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1일 화요일

도덕 철학 입문 - 마이클 샌델

우리는 철학적 고전들 뿐 만 아니라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는 오늘날의 정치적, 법적 논쟁을 다룰 것입니다. 평등과 불평등, 소수자 우대정책, 동성결혼, 사형제도, 언론의 자유와 통제, 징병제도 등 현실의 다양한 문제말입니다.

왜냐구요?

추상적이고 오래된 고전들에 생명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정치를 포함한 일상생활 속의 문제들을 탁자위에 이끌어내고 명확하게 밝혀서 '철학'이라는 것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철학서적들을 잃고 생각해보면서 일상생활에의 영향 살펴볼 것입니다.

아주 매력적인 얘기 같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먼저 여러분에게 경고부터 해야겠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 책들을 읽고 토론하면, 즉 자기 인식을 위해 이 책들을 읽으면 몇 가지 위험이 닥칠 수 있습니다. 첫째, 개인적 위험, 둘째 정치적 위험입니다.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누구나 알고 있는 위험입니다. 이 위험이 생기는 이유는 우선 철학이 우리를 가르친다는 사실이며 둘째 철학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항하게 만들며 혼란스럽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하고 당연시 여겼던 것들을 끄집어내어서는 그것들을 낯설게 만듭니다. 철학서들도 그런 방식을 취합니다. 철학은 친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데 그 방법은 새 정보를 제공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첫번째 개인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친숙한 것들이 낯설어진 뒤에는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자기인식은 선악과와 같아서 순수함을 잃게 만듭니다. 자기인식으로 불안과 혼란을 느낀다고 해도 이미 습득한 생각과 지식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전개될 지도 모릅니다.

그럼 정치적인 위험은 무엇일까요? 이런 강좌를 소개하는 흔한 방법은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책들을 읽고 이 문제들을 토론하면 더 훌륭하고 책임감 있고 가치 있는 시민이 된다. 공공 정책이 의도하는 바를 검토하는 정치적 판단력을 기르게 될 것이다. 국가와 공공의 일에 더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등의 약속이죠

하지만 이런 약속들은 실제와 다르고 부분적이며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치철학은 그런 효과를 낳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치철학 때문에 여러분이 더 나쁜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철학은 일상적인 것과는 거리를 두는 학문,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였던 현실을 무력화시키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소크라테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죠.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와 친구 칼리클레스가 대화를 나눕니다. 친구를 걱정하는 칼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던집니다. "철학이란 예쁘장한 장난감에 불과하네. 적당한 시기에 적당히 빠지는 것은 괜찮지만 지나치게 철학을 추구하면 사람을 망치고 만다네, 내말 좀 듣게나, 논쟁을 그만두게, 대단한 사람들이 이룬 것을 배우게 시시한 궤변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부자이고 성공하고 복이 많은 사람들을 귀감으로 삼게" 이말을 현대 버전으로 각색해서 한마디로 줄인다면 "철학은 때려쳐! 정신 좀 차리고 MBA나 준비하게"입니다.

칼리클레스이 말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철학은 관습적인 것이나 기존의 관념, 신념에서 우리를 떼어놓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위험입니다. 이런 위험에 맞닥트릴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회피입니다. 회의주의라는 이름의 회피입니다. 회의주의는 이런식의 생각이죠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어.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이나 논의한 원칙들에 대해 결론 낸 것이 없어. 아리스토텔레스나, 존 로크, 칸트, 밀도 그 오랜 기간 동안 풀지 못한 문제를 하버드 대학 극장에 모인 우리가 어떻게 한 학기만에 풀겠어? 원칙이란 각자가 판단할 문제고 거기에 대해 토론할 필요는 없는 거야. 이치를 따지는 건 불가능해"라고 하는 사고방식이죠.

그것에 대해 저는 이러한 대답을 내놓고 싶습니다.

"이 문제들이 아주 오랬동안 미해결로 논의되어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고 사라지지 않았다는 바로 그 점이 비록 해결은 불가능하지만 이 문제들을 피할 수도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그 문제들을 회피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문제들이 우리의 일상 자체이며 그 일상이 이 문제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고민을 포기하는 회의주의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임마뉴엘 칸트는 회의주의라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멋지게 설명했습니다.

"회의주의는 인간 이성의 쉼터다. 그곳에서 이성은 이념적 방황에 대해 성찰할 수 있지만 그곳에 영구적으로 정착해 살 수는 없다. 회의주의에 굴복한다면 이성의 동요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

이 이야기들과 토론을 통해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위험과 매력, 그리고 가능성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런 얘기죠.
“이 강좌의 목적은 이성을 일깨워 방황하게 만들고 그것이 무엇을 이끌어내는지 보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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