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2일 토요일

Manias,Panics,Crashes - 찰스 킨들버거

"거품은 항상 터지기 마련이다."……언제 읽어도 시의 적절한 진정한 고전

이 책은 투기적 광기에서 비롯되는 거품과 이에 뒤따르는 금융위기에 관한 고전이다. 찰스 킨들버거는 이 책에서 17세기 화폐변조시대와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튤립 광기부터 2001년 아르헨티나 페소화 위기까지 지난 400년간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수십 차례의 거품을 분석했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금융위기를 야기하는 광기와 패닉, 붕괴의 진행과정과 궁극적 대여자의 역할 및 그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언제 읽어도 시의 적절한 주제일 뿐만 아니라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진정한 고전이라는 평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아파트값의 급등과 부동산 거품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게 일고 있다. 그러나 거품은 어느 시대에나 금융시장의 한 모습이었다. 시대는 달랐지만 수많은 투자자들이 이 거품의 덫에 걸려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고점에 매수해 결국, 투기적 광기가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뼈저린 교훈을 배워야 했다.

"시장은 때로 비합리적일 수 있다"
새로운 혁신이나 발명과 같은 변위요인(變位要因, displacement)이 경제전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면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줄 투자기회가 생겨난다.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자, 즉 빌린 돈으로 자산을 사려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신용 공급이 급격히 증가한다. 매수자가 늘어나니 자산가격이 오르고, 자산가격이 오르니 더 많은 매수자가 몰리는 피드백이 벌어진다. 광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같은 투기붐은 계속 이어지다가 보다 영리하거나 운이 좋은 친구가 시장에서 빠져나간다. 가격 상승세는 멈추고, 점점 더 많은 투자자들이 이제는 팔 때라고 결정한다. 패닉이 시작된다. 투자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터지고, 투자자들은 지금까지 투자 결정을 부추겼던 광기에서 깨어난다. 패닉은 더욱 강화돼 붕괴로 이어진다. 투자자들은 대출상환 요구에 시달리고, 결국 가격은 불문하고 팔아 치우기에 급급해진다. 붕괴는 더욱 가속화한다. 마침내 궁극적 대여자(the lender of last resort)의 개입으로 패닉이 멈출 때까지 금융위기는 경제전반에 가공할 충격을 미칠 수 있다.

킨들버거는 이 책에서 시장은 때로 비합리적일 수 있으며, 언제나 스스로 치유하지는 못하므로 궁극적 대여자가 반드시 개입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궁극적 대여자의 개입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야기한다. 금융위기가 닥치더라도 궁극적 대여자가 개입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대중들이 무모한 투기에 나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 킨들버거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모호성과 함께 궁극적 대여자의 능숙한 기술을 제시한다. 궁극적 대여자는 언젠가 개입해 붕괴 국면에서 구원해주겠지만, 투자자들은 구원의 손길이 임박했음을 결코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킨들버거가 전하는 메시지는 과거에 일어난 금융위기로부터 진정으로 배우고 미래에 발생할 금융위기를 진지하게 대비하지 않는 한 거품은 다시 발생할 것이며,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아주 능숙한 궁극적 대여자가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로버트 솔로 교수의 말처럼 "광기와 패닉, 붕괴가 늘어나면 우리 모두가 곤경에 빠지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예방접종을 맞은 효과를 얻을 것이다."

풍부한 역사적 사실과 탁월한 분석
킨들버거의 역사적 서술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경제 문헌들뿐만 아니라 역사와 정치, 문학에서도 자료를 모았다. 특히 경제학 서적에는 으레 따라다니는 복잡한 수식이나 가정 하나 없이 수 세기에 걸친 금융위기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제시되는 풍부한 역사적 사실과 탁월한 분석은 경제학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도 통찰력을 줄 것이다.
이 책의 초판은 1978년에 나왔고, 이번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는 로버트 알리버 공저판은 2005년에 나온 제5판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 MIT 교수가 "이 책을 읽고, 또 읽지 않는다면 5년 안에 후회의 순간을 맞을지 모른다"고 말했던 것처럼 이 책의 개정판이 거듭될 때마다 새로운 금융위기가 추가됐다. 1989년에 출간된 제2판에는 다우존스 평균주가가 하루에 20%이상 폭락했던 1987년 10월 17일 검은 월요일의 세계 금융시장 붕괴위기가, 1996년 출간된 제3판에는 1990년부터 붕괴가 시작된 일본의 거품경제와 1994년의 멕시코 경제위기가, 2000년 출간된 제4판에는 1997~98년의 아시아 경제위기와 러시아 금융대란 등이 새로 추가됐다.
이번에 새롭게 펴낸 제5판에 추가된 내용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20세기의 마지막 15년 사이 발생한 세 차례의 거품과 붕괴에 체계적인 상호 관련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가히 거품경제의 총체적인 경연장과 흡사했던 1980년대 후반 일본의 거품은 1990년 이후 참혹하게 붕괴됐다. 한국도 그 한가운데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던 아시아 경제위기는 1990년대 중반에 형성된 동아시아 거품의 붕괴였다. 신경제와 닷컴붐으로 한껏 달아올랐던 미국 나스닥 주식시장의 거품은 2000년 초 5000을 넘어섰던 나스닥 지수가 1년여 만에 80%나 폭락하며 붕괴됐다.
이들 세 차례의 거품 형성과 붕괴 과정은 시기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독립된 사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 거품의 연결고리는 일본의 자산가격 거품이 붕괴되면서 "밀려나온" 자금이 동아시아 각국의 거품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아시아 금융위기로 이들 나라 통화의 외환가치가 급락하면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급증했고, 미국으로 이동하는 자금 흐름이 극적으로 증가하자 미국의 유가증권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했던 것이다.

"교조주의적 접근방식은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금융위기라는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곳곳에서 "앙천대소를자아내는 일화들과 우아한 풍자"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의 또 한 가지 장점이자 독자들을 매혹하는 부분이다. 특히 제5판에서는 이전 판에서 제시된 주제를 토대로 분석영역을 더욱 넓혔다는 점 외에도, 킨들버거 저서 특유의 "너무 많은 내용을 축약시켜 놓은"(서울대 주경철 교수의 표현) 난해함을 확실히 줄였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 곳곳에 친절한 배경 설명과 에피소드를 싣고 있다.
킨들버거는 어느 한 가지 논리에만 집착하는 교조주의적 접근방식은 단지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 1978년 무렵을 떠올려보면, 당시 경제학계의 가장 큰 화두는 "합리적 기대가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목부터, 인간 행동의 비합리성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광기(mania)"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은 킨들버거의 개방적인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경제학이 그 출발점으로 인간 행동의 합리성을 전제하고, 이 개념에 너무 집착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합리적 사태와 시장의 균형을 이탈시키는 투기적 광기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킨들버거는 "시장은 완벽하게 작동하며 시장에 대한 모든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합리론자도 거부하지만, "시장은 기본적으로 취약하므로 항상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정반대의 입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장은 전체적으로 잘 작동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무력해지기도 하므로 지원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게 킨들버거가 이 책에서 전해주는 교훈이다.
[인터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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