써 생기는 이 추가 차원은 생물이 사차원에서 활동하는 양 만든다, 즉 3차원 공간에 있지만 효율성을 위해 3.5차원 이상처럼 구성된다. 이는 4차원 형태를 만든다. 이 때문에 1/4 제곱의 법칙이 생명체 구성원래 곳곳에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면적보존분지(혈관이나 관다발의 모든 면적이 심장-말단이 동일) 가 있다.



ㅇ1950년 이래로 미국 주식시장에서 거래된 2만 8,853개 기업 중에서 2009년까지 2만 2,469개(78퍼센트)가 사망했다. 그중 45퍼센트는 다른 기업에 인수되거나 합병되어 사라졌고, 파산하거나 청산된 것은 약 9퍼센트에 불과하다. 3퍼센트는 개인 소유가 되었고, 0.5퍼센트는 차입 매수를 거쳐 사라졌고, 나머지는 '기타 이유'로 사라졌다.

그림 71~74는 이 자료 집합에 해당하는 기간(1950~ 2009년)에 태어나고 죽은 기업들의 생존과 사망 곡선을 수명의 함수로 나타낸 것이다. 파산과 청산을 겪은 기업들의 곡선, 합병과 인수를 겪은 기업들의 곡선을 따로 나누었고, 각각을 매출 규모에 따라서 세분했다. 명확히 볼 수 있듯이, 자료를 어떻게 나누든 곡선들의 전반적인 구조는 거의 동일하다. 기업들을 개별 사업 부문으로 나누어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사례에서 생존 기업의 수는 상장된 직후











2021년 12월 11일 토요일

자유권을 열렬히 스스로 포기하는 사회

 Any society that would give up a little liberty to gain a little security will deserve neither and lose both.

(약간의 안전을 얻기 위해 약간의 자유를 포기하는 사회는, 자유도 안전도 가질 자격이 없으며 둘 다 잃을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한 모토

1984(조지 오웰), 전체주의 속의 빅브라더

윈스턴: "빅 브라더가 존재합니까?"


오브라이언: "물론 존재하지. 당(party)도 존재하고 말일세. 빅 브라더는 당의 화신일세."


윈스턴: "제가 이렇게 존재하듯 존재한다는 겁니까?"


오브라이언: "자네는 존재하지 않네. 윈스턴."






다시 한번 무력감이 윈스턴을 엄습했다. 그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이론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상상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말장난일 뿐이었다.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논리적으로 맞기나 하는 것인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는 오브라이언이 반박할 수도 없는 괴이한 논리로 자신을 꼼짝 못하게 하자 잔뜩 주눅이 들었다.

윈스턴: "저는...  제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윈스턴이 힘없이 말을 이었다.

윈스턴: "저는 저 자신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저는 태어났고, 언젠가는 죽을 겁니다. 팔다리도 있습니다. 저는 공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물체든 제가 차지한 부분을 동시에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로도 빅 브라더는 존재합니까?"

오브라이언: "그런 건 중요하지 않네. 어쨌거나 그분은 존재하고 있다네."

윈스턴: "빅 브라더도 죽나요?"

오브라이언: "물론 죽지 않지. 어떻게 죽겠나? 다음 질문은 뭔가?"



2021년 11월 3일 수요일

노비근성과 샤머니즘

 ㅇ 조선의 노비 비율 30~70%, 조선초기부터 18세기까지 꾸준히 증가, 이후 영조의 종묘종양법(모계를 통해서만 노비 신분 세습, 그 전에는 부모의 한명만 노비여도 자식은 노비)


ㅇ 중국은 송나라 태종 노비제 폐지, 그외 서양은 흑인을 제외한 노예제 폐지가 오래되었음, 왜 조선은 노비제 자체를 폐지 못했나?

- 인권사상에 따라 노예제가 폐지된 것은 아님


ㅇ 조선은 1801년에 일부 노비해방, 1887년 노비세습금지, 1894년 노비제 해체 했으나, 양반은 반발로 일부 존속해왔다(신규노비는 금지, 단, 기존 노비는 인정하는 등)

ㅇ 노비제의 완전한 해방은 한일 합방 이후, 다만 농촌 지역은 일제시대까지 일부 노비제가 있었음


ㅇ 흥부전: 3번째 흥부 박에서 노비 300명, 놀부 박에서는 조상이 나와 노비를 뺐어감, 조선에서의 성공이란 노비를 대량으로 소유하는 것


ㅇ조선은 노비는 죽어서도 노비, 신분이 죽어서도 이어진다

- 이익(성호) 죽은 노비도 노비취급

- 노등 도 죽은 노비를 계속 노비취급

- 신채호, 노예신분은 죽어도 노예이므로 조선인은 일본의 예속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신채호, 꿈하늘)


ㅇ 샤머니즘(이는 유교와 다름)

- 사후세계 결여

- 현세의 연장으로서의 사후

- 정의의 심판자 결여

- 부와 권력의 종교성


2021년 10월 31일 일요일

최저임금은 가난한 사람을 희생시켜 부자를 돕는다

최저임금은 가난한 사람을 희생시켜 부자를 돕는다



뉴올리언스 로욜라 대학의 경제학 교수이자 미제스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월터 블락은 아나코-캐피탈리즘이 하나의 이론으로 성립하는데 머레이 라스바드 다음으로 가장 많은 업적을 세운 대표적인 이론가이다. 1972년에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블락은 500개 이상의 논문, 24권의 책, 그리고 수천 편의 에세이를 저술했다.


원문 : Do You Want to Stab the Poor and Help Labor Unions? (게재일 : 2014년 1월 17일)

https://www.lewrockwell.com/2014/01/walter-e-block/want-to-stab-the-poor-and-help-labor-unions/




번역 : 김경훈 연구원

https://miseskorea.org/wire/?mod=document&uid=609



최저임금의 실체는 그것이 고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업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고용주에게 누군가를 고용하도록 강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법에 규정된 금액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 고용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없는 사람만 말해주고 있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10달러로 정해져 있다고 해도, 이 법은 그 어떤 고용주에게도 시간당 10달러의 직원을 고용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9.99달러 이하의 직원의 고용을 금지할 뿐이다. 이 불편한 진실은 경험적 증거의 문제가 아니다. 오스트리아학파라는 특정한 경제학파에서만 적절한 결론도 아니다. 순수한 논리적 추론일 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최저임금은 고용의 법이 아니라 실업의 법이다.


경험적 연구(인간행동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경제사 연구)를 통해 최저임금에 대한 다른 견해를 내세울 수 있을까? 여기서 경제학자들의 의견 충돌이 발생한다. 어떤 학자들은 최저임금이 실업을 전혀 유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시간당 10달러의 최저임금이 강제되는 환경에서도, 생산성의 수준이 시간당 6달러인 사람은 여전히 고용을 유지할 것이고 시간당 10달러를 지불받을 것이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고용주가 시간당 4달러의 손해를 입는다고 해도 말이다. 물론 이러한 '경제학자'는 분명 소수이다. 다른 유형의 형편없는 경제학자들은 실업 효과가 매우 미미할 것이라 주장한다. 일부 미숙련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아예 취업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많은 수의 미숙련 노동자가 여전히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더 많은 임금을 받을 것이다. 그 다음 유형의 주장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의 지지를 받는데, 최저임금으로 인해 낮은 생산성을 가진 사람들의 실업률이 증가할 것이고, 미숙련 노동자들의 임금은 고용주들이 생산요소(미숙련 노동)에 매겨진 시장가격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만 일시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이 모든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간행동학적으로 볼 때, 다른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 최소 한 명 이상의 노동자가 가진 생산성 이상으로 설정된 최저임금은 그것이 없었을 때에 비해서 실업률을 상승시킨다. 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주장은 반박이 불가능하고, 반증이 불가능하고, 테스트할 필요도 없다. 이 주장은 필연적으로 사실이고, 현실 세계에 실제로 효력이 있는 지식을 제공한다. 경제학 법칙이라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가설을 테스트한 후 반증되지 않았다면 잠정적으로 받아들일 뿐인 주류 학계의 논리실증주의자들과 달리,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은 인과적으로 현실적이다.


