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2일 토요일

욕조속의 세사람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는 사랑하지 않아요."

전임 독일 연방대통령 로만 헤어초크의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 나라의 국가 수반이 주류의 상식, 보수주의자들에 도전할 수 있는 발언을 공공연하게 뇌까릴 수 있는 독일이 부럽기까지하다.

우리는 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독점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따지고 보면 우리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독점하고 있다. 주례선생님은 근엄하게 묻지 않았던가? 한 사람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느냐고... 형식적이든 어떻든 모두는 응답했다. "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우리의 배타적인 소유욕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내 평생 이 사람만을 사랑하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대답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륜과 이혼, 시들한 결혼생활 등으로 점철되는 현대결혼제도속의 우리는 아무런 반성없이 무책임한 말한마디로 결혼식을 빨리 끝내려고 한다.

사랑은 각오로 될 일이 아니다. 다짐으로 될 일은 더더욱 아니다. 뭐든 시들해지는 게 인지상정. 그러나 큰 문제없이 세월이 지날수록 도타워지는 관계도 있을 수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부부관계가 우정이라는 속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고, 소유의 욕망으로 시시콜콜 간섭하던 관계가 각자의 개별성을 인정해주는 좀더 유연한 연대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화를 사랑하면서 또한 장미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러나 제도는 이런 우리를 방관하지 않는다. 로만 헤어초크도 이런 제도가 달갑지 않았나 보다.

한 인간에게 가장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존재는 다름 아닌 가족이다. 그리고 제 짝이고, 제 자식이다. 보기만 해도 이가 갈리는 남편, 그를 떠나서 새로운 남편을 꿈꿀 수 있다. 누군들 외도를 꿈꾸지 않을까? 그러나 배우자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을 보장해주는 결혼제도 안에서 외도는 허망하며 처참한 결과를 야기한다.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대체 나는 뭐란 말이야'. 가슴이 찢기고 오열이 복받친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연민 어린 시선이다. 따지고 보면 저들도 제도의 희생자이므로...

문제는 결혼이라는 제도다. 결혼은 소유이기 이전에 믿음이다. 그러나 믿음을 알기에 인간은 너무나도 미숙하다. 그들은 소유만을 알 뿐이다. 소유만을 아는 열정과 집착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통속적인 문학과 음악, 대중매체는 그런 착각을 강화시키고 정당화시킨다. 질투와 선망을 사랑이라고 명명하는 데 그것들은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왜 우린 소유하되 소유에 얽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 그런 경지는 대선지식의 것이므로 범인인 우리로서는 넘볼 수 없는 것일까?

소유하지 못함이 불안을 낳고 불안은 시기와 질투의 온상이 된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너'에게 닿기 위한 욕망인데 '너'는 '내'가 닿기도 전에 나를 외면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나'는 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너'에게 닿았음을 확인한 사람은 불같은 시기와 질투에 휩싸이지 않으리라. 사랑은 그런 점에서 여유를 준다.

사랑은 '너'를 나의 욕망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사랑은 '너' 또한 욕망하는 주체임을 알게 한다. 그러나 그런 여유를 배우기도 전에 우린 결혼했다. 애 낳고 저축하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하루하루 일에 치여 우린 제대로 된 여유를 배우지 못했다.

<욕조 속의 세 사람>(바바라 포스터 등 저)은 불온한 책이다. 그것은 점잖은 어조로 우리를 꼬드긴다. 제목처럼 이 책은 파격적인 사랑과 결혼 행태를 보여 준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우리에겐 몹시 낯설다.

그러나 이 책은 삼각관계가 아닌 삼각연애의 사례를 유명인들의 삶 속에서 광범위하게 추적함으로써 우리의 상식을 흔든다. 셸리·바이런·볼테르·루소·엥겔스·뒤마·위고·투르게네프·루 살로메·니체·릴케·유진 오닐·에밀졸라·달리·피카소·사르트르·로렌스·헤밍웨이…. 듣기만 해도 떠르르한 인물들이 삼각연애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착각하지 마시라. 삼각연애는 욕망에 기초해 있는 삼각관계와는 다르다. 질투와 반목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도 사랑의 감정을 삶의 에너지로 전화시킬 수 있는 파워. 우리가 이 책에서 배울 것은 바로 그 파워다. 그러나 어설픈 흉내는 철없는 아이들만을 울릴 것이다. 차라리 무위를 가르치는 노장에나 빠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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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쌀롱 ; 상식에 반하는 자유로움과 혼자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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