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차키스: "근심 걱정을 잊으려고 산투르(조그만 망치나 채로 쳐서 연주하던 침발롬이나 덜시머의 변형으로 기타와 비슷한 악기)를 치셨던 게로군요?"
조르바: "이것 보쇼, 보아하니 당신 악기하나 못다루는 모냥인데, 뭔소리를 하는게요? 집구석에 들어가면 있는 게 근심 걱정이지, 마누라고 새끼들이고 다 그렇잖소? 먹을걱정, 입을걱정, 미래 걱정, 이런 빌어먹을... 그래선 안되요. 산투르를 치려면 환경이 좋아야해요. 암~ 마음이 깨끗해야한다는 게지. 마누라가 옆에서 바가지 긁고, 애새끼들이 밥달라고 빽빽거리는데 연주가 제대로 되겠소? 산투르를 치려면 모든 정신이 산투르에 집중되야한다~ 이말이요"
그렇다.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걸쭉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그 늙은 노동자가 지껄이는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나는 곡괭이와 산투르를 함께 다룰 수 있는 그의 손을 보았다. 두 손은 못이 박이고 터지고 일그러진 데다 힘줄이 솟아나와있었다. 그는 여자의 옷이라도 벗기는 것처럼 섬세하고 주의깊은 손놀림으로 보따리를 열고 세월에 닦여 반짝거리는 산투르를 꺼냈다. 줄이 여러개였는데, 줄 끝에는 놋쇠와 상아와 붉은 비단 술 장식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큰 손으로, 여자를 애무하듯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정열적으로 줄을 골랐다. 그러다가는 사랑하는 여자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다시 옷을 입히는 것처럼 다시 보따리에 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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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제서야 그의 왼쪽 집게손가락이 반이상 잘려나간 걸 알았다
카잔차키스: "손가락은 어떻게 된 겁니까 조르바?"
조르바: "아무것도 아니오"
카잔차키스: "기계 만지다 잘렸나요?"
조르바: "뭘 안다고 기계 어쩌고 하시오? 내손으로 잘랐소이다."
카잔차키스: "당신 손으로? 왜요?"
조르바: "당신은 모를거외다 두목. 안해본 짓이 없다고 했지요? 한때 도자기를 만들었지요. 그 놀음에 미쳤더랬어요. 흙덩이를 가지고 만들고 싶은 건 아무거나 만든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아시오? 스르르~ 녹로를 돌리면 진흙 덩이가 동그랗게 되는 겁니다. 항아리를 만들어야지, 접시를 만들어야지, 아니 램프를 만들까?, 귀신도 모를 물건을 만들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요? '자유' 말이오"
카잔차키스: "그래서요? 손가락이 어떻게 되었느냐니까요?"
조르바: "참, 그게 녹로 돌리는데 자꾸 거치적 거리더란말입니다. 이게 끼어들어 글쎄 내가 만들려던 걸 뭉개어 놓지 뭡니까. 그래서 어느날 손도끼로 잘랐수다."
카잔차키스: "아프지 않던가요?"
조르바:"말이라고 하슈? 나라고 썩은 나무등걸은 아니외다. 물론 아팠지요. 하지만 이게 자꾸 거치적 거리면서 신경을 돋구었어요. 그래서 잘라버렸죠."
해가 빠지면서 바다는 조용해졌다. 구름도 사라졌다. 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바다를 보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후회했다. 얼마나 사랑하면 손도끼를 들어 내려치고 아픔을 참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내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다.
카잔차키스: "그건 좀 심한데요 조르바.. 그 이야기를 들으니 '성인전집(聖人傳集)'의 금욕주의자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여자를 보고 안고싶은 욕망의 갈등이 견디기 어렵자 그 양반은 도끼를 들어 자신의 성기를 잘랐다는군요"
조르바: "거참 병신같은 새끼일세... 자지를 자르다니! 그런 병신은 지옥에나 가야지. 그것 참 순진하고 답답한 친굴세. 그건 장애물이 아니에요!"
카잔차키스: "하지만 아주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었겠지요"
조르바: "뭐에 말입니까?"
카잔차키스: "하늘나라로 가는데 말이오"
조르바: "이그, 답답한 양반아.. 그건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쇠라는 걸 왜 모르셔?"
그는 고개를 들어 내세의 삶, 천국, 여자, 성작자 따위의 생각이 복잡하게 오고가는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려는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내 심중을 별로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랬는지 그 커다란 잿빛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조르바: "병신은 천국에 못들어가요."
- 그리스인 조르바 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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