최저임금법을 지지하는 공개서한을 작성한 일부 경제학자들이 최근에 경제학 입문서와 고급 교과서를 펴낸 바 있는데, 하물며 그 책들조차 최저임금법이 미숙련 노동자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일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조차 자기들의 생각과 교과서적 정설이 노골적으로 모순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나는 그들이 이러한 모순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을 묵연하게 바라보며 큰 즐거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의 윤리적 성격은 어떠한가? 마찬가지로, 이 주제에 대해서도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최저임금법은 성인들이 서로 합의하여 무언가를 할 권리를 침해한다. 예컨대 고용주와 노동자는 시간당 5달러의 임금 계약에 동의할 수 있다. 우리의 해로운 법이 도입된 상황에서는 둘 다 범죄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누군가 당신에게 시간당 5달러의 노동임금을 지불하기로 하고, 당신이 그 제안에 동의하는 것이 범죄라면 그것은 전형적인 '희생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성매매, 마약, 도박 등 다른 유형의 피해자 없는 범죄들을 점차 합법화하는 과정에 들어섰다. 많은 사람이 피해자 없는 성인의 행동은 '선택'의 문제라는 견해를 취하기 시작했다. 최저임금법은 우리 사회의 이러한 도덕적 진보에서 후퇴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최저임금법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은 바로 '피해자 없는 범죄'의 합법화를 옹호하는 이들이다.


'온건한' 경제학자들이 옳다고 가정해보자. 즉, 소수의 사람들은 분명 일자리를 잃겠지만, 압도적인 대다수는 더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엄청나게 많은 미숙련 노동자들이 있는) 도심에 가서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했다고 가정해보자. 사람이 20명 있는데, 나는 그 중에 한 명을 붙잡아 총구를 들이밀고 1만 달러(50주 동안 한 주에 40시간 씩 시간당 5달러로 일하면 받는 금액)를 갈취했다. 그리고 나머지 19명에게 그 돈을 골고루 나눠주었다. 이제 나는 최저임금을 지지하는 온건한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정확하게 같은 효과를 사회에 실현시켰다. 다시 강조하지만, 온건한 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법이 오직 극소수에게만 해가 될 것이고,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준다고 주장한다. 나는 도심에서 1명을 희생시켜서 19명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었다. 이제 법은 나에게 무어라 말할까? 물론, 나는 범죄자로 수배될 것이고, 당연히 이는 매우 적절한 조치이다.


여기서 이유를 구체적으로 따질 필요는 없지만, 미국에서 백인의 생산성은 흑인의 생산성보다 높다. 흑인의 실업률이 백인의 실업률보다 약 두 배 정도 높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 원인을 분석할 수는 없지만, 중장년층 노동자의 생산성은 막 시장에 진입한 청년의 그것보다 높다. 청년 실업이 중장년층 실업보다 약두 배 정도 높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흑인 청년의 실업률이 중장년층 백인의 실업률보다 대략 4배인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 모든 불행은 최저임금법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는데 기여하기는 커녕 그저 진입장벽이자 장애물로 작용하며 발생한 결과물이다. 통계를 사랑하는 최저임금 지지자들은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는 자료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법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누가 범죄로부터 이익을 얻는가?(Quo bono?) 어떤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만, 최저임금법으로부터 가장 많은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대체로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숙련된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할 때, 고용주의 즉각적인 대응은 갑작스럽게 더 비싸진 생산요소인 숙련 노동에서 벗어나 미숙련 노동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예컨대, 100명의 숙련 노동자와 100명의 미숙련 노동자가 만들 수 있는 제품의 수가, 50명의 숙련 노동자와 200명의 미숙련 노동자가 만들 수 있는 수와 동일하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제조업과 생산에서 이러한 고정비율이 존재하는 것은 매우 희박한 사례이다. 노조의 입장에서 [자기들 중 50명이 해고당하고 100명의 미숙련 노동자로 교체되는] 만일의 사태에 가장 잘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가지 방법은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에 대응하여 사측이 새로 고용한 미숙련 노동자들을 비노조원(scrabs)이라고 몰아붙여 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새로 고용된 직원들은 기존의 직원들과의 세력 싸움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없는 소수집단 구성원으로 전락할 것인데, 소위 리버럴이나 '진보주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을 상대로 인구학적 투쟁을 감행하는 것은 정말로 사악해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노조원들은 맞서 싸울 수 있다. 타이어에 불을 붙이고 야구방망이로 적들의 머리를 깨부수며 저항한다면, 사측은 회답을 해줄 것이다. 글쎄, 이것도 그렇게 바람직하지는 않아 보인다. 노동조합은 까무러칠 만큼 기발한 대응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최저임금법이다. 이 법이 바로 노동조합이 마주한 진퇴양난의 해결책이다. 경쟁을 제거하기 위해 시장에서의 가격을 통제하는 것보다 훌륭한 방법은 없다. (만약 당신이 햄버거 제조사이고, 정경유착(crony capitalism)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면, 피자나 핫도그같은 경쟁 제품의 가격을 10배 정도 인상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다. 대충 건강상의 이유로 규제가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그래서 최저임금법으로부터 혜택을 받는 또 다른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은가? 그러한 물음은 청년 실업과 미숙년 노동자의 실업으로부터 누가 혜택을 받는지 묻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실업이 우울증과 범죄를 양산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마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교도관, 경찰 정도가 최저임금법의 혜택을 받는 후보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일자리가 최저임금법을 통해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최저임금으로 인한 범죄의 증가가 그들에게 더 많은 일감을 주고, 따라서 금전적 형편을 개선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가능성에 주목하는 경험적 연구는 큰 성과를 거둘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저임금법은 순전히 사악하고 해로울 뿐인데 왜 존재하는 것인가? 우리는 위에서 한 가지 이유를 이미 살펴보았다. 바로 노동조합원과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 말이다. 또 다른 이유는 경제학적 무식의 만연이다. 심지어 고집이 엄청나게 센 무식이다. 나는 로욜라 대학교에서 1학년을 상대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보통 개강일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 대체로 과반수가 최저임금법에 찬성하는데, 이는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정 반대로, 학생들 대다수는 최저임금법이 정말로 임금을 올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준다고 믿는다. 학생들은 최저임금이 바닥을 끌어 올리는 상향 평준화라고 생각한다. 이 법을 통해 모든 사람이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은유는 잘못된 것이다. 최저임금을 위한 더 나은 은유는 그것이 장애물, 즉 육상경기의 점프대라는 것이다. 최저임금으로 규정된 임금의 수준이 더 높을수록, 취업을 위해 '뛰어드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최저임금은 특히 청년들이 고용 사다리의 최하위 단계에 있는 현장에서 가치 있는 직업교육을 받고 그에 따라 자신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기회를 박탈한다. 만약 최저임금이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면, 나는 왜 우리가 최저임금에 그토록 쪼잔하게 구냐고 학생들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최저임금을 시간당 10달러 혹은 12달러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는가? 왜 일부 급진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시간당 15달러 이상으로 인상하지 않는가? 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에 그토록 쪼잔하게 구는가? 시간당 1000달러, 또는 시간당 10,000달러로 인상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여기서 학생들은 최저임금이 그렇게 오른다면 인구의 대다수가 실업자가 된다는 점을 인지한다. 그 정도로 높은 생산성을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망하건대, 시간당 7달러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4달러의 생산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고용 장벽이라는 점을 이해할 실마리가 잡히게 된다.


