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 목축이 갖는 이점으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이는 국가와 정치, 문화와 법률같은 사회시스템, 전쟁을 통한 무기개발능력 등을 비약적인 상승을 가져왔다. 그리고 문자가 등장했다.
문자는 근대 제국 통치의 절대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문자 중 가장 오래된 문자 체계인 수메르 인의 설형 문자를 생각해 보자. 이 문자가 정착된 수천 년 전부터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일부 농경 마을에서는 양의 수나 곡물의 분량을 기록하는 등 회계 목적으로 신표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수메르 인의 문자는 여러 가지 유형의 기호들이 복잡하게 얽히는 체계로 발달하였고, 이는 후에 인간의 보편적 창의성을 입증할 수 있는 문자 체계로 발전하게 된다. 일부 지역을 제외한 많은 지역에서는 수메르 문자나 초기 중앙아메리카 문자(수메르 문자와 비슷하게 만들어지기 시작)를 변경시키거나 적어도 거기서 자극을 받아 문자 체계를 만들게 된다. 문자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지역마다 독립된 문자 체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수메르 문자나 초기 중앙아메리카 문자와 그 파생 문자들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문자를 만들어 낼 기회가 견제되었다.
유라시아 세계는 농경문화로 발전하는데 매우 적합한 요건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작물화 가능한 식물(밀)이 존재했고 아울러 가축화 가능한 동물(소,말,양)이 있어야 한다. 메소포타미아 지대나 황하유역은 이런 조건이 충족된 대표적 사례이다. 그에 비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지역은 작물화 가능한 식물과 가축화 가능한 동물이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출발부터 앞서나간 유라시아 지역은 여러가지 요인으로 타 지역과의 격차를 훨씬 벌리기 시작한다.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로 멀리 뻗어 있는 반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는 남북으로 뻗은 대륙이다. 기후는 같은 위도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농경의 확산의 속도는 유라시아쪽이 훨씬 빨랐다.
타 대륙에 비해 농경이 빨리 확산된 유라시아는 강력한 병원균도 가지게 된다. 천연두, 페스트 등 치명적인 전염병은 원래 숙주가 동물인 경우가 많았으나 세균들은 살기에 이상적인 동물(인간)이 크게 늘어난 것을 느끼고 숙주를 다양화한다. 일찍부터 소, 말, 양, 돼지 등 타 대륙애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가축을 가질 수 있었던 유라시아인들은 강력한 병원균 때문에 큰 희생을 치렀으나 종국에는 강력한 세균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된다. 이 지식은 질병의 통제를 통해 유럽지역 인구가 다시한번 폭발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주었으며 남북아메리카의 수많은 원주민을 손쉽게 죽인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유럽의 강력한 군대가 도착하기 이전에 벌써 원주민들은 유럽의 몇몇 모험가들이 가져온 병원균에 의해 감염되어 인구가 크게 감소한 상태였다.
농경 사회가 인구 증가를 촉진시켰냐 아니면 인구 증가에 따라 농경 사회로의 이행이 강제 되었냐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저자는 이 둘의 관계가 '자가 촉매 작용'이라 단정짓고, 확실한 것은 농경 사회가 좀 더 복잡한 사회를 낳았고, 그 결과 문자와 종교, 야금술 등의 발명을 유발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결과의 연장선에서 현 세계는 지금 이 모습인 것이다.
기술도 그렇다. 기술이란 어느 발명가나 영웅의 개별적인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누적된 행동을 통해 발전한다. 그리고 기술이란 대개 어떤 필요를 미리 내다보고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된 이후에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된다. 발명가가 어떤 새로운 기술의 용도를 발견하면 그 다음 단계는 사회가 그 기술을 채택하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여기서 경제적 이점, 사회적 가치관과 위신, 기득권과 양립 가능성 등의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이때, 기술의 `확산`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서 지리적 위치, 상태, 환경적 요인이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정복의 궁극적인 원인은 식량 생산과 각 사회 사이의 경쟁 및 확산이었다. 거기서 시작된 인과 관계의 사슬에 의해 병원균, 문자, 기술, 중앙 집권적 정치 조직 등 정복의 직접적 요인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구체적인 인과 관계는 경우에 따라 달랐지만, 공통적인 요소는 조밀한 대규모 인구와 정주형 생활이었다. 이러한 궁극적인 원인들은 각 대륙에서 제각기 다르게 발전해서 정복의 직접적 요인들에도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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