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6일 일요일

인류사의 비극과 그 이유

뉴질랜드 동쪽 800km지점에 있는 채텀제도에서 수세기에 걸쳐 살아오던 모리오리족은 1835년 11월 갑자기 대학살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해 11월 19일 총과 도끼로 무장한 500여명의 마오리족이 탄 배가 도착했고 12월 5일에는 400명이 더 왔다. 마오리족은 몇패로 나뉘어 모리오리족을 자신들의 노예라고 선언하고 반항하는 자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했다.

모리오리족은 수적으로 마오리족보다 2배였지만 조직적인 저항은 없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왔는데, 마오리족에게 평화와 우정을 제안하고 물자를 나눠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 후 며칠사이에 마오리족은 수백명의 모리오리족을 죽였고 여자를 강간했으며 시체를 요리해 먹었다. 살아남은 모리오리족마저 이후 몇년동안 학대와 괴롭힘에 못이겨 결국 대부분 죽고 말았다.
생존자 모리오리족은 이렇게 증언했다.

"마오리족은 우리를 양 떼처럼 죽이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공포에 질려 숲으로 도망치거나 땅을 파고 숨었지만 곧 발각되었죠.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와 어린아이도 무차별 학살당했어요"

한편, 정목자인 마오리족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관습대로 섬을 점령했으며 모조리 사로잡았어요. 더러는 도망쳤지만 곧 죽였죠. 그게 어쨌단 거죠? 우리는 관습에 따른 것 뿐이에요."

모리오리족은 고립되어있던 수렵채집민으로 지극히 간단한 기술과 무기밖에 없었다. 전쟁경험이 전무했고 군대나 관료조직도 없었다. 반면 뉴질랜드 북섬의 마오리족은 격렬한 전쟁이 만성화된 농경민 사회에 속해있었다. 그들은 발전된 기술과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조직된 군대와 지도층을 가지고 있었다.

모리오리족의 비극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벌어졌던 수많은 비극의 축소판이다. 이 충돌이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마오리족과 모리오리족 모두 AD1000년 경 폴리네시아에서 이주한 농경민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두 집단은 헤어진 이후 몇세기동안 전혀 다르게 발전했다.

대체 두 부족은 왜 다르게 발전했고 둘사이의 충돌은 일방적인 비극을 낳았던 것일까? 어쩌면 이를 통해 더 큰 문제, 즉 아시아와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와 같은 각 대륙의 발전양상이 전혀 달랐던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모리오리족과 마오리족의 역사는 환경과 인간사회의 관계 및 그 발전양상에 대한 자연발생적 실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폴리네시아의 각 섬들은 각기 매우 고립되어 있고 매우 다양한 지형, 기후, 생태, 생물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곳을 연구하면 인류의 발전이 환경과 어떤 영향을 맺고 있는지 알아보기에 매우 이상적이다.

채텀제도에 처음 상륙한 선조 모리오리족은 원래 마오리족과 동일한 농경민이었지만 마오리족의 열대 농작물은 이곳의 한랭한 기후에서 자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주민은 다시 수렵채집 생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수렵채집생활로는 재분배나 저장을 할 수 있는 잉여농산물이 축적되지 않으므로 그들은 사냥을 하지 않는 군대, 관료, 기술자, 추장등을 유지하고 먹여살릴 수가 없었다. 또한 그들의 사냥감은 물로기, 바다표범, 조래, 바닷새 등으로 특별히 고도의 무기가 필요치도 않았다.

게다가 채텀제도는 2000명 이상을 유지할 동식물이 나지 않기 때문에 인구증가에 한계가 있었으며 인근에 섬이 없으므로 이주도 불가능했다. 모리오리족은 채텀제도에 머물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했고 평화적인 갈등해결 문화가 싹텄다. 그리하여 그들은 전쟁을 포기했고 남자신생아 중 일부를 거세하여 인구과잉으로 인한 갈등의 소지를 줄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뉴질랜드 북섬은 따뜻했고 농업에 적당한 기후였다. 마오리족은 잉여농산물을 통해 그 수가 늘어 10만에 이르렀으며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이웃집단과 격렬한 전쟁이 빈번해졌다. 전쟁과 잉여농산물로 전문적인 군인, 기술자, 관료가 생겼고 정교한 의식용 건축물과 방어용 성채도 만들어졌다.

이 두 부족은 서로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살다가 이후 500년이 지난후 어떤 탐험가가 채텀제도에 들러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쓴 후 서로를 알게 되었다.

"그곳은 바닷고기와 조개가 풍부하고 호수에는 뱀장어가 가득하고 땅에서는 카라카 열매가 많이 난다. 사람은 매우 많지만 싸울줄도 모르고 무기도 없다."

그 소식을 들은 900명의 마오리족은 채텀제도로 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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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 1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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