1949년, 미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40센트에서 70센트로 상승했고(이는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급격한 상승률임), 우리 사회는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무인 자동 엘리베이터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미숙련 노동자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숙련된 엔지니어들에게 큰 혜택을 주었다. 물론 이러한 전환은 1년만에 시행된 것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 이루어졌지만, 원인은 최저임금의 인상이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가 해고되기 이전에는 정말로 임금을 올려줄 것이다. 만약 미국의 최저임금이 2014년 기준 7.25달러에서 공포스럽게도 15달러로 상승한다면, 무인 주문 시스템이나 자동 튀김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력은 여전히 경쟁력 있겠지만, 미숙련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주유소의 아르바이트 자리는 말 그대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미국의 현행 최저임금을 7.25달러에서 조금도 올려선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7.25달러를 유지해서도 안되고, 그것보다 더 줄여서도 안된다(일부 정치인들은 여름 휴가철에만 일시적으로 혹은 고등학생들에게 국한하여 최저임금을 시간당 4달러 정도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최저임금법이 상향 평준화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라는 것을 인정할 뿐이다). 우리는 대신에 최저임금을 완전히 폐지해야 하고 마치 소금을 뿌리듯 완전히 그 흔적을 제거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최저임금의 입법 자체를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최저임금법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 법을 집행한 경찰들, 그리고 그들에게 승인을 내린 판사들을 비롯해 최저임금에 책임을 지는 모든 사람을 범죄자로 취급해서 감옥에 구속시켜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총구를 들이밀고 직업을 잃게 만든 사람을 그렇게 처벌하지 않는가? 최저임금법처럼 암묵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비자발적 실업을 양산하는 법이 아니라, 극악무도하게 노골적으로 양산하는 법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즉, 다음과 같은 법률이 제정되는 것이다: 흑인을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백인을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청년을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노인을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유대인을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기독교인을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동성애자를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성애자를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남성을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여성을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한 법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 집행한 경찰들, 승인을 내린 판사들, 그외에 이러한 법에 관여된 모든 책임자를 우리가 어떻게 대하겠는가? 정확하게 우리는 그들을 처벌할 것이다.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그들을 가장 강력하게 응징할 것이다. 왜 최저임금법의 책임자들에게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가?

2021년 10월 11일 월요일

자아(=뇌와 신경계)는 움직임을 위한 예측 프로세스

식물이 신경계가 없는 이유(갖고 있다가 없어진 놈들도 있음)는 운동성이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성게는 어린 개체일때는 올챙이처럼 생겨서 신경이 존재하지만 암벽에 붙어서 움직일 필요가 없어진 다음부터는 신경계가 사라진다

즉, 신경은 운동에 필수 요소다

세포마다 신경이 분포(심장처럼 자율로)할 수도 있지만 다세포 생물로 진화할수록 신경들도 모여서 신경계로 뭉친다. 신경을 한곳에 모아 신경계로 관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다양한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극한에 모인 것이 동물의 뇌이다.

신경계는 외부 세계의 변화를 인지하면서 다양한 요소를 계산한다. 이는 마치 트리구조와 비슷하다. 수없이 많은 경험을 통해 신경계는 외부 환경 입력 -> 운동 출력의 디시전 트리를 만들고 학습한다. 이는 급작스런 반응을 패턴화하므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이때 예측이 필요하고 이를 전담하는 기능이 신경계 내에서 발달한다. 예측이란 이런 것이다. 가령 운전중에 앞에 어린아이가 뛰어든다고 하자. 눈으로 감지한 공간의 입력이 자동적으로 발을 브레이크로 가져가게 한다. 누구도 "어 아이가 있네? 발을 옮겨서 브레이크를 눌러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삶을 통해 뇌와 신경계는 다양한 변수를 미리 '예측'하고 몸의 운동기관 등이 자동으로 반응하도록 패턴을 만들어왔다. 

다양한 감각에 따른 다이나믹한 운동은 예측능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예측은 결과적으로 '의식'을 만들어 낸다. 손끝에 감각과 눈에 감각 후각적 감각 등 수많은 전기화학적 신호가 뇌에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뇌는 그것들을 모두 처리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대강의 큰 줄기는 자동으로 프로세스화하고 세부적인 차이가 있을 때 이를 약간식 신경써서 수정하는 것이다. 후자의 신경써서 수정하는 프로세서가 바로 '의식'이다. 의식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간단하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서 몸 어딘가를 재관조하면 분명 다리를 떤다든지 피부를 긁는 다던지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이 있고 다시 재관조하는 행동이 있다. 재관조는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이를 의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은 무엇일까?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뇌는 무언가를 계속한다. 여기서 FAP(fixed action pattern 고정된 행동방식 혹은 일반적 표현으로 습관 같은 것)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FAP은 뇌의 아주 중요한 요소가 나타나는 것이다. 뇌는 기존 방식을 패턴으로 저장해두었다가 향후 비슷한 입력이 있을 시 그에 맞게 적절히 행동한다. 

의식은 뇌의 일부이며 뇌의 입출력 신호를 어느정도 조정하게 해주는 조정자도 된다. 손에 들고 있던 귤을 놓치고 그것을 인지하여 다시 땅에 닿기전에 잡는다고 생각해보자. 이는 아주 순간적인 판단으로 가능하다. 기존에 학습한 FAP가 있어서 의식전에도 몸은 기존방식대로 움직인다. FAP는 대략적인 움직임을 하지만 미세한 오차를 수정하려면 의식이 필요하다. 뇌의 입출력을 수정하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감각을 받아들여 해석하고 내 몸의 팔, 손의 위치를 해석하여 어느정도 수정해서 움직여야하는지를 계산한다. 

즉, 의식은 FAP등을 하는 기계적 뇌에 추가로 미세조정가능한 기계적 뇌를 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일종의 다중 연산 프로세서다.

2021년 10월 2일 토요일

차현진 작가의 은행과 돈의 기원, 철학

- 서양은 민간에서 돈이 만들어졌고 동양은 국가주도로 만들어짐, 돈이란 서양은 민간의 계약발생론, 동양은 법정화폐로 처리


- 동양은 돈이 왕명으로 정해져 위조등을 엄벌, 따라서 돈의 품질에 신경을 안썼다(철조각에 돈이라고 왕명하면 신뢰성을 가짐)

- 반면 서양은 돈의 본질가치인 금과 은의 재질과 함량을 매우 엄밀하게 정했다. 대신 위조나 함량을 속이는데 대해 벌이 강하지는 않았다. 인플레이션으로 대응했다


- 어음(어-는 에누리, 살을 에는, 의 에에서 유래, 자르다는 의미)은 종이를 잘라서 서로 나눠가진대서 유래

: 동양은 어음은 차용증으로 교환소가 없었다

: 서양은 어음을 자주 교환해서 교환소가 있었고 이것이 은행의 기원이 됨


- 고대 영국은 어음을 쓸 때 나무조각으로 나눠서 채권자와 채무자가 나눠가짐 이를 Tally stick이라고 하는데 이중 채권자가 보유한 쪽을 'stock'이라고 불렀다

: 과거에는 채권을 stock이라고 불렀다. 최조의 주식회사는 채권과 유사한 성격이 있어서 stock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나중에 주식의 어원이 되었다


- 대부업과 환전은 유럽에서 천한 일이고 교회에서 금지했으므로 유태인만 종사했다. 이들은 기독교를 믿지 않으므로 대부업이 지옥으로 간다는 종교의 가르침으로부터 자유로웠지만(같은 유대인끼리는 대부업 금지) 천대는 매우 심했고 목숨도 위험했다. 따라서 늘 도피를 생각해야 했으므로 부동산 투자는 회피하고 금융자산으로만 부를 쌓았다.


