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4일 금요일

재정건전성은 꼭 지켜져야하는가?

재정 건전성에 대한 강조는 나쁜 사마라이안들이 권장하는 신자유주의 거시 경제학의 핵심 주제이다. 이들은 정부가 세입을 초과해 지출해서는 안되며 항상 균형예산을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적자 지출은 물가 상승을 초래하여 경제안정성을 해치고, 따라서 성장을 감소시키고 고정된 수입으로 사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떨어트린다.

이러니 과연 누가 재정 건전성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물가 상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과연 재정 건전성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야한다.

첫째, 재정 건전성은 정부가 매년 회계균형을 유지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부 예산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예산 균형은 1년 단위가 아니라 한 경제 순환 주기를 기준으로 달성되어야 한다. 회계연도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극히 작위적인 시간단위에 불과한 것으로,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길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케인즈의 핵심 메시지에 나타난 바와 같이 중요한 점은, 경제 침체기에는 적자 지출을 활용하고 경제 회복기에는 예산 흑자를 기록하면서 해당 경제 순환 주기 전체에 걸쳐 민간부문의 침체 내지는 과열을 상쇄시키는 것이 정부 역할이라는 사실이다. 개별 행위 주체들의 경우에도 공부를 하거나 어린 자녀를 양육할 때는 돈을 빌렸다가 소득이 많을 때 상환하는 것은 아주 건전한 태도가 아니던가? 마찬가지로 개도국이 현재의 세입에 넘어서는 투자를 하여 경제성장을 가속화시키리 위해 '미래 세대에게서 대출'하는 방식으로 적자 예산을 운영하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는 개도국 정부가 경제 순환 주기나 장기간 개발 전략과 상관없이 매년 회계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IMF는 정부의 적자 지출로 사실상 혜택을 볼 수 있는 거시경제 위기를 맞은 국가들에게 예산 균형 조건, 심지어 예산 흑자 조건을 부과하고 있다.

가령,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은 1997년 12월에 IMF와의 협정에 서명했을  때, GDP대비 1%수준으로 예산 흑자를 유지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외국자본이 엄청나게 빠져나가면서 경제가 심각한 후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IMF는 한국적부에 대한 예산 적자를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해야 했다. 당시 한국은 전세계에서도 GDP대비 정부 채무가 가장 낮은 나라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이런 정책을 쉽게 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는 한국이 적자 예산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보다 더 극단적인 사례로는 그와 같은 해 재정 위기를 맞아 정부지출, 특히 식량 보조금을 삭감했던 인도네시아를 들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자율이 80%까지 급등하면서 광범위한 기업도산, 대량 실업, 도시 폭동이 발생했고, 결국에는 1998년 GDP가 16%나 하락한다.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이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이들은 정반대로 행동한다. 수요진작을 위해 이자율을 낮추고, 정부의 적자지출을 늘릴 것이다. 부자나라의 재무장관이라면 어느 누구도 경제 침체기에 이자율을 높인다던가 예산 흑자를 운용하는 미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닷컴 버블 붕괴와 911테러로 어려움을 겪었던 미국은 적극적인 재정적자정책으로 2003~2004년간 예산 적자가 GDP의 4%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1991~1995년까지 경기 침체를 겪던 선진국들의 GDP대비 재정흑자는 스웨덴 8%, 영국 5.6%, 네덜란드 3.3%, 독일 3%였다.


이와 비슷한 제도로 BIS가 있다. 은행들이 자기자본에 대비한 과도한 대출을 막기 위한 제도로서 고안된 것인데 이는 오히려 경기순환의 진폭을 더욱 크게하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가령, 호황기에 은행은 자산가격 급등으로 자기자본이 팽창하기 때문에 BIS비율에 따라 대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 반면, 침체기에는 자산가치가 하락해 자기자본이 축소되므로 은행은 대출을 회수하고 결과적으로 경기침체가 더욱 가속화되며 진폭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 나쁜 사마리아인들 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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