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미국의 후버 대통령이 `번영이 임박해왔다`고 단언했을 때, 그것은 결코 대중을 현혹시킬 의도로 내뱉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그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1869년부터 1929년까지 1차 세계대전 기간을 제외하고 경기침체를 보인 해는 모두 함쳐 7년에 불과했다. 그중 한번은 경기가 매우 높은 수치에서 하락헤 1907년에서 다음해까지 2년 연속 침체의 늪을 헤맨 경우도 있었다. (FRB가 태어난 계기가 된 공황시대) 그러나 5.5% 하락을 포함해 경기 침체를 보인 7년간 실질 GDP의 연간 평균 하락률은 1.6%에 불과했다.
그랬던 것이 1931년에는 생산이 9.3%하락했고 1931년에는 8.6%떨어졌다. 경기의 최저점인 1932년 6월 GDP는 1929년 절정때보다 55%나 밑돌았다. 심지어 1920년 일시적인 불황기에 보였던 최저치보다 더 낮았던 것이다. 60년 역사가 순식간에 무의미해져버렸다. 소위 `광란의 20년대(roaring 20's)`라고 불리우는 1920년대의 활황기에도 경제성장은 1870년에서 1918년까지 보였던 장기추세보다도 낮았다. 이러한 추진력의 쇠퇴는 국내외적인 정책적 실수와 1929년 10월 주식시장 폭락의 충격과 결합해, 어쩌면 `임박해있었을 번영`은 뒤로 물러나 버렸다.
대공황 30년뒤엔 1959년 역사적 견지에서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다. 1950년대 후반까지 투자자들은 채권보다 주식에서 더 높은 수익을 올렸다. 양자의 수익률이 비슷해질 때마다 보통주의 배당수익률은 다시 움직여 채권의 금리를 넘어섰다. 즉, 그때까지 항상 배당수익률이 장기 국채 수익률보다 반드시 높아왔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주식은 채권보다 더 리스크가 크다. 채권은 원금 및 이자 지불시키가 명기되어있는 반면 주식의 보유자는 회사 자산에 대한 실질적 청구권이 없다. 배당을 지불할 의무도 없다. 1871년에서 1929년사이에 배당지급액은 19차례나 삭감되었던바가 있다. 1959년까지 그랬단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주가가 치솟고 채권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이는 이자율이 급등하고 배당수익률이 하락함을 의미한다. 마침내 채권 수익률이 배당수익률을 앞서게 된것이다. 그리고 그 격차는 점점 커져갔다. 이러한 반전의 원인은 결코 하찮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인플레이션, 더 깊이 파고든다면 2차 대전후 성립된 브레튼 우즈 체제에 있었다.
1800년에서 1940년까지 물가는 연평균 겨우 0.2% 비율로 상승했으며 사실 하락한 해도 69차례에 달한다. 1940년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140년전에 비해 단지 28%상승한 상태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고정된 달러 가치의 자산(채권)소유는 즐거움이었던 반면, 고정적이지 않은 달러 가치의 자산(주식)소유는 리스크가 매우 큰 일이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과 그 여파로 모든 것이 변했다. 인플레이션은 1941년에서 1959년까지 연평균 4.0%상승했으며 소비자 물가지수도 한해를 제외하고는 해마다 올랐다. 잔인하게 오르는 물가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채권이라는 금융상품은 극단적으로 리스크가 큰 투자상품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한편, 주식배당금은 1945년에서 1959년사이에 세배로 폭등했다 그 사이 오직 한 해에만 저조한 실적이 나타났으며 그것도 2%하락에 불과했다. 투자가들은 주식을 더 이상 가격과 수익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움직이는 위험한 자산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1959년 이전과 다른 새로운 추세가 나타났을 때 과거를 반추했던 사람들은 주식이 곧 떨어질 것이며 채권가격이 회복되는 정상적인 추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그걸 기다리고 있다.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당시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인생관, 특히 투자에 대한 지속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몇몇 사건은 미래에 다한 우리의 태도변화뿐 아니라 과거를 반추하는 일이 과연 지혜로운 행동인가 하는 회의에 빠지게 한다.
결론적으로 훌륭한 지혜를 얻는 비결은 평균으로의 회귀가 단지 도구일 뿐이라는 유연한 생각에 있다. 평균으로의 회귀는 불변의 교리와 의식을 지닌 종교가 아니다. 평균으로의 회귀를 과거에서 기계적인 추정을 이끌어내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보다 나을 게 없다. 현재 내린 가정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 없이는 절대적인 평균으로의 회귀만을 믿고 게임에 뛰어들지 마라. 골턴이 현명한 충고를 해주지 않았던가.
"평균보다는 포괄적인 관점을 즐겨라"
- 리스크 2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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