- 종교전쟁과 왕실전쟁등을 겪으면서 왕은 사립은행에 대규모 부채를 졌는데 이에 대한 부담으로 은행가들을 조직적으로 죽였다


- 이후 절대 왕정과 식민지 경쟁 등을 겪으며 국가는 대규모 자본조달의 필요성을 절감. 국가차원에서 은행설립


: 1587년 베니스 은행(지급결제)

: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지급결제)

: 1688년 스웨덴릭스방크(발권)

: 1694년 영란은행(발권)

 

- 이로써 이전의 민간 은행이 대출(대부업)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후 은행은 지급결제와 발권으로 그 역할이 옮겨진다


- 여기서 문제가 발생, 은행의 역할은 커졌는데 한두개만 망해도 국가에 큰 문제를 일으켰음(이는 지금도 동일)


- 이 과정에서 민중과 정치인, 은행간 갈등이 발생, 남해 버블, 미시시피 버블 등의 대규모 금융사기 등이 겹치며 은행이 파산하거나 아예 정치적으로 은행을 없애기도 했음


- 그러나 은행은 정치적으로 매우 유용한 돈줄을 제공했고 경제발전에도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폐단을 막을 방법을 강구. 이 과정에서 최종 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이 설립

: 1925년 남미 버블(Poyais), 금융위기 발생(Panic of 1825) - 영국 젠킨스 수상 명령으로 영란은행 최종대부자 기능 발동

: 1866년 영국 금융위기 Overend, Gurney and Company파산 - 월터 베젓, 저서 '롬바르드 스트릿'에서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 제안


2021년 9월 30일 목요일

고종의 광무개혁은 근대국가와 무관하다


ㅇ 한국사 교과서는 고종을 높게 평가하며 근대적 개혁군주로 평가. 그러나 이는 실제와 차이가 있음


ㅇ 한국사 교과서는 광무개혁을 다음과 같이 서술

- 황제가 없으면 독립도 없다

- 구본신참의 원칙(전통거치를 지키면서 서방문명과 제도를 도입)

- 군사제도 개혁

- 토지 조사와 그 소유 인정

- 상공업 진흥


ㅇ 한국사 교과서는 고종의 광무개혁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제가 러일전쟁과 을사조약을 통해 조선의 근대화가 좌절되었다고 서술

ㅇ 그러나 이는 실제와 다름


ㅇ 광무개혁은 역사학계에서 3차례에 걸쳐 큰 논쟁이 있음


ㅇ 광무개혁은 황제권이 크게 강화시키는 내용임. 물론 황제권 강화가 근대국가와 배치하는 것은 아님

ㅇ 다만 서양 근대국가의 황제권 강화는 반드시 개인의 권리와 의무의 증대와 병행해왔음

ㅇ 근대국가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국가에 대한 역사의 주요 주체로서 개인의 성립


ㅇ 광무개혁은 근대국가와는 무관

- 대한제국의 정치는 만세불변의 전제정치

-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 법, 의회, 관료제 등에 대한 내용은 없다

- 황제는 무한한 군권을 가지며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한다

- 황제는 타국과의 제반 조약을 체결한다  <- 이 항목은 을사조약의 빌미가 되었다


ㅇ 심지어 근대 개혁을 주장하는 실학자들조차 토지와 주요 국권은 결국 왕의 것이라고 적극 주장. 이는 동학도 마찬가지

- 실학에서 주장한 토지대장의 시작(時作), 시점의 개념 : 원래 땅은 왕의 것이고 개인은 잠시 땅을 점유하거나 사용한다는 의미로서 실학사상의 전근대성을 보여줌

 

ㅇ 이는 구한말의 국내에서는 근대국가라는 기본 개념자체가 없었다는 의미


ㅇ 반면 1895년 갑오개혁에는 근대국가로의 주요 내용이 담겨있었다(고종의 반대로 실패)

- 갑오개혁에는 청으로부터의 독립, 왕과 신하의 협의체, 관료제, 징병제, 민법과 형법으로 개인을 보호하는 내용이 포함


ㅇ 근대국가 설립과정에서 왕과 개인간의 치열한 다툼과 논의, 전쟁은 매우 긴 과정을 통해 서구사회에서 설정되었다. 구한말에 갑자기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려워


ㅇ 광무개혁의 황제의 외교권 독점은 결국 일본이 을사조약을 고종과 마음대로 체결하게 되는 주요 독소조항이 된다(이토 히로부미는 을사조약성립여부에 조선 대신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고종 황제가 외교조약권을 독점함을 들어 이를 묵살)


ㅇ 심지어 이러한 황제의 권리 독점은 이전 조선의 왕보다도 더 전제적이고 구시대적


ㅇ 재정지출은 그당시 국가 통치의 주요 철학을 알 수 있다

- 당시 대한제국의 예산은 18세기에 비해 오히려 1/2~1/3로 축소, 당시 일본의 일개 현에 불과한 규모

- 재정의 2/3가 황실과 관련있다(황실 의식주, 제사, 친위군 유지비 등). 재정 수입은 매관매직, 전매, 세금 등으로 충당


ㅇ 결국 고종을 근대적 개혁군주 보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크다


source: https://www.youtube.com/watch?v=YYMczu5L2a8

2021년 9월 11일 토요일

드라마 D.P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드라마 D.P. 에서 군대 가혹행위 피해자 김석봉은 가해자 황장수를 납치해 고문한 후 총을 겨누고 물어본다.



조석봉: 저한테 왜 그러셨습니까? 왜?!?!!


황장수: 그래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 드라마 D.P.  6화:방관자들 ----------------

2021년 9월 6일 월요일

후기 조선왕조는 국제정치의 주류를 역행

- 한 국가는 혼자서 존재하지 않고 타국과의 관계속에서 존재한다

-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 교과서에서 조선의 대외관계에 대한 서술은 매우 빈약


- 특히 역사 교과서는 개항기말 1876~1945년의 반일, 민중 활동에 대해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 역사 교과서의 1/4이 해당되


- 조선초기 명나라와 16세기에 걸쳐 청나라와의 관계 이해가 중요


- 명나라의 적나라한 조선화의 음. 병자호와 삼위일체 故오랑캐로 운신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 깊숙이 깊숙이 파고드는 명망이 깊다 


- 18세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 19세기부터 미국 상선이 조선에 ​​알리기를 요청했습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제후국이 1832년에 이르러 중국의 외교를 요청했습니다.


