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1일 화요일

인간의 사랑보다 더 낫다

개는 결코 낙원에서 추방된 적이 없다. 카레닌(테레사의 애완견)은 영혼과 육체의 이원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혐오감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테레사는 그 곁에 있으면 기분이 좋고 편안했던 것이다.

이러한 혼란스런 생각의 와중에서 도무지 떨쳐버릴 수 없는 신성모독적인, 혹은 인간성 모독적인 생각이 테레사의 영혼 속에서 싹텄다. 카레닌과 자신을 잇는 사랑은 자기와 토마스(테레사의 연인)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보다 낫다. 더 크다는 것이 아니라 낫다는 것이다. 테레사는 자기 자신이나 토마스 그 누구도 비난하고 싶지 않았고 그들이 서로를 더욱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단언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개와 인간 사이의 사랑보다 열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 역사의 이러한 기형태는 아마도 조물주가 계획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이해 관계가 없는 사랑이다. 테레사는 카레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조차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의 한 쌍을 괴롭히는 질문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가 나를 사랑할까? 나보다 다른 누구를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더 사랑할까? 사랑을 의심하고 저울질하고 탐색하고 검토하는 이런 모든 의문은 사랑을 그 싹부터 파괴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는 다른 무엇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테레사는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따라 바꾸려들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그가 지닌 개의 우주를 수락했고, 그것을 압수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의 은밀한 성향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녀가 개를 키운것은 그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함께 살 수 있도록 그에게 기본적인 언어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점도 있다. 개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자발적 사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떤 인간존재도 다른 사람에게 전원시를 선물할 수 없다. 오로지 동물만이 그것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동물만이 천국에서 추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개 사이의 사랑은 전원적이다. 그것은 갈등이나 가슴이 메어지는 장면, 발전 같은 것이 없는 사랑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카레닌의 미소`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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