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신이 신자들에게 시속적으로나 영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라고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천국에 가고 싶으면 열심히 일해야한다는 프로테스탄티즘은 결국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역할을 했다. 록펠러는 부끄러움없이 주님이 자신을 부자로 만들었다고 말했으며, 로렌스는 심지어 "결국 부는 도덕적인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시편 저자와 마찬가지로 가끔 악한 자가 번창하는 것을 보기도 하나 그것은 가끔일 뿐이다. 경건한 삶에는 부가 따른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부의 분배방식에 정의의 요소가 들어오게 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심적인 고통을 겪게 되었다.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 역시 그럴만해서 실했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가난으로 인한 고통은 이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의 미명하에서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보태졌다.
또한 이때부터 쏟아기지 시작한 성공학 관련저서들은 삶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더욱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아직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겨냥한 자수성가한 영웅들의 조언집, 인격을 개조할 수 있고 금새 엄청난 부와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성공학 관련 책들이 넘쳐났다. "누구나 성공의 법칙을 활용할 수 있고, 노력하면 누구든지 자기아닌 성공한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이책들의 주장은 사람들의 열등감을 부채질했다. 심지어 사람들의 불안감을 이용하여 남에게 조언하고 성공학 운운하며 세미나등을 통하여 점쟁이처럼 길흉을 점쳐주는 것 자체를 직업으로 택한 사람들도 생겨났다. 미국에는 소위 자기계발전문가, 멘토, 성공학자등의 이름으로 할동하는 사람들만도 수십만명에 이른다.
안소니 로빈스는 그의 `무한능력 (Unlimited Power)`이라는 책에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정확히 우리가 무엇이 될지를 결정한다. 만일 우리가 마술을 믿는다면 마술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이 좁은 범위로 제한되어이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진짜 좁게 제한시킬 것이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 우리가 가능하다고 빋는 것은 모두 사실이 되고, 가능한 것으로 된다" 마침내 "무슨 생각을 하건 그 생각을 이룰 수 있다"는 이들의 주장은 사회적 통념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
어쨋든 오늘날 우리는 대다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론상으로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타고났다고 믿는다. 카네기, 나폴리옹, 지그 지글러, 앤서니 라빈스, 보드 섀퍼, 브라이언 트레이시 등의 조언을 들을 것 같으면 세상에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모든 사람들을 성공시킬 실질적인 수단이 없음에도 그들이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엄청난 부를 그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면 되었다.
따라서 "훌륭하고 똑똑하고 유능한데도 왜 여전히 가난한가?"하는 질문은 새로운 능력주의 시대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은 물론 세상에 답을 해야하는 더 괴롭고 고통스러운 문제가 되었다.
그들 탓만은 아니지만 하여튼 기이하게도 현대인들은 삶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실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무제한저긍로 기대한다. 심지어 교욕받고 조금이라도 야망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위대한 일을 쉽게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비범한 운명을 타고났다고느끼기까지한다. 몰론 모든 것을 기대한 환상의 대가는 가혹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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