- 19세기 청의 조공국(위구르, 미얀마, 대만 등)들은 잇따른 열강(영국, 프랑스, 일본 등)의 침입을 받고 청은 상당한 국가혼란을 겪음


- 청은 위기감 속에서 조선이 흔들릴까 우려해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 내외정을 직접 장악하고 조선의 속방규정을 공식화


- 당시 일본은 메이이유신(1868년)이후 1875년까지 5차례에 걸쳐 일본의 왕정복고(천황제)를 알리는 문서를 조선에 보냈으나 조선은 이를 거부

- 청의 속국으로서 조선은 일본의 천황의 지위를 조선에 알리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음. 이는 당시 동아시아의 청 중심의 질서를 훼손한다고 생각


- 당시 일본과 영국은 국제적 이해관계가 일치했는데 이는 러시아 제국의 남하(부동항 확보)를 저지해야 한다는 것

- 이미 러시아는 18세기 초부터 캄차카 반도 등을 통해 일본을 위협했던 사례가 있었고 중간에 위치한 조선을 러시아가 접수할 경우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었음


- 1884년까지 일본의 극동아시아 전략은 '동문동조(同文同祖)'와 '순치보거(脣齒輔車)', 같은 아시아인끼리 동등하게 연합하자는 의미


- 1876년 한일 수교(강화도 조약), 한국사 교과서는 이를 불평등 조약이며 조선침략의 의도를 숨긴 것으로 간주함

- 그러나 이는 사후적 해석일 가능성 높아, 조문을 하나하나 뜯어봐도 불평등한 내용은 없으며 당시 조선도 이를 불평등하다고 인식하지 않았음

- 오히려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후 내정안정에 힘쓸 때에서 대외 정책은 다소 나이브한 낭만적 관점으로 접근


- 1885년 이후 일본은 이 전략을 전면적으로 바꾼다, 이는 서양과의 전쟁에서 보여준 청나라의 무능, 조선의 후진성(갑신정변 실패 등)에 기인 

- 일본은 탈아시아론으로 정책을 바꾸고 대규모 군비 증강, 특히 조선에 대해 절대 '서양 제국 열강'에게 양보할 수 없는 '이익선'으로 규정


- 당시 영국은 현재의 미국 국무부처럼 전세계 외교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뒤에서 조정하고 있었음

- 영국은 당시 조선은 거리도 멀고 무역할 재화가 전무해 점유가치가 없다고 판단. 단, 러시아 남하를 저지할 수 있는 일본이 조선을 점유하는 것을 지지

- 미국도 이러한 영국의 전략에 동조


- 1883년 영국은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을 맺음. 동 조약에 따라 조선이 러시아와 수교(1884년)하자 거문도를 점령하여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한 포석을 마련

- 이후 러시아는 영국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후퇴 대신 시베리아 철도부설에 착수

- 시베리아 철도는 극동아시아 정세에 있어서 영국과 일본에 상당한 위협이었음


- 러시아의 수교에는 배경이 있었음

- 당시 고종이 조선 단독의 국가 체제로는 열강의 침입을 막을 수 없으므로 러시아를 끌어들여 세력균형을 이루려 했던 것

- 고종과 민비는 러시아에 접근했고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이 발생, 고종의 확제즉위와 대한제국 선포 등은 고종의 친러정책의 산물

- 이에는 조선의 뿌리깊은 반일, 혹은 일본을 무시하는 정서가 작용했다는 설이 있음

- 고종 입장에서 친러정책은 나름의 방책을 강구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영국의 심기를 건드려 악수가 되었음


- 의화단 사건이 발발하며 서양 연합군은 청나라와 동양의 야만성과 후진성에 경악하고 이를 빌미로 청에 군대를 주둔시킴

- 러시아가 의화단 사건 이후 대련항을 점령하자 조선에서 철수한 후 요동지방을 공략하고 만주를 점령, 이는 영국과 일본의 동맹을 가져왔으며 후 러일전쟁의 배경이 됨

- 미국의 미국의 조선이 일본에 복속을 요청하고 있다.


- 머리말이론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WDgwd-L8f0

2021년 8월 25일 수요일

은행(銀行), 한자의 기원

ㅇ 일본은 은행 시스템을 서구권에서 들여올 때 Bank에 대한 번역에 고민이 있었다

ㅇ (지금은 아니지만) 19세기 미국의 은행은 일종의 인프라, 혹은 공동 동업자라는 개념이 있어서 은행 이름에 숫자를 붙였다. 1st bank, 5 th / 3rd bank, 144 bank 이런식이다

ㅇ 당시 일본은 은본위제였으므로, 미국식 Bank란 은을 취급하는 이들의 일행, 집단 이라는 의미가 된다

ㅇ 行은 association의 의미가 있고 일본은 미국의 Bank를 Association of silver smith로 받아들였다. 결국 Bank는 銀行이 되었다. 중국도 은본위제였으므로 받아들였음

2021년 8월 18일 수요일

총욕불경(寵辱不驚) 치지도외(置之度外)

총욕불경(寵辱不驚) - 총애 받거나 모욕당해도 놀라지 않다.

[사랑할 총(宀/16) 욕될 욕(辰/3) 아닐 불(一/3) 놀랄 경(馬/13)]

윗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고 우쭐거리거나 질책을 받고서는 금세 기가 죽는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에 비해 높은 지위나 대우를 받으면 기뻐 놀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을 나타내는 말이 受寵若驚(수총약경), 被寵若驚(피총약경)이다. 반면 칭찬을 받거나 지위가 올라도 태연하고, 욕을 당해도 별로 흔들리지 않는 경지의 사람도 드물지만 있다. 이런 사람이 총애를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寵辱) 놀라지 않는다(不驚)는 바로 이 성어다.

약간 놀라거나 흔들리지 않거나 차이가 나지만 글자 한 자 차이이고 뜻이 통하므로 유래를 다 살펴보자. 老子(노자)의 ‘道德經(도덕경)’ 13장 厭恥(염치)장에는 ‘총애를 받거나 치욕을 당하면 놀란 것같이 하고 세속적인 큰 걱정을 귀하게 여기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寵辱若驚 貴大患若身/ 총욕약경 귀대환약신)’고 했다. 총애를 받더라도 잃을 때가 오고, 굴욕도 시간이 해결해 주니 일희일비하지 말고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가졌다.

唐(당)나라 초기에 盧承慶(노승경)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관리들의 언행을 살펴 고과 점수를 매기는 벼슬을 갖고 있었는데 아주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평을 받았다. 한 번은 식량을 싣고 가던 배가 뒤집혀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노승경은 책임진 관리를 하로 평정하고 이의가 없는지 물었다. 관리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배 침몰이 혼자만의 책임도 아니고 과한 것 같다며 중으로 올린 후 노승경이 어떠냐고 물었다. 기뻐할 줄 알았던 관리는 여전히 이의 없다고 했다. ‘노승경은 이 관리를 가리켜 총애를 받을 때나 수모를 받을 때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니 참으로 대단하다고 칭찬했다(承慶嘉之曰 寵辱不驚/ 승경가지왈 총욕불경).’ ‘新唐書(신당서)’ 열전에 전하는 이야기다.

‘菜根譚(채근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영예와 치욕에 놀라지 아니하니 뜰 앞에 꽃이 피고 지는 것을 한가로이 바라볼 수 있다(寵辱不驚 閒看庭前花開花落/ 총욕불경 한간정전화개화락).’ 가고 머무는 것이나 높아지고 낮아짐을 생각 않으니 한층 풍성해진다. 한 때의 변화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간다면 앞날이 밝다. 


==================================

置之度外(치지도외)

置 둘 치 | 之 갈 지 | 度 법도 도, 헤아릴 탁, 살 택 | 外 바깥 외 |

마음에 두지 아니하고 다른 한쪽으로 치워두다



===================================

擧世而譽之而不加勸 擧世而非之而不加沮

(거세이예지이불가권 거세이비지이불가저)

온 세상이 그를 칭찬하여도 우쭐하지 않았고, 

온 세상이 그를 비난하여도 저어하지 않았다.



