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3일 목요일

죽음과 진화, 그리고 섹스

`모든 개체는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리처드 도킨스-

노화
개체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보수 작업을 하지만, 생체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시점이 되면 고쳐 쓰는 것 보다 새로 만드는 게 더 낫다. 그래서 더 이상 고치는데 돈을 투자하는 대신, 기존의 것을 폐기처분시키고 새로 구입한다. 번식하는 것이다.
수명이 짧은 생물이 엄청나게 많은 자손을 남기는 이유는 유전자의 효율적인 전달을 위해서다.자연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 개체들은, 포식자에게 잡아 먹힐 확률이 크기 때문에 구태여 수리비를 지불해 가며 고칠 필요가 없다. 차라리 새 걸로 빨리빨리 갈아 주는 방법을 택하는 게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다.

그래서 100여년을 사는 인간은 한 번에 하나씩 밖에 못 낳고 아무리 많이 낳아 봤자 10여 명 안팎에 불과하게 된다. 죽음의 메커니즘은 이런면에서 효율적이다.


일부일처제

대부분의 생물들은 수컷은 양육에 참가하지 않고 암컷 혼자 낳아서 기른다. 설사 수컷이 공동 양육을 하거나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더라도 인간처럼 집단으로 모여 사는 게 아니라, 무리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살아간다. 무리를 이루지만, 그 안에서 한 배우자 하고만 관계를 맺고 자식을 부양하는 방식은 매우 특이한 현상인데, 인간의 일부일처제의 배경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이론은 `daddy at home`으로 축약된다.

가임 기간이 길고 자식을 키우는데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인간의 경우, 암컷의 입장에서는 수컷을 잡아 둬야만 유전자 번식에 유리하다. 수정만 시키고 남자가 떠나버리면 여자는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할 확률이 높다. 자연히 남자는 자신의 유전자 보전에 실패할 것이다.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유전자를 전파시키는 대신, 한 여자가 낳은 자식들을 제대로 키우는데 힘을 보탠다. 인간의 아이를 버려뒀을 경우 죽을 확률이 너무 높기 때문에 수컷 즉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양육에 동참하는 것이다


감춰진 배란신호
여자의 배란일은 여자 자신도 잘 모른다. 가임기간이 언제인지 모르니까 성공적인 번식을 위해서는 자주 섹스를 해야 한다. 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에서 언제라도 섹스가 가능하니까 굳이 남자는 파트너를 찾을 필요가 없다. 비록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기회는 줄어들겠지만 어차피 여자 혼자 내버려 두면 자신의 후손을 제대로 키울 확률도 줄어들기 때문에 차라리 한 여자에게 협력하여 낳은 자식이라도 제대로 키우겠다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또 배란기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배우자를 지키지 않으면 다른 수컷 경쟁자가 자신의 암컷을 임신시킬지도 모른다. 당연히 남자는 파트너 곁에 머무르면서 공동 양육에도 참가하고, 암컷을 다른 수컷으로부터 지킨다. 그래야 암컷의 아이가 자신의 유전자를 가졌음을 확신할 테니까.

폐경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의 수컷처럼 생식 능력이 서서히 떨어진다. 그러나 인간의 암컷은 폐경이라는 과정을 통해 갑작스럽게 중단되는 독특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합리적인 이유는 나이 많은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얻는 이득이, 생산을 중단하고 기존의 아이를 키움으로써 얻는 이득보다 더 적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기존의 아이들에게 돌아갈 양육 에너지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가 된다. 생체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한히 많은 자식을 낳을 수는 없다. 인간의 아이는 대단히 긴 양육 기간을 필요로 하고, 출산에 따른 위험성도 매우 크다.

자연히 여자는 개체의 보전을 위해서라도 다른 동물보다 임신과 출산에 훨씬 더 신중해질 것이다. 유전자 전파도 중요하지만 개체의 보전도 중요한 문제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가 죽고 나면 나머지 아이들은 성인까지 자라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난자의 질은 떨어진다.


이성을 유혹하기

세 가지 이론

1.이탈 선택 모델

공작새의 경우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화려한 꼬리를 발달시킨다. 그렇지만 너무 큰 꼬리는 도망가기에도 불편하고 포식자의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오히려 생존에 불리하게 된다.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시점까지만 진화하는 것이 이탈 선택 이론이다

2.핸디캡 이론

공작새의 꼬리는 생존에 불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꼬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핸디캡을 안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뜻이므로 오히려 핸디캡이 없는 경쟁자 보다 생존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가 된다.

3.광고속의 진실 이론

숫사슴은 뿔이 화려할수록 기생충이 없고 건강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성에게 어필하는 성적 매력이 핸디캡이 아니라 실제로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성을 매혹하는 성적 매력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생존 능력도 뛰어나다는 이중광고가 된다
인간에게 비유해 보자면, 돈많은 남자들이 먹고 사는데 별 필요가 없는 사치품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남성의 소비는 섹스와 상당히 관련이 높다. 데이트 과정에서 여성이 남성의 물량공세에 넘어가는 것도 물질 자체를 수컷의 성실함과 강건함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작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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