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6일 일요일

Epicurian

신약성경의 사도행전에는 사도 바울이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에서 전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위 `쾌락주의`라는 일견 천박한 듯한 이름으로 대변되는 에피쿠로스 학파는 당시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에서 어느정도 세력을 얻고 있던 철학 사조였는데 성경에서 바울은 이들 에피쿠로스 학파의 학자들과 논쟁한다.

에피쿠로스 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쾌락이야말로 축복된 삶의 유일한 출발이자 마지막이며 `선(善,good)`이라는 것은 쾌락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먹는 쾌감, 사랑의 쾌감, 오감의 쾌감을 버린다면 인간의 `선`이란 무엇인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모든 `선(善)`의 출발과 뿌리는 곧 위장(stomach)의 즐거움이다. 인간의 모든 지혜와 문화도 위장의 쾌락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위장의 즐거움이라고? 배속의 쾌감이 철학의 중요한 주제였다니 참신하지 않은가? 깊이 생각해보자...

에피쿠로스의 중요한 철학적 주제는 두려움, 공포를 없애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에피쿠로스 학자는 말한다.

"인간 공포의 근원인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종교이며 나머지 하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다"

이는 당시(B.C 3~4세기)로서는 정말 생각하기 어려운 개화된 사상이다. 그들의 말을 더 들어보자.

"종교는 죽음은 불행하다고 강조해왔지만 죽음이 괴로운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인간에게 죽음이 경험가능영역의 밖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삶만이 있다."

사후세계의 공포를 빙자해서 종교는 인간에게 괴로움을 줬다. 그래서 그들(에피큐리언)은 신(神)이 인간의 삶에 간섭하지 않으며 영혼은 신체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증명하려했다. 에피쿠로스는 현대적 유물론의 원조가 된다. 정직한 쾌락주의는 유물론적 철학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위대한 철학자 버틀런드 러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현대인들이 종교를 죽음의 위안으로 생각하나 에피쿠로스에게는 정반대였다. 자연에 대한 초자연적 존재의 간섭이야말로 모든 공포의 근원이다. 영혼불멸이야말로 인간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희망을 좌절시키는 가장 악랄한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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