2021년 8월 9일 월요일

한국사의 완성된 체제는 조선후기 국가사회주적 재분배에 바탕을 둔 소농경제

https://www.youtube.com/watch?v=HPdGZejWIuc&list=WL&index=40


ㅇ 한국의 전통 역사교과서는 서유럽의 근대 발전 체제의 틀에 꿰어 맞추어 조선의 진보상황을 설명하려다보니 길을 잃어버렸다


ㅇ 조선 후기의 사회는 서양 근데 발전양상의 모습과 전혀 다르며 정의상 근대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ㅇ 조선후기 18세기는 한국 전통문화의 완성으로서의 체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


ㅇ 이 시기 숙종, 영조, 정조 등은 높은 학문 수준을 가지고 조선의 마지막 부흥을 이뤘다

- 당시 성리학적 발전이란 서양과 다르다

- 성균(成均)이 왕정의 치세이념으로서 경제의 부족함이 아닌 평등함을 더 신경쓴다

- 이에 따라 18세기는 국가적 재분배에 바탕을 둔 소농경제 사회다

- 이러한 시스템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ㅇ 이는 대한민국 경제체제의 저변을 관류하는 장기의 역사다


ㅇ 조선후기는 다양한 문헌이 남아 있으므로 당시 체제를 쉽게 알 수 있다

- 당시 하나의 동리에는 소농, 장시, 창고가 반드시 있다. 이는 18세기 핵심 체제대

- 이중 특히 창고가 중요하다. 

- 소농은 기본적으로 자급자족(70~80%)이다. 남자는 밭갈고 여자는 베를 짠다

- 장시에서 소금, 철(농기구), 토기, 생선(제사용), 동전(세금납부), 면포를 유통했다. 장시간 물건을 유통하는 상인이 있었다.

- 장시 거래의 2/3는 현지주민간 물물교환, 1/3은 상인들이 장시간 물건거래를 했다

- 철기, 토기 같은 필수 물품은 장시 외에도 방문거래와 주문생산을 했다

- 농가당 경작규모는 0.5ha로 영세하다

- 소작이라는 말보다는 당시 쓰였던 단어인 소농이라는 단어가 적절하다


ㅇ 환곡 : 국가사회주의 소농경제의 핵심

- 18세기말 곡물저장량은 쌀 670만석으로 연간 총생산량의 최소 20%, 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엄청나게 많은 양

- 봄에는 저장량의 70%를 분배(기아 해소, 종자 용)

- 전세계 유례없는 창고 저장 및 분배 시스템

- 조선왕조는 저장 창고 유지 관리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며 각고을 관리의 주요업무는 창고지기에 다름 아님

- 작은 국토에서 대외무역없는 폐쇄경제에서는 이러한 저장시스템이 더 합리적


ㅇ 이러한 국가적 저축 및 보험체제는 생산충격으로부터 안정과 번영을 지켜주었다

ㅇ 반대로 가을 수확기에 국가는 불출했던 곡물을 대규모로 회수받았는데(흉년에도 80%가량을 수탈) 이는 사적 축적을 억압했다


ㅇ 이러한 시스템에서 농민은 굳이 생산량을 증가시키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ㅇ 결과적으로 왕조는 국가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균일한 체제를 유지했지만 백성은 점차 가난해졌음. 이는 현 공산주의 시스템과 비슷함


2021년 8월 8일 일요일

한국 농업의 현황과 미래, 고부가가치?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uZ_Lagk_usg&list=WL&index=25


ㅇ 한국의 농가당 경장면적은 1.6ha인데 선진국은 이보다 30~100배 이상 크다(유럽 50ha전후, 미국은 180ha)


ㅇ 다만 한국, 일본처럼 벼농사 지역의 경우 농가당 경지면적을 다르게 볼 필요는 있다


ㅇ 일본의 농가당 경지면적은 2.5ha이고 한국과 비슷하게 영세화되어 있다


ㅇ 한국은 경작면적이 좁고 토지 소유권이 너무 자잘하게 구분되어 있어서 대규모 영농이 발달하기 어렵다. 노령인구 사망시 농지의 분할은 더 심해질 것이다.


ㅇ 유럽농가는 전에 10%이하의 농가가 대규모 경작지(60%이상)를 가지고 전체 산출량의 50%전후를 담당한다


ㅇ 유럽은 농업 품목이 국가별로 분업화되어있어 효율이 높다. 반면 한국은 농산물 무역이 차단되어 있다


ㅇ 농업 GVA(총부가가치)는 한국이 독일보다 크다. 농경지는 한국이 독일의 1/10

- (내 생각) 이는 한국이 내수에만 판매하고 보호무역에 따라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이를 조정해서 볼 필요가 있다

- 단 한국은 자국민만 먹는 특정 품종(특히 사과, 배 등 과일)이 많아서일 수도 있으므로 이를 고려해야 한다 


ㅇ AI로봇의 활용은 농업의 게임체인저다. 그 결과는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

포트폴리오 매니저: 매수는 유행을 따르고 매도는 아무 계획이 없어

NBER논문, 

Selling Fast and Buying Slow: Heuristics and Trading Performance of Institutional Investors

Klakow Akepanidtaworn, Rick Di Mascio, Alex Imas & Lawrence Schmidt


https://www.nber.org/papers/w29076


결론

전문 기관 투자자는 눈대중으로 매매한다. 이들은 자산 매입시에 나름대로의 기술을 보여주지만 매도시에 결정은 무작위였으며 낮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은 매도할 때 주먹구구였다. 자산관리자는 매도보다 매수에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한다. 더불어 투자자는 장기적으로 매도에서 나타나는 저성과를 인식하지 못한다. 잘 알려진 인지 편향 오류(자신의 견해와 맞는 정보만 인정하고 수집하여 신념을 업데이트)때문에 저성과가 지속된다.

2021년 7월 1일 목요일

회피되어온 한국사 제1의 난제, '노비'




ㅇ 한국사 교과서에서 노비 이슈는 왜곡 회피되어 왔다


ㅇ 조선시대 노비인구의 비중이 40~70%라는데는 큰 의견의 차이가 없다

- 17세가 경상도 호적, 인구의 42~64%가 노비

- 1663년 한성부 북부 호적, 인구의 73%가 노비

- 15세기말 학자 성현 언급, "조선 인구의 거의 절반이 노비다"

- 14~15세기 노비인구가 모종의 이유로 폭발적 증가

- 16세기, 서울 경기 지방의 관인은 300명가량, 지방 품관이라도 70~80명의 노비를 소유. 왕족이나 왕의 측손은 수천~수만의 노비를 소유

- 미국 노예제 당시 대규모 플랜테이션도 흑인노예 숫자가 100명을 넘기기 어려웠음

- 조선의 노비인구수와 비중은 서양의 고대 노예제 사회와 비교해도 엄청나게 많은 수치, 노예제가 발달하고 전쟁노예가 많있던 로마시대 노예는 인구중 10~15٪ 가량, 아주 크게 늘었던 시기여도 40%를 넘지 않았다

- 이상할 수 있는데 고려와 달리 조선에서는 노예들이 자유를 얻겠다는 반란이 없었음 

- 노예의 이름이 인간적 개성과 사회적 인격을 말살하기 위해 붙여짐 (예, 개똥, 소똥, 말똥, 구월, 바위 등) 고려와 다르다


ㅇ 삼국~통일신라~고려시대의 노비는 매우 적고 형벌의 결과측면이었다

- 7세기 연좌제에 의해 형벌, 전쟁으로 노예 발생

- 7세기 말 신라 4개촌 노비인구비중은 6.1%

- 노비가 세습되지 않는 경향이 있음(형벌이므로)

