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2일 토요일

On Liberty - J.S. 밀

1. 밀의 공리주의의 사상적 근간 - 자유


우리는 밀의 공리주의를,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와 구별하여 ‘질적 공리주의’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을 잘 드러내 주는 말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밀의 유명한 말이다. 그러나 공리주의에 대한 밀의 입장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그의 ‘공리주의’의 사상적 근간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공리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자유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결과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밀의 생각은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 점에서도 우리는 밀이 말하는 ‘자유’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자유론(On Liberty)>에서 밀이 주장하는 기본적인 자유는 양심의 자유 즉 사상과 감정의 자유, 취미와 직업의 자유, 단결의 자유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그 사회가 어떤 종류의 사회이건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다. 밀은 이와 같은 자유들이 ‘행복 추구의 자유’로 귀결된다고 보고, 자유라는 이름에 걸맞는 유일한 자유를 ‘우리들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유’ 라고 주장한다.


2. 사상과 토론의 자유


밀은 자유를 이와 같이 규정한 후에 <자유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상과 토론의 자유’에 대해 제 2장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만일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같은 의견인데 단 한 사람이 그것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류가 한 사람을 침묵케 하는 것이 부당한 일임은, 그 한사람이 힘을 가지고 있어서 인류를 침묵케 하는 것이 부당한 것과 완전히 같은 것이다.


이 말 속에는 다수결의 원칙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라는 뜻도 담겨 있다.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면 밀은 절대자에 의한 언론 통제보다 모든 일을 다수결의 원칙으로 해결하려는 다수파의 언론 탄압이 더욱 나쁘다고 보고 있다. 왜냐 하면 그와 같은 행위는 창조적인 소수의 의견을 말살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세론(世論)과 무관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밀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만일 다른 사람의 의견이 바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억압한다면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그리고 그 의견이 틀린 것이라 하여 그것을 억압한다면 우리는 그 논쟁 속에서 얻을 수 있는 한층 더 명확한 진리를 알 수 없게 된다.


결국 의견 발표를 억압한다는 것은 전 인류에게서 행복을 빼앗는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누구의 의견이 옳던 그르건 토론을 통해 그 진리성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 밀의 기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3. 행복의 하나의 요소로서의 개성


<자유론>제 3장 ‘행복의 하나의 요소로서의 개성’ 에서 밀은 “독창성이 인간 사회에서 하나의 귀중한 요소임”을 지적하고 있다. 천재는 자유라는 분위기 속에서만 자유로이 호흡할 수 있기 때문에 밀은 독창성을 지닌 천재들을 확보하기 위한 토양 마련을 위해서라도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천재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더 많은 개성을 지니고 있다. 자유가 없다면 천재는 개성을 발휘할 수가 없다. 천재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생각한다면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자유는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이 말에서도 우리는 자유가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 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본질적인 자유가 있다. 그러나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 그러한 자유가 필요하다고 해도,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무조건적인 자유를 허용할 수는 없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자유는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제약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우선 서로의 이해를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다음으로 사람들은 사회와 사회 구성원들을 외부의 위험이나 간섭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자기 몫의 일을 해야 하며, 자기 몫만큼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는 이 두 조건을 이행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다. 밀은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라고 말한다.


4. 개인에 대한 사회의 권위와 한계


<자유론> 제 4장 ‘개인에 대한 사회의 권위와 한계’에서 밀은 위와 같이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다음과 가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의 말과 행동을 막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어리석은 말이나 행동이라고 해도, 심지어는 그 자신이 엄청난 손해를 보는 말과 행동이라고 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그것을 허용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억제든 억제는 그것이 억제라는 점에서 하나의 악이다.” 따라서 사회 역시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의 이해를 침해하거나 사회의 존립을 해치는 행위가 아니라면 사회 구성원들을 억압하거나 탄압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을 밀고 나가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사회는 행복한 사회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개인은 자연권적 권리로서의 자유 및 소유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어떤 사람이나 집단도 그에 대해서 함부로 행할 수 없는 것이 있다.”라는 ‘소유권적 정의’를 주장하는 노직(R. Nozick)과 같은 자유주의자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자유주의자들도 밀이 ‘자유론’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이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밀의 자유주의에 대한 옹호가 그의 ‘공리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결국은 개인의 자유로운 결정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5. 자유론의 의지


밀의 <자유론>은 사회와 집단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개인의 가치, 더 나아가 개인이 향유해야 할 자유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이것은 밀이 개인보다 사회와 집단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꾸짖는 듯한 경고의 말로 <자유론>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 말을 밀의 <자유론>을 소개하는 이 글에서도 결론 대신 사용해도 좋을 듯하다.


한 국가의 가치는 궁극적으로는 그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의 가치이다. 개인들의 정신적 확충과 향상이라는 이익을 무시하고 세세한 사무를 처리하는 능력, 혹은 경험에서 얻게 되는 사이비 재능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를 원하는 국가, 또는 국민을 위축시켜 국민을 자기 손으로 좌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국민이 위축되어 있다면 어떠한 위대한 일도 성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국가가 모든 것을 희생시켜 이룩해 놓은 완전한 관료 기구도, 그 기구의 원활한 운행을 기하기 위해 배제해 버린 바로 그 활력의 결여 때문에 결국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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