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5일 수요일

전쟁과 살육

1790년에 영국 해군함 바운티 호에서 선상반란이 일어났고 9명의 반란자가 폴리네시아인 남자 6명과 여자 13명을 데리고 핏케언 섬에 상륙하였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은 이 작은 섬에서 그들은 정착해 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15명의 남자와 13명의 여자라는 불균형이 생겨났다. 18년 후에 그들이 발견되었을 때, 거기에는 10명의 여자와 단 1명의 남자만이 살아남아있었다. 남자들중 1명은 자살했고 1명은 병사했으며 나머지 12명은 살해되었다. 생존자 1명은 전적으로 성적 경쟁이라는 동기에 의한 폭력의 수라장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사람이었다. 그 한사람은 즉시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며 핏케언 사회에 일부일처제의 규칙을 정하였다.

법이나 종교, 규약에 의한 일부일처제는 남자들 사이에 살인 및 동정으로 죽어버리는 위험을 막아주는 수컷을 위한 제도인 것 같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게르만 민족의 평정에 실패한 로마 황제들은 게르만 민족이 일부일처 사회를 이루어 공격성을 밖으로 분출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즉 한명 이상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금지됨으로써 정복한 지역의 노예 여자를 소유하고픈 욕망을 불어넣어주어 보다 공격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보르네오섬의 이반이라는 부족은 엄격한 일부일처를 유지한 탓에 정복한 다른 부족의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보다 용맹해졌다.

이러한 경향은 유인원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곰비에서 관찰된 침팬지들은 드물기는 하지만 두 지역의 무리가 전쟁을 벌여 상대세력의 수컷들을 철저히 몰살시키는데 적의 지역을 차지하는 것은 죽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할만큼의 효용을 주지는 못한다.

사실 그보다 훨씬 큰 보상은 정복한 부족의 젊은 암컷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오랫동안 전쟁을 자원의 희소성 때문에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1960년 베네수엘라의 야노마뫼 족을 연구하기 위해 떠났던 나폴레옹 섀그넌은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이들은 희귀한 자원같은 것을 위해 싸우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야노마뫼 족에서 전쟁은 주로 여자들에 대한 소유권 분쟁, 겁탈, 납치, 간통에 대한 복수 등으로 일어났으며 이로부터 야기되는 폭력으로 죽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40살이 되기 전에 무족 남자의 2/3은 가까운 친족을 살인으로 잃게된다. 어쩌면 헬레네는 트로이전쟁의 구실이 아니라 진짜 목적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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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여왕 3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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