- 삼국~고려시대 노비는 많지 않았다. 전체인구의 5%전후로 추정, 고려 귀족도 노예보유는 20인을 넘지 못했음

- 10세기 이후 고려는 노비법을 정비, 노비는 형벌의 결과여서 노비법이 엄격했다

- 이당시 노비는 자유민의 기억이 있으므로 반란이 있었음(예, 만적의 난, 고려시대만 10여차례)

- 고려시대 노비도 인간이므로 불교적 의미가 있는 이름이 붙여짐(예, 만적, 불광, 시광 등) 

- 고려의 노비는 원칙적으로 국가소유고 사재축적, 세습이 불가능

- 신분마다의 역할을 강조하는 유교와 달리 불교는 만인이 같음을 주장, 노예제를 뒷받침 하지 않는 사상


ㅇ 조선의 노예는 그 이전 시대보다 더 엄격하게 관리되었음

- 노예법 제정 1420년 세종, 노비는 주인을 고소할 수 없다(고려시대는 노비가 주인을 고소 가능)

- 조선시대 주인과 노비의 관계는 사적지배의 영역으로 법의 테두리 밖에 있었다. 주인이 마음대로 생사여탈권 보유

- 일부 조선의 왕이 노비들도 백성임을 들어 이들의 권리를 강화하려 하자, 신하들 "차라리 천명(왕)을 바꿀지언정 명분을 바꿀 수 없다"

- 조선의 노비는 그 이전 시대와 다르게 사유재산화, 상속, 증여, 매매의 대상


ㅇ 조선의 독특한 국가체제와 노비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ㅇ 조선 노비 인구 폭증의 원인은 노비 인구 증가를 방관하는 제도가 작용

- 고려시대는 노비와 양민간의 결혼이 엄격히 금지, 그러나 조선시대는 사실상 허용(노비의 자식이 또 노비)

- 종부종천, 종모종천, 등으로 노비의 자식은 모두 노비

- deteriocondicio(종천법) = 부모중 한명만 노비여도 자식은 노비 = 전세계 노예제 중 가장 강력한 노예 증가책

- 조선시대는 노비간 결혼은 주인이 단속, 허가권가져, 이에 따라 60~70%의 결혼이 노인과 양인간의 결혼

- 반면 서양의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대부분은 부모중 한명이 자유인이면 자식도 자유인, 심지어 부모가 모두 노예여도 그 신분이 자식에게 세습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ㅇ 조선시대는 토지가 명목상 사유화되면서 국유제에서 재편됨, 이는 노비제의 주요 특징과 맞닿아 있음

- 토지 매매와 상속의 일반화, 농업생산성 증대 (이상은 조선시대가 그 이전과 차별되는 주요 특징)

- 조선 양반은 인당 수백~수천의 노비를 소유. 상당수는 납공을 받는 노비인데 국가의 군역, 노역이 개인(양반)에게 납공, 헌물되는 체제

- 국가를 대신해 국가의 지배체제를 할양해서 양반관료들이 백성의 절반, 그 이상을 사민으로 지배하는 체제 

- 조선은 노역과 토지간의 연결이 끊어짐, 즉, 재산이 없어도 국가에 대한(더 정확히는 소유 양반에 대한) 의무를 이행해야 함

- 양안(토지장부), 호적(인적장부), 이 두개간의 연관성이 없음, 재산과 의무간의 연결고리가 없는 단절이 발생

- 이러한 의무를 충족못하면 노비로 전락하므로 대규모 노비가 양산되기 쉬움, 의무 회피를 위해 일부러 노비가 되기도했다

- 이러한 재산(토지)와 노역(의무)간의 무관함은 적어도 한중일 중 한반도만이 유일


ㅇ 조선이 국방에 신경을 쓰지 못한데는 이유가 있다

- 군역과 재산이 분리되어 있으므로 군역을 제대로 이행하기 어렵다

- 노비는 군역을 지지 못한다(양인중 상당수가 군역을 피하기 위해 노비가 되었음)


ㅇ '우리 민족'이라는 개념은 현대에 들어 새로이 등장한 것으로 실체는 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에는 무비판적으로 언급


ㅇ 민족의 개념은 없고 종족의 개념이 있다. 가령 이 질문에 답해보자. '노비는 같은 민족? 종족인가?'

- 조선시대에 노비는 민족이나 종족 개념에서 하나라는 개념이 없이 다른 '존재'였다. 동물 같은 소유물, 재산 취급


ㅇ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며 토지와 인민에 대한 보편적 지배체제를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그동안 체제에 통합되지 않았던 존재가 드러난다. 이것이 노비의 기원

- 고려시대는 관리하는 지역외 빈공간이 많았는데 이 지역은 면적 기준 기존 관리 지역 대비 2.5배에 해당되는 큰 면적

- 이러한 비관리 지역에 살던 사람은 고려 사회에 편입되지 않았는데 '화척', '양수척(楊水尺)', '무자리'라 불리웠다

- 이들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고려사에 따르면 왕건이 백제를 공격할 때 제압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있다

- 양수척은 호적이 없고 거처없이 옮겨다니며 사냥, 나무꾼, 유기(나무그릇) 등을 팔면서 살았다

- 고려시대 거란 침입시 양수척들이 거란의 길잡이 노릇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무신정권의 세도가중 양수척에 대한 수탈을 했던 자가 있었고 그 복수 차원에서 거란에 협조한 것

- 조선 세종시기에 이들을 '재인', '화척'이라 불렀고 강제 정착을 추진, 이름도 신백정으로 개칭, 당시 이들은 사회의 주요 범죄 집단

- 세종당시 기록들은 '이들은 본시 우리 족속이 아니'라고 명시

- 성종 당시 기록에는 이들의 인구가 평민의 1/3~1/4에 이른다고 추정


ㅇ 조선시대 들어서 노비가 급증한 배경에는 원래 있던 소수의 노비(고려시대 인구의 5~10%)와 재인, 화척들이 결혼하여 발생한 것

- 조선초기 부모중 하나만 노비여도 자식은 노비이고 노비와 양인의 결혼을 방임했으므로 노비 인구가 급증(양천교혼)


ㅇ 이들 노비와 기생에 대해서 '같은 종족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다', '피가 검푸르다', '거란의 후손이다' 등으로 묘사하여 같은 종족, 민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zg8dcCfF6Q

명분과 실리

현실에서 추진력을 얻고자 할 때 명분이 필요한 것이지, 명분으로 현실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이념을 목적화 하는 집단일수록 내실은 없다. 외부에 보여줄 내실이 없다보니 이념에 기반한 공상을 내세우고 그러면서도 내면에 품은 인간의 욕망은 그대로인지라 안으로 기어드는 권력만 탐한다. 이런 자들일수록 응당 그러해야한다는 감정을 뒤흔드는 메시지와 당위론으로 치장하나 정작 속심은 사적 이해에 감추어져 있다. 행동이 아닌 말에 집중하는 대중의 특성상 이들은 대중 선동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2021년 6월 19일 토요일

데이트레이딩의 수익률

https://faculty.haas.berkeley.edu/odean/papers/Day%20Traders/Day%20Trading%20and%20Learning%20110217.pdf

논문의 결론: 데이트레이딩의 수익형성 증거는 없었음. 가장 경험이 많은 데이 트레이더도 돈을 벌지 못했으며 신뢰성 있는 추적 데이터로는 75%의 트레이더가 손실을 봤음. 데이 트레이더의 수익성은 카지노 룰렛의 손실 가능성과 큰 차이가 없음


https://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3423101

논문의 결론: 브라질 선물, 주식 시장을 테스트한 결과 대97%이상의 데이 트레이더들은 손실을 봤음


2021년 6월 17일 목요일

오스트리아 빈의 공공주택, 그 진실

주요 내용은 아래를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P444oZjJWCc&list=WL&index=12



오스트리아 빈의 사회주택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56d826e4b0de86f4901cad


빈의 공공주택인 사회주택을 찬양하는 내용이 많다. 세상에 나타나는 이상적인 모습은 표면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일 수 있으며 세상은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이면의 진실이 나타나고 나는 발전할 수 있다.


빈의 공공주택이 가능한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ㅇ빈은 1차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사회민주당이 장악해서 중앙정부로부터 재정독립(조세주권)을 획득 


ㅇ 당시 빈은 패전 이후 난민과 빈곤, 하이퍼 인플레 문제로 새로운 정치와 사상의 출현에 목말랐던 상태


ㅇ 사민당은 사회주택 건립을 통해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하여 지지층을 확보


ㅇ 빈은 신토지세, 신주택세, 부가가치세를 신설하여 자산가에게서 대규모 세금을 가혹하게 징수. 이 자금을 바탕으로 임대주택 공급

- 당시 연간 임대료는 건축비(토지가격 제외)의 4%

- 이는 1925년 기준 당시 평균 근로임금의 3.3~4.4%에 해당


ㅇ 주택건설의 핵심인 토지확보는 토지주로부터 사실상 몰수

- 정부가 토지사용을 제한하여 토지의 사용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트림

- 강력한 토지세를 매겨서 보유를 어렵게 만듦

- 난민이 무분별하게 지은 집에 대해서 토지주의 처분권을 불인정

- 이에 따라 토지는 헐값이 되고 이를 정부가 사들임

- 정부는 이를 매입해 공공 주택을 건축 

- 당시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던 오스트리아 귀족들은 1차 대전 패배 이후 사회주의 공화국이 들어서자 재산을 전부 해외로 이전시켰음. 토지는 이것이 불가능해서 헐값에라도 매각한 것


ㅇ 대전 직후 1918년 시유지는 전체의 18%, 1931년에는 이 비중이 33%로 확대

- 비사용 토지에 대한 중과세 등으로 시는 꾸준히 토지를 매입해 나감





2021년 5월 26일 수요일

남자외모 중, 키 정리

 남자외모 중, 키 정리


키, 외모, 학력, 집안이 다 중요한데 이때 다음의 순서로 선호된다 


키도 크네 >> 키만 작네 >> 키만 크네 >> 키도 작네

2021년 5월 5일 수요일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

farewell to alms

ㅇ 세계사는 1800년 이전의 맬서스 트랩 상태와 그 이후의 대분기로 나눌 수 있다.


ㅇ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처음 나타난 이유는 식민지나 석탄, 종교개혁 때문이 아니라 고도의 제도적 정체성과 인구 특성(부유층의 높은 출산율) 때문


ㅇ 맬서스 시대의 빈민구제법은 자녀 양육비용을 늦춤으로 인해서 노동공급을 늘리고 결국 인당 생활수준을 낮춘다


ㅇ 맬서스 시대의 미덕(인당 생활수준의 향상): 산아제한, 비위생, 폭력, 흉작, 영아살해, 소득불평등, 이기주의, 나태, 대량살상, 전염병


ㅇ 맬서스 시대의 악(인당 생활수준의 하향): 다산, 청결, 평화, 곡물비축, 부모의 보호, 빈민구제, 자선, 근면


ㅇ 영국의 낮은 세율, 지적재산권, 법률, 물가안정, 자유로운 시장경제, 저금리 등이 자리 잡은 것이 산업혁명의 원인


ㅇ 아시아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의 높은 인구에 따른 강한 맬서스 트랩, 소득과 출산율간의 무관성 등 때문이다


ㅇ 산업혁명기의 위대한 발명가와 과학자, 최조의 기술 기업가, 자본가 등은 그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 과실을 생각보다 별로 향유하지 못했다.


ㅇ 산업혁명이후 국가간 빈부격차는 더욱 크게 확대되었다












2021년 4월 29일 목요일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

1. 성격은 '얼굴'에 나타난다 

2. 생활은 '체형'에 나타난다 

3. 본심은 '행동'에 나타난다 

4. 미의식은 '손톱'에 나타난다 

5. 청결감은 '머리'에 나타난다 

6. 배려는 '먹는 방법'에 나타난다 

7. 마음의 힘은 '목소리'에 나온다 

8. 스트레스는 '피부'에 나타난다 

9. 차분함은 '다리'에 나타난다 

10. 인간성은 '약자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2021년 2월 17일 수요일

고독을 이기는 방법 -마광수

고독을 이겨나가려면 우선 '사랑'에 대한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

완전한 사랑도 없고 남녀간의 완벽한 궁합도 없고 진짜 오르가즘도 없다.

'오르가즘'이란 말은 의사들이 만들어낸 허망한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다.

사랑의 기쁨에 들떠있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자.

미혼의 남녀라면 기혼자들이 떠벌여대는 남편(또는 아내)자랑이나 자식자랑에 속지 말고,

기혼남녀라면 남들의 가정생활과 자기의 가정생활을 비교하지 말자.

사람들은 다 거짓말쟁이요 허풍쟁이이다.

다 불쌍한 '자기 변명꾼'들이다. 믿을 사람은 오직 자기밖에 없다.

물론 혼자서 살아나가려면 뼈아픈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혼자들이 고독을 덜 느끼는 것은 아닌 것이다.

결혼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결혼하든 결혼 안하든, 모든 사랑은 결국 나르시시즘적 자위행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두라는 말이다.

취미생활이나 일로 고독을 풀어도 좋고 그냥 가만히 앉아 시간을 때워나가도 좋다.

이래도 외롭고 저래도 외롭다.

그때 그때 슬피 울어 고독을 달래도 좋고

술에 취하여 허망스레 웃어도 좋다.

요컨대 '완전한 사랑'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희망'을 갖기보다는 '절망'을 택하라는 말이다.

희망은 절망보다 더 무섭다.

과도한 희망은 과도한 절망을 불러들이기 쉽다.

절대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

연애하고 싶으면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으면 결혼하라.

자식을 낳고 싶으면 낳고 낳기 싫으면 낳지 말라.

사회명사들이 잘난척 하며 써 갈기는 '행복론' 따위는 읽기도 전에 찢어버려라.

다들 자기변명이요 대리배설일뿐, 믿을만한 '고독의 근치(根治)처방'은 없다.

그것은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신(神)의 사랑도 믿지 말라.

정 외롭거든 술이나 담배를 자학적으로 마시고 피우며 시간을 달래나가라.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자살해도 좋고,

바람을 피울 용기가 있으면 바람을 피워도 좋다.

아무튼 뻔뻔스럽게 운명 아니 신(神)의 '심술'과 맞서나가야 한다.

'고독'이란 결국 '의타심(依他心)'에서 온다.

의타심을 완전히 버릴수만 있다면 우리는 고독으로부터 당당하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절대로 '밑지는 사랑'을 하지 말라.

사랑을 하려거든 이기적인 자세로 빼앗는 사랑만 하라.

그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2021년 2월 6일 토요일

안전한 예종보다 위험한 자유

"I prefer dangerous freedom over peaceful slavery."

"나는 안전한 예종보다 위험한 자유를 택하리라"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